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 챌린지 앱 <독파>를 알게 된 계기가 된 책은 바로 그렉 이건의 <내가 행복한 이유>였다. '김초엽 작가님과 테드 창에게 영향을 끼친 마스터피스'라니! 띠지만을 읽고 단박에 책을 선택한 것은 처음이었다, 또한, 이상하게 외국 sf를 읽을 때면 하루 이상이 걸릴 정도로 독서 속도가 느려진다고 느끼곤 했는데, 챌린지 앱 <독파>가 완독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읽는 게 다른 책만큼 편안하진 않았지만(페이지 수만 약 500페이지가 넘는다), 그만큼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대단한 책이었다. 이 책에는 총 11편의 단편이 등장하는데, 그 중 <적절한 사랑>, <내가 행복한 이유>, <도덕적 바이러스 학자>, <바람에 날리는 겨>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적절한 사랑>은 사랑하는 남편이 사고를 당해 전신이 망가졌을 때, '나'가 경제적인 이유로 남편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을 할 수 있고 이후 남편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가 더 묘하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 이미 '나'의 선택권이 없는 희생과 이를 강요당하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을 위한 신체적 희생은 대리모 등을 통해 실제로도 이루어지고, 그 대가는 알려진 것 이상이라고 전해진다. 뱃속의 무언가가 자라나는 새로운 생명이 아닌 '남편'이라는 괴리감, 그리고 심각할 정도의 신체적인 고통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더이상 남편을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다.
<내가 행복한 이유>는 뇌에 종양이 자라나면서 그 부작용으로 항상 '기분이 좋은 상태'에 처한 주인공의 성장기를 그린다. 종양과 함께 자라온 소년은 암을 치료하고 종양을 제거받아 새로운 삶이 자신에게 주어졌는데도, 더 이상 기뻐하지 못한다. 자신과 함께하였던 '기쁨', 즉 '부작용'이 암과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생명을 얻은 소년은 오히려 무기력함과 절망을 느낀다. 소년은 자라나 남자가 되고, 남자는 자신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 실험에 참가한다. 남자는 또 다시 '새로운 삶'을 얻었지만, '기쁨'에 의존하는 대신 그는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기분 장애(우울증, 무기력증, 조울증 등) 역시 현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재인데, 이를 극대화시켜 한 인간의 성장담을 써 낸 작가의 필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그 정도는 차이가 있겠지만)기쁨의 순간과 절망의 순간을 맞이하고, 견뎌낸 후 다음 구간으로 들어서면서 성장해 나간다. '독특한 소재를 통한 삶에 대한 질문과 성찰'이 sf가 가진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도덕적 바이러스 학자>는 사실 누구나 그 결말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이 너무 현실적으로 '나쁜 놈(주인공은 종교의 이름을 빌린 극심한 호모포비아이다)'이기 때문이다. (snl에서 이를 풍자한 적이 있는데, 빌런 모임에서 히어로에게 해로운 어떤 광선을 만드는 건 정상으로 취급받지만, 현실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빌런은 철저히 배척당하고 경멸당하는 내용이다)누구나 그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는 있다. 하지만, 결말을 아는 장르에서 늘 그렇듯이, '어떻게'가 '엔딩'보다 더욱 중요한 법이다. 주인공 '쇼크로스'는 에이즈가 더 이상 동성애와 간통하는 자들을 '벌해서 사망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는 점에 분노해서 단 한 사람의 이성과만 관계를 맺을 경우에만 목숨이 보장되는(즉, 동성애와 간통을 극단적으로 처벌하기 위한)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신의 뜻일까? 신은 어째서 에이즈를 '사람을 죽이지 않는' 병으로 만들었을까. 쇼크로스는 단 하나의 변수를 깨닫고 마음을 돌린다.
그 어떤 두려움도 굶주림을 이길 수는 없다. 그 어떤 인내도 굶주림을 불식할 수 는 없다. 굶주림이 있는 곳에서 역겨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신이나 신념, 그리고 당신들이 아마 원칙이라고 부르는 것들조차도, 바람에 날리는 겨보다도 못하다.
