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구아포, 미 소플레테, 하비비, 나의 카나딤, 나의 하야티.
‘미 구아포’는 ‘나의 멋쟁이’, ‘미 소플레테’는 ‘나의 횃불’이라는 뜻의 스페인어, ‘하비비’는 ‘내 사랑’이라는 뜻의 아랍어래요. ‘카나딤’은 아마도 ‘날개’, ‘하야티’는 ‘생명력’을 뜻하는 터키어에서 따온 애칭일 거라네요. 이 모든 사랑스러운 단어 앞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에요.
편지를 쓴다는 행위가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한동안 기록되는 걸 두려워했거든요. 영원의 약속이 깨지는 것까진 괜찮아요. 그러나 나 자신이 여러 번 번복되다 보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지죠. 선물할 때 나는 내 이름으로 서명하지 않고 ‘2020년 2월 1일에 당신을 사랑하는 친구로부터’와 같이 적곤 했어요.
어쩌면 영원의 약속을 두려한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실은 이름 없는 이 문장만으로 나를 떠올려주길, 나의 생김새와 나의 표정과 나의 분위기가 당신을 휘감길, 그렇게 영원이 존재하길 바라는 욕심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죠. 나는 언제나 욕심이 많았으니까요.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존 버거의 『A가 X에게』라는 소설을 읽었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는 연인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으로 소개하기도 했죠. 옛 교도소 73호 감방의 수납 칸에서 발견된 세 개의 편지 뭉치를 엮은 책이에요. 테러리스트 단체를 결성한 혐의로 이중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비에르가 수감되어 있던 곳이죠. 사비에르는 그의 연인 아이다가 보낸 파란색 편지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정리해두었고, 편지 뒷장에는 메모를 하기도 했어요. 작가는 아이다가 보내지 않은 편지까지도 비밀의 경로로 구해서 적당한 위치에 끼워두었다고 해요. 그런 편지 말미엔 괄호 안에 ‘보내지 않은 편지’라고 적혀 있어요.
편지 뭉치를 묶은 천 조각에 적힌 글들이 재미있어요. 첫 번째 편지뭉치엔 ‘우주는 기계가 아니라 뇌와 비슷하다. 삶은 지금 말해지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다. 최초의 현실은 이야기다. 이것이 내가 기술자로 지내며 알게 된 것이다.’ 두 번째 편지뭉치엔 ‘우리는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니다ㅡ우리는 그것을 지켜 준다.’ 마지막 세 번째 편지 뭉치엔 ‘집 땅'이라는 두 단어가 적혀 있었대요.
처음엔 이 소설을 구상하는 작가를 상상했어요. 편지를 쓰고, 편지뭉치를 흩트리고, 요리조리 배열하는 작가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덧 영국의 중년 남성 작가는 사라지고 아이다란 가명을 지닌 단호한 눈빛의 여인이 앉아 있어요. 오감의 감각을 그림 그리듯 표현하는 여성이죠. 어느새 나는 감옥에 갇힌 사람이 되고, 편지를 쓴 여인을 사랑하게 돼요. 멋진 경험이었어요. 나는 다시는 누구도 사랑하지 못할 줄 알았거든요.
코기토, 에르고 숨.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라틴어에요. 데카르트가 한 말이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사비에르의 메모 중 이스라엘의 항공보안전문회사 SDS에서 제조한 ‘코기토 1002’가 언급돼요. 몇 가지 질문에 따라 손의 생체반응이 기록되고, 이 사람이 주의인물인지 아닌지 밝히는 기계죠. 이름이 ‘코기토’라는 게 아이러니컬할 뿐, 사비에르는 교도관이 좋아할 기구라고 냉소적으로 말해요. 나는 이와중에 내가 코기토라는 단어를 알고 있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자랑스러웠어요. 넌지시 건넨 비밀스러운 눈짓을 알아챈 기분이랄까요. 당신이 알려준 단어잖아요.
