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구매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마, 예스24의 홈페이지 메인에 있었는데..17년 동안 모든 것을 끊은 숲속 승려가 쓴 책이라는 부분에서 인생의 지혜를 얻고자일 것 같다. 그리고 읽어나간 이 책은 몇 마디의 기억에 남은 말들과, 마지막 죽음에 대한 부분에서의 폭풍 눈물일 것이다. 죽음에 대하여 읽고 인생과 죽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하는 요즘이기에, 내가 그 부분에 가장 집중한 것일까. 혹은 이 책은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하거나, 인생의 지혜는!!하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흐르듯 이야기를 하고 있었서일까. 첫 부분은 조금 실망이었고(숲속 승려의 에피소드 같은 부분), 뒤에 작가가 승려를 그만두고(승려도 퇴사! 은퇴!를 할 수 있다. 당연하지만 생각하지 못한 전개였다.) 나서 일어난 부분에 오히려 더 인간적인 공감을 하고, 아버지와 함께 죽음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할 때는 줄줄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다. 그와 함께 책의 60프로 정도까지는 깨끗하게 읽고 다시 중고서적으로 책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끝에 가면서 주옥같은 이야기들, 공감가는 말들,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들과 함께 꼭 소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앞부분이 공감가지 않았다든지, 감동받지 않은 이유는 나와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여서 일듯 하다. 젊은 나이에 임원까지만 하면서 누가봐도 부러워하던 청년이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갑자기 숲속 승려가 될 생각을 하다니! 나같이 속물이고 세속적인 물질주의에 찌든대로 찌들고, 핸드폰없이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전개하고 있는 승려가 된 이야기, 승려가 된 후 이야기는 사실 몰입을 하면서 읽어나가기에는 어려웠다. 가독성은 좋지만 나와 너무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할까! 이런 삶은 나에게 있어 거의 마블 이야기에 나오는 영웅만큼 먼 이야기같이 느껴졌다. 아니, 오히려 마블의 영웅들이 더 가깝고 나에게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다. 숲속의 승려가 되어 하루에 한 끼의 밥을 먹고(물론, 사원에 따라 밥의 횟수는 달랐지만) 돈을 사용하지 않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다니. 최대한 부처가 살던 때와 마찬가지의 생활을 하는 것인데, 내가 이런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하늘에 철갑을 입은 사람이 날아다니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
하지만 충격적으로 작가는 그렇게 17년 승려 생활을 하고나서 마음 속에 분명한 목소리를 듣는다. "이제는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라는 목소리이다. 즉, 승려의 옷을 벗어던지고 이제 다시 현실의 세상, 속세로 나와야한다는 본인의 목소리이다. 17년 동안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현실의 뉴스도 모르고 살아왔던 그는 마음 속의 이 소리 때문에 괴로워하면서 현실로 나오게 된다.
우리는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하여 큰 결정을 할 때 잠깐 생각에 잠겨보기도 하고, 생활 속에서의 신호들을 읽으려고 하였다. 그것은 퇴사라든지, 이사라든지, 혹은 결혼이라든지 하는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내면의 목소리는 갑자기 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자신에게 "어떻게 하고 싶어?"하고 물어보면서 듣는 것이었다. 이 목소리는 사실은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라, 나의 욕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었을 수도 있다. 조건과 두려움이 없다면 내가 어떻게 하고 싶어하고 묻는 것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또한 내면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행동에 대한 계기와 계획이 없었는데 갑자기 마음 속에 들리는 생각으로 승려의 일을 그만하기로 한 작가. 이 때부터의 시간은 급박하게 흘러간다. 17년 숲속의 시간이 천천히 큰 드라마없이 마음속 고민없이, 수행과 고행 고행과 수행으로 흘러갔다면, 숲속을 나온 시간은 우리가 매일 보는 바쁜 현대인들처럼 빠르게 흐른다.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나온 작가는 17년 전 끊긴 훌륭한 경력, 연락이 끊긴-혹은 연락이 와도 본인이 쉽게 마음을 다시 열지 못하는 친구들, 부모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경제상활으로 괴로워한다. 세상에서 그는 그의 이력서로 평가받고 17년 수행을 한 사람이라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게 된다. 그러면서 그가 겪고 배운 일을 알려주고 명상에 대하여 강의를 하게 된다. 그렇게 "내가 틀릴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의 바탕, 그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간과 활동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그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죽음이라는 친구 역시 새롭게 마주보게 된다.
