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함께 글을 쓰는 즐거움을 기억한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 글짓기 특별수업을 받았을 때였다. 일상 산문에 대한 수업으로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선생님이 주제를 정해주시면 글을 쓰고 평을 들었다. 김민섭, 정지우, 오은, 남궁민, 김혼비, 이은정, 문보영, 일곱 작가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쓴 연작 에세이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를 읽으면서 작가들도 재미있게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물론 마감 때문에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주제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로 고양이, 결혼, 방, 작가, 커피, 비, 친구로 다양하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주제, 궁금한 주제를 먼저 읽고 작가를 그렇게 선택해도 무방하다.
시작은 고양이다. 고양이를 기르는 이들이 늘어나고 길냥이를 돌보는 이들도 많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는 고양이 탐정도 있으니까. 직접 고양이를 키우지 않더라도 고양이와 관련된 사연 하나쯤은 간직하기 마련이다. 운전하면서 발견한 고양이를 구하지 못한 후회, 친구에게 전부인 고양이를 잃어버려 찾지 못할까 조바심을 냈던 마음을 만나면서 오빠네 고양이 ‘비실이’가 생각났다. 다음에 만나면 좀 더 다정하게 대해줘야겠다는 다짐까지.
한 꼭지를 읽고 나니 작가의 분위기가 보인다고 할까. 내가 좋아하는 글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사실이 더 정확하겠다. 모두 작가이니 작가에 대해 특별한 말을 들려줄 거라 기대했지만 정작 마음을 움직이는 건 김민섭의 이런 글이다. 쓰는 사람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일은 대단한 게 아닐 것이다.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기록하는 일, 나를 쓰는 일의 가치에 대해 언급해 줘서 괜히 고맙다.
나는 모두가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바란다. 당신의 일상은 이미 몸에 깊게 새겨져 있다. 누군가는 별것 아니라고, 누가 읽어주겠냐고 그것을 옮겨 적지 않지만, 그건 이 세계에서 당신만이 길어올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무엇이다. 나는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당신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작가 - 50쪽, 김민섭)
아, 쓰다 보니 또 김민섭의 글이다. 친구에 대한 글에서 나는 언제나 나를 응원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친구, 10년 후가 기대된다는 친구,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친구. 저자는 작가로 자신이 책을 낼 때마다 이야기하기가 꺼려진다고 한다. 누구나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니니까. 논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한 친구는 논문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하면서 읽어줬고 오타를 발견해 줬다고. 정성을 다해 읽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다. 나도 김민섭이 말한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그의 어색한 다가옴을 우리는 두 팔을 벌려 환영해야 한다. 축하한다, 어디에서 그걸 살 수 있니, 어디로 가면 그걸 볼 수 있니,라는 말에 더해, 나는 너를 읽었어, 너를 보았어, 나는 이 부분이 좋았어, 다음에도 꼭 너를 나에게 보여 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친구를 많이 두고 싶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누구라도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보일 수 있고 나는 그것을 그의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언젠가는 정말로 그런 삶의 태도를 가진 친구가 되고 싶다. (언젠가, 친구 - 88~89쪽, 김민섭)
학창 시절에 단짝처럼 붙어 다녔지만 졸업과 동시에 연락이 끊긴 친구들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는 이은정 작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자신과는 다른 선택을 한 친구들에게 잘 살라고 안부를 전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나 역시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그런 마음을 전하다.
비와 커피를 좋아하기에 이 주제는 더 가깝게 다가온다. 공평하게 내리는 비지만 그 비를 맞고 힘들어하는 이들의 삶에 대해 언급하며 나중에라도 비를 좋아할 수 없을 거라는 김민섭 작가, 비 오는 날 두 번의 교통사고로 당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은 작가, 커피를 좋아하는 언니를 언니가 떠난 후에야 커피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는 이은정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먹던 큰언니가 생각나 먹먹해졌다.
어쩌면 아침마다 식사 대신 커피를 마시며 출근하는 사람들은 하루의 무게를 들이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이겨내려고, 오늘까지는 버텨 보려고, 최대한 제정신으로 일터에 나가기 위해 쓰디쓴 각성제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커피 한 잔의 무게는 살아 내야 하는 하루치의 무게인 걸까. 언니가 떠난 뒤에야 이따위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면, 언니가 살아있을 때 느꼈더라면 언니에게 모닝커피를 한 번쯤 건넸을지도 모르는데 늘 그렇듯 깨달음은 늦고 기다려주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 커피 - 314쪽, 이은정)
기억 속 삶의 한 장면이 달려든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던 비 오는 날의 풍경,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스무 살 동생에게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던 큰언니.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마셨던 오늘 아침의 커피 한 잔. 잊었던 기억, 잊었던 사람, 지나친 일상을 끄집어 낸 책이다. 일상의 순간, 보통의 날들을 더 많이 기록해야 한다. 책에서 발견한 따뜻하고 다정한 문장을 기록하는 일처럼.
