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에세이로 읽어가는 동안 꽤 몰입감이 높은 편에 속한다 평할 수 있겠다. 20년간 우울증으로 고생해온 김현진 작가는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에서 자살 실패의 고백으로 이야기로 에세이를 시작한다. 자칫 무거울 것 같은 이야기이지만 “수면제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수면제를 삼키느라 마신 물 때문에 배 터져 죽겠다”는 식의 농담으로 웃음을 자아냄으로 국면을 전환하다. 저자인 김현진 작가의 탁월한 긍정성과 재기발랄한 유머는 좀처럼 웃을 일 없는 요즘의 우리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된다.
이런 류의 책은 특히 에세이로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엔 아무래도 저자가 누구인지를 보는 것이 어쩔 수 없는데 김현진 작가라면 구입에 망설임이 없다.
다만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은 <가장 사소한 구원> 뿐. 이 한 권으로 작가의 다음 책을 바로 구입 결정했으니 내겐 이 책이 꽤 만족스러웠다는 방증인데 실제로 그렇다. 이 리뷰를 볼 지극히 극소수의 당신이 혹 이 책을 안 읽었다면 먼저 이 책부터 강추합니다.
"쓰는 이의 고통이 읽는 이의 기쁨이 될 때까지" 이외수 작가의 말로 알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느껴진다. 곳곳에서 독자로서는 웃음이 나지만 그 웃음을 내기 위해 저자는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더불어 작가로서의 비범한 통찰력도 느낄 수 있다. 이를테면 <로미오와 줄리엣>의 재해석. "로렌스 신부의 약 조제 솜씨가 시시했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성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은 꽤 그럴 듯 하다.
또한 여성으로서 나 같은 남성 독자를 벙 찌게 하는 구절들.
"그들은 여성이 날씬하면 손을 대고, 뚱뚱하면 막 대한다"
그 밖에도 뛰어난 에세이의 요건을 두루 갖춘 이 책을 삶이 퍽퍽해질 때마다 꺼내 들춰보고 싶다.
김현진의 신간을 반갑게 구입했다.
“2쇄”라는 글자에 안도했다. 좋아하고 기다리는 작가가 몇 있는데, 김현진 작가도 그중 한 명이다. 다른 작가들은 대부분 유명한 사람들이라 ‘몇 쇄’ 이런 건 잘 확인하지 않는데, 김현진 작가의 책은 확인하고 싶었다. 1쇄가 몇 부나 출간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1쇄를 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출판시장이야 옛날부터 어렵다고 했었고,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 2쇄를 구입했다는 것이 기분 좋았다.
고종석씨의 책을 읽다 알게 된 김현진 작가의 글은 재미있다. 진짜 재미있다. 안타깝고 마음 아프고 일견, 공감되고 때론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읽다 보면 재미있다. 김현진 작가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2019년 봄에 나의 살들은 최고점에 다다랐는데, 대중교통에 탑승하면 사람들이 자꾸만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처음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저 임신 안 했어요’하고 사양했지만, 나중에 정 피곤할 때는 임산부인 척 그냥 앉아버릴 때도 한두 번 있었다.” (p.31)
임산부인 척 그냥 앉아버릴 때도 한두 번 있었단다. 나는 한참 웃었다. 한두 번이 아닐 거라는 짐작을 하니, 더 웃겼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 얇은 근무복을 입었다가 화들짝 놀랐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완전 아저씨였다.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당연한 아저씨지만 배는 저 정도는 아니었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말이다. 근무복이 별로 타이트하지 않는데도 불룩 나온 앞 배와 옆구리가 도드라졌다. 겨드랑이 부분도 끼는 것 같고, 팔을 뻗으면 유독 손목 위로 옷이 올라왔다. 하... 운동 할 때가 된 것이다. 임산부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더 날씬한 아저씨가 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뭐, 이런 노래를 부르며 아직까지는 육중한 몸집으로 물소처럼 트랙을 돌진하는 내 꼴이 우습긴 하다...(중략) 한 마디로 매일 아침 달리는 것은 그날그날 마음의 때를 이태리 타월로 벗겨내는 것 같은 기분이다.” (p.36)
투쟁가를 들으며 운동을 한다는 작가의 소식이 반가웠다. 나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달린다. 이태리 타월로 벗겨내는 정도는 아니지만, 새벽공기를 가르며 달리면 행복하다. 물론,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지만.
“그들은 여성이 날씬하면 손을 대고, 뚱뚱하면 막 대한다.” (p.40)
작가의 글은 내게 화두가 된다. 딸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는 더욱 그렇다. 100% 동의한다. 예전보다는 나아졌다는 말들을 하는데, 정말 그럴까 싶다.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소유물로 간주하는 남성이 많다. 애인, 아내, 자식들에게도 그렇다.