진실과의 대면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바람에 날리는 겨>는 이 책에서 문장이 가장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던 파트이다. '나'는 '엘니도'라는 곳에 망명한 기예르모 라르고라는 생화학자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나'는 유행하는 마약이 어떻게 유통되는지를 찾아 나서며 그의 뒤를 밟고, 생태계를 변화시킬 만큼 독특한 숲으로 이루어진 '엘니도'를 찾아 떠난다. 이때 '나'는 유전학자들이 마약 카르텔들과 결별한 채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였으며 그 영역을 점차 넓혀 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라르고가 망명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고, '나'는 라르고를 만날 수 있을까? 이 단편소설은 아름다운 문장들과는 달리 냉소로 가득하다. 단순하고 명쾌하게까지 느껴지는 결론은 오히려 존재의 의미를 냉랭하게 가로막아 버리는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지, 나다움은 무엇인지, 내가 되고 싶은 존재인 '나'는 누구인지.
이 책은 진입장벽이 조금 높아보일지는 몰라도, 그만큼 우리에게 많은 통찰과 sf의 매력을 안겨 준다. sf 특유의 신비로움과 독특함, 그리고 삶과 인간에 대한 철학이 적절하게 배합된 이 책은 sf의 팬이시라면 '반드시'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sf 입문자시라면 조금은 어렵게 느끼실지도 모르겠다...)! 두께가 제법 있는데도, 남은 책장이 줄어든다는 게 너무 아쉬울 정도였다. sf 장르의 팬이 되면서 허블 출판사의 작품을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는데, 이번에도 너무 멋진 책을 내 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내가 행복한 이유', 내가 읽은 그렉 이건의 두번째 책이다. 중단편 소설집이다.
그렉 이건은 풍부한 상상력과 전문 지식을 갖춘 SF 작가다. 테드창이 칭찬했다고 하는데 그럴 만하다. 그 둘의 소재나 플롯 스타일도 비슷하다.
이번 소설에서 테마는 양자역학, 평행우주, 그리고 생명공학이다.
이 책에는 여러 개의 중단편 소설이 있는데 소재별로 카테고라이징 해 보았다.
크게 '뇌'를 소재로 한 스토리, '생명공학'(바이러스 벡터, 질병, 식물 테라포밍)을 소재로 한 스토리, 그리고 '양자역학'과 '평행우주'에 관한 스토리 정도로 나뉜다.
1990년대에 뇌-컴퓨터의 뉴럴링크와 임베디드를 상상하고 이를 소재로 현실성 있는 소설을 쓰다니 놀랍다.
바이러스 벡터(viral vectors)와 바이오 해커(bio-hacker)를 소재로 한 소설들도 그렇다. 나는 미생물학 및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세부전공으로 바이러스를 공부했다. 그런 내가 보기에도 저자가 이 분야의 전공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이 전문적이고 충실하다.
특히 남미 아마존 근처에 집단 지능을 갖추고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식물군집에 대한 소설, 'Chaff'는 기발하다. 수학 문명을 갖춘 두 평행우주가 조우하는 내용의 루미너스 또한 소름끼치게 신박했다.
저자는 그의 소설에서 단순히 SF적 상상력으로 재미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또한 매력적이다. 예를 들어 '내가 행복한 이유', '내가 되는 법 배우기', 그리고 '적절한 사랑'에서만 해도 그렇다.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행복 전달 물질을 수용하는 뇌 신경 세포의 변화로 무조건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경우와 그 반대의 경우, 나의 본질을 무엇인가?(내가 행복한 이유)
뇌에 설치된 보석이라는 저장 매체가 학습을 통해 발현시키는 나와 원래 생물학적 뇌를 갖는 나, 둘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인간의 본질은 뇌라는 조직일까? 학습하는 기억에 의해 형성된 정보만 있으면 그 실체가 무엇이라도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내가 되는 법 배우기)
남편의 뇌를 내 뱃속에 보관했다가 그의 클론에 이식하여 만든 남편은 원래 내가 사랑했던 남편인가 아닌가? 내가 아들이라고 느껴야 하는 것인가?(적절한 사랑)
인간 본질의 탐구라는 인문 철학적 주제에 생명공학적 소재 등을 곁들여 깊이 사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훌륭하고 흥미로운 소설이다. 그의 신작이 나오길 기대한다. 테드창 님도 빨리 신작을 출간하시길 바랍니다.
솔직히 말하면 SF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제대로 자세 잡고 읽은 건 몇 권 안 되지만, 이따금 친구들에게 확언한다.
