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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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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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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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일상을 밀어내는 참혹하고도 슬픈 일의 실체
『딸에 대하여』 김혜진이 응시한 한 남자의 조용한 비극

김혜진 장편소설 『9번의 일』이 한겨레출판에서 출간되었다. 『9번의 일』은 ‘일’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가는 통신회사 설치 기사로 일하는 평범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평온한 삶의 근간을 갉아가는 ‘일’의 실체를 담담하면서도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일하는 마음과 일을 앓는 마음 그 어딘가에서 작가가 짚어낸 건, 결국 끝까지 남아 계속 우리를 더 나쁜 쪽으로 밀어붙이는 일의 수많은 감정들이다.

이봐요. 나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알 필요도 없고요. 통신탑을 몇 개나 더 박아야 하는지, 백 개를 박는지, 천 개를 박는지, 그게 고주파인지 저주파인지 난 관심 없어요. 나는 이 회사 직원이고 회사가 시키면 합니다. 뭐든 해요. 그게 잘못됐습니까? _본문 중에서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 ‘바틀비’가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외치며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우리에게서 잊혀져버렸다면, 『9번의 일』의 주인공 ‘9번’은 ‘그게 뭐든 하겠습니다’의 자세로 하고 또 하다가 자신을 망가뜨리고야 만다. 계속해서 일이란 것을 해야 하는 우리들은 ‘바틀비’나 ‘9번’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소설은 바로 그런 것들을 묻고 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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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라는 건 결국엔 사람을 이렇게 만듭니다.
좋은 거, 나쁜 거. 그런 게 정말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일을 계속하면서 결국 닿게 되는 그 끝엔…… 무엇이 있을까?

《9번의 일》은 지금도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꼭 읽어야 할 소설이다.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자신도, 일도, 그 어떤 것도 버리지 않았다. 《9번의 일》은 우리를, 그리고 우리의 일을 더 나은 미래로 데려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바뀌어버리는지 보고서 절망하기 전에,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사람을 꿈꾸게 해줄 것이다.

■ 작가의 말

몇 해 전 통신회사 노동조합을 취재한 적이 있다.
취재라고 하면 거창한 것 같지만 내가 한 일은 그곳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분들의 일상을 짧은 시간 멀찌감치에서 지켜본 게 전부였다.
당시엔 내가 어떤 소설을 쓰게 될지, 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소설은 그분들과는 무관한 어떤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에 대한 이야기이거나 혹은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둘 사이를 채운 어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한 설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뭔가를 쓰는 일이 나를 어떻게, 얼마나 바꿔놓을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종이책 회원리뷰 (36건)

9번의 일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z**e | 2022.06.30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오랜만에 읽은 한국소설이다. 우연히 한 달 간 5권의 책을 읽는 독서모임의 책 리스트를 봤는데, 그 중 4권은 소장하고 있던 책이었고 유일하게 이 책은 소장하지 않은 책이었다. 낯선 제목이기도 하고 요즘 일에 있어서 슬럼프도 오는 시기라서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읽기 시작했다. 통신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공은 부장으로부터 퇴사를 권유받게 되지만, 당장 갚아야 할
리뷰제목

오랜만에 읽은 한국소설이다. 우연히 한 달 간 5권의 책을 읽는 독서모임의 책 리스트를 봤는데, 그 중 4권은 소장하고 있던 책이었고 유일하게 이 책은 소장하지 않은 책이었다. 낯선 제목이기도 하고 요즘 일에 있어서 슬럼프도 오는 시기라서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읽기 시작했다. 통신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공은 부장으로부터 퇴사를 권유받게 되지만, 당장 갚아야 할 대출과 대학을 보내야하는 아이가 있는 주인공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버티는 심정으로 계속 일을 해야한다는 신념으로 더 열악한 환경으로 발령이 나게 되고 그곳에서 마저 동료들과 상사와의 갈등을 빚어낸다. 한 회사에서 26년간 일한 그에게 회사가 몰아가는 살벌한 압박과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압박을 받는 을들끼리의 갈등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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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은 짓누르고 인간은 버틴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D**********f | 2022.05.1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우리는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일을 하면서 직업을 갖게 되지만, 조직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단 한번도 성과에서 자유로운 적은 없었다. 성과는 나의 노력과 열정과 관계없이 늘 상대적으로 측정되고, 조직의 성장과 함께 해야 한다. 승진과 보상은 영원하지도 않거니와, 늘 멀리에 있는 듯 보인다. 늘 일은 몸을 힙겹게 하고 마음을 애닳게 한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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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어떤 식으로든 일을 하면서 직업을 갖게 되지만, 조직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단 한번도 성과에서 자유로운 적은 없었다. 성과는 나의 노력과 열정과 관계없이 늘 상대적으로 측정되고, 조직의 성장과 함께 해야 한다. 승진과 보상은 영원하지도 않거니와, 늘 멀리에 있는 듯 보인다. 늘 일은 몸을 힙겹게 하고 마음을 애닳게 한다. 일에 짓눌리지 않는 삶은 다른 성공한 경영자와 동료들이 가지고 있는 듯 하고, 월요일 출근길의 무게는 금요일의 퇴근길의 가벼움을 수천번 합친 것보다 더한 법이다.

 

 

김혜진의 <9번의 일>은 26년을 통신회사에서 근속하고 있는 한 중년남성의 이야기를 다룬 극사실주의에 입각한 작품이다. 이 책의 주인공 '그'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회사에서 재교육을 받고, 권고사직을 권유받는 인물이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버틴다. 회사 조직은 물론 동료들조차 연장자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오래된 다세대 건물을 매입했고, 아들의 교육비를 감당해야 하며, 아내는 마트에서 일을 한다. 다세대 건물의 수리비, 대출금, 할부금, 연금, 보험료, 학비, 경조사비, 장인의 병원비, 시골집의 수리비는 그저 그의 삶을 짓눌리는 여러 개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 분노하는 단계를 지나, 자신의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과 이해의 단계까지 이르는 인물이다.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무력한 버티기뿐이다.



 

<9번의 일>에 나오는 주인공은 저성과자이자 그저 '나가주었으면 하는' 잉여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26년을 일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뿐이다. 이런 상황을 인식하는 것도 어렵지만, 미리 알았다고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는 저교육자 대상 교육을 받고, 외딴 지역으로 발령이 나 설치 현장이 아닌 인터넷 상품의 영업일을 떠안는다. 계약을 못하면 월급도 삭감될 뿐더러 좋은 성과를 낼 만한 어떠한 업무도 주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변화에는 그가 제대로 일을 하게 만들 시간이 주어져야 하지만, 기업은 늘 시간을 두고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영업을 위한 선의로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의 공유기를 무료로 교체해주지만, 이는 다른 사업부의 업무 방침과 다르다보니 오히려 경고를 받고 더욱 지방으로 밀려난다. 그는 동료의 죽음을 추모하다가 무단결근 통보를 받기도 하고, 노조에 가입하기도 하며, 마침내 하청업체 소속으로 통신탑 설치를 반대하는 마을에서 일하게 된다.