나는 성당이나 절이나 교회나 성스러운 장소에 갈 때면 두 손을 부여잡고 기도하는 시늉을 내며 눈을 감곤 했죠. 그러면 나도 모르게 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와요.
ㅡ부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건 누구일까요? 나는 알고 있어요.
함께 바다에 가고 싶어요.
당신의 Y.
(보내지 않은 편지)
# 작가의 다른 작품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
# 읽고 나서.
아이다와 사비에르 사이에 주고받은 사랑의 혹은 고통의 속삭임이다. 사비에르가 저항했던 사상이나 단체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약자의 입장에서 싸우고 (아마도) 주동자로 잡혀가 그는 이중 사형을 받게 되고 만다. 그와 아이다는 아직 결혼한 관계가 아니라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면회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결혼 허락을 요청하지만 그것마저 번번이 거절되고, 소설은 아이다가 사비에르에게 보낸 편지글 중심으로, 그리고 사비에르가 편지 뒷면에 중간중간 메모한 것들을 보여준다.
앞장서 싸운 열혈청년 사비에르는, 짧은 메모 사이에 급진적인 성격이 보인다.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는 젊은 청년. 아이다는 약국에서 일하며 그녀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불행한 사람들을 돌보며 자신도 위로받는다. 그들의 성격, 그리고 삶을 구원하는 약국과 2중 사형이 내려진 교도소 사이는 그들의 이름 첫 글자들 A와 X 알파벳 거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사이에 끊임없이 사랑이 흐른다.
연인을 보지 못하며 자신의 손 스케치를 보내는 아이다. 따뜻한 그녀의 눈으로 본 고통은 그래서 더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그 먼 거리를 그들은 매울 수 있었을까.
존 버거 작가 추천을 여기저기서 많이 받았는데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아직 첫 권일 뿐이지만,,,) 왜 좋아들 하시는지 알 것 같은 기분. 대여로 읽었는데, 소장하고픈 책이다. 다른 책들도 대기 중.! 짧은 책이었는데 밑줄이 정말 많았다.
*밑줄
나도 방금 한 가지 결정을 내렸어요. 우리 결혼하는 게 어때요? 당신이 청혼하고, 내가 '네'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그런 다음 그들에게 부탁해봐요. 그들이 허락하면, 내가 당신을 찾아가 결혼식을 올리고, 그럼 앞으로 영원히, 매주 한 번씩 면회실에서 만날 수 있어요!
매일 밤 당신을 조각조각 맞춰 봅니다 - 아주 작은 뼈마디 하나하나까지.
며칠 전에 안드레아가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어요. 당신과 나 말이에요. 그녀에게 얘기해 줬죠. 이제 당신에게도 해주고 싶어졌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요. 우리가 과거의 죄수들은 아니니까. 과거에 관해서라면 우리가 원하는 그대로 할 수가 있어요. 우리가 할 수 없는 건 그 결과를 바꾸는 일이겠죠. 우리 함께 과거를 만들어 봐요.
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잊히는 것과 영원한 것이, 결국에 가서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틀렸어요.
희망과 기대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처음에는 그저 지속되는 시간에서만 차이가 있는 줄 알았죠. 희망이 좀 더 멀리 있는 일을 기다리는 거라고 말이에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기대는 몸이 하는 거고 희망은 영혼이 하는 거였어요. 그게 차이점이랍니다.
멀리 살지만 여기 - 그는 자기 손을 가슴에 갖다 댔어요 - 도 살지. 다들 다른 곳에 살지만 여기서 모이는 거야. 그는 손가락을 펴서 심장 있는 곳을 가리켰어요.
우리는 미래에 있어요. 알 수 없는 미래가 아니에요. 우리는 이미 시작된 어떤 미래 안에 있어요.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딴 미래 안에 있는 거예요. 내 손을 잡아요. 나는 당신 손목에 있는 상처에 입을 맞춰요.
