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 ‘열한 계단’의 감동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저자의 새로운 책을 집어들었다.
‘만남’의 의미가 주는 깊이
시나 수필코너에 꽃여 있어야 할 것 같은 제목.
이 책에서의 '만남'은 詩적인 문학적인,혹은 현실적인 이별과 만남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우리, 그리고 세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과 사색.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살아가는 우리들.
죽음이란 것은 소멸과 끝이 아닌, 영원한 시간에서 시간으로 우주에서 우주로 이어지는 발생과 소멸의 반복이고,
우리 모두는 개인의 의식 안에서만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여행하는 여행자이며,
희미한 관계의 끈을 이어가며 현실을 같이 살아가는 우리는,
무한의 시간이 흘러 먼 훗날 어느 곳에선가 반가이 얼굴을 마주하며 운명처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초반, 타인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저자의 실제 삶을 끄집어 내어 수필을 쓰듯이 들려준다.
그러나,
책의 이야기가 이어져 가며
저자의 깊은 인문학적 사고의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나와 세계, 존재, 삶과 죽음 전반에 걸친 깊은 철학적 질문과 삶과 죽음의 의미에 빠져간다.
이책은 가볍게 읽는 수필이 아니다.
책을 덮고 나서 나의 내면에 깊이 침잠해 들어가 나와 타인, 나아가 세계의 존재와 인식의 문제에 대해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는 어려운 숙제들을 던져준다.
어느덧 나이가 이만큼 들어 ‘先체험’이 쌓여있어, 저자가 던져주는 질문의 의미가 쏙쏙 빨려들어와 때론 서글품과 허무함을, 때론 자각과 성찰에 대한 기쁨을 준다.
언뜻 보면 책은 평범해 보이고 가벼워 보임에 비해, 그안의 내용은 가볍게 손에 들수 없는 무거움을 준다.
첫 번째 주제 ‘타인’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타인. 그 실체에 대한 의심과 관계의 어려움을 고백하고 그것에 대한 탐구결과를 소년병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그녀의 오두막을 찾았던 소년병이 그녀가 사랑하지 않기에 떠난다며, 전장으로 가서 죽음을 앞두고 그녀를 그리워하다 검고 깊은 그림자와 거래를 한다.
그녀에게 가지 못하지만 그녀를 데려오되, 그녀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꿈은 깨어지고 영혼을 거두겠다고...
소년병은 그녀의 오두막이 있던 흔적없는 언덕에서 오두막을 짓고, 무수히 많은 세월이 지나 한 소녀의 방문을 맞이한다.
시간이 흘러 예전의 그와 같이 사랑하지 않기에 떠나겠다는 소녀를 끌어안은 그날밤 그녀의 입에서 내뱉어진 말. 소녀는 그녀가 되고 그녀는 잠이깨어 지난밤 꿈을 기분좋게 떠올린다.
이꿈은 소년병의 꿈인가? 그녀의 꿈인가?
소년병이야기는 타인과의 관계, 연애, 이별, 그 흔적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언젠간 만나’게 될거라는 것!
두 번째 주제 ‘세계’
내 존재 외부의 타인에서 나아가 세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인생, 노력, 우리가 사는 세계,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에서 녹이고 버무려서 들려준다.
“자아의 내면세계에서 시간은 우리의 상식처럼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어떤이는 현재에 살지만 다른이는 과거에 살고, 또 다른 이는 미래에 산다“
“삶을 움켜쥐고 싶을 때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만다라를 생각한다”
세 번째 주제 ‘도구’
‘나’와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타인’, ‘세계’와 이어주는 도구로서의 ‘통증’
통증은 직접성과 간접성에 따라 그 관계의 거리가 정해진다.
그러나 거리가 멀다고 관계가 단절된 것은 아니다.
나의 ‘통증’과 저만치 멀리 있는 세계의 ‘통증’은 통증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엮어지고 다듬어져 서로에게 전달된다.
통증은 이야기이고 이야기는 세계와 나를 이어주는 도구가 된다.
막연히 따르는 ‘믿음’에 대한 진실을 보고자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의심’의 당위성
이유도 모른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관례와 관습을 답습하며 심리적 위안을 얻기보다 이면의 진실을 보고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삶속에 무수히 섞여있는 진리안의 거짓 또는 거짓 속의 진리에 대해 ‘의심’해야 하는 이유를 ‘낡은 벤치를 지키는 두명의 군인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의심하지 않고 들춰보지 않을 때 세상은 조용하고 평온한 듯 보이지만, 우리는 자신에게 내재한 가능성을 끝내 보지 못하고, 자기 세계의 주인이 될 권리를 박탈당하기 때문이다.
도구로서의 ‘언어’의 두가지 방향
언어의 양적증가는 '책'이되고, 양적감소는 '시'가 된다.
언어의 불완전성이라는 태생적 한계로 온전한 전달은 불가능 하지만,
저자의 생각이 그대로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각에 개입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각자의 생각과 의미부여 그것이 열린장이 되어 대화는 나누는 것이 된다.
그렇게 ‘언어’는 관계를 이어주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한다.
