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한 작품이었다. 이렇게 마음을 울렸던 작품은 너무 오랜만이다. 책을 덮고도 울림이 한동안 가시지 않아서 이 말을 먼저 할 수 밖에 없었다.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그 완성도를 유려하고도 완벽한 번역이 도와줬다고 생각한다.
폴란드의 사회주의 체제를 배경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담았다. 책 소개를 보면 이 책을 퀴어 로맨스 소설이라는 장르로 구분해주고 있다. 전혀 모른 채 단순히 표지의 매력에 꽂혀서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폴란드의 억압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그와 똑같이 어둠속에서 헤엄치는 듯한 희망없고 쓸쓸한 사랑이야기에 마음이 시렸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심경과 심리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도 탁월했다.
이것 또한 '사랑'이다. 대상이 누구이건 느끼는 마음이 사랑이라면 그 관계는 틀림없는 사랑인 것이다. 다만 이 사랑이 불안정한 것은 주변의 인정과 사회적 합의보다도 오로지 둘만의 신뢰와 마음이 기반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과 같을 것이다. 눈을 감고 물 속에서 헤어치는 책 제목 그대로 '어둠 속에서 헤엄치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 이 슬프디 슬픈 사랑을 이렇게 아름답고도 쓸쓸함으로 그려준 이 책이 내게 준 충격과 전율은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그저 완벽했다.
푸른숲 출판사에서 나온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작가님의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리뷰입니다. 처음에 책을 받았는데 책에 기스가 너무 심해서 교환 받았었어요~다시 받은 책은 깨끗하더라구요~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재미있게 봤는데 사회주의 폴란드를 배경으로 한 콜바넴을 상상할 수 있다기에 그 문구에 홀린듯 구매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다. 추천한다.
우리는 겁도 없이 자유롭게,
찬란한 어둠에 파묻힌 채 헤엄쳤다.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루드비크는 망명 온 뉴욕에서 자신의 조국 폴란드의 ‘사회주의 공화국 계엄령’ 뉴스를 들으며 야누시를 떠올린다. 그리고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시작으로 야누시에게 못다한 말을 써 내려간다.
야누시와 루드비크는 졸업을 앞둔 대학생 때 농촌활동에서 만나게 된다. 루드비크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고 우연히밤 산책길 강가에서 수영하고 있는 야누시를 만나 친해지게 된다. 당시 금서였던 제임스 볼드윈의 ‘조반니의 방’을 읽으며 둘만의 비밀을 만들어가고 여행을 떠나게 된다.
시대에 반대에 무릅쓰고 금서인 ‘조반니의 방’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지만 결국 당시 체제에 대한 이견으로둘은 어긋난다.
누가 옳다고 할 수도 없다. 서로의 성장환경도, 경험도 달랐고 훗날 이 이야기를 비롯해 과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을후회하니.
둘만 떠났던 여행지에서, 아무도 없는 그 호숫가에서 둘은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헤엄치고, ‘조반니의 방’을 읽으며, 서로에게 사랑을 속산인다. 그 곳에서는 어떠한 금지 될 것도 없었으며 그저 둘을 향한 자유만이 존재했다.
퀴어소설이라고는 하나 남녀사랑과 다를 것 없는 사랑이야기이다.
다양한 사랑의 형태 중 하나이며 찬란하고 애틋하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자유가 당연함이 아님을,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루어졌음을.