 

<9번의 일>에 나오는 주인공은 직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맹렬하게 드러내는 인물이 아닌, 주변의 상황과 외부의 환경에 끊임없이 짓눌리고 영향을 받아야 하는 인물이다. 직장은 연공서열을 인정해주지 않고, 오직 조직의 필요에 따라 사람을 '저성과자' 혹은 '재교육자'로 재단하고 사람을 더욱 극한 상황에 내몰게 된다. 이들에게 삶은 행복감으로 충만한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쌓인 아무 것도 아닌 순간의 집합이 된다. 그나마 아무 것도 아닌 삶을 유지하게 위해 버틴다.

 

우리는 직장에서 자신의 삶을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는지 고민한다. 이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누구나 우리는 일을 하면서 나다움을 지킨다는 것에 대해 도전과 역경을 시험받기 때문이다. 도대체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만 감수하는 수많은 것만이 존재한다. 숱한 책임을 져야 하는 연속된 일 앞에서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에만 충실한 삶'은 그저 나다움을 조금씩 깎아내고 밀어내면서 오랜 시간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9번의 일>의 세계에서는 어느 순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인식하는 것을 소멸시켜, 그것이 무슨 일이고 어떤 일인지를 생각하지 않도록 만든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때 그는 비로소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어느 순간 그는 통신탑 설치를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과 마주하면서도 버터야할 자신만의 이유를 생각한다. 그에는 아들의 등록금을 포함한 그가 지켜야할 것들을 회피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이들은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라는 생각을 '그래서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으로 금세 바꾼다. 어떤 환경이든 인간은 생존을 위해 적응하고, 그래서 버틴다. 개인보다는 회사가 더욱 오래 살아있는 실체로 느껴진다. 어찌됐든 '9번'은 외딴 마을에서 통신탑을 분리하는 것으로서 일을 지속한다. 픽션의 세계는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상징화하지만, 노동자들이 기대하는 현실에서의 희망은 지금 이 순간에는 흐릿하면서도 불투명하기 마련이다.


 

김혜진 작가님이 도입부에 소개한 스터즈 터클의 <일>에서의 문구에서는 '사람을 온전히 담을 만큼 큰 직업은 없다' 고 했다. 아무리 직업이 짓누르는 시간은 성취의 순간보다 길고 오래지만, 그래도 인간의 크기가 일보다 줄어들 순 없다. 자신이 지켜야 할 것들에만 충실한 삶은 나의 자존감은 물론 주위에 대한 배려도 잊게 한다. 아직은 할 수 있을 때, 보다 베풀고 사랑하고 인정하는 삶으로 그렇게 일을 맞이할 수는 없을까.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의 시간은 나다운 그릇으로 채우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버티기만 하는 것으로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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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꿋꿋함과 개인의 꿋꿋함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민*레 | 2021.12.1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이 이야기는 희망 하나로 가족을 먹여 살리려는 한 가장의 이야기다.선한 일을 하든 악한 일을 하든 그는 그저 자신이 그 자리에 있음을 바랄뿐이다.기업이 사람을 부품처럼 갈아끼우듯이 하는 이 실태를 담담하지만 아프게 꼬집으며 말해준다.회사에서 나가라고 해도 그는 꿋꿋이 버틴다.가까이 하기도 멀리 하기도 하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싸늘한 우리들 사이여전히 세상은 각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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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희망 하나로 가족을 먹여 살리려는 한 가장의 이야기다.
선한 일을 하든 악한 일을 하든 그는 그저 자신이 그 자리에 있음을 바랄뿐이다.
기업이 사람을 부품처럼 갈아끼우듯이 하는 이 실태를 담담하지만 아프게 꼬집으며 말해준다.

회사에서 나가라고 해도 그는 꿋꿋이 버틴다.
가까이 하기도 멀리 하기도 하는,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싸늘한 우리들 사이
여전히 세상은 각박하고 그 누구도 어떻게 살라고 일러주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은 자신의 일만을 해내어 간다.
나도 항상 저러한 고민을 해왔고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위에서 밑으로 가기는 쉽고 빠르지만 밑에서 위로 올라가기는 힘들고 어렵고 지치는 순간들의 반복이다.

강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이야기에 약한 사람들끼리 싸우고 상처투성이로 남는 우리네 이야기를 그려놓았다.
세상도 그의 이야기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그렇게 아등바등 정년이 오기 전까지 버텨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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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9번의 일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6 | 2021.10.25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9번의 일 한 남자가 26년을 근무해온 직장에서 퇴사를 권유받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직 챙겨야 할 가족이 많은 그는 제안을 거절한다. 그러자 회사는 기술직이었던 그를 영업직으로 발령내거나, 아무 일도 주지 않거나, 갑자기 형편없는 사무실로 보내면서 암묵적으로 퇴사를 강요한다. 애초에 그가 해 낼 수 없는 일을 맡기며 그의 무능함을 질책한다. 처음에는 회사를 욕하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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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일

한 남자가 26년을 근무해온 직장에서 퇴사를 권유받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직 챙겨야 할 가족이 많은 그는 제안을 거절한다. 그러자 회사는 기술직이었던 그를 영업직으로 발령내거나, 아무 일도 주지 않거나, 갑자기 형편없는 사무실로 보내면서 암묵적으로 퇴사를 강요한다. 애초에 그가 해 낼 수 없는 일을 맡기며 그의 무능함을 질책한다.

처음에는 회사를 욕하던 아내도 나중에는 이럴바에는 그냥 그만 두는 낫겠다고 한다. 친구들도 찾아와 이쯤 했으면 됬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집요하리만큼.

마지막으로 맡은 일은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송전탑을 만드는 일. 모두가 힘들어서 나가 떨어지는 그 일을, 오직 그 만이 악착같이 매달려 해낸다. 그런 그를 보고 화가 난 주민들이 말한다. 당신은 생각이 있는 거냐고,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고. 그러자 그가 말한다. 나는 회사원이고 위에서 시키면 뭐든 한다고. 돈만 주면 뭐든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그런 그의 모습에서 그동안 그의 등을 떠밀며 나가달라고 이야기 하던 많은 책임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도 이런 역할하기 싫다고, 나도 죽겠다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지 내가 어쩌겠냐고 그의 앞에서 울상을 짓던 많은 사람들. 그들과 주인공은 전혀 다르지 않다.