네 번째 마지막 주제 ‘의미’
여기서는 ‘죽음’과 ‘영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불편해 하는, 그래서 애써 필연적 도래를 망각하고 외면하고자 하는 죽음은
단순한 끝과 소멸이 아닌, 무한한 발생과 소멸의 반복되는 과정에서 나와 타자, 나와 세계가 어떻게 관계 맺고 의미를 갖는지 드러내주는 의미를 갖는다.
“밤이 저무는건 괜찮으나 날이 저무는 것이 아쉬울 뿐이라고,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늙어가는 시간이 쓸쓸할까 걱정될 뿐”이라며 속삭이다가
“날이 저무는 것도, 노을이 지는 것도, 강물이 손가락 사이를 힘없이 빠져나가는 것도......모든 것을 하나둘 잃어가는 것도 생각보다 가치있고 의미있는 과정일지 모른다”라고
저자의 깊은 사고는 두려운 삶에서 ‘죽음’으로의 과정에 가치와 의미가 있을거라는 기대를 제시하지만,
저자 표현에 따른 삶의 ‘先체험’이 어느덧 꽤 쌓여 이제 죽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내가 받아 들일 수 있는건 쓸쓸함과 허탈감 까지인가 보다.
한편, 삶의 지향하는 바를 팔라우의 해파리로 환생하길 원하는 이유로 들려준다.
“누구도 공격하지 않고 누구도 위협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찬란한 내면세계 속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격정적으로 살아내고 싶었기에” 라며...
다시 ‘나’로 돌아와
마무리는 다시 ‘나’로 돌아와 ‘나는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던진다.
자아의 세계는 물리적 대상에 한정되지 않고, ‘나’의 세계는 물리적 대상을 한참이나 뛰어 넘는다.
모든 존재는 충분하고 완벽한 세계를 내면에 담고 있다.
그런 우리는 발생과 소멸, 즉 삶과 죽음을 영원의 시공간에 반복하며 먼 훗날 어느 곳에서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오랜만에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의식의 심연 저 깊숙한 곳에서 커다란 울림이 전해온다.
이번에 리뷰할 책은 웨일북 출판사에서 출간한
채사장 작가님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입니다.
채사장님 책 중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를 너무 재밌게 봐서 또 다른 책이 없나 하고 읽어보게 되었어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참 살아가며 여러 인연들과 어우러 지내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조금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된 도움이 된 책이네요.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책 제목이 정말 잘뽑혔다 생각해요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 채사장
채사장 님의 책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2.0. 권을 읽고 그의 다른 책을 읽고 싶어 찾다가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라는 책의 제목에 마음이 가서 구입하게 된 책이다.
지대넓얕 1.2. 권은 작가의 폭넓은 지식이 놀라웠고 제일 나중에 쓴 지대넓얕 0 권은 작가의 깊은 내면의 세계가 놀라웠다.
우리는 모두 각자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안고 살아가면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에게 이런 무게가 지워진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뜻하지 않게 던져진 이 세계와, 이곳에서 우연처럼 만나 손잡은 타인들로부터 우리는 천천히 해답에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타인은 닿을 수 없는 무엇이 아니라 나를 기다려준 존재이고, 타인으로 가득찬 이 세계가 사실은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었음을...
이 책은 타인-세계-도구-의미 의 단계를 설명하는 40개의 이야기는 나오는데 그 이야기는 우리와 세계 그리고 의미의 관계를 풀어낸다. 만남이란 놀라운 사건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넘어선다.
그것은 차라리 세계와 세계의 충돌에 가깝다. 너를 안다는 것은 나의 둥근 원 안으로 너의 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며,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면 그것 밖으로 걸어나가서, 그것을 벗어난 뒤, 다른 것을 둘러봐야 한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궁극의 지식도 마찬가지이다.
각자가 자신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여 마지막에 얻게 될 삶에 대한 이해, 그 궁극의 지식은 몇몇의 책에 단번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오해와 노년의 오만과 무수한 시행착오와 상실과 고통과 그 속에서도 기어코 피어나는 작은 행복과 사랑하는 이의 부드러운 손과 깊은 눈동자와 내면의 고요, 그것들 속에서 우리는 삼각형과 사각형을 얻을 것이고, 마침내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 삶이라는 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인생 전체에 흩뿌려진 모든 지식은 내 안에서 언젠가 만난다.
화장실 세면대를 붙잡고 거울 속에서 울고 있는 자신을 대면한 적이 있는가?
그 불쌍한 사람은 고독하고 적막한 공간에 던져져 혼자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나라는 존재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다.
관계는 우리를 무너뜨리지만 한편 우리를 기어이 일으켜 세운다.
비일상적인 때가 되면 젊은이에게도 내면의 목소리는 크게 들려온다.
느슨하던 정신이 깨어나는 때, 오랜 시간 정성들이고 기대하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나에게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허탈함과 다급함이 나를 엄습하는 때, 그래서 결국 깊은 고독 속으로 홀로 침잠해야만 하는 때가 도래하면 우리는 내면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듣게 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너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존재가 궁극적으로 숙고해야 하는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세계란 무엇인가.
세계는 빛이고 빛은 나의 특성이다.
'세계'와 '자아'와 '빛'은 동일한 현상의 다른 표현이다.
내 앞에 펼쳐진 빛으로서의 세계가 곧 나 자신이라는 진실.