그 후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필사하고 싶은 부분이 정말 많았다. 내가 결국 집중하는 부분은 속세의 부분인것인지, 17년의 경험 후에 현실로 나와서 그가 알게 되고 생각하게 된 것이 더 현실적인 도움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숲속에 있는 순간 무소유의 삶으로 살면서 얻게 된 지혜보다는, 현실속에 나와 생각하고 알게 된 것들은 가슴에 하나하나 와 닿았다.
그렇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지혜로와졌다는 생각은 없다. 공감하고 얻은 이야기는 있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느낌은 없었다. 다만,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언제나 사람들이게 친절하라는 그의 말, 업보에 대한 그의 말, 죽을 때는 아무것도 들고 가지 않기에 살아 있을 때 가져야 할 마음과 정신에 대해서는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다. 이 부분은 새해마다, 아니 한 해에 두 세번 다시 들여다 보면서 나의 삶에 대한 자세를 다지고 싶었다.
연명치료를 세게(!!)하는 우리 나라의 현실과 다르게 안락사도 가능한 나라. 죽음에 대한 준비. 아버지의 병상이 아닌, 죽음상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켜 놓고 작별 인사를 하고, 농담을 하는 그들. 죽은 후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와 사후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종교적인 아들. 그래서 죽은 후,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가 "거봐요!"하고 이야기했다는 것을 기억해내라는 대화. 정말,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없는 죽음에 대한 준비였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책도, 존엄사에 대한 책도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죽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을 멋지게 포장할 수도 있고, 혹은 마지막은 정말 비참했다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죽음과 삶은 맞닿아 있는 존재이고 우리는 죽음의 순간과 시간을 고를 수 없기에, 늘 오늘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죽음은 탄생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그렇게 삶과 죽음은 맞닿여 있기에, 이 책에서 안락사를 선택하고 삶에 대한 마무리를 하는 모습은 결국 이 책을 완성체로 만드는 느낌이었다. 죽음마저 우리 삶의 모습이기에 청년기에서 시작된 그의 이야기는 끝에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죽음을 노래하면서 끝이 난다.
책을 읽고나서 다시 표지를 보았다.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수업. 그렇구나. 마지막 인생수업이었구나. 표지를 보고, 다시 한 번 펑펑 울다가 책을 책꽂이에 두었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다시 예스24에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제와 오늘 책을 반넘게 읽으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책의 광고에서처럼 이 책을 17번인가? 그렇게 읽어갈 것 같지는 않지만 분명히 두세번은 더 읽을 것 같다. 읽으면 읽을 수록 더욱 얻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틀릴수도 있지만.
이 책은 스웨덴의 명문 대학 명문 학과 졸업,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며 20대 임원제의, 갑작스런 태국 밀림의 숲속 사원에 귀의 후 푸른눈의 승려로써 17년의 수행, 다시 속세로 돌아와 본인의 깨달음을 대중에게 전파하게 된 정말 독특하고도 독특한 이력을 지닌 저자가, 루게릭 병 진단을 받은 뒤 지금까지의 삶에서의 깨달음과 다가올 죽음을 앞두며 느꼈던 본인의 생각들에 대해 차분하게 써내려간 내용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우연히 “알쓸인잡”에서 치매 환자들의 생각에 관해 다룬 영상 하나를 보았는데, 해당 영상에서 출연진들이 나누던 이야기 내용에 의하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대개 부정적인 생각 보다는 주변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와 사랑의 말을 남기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시로 세월호 희생자들이 생의 마지막에 핸드폰에 남긴 메시지들은 거의 그동안 전하지 못한 미안함과 고마움과 사랑에 대한 말로 가득차 있었다는 대목에서 약간 울컥했다.)
위 영상의 내용을 보며 한편으론 놀란게 때 마침 읽었던 이 책의 저자가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 또한 위 영상의 내용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루게릭병으로 인해 본인이 스스로 할 수 있었던 많은 사소한 일상적인 행동들이 점점 불가능할 정도로 신체 능력이 떨어지고 죽음이 목전에 서서히 다가오는 상황에 처했는데, 그 죽음으로 향하는 일련에 시간 속에 일생동안 알게 모르게 그가 행했던 잘못에 대한 뉘우침과 사과의 말을 전하고, 그 동안 그와 함께 했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못다한 감사한 마음과 사랑의 말을 전하고자 하였다. 심지어 점점 기능이 떨어져 가서 아무 쓸모가 없어져 가는 그 스스로의 육신에게 조차도 “그동안 나에게 많은 경험을 해주느라 고생했다”며 고마움의 마음을 표현하는 글을 남긴 대목에선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이 책의 추천사를 보면 “다시 돌아가고 싶은 페이지를 접고 줄 그으며 읽다 보니 모든 페이지를 접고 줄그었다” 라는 대목이 있다.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 다시 읽고 싶은 페이지는 폰카메라로 찍어서 저장해 놓는 습관이 있는데, 거의 모든 페이지를 다 찍을 뻔 할 정도로 문장 하나하나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느끼게 만들었던 책이었던 것 같다. 정말 고르기 어려웠지만 이 책에서의 인상 깊었던 대목 두개를 골라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친다.