모든 사랑은 반복을 좋아해요. 그것은 시간을 거부하는 것이니까요. 당신과 내가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눈을 감고 생각했어요. 지속되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을 할 때만은 승자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남자를 알아보는 여자들과, 함께 겪었던 패배 덕분에 서로를 명예롭게 생각하는 남자들이죠. 그게 오래 지속되는 거예요.
왜 눈물이 났던 걸까. 의자를 고치는 건 이렇게나 쉬운데 나머지 일들을 너무 어려워서? 아니면 이젠 의자 고치는 일 같은 걸 당신에게 부탁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당신에게!
우리를 두렵게 하는 건 작은 일이에요.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 거대한 일은, 오히려 우리를 용감하게 만들어 주죠.
그녀는 삶이란 하나의 사고일 뿐이라고,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된 거예요. 그래서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을 주워 들고 어떻게든 다시 붙여 보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지내며 나머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지옥은 돈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고안한 것이고, 그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
왜 이렇게 고통이 많은 걸까요. 그녀가 물었어요. 온통 고통뿐이잖아요, 왜 그런 거예요? 사람들이 서로를 갈기갈기 찢는 일을 멈추지 않잖아요. 말 좀 해주세요. 정말 이유를 알고 싶어요. 어쩌다가 우리는 단지 아파하기 위해 태어난 걸까요. 제가 배운 건 그거예요. 정말 이유를 알고 싶어요.
한 편의 긴 시를 쓴 건가요?
아마 어떤 시인도 한 편 이상의 시를 쓸 순 없을 거예요, 평생 걸리는 일이죠. 어쩌면 본인은 짧은 시들을 여러 편 쓰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것들도 모두 긴 시 한 편의 일부에 불과해요.
사람들은 비밀은 아주 작은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죠? 소중한 보석이나 날카로운 돌이나 칼처럼, 작아서 숨길 수 없는 무엇이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아주 큰 비밀들도 있어요, 너무 크기 때문에 직접 팔로 그 크기를 재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숨겨진 채 남아있는 그런 비밀들. 그런 비밀들은 바로 약속들이에요.
# 작가의 다른 작품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
# 읽고 나서.
아이다와 사비에르 사이에 주고받은 사랑의 혹은 고통의 속삭임이다. 사비에르가 저항했던 사상이나 단체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약자의 입장에서 싸우고 (아마도) 주동자로 잡혀가 그는 이중 사형을 받게 되고 만다. 그와 아이다는 아직 결혼한 관계가 아니라 연인임에도 불구하고 면회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결혼 허락을 요청하지만 그것마저 번번이 거절되고, 소설은 아이다가 사비에르에게 보낸 편지글 중심으로, 그리고 사비에르가 편지 뒷면에 중간중간 메모한 것들을 보여준다.
앞장서 싸운 열혈청년 사비에르는, 짧은 메모 사이에 급진적인 성격이 보인다.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는 젊은 청년. 아이다는 약국에서 일하며 그녀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불행한 사람들을 돌보며 자신도 위로받는다. 그들의 성격, 그리고 삶을 구원하는 약국과 2중 사형이 내려진 교도소 사이는 그들의 이름 첫 글자들 A와 X 알파벳 거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사이에 끊임없이 사랑이 흐른다.
연인을 보지 못하며 자신의 손 스케치를 보내는 아이다. 따뜻한 그녀의 눈으로 본 고통은 그래서 더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그 먼 거리를 그들은 매울 수 있었을까.
존 버거 작가 추천을 여기저기서 많이 받았는데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아직 첫 권일 뿐이지만,,,) 왜 좋아들 하시는지 알 것 같은 기분. 대여로 읽었는데, 소장하고픈 책이다. 다른 책들도 대기 중.! 짧은 책이었는데 밑줄이 정말 많았다.
*밑줄
나도 방금 한 가지 결정을 내렸어요. 우리 결혼하는 게 어때요? 당신이 청혼하고, 내가 '네'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그런 다음 그들에게 부탁해봐요. 그들이 허락하면, 내가 당신을 찾아가 결혼식을 올리고, 그럼 앞으로 영원히, 매주 한 번씩 면회실에서 만날 수 있어요!
