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식물을 보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치유된다. 태양을 향해 나뭇잎으로 펼치며 가지를 뻗어가는 나무 그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화초. 때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자라는 식물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동서고금의 성인들은 식물처럼 사는 유유자적한 삶을 추구하기도 했다.
- p.11
나는 지금 슬프다. 이유 같은 건 없다. 때로는 삶이 무기력하다고 느낄 때, 그런 슬픔을 느끼곤 한다. 무기력한 삶에서 건져낼 수 있는 건, 바로 그 감정이란 놈에 나를 맡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식물을 보면,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것처럼, 감정이란 놈은 나를 저절로 치료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슬픔이란 감정은 마치 식물들의 싸움을 보는 것과 같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치열한 투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도, 이 생존과의 싸움에서 치열한 투쟁을 하기로 한다. 이 무기력한 삶에서 처절한 전투의식을 발휘한다. 싸우는 식물은 그렇게 나의 싸움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2.
가지를 뻗고 우거지게 해서 서로 공간을 빼앗려고 격렬하게 싸우는 식물들. 그러나 식물의 싸움은 지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땅속에서는 더욱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다.
식물은 뿌리를 뻗으면서 뿌리에서 다양한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그럼으로써 주변의 식물에 피해를 주거나 다른 식물의 발아를 방해하며 다른 식물을 격퇴한다. 이처럼 화학물질을 통해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현상을 '타감작용' 혹은 '알렐로파시'라고 한다. 알렐로파시는 그리스어로 '서로 감수한다'라는 뜻의 조어다. 따라서 본래는 식물끼리뿐만 아니라 식물과 미생물 혹은 곤충끼리나 미생물끼리 등 모든 생물 사이의 간섭 작용을 의미한다.
-pp. 34~35
보시다시피, 『싸우는 식물』은 식물들의 격렬한 싸움을 예고한다. 식물들끼리도 싸우고, 식물은 동물과도 싸우며, 심지어 인간과도 식물은 싸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싸움은 서로에게 유익하기도 하다. 그러니까, 식물의 싸움은 자신을 지키이 위한 이기적인 마음에서 시작되긴 하였으나, 이타적인 마무리로 끝이 나는 것이다. 훈훈한 싸움이다.
3.
사실 모든 식물이 많든 적든 뿌리에서 화학물질을 방출해 주위 식물을 공격한다. 이렇게 서로 화학물질을 뿜어내는 화학전쟁은 늘 벌어진다. 그러나 어떤 식물이 내보내는 화학물질에 다른 식물이 쉽게 당한다면 싸움이 되지 않으니 주위 식물은 그것을 방어하는 구조로 무장해 피해를 막는다. 이렇게 공방의 균형이 잡히면 겉보기에는 타감작용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에서 양미역취외 싸우면서 진화를 거듭해온 주위 식물은 양미역취가 뿜어내는 독성분을 방어하는 구조가 발달했다. 이렇게 해서 균형이 잡혔으니 양미역취만이 땅을 독차지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 P.38
식물들은 혼자서 독식하지 못한다. 어떤 식물이 혼자서 독식하려 애쓴다면, 그 혼자서 독식하려 애쓰는 식물을 공격하는 식물 또한 존재한다. 그러므로 식물들의 싸움은 어찌보면 공평하다. 치열한 감정싸움 같은 거, 그런 거, 슬픔과 기쁨이 공존할 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매일, 날마다 기쁘기만 한 인생, 그거 별로 행복하지 않은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4.
질경이와 별꽃에는 사람에게 밟히는 일이 더는 역경도, 견뎌야 하는 고난도 아니다. 사람에게 밟혀야 종자를 퍼뜨릴 수 있으므로 밟히지 않으면 오히려 곤란해진다. 길가의 질경이와 별꽃은 도리어 지나가는 사람이 밟아주길 원한다.
- P.62
때로는 사람과 부딪혀야 할 때도 있다. 항상 내 맘에 드는 사람들만 만날 수는 없다. 그런 만남이 잦아진다면, 더 이상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역경이나 고난이 될 수는 없다. 물론, 그 만남을 현명하게 대처했을 때에만. 그런 현명한 만남을 가지고 난 후에는 오히려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도전의식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식물에게서 배우는 인생의 의미까지도 『싸우는 식물』은 보여준다. 식물의 세상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
5.
인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면으로 충돌해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막강한 적을 힘없는 자가 물리칠 수단이 하나 있다. 독살이다. 막강한 권력자가 의문스러운 죽임을 당할 때는 역사책에 기록되지는 않지만 그 뒤에는 독살이 있을 때가 적지 않다.