7인 7색 연작 에세이 <책장위 고양이> vol. 1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어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다니.. 연작 에세이 <책장위고양이> 두 번째를 먼저 읽은 후에 읽은 첫 번째. 사실 순서는 상관없지만.. :) 두 번째도 재밌게 읽었는데.. 그러고보니 연작 에세이집 이 시리즈의 스타트가 좋았었네..!! :D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 이렇게 일곱 작가가 한 가지 주제로 각기 다른 매력으로 써내려간 에세이 연작집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
처음 접한 작가의 글도 있고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도 있고... 읽으면서 어쩜 이렇게 다 다른지... 유쾌하기도 하고 잔잔하기도 하고 같은 주제라도 작가의 느낌에 따라 주제의 기복이 느껴졌지만.. 그 기복이 재밌었다. 꺄륵 ~
언젠가, 고양이
언젠가, 작가
언젠가, 친구
언젠가, 방
언젠가, 나의 진정한 친구 뿌팟퐁커리
언젠가, 비
언젠가, 결혼
언젠가, 커피
어쩌면 일상의 흔한 주제일 수 있지만.. 주제마다 각기 다른 시선으로 담은 글... 추억을.. 기억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들었던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
■ 책 속으로
나는 모두가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바란다. 당신의 일상은 이미 몸에 깊게 새겨져 있다. 누군가는 별것 아니라고, 누가 읽어 주겠느냐고 그것을 옮겨 적지 않지만, 그건 이 세계에서 당신만이 길어 올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무엇이다. 나는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당신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p.50 _ 831019 여비 , 김민섭 / 언젠가, 작가
너도나도 인파에 휩쓸려 다시 멀어질 테고 일상의 고단함이 굴러오면 또 잊히겠지. 필터 속 찌꺼기처럼 삶의 무언가를 버려야 할 때가 되어야 뜬금없이 떠오를 테고.
괜찮아. 사는 게 다 그래. 우린 각자 열심히 살고 있을 뿐. p.117 _ 한때 나의 친구였던 소녀들아, 이은정 / 언젠가, 친구
내가 타인들과 함께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는 시간들이 있었다면, 그것은 내가 그 타인들을, 그들과 함께 만드는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던 것일 뿐, 누군가와 함께 있거나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보다 나는 내가 만든 공간에서, 내가 가장 원하는 사람과, 내가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싶었을 따름이었을 것이다. p.158 _ 방에 있는, 정지우 / 언젠가, 방
근데... 자꾸만 생각나는 단어들.. ㅋ뿌팟퐁커리..... 뇌이쉬르마른..... ㅋ 뿌팟퐁커리는 먹어보지 않았는데 먹어본 것만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 무엇..... ㅋ 어려움이 느껴진 작가들의 난감함이 느껴져서 재밌었던 것 같다.. 나라도 당황했을..것만 같은.. ㅎ
▲ 알콩달콩 귀여로운 표지- :D
연작 에세이 시리즈 <책장위의 고양이> 세 번째도 나오겠지..? 라인업이 기대된다.... :D 많은 작가들의 글을 접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은 에세이집.
#내가너의첫문장이었을때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웅진지식하우스 #에세이집 #책장위의고양이 #연작에세이 #이야기선물세트 #에세이보따리 #추천에세이 #매력뿜뿜 #도서지원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7인의 유명 작가분들이 쓰신 7인7색의 에세이
<책장위의 고양이>를 바탕으로 해서 쓰여진 책인데요,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주제는
언젠가 고양이었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제목을 읽은 직후부터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굉장히 기대되었던 부분입니다.
사실 고양이에 관련된 내용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제 편협한 생각과는 달리
생각보다 참신한 내용들이
고양이와 함께 담겨져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 중에는 공감되는 내용들도
꽤 많이 있었는데,
특히 대학교 사망년이라고 불리우는
3학년인 지금,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눈앞에 컴컴해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는
저로서는 정말
공감을 안할수가 없는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일상을 적기도 생각을 적기도 하는
제 작은 일기장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명 작가분들도 블로그를 통해
일상을 적기도 했구나
왠지 모를 친밀감도 느꼈습니다.