“영적 성장의 결정적인 도약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내는 데서 이뤄집니다. 우리의 무지를 편견으로 가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 집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맺는 온갖 관계 중에서 단 하나만이 진정으로 평생 이어집니다. 바로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연민과 온정으로 이루어진, 사소한 실수는 용서하고 또 털어버릴 수 있는 관계라면 어떨까요? 자기 자신을 다정하고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제 단점에 대해 웃어버릴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거리낌 없이 보살핀다면 또 어떨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 전체가 반드시 좀 더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우리 안의 고귀한 마음가짐이 흘러넘칠 것입니다.”
#내가틀릴수도있습니다 #비욘나티코린데블라드 #다산초당 #다산북스
많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갈 때...........
p92
우리는 해변에 쓸려온 자갈과 같다네.
처음엔 거칠고 들쭉날쭉하지.
그런데 삶의 파도가 쉼 없이 밀려온다네.
우리가 그곳에 머물며 다른 자갈들 사이에서 거칠게 밀쳐지고 비벼지다 보면,
날카로운 모서리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닳게 된다네.
결국 둥글고 매끄로워지지.
그러면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게 될 걸세.
p130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스웨덴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굴지의 대기업 임원이 된 남자.
그는 어느 날 사직서를 낸 다음 모든 재산을 나눠주고 태국 어느 사원에 들어가 승려가 되는 고행을 시작한다.
오랜 세월 승려로 지내다 평범한 삶으로 돌아와 강의 등을 하며 살다가 루게릭 병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지만 그는 아주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기도 하며 어우러져 살아간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은 다 잊어버려도 좋다
하지만 책 제목만은 꼭 기억하며 일생을 산다면 우리의 삶은 아름답고 평화로울 것 같다.
불교를 좋아하는 북유럽인이 승려 생활을 체험하고 얻은 지혜를 나눠주는 책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틀릴수도 있다는데 이번엔 정말 틀렸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삶이 깨달음이 되고 가르침이 되기는 이토록 고되구나. 작가는 본인이 치룬 전투에 대해 담담하게 들려준다.
고생했다는 말을 해주고싶다. 초반에는 쉽게 씌여진 글들로 판단했다. 내가 오만했다.
삶과 죽음이란 주제는 익숙하면서도 막상 깊게 생각할 일이 많지 않다. 어른이 되고 맞서기 두려워서 못본척 회피했던것은 아닐까?
감사하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친절하자는 작가의 메세지가 깊게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작가의 삶을 읽으며 나의 삶을 생각한다. 생각해보게 된다. 중요한 것과 아닌 것, 버릴것에 대해 생각한다.
친절한 사람이 되고자했던 다짐을 떠올린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내 안에 이미 있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 나는 할 수 있을까.
과거와 미래라는 양 어깨에 짊어진 짐을 잠시 내려놓고자 한다.
생각을 잠시 멈추고 떠오르는 너무 많은 생각들을 다 믿지 않기로 한다.
도움이 된다.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수업
I May Be Wrong
2022년 1월,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없이 떠납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그러자 스웨덴 전역에 거대한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수많은 스웨덴인들을 불안에서 끌어내어 평화와 고요로 이끌었던 그는 2018년 루게릭병에 진단받은 후에도 유쾌하고 따뜻한 지혜를 전하며 살아갔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는 20대에 눈부신 사회적 성공을 거뒀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숲속으로 17년간 수행을 떠났던 저자의 여정과 깨달음, 그리고 마지막을 담은 책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삶에 감동과 용기를 전해주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마법의 주문을 알려주고자 합니다.
갈등의 싹이 트려고 할 때, 누군가와 맞서게 될 때, 이 주문을 마음속으로 세 번만 반복하세요. 어떤 언어로든 진심으로 세 번만 되뇐다면, 여러분의 마음속 근심은 여름날 아침 풀밭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자, 다들 그 주문이 뭔지 궁금하시죠?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막연한 관념과 의지대로 삶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지혜와 행복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극히 무지하다는 것을 이해할 때 지혜가 싹틉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다 믿지는 말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생각을 어떻게 내려놓을까요? 일단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야 합니다. 생각이 일어나도록 부추기는 유일한 요소는 바로 우리의 관심입니다.