식물이 선택할 수 있는 수단도 인간과 마찬가지다. 힘이 없는 식물이 막강한 적인 해충을 쓰러뜨리려고 먼저 생각하는 방법이 독살이다. 따라서 식물은 온갖 독성 물질을 조합해 자신을 지킨다.
- P.112
사람이 위기에 처해 있으나, 힘은 없을 때, 그때는 그 사람이 어떤 짓을 할 지 모르므로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보일 필요도 있다. 식물이 독성을 품기 시작했을 때, 그것을 그냥 무작정 먹거나, 무작정 없애려고 하다가는 더 큰 화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독성을 어르고 달래서 적당히 순화시킬 때, 식물의 독은 약이 되기도 한다. 그 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모든 생물을 치료하기도 한다.
6.
자연계에 상부상조하는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생물도 자기 좋은 대로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경위야 어떻든 서로 득이 되는 관계가 구축되면 나쁠 것은 없다.
기생벌은 식물을 도울 생각이 추호도 없지만, 결과적으로 식물이 SOS 신호를 내보내면 해충을 퇴치할 정의의 아군이 달려오는 구조가 되었다. 식물에게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 P.141
모든 사람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나는 이타적이야, 다른 사람이 누군가를 향해, 저 사람은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야, 라고 말할지라도, 그 사람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이익이다. 이익의 범주에는 물질적 이익만 있지는 않다. 감정적인 이익도 이익의 범주에 속한다. 식물은 누군가를 도우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할 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식물은 그렇게 함으로서 모든 생물을 도와주고 있다. 그 도움의 범주에는 인간도 포함되어 있다. 이 얼마나 오묘한 삶의 법칙일까!
7,
꽃은 곤충에게 꿀을 제공하고, 곤충은 그 대신 꽃가루를 운반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공생 관계인가? 그러나 자연계는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계다. 서로 도와야 한다는 도덕심은 아예 없다. 반드시 우직하게 돕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곤충을 속여 꽃가루를 옮기게 하는 식물도 있다. 곤충은 꽃향기를 맡고 찾아온다. 향기가 난다는 것은 거기에 꿀 같은 먹이가 있다는 곤충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향기만 풍기고 꿀은 없는 식물이 있다. 그 예로, 좋은 향기를 풍기는 천남성은 파리에게 꽃가루를 운반하게 한다. 천남성에는 암그루(자주)와 수그루(웅주)가 있는데 암그루는 꽃가루를 옮겨온 파리를 꽃으로 유인해서는 파리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 안에 가둔다. 그러면 갇힌 파리가 출구를 찾아 날뜀으로써 수분하는 것이다. 공생과는 거리가 먼 잔혹한 처사다.
- p.150
정말로, 끔찍한 처사다. 결국, 파리를 납치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식물이 있다는 것 아닌가! 사람 사는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은 여전하다. 어쩌면, 식물의 세계에서는 끝나지 않을 인간과의 교감을 위해 그들만의 법칙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8.
어린아이들은 달콤한 과일은 좋아하지만, 쓴맛이 나는 피망이나 여주는 대부분 싫어한다. 이것은 생물로서는 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달콤한 과일은 식물이 먹으라고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달콤한 설탕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해가 되지만, 자연계에 있는 단맛은 위험한 것이 없다. 또한 인간은 식물이 만들어낸 독성분을 '쓴맛'으로 감지한다. 마찬가지로 어린아이들이 쓴 채소를 싫어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다. 먹히고 싶지 않은 식물과 먹고 싶지 않은 어린아이 사이의 이해가 서로 일치하는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어른들은 어떠한가. 식물이 일부러 만들어낸 독성분인 쓴맛을 즐겨 먹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쓴맛이 있는 채소를 남기지 말고 먹으라고 강요한다. 이러한 어른의 취향을 식물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p.210
내가 쓴맛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이 희망적인 말씀. 고로 나는 쓴 채소도 먹지 않는다. 다만, 쓴 맛이 나지 않는 채소는 먹는다. 그러니까,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9,
식물은 꽃가루를 옮기려고 곤충에게 꿀을 제공하고, 씨를 운반해주는 새를 위해 달콤한 열매를 준비했다. 인간에게 맛있는 채소와 과일을 준비하는 일쯤은 어렵지 않다. 인간이 식물을 마음껏 개량해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인간에게 더 먹히려고 식물 자신이 진화해온 것은 아닐까? 인간은 식물을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식물이 인간을 감쪽같이 속여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P.218
어떤 누군가는 누군가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안간힘을 쓰며,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낼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의 수에 포함되지 못하는 것이 바로 변수라는 것이다. 그 변수에는 사람의 감정, 신의 능력, 인간의 놀라운 힘,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영적인 힘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누군가를 이용하려 하면 할수록 스스로 함정을 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바로, 저 식물의 기막힌 반전처럼.