그렇게 끝까지 일을 해냈지만, 이 업무를 끝내면 고용 보장을 해주겠다던 인사부 담당자는 자꾸 그를 피하기만 한다. 그런 그가, 더 이상 할 일이 남아 있지 않던 그가 한밤중에 송전탑에 다시 오른다. 그리고 그가 힘껏 조여놓었던 나사들을 하나씩 푼다.

이 장면은 조금 헷갈렸다. 그의 노력이 부질없었음을 스스로 철탑을 부수면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회사에 대한 복수처럼. 아니면 회사에서 더이상 그에게 일을 주지 않자, 그렇게 그는 그가 만든 결과물을 해체함으로써 조금 더 현장에 남아있을 이유를, 일거리를 만들어낸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에 탑에 오르는 주인공을 보며 혹시 자살을 하려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나에게는 반전이었다.)

그에게 일, 직장은 무엇일까. 돈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다른 곳을 알아보면 어디든 자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시와 핍박 속에서도 절대 회사를 떠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회사에게 버림받은 그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인 것처럼. 회사는 그에게 존재의 이유였던 것이 아닐까. 그에게는 삶의 가치가 일 자체가 아닌 직장, 회사였던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많은 중년 아버지들이 나와 직업, 직장을 동일시하는 것 처럼.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이렇게 까지 나가라는데 버텨서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도 알고 있다. 자신의 이해할 수 없는 고집을. 회사처럼 악랄하게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나에게 회사, 직장은 나의 삶에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아마 요즘 20~30대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할 것 같다. 워라벨이 점점 중요해지니까. 회사는 자아를 실현하는 곳, 나와 한 몸인 그런 곳이 아니다. 그저 계약관계에 의해 돈을 받고 나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곳일 뿐이다. 깔끔하다. 그게 전부다.

아마 주인공도 머릿속으로는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의 예의나 배려도 없이 그를 막무가내로 내치려는, 말 그대로 하나의 부속품처럼 한순간에 그를 제거해버리려는 회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그냥 그렇게 순순히 떠나줄 수 없었을 것이다.

퇴사를 생각하는 요즘의 나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 책이다. 나에게 일, 직장은 무엇일까.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하아.. 생각보다 많이 써내려왔는데도 아직도 더 많은 이야기가 하고 싶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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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숨긴 악마에게 희생당하는 우리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J**e | 2021.02.0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한 회사를 26년 다닌 직원이 회사로부터 사직을 강요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을 읽어 보면 어떤 회사인지 금방 떠오른다. 30년 전에는 좋은 회사였고, 지금도 좋은 회사로 알고 있어 한번 찾아보았다. 회사는 여전히 수익을 내고 있고, 직원도 2만명이 넘는 회사이다. 이런 회사에서 이상하게 계속 구조조정을 한다. 사회적으로 마땅히 비난 받아야 한
리뷰제목

 한 회사를 26년 다닌 직원이 회사로부터 사직을 강요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을 읽어 보면 어떤 회사인지 금방 떠오른다. 30년 전에는 좋은 회사였고, 지금도 좋은 회사로 알고 있어 한번 찾아보았다. 회사는 여전히 수익을 내고 있고, 직원도 2만명이 넘는 회사이다. 이런 회사에서 이상하게 계속 구조조정을 한다. 사회적으로 마땅히 비난 받아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사회학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편으로 주인공인 그가 거의 나처럼 여겨졌다. 나이가 들고 회사로부터 밀려나고, 사회로부터 밀려나고, 가정에서도 소외되는 전형적인 50대 근처의 삶을 보여준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동안에 잠시 숨을 고르고 마음의 평정을 가져야했다. 매우 우울한 소설이다. 

 

 그는 일류기업에서 비교적 무난하게 26년 정도 직장생활을 잘 해오던 사람이다. 회사는 그와 그의 조직을 끊임없이 괴롭혀서 희망퇴직을 요구하고 있다. 이럴 경우에 좋은 기업은 전직 프로그램으로 업무를 조정해줘야 하지만 이 기업에서는 이제는 비용이 되어버린 인력을 인간대접 없이 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점점 굴욕을 느끼게 하여 자진 퇴사를 유도한다. 즉 더러워서 다니지 않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퇴직은 쉽지 않다. 어려운 것이 퇴직 후 재취업을 잘 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번 달 들어오는 월급으로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서민으로서는 당장의 돈이 급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점점 인간으로 버티기 힘든 일로 밀려난다. 집에서 먼 곳으로 발령 내고, 전혀 해본 경험이 없는 영업 업무를 맡기는 것이다. 이때 일을 잘해와도 트집을 잡고, 일을 잘못하면 경고를 한다. 인간적인 모멸을 주어 내보려는 것이 목적이지, 회사일을 잘 해오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참고 버틴다.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조금 더 힘든 모욕적인 일인 것이다. 

 

 그는 마침내 주민들과 마찰이 있는 철탑 건설에 용역을 하게 된다. 아마 송전탑 밀양 사건을 모티브로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인 내용과 관계없이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인 그가 점점 악마화되어 간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적인 모욕을 자신이 흑화 하여 버텨내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에게 인사 명령을 내고,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자는 표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민들과 통신사 직원들 간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는 직원이고 위에서 시켜서 하는 것이라고요" 하지만 위가 정확하게 누구인지 아마 직원들도 모를 것이다. 어디 적당하게 포도주 한잔 드시고 계실 것이다. 

 

 나는 감히 주인공인 그에 대해서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갑질하는  그 회사에 대해서는 욕을 할 수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 하라고 제발." 그리고 주인공인 그 에게도 한마디 따뜻한 말을 전하고 싶다. "이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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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9번의 일]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크***스 | 2020.11.25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여기 와서 아무것도 할 줄도 모르는 바보 천치 등신이 됐어요. 그게 왜 내 탓이야? 그게 내 잘못이에요? 바보 천치 등신이 되라고 사람을 이런 곳에다 처넣은 인간들 잘못 아니에요? p.170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 동안 일한 "그"는 한 달 전에 새로 온 부장의 호출을 받았다. 부장은 그가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재교육 대상자가 되었다는 말을 꺼냈다. 이번까지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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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와서 아무것도 할 줄도 모르는 바보 천치 등신이 됐어요. 그게 왜 내 탓이야? 그게 내 잘못이에요? 바보 천치 등신이 되라고 사람을 이런 곳에다 처넣은 인간들 잘못 아니에요? p.170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 동안 일한 "그"는 한 달 전에 새로 온 부장의 호출을 받았다. 부장은 그가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재교육 대상자가 되었다는 말을 꺼냈다. 이번까지 세 번째 재교육 대상자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상 퇴직 제안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지만, 다시 교육을 받기로 결심했다. 재개발 예정지에 대출을 끼고 산 주택의 이자를 부담해야 했고, 아들 준오가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양가 어르신들의 노환으로 정기적으로 나갈 병원비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재교육을 받고 난 이후에 그의 행동을 일일이 기록한 보고서가 부장의 손에 들어간 것을 보니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그가 나가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그는 버티고 또 버텼다. 출퇴근을 하기엔 너무나 멀어 사택에서 거주해야 하는 지역에 발령이 나도 그는 묵묵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흐르고 흐르다 보니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버티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왜 이 일을 지속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왜 매번 오기가 살아나고 끝장을 보려는 심정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점점 다른 사람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p.169