누군가들의 용기와 노력으로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기적, 자기 자신으로 성장한다는 건 그저 이기적인 것이다. p33
-내가 유달리 가깝게 느껴졌고, 길동무라고는 우리를 내려다 보는 하늘밖에는 없이 너를 온전히 독차지하게 되어 기뻤다. p70
-너는 내거였다. 중요한 것은 오직 이것뿐이었음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다른 것들은 애초부터 실족하지 않았던 것이다. P241
이 소설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는 1980년대 초반 폴란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무렵 폴란드는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이루고 있었으며 구 소련의 연방국으로 전락해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소련에 의해 강제 병합된 체제다. 미소의 극한 냉전 대립으로 소련의 경제력이 미국에 압도적으로 뒤지면서 소련의 경제공동체 붕괴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폴란드에서는 국가 배급제인 식료품 및 생필품 부족으로 시위가 일어나자 1981년 12월 13일 게엄령이 선포된다. 소설은 게임령이 선포되기 일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오늘 아침, 12월 13일부로 사회주의 공화국에 계엄령이 선포되어씃ㅂ니다.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는 민주와 운동권에서 몇 주간 전개한 파업과 데모는 물론, 공산권 사상 최초의 독립 노조인 솔리다르노시치...... 의 혜성과 같은 세력 확장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됩니다. 폴란드 정부 측은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극단적인 조치를 연이어 공표했습니다. 이에 초중고교와 대학교가 폐쇄되고 국경이 봉쇄되었으며, 시민들에게는 야간통행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p. 10)
사회주의 체제하의 폴란드는 늘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해 소련에 의한 공급과 지원에 의존할 정도로 국가 경제가 몰락해갈 무렵이어서 국민경제는 더할 나위 없이 어려운 때이기도 하다. 이를 배경으로 한 퀴어 로맨스를 다룬 소설이라니 상상하기 어려웠으나 작품 전반에 깔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에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청년 루드비크는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농촌활동에 참가했다가 눈을 뗄 수 없는 청년 야누시를 만난다. 그리고 누군가를 갈망해본 이라면 알고 있을 그 익숙한 감정에 휩싸인다. 우연히 강가에서 만나 친해진 루드비크와 야누시는 농촌활동이 끝나고 둘만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꽉 막힌 사회와 그들을 옭아맨 굴레에서 벗어나 몇 주 동안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한껏 자유와 여유를 즐긴 두 사람이 돌아온 바르샤바는 떠나기 전과 같았다. 루드비크와 야누시는 억압 속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마음을 눈치챈다. 루드비크는 박사과정 진학이 좌절될 위기에 놓이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다. 반면 야누시는 다른 이가 내민 손을 잡는다.
소설은 지금 미국 뉴욕에 있는 ‘나’인 루드비크가 지난 날의 연인이자 사랑이었던 ‘너’ 야누시에게 마음속으로 편지글을 읊조리듯 나아간다. 작품 전반에 아련하고도 우수 어린 분위기가 깔려 있으며, 두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로운 자연 속에서 즐기는 모습은 여행 후에 두 사람을 맞이하는 처참한 사회주의 바르샤바의 일상과 대비를 이루어 더욱 애처롭고 안타깝다.
자연 속 빛나는 호숫가에서 두 사람은 오직 서로를 갈망하지만, 회색빛 도시로 돌아온 이후에 두사람의 열망이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모습은 자연과 도시, 자유와 억압 사이의 색채를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결국 ‘나’와 ‘너’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갈망을 좇아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은 저자의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완전에 가까운 구성과 간결하고도 시적인 문체로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역설을 효과적으로 강조하고 있고, 몰입도를 높이도록 문장 이음새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유려하다.
줄거리는 대략 주인공인 한 소년이 또 다른 한 소년을 사랑하는 내용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퀴어소설'로서만 이 소설이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폴란드의 2차 세계대전 전후 시대상과 사회주의 체제와 그 시절 사람들의 고민이 너무 잘 드러나 있다. 독자가 이 소설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당시 공산주의 사회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는 관심이다.