SF란 아주 번거로운 장르이다. 수학/과학/이공계 지식이 전무하다면 본문에 지나가듯 거론되는 용어조차 무슨 뜻인지 몰라 갈피를 잡기에 쉽지 않다. 물론 상식이 특출나거나, 전공 분야를 공부했거나, 일말의 야트막한 지식이 있다면 그보다는 재미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구축한 세계관을 완전히 깨닫고 몰입하기 위해선 더한 노력이 필요하다. 플랏의 흐름만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찝찝한 이 기분을 해소해주는 건 자료 조사일 테지만, 500여 쪽에 달하는 책을 순식간에 읽고 나면 그만한 에너지는 남아있지 않다. 그렇기에 완전한 독서가 불가능해지며, 그래서 이 장르가 싫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서 갈래를 펼치며 서술할 수 있는 건 철학적 시각뿐이다. 가정을 여러 개 세우고, 비틀고 꼬며 what-if 형식의 변증법적 독서를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모임도 작가의 주장과 가치관이 어떤가 해석하기보단 각자의 인생에 초점을 맞추고 고유의 개성을 앞세워보았다.
특히 표제작인 「내가 행복한 이유」는 4,000명의 취향 샘플이 단 한 명의 인간 개체에 모두 담겼을 때 찾아오는 선호의 딜레마를 다루는데, 우리는 이를 어떤 한 등장인물의 것으로 판단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좀 더 확장된 범위에서 가름하고 유추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런 단계는 상완을 다채롭게 하지만, 본 책에 대한 감상을 찾아보면 간혹 철학적 질문을 배제하고 SF의 장르적 재미를 고조했으면 더 좋았으리란 평도 존재한다. 총 11편에 거쳐 인간의 자유의지, 정체성, 진리 등을 아우르는 이데올로기는 처음 접하는 이들에겐 충격적이고 어떤 사유의 시발점이 될지라도, 이제 그 수준을 벗어났거나 무뎌진 독자들에겐 질릴만한 소재이다. 예를 들어 「루미너스」에서 시사한 현 인류의 수학 공리를 전복하는 존재의 가능성은 한평생 '진실'로 체화한 개념이 뿌리부터 틀린 것일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우리는 곧바로 이런 반기를 제기할 수도 있다. '굳이 SF가 그 기폭제가 될 필요는 없다'. 밀란 쿤데라가 『농담』에서 절대 신념과 획일주의를 경고했던 것처럼, 여타 고전 문학 작품에서도 이미 충분히 볼 수 있는 문제이다.
또한 SF는 장르 소설로 묶이고,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주제의 유사성 탓에 메들리처럼 반복되는 회화는 낡아서 매력이 닳은 고전적 피상으로 보인다. 상이한 키워드 안에 숨어있는 패턴을 읽기에 별로 어렵지 않다는 소리다.
특히 이 전에 읽었던 SF 소설이 『SFnal』 시리즈, 즉 최신의 그것들을 묶은 출간물이라 더 그렇다. 해당 책의 독후감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무엇이든 많이, 또 오래 보면 그 패턴이 보이고 연출된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법이다. 이 책에 수록된 단 하나의 단편을 읽는 동안에도 자연스레 여타 SF 소설, 드라마, 영화와 같은 작품들이 두세 편, 많으면 5편 이상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SF는 자꾸 무언가를 상기시키고 연결되어있다고 보면 되는 것일까?
처음에는 수많은 작품이 떠오르고 그것들이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하며 집약적이고 또 그물망 같은 인식 체계를 구성하는 게 새롭고 뿌듯했으나, 이제는 달갑지 않다.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야?' 같은 반응이 따라오는 기발함이 번뜩일 때도 있으나, 평균 수준의 스토리텔링과 흐지부지한 마무리는 아쉬움을 낳는다. 종교 원리주의자의 비도덕성을 고발한 「도덕적 바이러스 학자」를 두고 누가 '『데스노트』가 연상될 정도로 조잡하기 그지없다'고 한 말에 손뼉을 쳤을 정도니까. 종교로 입혀진 인체의 신비, 우매한 추종이 흔들릴 때 오는 인지부조화는 겨우 어떤 논점을 표방한 정도로만 포장되고, 우스워지기도 한다. 이에 더해, 작가가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어 보일까 봐 중반부에 대뜸 정리된 내용을 짚고 넘어가는 행위는 친절에 대한 감사보다 '진즉에 좀….' 하고 짜증이 난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단 두 가지였다. 종래의 수론에는 본질적인 결함이 있고, 자연수에 관한 플라톤적인 이데아는 궁극적으로 모순일 가능성. 또는 앨리슨이 옳았고, 몇십 억 년 전에 '계산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 일부를 일종의 대체 수론이 지배하게 되었을 가능성이다. / p.354 「루미너스」 中
「100광년 일기」도 살펴보자. 자칫 결정론·운명론을 논하는 듯 보여서 '인생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다면 만족감보다는 지루함이 더 클 것이다'라는 얘기를 나누겠지만, 작품을 해체하는 과정 중에 이것의 핵심은 '계획'이 아닌 '자유'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다. 그렇다. (진부하게도…) 이러한 시간 구속과 자유의지는 전혀 새롭지 않은 주제이다.