 

 

 

50대쯤 되었을 주인공 "그"의 이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물론이고 아들, 조카, 그만둔 동료들의 이름은 모두 등장했는데, 마지막까지 그의 이름만은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가장으로 보편화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름보다는 회사의 직급, 누구의 아빠로 불리는 게 이제는 익숙해진 사람의 모습이었다. 청춘이라 불릴 한창나이는 지났지만 그렇다고 노인이라고 하기엔 젊은, 그래서 퇴직을 하기엔 아직 이른 남자를 이 소설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요즘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희미하다. 나만 해도 한 직장에 계속 다니기보다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거나 나를 좋게 본 사람의 부름에 여러 번 응답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소설 속 그가 계속 직장에 남으려고 하는 걸 조금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20년이 넘도록 다닌 직장이기 때문에 애사심이 남다른 건가 싶기도 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기에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무슨 일이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내가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이력서를 넣어볼 기회가 있었고, 퇴사 후에 부동산으로 대박이 났다던 동료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계속 남아있고자 하는 회사에서 굴욕과 모욕을 느끼는 것보다 한순간 쪽팔리고 마는 게 훨씬 나았을 터였다. 그가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원래의 업무가 아닌 일을 떠맡고 이런저런 일로 인해 그곳의 책임자에게 추궁을 당하는 일의 연속은 읽고 있는 내가 다 스트레스였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해서 버텨냈다. 나중엔 오기로 남아있는 거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가 회사에 기대한 건 마땅히 자신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들이었다. 존중과 이해, 감사와 예의 같은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바란 것뿐이었다. p.168

 

 

 

왜 그렇게 한 직장에만 매달려야 했을까. 처음에 퇴직과 재교육 중에 선택을 했더라면 적당한 퇴직금을 받아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해볼 생각을 했을 수도 있는데, 왜 굳이 버텨야만 했는지 솔직히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출금, 나이 든 부모의 병원비, 아들의 교육 자금 등을 방패 삼아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려는 것만 같았다. 그가 조금은 고지식한 면이 있었던 탓인 듯하다. 아마도 평생을 그렇게 곧게 살아왔을 그의 인생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버티는 그를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소설이 진행되면서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꾸중을 듣고 자꾸만 더 먼 곳으로 좌천되는 그의 심정만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낭떠러지에 밧줄 하나에만 의지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회사가 시키는 일이 부당하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곧이곧대로 하는 그가 요령이 없는 것 같다가도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입장이라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가 끝까지 버티고 버틴 끝에 아들 준오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듣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이 외면했던 회사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 결말이 왠지 모르게 조금은 슬펐고, 한편으로는 섬뜩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동안 본인의 의지로 버텼다기보다는 내면의 무언가가 그를 버티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마지막이 되어서야 조금은 후련하기도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의 상황에 자꾸만 빠져들어 가슴이 답답해질 지경이었다. 책을 읽는데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에 몰입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단순한 문장은 건조함이 물씬 풍겼는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게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소설 속 캐릭터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살아있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왠지 현실적이라 생생하게 느껴졌다.

가장의 어깨에 놓인 책임감의 무게를 새삼스레 생각해보게 됐다. 자존심이 상하고 모욕을 느끼는 데도 그들을 참게 하고 버티게 하는 무언가의 가치 때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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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9번의 일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꿈*******자 | 2020.11.19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김혜진 작가의 신작을 만났다. 어찌보면 길지도 않은 소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는 옛날이라면 우리네 아빠를, 지금은 남편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일’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인지, 일이 주는 무게가 어떤 것인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육아로 인해 회사를 더 이상 다니지 못했지만, 만약 내가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나는 회사라는 곳에서 어떤 위치가 되었을지. 많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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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의 신작을 만났다. 어찌보면 길지도 않은 소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는 옛날이라면 우리네 아빠를, 지금은 남편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인지, 일이 주는 무게가 어떤 것인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육아로 인해 회사를 더 이상 다니지 못했지만, 만약 내가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나는 회사라는 곳에서 어떤 위치가 되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주인공은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을 근속한 사람이다. 그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세 번째 재교육을 받기 직전이다. 그때 새로 온 부장이 그를 호출한다. 부장은 그에게 권고사직을 권유한다. 자신과 같이 일하던 동료들조차 연장자가 자진해서 나가주길 바라고, 평가 점수에 따라 다른 곳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만둘 수 없다. 그에게는 몇 달 전 변두리 오래된 다세대 건물을 매입(대출을 끼고)했고, 아직 고등학생 아들이 있다. 아내는 마트에서 2교대로 일하고 있지만 들어갈 돈이 너무 많다. 다세대 주택의 누수 수리비, 대출금과 이자, 자동차 할부금, 아이의 학비와 다양한 경조사비, 그리고 장인의 병원비와 노모 주택의 수리비까지.. 아직 들어가 갈 돈도 많고 어떤 미래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부장의 권고사직 제안을 거절하자 그는 타지역 거점 센터로 발령 난다. 그곳에서 그는 인터넷 상품 영업 일을 시작하지만 계약은 성사되지 않는다. 그렇게 월급은 30% 삭감되고, 그는 깨닫게 된다. 회사는 자신에게 새로운 일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일도 시키지 않는다는 걸. 성과가 없으니 촉구서가 이어지고 그는 다시 지방 소도시 시설 1분기국사로 발령 난다. 이곳에서 인터넷 수리와 설치 및 보수 업무를 하며 일상을 되찾으려 하지만 휴가를 내고 친구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온 다음 날 무단결근 통보를 받게 된다. 이후 그는 노조에 가입하고 투쟁 끝에 본사 소속이 아닌 하청업체 소속으로 변두리 소읍인 78구역으로 복직한다. 그는 이곳에서 통신탑 설치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대치하게 되는데..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나는 언제까지 일할 수 있었을까? IMF이후로도 다양한 형태로 직급이 있는 사람들은 권고사직이나 명예퇴직을 제안받는다. 버티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버티는 사람이나 나가는 사람이나 힘든 건 다 마찬가지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있고, 늙어가는 부모님이 있고, 많은 돈을 저축한 것도 아닌, 여기저기 나갈 돈만 수두룩한 우리네 남편들.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어떻게든 다시 일해야 하는 건 아닌지. 왜 이렇게 먹고사는 문제는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슬프고 아프다.