“우리 집은 아버지의 오랜 실직 등으로 쭉 가난했다. 엄마가 내 저금통을 살짝 가져다가 생활비에 보태 쓴 뒤 도둑이 훔쳐 간 거라고 둘러댈 정도로 가정 형편이 최악이었다.” (p.180)
“잔뜩 화가 난 아버지는 나에게 손찌검을 하다 말고 마루에 놓여 있던 케이크 상자를 가져와 안방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아예 발로 밟아 뭉개 버렸다. 어떤 모양이고 어떤 맛일지 궁금해 살짝살짝 엿보던 내 인생의 첫 번째 생일 케이크는 그렇게 엉망으로 짓눌려 북구 불가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p.182)
지난 책에서는 자세하게 소개하지 않아서 몰랐다. 어떤 기분으로 저 내용을 책에 실었는지 가늠할 수 없다. 작가를 응원하는 팬의 마음은 단 하나다. 그저 과거의 상처에서 조금이나마 치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원룸 한 칸에 둘이 사는 젊은 부부 사이에 끼어 살겠다고 내가 거기로 간 건 정말 ‘도른자’였다.” (p.210)
“처제, 그래요. 뭔지 몰라도 씁시다. 쓸게요. 뭐, 내가 나중에 벽에 똥칠하면 처제가 간호라도 해주겠지? 내가 신장 아프면 혹시 하나 떼줄지도 모르고...” (p.218)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도른자’였을 지라도, 가족이 된 식구들끼리는 ‘도른자’가 아니다. 작가를 진정으로 아끼고 감싸준 사람들이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작가의 2쇄를 구입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작가에게 진정한 가족이 생겨 다행이다.
“내가 세상에 호된 어퍼컷을 맞아 쓰러져 있는 동안 우리 가족은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할 태세로 나를 기다려 주었다. 이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부레옥잠처럼 둥둥 떠다니는 인생이지만, 이 빚을 꼭 일부라도 갚고 싶다. 부디 기다려 주세요. 나의 사랑하는 채권자들이여.” (p.222)
진정한 가족의 품 안에서 편하고 안정된 부레옥잠이 되었으면 좋겠다. 천적도 없고, 날씨도 궂지 않아 한참을 둥둥 떠다녀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방해하지 않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작가의 ‘과거’ 얘기가 그만 등장하는 글을 많이 써주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가족들과 겪는 소소한 일상만으로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충분하다.
둥둥 떠 있는 부레옥잠이 훅 하고 가라앉지만 앉는다면 기꺼이 기다릴 수 있다. 빚은 갚지 않아도 되니, 부디 놓지는 않았으면 싶다.
받은날 바로 읽기 시작해서 한시간만에 뚝딱 다읽어버렸다. 너무 재미있어서.
김현진 글 잘쓰는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리 흡인력이 대단할줄이야.
그녀의 글은 참 맛깔지고 정직하고 순수하다.
보면서 재밌기도 하면서, 아니 이렇게까지나.. 할 정도로 신산한 그녀의 삶이 나한테 전이되는 느낌이 들어서 한편으로 마음이 무척 아프기도.
더 좋은 그녀의 글을 보고싶기도 하면서, 이젠 좀 그녀의 몸과 마음에도 평화가 깃들기를...기원한다.
어디서라도 열심히 달음박질치고 있는 사람을 보면 김현진을 떠올릴 것 같다. 그리고 열심히 뛰고 있는 그녀 뒤에서 "힘내!" 하고 응원해줄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 살아있는 시체같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때때로 느끼는 어떤 공허에 그런 느낌을 받은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 며칠 동안 무거운 침잠에 빠져있었다. 배가 고파도 음식물이 땡기기 보다 이런 와중에도 배가 고픈게 스스로 딱했다. 이미 지나간 일들에 대한 회환의 침잠은 부질없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그래도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수 없으니 더 깊은 침잠에 빠지기전에 빠져나오고자 책을 찾았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은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이다.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는 가난과 구타를 비롯한 가정폭력, 심각한 자해, 불면, 우울증 등을 겪어 온 저자의 삶이 녹아져있는 도서로 2019년 6월부터 시작한 에세이 매거진 <살려줘요 김현진>에 실린 글 중 몇을 뽑아 묶은 것이다.