「무한한 암살자」도 마찬가지이다. 거대한 타임 패러독스 안에서 '절대자' 혹은 '비켜 나가는 자'를 파괴하기 위해 뒤쫓는 설정은 이미 도처에 깔려있어 걷는 거리마다 발에 챌 지경이다. 앞서 언급했듯 사상적 근원을 파헤치고 역사와 정치 상황을 향해 물음을 던지는 이야기는 작가의 입장에선 퍽 유혹적이어서, 하드 SF의 옷을 입고 탈이념의 시대 정신을 굳이 또 한 번 구현했을 뿐이다.
그러나 옮긴이의 말에 도달했을 때, 수록된 단편들 대부분이 90년대에 집필되었단 점은 위에서 구구절절이도 써놓은 평들을 놀랄 만큼 뒤집는다.
자고로 SF란 신기술과 가능 세계, 최근의 인간 군상이 상상에 합쳐지며 먼 미래의 내러티브, 아니 말 그대로 '공상'으로 구성되는 법 아니었나. SF는 자연스레 미래 시제를 띄기 마련이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흐르는 과학이기에 과거에서 이미 정해진 부동의 유산은 모름지기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유명 TV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777>에서 기리보이가 프로듀싱한 곡 '공상과학기술'을 노래한 래퍼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나의 동공 안엔 가상현실 / 타임머신 티켓 2장 있어 / 알약 몇 개만 삼키고선 암 퇴치 ♪
그래. 분명 SF는 달을 넘고, 공기 위로 걷고, 영생을 얻는 삶이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언젠가는 이뤄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있다. 이는 문자도 없던 선사시대 분위기에는 절대 끼어들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먼 미래의 얘기만은 아니란 건 안다. 아주 근거리에서도 충분한 상상력이 곁들여지는 모습이 종종 보이기 때문이다. 여태 칭송받는 <블레이드 러너>(1982)나 <백 투 더 퓨쳐>(1985) 같은 걸 떠올려보면 쉽다. 번화가의 냄새는 향수를 자극하고, 어딜 가도 아이들은 유행을 좇고 있다.
VR 게임장의 앞 유리는 이미 신물이 나도록 본 게임의 초현실적 영상들로 반짝였고, 게임장 안에 모인 10대 초반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예의 텍사스 풍의 꼴사나운 패션을 두르고 있었다. 공기에서조차도 토요일 밤의 밀라노와 똑같은 냄새가 났다. 감자튀김, 팝콘, 리복 운동화와 코카콜라. / p.476 「체르노빌의 성모」 中
굳건한 믿음은 읽는 내내 시의적절하다고 여겼던 글들이 (특히 「실버파이어」의 감염 사태는 코로나19로 팬데믹 시대가 열리며 오늘날 SF에서 꾸준히 활용되고야 만다) 실은 지금으로부터 2~30년 전에 집필되었단 사실에 철저히 깨부수어진다. 고백하건대 내내 시대적 배경이 나오지 않아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것도 어떤 장치로써 작용했을 수 있음은 의견을 나눠봄 직하다. '어라, 이거 언제 써진 글이지?' 하고 의문 가득 고개를 든 건 책의 절반쯤 다다랐을 때야 겨우 발견한 인명 덕이었다. 역서가 2022년 처음 소개되었으니 당연히 최신 글인 줄 알았다.
미국 대통령41대 미국 대통령 조지 H. W. 부시은 손에 계란 타이머를 수평으로, 그러나 언제나 기울일 수 있는 자세로 쥐고 있었고, 그 안에는 그가 전임자40대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대선 당선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일부러 석방을 지연시킨 비쩍 마른 이란 대사관 인질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 p. 280 「바람에 날리는 겨」 中
고의로 제거되었더라도, 역사는 항상 현재와 과거 사이의 관계를 구성하고 새로운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대목이다. 존 버거가 저서 『다른 방식으로 보기』(2012)에서 말했듯 오래된 예술 작품이 아직도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지금의 우리가 그맘때의 사회와 어느 정도 유사한 성격을 지닌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SF도 유화와 같다. 뚱딴지처럼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란 소리다.