제가 제 블로그에
무궁누리라는 필명을 쓰면서
자유롭게 글을 적는 이유는
바로 위에 나온 글과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작가 분의 글과는
완성도 면에서 많이 부족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을 자유롭게 적을 수 있다는 점,
나라는 사람을 나타내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블로그에 글 쓰기를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꾸준히 매진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블로그에 내 생각이 담긴 글을 적는 것 만으로도
작가라는 호칭을 붙일 수 있다는 점이
용기를 불어넣어주었고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었습니다.
글에 적힌 것과 같이,
이전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서
나의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
또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에세이를 처음 접하면서
짧은 글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과
작가들 저마다 자신의 에세이에
자신의 색채를 잘 담았구나
나도 저런 작가, 아니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책은 <책장위고양이>라는 작가 에세이 구독 서비스의 첫시즌 글을 묶어 놓은 것이다. 작가 초대 플랫폼 ‘북크루’에서 제공하고, 에세이를 새벽 배송(쿠*과 마켓컬*가 떠오른다) 해주는 신선한 구독 서비스이다. 7명의 작가가 1주일 내내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의 키워드를 향해 쥐어짜낸(작가들이 돌아가며 키워드를 정했기에, 키워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쥐어짜내서라도 써야 하므로) 보석같은 글들이 실려있다.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다.”
그래 이거였다. 나는 갑자기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어졌다. 지구상의 중요도에 있어서 김도 못 되고, 김 위에 바르는 기름도 못 되고, 그 기름을 바르는 솔도 못 되는 4차적인(4차 산업혁명적인 것도 아니고 그냥 4차적인)존재이지만, 그래서 범국민적 도구적 유용성 따위는 획득하지 못할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그 잉여로우면서도 깔끔한 효용이 무척 반가울 존재. 보는 순간, ‘세상에 이런 물건이?’라는 새로운 인식과 (김솔처럼) 잊고 있던 다른 무언가에 대한 재인식을 동시에 하게 만드는 존재. 그리고 그 인식이라는 것들이 딱 김에 기름 바르는 것만큼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
그동안 써 온 글들이 과연 김솔통과 비슷한지는 잘 모르겠지만(너무 대단한 물건을 목표로 잡았는지도…), 그래도 일단 오늘도 쓴다. 잘 보이지 않고 잊히기 쉬운 작고 희미한 것들을 통에 담는 마음으로. 오늘도.
특히 기억에 남았던 김혼비 작가의 '마트에서 비로소'란 글이다.
김.솔.통. 이 책과 가장 잘 어울리는 물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세이란건 김솔통같은 느낌이라고. ‘잘 보이지 않고 잊히기 쉬운 작고 희미한 것들을’ 작가는 책이라는 ‘통’에 담는 사람이라고.
김혼비 작가의 통찰력에 무릎을 탁!치고. '김솔통 아느냐?'고 여기저기 묻고 다니는 이상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마트에서 김솔통을 찾아보니 통김솔이라는 요상한 이름표를 달고 있더라.) 에세이는 내게도 또다른 에피소드를 주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인생이라는 에세이를 써내려가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독자인 내게도 키워드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꼭 하나쯤은 있단 생각이 든다. 단지, 이렇게 맛깔나고 반짝반짝하게 쓸 수 없을 뿐. 그래서 ‘작가’라는 사람들을 통해 나와 비슷한 인생의 한 단락을 음미할 수 있었다. 참 매력적인 시도이다. 이제는 <책장위고양이> 시즌2가 진행중이고,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작가들과 다른 작가들이 참여중이다. 시즌1과 다른 독특한 점은, ‘히든 작가’가 생겼다는 점. 복면가왕처럼 정체를 숨기고 있다가 시즌이 끝나고 구독자와의 만남에서 공개된다고. (난 종이책이 아니면 가독성이 떨어지는 이상한 병이 있기 때문에 아직 신청을 망설이고 있지만)
에세이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 책이었다. 간간히 에세이류를 읽긴 했지만, 여러 작가의 키워드별 에세이를 한데 모아놓은 이 책만큼의 매력은 느끼질 못했었는데. 스트레스받는 일상 중에 이 책 한 권 챙겨서 시원한 카페로 떠나고 싶어졌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ㅉㆍㄼ은 호흡을 가진 에세이와 긴 호흡을 가진 에세이가 있어요.
두 스타일 모두 각자의 매력이 뚜렷해서 크게 가리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바쁘거나 정신 없을 때 읽기에는 역시 ㅉㆍㄼ은 호흡의 에세이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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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는 작가 여럿이 모여 한 주제에 대항 니야기를 풀어나가요.
어릴적 다니던 글쓰기 학원에서 이런 시간이 있었어요.