이 심오한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서구 철학은 '현상現象'이라 부르고, 고대 인도에서는 이를 '마야Maya'라고 부르며, 불교에서는 이를 '색色'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이 세계의 전부라 생각하고 특히 자기 눈에 보이는 세계가 실제 세계의 보편적 기준이라고 믿지만, 모든 보는 존재는 충분하고 완벽한 세계를 자기 내면으로 갖고 있고, 그 내면의 빛은 그 존재를 부족함 없이 사로잡는다.
이제 우리가 자기 안에 우주를 담고 있는 영원한 존재임을 안다.
당신이 그리고 내가 바로 그것임을 안다. '네가 그것이다.' 'Tat Tvam Asi'
모든 보는 존재는 충분하고 완벽한 세계를 자기 내면으로 갖고 있고 그 내면의 빛은 그 존재를 부족함 없이 사로잡는다.
우리의 신체가 죽음을 맞이하고 뇌는 정지하며 의식은 어둠 속에 침잠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길고도 긴 시간의 가능성 안에서 우리의 의식이 다시 발현할 조건은 충분히 반복될 것이고, 그렇게 이 우주의 어딘가에서 나와 당신의 의식은 또 다시 발현될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다시 발현되어 이세상에 온 존재이고 그들은 이곳을 여행하는 여행자인 것이다.
채사장 님은 다시 태어난다면 필리핀 동남쪽에 위치한 팔라우 섬에 자리한 해파리 호수에 사는 해파리로 태어나 그들의 내면의 세계를 알고 싶다고 했다.
'누구도 공격하지 않고, 누구도 위협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찬란한 내면 세계 속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격정적으로 살아내고 싶기에.'
이 책은 나와 연결된 모든 존재는 내면에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하나의 우주(별)임을 깨우쳐 주고 내가 가지고 태어난 삶의 무게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언젠가 어느 곳에서 당신과 만나 이야기 나누게 되기를...
-채사장
리틀도서관 매주한권 휴먼터치 https://youtu.be/EO640GbK_hY
제목만 봐서는 달달한 연인들의 이야기 일 것도 같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듯한 예감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책은 아주 쉽게 읽힙니다. 책장이 수월하게 넘어갑니다. 후딱후딱 넘기다보니 오히려 정독하기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책을 스스로 철학적 수필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책은 소설과 시를 넘나들며 뭔가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했습니다. 저자 자신의 깨우친 바를 쉬운 언어로 설명하려는 그 모습에서 대중을 향한 애정이 감지되기도 했습니다.
책은 중반쯤에 이르러 와아 재미나다는 탄성이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디에선가부터 오리무중에 빠져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저자는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책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책읽기에 앞서 그와 관련된 체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고전이 어려운 이유를 밝히는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어를 따라가는 행위가 아니다. 책을 펴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체험이 필요하다. 우리가 앞서 체험한 경험이 책을 통해 정리되고 이해될 뿐이다. 이해의 앞에는 언제나 체험이 있다. 그 반대일 수는 없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삶 속에서 충분한 체험을 만들어왔다면 책은 놀랍게도 쉽게 읽힐 것이다.
저자가 겪은 체험을 하지 못함으로써 이해되지 않은 책의 내용은, 저의 배경지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가 일상의 체험과 ‘언젠가 만나게’ 되면 “아하, 책의 그 말이 바로 이거였구나”말할 날도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책에서 예전에 읽었던 내용이 지금의 현실 체험을 납득하는데 보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고전의 독해를 중점적으로 거론하다보니 독해에 도움이 되는 체험을 앞세웠습니다. 맞습니다. 책이 주인공이 된다면 체험이 전제되어야, 책을 이해하는 데에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이 주인공이 된다면 세상에서 혹은 사람에게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을 이해하는데 언젠가 예전에 읽었던 책이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독해와 체험은 서로가 서로에게 배경지식이 되어 독해는 체험을, 체험은 독해를 추동하는 역할을 하리라, 싶습니다.
독해와 체험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이 책은 ‘관계’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과,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우리 자신과도 친밀한 관계를 도모해야 합니다. 저자는 타인과 세계와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강연을 나서고 책을 출간합니다. 저자는관계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니라 내 곁의 사소한 사람들,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동료들이라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말해주었지만, 이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이해할 만큼 우리가 성숙했을 때, 그들은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두렵던 타인이 닿을 수 없는 무엇이 아니라 나를 기다려준 존재이고 타인으로 가득 찬 이 세계가 사실은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었음을.
이 책이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내 마음에 자리 잡은 관계의 꼬인 실타래를 풀어 타인을 만나고, 세계와 재회하기 위해.
저자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언어가 매개체가 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언어가 관계를 위한 필수적인 도구라는 사실을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관계에 대한 탐구로서 계획된 이 책에서 언어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의무에 가깝다. 그것은 언어가 자아의 고립을 넘어 외부의 타자에게 닿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과 글이 얼마나 오해의 소지가 많은지 대강이라도 그 한계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언어의 태생적 한계와 불합리성을 감수하고서라도 타인에게 닿고자 하는 것을.
언어의 불완전성, 언어의 태생적 한계, 어쩌면 이러한 부족함이 자유와 즐거움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책과 시를 읽는 이유,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즐겁게 하는 이유는 저자의 생각이 오롯이 나에게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에 개입하고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언어의 비좁은 통로는 열린 장이 된다. 저자와 독자는 그곳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각자 깊게 생각하며, 비로소 작품의 의미를 함께 부여한다.