매일 밤 당신을 조각조각 맞춰 봅니다 - 아주 작은 뼈마디 하나하나까지.
며칠 전에 안드레아가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어요. 당신과 나 말이에요. 그녀에게 얘기해 줬죠. 이제 당신에게도 해주고 싶어졌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요. 우리가 과거의 죄수들은 아니니까. 과거에 관해서라면 우리가 원하는 그대로 할 수가 있어요. 우리가 할 수 없는 건 그 결과를 바꾸는 일이겠죠. 우리 함께 과거를 만들어 봐요.
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잊히는 것과 영원한 것이, 결국에 가서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틀렸어요.
희망과 기대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처음에는 그저 지속되는 시간에서만 차이가 있는 줄 알았죠. 희망이 좀 더 멀리 있는 일을 기다리는 거라고 말이에요.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기대는 몸이 하는 거고 희망은 영혼이 하는 거였어요. 그게 차이점이랍니다.
멀리 살지만 여기 - 그는 자기 손을 가슴에 갖다 댔어요 - 도 살지. 다들 다른 곳에 살지만 여기서 모이는 거야. 그는 손가락을 펴서 심장 있는 곳을 가리켰어요.
우리는 미래에 있어요. 알 수 없는 미래가 아니에요. 우리는 이미 시작된 어떤 미래 안에 있어요.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딴 미래 안에 있는 거예요. 내 손을 잡아요. 나는 당신 손목에 있는 상처에 입을 맞춰요.
모든 사랑은 반복을 좋아해요. 그것은 시간을 거부하는 것이니까요. 당신과 내가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눈을 감고 생각했어요. 지속되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을 할 때만은 승자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남자를 알아보는 여자들과, 함께 겪었던 패배 덕분에 서로를 명예롭게 생각하는 남자들이죠. 그게 오래 지속되는 거예요.
왜 눈물이 났던 걸까. 의자를 고치는 건 이렇게나 쉬운데 나머지 일들을 너무 어려워서? 아니면 이젠 의자 고치는 일 같은 걸 당신에게 부탁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당신에게!
우리를 두렵게 하는 건 작은 일이에요.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 거대한 일은, 오히려 우리를 용감하게 만들어 주죠.
그녀는 삶이란 하나의 사고일 뿐이라고,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된 거예요. 그래서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을 주워 들고 어떻게든 다시 붙여 보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지내며 나머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지옥은 돈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고안한 것이고, 그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
왜 이렇게 고통이 많은 걸까요. 그녀가 물었어요. 온통 고통뿐이잖아요, 왜 그런 거예요? 사람들이 서로를 갈기갈기 찢는 일을 멈추지 않잖아요. 말 좀 해주세요. 정말 이유를 알고 싶어요. 어쩌다가 우리는 단지 아파하기 위해 태어난 걸까요. 제가 배운 건 그거예요. 정말 이유를 알고 싶어요.
한 편의 긴 시를 쓴 건가요?
아마 어떤 시인도 한 편 이상의 시를 쓸 순 없을 거예요, 평생 걸리는 일이죠. 어쩌면 본인은 짧은 시들을 여러 편 쓰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것들도 모두 긴 시 한 편의 일부에 불과해요.
사람들은 비밀은 아주 작은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죠? 소중한 보석이나 날카로운 돌이나 칼처럼, 작아서 숨길 수 없는 무엇이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아주 큰 비밀들도 있어요, 너무 크기 때문에 직접 팔로 그 크기를 재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숨겨진 채 남아있는 그런 비밀들. 그런 비밀들은 바로 약속들이에요.