'SF 작가들의 작가'라는 호칭은 그래서 붙은 모양이다(아니, 일단 이 사람 61년생이다….). 선구적인 주자로서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고 잇달아 수상하며 명성을 확립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서두에 나는 SF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썼다. 혹자는 섣불리 속단하지 말라 조언할 것이다. 단편집의 파편들을 주워 담고 엮기에 급급하다는 평이라고 일컬을 것이다. 그럼 다시 이렇게 대답하겠다. 어쩌면, 장편 하나를 진득하게 읽어보면 또 다른 생각이 똬리를 틀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의 기저가 되는 상황, 화자의 선택과 감정에 정당성이 여러 겹 겹쳐있어 충분히 그럴듯하며 이입해서 읽기도 좋았다. 여러 가지 이야기 속에 교차하는 메시지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내 선택이 잘못될 수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끊임없이 고뇌하는 과정, 또 다른 나와 충돌하는 것 그 자체가 자유의지이며 살아있는 것이고 인간인 이유라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
"행복이 없는 인생은 견딜 수 없지만, 행복 그 자체는 목표가 되지 못한다. 나는 행복의 이유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또 그런 선택에 만족해할 수도 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자력으로 만들어 낸 나의 새로운 자아가 어떤 가정을 느끼든 간에, 나의 모든 선택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상존한다."
"나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것은 서로 상반되는 모든 충동들과 동거하며, 머릿속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목소리들의 존재를 감수하고, 혼란과 자기 회의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기분이란 수시로 변하는 감정들 사이의 균형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대항 세력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지금은, 미약하기 그지없는 우울한 기분조차도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이런 줄다리기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인간은 모두 나와 같은 유산으로부터 스스로의 인생을 만들어 가기 마련이다. 반쯤 보편적인 동시에 반쯤 특수하며, 가차 없는 자연도태에 의해 반쯤 예리해지고, 우연이라는 자유에 의해 반쯤 누그러진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
저자가 다루고 있는 '사이비'가 전 세계적으로 첨예해지는 정치적 양극화, 타인을 해치는 맹목적인 믿음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로 치환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들에게 하는 사이다 발언에 속이 시원해졌다가도 다시 갑갑해지는...^^; 각 위치에 있는 인물의 심리 묘사를 너무 잘하는 것 같다.
-
"자기가 한 선택인데도 전혀 확신을 가질 수가 없어서, 단지 네가 옳았다는 사실은 증명하려는 일념으로 너와는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 머리 위에 유황과 지옥불을 쏟아부어 줄 하나님을 필요로 했던 거야"
"같은 묘사라도 타인이 하면 왠지 강박적이고 지리멸렬하게만 느껴졌다."
"자신의 영적 신념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라고 주장했던 라디오 전도사의 미친 헛소리를 뉴에이지풍으로 리믹스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휴먼 상렬체 같아서 너무 웃김ㅠ)
-
현실에 상상을 더했거나 근미래 정도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30-40년 전에 쓰인거죠? 분명히 현재랑 겹치는게 너무 많아서 의심조차 안했는데.... 특히 teacher라니 누가 먼저 쓴건지 혼란스럽다... 딥러닝 코드 써주는 챗GPT에 매일 놀라는데 운전하면서 예측 모델 프로그래밍이라면 지금도 쌉가능일듯.... 기계의 능력이 극한인 상황에서도 늘 감정만큼은, 사랑만큼은 마지막까지 뺏기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귀엽다...
-
"운전을 하면서 목소리 입력을 써서 예측 모델을 프로그래밍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미세하더라도 바로 그런 오차야말로 뇌와 보석을, 인간과 기계를, 사랑과 모조품을 구분하는 차이라고 선언했다."
제목처럼 그렉 이건 입문용으로 좋은 책.
하드 SF도 작가의 성향에 따라 현실과 근미래를 낙관하는 책(앤디 위어?)과 비관하는 책으로 나뉘는 듯 함. 그렉 이건은 명백히 후자. 하지만 덮어놓고 암울한 디스토피아도 아니고, 오버스러운 상상력이나 초자연적 존재를 등장시키는 유치함으로 빠지지도 않음.
충분히 개연성있고 합리적이며 분명 과학적, 경제적으로도 꽤 발전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너무 다양한 과학 개념들, 아이이어들을 펼치며 기량을 만개시키고 있는데 근본적 세계관은 대단히 암울함. 하지만 염세주의나 신파적 비극과는 좀 다르게 독자를 최루시키고 마비시키는 종류의 비관이 아니라 똑똑한 선생님의 돌직구마냥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차리고 나와 사회가 망각하고 있는 가치와 방치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비관성 이랄까.
