2022.3.30.수요일
내 키보다 훨씬 큰 벤자민, 거의 내 키랑 비슷한 산세베리아 둘,
고무나무, 인삼 벤자민, 금전수, 산호수, 동양난 둘,
그리고, 얼마전 물꽂이해서 화분에 옮긴 고무나무 둘과 인삼 벤자민까지...
우리집 거실에서 함께 살고 있는 반려식물들이다.
저자처럼 마당있는 집에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꽃이며, 나무들을 심고 가꾸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는 그런 삶을 살거라 기대하며
지금은 아파트라는 한계는 있지만 식물들과 함께 살아간다.
나도 저자처럼 식물의 연두색을 넘넘 사랑하는 사람이다.
벌써 봄을 느끼고 연두색 새순이 돋기 시작한 식물들을 바라보면,
신기하고 기특하고 아름답고 경이롭다.
이 책을 통해 식물을 더 주의깊게 바라보게 되어서 좋고,
새로운 식물들을 더 많이 알게 된 것도 좋다.
식물과 함께 더 싱그러운 삶을 살아가야겠다~^^
p.16
데려와 돌봐줄게.
…
사실, 돌봐준다는 건 나 역시 돌봄을 받는다는 말에 다르지 않다. 무엇인가에 마음을 준다는 것은, 그렇게 마음의 흐름을 갖는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둘 사이에 시냇물 같은 게 생기는 거니까.
그게 한쪽으로만 흐른다 한들 서로 닿아 있다는 말이니까. 거기에 발목도 담그고, 얼굴도 비춰보고, 안부도 전하면서.
p.45
생각해보면 식물과의 교감이라는 것도 그렇다. 사소함이 모여 생활을 이루는 것처럼, 조금씩 쓸쓸한 마음이 모여 어딘가에 닿는 간절함이 되는 것처럼, 식물과 나는 아무 말이 없어도 혹은 함께 죽자고 말하지 않았어도 날마다 보내는 사소함이 꽃을 피우고 마음 따뜻해지는 결이 된다. '결'이라는 말은 얼룩이나 흔적이 담아낼 수 없는 고요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온도 같아서 좋다.
p.70
나의 작은 마당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이나 화분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사실 제 맘껏 자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환경이다. 그러다 보니 열매나 꽃을 보는 일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아이들보다 적다. 그러나 꽃이 아니면 어떤가, 연두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답다. 버티는 일도 그렇다. 버틴다는 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p.82
세상으로부터 지워진 내 이름도 어디쯤에서 비처럼 내릴까. 흐지부지 늙어가는 일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나는 이제 더는 이해받지 못한 열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여름 화단은 겨울을 끌어안고 운다.
p.147
그리고 수국은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이 제법 길다. 어느 소설가는 어떤 글에서 수국을 수다쟁이로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소복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럼 나도 같이 끼어 앉아볼까 싶지만, 사실 이 아이들을 수다쟁이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나는 이 아이들이 모여서 떠드는 걸 본 일이 없다. 다들 자기 식대로 이야기하는 것을 몇 번 보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뭉쳐서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한다. 참 이상하면서도 신비한 식물이다.
p.189
내 마음에도, 몸에도 그런 마디가 좀 있다. 물론 그런 마디가 있음에도 여전히 똑바로 서 있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마음이란 참 그런 것이어서 수시로 낭떠러지가 되고, 난간이 되거나 며칠씩 집 나가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내 것인 것이 어찌 이리도 내 것 같지 않을 때가 많은지. 하지만 그렇게 마음의 한 끝이 난간이 될 때 나는 또 그만큼 어디로든 깊어진다고 믿는다. 끝을 가본다는 것도 그런 것은 아닐까 싶다. 마디는 그럴 때 조금씩 자란다.
참으로 우연하게 손에 쥐게 된 산문집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읽을 때마다 이것이 진정으로 우연이란 말인가, 하고 놀란다. 이 책은 식물들을 키우며 쓴 산문집인데, 놀랍게도 나는 요즘 식물들을 키우고 있다. 아니, 같이 살고 있다. 어느날 TV를 보다가 갑자기 확 꽂혀서 파키라, 이오난사, 파리지옥, 편백나무, 네펜데스, 구문초, 알로카시아, 스투키 등등 다양한 종류를 한꺼번에 키우게 되었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새삼 또 놀랍네.ㅎ 여튼, 죽이는 게 무섭고 미안해서 키워볼 엄두도 못 냈었는데.. 아직 싹이 나지 않는 캣닙까지 이렇게 매일 애정을 품고 바라보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요즘 들어 더 심하게 외로움을 타고 있어 씁쓸해하고 있는 나에게 이 아이들은 존재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그런 내 식물들을 더 바라보게 하고 마음을 열게 하는 좋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산문집이었다.