10.
살벌한 자연계에서 동맹을 맺기 위해 식물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 식물은 균류와 공존 관계를 구축하고자 먼저 자신의 체내에 균류를 불러들였다. 곤충과 공존 관계를 쌓으려 꽃가루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곤충의 먹이인 꿀까지 준비했다. 그리고 새와 동물에게 씨의 운반을 부탁하고자 과일이라는 매력적인 선물을 먼저 주었다.
다른 생물과 공존 관계를 구축하려고 식물이 한 일, 그것은 자신의 이익보다 상대의 이익을 우선하고 먼저 챙겨줌으로써 서로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식물은 이 가르침을 설파한 예수가 지상에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이 진리를 깨닫는 경지에 이르렀다.
- P.233
이제 드디어 『싸우는 식물』의 마무리에 왔다. 식물의 싸움을 보다가, 나의 감정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감정과의 사투는 그렇게 끝나간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먼저 상대에게 유익한 일을 먼저 하라는 식물의 싸움은 예수님의 진리로 귀결된다. 내일의 내가 잘 사는 길,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고 그 사람의 유익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는 길이다. 나눔을 실천함으로서 생명을 보존하고 끝없이 발전을 거듭해온 식물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누군가의 유익을 위해 글을 올린다. 이 글을 쓰는 것이, 1차적으로는 누군가를 위한 글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양심 있게 밝히면서!
이 리뷰는 리뷰어클럽이 아닌, 도서관에서 빌린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인간이나 동물처럼 움직이는 생물체에 비해 식물은 수동적이고 나약하게만 살아가는
허약하고 단순한 존재로만 여겼지만
여기에도 나름대로의 생존전략과 숱한 고난의 흔적이 진화로 얽혀있다
우리가 배울수 있는 전략이 하찮게 보이는 미물인 식물에게도 있었다
1.식물들이 보이는 놈과 보이지 않는 놈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읍니다
그것은 공존이고 공생이 그들의 전략이었읍니다
2.사람과 동물처럼 움직임이 민첩하면 피하고 도망가고 숨고 하면 되는 방식은
주변의 식물로 하여금 피해를 줌으로써 온전히 자신이 성장의 기회를 갖는다
3.식물이 공생으로 태어났다는 증거가 보이지 않는 세계속에 잠재되어 있읍니다
4.인간에게 익숙한 식물의 화학물질입니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화학물질이 식물에게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막 역할을 합니다
5.다양하게 구사하는 식물들의 전략,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
아마도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6.공존입니까? 공생입니까?
7.해로운 독도 소량씩 조금씩 사용하면 도움이 될 터...
-끝-
'숲'이라는 장소는 나에게 항상 조용하고 고요한 곳이다. 숲속에서 들리는 바람소리도 그렇고, 나무에서 나는 싱그러운 생명의 냄새도 그렇다. 그래서 어찌보면 정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계절의 흐름을 느낄 수 있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나의 일상에 비해 정적으로 느껴졌다.
이 책은 그 이면의 식물들의 모습을 소개한다. 우리들 만큼이나 치열하게 투쟁하는 식물의 모습을.
식물이 투쟁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근처에 있는 식물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혹은 침입자들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근처에 있는 식물들과 경쟁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선택한다. 대표적인 방법으로 유독한 물질을 뿌려 주변의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다. 또는 기생생물들이 사용하는 방법처럼 다른 식물들의 영양분을 뺏기도 한다.