2017년에 작고한 영국의 미술비평가이자 사회비평가, 작가인 존 버거가 2008년에 발표한 서간체 소설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소설에 등장하는 편지와 인용, 메모 등을 자신이 직접 어느 폐쇄된 교도소에서 발견했다고 적었는데, 이것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소설은 약제사로 일하는 아이다(A)가 반정부 테러 조직 결성 혐의로 이중 종신형을 선고받고 독방에 갇혀 있는 연인 사비에르(X)에게 보낸 편지와 그 뒤에 적힌 사비에르의 메모로 이뤄져 있다. 아이다는 독방에 갇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연인을 위해, 자신의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오는 모든 감각들을 편지에 썼다. 설탕 한 덩어리가 없어서 사경을 헤맨 당뇨병 환자, 야간 통행금지 시간에 외출했다는 이유로 총에 맞은 소년, 아들을 감옥에 보내고 혼자 지내는 사비에르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아이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전쟁과 독재와 권력과 이념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일상이 어떻게 무너지고 파괴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찾아본 이야기에 따르면, 작가는 이 소설을 팔레스타인 작가 가산 카나파니(Ghassan Kanafani)에게 바쳤다고 한다.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의 창립 멤버이자 난민 캠프의 교사였던 가산 카나파니는 1972년 타고 있던 차가 폭파되는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진짜 사망 원인은 이스라엘 정보 기구 모사드에 의한 암살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A가 X에게 쓴 편지는 교도소 안에서 발견되었다. X는 73호 감방의 마지막 수감자였다. 그는 반정부 테러조직 결성 혐의로 이중 종신형을 받았다 (죽어서도 생애 나이만큼 시신이 감금된다.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탈출할 수 없다는 것). X가 복역 중 받은 편지 뭉치는 날짜순이 아니라 받는 사람에 의해 섞여있었는데, 그 편지들을 발견한 작가 존 버거는 책의 서문에서 이 편지 뭉치를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수록했음을 밝힌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독자는 생각하게 된다. A와 X, 아이다와 사비에르는 실재했고 편지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사실인 것일까, 하고. 존 버거는 뚜렷이 밝히지 않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허구와 진실이 만나는 지점, 날짜가 뒤죽박죽인 편지 한 장과 한 장 사이의 이야기를 메꾸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편지글 형식은 이제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이 유독 특별한 것은 한 쪽으로 전해진 편지만을 담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교도소 안에서 편지 뭉치를 발견했다는 서문 (이야기의 테마)에서 기인한 듯 보여지는데, 이런 형식이 오히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편지 뭉치 속의 A의 마음은 충분히 전해진다. 그러나 X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A의 편지글 마지막에 남긴 작은 메모뿐이다. 게다가 메모는 A에게 전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세계를 비판하는 독백에 가깝다. 그러나 분명 우리는 일방적으로 한쪽에 전해지는 편지를 보고 있으나, 편지는 우리 눈앞에서도 계속해서 진심을 담아 ‘답해지고 있는’ 듯 보인다.
“침묵은 언제나처럼 압도적이죠. 내가 받는 것은 당신의 응답이 아니에요. 있는 건 항상 나의 말뿐이었죠. 하지만 나는 채워져요. 무엇으로 채워지는 걸까요. 포기가 포기를 하는 사람에게 하나의 선물이 되는 것은 왜일까요. 그걸 이해한다면, 우리에게 두려움도 없을 거예요, 야 누르, 사랑해요.”
소설로 씌어진 편지 속엔 두 연인이 함께 했던 추억과 사랑의 언어들이 아름답게 춤추고 있다. 잊을 수 없는 문장을 한가득 담다보니, 작가가 쓴 언어들이 놀랍도록 달콤해서 순간 그들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잊어버릴 정도였다. '부재는 무가 아니'고 '당신과 나는 연결되어 있다'며 굳건하게 상황을 견디는 A의 모습은 가슴을 벅차게 만들고, 뒤이어 튀어나오는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들과 대비되어 감정을 극대화한다. 세계화와 자본주의, 가난과 불평등, 국가의 폭력과 압제에, 그들은 사랑으로 저항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강력하다.