내 마음은 시인이 되기에 참 적합한 조건이었으나 나의 글빨이 마음의 재능을 따라가지 못해 늘 아쉽고, 외롭고, 어디에도 닿지 못해 늘 헛헛했다. 그런 내 마음이 내내 안타까웠었는데, 이 산문집과 우리집의 초록2들이 서릿발같이 하얗게 얼었던 마음의 온도를 초록에 가깝게 올려주었다. 지금은 노랑빛이 살짝 도는 연두가 될까 말까~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초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바쁘다는 말은 감성이 메마르거나 황폐한 가슴으로 변해간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시간적 바쁨보다는 마음에서 오는 알 수 없는 쫓김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이라는 게 언제나 그렇듯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시작하든지 혹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허겁지겁 시작하든 결과적으로 일을 마무리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별반 차이가 없음에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후자를 선택하곤 한다. 그렇게 한동안의 시간을 보낼라치면 휑한 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을 관통하는 듯하고,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는 물기를 잃고 바삭바삭 메말라가는 것들이 주검처럼 펼쳐지곤 한다.
그러므로 감성이 메마르다는 건 육체의 노쇠보다 더 위험하다고 느껴질 때가 더러 있다. 감성의 메마름은 언어의 고갈로 이어질 때가 많다. 상황에 맞는 적확한 언어의 선택은 감성이 메마르지 않고 적당히 젖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같은 의미의 말을 전달하더라도 다양한 어휘를 선택하는 이와 몇 안 되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이의 감성은 크게 갈린다. 우리의 몸이 70%가 물인 것처럼 우리의 정신도 70%의 감성을 유지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로 육체의 질병을 지나치게 걱정하면서도 정신적 질병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보면 식물과의 교감이라는 것도 그렇다. 사소함이 모여 생활을 이루는 것처럼, 조금씩 쓸쓸한 마음이 모여 어딘가에 닿는 간절함이 되는 것처럼, 식물과 나는 아무 말이 없어도 혹은 함께 죽자고 말하지 않았어도 날마다 보내는 사소함이 꽃을 피우고 마음 따뜻해지는 결이 된다. ‘결’이라는 말은 얼룩이나 흔적이 담아낼 수 없는 고요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온도 같아서 좋다." (P.45)
이승희 시인의 산문집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를 읽으며 내가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무척이나 메마르고 거친 시간을 보내왔구나, 하는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바라는 뜻에서의 반성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일견 방치한 측면이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반성이다. 그에 대한 치료는 어쩌면 간단할지도 모른다. 자연 속에서 머물면서 자연과 깊이 동화되는 시간을 갖는 것, 내가 알던 식물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바람이 흐르는 길목에 나의 마음을 무심히 풀어놓는 것,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을 잊고 패랭이꽃처럼 하늘거리는 것...
"굳이 말하지 않고, 묻지 않아도 꽃은 핀다. 중요한 것은 그거이다. 그러나 그냥 둠은 버려둠이 아니라 거기 그냥 둠으로써 끌어안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끌어안음은 굳이 스스로 열렬하다고 소리치지 않아도 깊고 따뜻하다." (p.204)
시인은 자신이 살고 있던 집에서 식물들이 잘 살아남지 못하자, 식물이 살 수 없는 집에서는 살기 싫어 마당이 있는 구옥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전에 살던 집에서 함께 살던 식물들과 함께. 그리고 이사 온 후에 새로운 식구들을 맞아들여 다양한 식물들과 동거동락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함께 사는 식물들에게 시를 읽어주고, 라디오를 들려주고, 비가 오면 비를 맞혀주면서 함께 하는 시간들을 늘려가는 것이다. 식물들은 시인에게 호들갑스럽지 않은 위로를 전하고, 슬픔의 모양을 빚어주고, 일상의 평온을 선사하기도 한다.