식물의 입장에서 침입자로는 다양한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잎을 갉아먹는 곤충 및 초식 동물들. 어떻게 보면 식물은 한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평생을 살기에 선택지가 많지 않을 것 같지만 의외로 식물들은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각기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잡초'의 경우, 자신을 뜯어먹는 초식동물들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아래쪽에 생장점이 있다. 그래서 잡초 윗 부분을 초식 동물들이 뜯어먹더라도 잘 자랄 수 있고, 오히려 생장점까지 햇빛이 잘 들어오게 되어 더 잘 자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식물들이 적대적인 스탠스를 취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동물들을 이용하기도 한다. 식물들의 열매는 익으면 빨간색을 띄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동물들, 특히 새가 먹고 씨를 널리 퍼트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역동적인 식물들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제자리를 오랫동안 지키고 있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숲이 어쩌면 전쟁의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음 번에 숲을 산책하게 된다면 식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엿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학습용으로 구매했어요~ 배송도 빠르네요~
안전하게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학습용으로 구매했어요~ 배송도 빠르네요~
안전하게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학습용으로 구매했어요~ 배송도 빠르네요~
안전하게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학습용으로 구매했어요~ 배송도 빠르네요~
안전하게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학습용으로 구매했어요~ 배송도 빠르네요~
안전하게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얼마 전 길을 걷다가 우연히 가로수를 보게 되었는데, 높은 가로수의 무성한 잎이 가로수의 잎이 아닌 덩쿨식물의 잎이라는 걸 문득 깨닫게 된 적이 있습니다. 덩쿨식물이 어찌나 왕성하게 자라났는지 가로수를 모두 덮고 마치 그 나무인양 하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지극히 수동적일 줄 알았던 식물들도 그 나름의 세계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식물이 치열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식물과 식물, 식물과 병원균, 식물과 곤충, 그리고 식물과 인간 등 오로지 식물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새롭고 흥미로웠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달콤한 과일은 좋아하지만, 쓴맛이 나는 피망이나 여주는 대부분 싫어한다. 이것은 생물로서는 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달콤한 과일은 식물이 먹으라고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중략) 먹히고 싶지 않은 식물과 먹고 싶지 않은 어린아이 사이의 이해가 서로 일치하는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어른들은 어떠한가. 식물이 일부러 만들어낸 독성분인 쓴맛을 즐겨 먹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쓴맛이 있는 채소를 남기지 말고 먹으라고 강요한다. 이러한 어른의 취향을 식물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p. 210)
예전에 읽었던 <매혹하는 식물의 뇌>와 <나무 수업>과는 또 다른, 식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싸우는 식물>.
앞의 두 책이 식물들이 주변 식물들이나 동물들과 맺는 관계를 주로 다뤘다면(가물가물하지만),
이 책은 식물들이 세포 단위로 맞서야 하는 세균들 수준부터 이런저런 곤충들과의 관계, 나아가 공룡시대 공룡들과의 관계까지 아우르고 있다.
(공룡으로 대표되는) 생명체들의 진화와 멸종이 어느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식물들을 기반으로 한 생태계의 밑바닥에서도 지속된 변화의 한 흐름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식물들의 치밀하고도 현명한 적응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책에서 읽고 놀라워 한 바가 있다. 그저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병풍 수준으로 여기고 있던 식물들 역시 자기네들만의 세계를 이루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협력하며 살아나간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면서도 꽤나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새삼스레 몇 번이고 다시 감탄해버렸다.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기 중의 질소를 추출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간다. 그 에너지를 만들어내려고 뿌리혹박테리아는 산소호흡을 한다. 반대로 질소고정에 필요한 효소는 산소가 있으면 활성을 잃어버린다. 즉, 산소는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산소가 있으면 곤란해진다.
그러므로 호흡에 쓰이는 산소를 운반하고, 여분의 산소는 재빨리 제거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콩과 식물은 대량의 산소를 효율적으로 운반하는 레그헤모글로빈이라는 물질을 몸에 지녔다. 우리 인간의 혈액 속에 있는 적혈구에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물질이 있어, 폐에서 체내 세포에 효율적으로 산소를 운반한다. 콩과 식물에 있는 레그헤모글로빈은 인간의 헤모글로빈과 유사한 성질이 있는 물질이다.
놀랍게도 콩과 식물의 신선한 뿌리혹을 잘라보면 피가 번진 것처럼 약간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다. 이것이 콩과 식물의 혈액, 레그헤모글로빈이다.(p. 96)
식물은 자신을 침범한 세균을 세포 내에 가두고 그 세포를 비롯 주변 세포까지 사멸시켜 세균이 몸 전체로 퍼지지 않게 힘쓴다.
외적으로는 곤충이나 동물의 먹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특유의 독성 물질을 생산해 내뿜는 동시에 가시를 세우고 잎 자체를 뾰족하게 하는 등의 방어수단을 갖췄다.
