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스윙스의 추천으로 구매해서 읽게 된 책입니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책을 추천한 스윙스님은 원서로 읽어서 더 좋게 느껴졌겠죠..? 책 내용이 상당히 어려워서 책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초보자한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시중에 자기 신뢰와 맥을 같이하면서 쉽게 풀어 쓴 책이 많이 있으니까 다른 책을 읽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나중에 지적 깊이가 더 깊어지면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당신의 선량함은 그 가장자리에선 다소 날카로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선량함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동안 나에게 있어 '타인의 평가' 는 큰 화두였다. 꽤 최근까지 나는 자아상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었고, 내 삶의 방식과 앞으로 미래 계획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었으며. 인생과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미성숙했다. 즉 나 자신의 모든 것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굉장히 크게... 거의 갈대처럼 휘둘렸다. 누군가가 칭찬을 하면 몸둘바를 몰라 했고, 누군가가 부정적인 코멘트나 평가를 하면 최소 몇 시간 동안 속상했다. 심지어는 수행한 업무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들어도 그것이 나 개인에 대한 부정적 코멘트로만 들려 불필요하게 위축되곤 했다.
하지만 작년부터 이런 경향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타인의 평가가 너무 신경쓰이다 못해 ㅋㅋㅋ 이대론 못살겠다!! 싶은 시점이 찾아왔고, 그 때부터 일기를 적으며 생각을 정리해보았던 것이 계기였다. 나를 부자유스럽게 하는 고정관념들을 나를 자유롭게 하는 생각들로 대체하고 싶어 타인의 평가를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될 근거들을 하나하나 적어나갔다. 그러면서 타인의 판단이 항상 정확하거나 옳은 것은 아니며, 대부분은 한 개인의 주관적인 의견에 지나지 않고, 내 삶에 있어서만큼은 나의 의견보다 중요시되어야 할 타인의 의견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타인의 평가' 라는 주제 외의 다른 주제들에 대해서도 내 생각을 정리해보았고, 그 과정에서 나의 판단과 선택에 대해 조금씩 더 확신을 가지게 되고 스스로가 성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경험을 거치며 누군가의 생각과 의견에 휘둘리던 기존의 방식 대신, 스스로 검토하고 판단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러던 중 랄프 왈도 에머슨의 『 자기신뢰 』 란 책을 접하게 되었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삶' 에 대해 저자는 어떻게 주장하고 있는지, 책 내용 중 내 삶에 적용할 힌트가 있을지 궁금해 서평단을 신청했다.
이 책에는 세 편의 긴 에세이, <자기신뢰> <운명> <개혁하는 인간>이 실려있는데, 가장 와닿았던 에세이인 <자기신뢰>를 위주로 서평을 작성하고자 한다. <자기신뢰>란 에세이는 다수가 따른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의 잘못된 규범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궁극적인 신성과 선의 추구 하에서 진실되고 힘있는 삶을 독자적으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골자로 한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 신뢰> 라는 에세이의 가장 큰 미덕은, 읽는 사람에게도 힘이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고, 힘 있고, 확신 있는 문장들이다. 읽으며 인상 깊어 밑줄 그어두었던 문장들을 옮겨두자면 아래와 같다.
'당신이 보기에 이미 죽어버린 관례들에는 절대 순응하지 말라. 그것은 당신의 잠재력을 흩어버리기 때문이다. 당신의 시간을 빼앗고 겉으로 드러나는 성품을 흐릿하게 만든다.'<23쪽>
'성품의 힘은 누적된다. 이전에 행한 모든 미덕은 긍정적으로 기여한다'<29쪽>
' 우리는 명예를 사랑하고 경의를 표한다. 그것이 우리의 사랑과 존경심을 구걸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자생적이기 때문이다.' <29쪽>
' 장미에게는 시간이 없다. 단지 장미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매 순간 완벽하다. (...) 장미의 자연(본성)은 충족되어 있고, 동시에 모든 순간마다 자연을 충족시킨다. '<39쪽>
' 힘은 과거의 상태에서 새로운 상태로 이전하는 순간, 심연을 뛰어넘는 순간,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순간에 존재한다. 영혼은 이처럼 되어감(becomes)을 지향한다.' <41쪽>
'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내 미약한 호기심이 그렇게 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내 곁에 가까이 다가올 수 없다. ' <44쪽>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뒷부분에 실려있는 상세한 해제이다. 이 책의 저자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1803년에 출생한 미국 저자이며, 이 책을 읽는 독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시대적/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기에 저자의 상황을 알아야 더 깊이 이해 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또한 '삶의 태도' 에 관련된 글이니만큼, 저자가 자신의 삶에서 어떤 사건을 겪고 어떤 자세로 대처하면서 이러한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통합적 이해에 도움이 될텐데, 마지막 부분의 <해제>에 이런 내용들이 잘 설명되어 있어 따로 찾아보는 번거로움을 덜었다. 책을 읽는 도중에 ' 이 부분은 구체적으로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 이 부분은 전체적인 맥락과 연관성을 잘 못 찾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는데, 본문을 다 읽고 난 후 해제를 읽으면서야 아 하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았다.