"식물들도 나도 불시착한 비행기처럼 지금 여기가 어딘지를 묻는 일이 있다. 그런 일들이 날마다 쌓여간다. 가끔 농담처럼 구름이 지나고, 혼자 산책하는 나를 내가 뒤에서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풍경은 지나가고, 세상의 모든 당신들도 지나가고 모든 사물은 저마다의 이름으로 행복해 보인다." (p.71)
이름도 모르는 식물을 만날 때마다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숲길을 걸으면서 무수히 많은 만남의 시간을 가졌을 텐데 여태 이름도 모른다는 건 마음을 열지 않았다는 것이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며, 무시해도 될 만큼 가벼이 여겼다는 뜻이리라. 그만큼 나는 냉정하고 오만한 인간이었으리라. 주변에서 흔하디 흔한 여뀌만 하더라도 바보여뀌, 개여뀌, 기생여뀌, 이삭여뀌 등 그 종류가 어찌나 많던지... 그러나 하나하나의 식물들도 애정을 갖고 바라보면 그들 각각이 얼마나 독특하고 아름다운지 우리는 이름도 모른 채 차마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어느새 미모사의 연분홍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가늘고 긴 수술이 여럿 모여 마치 부채꼴 모양을 한 미모사의 꽃은 고운 색깔과 더불어 부드러운 느낌이 마치 비단결 같다. 매년 나는 자귀나무라고도 불리는 미모사의 개화를 경이로움으로 바라보곤 했었는데 올해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꽃이 만개한 오늘에서야 화려한 자태를 겨우 마주했던 것이다. 자귀나무의 꽃말은 가슴의 두근거림이라는데 나는 땅에 떨어진 부드러운 꽃술을 매만지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숨을 가만가만 가다듬는다.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저자처럼 힘들 때 식물에 숨어 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세상에서 근사한 삶을 살지 못한다 느끼던 시간에는
식물들을 보며 그의 연두의 의미는 남달랐던 것 같아요
저자와 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책입니다
식물에게 시를 읽어주고 음악을 들려주는 그녀는
식물집사이길 자처하며 식물을 통해 마음의 힘을
얻는 따뜻함이 느껴져 왔어요
연두색을 가진 친구를 사귄다는 그의 연두.
그녀가 말하고 싶은 연두를 만나 보았지요
단어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마음
데려온다 와 데려와 돌봐줄게
그런마음으로 반려 연두를 바라보고 있었지요
배우자를 만나듯 연두를 만나고 마음을 배우며
스스로도 돌봄을 받고 싶은 마음을 입히는 마음
식물이 성장하는 모습을 건축가에 비유하기도 하고
연두에게 음악소리를 들려주며 라디오를 키고 마당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낀다는 그녀는 식물이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자칭 잘 듣고 있는 .식물이 있는 공간이
깊어지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살아가면서 받은 세상의 상처가 누구에게나 있듯
상처받고 돌아왔을 때 말없이 지켜주는 식물에게
위로를 받고 그러면서 나의 쓸모를 발견하며 연두와
동거하는 그녀의 이야기속에서 우리가 짝지를 만나
살아가고 있는 듯한 그림을 그리게 하고 있지요.
그런데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담배도 좋아하고 입담 또한 조금은 거칠지만 그만큼
호탕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내게 그런 것 묻지 말길,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그게 존나 버티는 거라면 그럼 그렇게 하는 거다.
꽃보다는 연두니까 (p71)
같이 살고 있는 식물들을 존중해주고 위로받고 보살펴주고
마음을 주고, 추억을 되살려주고, 때로는 힘을 주기도 하는
연두.. 그중에서도 편애하는 식물은 당연히 있었을것이기에
어떤 식물이 있는지를 보았어요.
꽃보다는 잎을 보고 데려온다는 그래서 데리고 온 여인초의
이야기에 홀려 저도 조만간 집에 들여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벤자민 고무 나무를 통해 그는 삶의 성찰이 언제나 아름답고
풍요로운 것은 아니며 끝없이 결핍의 나를 만나는 일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끝도 없는 상실감과 상처를 한없이 견뎌야 하는 길은 그럼에도
가는것이라고 끝의 시작이 환히 보이더라도 멈추지 않는 것
께 그냥 사는것이지 않나 하는 이야기도 들려주지요
시속에 식물이야기에 담긴 시들을 천천히 읽어보며
나도 따라 쓰고 싶은 부분들도 있더라구요
제일 뒤에는 저자가 좋아하는 식물들의 일러스트도 나와 있는데
키워보고 싶지만 내 손에서는 아름답지 못할 것을 상기하며
포기포기
식물에 대한 정보를 많이 주는책이지 않나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식물속에 담긴 스토리가 더 재미있게 들려왔던 책입니다.
나에게도 반려 식물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따뜻한 마음을 전수받은 기분입니다.
[이 글은 폭스코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어떤밤은식물들에기대어울었다 #이승희 #폭스코너 #책과콩나무 #서평도서 #도서협찬 #산문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이 세상엔 혼자가 아니다. 혼자 집에서 산다해도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직장에 가면 직장동료가 밖에 나가면 많은 사람들과 친구들 부모님 형제 자매, 누군가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강아지를 키우고 그저 건들지만 않으면 가만히 있는 고양이를 키우는 반면 누군가는 파충류를 키우기도 한다.