귀한 책을 내준 출판사와 번역가분께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음. 뒷표지에 예고된 출간 예정작들을 모두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작가의 이름은 들어본 기억이 없지만 책 이름은 어디선가 본 듯 했다. '쿼런틴'의 작가라 한다. 역시나 책장을 뒤져보니 20년쯤 전에 구매하고 아직 읽지 않은책이다. 그때만해도 오래된 유명한 클래식 SF 인 줄 알았다. 그 책이 이 작가의 전설적인 데뷔작인지는 몰랐고, 하드 SF의 가장 유명한 작가중 하나임을 알게되고는 이 단편집을 구매했다. 사실 이 단편들의 내용들이 전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하드 SF가 아니거나 내가 이미 이 분야의 지독한 매니아일텐데, 둘 다 아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과학은 기본적으로 반직관적이지 않던가. 그렇기에 이만큼 도전의식을 불태우게 만드는 책은 찾기 힘들듯 하다. 읽기 어려울지는 몰라도 지루하지는 않다. 읽는 재미까지 있으니 뛰어난 SF작품인거다. 이 작가의 상상력의 끝은 정말 어디일까 싶다. '쿼런틴'을 바로 읽어야겠다.
흔히 한 번 형성된 취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그 '취향' 의 씨앗은 대개는 유소년기에 뿌려지고 아주 천천히 발아되는 것 같다. SF 마니아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수준이지만, 그래도 책방에 갈 때마다 종종 SF코너를 두리번거리며 신간을 확인하곤 한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궁금해하며 줄기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 그 씨앗을 찾아가다보면 그 시작은 바로 고등학생의 어느날 읽었던 '쿼런틴' 이라는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아마 조만간 '쿼런틴'의 리뷰를 쓰지 않을까. 처음 읽었을 때 마치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사실은 그런 책들이 많지만 가장 쎄게 맞은 책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약간의 강박감과 의무감을 가지고 책을 읽다보면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쿼런틴'은 종종 일상이 무료하거나 인생이 막힌 길에 접어들었다는 답답한 기분이 들 때마다 읽었던 것 같다. 덕분에 양자역학에 관심이 생겨 공부도 할겸 교양서를 여러 권 읽었고 그 덕에 종종 관련 주제가 테이블에 올라올 때마다 조금이나마 아는 체 할 수 있었기, SF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는 것 외에도 여러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초독 이후로 약18년이 흘렀고, 다행히 그 전보다는 흡수력이 좋아진 내가 읽게 된 그렉 이건의 새로운 (한글) 작품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설렘, 그리고 지적인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모든 단편들이 엄선된 녀석들이라 부족하거나 결핍된 부분이 없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할 수 있다. '적절한 사랑', '100광년 일기', '내가 행복한 이유', '행동 공리', 내가 되는법 배우기', '루미너스' 는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지적 총명함이 가득한 이야기들로 윤리적이고 수학적인 모순과 딜레마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역자후기'에 담긴 것처럼 우주에서의 공간에서의 인간이라는 폐쇄되고 또 연결된 존재가 가지는 아이러니함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된다. '실버파이어'의 기발함도 너무 좋았으며 '체르노빌의 성모'에서 탐정 소설의 형식을 빌어 역사와 종교의 기반위에 도덕적인 기준에 대해 풀어준 것도 너무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썼던 것처럼 위에서 끄적인 소감 뿐만 아니라 책에 대한 나의 부족한 견해도 나누고 싶지만 그렉 이건의 이야기들이 가지는 반짝임과 기발함을 훼손시키고 싶지 않기에 이쯤에서 마무리 짓는다. 꼭 읽어보시길.
9.5/10
- 22년 11월 30일 읽음
나는 누구일까? 인간은 무엇일까? 뻔한 질문들이지만 쉽사리 답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작가도 결코 이에 대한 대답을 주지는 않는다. 나는 누구일까? 내가 어디까지 남아야 나일까? 내 몸은 나인가? 몸의 어느 부분이 나인가? 뇌가 나인가? 그렇다면 뇌의 어느부분이 나인가? 뇌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인가? 지금 이 시간의 나는 나인가? 그렇다면 어제의 나는? 내일의 나는 나인가? 테세우스의 배 논쟁 같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쟁점을 은근히 제시한다.