 

하청업체 소속으로 마을 주민과 대치해야 하는 남자는 그들과 똑같이 시골 어딘가에 부모님이 존재하고 부모님을 위해 효도하려고 하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아직 나갈 돈이 많고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한다. 마을 주민에게는 나쁜 놈이지만 남자도 회사에서 하라고 하니까 할 수밖에 없다. 이걸 못하면 회사에서 짤리기 때문에..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해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일을 계속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바뀌어버리는지 깨닫게 될 거였다. (252) 회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는 몸부림. 자신이 아니라도 누군가는 회사를 위해 욕을 먹으면 해야 할 일. 그런 일을 누군가의 아들이, 아빠가, 남편이, 친구가 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문명의 혜택을 받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슬프다.

 

노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아니라 삶이 어그러진다. 만약 내 남편이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충고를 하게 될까? 힘들면 그만둬. 아니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그만두기를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내 남편이 회사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흐를 것 같으니까. 하지만 우리네 아빠나 남편들은 그걸 내색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극은 시작되는 건지도. 책을 읽는 내내 남자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아팠다. 일에 대해, 그리고 중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내 남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잘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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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의 일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e*****0 | 2020.10.1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이 책은 표지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책을 덮었을 때 느껴지는 묵직한 느낌은, 저 텅 빈 의자에 다음번에 내가 앉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함께 다가온다. 최다혜 작가의 <조용한 오후> 그림을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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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표지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책을 덮었을 때 느껴지는 묵직한 느낌은, 저 텅 빈 의자에 다음번에 내가 앉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함께 다가온다. 최다혜 작가의 <조용한 오후> 그림을 살펴보면 텅빈 카페에 홀로 앉아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식탁에는 책 한권과 음료수 잔 하나, 조용히 식탁을 응시하고 있는 남자의 외롭고 쓸쓸한 어깨가 느껴지는 건 아마도 중년이라는 나이 때문일 것이다. 아직은 더 일할 수 있는 나이인데 나는 왜 이 시간에 여기에 있을까?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차 맛은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주위에는 아무 소음도 없는 조용한 오후의 카페의 모습. 

소설속 장면과 얽어보자면 통신회사에서 26년간  일해온 주인공이 나온다. 그는 여름이 끝나갈 무렵 부장의 호출을 받는데 저성과자로 분류되 재교육을 받아야 하는 대상자가 되었음을 통고 받는다. 일면식도 없는 부장의 통보는 카페에서 이뤄지고 그는 퇴직 서류가 들어있는 봉투도 함께 내민다. 처음에 나는 저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인물이 부장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덮은 순간에는 부장이 남기고 간 서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주인공으로 오버랩이 되면서 이 책은 표지가  한 몫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장이 카페 밖으로 나간 걸 확인한 뒤에야 그는 주의를 기울여 서류 세장의 귀퉁이를 잘 맞춘 다음 반듯하게 접었다. 그것을 셔츠 안쪽 주머니에 넣고 나자 비로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것 같았다. p.15


26년간 통신주를 매설하고, 전화선을 끌어오고, 인터넷 케이블을 연결하던 그가 어느날 판매나 영업직으로 업무가 바뀌면서 판매 실적이 전무한 관리대상자가 된 것이다. 그는 퇴직 제안을 거절하고 재교육을 받았지만 최하 등급을 받고 타지역 상품 판매 부서로 발령이 난다. 


<9번의 일>을 읽으면 자연스레 과연 일이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생계를 위한 수단이자 자아실현의 범주를 뛰어 넘는 그 무엇을 말이다. 지금은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것도 옛이야기가 되었다. 코로나로 통보도 없이 일이 끊긴 사람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에도 단 하나의 감정만 존재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는 왜 매번 뜨겁게 솟구쳤던 분노가 넓게 번지고 옅어지면서 연민과 이해 따위의 감정에 다다르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p.63


언젠가부터 시간은 그가 예상할 수 없는 영역으로 완전히 밀려난 것 같았다. 한 시간은 너무나 길었고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몇 분이 지났나 하면 서너 시간이 가버리고 일주일이 넘었나 하면 하루나 이틀이 지났을 뿐이었다. p.103


그는 점점 더 멀리 일거리가 없는 곳으로 밀려나고 아내가 친구들은 이직을 권유한다. '살려고 일하지 일하려고 사는 건 아니'라는 아내 말에 그는 다시 처음처럼 어떤 일에 매달릴 자신이 없다고 새로 뭔가를 배우고 익히며 시간과 노력을 쏟을 자신도 없다고 말한다. 왜 이 시대는 적응하지 못하고 변화하지 못하는 걸 인간 개인의 무능으로 돌리는지, 내일을 대비할 수 없을거라는 두려움이 너무나 큰 요즈음이다. 


마지막으로 통신탑 건설을 맡은 그는 농촌 사람들과 대립을 하게 된다. 그에게 통신탑은 그저 회사가 시킨 일이고 그는 그저 그 일을 할 뿐이다. 실물이 없는 '회사'라는 존재가 그를 어떻게 파멸시키는지는 책에서 확인하시길...


일이란건 이런 겁니다. 얘 다리가 왜 이렇게 된 줄 알아요? 그까짓 옳고 그른 것 구분을 못 해서 다리 병신이 된 줄 압니까? 일이라는 건 결국엔 사람을 이렇게 만듭니다. 좋은 거, 나쁜 거. 그런게 정말 있다고 생각해요? p.206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럼에도 아주 작은 것 하나쯤은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두가지 마음이 들끓는 동안 그는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둔 걸지도 몰랐다.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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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파워문화리뷰 『9번의 일』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블* | 2020.10.12 | 추천17 | 댓글4 리뷰제목
직장이 내게 무엇인지, 일이란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을 만났다. 『딸에 대하여』의 작가의 신작으로 한 남자의 일에 대한 현재 우리의 민낯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었다.   국영기업체인 통신회사에서 26년을 일한 남자는 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현장 팀에 있었다. 새로 부임한 젊은 부장은 그를 호출해 희망퇴직 서류를 내민다. 그는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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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 내게 무엇인지, 일이란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보게 되는 소설을 만났다. 딸에 대하여의 작가의 신작으로 한 남자의 일에 대한 현재 우리의 민낯을 만날 수 있는 소설이었다.