나를 계속해서 괴롭히던 고민 대신 호흡처럼 덜 복잡한 신체 활동으로 관심을 의식적으로 돌린다면, 내면의 혼란에서 잠시 벗어나 여유를 찾는 동시에 치유 효과도 누릴 수 있지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힘든 시절조차 영원히 지속되진 않지요.
마음속에 불쑥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믿을지 말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괴짜들의 공동체
우리는 해변에 쓸려온 자갈과 같다네. 처음엔 거칠고 들쭉날쭉 하지. 그런데 삶의 파도가 쉼 없이 밀려온다네. 우리가 그곳에 머물며 다른 자갈들 사이에서 거칠게 밀치고 비비다 보면, 날카로운 모서리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닳게 된다네. 결국 둥글고 매끄러워지지. 그러면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게 될 걸세.
인간만이 자산과 맞지 않는 다른 존재를 성가시다고 여깁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요.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편하게 여길 때 우리는 엄청난 기운을 소모하게 됩니다. 우리의 힘이 줄줄 흘러나갈 구멍이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다행히도 그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좀 더 편하게 지내고 싶고, 그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게 행동했으면 한다면 기실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지요. 그들을 그 모습 그대로 좋아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민감한 감지기가 있어서, 누군가가 자기를 경계하거나 거리끼는 마음이 있으면 금세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 낌새를 감지한 사람은 자신감이 떨어지고 기분도 상합니다. 마음을 잘 열지 않게 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감정에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됩니다.
진정 성장하려면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번뇌에서 멀어지고, 설사 번뇌에 빠지더라도
금세 벗어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무작정 믿지 않아야 합니다.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아야 합니다.
현재 상황을 온전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온 우주가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운행된다는
근본적 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때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음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용기를 낼 때 성장합니다.
우리의 무지를 편견으로 가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대로 앞일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참아낼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가장 현명해집니다.
이 책을 읽게 된 건, 지인의 추천이었다. 최근 읽었는데 좋았다고 했다. 외국의 스님의 책이라며 소개를 받았는데, 나는 예전에 이 책의 책 제목만 보고 국내 에세이인 줄 알았다. 워낙 문장형의 에세이들이 많지 않았나.
이 책이 서양인이 불교에 귀의하는 내용으로 끝났다면, 가볍게 읽기 좋다라고 평하고 끝내겠지만, 17년의 수행을 끝내고 일반인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정을 한 부분에서부터 이 책이 소설이 아님에도 몰입했다.
모두가 선망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불교에 귀의한 것도 내면의 목소리를 따른 것이었고, 17년의 수행을 그만두고 일반인으로 돌아간 것도 내면의 목소리를 따른 행동이었다. 저자의 두 결정에 나는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은 게 언제인가 생각해봤다. 아직 내게는 나의 불안이 만들어내는 허상의 목소리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갈구하는 목소리를 구분할 수 없다.
이 책의 마지막은 저자가 루게릭병을 진단받아 삶에 대한 태도를 사뿐히 쥐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데서 끝난다.
남의 이야기라 책은 쉽게 읽혔고, 쉽게 넘어갔다. 다만 내가 이 책을 통과함으로서 얻은 의문이 쉽게 사라지질 않길 바라지만, 나는 오늘도 잠들고 내일 아침도 출근하며, 또 다시 내 내면의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상을 보낼 예정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한 번은 내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봐야하지 않나하는 아주 작은 의문과 염려와 희망이 조용히 마음 속에 쌓여있을 것이라는 건 확신한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임원까지 초고속 승진을 했던 저자.
모두가 보기에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그는
밀려오는 정신적 압박감과 불안감에
매일 매일 지쳐 살아가던 중 홀연히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모든 것을
처분한 후 태국 숲속 승려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17년을 숲속 승려로 살았던 그는,
환속하여 자신이 찾았던 내면의 평화를
사람들에게 들려주며 새로운 세상에서의
즐거움을 알아가는데, 루게릭 병이라는
끔찍한 병을 진단받게 된다.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가 남긴 지혜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깨달음을 남겨 주고 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히지 마십시오.
당신의 생각을 놓아주십시오.
그때 불안과 걱정도 함께 떠날 것입니다."
그 어떤 심리학자가 썼던 책 보다도
마음에 와닿고 위로가 되었던 책이다.
거창한 가르침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의 나 자신이 제일 나 답게
나를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게
이야기를 해 주는 책이랄까..
생의 마지막까지 비범했던 그였지만
오만하지 않았던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