나는 『 자기신뢰 』 란 책을 읽은 후,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동기인 '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삶' 이란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어떤 것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고, 주제와 관련되어 또 다른 생각해볼 거리 - 예를 들어 '독자적' 인 것과 '독단적' 인 것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지 - 도 여럿 얻었다.
다만 한 번 읽은 것만으로는 표면와 얇은 층에 들어 있는 메시지만을 파악한 느낌이라 아쉬웠고(물론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좋은 내용이 많았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심도 있게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진가가 느껴질 무게감 있는 책이라 느꼈다. 이후에도 여러 번, 해제와 번갈아 읽으며 요약문을 작성해보는 등 심도 있게 읽어볼 예정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말할 때 빼놓지 않고 말하는 단어가 바로 '고집'이다. 어릴때부터 남달리 자기 주관이 뚜렷했다. 책을 좋아했던 성향을 여전히 잃지 않았고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따라서 계속 문학이 이끄는 길로 갔다. 그리고 아홉수, 스물 아홉의 나는 어디에 도착한 것일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하고 기쁨을 나누던 많은 날들은 이제 빛바랜 기억으로만 남았다. 왜 이 길로 온 것인가, 왜 그렇게 내 길을 확신했었나? 무수히 지나쳐 온 선택의 순간과 그에 따른 결과를 부정적으로 판단할 때마다 점점 확신이 사라졌다.
그때 마침 이 책을 만났다. 자기 신뢰라는 책을. 랄프 왈도 에머슨은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스승이자 엄청난 명언들을 남긴 1800년대 지식인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니. 그렇게 확신에 가득한 말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의 삶이란 어떤 것이고 근거가 뭔지 너무나 알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역시도 나를 믿게 되고 싶었다.
에머슨은 의외로 단호한 어조로 문장을 이어간다. 우리가 스스로를 작게 평가하고 위대하다고 칭해지는 다른 사람들을 우러러보는 모순을 저지를 때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순수한 빛과 영혼의 말을 들어야한다고 주장한다.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갖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기 때문이고 가슴이 시킨 선택을 따라 행동하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였던 모습으로 삶을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논리는 별과 우주의 세계처럼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에서부터 평범한 대중에 이르는 범사를 아우른다. 결국 스스로를 순수한 욕망으로 믿고 따르는 행동만이 운명에 맞설 수 있게 하며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 준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끄덕이기도 하고 의문을 가지며 묻고 근거를 헤아리며 오랜만에 열정적으로 독서를 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부터 시작해서 역사의 획을 긋는 위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친 이 책을 1800년대에 썼다니. 인간의 역사와 시대적 변화는 계속되지만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 방법에도 맥락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대를 초월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믿고 삶의 길을 찾아가며 거친 운명에 맞서는 것은 대단한 지식인이나 위인들에게만 주어지는 임무가 아니다. 그저 평범하고 소박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같은 사람들, 그저 인간일 뿐인 생물체 모두에게 주어지는 과제같은 것이다.
나는 나를 작게 또는 크게 혹은 어지러운 혼돈 속에서 들여다본다. 자기 자신의 삶이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맹점을 많이 가지니까. 나 자신에게 지나친 연민을 가질 때도 있고 불필요하게 냉담할 때도 있으며 어쩌지 못하는 때도 너무 많다. 그건 왜일까. 무엇때문일까. 뭔가가 부족하기 때문일까. 삶에 대한 관록이 없고 이기심이 많고 욕심이 넘치고 특별한 재능이 정말로 없기 때문일까.
이 책을 읽고나니 그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는 상태라면, 그건 정말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진정으로 내 영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귀기울여 듣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그럴듯한 직장을 갖길 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소속되길 원했던 것이고, 소설가가 되어 베스트셀러 인기 작가로 잘먹고 잘사는 것을 원했던 것이 아니라 조용히 이야기와 인물들의 삶을 듣고 받아 적어내려가는 그 시간을 즐겼던 것이라고. 낭만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을 찾고 싶었던 모든 노력은 사실 이 세상에 순수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치기어린 행동이었으며, 진짜로 내가 원했던 것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해도 될까.
내가 내 마음이 말하는 길을 따라갈 때 자꾸만 어떤 벽에 부딪혔던 이유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세워둔 벽을 그 길 위에서 떠올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고집 스럽게 걸어가는 길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그 길이 내 인생에만 존재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하는 일이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고. 내 사랑을 응답받지 못했던 이유는 사실 사랑 자체만으로도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믿는가. 믿어도 될까. 믿는다면 그것은 정말 그러할 것이다. 믿지 않는다면 그저 편협한 자기 위로나 합리화, 자기 기만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로 그러할 것이다.
20대의 끝자락 아홉수의 언덕에서 마주한 자기 신뢰라는 말은 그동안 귀닫고 눈감고 있었던 소중한 가치와 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이제 영혼의 말 소리를 들을 시간이다.