특히 편지 속에서 많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함께 그 세계를 견디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을 바라보고, 눈앞에서 국군에게 총탄을 맞고, 함께 노래하고 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은 A와 X처럼, 저마다의 추억과 사랑과 소중한 것들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지켜내기 위하여 때로는 눈물을 흘리고 때로는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과 손을 잡으며 비극을 헤쳐나간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었다. 부수고, 수색하고, 탐문하고, 경고하고, 명령하는 세력들이 탱크를 몰고 공장으로 쳐들어왔을 때, 모두가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강철판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탱크를 몰아내는 장면. 거리에선 총소리가 들리고, 달아나던 누군가가 살해를 당한 것을 짐작하지만 그들은 용기를 잃지 않는다.
잊을 수 없던 문장과 장면의 여운이 옅어질 때쯤, 이 책을 또다시 읽겠다고 다짐했지만 아마도 오랜시간이 걸릴 것 같다. 여운은 좀처럼 옅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
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잊히는 것과 영원한 것이, 결국에 가서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틀렸어요.
영원한 것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이 옳아요. 영원한 것은, 독방에 갇힌 당신과, 여기서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당신에게 피스타치오와 초콜릿을 보내는 나를 필요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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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당신에게 이중종신형을 선고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그들의 시간은 믿지 않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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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가 무라고 믿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없을 거예요. 그 둘 사이의 차이는 시간에 관한 문제죠. (거기에 대해선 그들도 어떻게 할 수 없어요.) 무는 처음부터 없던 것이고, 부재란 있다가 없어진 거예요. 가끔씩 그 둘을 혼동하기 쉽고, 거기서 슬픔이 생기는 거죠.
●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죠, 마치 코끼리들이 긴 코로 물을 뿌리며 서로를 씻어 줄 때처럼요. 우리는 멈추지 않았고, 점점 더 미친 듯이 과장된 소리를 질렀어요. 왼팔을 긴 코처럼 내젖는 두 마리의 코끼리! 그러는 동안, 우리 둘은 각자의 수감 시절을 떠올렸고, 그 시절 농담과 함께, 우리가 연기(演技)하고 있는 건 해방의 꿈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맞아요, 미친 거죠. 무엇보다도 그 광기가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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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에 갇힌 당신은 거리를 뛰어넘을 수 없죠. 아주 짧은 거리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생각할 수 있고, 온 세상을 가로지르며 생각할 수 있어요. 그리고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고, 그렇게 거리를 뛰어넘는 것이 내 인생의 일부예요. 당신의 생각과 나의 여행, 그 둘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죠. 생각과 확장은 똑같은 무언가의 부분들이에요. 하나의 천이죠.
●
샤워하는 동안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모든 고통은, 어느, 시점에는, '아니요'라는 단어로 흘러갔다가, 다시 계속돼요. 마찬가지로 모든 즐거움은 '네'라는 단어로 흘러갔다가 계속되죠!
당신에게 나는 '네'라고 말해요. 우리가 살아야만 하는 삶에 대해 나는 '아니요'라고 말하죠. 하지만 나는 그 삶이 자랑스럽고, 우리가 한 일이 자랑스럽고, 우리가 자랑스러워요.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제삼자가 돼요, 나도 당신도 아닌, 그리고 당신도 똑같이 제삼자가 되죠. 그 어떤 '네'나 '아니요'를 넘어선 곳에서 말이에요.
말 그대로 편지로 씌어진 소설인데,
나는 편지라는 소재에 매력을 느꼈다. 존 버거라는 작가는 내가 한번도 접해 본 적 없는 소설가였지만,
소설가의 유명세보다, 인기보다 소재가 더 매력적이었다.
개인적으로 편지는 받는 사람이 이 편지를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떤 감정을 느낄지에 대해서 상상 혹은 추측을 하면서 쓰게 되는 거라 보이지는 않지만 상대가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편지를 쓰는 편인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얼마나 갇혀있는 사람에게 편지가 무게감 있는 의미가 될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존 버거의 이름을 떼어놓고 보면, 과연 내가 이 책을 읽었을까 싶다.
존 버거는 열화당과 더불어, 내가 믿고 신뢰할 수 밖에 없는 작가이고, 출판사인데...