저자는 마치 리틀도서관 책맛보기의 존재 이유를 대변하고 있는 듯합니다. 책맛보기 1주년에 걸맞은 안성맞춤 책을 고른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그런데 저자는 모든 관계는 통증을 유발한다고 합니다. 나와 나의 신체를 분리해서 설명하는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 보기로 합니다.
통증은 하나의 말이다. 신체가 나에게 건네는 말이다. 입이 없는 신체가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나에게 알리는 유일한 방법이 통증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증은 자아와 신체가 관계 맺고 있는 방식이고, 동시에 자아와 신체는 통증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나는 통증을 통해 비로소 내 신체의 내면을 보고, 신체는 통증을 통해 내면을 보는 나를 본다.
통증이 하나의 관계 방식이라면 내가 타자와 관계 맺는 방식도 넓은 의미에서의 통증인 것이다. 나와 나의 신체가 그러하듯, 나와 타인도 통증을 통해 관계를 맺고 통증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나는 통증을 통해 비로소 신체의 껍질 안쪽으로 펼쳐진 타인의 내면을 보고, 타인은 통증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보는 나를 본다. 그렇지 않았던가, 그와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은 모든 순간이 자극이고 통증이었다.
너와 나의 만남은 세계와 세계의 충돌에 가깝다. 너를 안다는 것은 나의 둥근 원 안으로 너의 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며,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저자의 이 정도 설명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버거운 부분도 있었었습니다. 저의 이해가 아직 가닿을 수 없었던 ‘의식’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을 옮겨봅니다.
내면의 의식을 자신의 신체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은 신체가 죽으면 나의 의식도 함께 소멸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사람은 의식이라는 현상이 꺼지거나 소멸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님을 쉽게 이해하게 된다.
자아의 내면세계는 죽음도, 소멸도, 단절도 경험하지 않는다. 나의 의식은 유연하게 연결되어 있고 단 한 번도 꺼지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의식과 독립해서 존재하는 세계나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은 지금 당신 눈앞에 펼쳐진 세계, 그리고 그것을 보는 자이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지금 내 눈앞에 세계를 마주하고 있다는 그 상황, 세계와 자아가 얽혀있는 이 관계가 바로 의식이다. 이 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뇌가 정지하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그렇다.
이 우주의 어딘가에서 나와 당신의 의식은 또 다시 발현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오늘 당신의 의식이 특정한 조건을 갖춰 발현되었듯이, 먼 이후의 어느 날도 당신의 의식은 특정한 조건 속에서 다시 발현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저자는 자아와 세계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의식이라는 용어가 신비하게 여겨지도록 합니다. 저자 자신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가 의식이라고 합니다. 의식에 대해 저자가 탐구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세계와의 관계 문제에서 지금까지 내가 도달한 잠정적인 결론은, 자아 밖에 외부세계가 존재하는지 매우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만약 외부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의 실체에는 결코 접근할 수 없다. 눈앞에 드러나는 세계는 내 마음에 의해 재구성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당신 앞에 펼쳐진 세계,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책장의 감촉과 적당한 소음과 익숙한 냄새, 이 모든 것은 세계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나의 감각기관을 통해 왜곡되고 재구성된 모습일 뿐이다. 나는 세계의 실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감각기관과 뇌가 그려주는 세계의 그림자를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모두 자폐아다. 모든 의식적 존재는 자신의 마음 안에 갇혀 산다. 이러한 결론은 엉뚱한 상상이 아니다. 서구의 관념론 철학뿐만 아니라 고대 인도인들의 중요한 결론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 세계가 자기 자신에 의해 재구성된 자아의 세계임을 지혜롭게 설명한다. 세계는 내 외부가 아니라 나의 내면에 있다.
세계는 자아라는 그릇 안에 담긴다. 세계는 자아와 독립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관에 의해 해석된 무엇이다. 나는 내가 해석한 세계에 갇혀 산다. 이러한 자아의 주관적 세계, 이 세계의 이름이 지평이다. 서양철학에서는 지평을 자아의 세계가 갖는 범위로 사용한다. 즉 지평은 나의 범위인 동시에 세계의 범위다. 우리는 각자의 지평에서 산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 속을 살아간다. 당신과 나는 서로 다른 세계를 걷고 있다.
하긴 그렇습니다. 타인은 그저 다채로운 존재의 하나입니다. 눈부신 햇살이나 퍼붓는 소낙비를 대하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아이의 천진한 미소, 꽃이 만발한 정원, 장엄한 대자연의 경관, 음악과 하나 된 듯 어우러진 춤 등을 바라보는 심경은 사람 저마다 다릅니다. 이는 세계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풍부한 다채로움 때문에 관계는 어김없이 통증이 되고 문제를 유발합니다. 저자는 자신의 해결책으로 믿음을 제시하며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이러한 관점, 이것이 내가 타인과의 관계를 어렵게 느끼는 근본적인 이유다.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타인에게 닿을 수 없다는 진실을 인정하고 외로워지거나, 타인에게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매번 좌절하거나.
나는 어차피 타인에게 닿지 못하고 타인은 어차피 나에게 닿지 못한다. 그렇다면 너는 왜 사람들을 만나고 말을 하고 글을 쓰는가. 그것은 내가 믿기 때문이다.