 

국영기업체인 통신회사에서 26년을 일한 남자는 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현장 팀에 있었다. 새로 부임한 젊은 부장은 그를 호출해 희망퇴직 서류를 내민다. 그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희망퇴직 1순위에 들었다. 퇴직을 하지 않으면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하고, 교육 결과에 따라 업무와 전혀 상관이 없는 곳으로 갈 수도 있었다. 직원들은 이왕이면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나이가 많은 그가 퇴직해주면 좋을 것이라고 내비친다.



 

그는 그만두지 못할 경제적 핑계를 댄다. 고등학생인 아들 준오의 학비, 재개발을 기대하고 전세 보증금을 끼고 집값의 반을 대출로 구입한 다세대 건물의 대출금과 이자, 팔순이 넘은 양가 부모님의 병원비, 그리고 매달 빠져나가는 공과금 들을 생각했다. 경제적인 이유는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직장에서 쉬엄쉬엄 일해도 월급이 제대로 나왔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저 직장에 적을 두고 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한 직장에서 26년을 일해 온 건 마치 충성을 맹세한 군인과도 같은 심정이었다.

 

그는 타 지역 상품 판매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는 이 일이 그에게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업무도 주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70페이지) 그는 상품을 하나라도 판매해 보려고 공장 주변의 중국인들에게 공유기를 교체해주었지만 회사에서는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어떠한 일을 했었는지, 회사에 관련된 말도 금지 사항이었다. 그는 점점 구석으로 밀려났다.

 

월급이 삭감되었고 그는 또 다른 지방 소도시로 발령이 났다. 그나마 그가 설치 팀에 있었다는 이유로 케이블 선을 끌어다 작업하는 일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그에게 퇴직 권유가 시작되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를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피해 다녔다. 사택에 함께 사는 사람들과 메모지로 해야 할 말을 전달할 뿐이었다. 그는 분기국사에서 황 여사와 같은 팀으로 일했다. 황 여사는 전화교환원으로 입사했다가 교환국 업무가 사라지는 바람에 콜센터 부서에서 일했다고 했다. 30여 년간 상담 업무만으로 해온 황 여사에게 회사는 설치와 수리 업무를 주었던 것이다.

 

밀려날 대로 밀려난 사람들은 고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최나 권이라는 성으로 불릴 뿐이다. 새로운 발령지로 갔을 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7, 3식이, 그는 9번에 지나지 않았다. 서로 이름을 알 필요가 없었다. 그 전에 함께 일해 왔던 사람들은 호석이나, 상현, 한수, 종규로 불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잠시 머물다 갈 사람으로 여겼기에 서로를 깊게 알고 싶지 않았다.



 

문득 화순의 한 공원이 떠올랐다. 가을이면 국화 축제를 하는 공원으로 온갖 국화와 함께 핑크뮬리까지 있어 많은 관광객을 부르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국화꽃 한가운데 거대한 철탑이 우뚝 서 있다.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하지만 필요에 의해 세워졌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설 속 상황에서처럼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자파가 쏟아질 테고 미관상에도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철탑을 세우는 기업에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만 철탑이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입장이 이해되었다. 더군다나 노년에 터를 잡고 집을 지어 살고 싶은 곳이라면 어떤 마음이겠는가. 그 또한 마을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터였다.

 

그는 왜 회사에 남아 있으려고 했는가. 그는 무엇을 지켜내고자 했는가. 자신에게는 안식처와도 같았던 회사에서 버림받았다는 것 때문이었을까. 거의 평생을 일해 왔던 곳이다. 그곳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퇴직을 종용받는 건 커다란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그와 함께 커왔다고 여기는 회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내가 먼저 그만두는 것과 쓸모를 다해 버림받는다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가 자주 떠올리는 과거의 잔상은 행복했던 때의 한 순간이다. 그는 왜 아무것도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다가올 여러 가능성을 다 흘려보냈다. 다른 삶의 방향을 꿈꾸지 못했다. 그는 잘 알지 못하는 동네 사람의 수평이 맞지 않은 빨랫줄을 손보고 균형이 맞지 않은 평상을 반듯이 맞춰주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다. 그는 왜 이렇게까지 하나. 갖은 수모 때문에 절망하면서도 그는 왜 회사에 버티려 하는가. 가슴에 무거운 돌멩이 하나를 올려놓은 듯 그렇게 답답했다. 이게 현실의 상황이라는 게 문제다. 지금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가. 어디선가는 이렇듯 버틸 때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기업은 기업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지만 못내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소설 속 주인공이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이란 무엇인지, 직장이란 무엇인지 묻게 된다. 예전과 달리 평생 직장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태되면 살아남지 못하고 밀려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일은 또다른 나의 자아다. 비록 경제적인 이유를 무시할 수 없지만 일을 하며 자아를 성장시킨다. 이름이 아닌 9번으로 불렸던 그는 비로소 자기 해야 할 일을 한다. 왜 진작 하지 못했느냐고 묻고 싶지만 그는 그의 일을 했을 뿐이다. 우리가 그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그를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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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일하는가?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일*삶 | 2020.10.0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브런치글: https://brunch.co.kr/@worknlife/502영상으로 읽는 서평: https://youtu.be/6lWxkczII-8 #12012년 대한민국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가슴 뛰는 광고에 푹 빠졌다. 왠지 그 회사에 가면 존중 받고 충성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 것 같고, 청춘을 불살라 일하면 그만큼 보상을 받을 것 같다."실패했다는 사실보다 어떤 가치가 있는 시도가 있느냐가 중요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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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글: https://brunch.co.kr/@worknlife/502

영상으로 읽는 서평: https://youtu.be/6lWxkczII-8

 

#1

2012년 대한민국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가슴 뛰는 광고에 푹 빠졌다. 왠지 그 회사에 가면 존중 받고 충성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 것 같고, 청춘을 불살라 일하면 그만큼 보상을 받을 것 같다.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어떤 가치가 있는 시도가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정직과 용기를 보여주는 사람만큼 미래를 맡겨도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최고의 팀은 1등이 모여 만든 팀이 아니라 1등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팀입니다.

사람이 미래다"


그렇게 빛나 보이던 회사가 2015년 입사 후 1년도 되지 않은 20대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에 포함해서 문제가 되었다.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더 큰 문제는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을 상대로 인권 침해에 가까운 압박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직원에게 대기 발령을 내어 교육을 시켰다. 이들은 오전 8시에 출근해서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매일 A4 용지 5장 분량의 회고록을 작성했으며, 교육 시간 동안 잡담, 자리 비우기, 지시 불이행 등을 하면 경고장을 받았다.