사실, 읽는 재미가 별로 없고...읽으면서 그 상황을 그려보는 것도 어렵고, 공감도 되지 않아...애를 먹었다. 아니, 애를 먹진 않았다. 그냥 저냥 주룩 주룩 읽을만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의 편지글로 대충 상황은 짐작되는데..그렇다고, 가슴 한 켠을 울리거나 퍽~ 하고 싸다귀를 갈기고 가는 듯한 느낌은 전혀없다.
상황이 짐작만되지...내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그닥 심각하게 보이지도 않고, 애처롭게 보이지 않고...그냥 한 몇년 외국에 나가있는 남친한테 쓰는 글 같아서 많이 생뚱맞았다.
일단 각각의 편지글 말미에, 폰트가 바뀐 무슨 설명같은 글들이 있는데, 도무지 의미를 모르겠다.
편지랑 연결시키기에는 내용도 생뚱맞고...또, 내가 읽은건 재미없는 글인데, 마치 대단한 것을 부여한듯하여...그걸 포착하지 못한 내가 글을 잘못읽었나,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존버거의 글이고, 열화당의 작품이다.
나는 믿는 작가와 출판사는 뭔짓을 해도 안미워하기 때문에, 일단 책장에 꽂아뒀다가 훗날 다시 읽어보리라. 그래..내가 이해력이 부족한걸꺼야.
덧붙임::표지의 저여자, 뒷표지의 남자도 마음에들진 않는다.
#예스24 #크레마그랑데 #이북리더기 #전자책 #독서 #북클럽
<A가 X에게 : 편지로 씌어진 소설>, 존 버거, 김현우 옮김, 열화당
http://www.yes24.com/Product/Goods/45471926
↑ ebook 안내 링크
http://www.yes24.com/Product/Goods/3522838
안녕하세요 민트예요!
오늘은 북클럽에서 발견한 책 리뷰를 들고 왔어요
며칠 전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책 중, <A가 X에게>라는 소설이 있었는데
북클럽에 그 책이 뙇! 있지 않겠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바로 다운받아서 읽기 시작했죠
작가인 '존 버거'는 영국 사람으로, 저명한 미술 평론가이자 사진작가, 시인, 극작가면서 소설가였어요.
<A가 X에게>는 영국의 문학상인 부커상의 후보작이기도 했대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국 배우 틸다 스윈튼과 오랜 친구였고,
틸다 스윈튼이 존 버거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어요.
'퀸시의 사계절 : 존 버거의 4개의 초상'이라는 다큐멘터리인데, 조만간 보고 소개해드릴게요!
<A가 X에게> 는 서간체 형식의 소설이에요.
'아이다'가 감옥에 갇힌 그녀의 연인 '사비에르'에게 보내는 편지를 엮은 내용이고,
사비에르가 그 편지에 덧붙인 메모도 같이 기록되어 있어요.
사비에르는 사회 비판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이중 종신형을 선고받아요.
이중 종신형이란, 하나의 죄목에 대해 두 번의 종신형을 선고받거나 두 가지의 죄목에 각각 종신형을 선고하는 것인데,
영국이나 미국 법의 경우 보통 이십오 년 정도가 지나면 종신형을 감형해주고 석방을 시켜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중종신형은 한 번 감형돼도 두 번째 형기가 남아 있기 때문에 살아서 풀려날 가능성이 희박해요.
그들이 당신을 잡아간 이후로 '최근에'라는 단어의 뜻이 바뀌었어요.
아이다는 사비에르를 '나의 엎드린 사자', '미 구아포(Mi Guapo: 스페인어로 '나의 멋쟁이')', '하비비(Habibi: 아랍어 '내 사랑')' 같은 애칭으로 부르면서 편지로 사비에르가 없는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해요.
매일 밤 당신을 조각조각 맞춰 봅니다 - 아주 작은 뼈마디 하나하나까지.