나처럼 자의식을 가진 타인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그에게 어느 정도나마 닿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존재하기를 바란다. 내 눈 앞에 드러나는 육체라는 껍질을 넘어 저 외부에 당신의 의식이 세계의 또 다른 관찰자가 실재하기를 바란다.
나의 언어가 당신에게 전해진다면 내가 느끼는 감정의 미묘함을 당신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타인과 나는 같을 수도 없고 같아야 될 이유도 없습니다. 무한한 세계와 다양한 타인을 일개 한 사람이 어찌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라는 사실만 인정해도 관계는 훨씬 너그러워질 것 같습니다. 내가 현재 아파하고 있는 이 상처는 타인이 나에게 준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상처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통증을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내가 만들어낸 내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치유에 가닿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 관조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이 키워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저자의 고매한 논지를 한순간에 저의 유치한 수준으로 이해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이해를 제대로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저자는 타인이나 세계의 문제는 곧 자신의 지평이 만든 문제일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그 문제들은 나의 지평이 달라진다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것들입니다.
저자는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죽음을 불러들입니다. 우리들의 지평을 달라지게 하는 데에는 죽음만한 것이 없을 듯합니다. 저자는 시간이 한정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지금 타인을 이해하고 관계 맺으라고 합니다. 사라지기 전에 이별을 맞기 전에 겁내지 말고 다가서서 관계를 맺으라고 다음과 같이 간곡하게 말합니다.
오늘날의 현대인이 죽음이라는 탐탁지 않은 대상과 마주해야 하는 이유,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끝과 소멸에 대해 말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와 타자, 나와 세계가 어떻게 관계 맺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죽음을 통해서야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내가 못내 아쉬운 것은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슬픔과 후회 속에서 안타까워하는 것은 지금의 당신이 하찮게 여기는 가족, 친구 나를 사랑해주던 이들이다. 나는 그때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나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지 못했고, 그의 맑은 눈동자를 마주하지 못했다. 행운처럼 주어진 맑은 계절에 함께 걷지 못했고 흐려지는 날이면 함께 울지 못했다.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잠시나마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아름답던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손을 잡고, 서로의 어깨에 기댈 것이다.
저자는 세속의 자신은 성공, 풍요, 만족, 승리, 부유함, 이런 것들을 원하지만 심연의 자신은 그런 것들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좋음 안에서 배울 것은 그리 많지도 극적이지도 않다고 합니다. 실패 빈곤 불만 좌절 가난함같은 나쁨이 우리의 영혼을 성숙시킬 가능성을 더 품고 있나 봅니다. 세상에 좋음만 있고 나쁨이 없다면 안 될 것도 같습니다. 나쁨을 기꺼이 수궁하며 껴안게 됩니다. 실패 빈곤 불만 좌절 가난함이 의미 있는 이유를 떠올리며 이만 책을 덮기로 합니다. 이번 책은 수필, 소설, 시를 담은 40가지 이야기로 방대한 생각거리를 던집니다. 아직 명쾌하게 이해가 와 닿지 않는 내용들은 훗날을 기약하기로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이 책은 관계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그 여정이 시작된다. 우리의 자아는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관념을 형성하고 이 관념은 세계를 해석하고 타인을 해석하는 주체가 된다. 혹은 자아는 타인의 입장에서 세계와 타인을 보는 객체가 되기도 한다. 채사장은 우리 인생의 여정 중에서 반드시 알아야 될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관계로부터 출발하고 관계야말로 자아와 세계, 자아와 타인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관계에 대해 탐구하기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언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언어가 자아의 고립을 넘어 외부의 타자에게 닿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 역시도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채사장은
언어의 한계는 언어생활을 한 지 한두 해가 아닌 우리에게 이제는 그리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우리는 말과 글이 얼마나 오해의 소지가 많은지 대강이라도 느끼고 있어서, 오해를 줄이기 위해 나름대로 의 노하우를 사용한다...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언어의 양을 늘리는 방향과 언어의 양을 줄이는 방향이다. 164 ~165쪽
나는 이 신박함에서 언어를 늘이고 줄인다는 표현에 전혀 감을 잠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책과 시라는 말에 아하!!! 완전 공감!!!이라는 탄성을 내질렀다. 우리는 책을 통해 작가와 만남을 갖는다. 그런데 사람마다 살아온 경험치가 다르다 보니 작가의 작품을 보고도 다양하게 해석하고 또 받아들인다. 작가는 이런 의도로 이야기를 펼친 것인데 반해 독자는 저런 의미로 자기 해석을 한다. 이것이 저자가 말한 자아와 타자의 만남 중 한 종류임을 알게 된다. 시는 어떤가? 우리는 함축적인 아주 짧은 글귀에도 감명을 받고, 공감을 한다.
그래서 저자가 말한 타인과의 관계 탐구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의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왜 우리는 타인을 알고 세계를 알아야 할까? 그는 터키에서 발굴된 세이킬로스의 짧은 글귀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1883년 터키의 아이딘 지방에서 원통형 비석이 발견되는데, 기원전 200년 무렵에 만들어진 노래 가사와 음을 연주할 수 있는 악보로 밝혀진다. 그리고 저자는 고대의 사람들과 현대의 사람들이 똑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 인간이라는 존재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입고 있는 것, 들고 다니는 것은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인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은 그대로구나, 가사를 보고 있으면 그런 거창한 생각에 빠져든다. 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살아 있는 동안, 빛나라.