때는 1981년 한 해 마지막달 추위에 휩싸인 폴란드에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소설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식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배급 줄을 선다. 독일령이었다가 폴란드가 된 마을도 있고, 폴란드였는데 러시아가 된 마을도 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이리 저리 흩어졌다. 주인공인 루드비크는 9살 때 유대인 소년을 좋아했지만, 그 친구가 이스라엘로 떠나버린 경험이 있다. 남자아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시기가 그때쯤이다. 이후 대학 마지막학기 때 강제로 노역해야 하는 노동봉사에서 야누시를 만난다. 좋아하게 되고, 같이 성을 즐기는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은 호숫가에서 수영을 하고 둘만의 밀회의 시간을 갖는다.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으로 내 목을 어루만지기 시작하자 급박한 숨결이 얼굴에 와 닿았다. 내 심장은 아예 가슴을 뚫고 나오기 직전이었다. 다급하면서도 능숙한 손놀림으로 그가 내 바지 혁대를 끄르고 꺼낸 내 OO은 낯선 손가락과 여름 공기의 감촉에 반응했다. 그는 무릎을 꿇어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따스한 동굴 같은 입으로 나를 감쌌다."(p. 49)
서로 사랑하게된 야누시와 루드비크는 여러 가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의견이 안맞기도 한다. 체제 안에서 성공하고 싶은 야누시, 남들에게 이성애자로 보이기로 결심한다. 그 안에 결혼도 포함 되어 있다. 루드비크는 할머니가 들려준 서방 세계의 라디오처럼 동성애자인 '나'를 폴란드에 두는 것보다는 떠나고 싶어하는 쪽이다.
주인공이 여권을 얻을 무렵 다방면으로 감시하는 사회주의 체제의 정보력에 놀랐다. 이후 많은 관계의 전환점이 되는 주말파티(양귀비 줄기로 끓인 마녀스프)에서 그 방탕함의 진면목에 크게 놀랐다. 억압된 자유의 분출일까. 차마 옮기지는 못하고 설명만 남긴다. 중반까지는 잔잔하면서 큰 사건 없이 흐르다가 마지막에 감정의 폭발들이 많이 그려져서 소설 후반부가 더 재미있는 느낌이다. 루드비크의 고민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결국은 여권을 얻기 위해 굴종하는 모습엔 처연한 삶을 생각하며 안타깝다.
소설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침울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한 사랑의 나날들엔 폴란드가 낳은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피아노 곡이 흐르는 듯 아름답고 유려하다. 마치 잔잔한 호수를 연상케하고 호수에 내리쬐는 햇빛이 반짝거리며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난날을 회상하는 주인공의 생생한 기억은 독자의 상상력이 더해져 사랑으로 충만한 호숫가의 연인의 속삭임처럼 신비스럽고 영롱하다. 회색빛 도시로 돌아온 이후의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되고 이런 모습들은 자연과 도시, 자유와 억압 등으로 대비를 이루면서 갈등은 높아진다. 저자의 글솜씨가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상징과 은유인데도 무척 자연스럽고 상징적인지, 은유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글 속에 녹아든다. 이런 상징과 은유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강렬하게 표현되고 있다. '어둠속에서 헤엄친다'는 자체가 사회주의 마지막의 모습에서 보이는 경제난, 그에 따른 시민의 봉기를 뜻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극도로 제한되는 자유 의지에 반한 억압 때문에 살기 위한 발버둥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또 헤엄이라는 몸짓은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동작으로 본다면 국가 체제의 전복도 예견할 수도 있다.
저자 : 토마시 예드로프스키
폴란드계 부모님 아래 독일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폴란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거주한 경험 덕분에 다섯 개 언어에 능하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파리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폴란드의 바르샤바와 영국을 오가다가 지금은 프랑스에 살고 있다. 영어로 쓴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는 그의 첫 장편소설이다.
역자 : 백지민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학과 및 영어통번역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번역과를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는 토마스 예드로프스키의 데뷔작이라고 해요.
첫 작품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자전적인 내용을 포함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가끔은 자신의 인생이 소설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누구든지 가능했다면 썼을 거예요. 소설 만큼 멋진 고백은 없으니까.
이 소설은 프롤로그의 한 문장으로 모든 걸 말해주는 것 같아요.
"나는 너를 생각한다." (9p)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너'를 떠올리는 '나'에 관한 이야기예요.
주인공 '나' 루드비크는 지난 날의 연인이었던 '너' 야누시에게 마음의 편지를 쓰듯이 말하고 있어요.
'나'는 지금 폴란드를 떠나 미국에 살고 있으며, 책꽂이에서《조반니의 방》을 꺼내어 그 해진 표지를 손가락으로 쓸어보며 이 책장을 스쳤던 모든 손길을 생각하고 있어요.