이 책은 사람과 식물이 사는 집이라는 공간속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이야기다. 이승희 저자는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시 쓰기를 시작하여 시집과 동화집을 내었다. 저자는 이 책을 산문식으로 글을 써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야가 산문이고 또 식물과 자연을 좋아하기에 마음이 행복한 도서가 아닌가 생각한다.
식물원에 가보려했지만 코로나가 갑자기 생겨 가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만족감이 생기면서 오히려 사람과 식물과의 동거속에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 알게 해준 것 같아 고마운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도 저자처럼 식물을 키우고 싶고 식물로 집을 꾸미고 싶지만 혼자 사는것도 아니고 집도 내집이 아니고 좁은편이라 마음속에서만 식물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거기엔 이처럼 식물들이나 자신이 애착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생명체리면 더욱 그렇다. 식물들은 예민하지만 키우는 사람이 사랑을 주고 잘 가꾸면 식물들도 선물로 보답한다. 시인과 식물은 너무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저자의 식물들이 있는데 그 식물들마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가지고 2부에서 이야기해준다.
또한 저자가 시인이기에 시속에 담긴 식물들을 말해주어 식물이라는 친구에 대해 자세히 알게 해주는 귀한 산문집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에게 맞지않는 사람들과 사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이 책은 동거동락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지러운 시기에 식물과 소통하는 기분좋은 도서가 될 것이다.
얼마전 겨울이 끝날 무렵, 작약을 꽃 피울거라고 화분에 심어 열심히 달력에 표시해가며 물을 주었다. 싹이 트고 키는 커갔지만 잎사귀가 비실비실거렸다. 아파트에서는 햇살이 차단되고 바람도 통하지 않는 상태라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보기 안타까워 마당있는 집으로 고이 모셔드렸다. 식물을 키운다는게 쉬운게 아니었다.
이런 종류의 식물 키우는 에세이는 여성 저자가 많고, 이 책도 당연히, 그리고 저자 이름을 보고 으레 여성일거라 생각했는데, 삽화 그림이 이상한데? 남자처럼 입을수도 있겠지하며 계속 읽는 중간에서 '아저씨'라 단어가 툭 튀어나온다. 엉? 뭐지? 식물에 대한 생각이 섬세하고 아기자기했던 내용에 뒷통수 맞았다. 담배 이야기 나와도 '여자도 필수 있지' 했건만.. "앵두나무는 내게 시집을 왔다."(p31) 저자가 남성이라는 각인 후 읽는 글은 새로운 기분으로 와닿는다.
여러 식물들과 교감을 나누는 시인은 삶의 고적함을 하소연하지만 좋아하는 연두의 색감이 그에게 힘을 주고 있는 듯하다. 생의 어떤 기억들이 자라는 꽃밭에서 백합과 작약에서 부모를, 다알리아 꽃을 보며 큰누나를 생각하며 마음이 놓이는 행복을 느끼는 모습에 꽃밭에 대한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마당의 꽃밭에서 시인의 아기자기한 식물에 대한 사랑과 밤의 식물 세계에서 펼쳐지는 환상을 보면서 마당있는 시골집으로 이사가고 싶은 생각이 계속 밀려든다. 그리고 시인이 소개하는 몇 가지 식물들, 특히 불두화와 수국, 극락조화와 여인초를 구별하는 시간도 가지고 애틋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현실 세계에서 소외되고 단절된 어느 주인공이 판타지 세계로 와서 고난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끝내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현실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또 다른 현실 세계의 발견이니까"(p38)
시어로 반죽해놓은 듯한 에세이가 맛깔스럽고 천천히 음미하게 하는 느긋함을 가지는 시간이 되었다. 어떤 날씨면 서오릉 꽃집거리에서 길을 잃고 판타지에 빠져 꽃구경하는 시인을 만날수 있을까? 아니면 채송화 옆에 쪼그려 앉아 헤벌레 웃고 있는 시인을 모르고 지나칠지도 모르겠다.