그대여 결코 슬퍼하지 말라.
인생은 찰나와도 같고,
시간이 마지막을 청하게 되니. 219~220쪽
저자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자아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세계란 무엇인가란 새로운 질문으로 넘어간다. 그리고 세계는 빛으로 이뤄져 있고(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이유는 사실 광파 때문이긴 하다. 실질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인 사람은 코끼리의 모습을 전혀 상상해 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과학적으로는 태양광에서 방출되는 자외선, 적외선, 가시광선 등의 빛에 의해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건 사실이니까...)) 관조자인 나는 이 빛을 통해 나에게 받아들여지고 재해석 된 세계를 보게 된다.
저자가 말한
'나란 무엇인가? 그것은 관조자다. 그리고 관조자의 특성은 빛이다.'
라는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알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이 세계의 전부라 생각하고 특히 자기 눈에 보이는 세계가 실제 세계의 보편적 기준일 것이라고 믿지만, 세게는 그렇게 보편과 특수로 나눌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모든 보는 존재는 충분하고 완벽한 세계를 자기 내면으로 갖고 있고, 그 내면의 빛은 그 존재를 부족함 없이 사로잡는다. 241쪽
여러분들은 저자의 이런 견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내 삶의 물음에 (책 말미에는 철학적 개념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어서 그 깊은 뜻은 모르겠으나) 살짝 컨닝을 한 기분이다. 그리고 저자가 불교의 윤회를 언급함으로써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제목을 붙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꿈이라 표현한 부분도 윤회를 떠올리게 했다. 아무튼 우리는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직장을 가지면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부분적으로 잠시 그것이 안겨주는 풍족함과 기쁨을 누리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고통, 질투, 억압, 슬픔, 외로움 등에 시달리며 산다.
반복된 일상속에서 지친 영혼의 쉼을 원한다면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타자와 세상의 관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드니 말이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채사장. 웨일북. 인문에세이
'관계'
채사장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나와 관계 맺는 모든 것들에 관한 의미를 보편적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나누는 것이란 이런 것이겠지요.
누구나 갖고 있으나 소심한 채로 소리내어 궁금해할 수 없었던 나의 존재에 대한 물음, 두려움에 관한 물음, 너란 존재와 어긋나게 되는 이유에 대한 물음, 사랑의 가치에 대한 물음, 성공에 필요한 나의 결핍에 대한 물음, 등등......
궁금한 것들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은 들을 수 없고, 나의 시간은 흐르고 그렇게 어설프게 성장합니다.
어른이 된걸까요....신체적으로는 그런 것 같지만, 나의 생각의 크기는 어른이 맞을까요......
어른은 누굴까요...... 성숙한 마음이란 어떤 것이길래 나의 육체와 욕망과 소원과 맞물려 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잘 살고 있는건지 고민하게 만들며, 미래에 대해 더 큰 희망을 품게 만드는 걸까요......
이런 삶의 고민을 모두가 하고 있다는 동질감에 안도감이 들고 그런 감정 너머 관계를 중심으로 의식의 흐름을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재주가 없다면 누군가가 잘 정리하고 기록한 글들을 통해 나의 몸과 마음의 숱한 물음들을 채워나가지요. 그뿐만이 아니지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사유하는 관계를 통해 배워나가는 경험적 채움도 지대합니다. 이것이 나의 지식을 얻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모든 지식은 언젠가 만난다 _ 별에 대하여
"당신은 지식을 얻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확장되는 각 단계를 밟아나가게 됩니다.
타인 - 세계 - 도구 - 의미
40개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소년병 이야기와 만다라였어요.
인생의 긴 여행같은 삶 속에서 끝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 시작이 아닌 것 같은 돌고 도는 세계.
과거, 현재, 미래의 선형적 시간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정체성의 싸움인 것 같아요.
타인이 속해있는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나의 세계와 어떻게 공통분모를 가질 것인지.
불멸의 시간과 공간 흐름은 있을 것인지......
<우리가 언젠가 만난다>는 그런 의미에서 <지대넓얕 제로>편과 함께 가는 인문 에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의 귀결이 결국 나의 내면 속에 침잠하는 이별의 슬픔과 홀로 견뎌낸 고독으로 다져진 단단한 빛이 되기까지 내 의식의 전환이 반드시 이뤄져야하겠지요.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다시 조우한다면 그 세계는 또 어떤 세계로 바라봐야 할지 다시 원점에서 논하게 되겠지요.
쉽게 읽혔지만, 속 뜻 언어의 체득이 쉽지 않았던 40편의 짧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채사장 지음
웨일북
“나는 무엇인가?”
심리학을 공부하다보면, 아니 세상을 살다보면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며 나를 찾고자 노력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나는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누구’가 아니고 ‘무엇’이라니 궁금하지 않은가?