'너'를 추억할 수 있는 이 한 권의 책은 해지고 바래졌지만 '너'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는 걸.
마치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은 것처럼 '나'는 그 책에서 '너'를 발견했고, 쿵쿵대는 심장이 증명하듯이 '너'에 대한 마음을 전하고 있어요.
참으로 이상한 것 같아요.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는데, 그냥 그 마음이 느껴져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다르지 않으니까요.
폴란드계 동성애자 작가 토마시 예드로프스키의 데뷔작이자 가장 놀라운 동시대의 퀴어 소설이라는 책 소개가 관심을 끄는 요인이었지만 대단한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막상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나'에게 점점 빠져들면서 한 인간의 삶이 보였어요. 청춘, 젊음, 사랑, 야망, 자유, 용기...
사실 1980년대 사회주의 체제인 폴란드의 모습은 낯설지만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과거 그때의 선택은 옳았을까요, 그건 알 수 없어요. 중요한 건 주인공이 사랑했던 그 감정만큼은 진실했다는 것. 다시금 심장을 뛰게 만드는 그 감정을 어떻게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지만 그 얼굴들은 하나 같이 다 아름다운 것 같아요. 다만 제목처럼 쉽지 않은 상황이 있을 뿐인 거죠.
주인공은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고통받는 건 아니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몹시 따끔거렸어요.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사람일지라도 사랑의 기억을 떠올린다면 그 고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사랑은, 뜨거운 토스트 위에 놓인 버터처럼 스스르 녹아드는 감정이라 피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알 것 같아요.
내재한 공포와 욕망이 쌓아 올린 수치심이 묵직하고도 생생하게 실체화되었다.
그날 밤 나는 어둠 속에서 베니에크 위쪽 침대에 누워 이 수치심을 뜯어보려 애썼다.
그것은 새로 자라난 장기와 같아, 기괴하고도 펄떡이는 것이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24p)
우리는 겁도 없이 자유롭게,
찬란한 어둠에 파묻힌 채
헤엄쳤다.
폴란드 출신 작가 토마시 예드로프스키의 데뷔 소설 "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 는 시작은 매우 아름다웠지만 비극적으로 끝나버린 두 청년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동시에 1980년 공산주의 치하에 있던 폴란드의 정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폴란드라는 나라와 국민들이 겪어야 했던 불안과 긴장은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이어진다. 어쩌면 시대적 아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 주인공 루드비크의 삶에 흘러들어갔고 그는 마치 아팠던 과거를 회고하듯 글을 써 내려간다.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던 소용돌이 속에서 운명과도 같았던 그들의 사랑....
너는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고
허리춤까지밖에 오지 않는 물속에 섰다.
이 소설은 주인공 루드비크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이런 스타일을 통해서, 주인공이 소년 시절에 느꼈던 순수했던 첫사랑 그리고 청년 시절에 꽃피웠던 사랑을 추억하는 식으로 서술을 이끌고 있다. 매혹적이고도 시적인 표현과 감수성을 이용하여, 소설은 막 사랑을 시작할 때 누군가가 느낄 수 있는 그 짜릿함과 아득함을 독자에게 선사해 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책 "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 가 단순히 연인 간의 사랑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그리고 정치적 혼란 속에서 마냥 개인적인 행복만을 추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비극을 다루고 있어서 더욱더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짧지만 찬란했던 루드비크와 야누시의 사랑, 하지만 정치적 억압 속에서, 그리고 이념적인 갈등 속에서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
이 책 "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에는 줄곧 하나의 책이 등장한다.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 금지된 서적 " 인 " 조반니의 방 "이라는 것이다. 주인공 루드비크가 게이바에 갔다가 우연히 볼드윈이라는 미국 작가가 쓴 이 책에 대해서 우연히 알게 되고 손에 넣은 책인데, 대학 졸업을 위해서 농활에 참여하게 된 루드비크는, 이 책을 계기로 야누시와 대화를 하게 된다. 사실 책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첫눈에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루드비크는 자신과 야누시의 성적 정체성과 금지된 서적이 들통날 위험을 각오하고 그에게 책을 빌려준다.