그의 기이한 이야기 속에서 나는 계속 분열된다. 나는 뇌만 남아 누군가의 뱃속에서 목숨을 부지하기도 하고 우울과 진노만 가득한 채 연명하다 다른 사람의 인생 데이터를 받고야 행복을 찾기도 한다. 차원과 순간들에 중첩돼 여러 내가 존재하며 모든 나는 나이되 내가 아니기도 하다. 그렇게 부서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나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개인이란 무엇이고 나란 누구인가? 아마 끝까지 가져갈 질문일 듯 하다. 일독을 권한다.
마냥 긍정의 힘을 믿는 사람이 쓴 에세이 같은 제목이지만 그렉 이건이라는 작가가 쓴 SF 단편 소설집이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고 추천사도 많아서 호기심에 읽어 보게 되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SF 소설에도 '하드' SF라는 하위 장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드 SF라 하면 과학적 사실 및 이론에 상충되지 않는 SF 소설을 말하는데 이 책의 작가가 그 분야에서 꽤 유명한 편이라 한다.
총 520페이지 정도로 살짝 두꺼운 책 안에 11편의 단편이 알차게 실려있다.
각 단편마다 다루는 주제들이 상이해서 한 권을 읽었을 뿐이지만 여러 권의 책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내가 행복한 이유'는 중병으로 뇌에서 행복감을 담당하는 부분이 모두 손상되어 일말의 행복감도 느끼지 못하던 남자가 최신 치료기법의 임상시험 대상자가 되어 그 부분을 회복해가는 이야기이다.
기술의 도움으로 얻는 행복감이 과연 진짜 자신의 행복이라 할 수 있는지, 또 이를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지를 고민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행복이 없는 인생은 견딜 수 없지만, 행복 그 자체는 목표가 되지 못한다.
나는 행복의 이유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또 그런 선택에 만족해할 수도 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자력으로 만들어 낸 나의 새로운 자아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간에,
나의 모든 선택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상존한다.
(pg 119)
그러나 언제든 머릿속의 버튼 몇 개의 위치를 움직이기만 하면
그런 감정들을 사라져 버릴 수 있게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줄리아에 대한 내 감정이 진짜라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pg 132)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등장하는 '도덕적 바이러스 학자'이다.
종교에 광신적인 신념을 가진 한 남자가 '신의 섭리를 거스르며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하는' 자들만 노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바이러스를 만들어 유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을 읽은 후 코로나19도 인간관계가 넓은 '인싸'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싶었던 한 미친놈의 작품은 아니었을까 하는 공상에 잠길 수 있었다.
'실버파이어'라는 작품 역시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을 다루고 있는데, 책을 다 읽은 후 이 작품의 집필 시기가 1995년이라는 점을 알게 되어 소름이 돋았다.
하드 SF가 생각보다 과학적 전망에 기반을 크게 두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었다.
위 두 작품에 더해 책의 마지막 작품인 '체르노빌의 성모'까지 읽어 보면, 주제는 각기 다르지만 작가가 종교에 대한 신념, 특히 광신적으로까지 빠지는 신념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과학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보기에 비이성의 극치라고 느꼈기 때문일까,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와 비슷한 시각을 가졌기 때문에 블랙 코미디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자식들에게 중요한 것들은 모두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과학, 역사, 문학, 예술을 손가락으로 한 번 누르기만 하면
방대한 정보의 보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힘들게 얻은 진실을 자식들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도덕은 오로지 우리의 내면에서 오며, 의미 역시 오로지 우리의 내면에서 오고,
우리의 두개골 밖에 존재하는 우주는 우리에게 아예 관심이 없다는 진실을.
(pg 447)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주제들을 풀어내고 있긴 하지만 '하드'라는 장르가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소설이지만 내용이 조금 어려운 작품들도 있었다.
특히 수학적 공리를 주제로 한 '루미너스'라는 작품은 문체는 꽤 긴박하고 박진감 넘치는데 소재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왜 긴박해야 하는지 공감이 잘 안되는 작품이었다.
우리의 상식과 현재의 경험으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세계들도 등장한다.
'100광년 일기'라는 작품은 시간의 흐름이 선형적이지 않고 반복되는데 등장인물들이 그 반복을 인지할 수 있으며, '무한한 암살자'라는 작품은 공간이 멀티버스인데 이 멀티버스가 모두 한 인물을 중심으로 수없이 중첩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최선을 다해 정리했지만 위의 문장을 읽는 사람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될까 싶을 정도로 직관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배경들이다.