저자 채사장은 지대넓앝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으로 꾸준한 인기를 끌며 주목을 받았다. 책의 띠지에는 그의 신간인 이 책이 관계의 인문학을 말한다고 나와 있지만 나는 작가의 사색이 담긴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의 책이 여러 권 있지만 나는 이 책으로 처음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매 장을 읽으면서 은근하게 책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 앞부분을 읽으면서, 어쩌면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도, 이 작가 참 편안하게 이야기 하네, 나도 다 알고 있는 것이고 나도 이 정도는 얘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것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이렇게 편안한 글을 아무나인 내가 쓸 수 있겠는가. 그게 작가의 매력이자 모든 책들이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저자는 ‘모든 관계는 내 안에서 별을 이룬다.’로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타인, 세계, 도구, 의미’로 나누어서 각각 10가지씩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고찰해 보아야 할 주제들이라고 생각한다.
* 타인
- 별, 관계, 이별, 연애, 흔적에 대하여
관계는 나에게 있어서 늘 쉽지 않다. 누군가는 나를 보며 관계를 쉽게 맺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속으로는 많은 고민과 혼란을 가지고 있다. 그에 대한 생각에 내 마음을 저자가 잘 설명을 해 주었다. 그래, 이것인가보다.
“관계의 아득함, 소통의 노력이 온갖 오해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이해. 이것이 외로움의 본질이다. 당신에게 불현듯 휘몰아치는 깊은 고독과 쓸쓸함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_p.28_
* 세계
- 인생, 노력, 개, 던져진 세계, 시간에 대하여
사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노력을 해도 남들과는 다른 무언가 평범하지 못한 생활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나는 그런 것이 안 되는 사람인가보다 절망도 한다. 하지만 나름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위로를 늘 해본다. 나는 제대로 가기 위해서 신중하게 걷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길가를 둘러보며 여유 있게 걷는다는 것. 그것은 한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기 위해 신중히 걷는 것이다.” _p.84_
* 도구
- 통증, 이야기, 믿음, 진리, 현실, 언어에 대하여
언어는 의사소통의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두 가지 방향이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언어에 대한 나의 이해를 조금 더 깊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언어의 양을 늘리는 방향과 언어의 양을 줄이는 방향이다.” _p.165_
“우리가 책과 시를 읽는 이유,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즐겁게 하는 이유는 저자의 생각이 오롯이 나에게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에 개입하고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_p.169_
내가 책을 읽는 이유, 글을 쓰는 이유, 그것은 모두 다 나를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것에 얽매이기도 하지만 내가 재해석 하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또 다른 살아있는 책과 글을 만들어 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의미
- 꿈, 죽음, 노화, 환생, 영원에 대하여
꿈, 죽음, 노화, 환생, 영원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쉽게 인정하고 싶지도 쉽게 입 밖에 꺼내고 싶지도 않아 하는 주제인 것 같다. 그러기에 책의 마무리는 철학적인 고찰이다. 내가 누구이고, 세계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그를 찾아가는 과정이 결론으로 정리되어있다. 조금 어렵기도하고 나와는 생각이 다르기도 하지만 사유는 언제나 즐겁다.
'나는 누구인가' :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에 대한 것.
'나는 무엇인가' : 자아의 본질에 대한 것. _p.230-231_
자아에 대한 심오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뿐만이 아니라 경험하지 못한 미래의 시간까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자아라는 존재는 인생 전체를 관통할 것이고, 우리는 주어진 시간 내내 변화하는 자아를 대면하며 그때마다 답안을 수정해야 할 테니 말이다. _p.232_
다시 돌아왔다. ‘나는 무엇인가?’
이 책에는 나와 타인, 나와 세계,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연결해주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하지만 결국에 나는 나에게로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생각의 거리를 많이 제공해 주는 이 책을 통해서 많이 생각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해보고 주위와도 이야기를 해보면 확실히 시야가 넓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해서 생각을 했으니, 이제는 타인과 그 생각을 나누어 봐야겠다.
#우리는언젠가만난다 #채사장 #웨일북
#리딩투데이 #리투서평단 #리투함별도 #서평단
#인문학 #인문도서추천 #베스트셀러
[도서지원]
도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로 알게 된 저자 채사장. 문장은 어려운듯 하면서도 쉽고 뭔가 잔잔한 느낌이 드는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오늘 읽은 책은 나와 타인의 세계 즉 일상적인 이야기를 조용하게 풀어내고 있다. 책은 타인, 세계,도구,의미 총 4가지로 나뉘어 각각 그 안에 단편적인 이야기를 담아냈다. 거창하지도 않는 담담한 내용에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각을 해본다. 특히, 타인과의 관계에서 사랑은 피할 수 없다. 소년병 이야기를 네번에 걸쳐 보여주는데 떠남에 남아야 함을 느끼고 떠난 후에야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하는 마음을 보면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것에 후회하는 감정을 고스란이 보여주었다. 안타까움과 그리움 그러나 다시 만나기를 희망하는 이야기.
타인을 넘어 세계를 보여주는 부분은 더 현실적으로 생각을 하게 해준다. 삶이 무거운 것은 여러 이유가 있으나 내려놓지 못하기에 그렇다. 음 무엇인가를 놓은 것은 쉽지 않기에 표면적으로 생각을 하지 말고 욕심을 조금이마나 놓아보자. 하지만, 최선을 다할 때에는 열심히 해야한다 그러나 만약 실패라는 막다른 길에 다달았을 때 사람들은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음을 말한다. 나아가지 않으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런 방지는 처음부터 잘하면 되지만 이게 쉬운가? 그저 저자는 '길가를 둘러보며 여유 있게 걷는다는 것, 그것은 한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기 위해 신중힌 걷는 것이다. ' 라고 말한다.