톱픽,
"식물은 즉각적인 움직임도 없고, 매일의 드라마도 없고, 매일의 이야기도 없다. 한 계절쯤은 흘러야 이야기도 할 게 있고, 한 일년쯤 지나야 기억할 무늬도 생긴다. 오래 두고 바라볼 대상이니 너무 애쓰지 말고 바라봐야 한다. 어떤 날은 아주 없는 듯, 마치 식물로부터 잠시 놓여난 것처럼 식물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식물만 그런가, 사람도 그렇다."(p122)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표지에 그려진 일러스트를 유심히 보면, 연두들 속에서 일체화된 듯 편히 앉아있는 사람이 있다. 작가가 남성이며 식물들과 동거동락뿐 아니라 반려의 경지에 왔다는 느낌을 풍기는 일러스트라는 걸 알 수 있다. 세로로 쓰여진 제목<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만으로도 충분히 손이 가는 책이었는데, 프롤로그를 읽으며 오랜만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표현이 담백하고 예쁘다. 식물을 데려와 돌본다는 표현부터 같이 살면 싫어도 좀 참아줄 것도 생긴다는 표현까지 식물과 함께한 작가의 생활을 글로 만나는 맛이 있다.
목차 구성은 3부로 [나뉘어 같이 살아요,우리 / 내가 편애하는 식물/ 시 속의 식물이야기] 나뉘어 있으며 1부에 책의 반 정도를 할애하고 있다. 1부는 식물과 지내는 일상 속 이야기들, 2부는 특정 식물들과의 애정어린 이야기, 3부는 시와 시에 얽힌 이야기가 담겨있다.
'식물이 담배 냄새는 좀 싫어라 하겠지만 뭐 이건 어쩔 수 없다. 같이 살면 싫어도 좀 참아줄 것도 생기는 법이니까.'
개인적으로 웃음이 났던 부분이다. 관계를 맺으면 결국 싫어도 좀 참아줄 것들이 생긴다는 발상이 익숙하면서 신선하게 다가오는 건 그 중심에 '꽃보다 연두'라고 표현되는 '식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외로우면 꽃집을 간다는 글에서는 함께 꽃집앞을 거니는 기분이 든다. 봄이라 더욱 꽃이 주는 위로가 너무나 달콤하기에 상상만으로도 그 곳에 걷고 있는 내가 보인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화분들을 둘러보았을 저자의 수필을 읽다가 '시'를 만나는 3부가 되면 저자의 본업이 시인이라는 게 확 느껴진다. 향이 질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라고 표현된 시 <백합의 일상>을 읽으며 마치 시인이 시에 대한 심상과 제작배경을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아 신선했다. 알고 읽는 시와 모르고 읽는 시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식물도 만나고, 시도 만나고, 연두 속 삶을 엿보며 힐링하는 책,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를 만나 즐거웠다. 올 봄엔 나도 새로운 연두를 데려왔야겠다.
반려동물, 반려식물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람대신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존재로 동물이나 식물을 삼으면서 나온 용어이다. 보통 동물이나 식물을 데려와 돌봐준다고 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것을 자신의 공간 속으로 함께 들여 온다는 것은 내가 있는 곳에서 함께 살겠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람의 입장에서 보살펴 수발한다고 한다. 동물이나 식물이 집에서 무위도식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모든 관계는 주고받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도 식물과 살면서 돌봄을 받고 싶은 마음이기에 ‘반려’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새집을 사고 무엇보다 정원을 꾸미는 것에 신경을 쏟았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식물을 키우시는 모습을 보고 큰 영향으로 아버지처럼 백합과 수국 등을 심고 갖가지 식물이름을 기록했다가 코딱지만한 공간에 맞추어 다시 그 이름들을 지우고 한다. 어린시절 보았던 식물들을 먼저 심는 모습은 누구든 고향을 그리는 우리의 마음과 같다. 담장아래 심겨진 식물들은 집과 길을 나누고 집과 집을 나누는 담장이라는 어떤 경계를 단절이 아닌 공간으로 재창출하게 한다.
시인인 저자는 식물을 의인화해서 본다. 식물들이 본인 곁을 떠날 수 있을 것인데 움직이지 않고 기다려준다고 생각한다. 식물은 아무 말도 없이 자라고 몸을 세우고 마음을 세워 제 할 일을 하는 것임으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진실을 식물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 세월에 따라 달라지듯 식물도 힘겹게 새 잎을 밀어 올리고 최대한 멀리 끝으로 밀어가며 조금씩 바뀐다. 저자는 꽃과 연두에 우선순위는 없지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는 식물 전체의 삶을 지탱하는 연두가 더 식물적 삶에 적합한 것 같다고 한다. 작은 마당이나 화분에서 마음껏 자랄 수 없는 식물들에게 열매나 꽃을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꽃이 아니면 어떤가 연두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답다. 버티는 일도 그렇다. 버틴다는 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일이다. 사는 것 자체가 버티는 것이니 반려식물에게서 많이 배운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모난 부분들이 많이 깍이어 둥글둥글해지는 것 같다. 기다림을 배우기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