도서의 뒷표지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님과 번역가 노지양님의 추천사가 남겨져있는데, 두분 모두 책 속에 작가 특유의 유머와 해학이 녹아져 있음을 칭찬한다. 하지만 필자는 추천사에 낚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50페이지까지 읽었을때 이 책에서 유머나 해학을 필자는 느끼지 못했다. 필자가 빠진 침잠 때문인걸까? 책을 끊어내기보다 다른 사람의 리뷰 두 건을 보았다. 두 건 모두 '처음에 낚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뒤에 갈수록 폭소를 터뜨렸다.'는 평이 남겨져 있었다. 이 리뷰를 보고 필자는 다시 51페이지 부터 읽어내려갔다. 그렇게 끝까지 읽어보았다.
하지만 필자는 책을 읽으며 폭소를 터뜨려보지 못했다. 설핏설핏 드러나는 미소도 없었다. 웃음 코드가 달라서 인건지 작가 특유의 유머를 필자가 이해 못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예를들어 '수면제 때문에 죽는게 아니라 수면제를 삼키느라 마신 물 때문에 배 터져 죽겠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도 필자는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페이지를 넘겼다.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를 읽으며 필자는 웃지 않았으나 읽고 난 뒤 밥 한 술을 떴다. 필자가 책을 다 읽었을 때는 ㅡ 침잠에 빠져 배고픔을 무시하고 있다가 ㅡ 배고픔을 잊었을 시간이었다.
한마디로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를 표현하면, 이 도서는 필자에게 '이제 밥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 그리고 이게 필자가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에 대한 리뷰를 쓰게 된 이유다. 밥 한술을 뜨지 않았다면 리뷰를 쓰지 않았거나 아주 짧게 '필자와 맞지 않았다' 정도로 마무리 했을 것이다.
리뷰를 마무리하며 첨언하자면 도서를 읽으며 필자는 저자가 참 멋있다고 느꼈다. 누군가 어떤점에서? 하고 묻는다면, 필자는 "저자는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다른 누군가를 저주 한다거나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안녕(安寧)을 기원하고 있다." 또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았다" 고 답할 것이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우울해지는 나는 SNS를 통해 이 책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래, 나보다 더 우울한 사람에게 어떤 농담 같은 일들이 벌어지나 궁금하기도 했던 나는 작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대뜸 책부터 구매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놀랍게도 어느 정도 우울을 덜어냈다는 것이다(!) 피식피식 웃다 보니 어두웠던 마음에 조금씩 빛이 드는 기분이랄까.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적절한 유쾌함으로 풀어낸 책. 주변 사람에게 소홀해질 때가 많은데 항상 관심과 친절에 고마워하고, 반대로 나도 상대의 우울을 가볍게 치부하지 않고 함께 고민하고 위로해 줘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어떤 작가의 책을 한 권 읽고나면
그 작가의 전작이 모두 궁금해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리고 지금 김현진 작가의 전작들을 하나씩 읽어볼까 생각중이다.
작가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의 글을 제대로 읽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완전 빠져버렸다.
제목부터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김현진이라는 사람의 본질적인 캐릭터가 아니고서는
이런 경험이, 이런 글이 또 이런 깨달음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삶이 농담을 시작했으니 이제부터는 꽃길만 걸으시길 기도해보다.
어느덧 고전영화가 되어 버린 매트릭스(1편)에서는 데자뷰를 이렇게 묘사한다. 매트릭스 시스템이 세계에 개입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사소한 오류.
이 책 <농담을 시작했다... >에도 독특한 일그러짐이 있다. 읽어 보신 분들은 느끼시리라. 회장님의 비서가 안고 다니는 개라든가. 잘생겼지만(!) 어딘가 얼빵한 건달이라든가. 드라마퀸에 빙의한 대표님이라든가.
이상한 사람들만 유난하게 골라서 작가가 조우하는 걸까? 하여간 괴상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뭔가…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데자뷰처럼.
하지만 그 이상한 사람들의 일부만 떼어놓고 잘 관찰해 보면, 이상한 것은 그 일부분들이 아니다. 이를테면 얼빵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잘생긴 사람도 어디에나(아닌가?) 있다. 하지만 건달과 그 얼빵함+잘생김이 결합하니 초현실적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의 특이함, 다시 말해 포인트는 조합의 의외성이다. 우리가 서로 같이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세계의 측면들이 이 책에서는 함께한다. 이 책이 주는 괴이한 독특함은 그래서이리라. 매트릭스 식으로 묘사하면, 작가는 관념적으로 구축된 세계의 버그를 발견한 것.
사실 이것은 농담의 영역이다. 그 반대는 진부함이다. 농담은 기본적으로 뜬금없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속에 진실이 숨겨야 한다. 그것을 불러오는 것이 인물의 독창성이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작가의 감수성인데, 그로 인해 우리 독자들은 가짜 같은 현실로 초대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