" 넓은 어깨와 등의 잔근육이 재빠르고도 자신 있는 크롤 영법으로 움직였고,
물에 잠긴 머리는 팔을 두어 번 저을 때마다 공기를 들이마시러 올라왔다. (...)
태양을 등지고 있던 나는 물 위로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형체는 이 길쭉한 응달을 헤엄쳐 지나자마자 멈춰서 고개를 들었다. "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그들은 곧장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로맨스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삐거덕거리게 된다. 그것은 바로 루드비크와 야누시가 가진 정치적 철학적 관점의 큰 차이 때문이었다. 동성연애자였던 제임스 볼드윈의 책을 탐독하고 미국 문화에 깊이 빠져들어가게 되면서 비밀리에 공산주의에 회의를 가지게 되는 루드비크, 반면 야누시는 언론 통제국에 들어가 무엇을 출판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자리까지 차지한다. 이런 종류의 이념적 대립은 그들을 더욱더 갈라놓게 되는데...
이 책은 정말 아름답다. 저자가 표현하는 관능과 사랑에 대한 솔직함은 참으로 매혹적이라고 본다. 루드비크와 야누시는 정말 역동적이면서도 생생하게 묘사되는 캐릭터들이다. 공산주의 치하라는 억압적인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을 때로는 깊이 있고 뜨겁게 열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말 마음에 와닿았다. 그러나 결국 포기할 수 없었던 정치적 이념이 이 둘을 갈라놓았을 땐 정말 안타깝기도 했다. 만약에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던 당시가 폴란드에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절이 아니었더라면, 좀 더 행복한 개인 시절을 만끽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소용돌이 같던 나라 속에서 또한 격정적인 젊은 시절을 보낸 저자의 실제 경험을 토로하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매우 예민하고 감성적이고 불안한 젊은이들의 격정적 사랑과 좌절 그리고 파괴적이고 원초적인 본능이 마치 예술 영화처럼 그려진 소설 [ 어둠 속에서 헤엄치기 ]
"우리는 그 버스에 함께 있었다. 1980년 바르샤바에서."
루드비크와 야누시가 처음만난 1980년의 폴란드 바르샤바. 이 시기와 배경이 중요하다. 소설은 구글 지도를 열어놓고 그 지명을 찾아 풍경을 실제로 보고 싶을 만큼. 폴란드 곳곳의 풍경을 집요하리만치 담아낸다. 이 시기의 폴란드는 루드비크와 야누시 다음의 또다른 주인공이나 다름 없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미 언어를 초월한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곳에서, 나도 그곳에서, 바투 호흡하고 있었다."
루드비크와 야누시는 첫 눈에 서로를 알아보고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지만. 시간이 흐르며 위태로운 관계를 이어갈수록 서로 너무나 다른 사람인 것을 알게 된다. 폴란드는 나치 점령에서 벗어나 독립국가가 되었으나 2차 대전 후 '철의 장막'이 내리자 소련의 지배권에 편입되어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체제의 부조리와 모순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던 루드비크와 당에 충성심을 보여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난 가정에서 자란 야누시는 결코 같은 생각에 도달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헤엄쳐야 했던 어둠은 1980년대의 사회주의 폴란드 그 자체였다.
멜로드라마에 충실하면서도 당시 폴란드의 역사와 현실을 그린듯이 생생히 묘사하고 있어 남다른 깊이가 있는 작품이었다.
"여름이 한창이던 그때, 시간은 멈춰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영영 시간이 다시 흘러가지 않았으면 싶었다. 핑그르르 돌고 또 돌기만 하면서 영영 멈추지는 않는 주사위처럼."
* 본문에 묘사된 지역과 건물에 대한 설명을 각주로 친절히 설명해주어서 좋았다.
* 다만 <적일백천 / 군자연하는 / 실그러진 / 앙바틈하고> 같은 다소 예스러운 번역은 극중 20대인 화자에게 어울리지 않아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