#2

2004년 인터넷이 한참 유행하고 너도나도 회사 홈페이지를 멋지게 만들어 뽐내던 때였다. 갑자기 웹디자이너 한 명이 인사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회사 내 직원들은 그녀가 잘린 거라고 수군거렸다. 다들 "저렇게 얼마나 다닐까? 곧 관두겠지."라며 수군거렸다. 당시 인사팀 팀원이었던 나는  퇴사하지 않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팀장은 그녀에게 일을 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정시 출근하고 정시 퇴근했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벌을 주듯 자리 비운 것에 대한 시간을 재지 않았지만 직장에 일없이 다니는 것은 엄중한 벌을 받는 것과 같다. 그렇게 1년 이상을 버티던 그녀는 대기업의 서비스 기획팀으로 전직하는 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인간승리다. 잘 모르지만 그녀는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가장이었을 수도 있고,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처지였을 지도 모른다. 우리 역시 월급을 받고 직장을 다니는 동일한 입장에서 어찌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3

그렇게 주변인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시련이 나에게도 닥쳤다. 2007년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잘 나가던 회사가 외국 회사에 매각되었다. 유사한 일을 하던 두 회사를 하나로 합치며 인원을 통폐합했다. 나는 그런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직원의 변화관리를 담당했다. 국내기업이 외국회사와 합쳐졌으니 서로 문화를 이해해야 하기도 했고, 일하는 방식에 관해서도 새롭게 배워야 했고, 다양성을 수용해야 했다. 인사팀 소속이다 보니 각종 규정이나 조직의 재조정 업무도 병행했다.


인원의 30%를 줄일 거라는 소문이 회사 내에 돌았고, 이미 부서별로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다는 말도 들렸다. 나는 인사팀 소속이었고, 팀장이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았기에 내가 명예퇴직의 대상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팀장이 나에게 미팅을 요청했고 내가 리스트에 있다고 알려줬다. 직원이 200명으로 줄이게 되면 한국에 굳이 교육 담당을 둘 필요가 없다는 이유였다.


내가 대상이라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모욕적이었지만, 사전에 귀띔을 해주지 않은 팀장이 너무나도 미웠다. 그랬다면 미리 마음의 준비도 했을 것이고 다른 곳을 알아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순간 1년을 버티고 나간 웹디자이너기 떠올랐다. 나는 그녀처럼 주변의 시선을 견디며 회사에 머무를 수 있을까?


지인인 노무사를 찾아가 상담했다. 회사에서 받은 조건을 보여주고 어떤 선택이 나에게 도움이 될지 자문을 구했다. 결국 내가 버틸 자신이 있으면 회사가 어떻게 할 순 없지만, 문제는 나의 자존심이었다. 지인은 "차라리 조건을 조금 더 좋게 요구하고 퇴사하는 게 정신 건강에서나 상호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내 생에 그런 치욕적인 순간은 더 이상 없길 바랐다. 팀장과 다시 미팅하면서 대화 내용의 녹음 허락을 구했고, 조건을 상향 제시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우리는 서명했다. 그 이후 내가 재취업에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아무리 힘들었다 해도 팀장과의 미팅만큼 힘들었을까?


김혜진의 《9번의 일》을 읽는 동안 세 에피소드가 불쑥불쑥 번갈아 가며 나를 괴롭혔다. 부장의 호출을 받은 날 이후 희망 퇴사하지 않은 이유로 그의 보직은 점점 열악하게 바뀐다. 왜 아내 해선도 그만둬도 된다고 하는데 그는 끝까지 다른 사람의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일을 그만두지 않은 것일까?


처음 영업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쉬지 않고 돌아다니고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진심을 다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외국인 근로자를 선한 마음으로 돕기도 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비난 혹은 알 수 없는 음모, 방해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책임감, 소속감, 동질감과 같은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지키려 노력했다. 26년간 다닌 직장으로부터 최소한의 존중과 이해, 감사와 예의를 받기를 원했을까?


그 과정에 그가 처음에 지키고 싶었던 일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고 점점 괴물이 되어 간다. 78구역 1조 9번의 일을 맡으면서다. 주도적으로 노력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생각 없이 행동하는 돈의 노예로 변했다.


"어차피 위에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무슨 결정권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합니다. 월급 받는데 못 할 게 뭐 있어요.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무엇이 그를 괴물로 만들었을까?


"생각해보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순간들이, 삶을 다른 방향으로 놓아둘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그것들을 그냥 흘려보냈다. 스스로에게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자신을 막아서기만 했다.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럼에도 아주 작은 것 하나쯤은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두 가지 마음이 들끓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 걸지도 몰랐다."


과연 그가 변화에 대처하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을까? 그가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노력했다 해도 어쩌면 나이 때문에, 회사의 경영상, 아니면 운이 없어서 회사의 타깃이 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이 길고 긴 싸움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이런 무모한 싸움이 아니고 다른 어떤 것에 이처럼 긴 시간과 노력을 쏟았어야 했다는 자책이 밀려왔다. 자신은 처음부터 이런 싸움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아니고, 지금껏 자신이 한 일은 패색이 짙은 이 싸움을 끝없이 유예하면서 다만 지는 것을 미뤄왔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렇다. 2006년의 나처럼 처음부터 긴 싸움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1년을 버틴 웹디자이너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속을 몇 번이나 썩이고, 자책하고, 끓였을까? 결국 회사를 상대로 노동자는 이길 수 없는 걸까? 통쾌하게도 그는 소심한 복수를 한다. 구조물이 분리되고 추락하며 그 역시 무너지지만 그의 마음만은 오랜만에 평화를 찾았으리라.


그가 9번의 일을 맡으면서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생각 없이 행동하는 돈의 노예로 변했지만, 현실의 직장인은 어떠한가? 그와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자기 일이 좋아서 책임감, 소속감, 동질감으로 일하고 있는가? 아니면 시간을 저당 잡힌 돈의 노예로 일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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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회원리뷰 (3건)

구매 무모함을 만든 나쁨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오***녕 | 2020.01.0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2019년 마지막 책으로 <9번의 일>을 골랐다. 후회했다. 연말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우울하고 칙칙한 이야기는 쉬이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한숨이 쌓여가고 아픔이 보태졌다. 일단 접어두고 다른 책을 읽을까, 생각하다가 곧 마음을 바꿨다. 적어도 아픔을 나누진 못해도 외면하진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다양한 이유로 외면한 아픔들에 대한 미
리뷰제목
2019년 마지막 책으로 <9번의 일>을 골랐다. 후회했다. 연말은 아름다운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우울하고 칙칙한 이야기는 쉬이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한숨이 쌓여가고 아픔이 보태졌다. 일단 접어두고 다른 책을 읽을까, 생각하다가 곧 마음을 바꿨다. 적어도 아픔을 나누진 못해도 외면하진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다양한 이유로 외면한 아픔들에 대한 미안함도 함께 몰려왔다.