즉석에서 주제를 던지면 그 주제에 대한 내용을 우다다다 적어나가는.
같은 ‘호떡’이라는 단어를 두고도 한 강의실의 다섯 명이 모두 다른 내용을 써내려가서
어린 마음에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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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다보면 그 사람이 느껴진다고 해요.
같은 단어를 던지더라도 각자 살하온 경험, 인생, 가치관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분명 주제는 같지만 같은 주제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글들이 펼쳐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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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시리즈인 ‘아무튼’시리즈 중 <아무튼 술>을 집필한 작가부터
첫 책이 나오기 전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구독하며 애정을 가졌던 남궁인 작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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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호흡으로 이루어진 책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는
시간이 날 때마다 가볍게 읽기 좋은 책입니다.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한다면 도전하는 것도 좋아요.
같은 주제를 두고 나는 어떤 글을 쓸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누구나 크고 작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저마다의 회전교차로에 진입하게 된다. 20대의 내가 마주한 그 교차로는 아주 컸고 갈림길도 많았다. 그게 반드시 취업이나 진학으로의 길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삶의 태도라든가 지향을 선택하는 더욱 중요한 길이 있다. 거기에 어떻게 진입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응당 자기 자신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예를 들어 ‘고양이를 구한다든가’ 하는 일을 한다면, 내가 가야 할 길로 들어설 수 있지 않을까. (p.17)
틈을 내주지 않는 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는 이를 무장 해체시키는 단어, 벗.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감싸 줄 것 같은 단어, 벗. 벗이라고 부르자, 곁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옆이 자꾸 다가와 마침내 곁으로 자리 잡은 순간이었다. 친구의 어수선함과 복작거림을 거쳐 뭉근한 어떤 것만 남은 것 같았다. 알고는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단어처럼, ‘벗’은 내게 어떤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신식이 했던, 사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사람은, 사람이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사람은, 사람에게 자꾸 기울어진다. 살피는 일은 마침내 보살피는 일이 된다. (p.112)
비는 공평하게 내리지만, 그 비가 더욱 적시는 것은 결국 평범함이거나 가난이다. 지하주차장이 있는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비가 새는 작은 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사람이 맞는 비의 총량은 다를 수밖에 없다. (p.203)
이 책의 바탕이 된 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구독자에게 보내주던 에세이 새벽 배송 서비스 <책장위고양이>. 이들 독자들의 적극적인 응원과 참여를 통해 만들어지게 된 게 바로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이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김민섭, 김혼비, 남궁인, 문보영, 오은, 이은정, 정지우 일곱 명의 작가들이 들려주는 일곱 빛깔의 이야기들. 언젠가 고양이, 작가, 친구, 방, 뿌팟퐁커리, 비, 결혼, 커피, 쓸데없는 것과 쓸 데 있는 것 이렇게 각양각색의 주제에 맞춰 하나하나의 이야기에 각자의 개성을 듬뿍 담아 63편의 에세이를 차분히 써내려 간다.
과거의 언젠가, 미래의 언젠가, 바로 그 언젠가······. 언젠가에서 느껴지는 추억? 재미? 감동? 그리움? 애틋함? 흥미롭고 특색있는 각각의 이야기들. 잊혀졌던 과거를 함께 추억하고 기억하기에 이만한 게 어디 있을까. 자신의 삶에 새겨져 있던 기억들을 하나씩 불러 모은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주제는 바로 비. 내기 기억하는 어린 시절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기억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마중 나온 엄마들, 비바람에 격하게 휘청거리던 나무, 쓸쓸히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아 주었던 검게 물든 바다, 비를 맞고 싶다는 내 말에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곁에서 함께 달려준 친구, 신발을 조금씩 적셔오던 빗물, 태풍이 우리 동네를 지나던 날 무서움에 방에 웅크려 옴짝달싹 못했던 아들과 나, 하늘을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이며 하루종일 지치지도 않고 대지를 적셔오는 장맛비까지 정말 다양한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사라져간다. ‘그래,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한 장 두 장, 묵묵히 그 시절을 추억하고 되뇌이는 가슴 뭉클한 시간!
독자들에게 글을 전하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은데 혼자는 민망하니 함께해 보자는 정지우 작가의 제안에 7명의 작가가 작가 초대 플랫폼 '북크루'에서 제공한 에세이 새벽 배송 서비스 '책장위고양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명도 아니고 7명의 작가가 매일 매일 보내주는 에세이라니..
새로운 도전을 해주신 작가님들 덕분에 우리는 또 이렇게 한 권의 책에서 7명의 작가들의 에세이를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의 큰 주제인 '언젠가'라는 단어의 매력 과거의 언젠가, 혹은 미래의 언젠가를 이야기하는 작가들.