아이다가 사비에르를 그리워하는 감정들이 문장 하나하나에 절절하게 묻어나옵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이중종신형을 선고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그들의 시간은 믿지 않게 되었'다며 절망하지만 계속 사비에르에게 인편으로 음식이나 생필품을 보내면서 편지를 보내고 있어요.
아이다는 약제사입니다. 아픈 사람들에게 약을 지어주고 상처를 돌보는 일상은 이전과 다를 게 없지만,
그 일상에 사비에르는 없고, 그래서 아이다는 자신의 모든 일상을 사비에르에게 이야기해주려고 해요.
그리고 현재를 살면서도 계속 사비에르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있어요.
사비에르는 테러리스트 조직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투옥당해요.
그는 아이다의 편지 뒤에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을 메모해두었어요.
<A가 X에게>는 연인 간의 아주 사적이고 개인적인 연애 편지지만,
이 이야기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되면서 사랑과 저항이 같은 의미로 치환돼요.
사비에르가 저항하던 권력자들이 사비에르를 감옥에 영원히 가두었으니, 아이다가 그들을 적대시할 수밖에 없고,
이 책에서는 비단 사비에르와 아이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을 지키는 사람들은
개인의 다양한 인간성을 단일하게 평가하는 사회의 불평등과 자본의 폭력성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아이다는 사비에르와 연인이지만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면회조차 거부당합니다.
그래서 혼인 신고를 하려고 하지만 거부당하고요.
부재가 무라고 믿는 것보다 더 큰 실수는 없을 거예요. (...)
무는 처음부터 없던 것이고, 부재란 있다가 없어진 거예요.
아이다는 연인의 '부재'를 견디며 일상을 살아갑니다.
이 책은 아름다운 문장, 사랑과 저항에 대한 의미 등 눈여겨볼 만한 것이 많지만
전 개인적으로 정말 인상깊었던 부분이 있어요!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 책에는 중간중간 삽화가 삽입되어 있는데요,
이 삽화들이 나중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말 본 사람만 알 수 있으니 꼭 읽어보세요!!
과연 아이다가 연인의 부재라는 비극적인 상황에 어떻게 저항했을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서간체 소설의 매력에 다시 푹 빠졌어요.
<키다리 아저씨>가 대표적인 서간체 소설이죠!
1인칭 시점은 화자의 시선을 통해서만 독자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데,
서간체 소설은 그런 특징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아요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는 화자의 생각이나 행동, 말이 전부 서술되지만
서간체 소설에서는 화자가 쓴 편지로만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만큼 주석이나 삽화를 꼼꼼히 읽으면서 책을 끝까지 봤을 때
완결점에서 느껴지는 희열이 대단한 것 같아요!
" 이루지 못한 사랑에는 화려한 비탄이라도 있지만 이루어진 사랑은 이렇게 남루한 일상을 남길 뿐인가."
작가 은희경의 "빈처"에 나오는 문장이다. 엄밀히 말하면 오류가 있는 문장이지만 분명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A가 X에게"에서의 연인들은 어느 쪽일까. 그런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내 의도가 불순했을까.
"연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만 가득 담긴 편지가 "나 자신"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자신이 쓴 글이 바로 자신이라고 믿는다면 가능하겠다. 과연 그럴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다.
일상의 남루이 배제된, 면회도 허락되지 않는 연인들의 서신으로 이루어진 사랑이야기라. 유명세에 선택했지만 반신반의하며 읽어가기 시작했다. 이루어지지 못한, 아니 이루어지길 고대하는 연인에 대한 화려한 비탄. 손발 오그라드는 흔한 사랑의 밀어로 가득찬 글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 구석 구석에서 연인에 대한 먹먹한 그리움과 그 그리움에서 스스로 위로와 희망을 찾는 그녀에게 빠져들어버렸다.
그들은 과연 그래서 만났을까. 그래서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였을까. 아니 몰라도 이미 충분하다. 아니 몰라서 충분하다. 남의 사랑이라 결말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분명 아니다.
아이다와 같은 사랑을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렇게 나만의 공간에서 훔쳐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