하지만 전자는 시간에 대한 관념 자체가 변한다 하더라도(미래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미 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진짜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존재인지를 묻고 있는 작품이고 후자는 마블 영화에서나 맛보기로 등장하는 멀티버스의 개념을 훨씬 더 집약적이고 급진적인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어서 읽은 뒤 여운이 오래 남았다.
그 밖에도 유전자 공학이나 뇌과학 측면에서 인간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이고 이를 기술적으로 모방할 수 있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하는 '행동 공리'나 '내가 되는 법 배우기' 등의 작품들이 실려 있다.
한 작가의 작품들을 담은 단 한 권의 책이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SF적 상상력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어서 마치 '블랙 미러'나 '러브 데스 로봇' 같은 시리즈물을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SF작가들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과장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작가의 명성 대비 국내에 번역되어 출판된 작품은 별로 없는 것 같아 다소 아쉽다.
이 책이 많이 팔려서 다른 작품들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첫 이야기부터 기괴하고 충격적이었는데 한편으로는 이런게 바로 SF의 묘미지 하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솔직히 과학적인 개연성이 (아마도) 충실하게 반영된 책이다보니 제가 모든 원리를 이해하면서 읽기에는 조금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이야기로서의 재미가 뚜렷하고 스스로에 대해 과연 얼마나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섬뜩함도 들어서.. 참 자극적이게 읽었습니다. 쿼런틴을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허블에서 출간된 그렉 이건 작가님의 내가 행복한 이유 리뷰입니다. 페이백 이벤트 통해서 대여하여 읽었습니다. 요즘 잔잔한 내용인 소설들만 보다가 오랜만에 sf소재의 소설을 봐서 그런가 더 재밌었어요. 정말 몇 년만 지나고 과학이 발전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궁금하면서도 무섭네요~ 과학 기술의 내용이지만 결국은 사람에 대한 내용인 것 같습니다. 잘 봤습니다.
내가 행복한 이유를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주관적 감상이니 예민하신 분들은 피해주세요.
자주 접하는 장르가 아니라서 그런지 특히 저한텐 조금 읽기 어려웠습니다.
초반이 그나마 단편들로 이뤄져서 그나마 부담이 덜 했네요.
사회 문제에 대해 꼬는 것도 있고 그래서 그런게 전 또 재밌었네요.
그런거랑 sf랑 합쳐지니까 예전에 봤던 드라마도 생각나서 재밌었습니다.
이 책은 허블 출판사에서 2023년 1월 출간된 그렉 이건 작가님의 내가 행복한 이유 도서에 대한 리뷰글입니다. 지금부터 쓰는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굉장히 많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스포일러에 예민하신 분들은 스크롤을 내리실 때 조심하세요.
행복이란 뭘까요.. 전 사실 어느 시기 이후로는 제가 제법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근데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던 시기가 돌아보니 저를 성장시킨 시기긴 하더라구요 성장과 행복이 반대되는 인생..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성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모로 뭐랄까 인간의 감정이나 생각을 낱낱이 분해해서 의미를 해체하는 느낌의 글이었다고 해야할까요... 게슈탈트붕괴같은 느낌.. 남편 몸을 임신하는 단편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진짜 생각을 너무 파고파고들어가서 사랑이란 감정이 그냥 일개 낱말처럼 느껴지게 되는 심리서술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충격적인 상황에 방어적으로 정신승리하면서 이어지는 흐름같기도 한데요..
저자인 그렉 이건은 “인간이 물리적 우주의 일부이며, 이성과 관찰을 통해 그 우주를 통괄하는 법칙을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심오하며 중요한 통찰이었지만, SF의 상당 부분을 위시한 대부분의 문학은 그 사실을 아예 무시하거나 경시해왔다”면서 “(진정한 현실 참여 문학은) 우리가 우주에 관해 그토록 많은 것들을 알아냈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그 세부 사항에 환희하는 법”(‘옮긴이의 말’ 중)이라고 했다.
그렉 이건의 "내가 행복한 이유"에 대하여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제목만 보아서는 왠지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라는 자기계발서일 것 같은 느낌인데요. 테드 창, 김초엽 같은 유명 SF작가들이 극찬한 SF소설집이었습니다. SF는 현실을 벗어나는 면이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더 직설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책이었어요.
페이백으로 읽은 내가 행복한 이유를 읽은 후기입니다 이야기는 먼 미래 그러니까 과학이 아주 많이 발전이 된 후의 이야기입니다 다소 충격적이기고 하고 시간이 지나서 과학이 발전하면 행복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불행에 가까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있지만 자신의 감정 하나를 죽이고 살아야 하는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