고양이, 작가, 친구, 방, 뿌팟퐁커리, 비, 결혼, 커피, 그 쓸데없는 의 9가지 언젠가를 7명의 작가가 본인들의 매력으로 쓴 63편의 에세이 그 안에서 재미, 감동, 명랑, 반짝임, 시크함, 계몽, 다정함 7가지 특색이 어느 작가님이 쓰신 글인지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한다.
어쩜 작가님들은, 주제 하나를 툭 던져주면, 저마다의 색깔로 이렇게나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낼까?
하나 하나 감탄하면서 읽었다. 같은 주제가 나오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들 같았다. 작가님들만의 글만 모아 읽으면 또 각자의 에세이 7권을 읽은 느낌도 든다. 이 책을 다 읽을 때쯤엔, 나의 9가지 언젠가는 어떤 이야기들이었을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렇게나 매력적인 책의 다음 작가님들 라인업과 주제가 궁금해진다.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를 두 달에 걸쳐 읽었다. 이 책을 이렇게 오래 읽을 줄이야. 이렇게 오래 읽을 책이 아닌데 하면서도 오래 읽었다. 머리맡에 놓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었다. 하나의 주제로 일곱 명의 작가들이 쓴 에세이 모음집이라 가능했다. 한 편 읽고 생각에 빠지다가 잠드는 일상이 무한 반복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원에 가느라 몸이 피곤했다. 매일 같이 일어나면서도 난 아침형 인간은 아니지, 아니고 말고, 자괴감에 빠진다.
요즘은 미라클 모닝이라고 해서 새벽 기상이 유행이라는데. 시도는 하고 있지만 오후가 되면 낮잠을 무려 세 시간이나 잔다. 저질 체력. 한숨. 낮잠 자기 전에도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를 읽었다. 죽어라 피곤해서 누웠는데 막상 잠이 드는 건 쉽지 않으니까. 옆으로 누워서 섬세하게 조절된 색온도 불빛에 의지해 한 편씩 읽어나갔다. 전자책의 좋은 점이다. 잠이 올 때 버튼만 누르면 암흑이 되니까. 불 끄는 것도 귀찮은 나에게 전자책은 킹왕짱.
아무튼으로 시작하는 주제들. '고양이, 작가, 친구, 방, 나의 진정한 친구 뿌팟퐁커리, 비, 결혼, 커피, 그 쓸데없는'으로 작가들은 에세이를 쓴다. 읽기 전부터 호기심이 일었던 주제는 '작가, 방'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쓰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세계를 꾸려가기 위해서는 방이 있어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내가 책갈피 해 놓은 부분은 김민섭 작가의 글.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언어를 가진 사람이 된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면 그 누구도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타인의 세계 안에서 타인의 언어로 자신이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은, 모두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두려움을 준다. 등단의 과정이 없더라도, 대형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지 않아도, SNS에든 블로그에든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일상을 기록해 나가는 모두는 작가다.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中에서, 김민섭)
전부 솔직하진 않지만 약간 솔직한 글이라서 에세이가 좋다. 글이란 게 전부 솔직해도 문제 전부 가짜도 문제. 피곤에 찌들어서도 읽을 수 있다는 책이 있다는 사실. 각기 다른 주제를 서로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서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는 조금씩 아껴 읽으면 좋을 책이다. 나처럼 두 달에 걸쳐 읽어도 되고 더 천천히 읽어도 된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늦게 읽는다고.
내밀한 이야기는 듣는 것보다 읽으면서 상상하는 게 훨씬 기억에 오래 남는다. '커피'라는 주제에서 이은정 작가는 죽은 언니가 좋아했던 커피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밥값에 근접하는 커피라고 생각하면 마시지 못한다. 라테 비용이라는 말도 있던데. 모든 것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 나로서는 「마실 수 없는 커피」 이야기에서 반성과 후회를 한다.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
이름을 들어본 작가도 있고 처음 알게 된 작가도 있다. 이름은 알고 있으나 글을 읽어보지 못한 작가의 글을 읽으며 아, 이런 사람이구나, 좀 웃긴데 생각했다. 무엇이든 쓰는 자들이 작가라고 말해주어서. 불안하지만 읽고 쓰는 행위로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해주어서. 고맙다. 두 달 내내 격려와 위로를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를 읽으며 받았다. 몸의 피곤은 어쩔 수 없어서 피로회복제를 5일치나 사서 먹은 건 안비밀. 마음 치유는 책으로. 이제 힘 낼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