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생. 요미우리신문 서부 본사를 거쳐 2002년에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했다. 오카야마 총국, 오사카 본사 생활문화부, 오사카대표실, 지역보도부, ‘목소리’ 편집부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네트워크 보도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생활보호 관련 보도로 2007년과 2009년에 빈곤저널리즘상을 수상했다.
1968년생. 요미우리신문 서부 본사를 거쳐 2002년에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했다. 오카야마 총국, 오사카 본사 생활문화부, 오사카대표실, 지역보도부, ‘목소리’ 편집부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네트워크 보도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생활보호 관련 보도로 2007년과 2009년에 빈곤저널리즘상을 수상했다.
혼자 하는 일인 줄 알고 번역을 시작했다. 해보니 저자와 독자 사이를 부단히 오가는 일이었다. 의외로 행복했지만 때로는 고달팠고, 그럼에도 재미있고 가끔 지쳤다. 번역이 가져다줄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오늘도 읽고 쓰고 옮기는 중이다. 번역의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떠다니다 우연히 뜨개의 세계로 흘러들어왔다. 내가 뜬 코를 정확히 알아보는 ‘명료한 뜨개인’이 되는 것이 꿈이지만, 일단은 되는 만큼만 뜬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실과 바늘을 잡는다. 『아무튼, 뜨개』, 『번역하는 마음』을 썼고, 여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혼자 하는 일인 줄 알고 번역을 시작했다. 해보니 저자와 독자 사이를 부단히 오가는 일이었다. 의외로 행복했지만 때로는 고달팠고, 그럼에도 재미있고 가끔 지쳤다. 번역이 가져다줄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오늘도 읽고 쓰고 옮기는 중이다. 번역의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떠다니다 우연히 뜨개의 세계로 흘러들어왔다. 내가 뜬 코를 정확히 알아보는 ‘명료한 뜨개인’이 되는 것이 꿈이지만, 일단은 되는 만큼만 뜬다는 생각으로 오늘도 실과 바늘을 잡는다. 『아무튼, 뜨개』, 『번역하는 마음』을 썼고, 여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