'끝에 끝에는 시작이 있다' 남베트남 승려 틱광득은 이야기는 읽으면서 울컥했다. 미국의 힘을 얻어 불교를 탄압하고 카톨릭을 지원하는 정부 승려와 시민들이 고통을 겪었고 승려 틱광득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에 태운다. 어떤 고통스러운 소리도 내지 않고 타들어가는 몸이 흐트르지면 다시 꼿꼿이 세웠다. 이 모습이 전세계에 알려졌고 결국 정부는 무너졌다. 끝이었으나 이제는 끝이 아닌 시작...종교란 인간이 안식처를 갖는 것인데 피를 흘리면서까지 해야했던 것은 신의 계획인가 아님 인간의 한낱 욕심인가 내 종교가 중요하면 다른 종교도 중요하다.
그냥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떤 특정적인 내용보다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와 감정들을 만났다. 나와 세계와 그리고 타인의 과계는 사는 동안 숙제처럼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어떤 해답을 얻는 것은 아니나 그냥 삶이 이런 거구나 타인과 얽힐 수 밖에 없구나 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읽히기를 기다리며 나의 책장에 꽂혀있는 많은 책들.
가끔 숙제처럼 선택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사실 이 책이 그랬다. 인문학은 읽고 나면 늘 만족스럽지만 학문이라는 편견이 박혀서인지 거리감을 숨길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를 읽으며 저자에 대한 신뢰가 꽤 쌓였지만 그래도 아직은 멀었음을 느낀다. 시작은 몇 장만 우선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신기하게도 꽤 오랜 시간 많은 양을 읽어 나갔다. 복잡했던 머릿속을 금방 환기시키고 집중하게 만들었다. 어지러웠던 마음을 이해와 공감으로 다독이듯 편안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에게 마침 이런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나, 타인, 세계를 이어주는 40가지 눈부신 이야기.
이 책은 타인, 그러니까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나부터 제대로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 관계에서 오는 감정은 결국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일 테니까. 저자의 삶과 환경과 학업과 성찰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가벼운 에피소드 부터 의미 있는 순간들까지. 별모양의 지식을 얻으려면 다양한 모양의 책들을 읽어 그것들이 머릿속에서 별을 그리게 만들라는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나는 책 속의 모든 이야기들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았다. 읽어가며 공감이 되는 부분을 나에게 적용해보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만 파악했다. 그렇게 전체를 모든 읽은 후 그것들이 머릿속에서 별이 되는 과정을 기대하며 독서를 했다.
저자는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인생과 관계에 대한 성찰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를 비롯해 누군가 삶과 관계에 있어 크고 작은 상처를 느꼈다면 공감과 치유의 기분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 역시 조금은 내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는 시간이 되었다. 가끔 드는 모진 생각과 불만이 어쩌면 나와 타인,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 확실해진 것은 이제는 조금 다른 눈으로 나 이외의 것을 바라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다. 좋은 책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말은 다소 과장이라 느끼지만 가끔은 좋은 책이 사람을 움직이게는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을 다 덮고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물론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조금 성장한 느낌이었다. 과거와 같은 상황에 놓이더라도 전과 다른 나로 그것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자신감. 세상과 관계에 조금 소극적이었던 나를 한 뼘 정도 이끌어 준 고마운 책이라 결론지어본다. 살아가며 오늘의 기분이 유지되고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채사장이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줄 몰랐네요. 그가 운영했던 팟캐스트를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는데 흥미가 동할만큼 재밌는 책이었습니다. 평소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자주 느끼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네요. 한번씩 등장하는 철학용어는 생소했지만 워낙 쉽게 잘 설명해줘서 이해에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언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히 읽어내려갔습니다. ^^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를 이북으로 구입하였다. 이 책의 저자는 유명한 인문서적 시리즈인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저자인 채사장의 책이다. 이 책에서는 타인과의 관계의 어려움과 하지만 관계를 통해 자신과 타인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가장 힘든 것이 타인과의 관계이지만 이 책을 통해, 관계를 가지는데 대해 좀 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정말 지루해서 미칠것 같을 때, 외로웠을 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첫번째는 별 감흥없이 오랜만에 책으로 채사장님을 만나는 기분으로
두번째엔 와 닿는 내용이 너무나도 많아 지대넓얕 카페에 처음으로 글을 남기기까지 했다.
이전의 지대넓얕이나 시민의 교양과 조금 다른, 조금 더 사적이고 감성적인 내용이었다.
만나본 적도 없는 저자와 함께 대화를 나눈 기분이었고. 그리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이별을 너무나도 두려워 하는 나에게 우리는 언제가 다시만날 거라고, 이별은 나쁜 것만이 아니라고
그렇게 나를 다독여 주었다.
[eBook]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지대넓얕으로 유명한 채사장의 다른 글이다. 항상 채사장의 인문학 글은 흥미있게 구매해서 읽는데, 이번의 글은 내적자아에 대한 고찰을 다룬 글이라 좋았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제목에서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음을 글을 읽은 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린 모두 존중받아야 할 존재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고 배척해선 안된다. 사회라는 것은 개개인의 자아가 모여 이뤄진 단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