또한 생식을 위해 곤충을 유혹하는 향기를 내뿜어 자신이 꿀을 품고 있다고 알리거나 꿀이 없으면서도 있는 척 향기를 풍겨 곤충을 속이고 꾀어 이용하는 등 각종 지능적인 방법을 개발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식물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독성물질이나, 포식자를 유혹해 이용하기 위해 내뿜는 향기와 꿀이 최종적으로는 인간에 의해 갈취당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식물들 입장으로서도 억울하지 않은 것이, 인간에 의해 더 많이 재배되기 때문에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단으로서 인간을 이용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사실 자연은 각 개체의 삶의 질이 어떻게 되든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연이 중요히 여기는 것은 유전자가 꾸준히 이어지고 확대되는 것뿐이므로 식물과 인간의 기묘한 공생도 동물이나 곤충과 갖는 식물의 공생과 별다를 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머오키드라는 난초의 한 종류는 꽃 모양이 말벌의 암컷과 비슷하다. 가짜 암컷에 이끌려 찾아온 수컷 말벌이 짝짓기를 하려고 하면 말벌에게 꽃가루가 붙게 되어 있다. 즉, 해머오키드는 꿀도 꽃가루도 말벌에게 주는 일 없이 성공적으로 꽃가루 운반을 완수하는 셈이다.
한편 곤충도 꽃가루를 운반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 그렇게 진화를 거듭한 것이 나비다. 나비는 긴 다리로 꽃에 앉아 긴 빨대 모양의 주둥이로 꽃꿀을 빨아 먹는다. 그 때문에 꽃가루가 나비 몸에 붙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아름다운 나비를 사랑스럽게 보지만, 식물 처지에서 보면 식물과 곤충의 공생 관계를 배반한 나비는 꿀 도둑이나 다름없다.
물론 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계는 무슨 일이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 의리 없는 자연계에서도 곤충을 속여 꽃가루를 운반하게 하는 방법이 주류는 아니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갈 것 같은 자연계에서는 모든 생물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데도 많은 식물과 곤충이 서로 도와 공생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금 속여 단기적으로 이득을 얻기보다 정직하게 서로 돕는 쪽이 양측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결론을 내린 셈이다. (p. 150)
먹히지 않기를 수동적으로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방어하는 법에 이어 적을 이용하는 법까지 개발해낸 식물들의 끈기와 생명력은 과연 식물이 지구상의 진정한 패자인 이유라 할 만하다. 과연 식물과 곤충, 동물 모두를 손에 틀어쥐고 뜻대로 하려는 인간이 멸망으로 향해 가는 지금의 길에서 벗어나 식물처럼 함께 서는 법을 배울 수 있을지 두렵고도 궁금하다.
이 책은 내용이 무척이나 재미있고 흥미롭지만, 고작 한두 페이지마다 소제목이 무수히 붙어 있기 때문에 읽다가 자꾸 맥이 끊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이 점은 읽다가도 아무때나 중단할 수 있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빠져들어 읽다보니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 불만스러웠던 점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짧은 것보다는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길이가 가독성에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싸우는 식물>은 식물의 시각에서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식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들여다보게 하고, 자연계의 공존에 대한 의미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내용은 6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1. 식물 vs 식물에서 투쟁하는 식물들을 다루고, 2. 식물 vs 환경에서는 고난을 이겨내는 싸움의 기술을. 3. 식물 vs 병원균에서는 식물의 방어태세를 설명하며, 4. 식물 vs 곤충에서는 정면충돌은 통하지 않는다. 5. 식물 vs 동물에서는 ‘먹고 먹히는’ 관계에서 식물이 살아가는 법을 설명하며, 6. 식물 vs 인간에서는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끝없는 겨루기를 내용으로 하여 설명하고 있다.
“메꽃의 성장 속도는 나팔꽃보다 더 빠르다. 나팔꽃은 두 개의 떡잎이 나온 뒤 본잎이 나오고 나서 덩굴부터 뻗어간다. 그러나 메꽃은 다르다. 놀랍게도 쌍떡잎이 나온 후 본잎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덩굴부터 뻗는다. 경쟁 식물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성장하려고 먼저 덩굴을 뻗는 것이다.(p.16)” 잎이나 줄기 못지않게 땅속에서 벌이는 보이지 않는 싸움은 치열하다. 식물은 물과 영양분을 빨아들이고자 땅속으로 뿌리를 뻗는데, 마찬가지로 다른 식물도 살아남고자 뿌리를 뻗는다. 한정된 땅 속의 수분과 영양분을 서로 빼앗으려고 경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