<9번의 일>은 내게 '아홉 번의 일'로 읽혔다. 애처로운 주인공 남자가 결국 9가지의 일을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이 아닐까, 예상했다. 물론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구 번의 일'이었다. 구 번, 사람 이름도 아닌 숫자로 메겨진 사람. 당신은 구 번이요, 이것은 마치 그 사람이 누구인지 부정하는 느낌이다. 갖고 있는 이름도 특성도 모두 외면당하는 느낌. 번호로 불리기에 그들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걸까. 좌지우지하기 위해 그들을 번호로 불렀던 걸까.

남자는 수차례 권고사직을 권유당한다. 이제 회사에서 당신의 능력은 필요하지 않으니 그만 나가달란다. 이만한 조건이 없다고 덧붙인다. 이윤을 남기기 위한 회사는 직원도 고장 난 부품과 같은 취급을 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호봉을 올라가고 일은 다소 느려진다. 예전처럼 오랜 노하우보단 빠르게 변하는 기술에 대한 적응이 필요한 시대. 거기에 걸맞게 오래된 누군가를 쉽게 내보내기 위해 회사는 고군분투한다. 남자는 끊임없이 권유를 받지만 악착같이 버틴다. 그런 그에게 실로 상상도 못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 무능한 직원으로 분류해 교육을 받게 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애쓴다. 참으로 애쓴다.

어떤 회유와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는 남자. 본사에서 지방으로 지방에서 또 지방으로 또 지방으로 위기에 위기를 거듭 마련하지만 정신만은 단단히 붙잡고서 애쓴다. 고정적인 지출도 많지만 자신은 이 일을 위해 살아왔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물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부심이다. 어쩌면 무모한 고집일지도 몰랐다.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남으려는 남자를 더 다양한 방법으로 내모는 회사. 왜 우리는 더 이상 공생이 아니라 분류와 퇴출을 선택하는 것일까.

물론 이젠 평생 한 가지 일만으로 살 수 없는 시대라는 걸 안다. 그렇다고 해도 공생을 외면하는 건 정당한 일일까. 무조건 몸집을 키우고 불리는 게 최선일까. 그래서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것일까. 되려 양극화의 최극단을 맛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양 끝에서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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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순간들이, 삶을 다른 방향으로 놓아둘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번번이 그것들을 그냥 흘려보냈다. 스스로에게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하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자신을 막아서기만 했다.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 그럼에도 아주 작은 것 하나쯤은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두 가지 마음이 들끓는 동안 그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 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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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인 상황은 끝내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인간이 인간답길 원한다면 최소한의 장치가 사회에 마련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걸맞게 미쳐가는 우리들. 남자라고 예외였을까. 기회가 주어져도 끝내져버릴 수 없었던 그의 선택은 진정 어떤 일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못난 미련이었을까. 마지막 그의 선택에 돌을 던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공평함과 공정함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우린 과연 맞는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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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참 재밌게 봤습니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f******g | 2019.12.3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책 펼치고 하루만에 다 봤습니다. 글이 진짜 술술 읽히고, 킬링타임용으로 읽는 느낌은 아니지만 굴직굴직하게 나오는 명대사들이 있는거 같습니다.다 읽고나서 제가 이렇게 많은 하이라이트를 쳐놨는지 놀랬습니다. 오랜만에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가족과 엉켜있는 한 남자의 감정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의 엮이는 감정들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본사, 그리고 일을 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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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펼치고 하루만에 다 봤습니다.
글이 진짜 술술 읽히고, 킬링타임용으로 읽는 느낌은 아니지만 굴직굴직하게 나오는 명대사들이 있는거 같습니다.
다 읽고나서 제가 이렇게 많은 하이라이트를 쳐놨는지 놀랬습니다.
오랜만에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가족과 엉켜있는 한 남자의 감정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의 엮이는 감정들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본사, 그리고 일을 하고 있지만 소속에 대한 의미들
생각하지도 못했고, 생각해볼법한 소재들을 잘 건드렸고 이야기로 잘 스며들게 한거 같습니다.

이 후로 김혜진 작가님의 글들을 기다리고 있을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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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9번이라니...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l*****g | 2019.12.1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9번의 일.. 제목을 보고나서,  난.. 아홉 번의 일 을 생각했다. 9가지 일인가?  아니었다.  주인공이 회사 내에서 저성과자로 낙인찍혀, 그를 내보내기 위해 여기저기 발령을 내면서 이야기 마지막의 발령지에서 이름이 아닌 숫자로 불리는 곳.. 그곳에서 그는 9번이었던 것이다. 회사, 일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주인공은 돈이나 생을 위해
리뷰제목

9번의 일..

제목을 보고나서,  난.. 아홉 번의 일 을 생각했다.

9가지 일인가?  아니었다.

 

주인공이 회사 내에서 저성과자로 낙인찍혀, 그를 내보내기 위해

여기저기 발령을 내면서 이야기 마지막의 발령지에서 이름이 아닌 숫자로 불리는 곳..

그곳에서 그는 9번이었던 것이다.

회사, 일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되었다.

주인공은 돈이나 생을 위해 마지못해 하는 그런 의미의 일은 아니었던거 같다.

 

이리저리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있던 곳에서 사람들이 회사 험담을 하자

여태까지 나를 이렇게 보듬어준 회사를 같이 욕한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해

그 자리를 불편해했던 주인공의 생각이..

나로 하여금 무언가로 띵 맞은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내가 그의 상황들에 처했었다면 난 어땠을까.

난 한두번은 그 곳에서 적응해보려 노력했을 수도 있을거 같긴하다

하지만 그처럼 그렇게 오랜동안은 힘들었겠지.. 금방 포기했을것이다.

나를 그렇게 내 몬 회사를 증오하며 떠나가고 내가 행복해질 어떤 길을 찾아갔을 것이다.

 

마지막에 9번도 자기가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물음을 던지며 마무리 된다.

과연 어떻게 했어야 맞는 것일까...

나의 일, 나의 직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겠다.

적어도 우리 회사는.. 날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대해주니 감사해야할까...

 

그냥 먹먹하고 씁쓸한 기분만 남았다.

작가님의 작품 두개를 읽었는데.. 두 개 다 그랬다.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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