14쪽.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번쩍거리며 지나가는 빛줄기를 발견하고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각 개인에게는 음유시인이나 현자들에게서 나오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빛보다 자기 마음속에서 샘솟는 한 줄기 빛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에게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생각을 별로 주목하지 않고 그냥 무시해버린다. 천재들이 남긴 모든 작품에서 우리는 스스로 거부해버렸던 생각을 발견한다. 낯설지만 장엄한 모습으로 그 생각들은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22쪽. 나는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야지, 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실제 생활이나 정신생활에서 지키기가 아주 어려운 것이지만, 동시에 위대함과 평범함을 구분하는 결정적 지표가 된다.
35쪽. 우리가 정의를 알아보거나 진리를 알아볼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고 로고스의 빛이 우리 마음속을 통과하도록 허용할 뿐이다. 그 로고스가 어디에서 오는지 묻는다면, 또 그것의 원인인 영혼 속을 들여다보려 한다면 모든 철학은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45쪽. 나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여러분을 위해 나 자신을 길들이려 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하겠지요.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없더라도, 나는 지금 이대로도 사랑받을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감추지 않겠습니다. 나는 깊은 것이 성스럽다고 믿기에, 내 마음이 기뻐하는 대로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 강력하게 나갈 것임을 해와 달 앞에서 맹세합니다.
66쪽. 우리는 단지 자신의 극성을 따를 뿐이다. 이 저항할 수 없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다면 깊이 생각하면서 나아가야할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68쪽. 정해진 날과 정해지지 않은 날, 이렇게 두 날에
당신의 무덤에서 도망치려 해봐야 소용없다네
정해진 날이라면 어떤 약도 의사도 당신을 구하지 못해
정해지지 않은 날이라면 우주도 당신을 못 죽여.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구시대의 관습에 얽매여 많은 것들을 판단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든 올바른 것이든 '관습'이라는 이름 아래 변화를 거부하며 답습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1800년대에 목사를 하다가 교회의 관습에 반대하여 새로운 생활 방식을
찾아 목사를 그만두고 강연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에 대한 것을 부인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 구걸하는 신앙이 아닌 행동하는 신앙인이 됨을 말하고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기신뢰는 버락 오바마, 니체, 간디, 마이클 잭슨에게 영감을 준책으로많은 사상가들이 읽어왔던 책으로 한 번은 꼭 읽을만한 책으로 고전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시인 프로스트는 가장 위대한 미국인으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에머슨을 꼽았다고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왜 에머슨을 가장 위대한 미국인으로 꼽았는지 알게 된다. 그가 전국을 다니면서 강연을 하고 글을 썼던 이야기들이 우리의 삶에 있어 왜 주도적으로 자신을 신뢰하며 생활해야 하는지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자기신뢰, 운명, 개혁하는 인간의 소제목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은 저자가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나누었다고 했는데 소제목이 있어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부러움은 무지에서 나온다'를 시작으로 인간은 자기 일에 온 정성을 다할 때 위에서 내려오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에서 바라는 것은 자기신뢰가 아닌 제도하에 사람의 자유와 문화를 포기하는 순응을 원한다고 한다. 내 인생의 나의 것임을 확신하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행동하라고 한다. 하지만 현대 문화는 나의 주도적인 삶보다는 남에게 보여주는 삶에 더 치우쳐 있고 주도적인 삶을 살기에 복잡한 사회구조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운명이라 말하며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힘과 권력 앞에 무너질 때가 많다. 우리는 어떻게 운명과 맞설 것인가. 외부의 지원이 아닌 홀로 설 때 나의 힘은 강해지고 운명과 맞설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관습에 젖어 있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자기신뢰 이 책에서는 스스로의 힘을 기르고 운명을 적절히 활용하는 법을 알려주어서 그런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서 사랑을 받은 것이라 생각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저마다 있어야 하고 또 반드시 존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최선임을 아는 것이다. -P90- 이는 우리가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리 속에 들어가야 모든 것을 바르게 볼 수 있다는 말이라 했다. '자기신뢰'를 바탕으로 원초적 생각과 자기 이성에 비추어 세상이 지지하지 않는 관습은 버리라고 한다.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존재를 인정하면서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철학적이라고 해야 하나 쉽게 풀이해서 쓰였음에도 그 깊이가 어디쯤인지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많아 읽고 또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 찾아 읽으면서 끝까지 읽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미흡한 이해가 되었다. 작품 해설 내용을 읽었음에도 알쏭달쏭 한 부분들이 많았는데 버락 오바마도 두고두고 읽었다는 것을 보니 쉬운 내용이 아니다 싶다. 한번 읽어 이해되지 않으니 다시 한번 읽어야 하는 책으로 내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답을 찾아보고 싶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자연과 하나 되면서 말로만 하는 구태의연한 관습을 버리고 자기 신뢰를 바탕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감히 해석된 「자기신뢰」는 다시 한번 읽을만한책으로 꼽아보고 싶다. 요즘은 지식과 정신적 유목민이 많다 보니 옳지 않은 이단의 종교에 빠지거나 사회적으로 불미스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제도나 사상들을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부작용이 아닐 수 없다. '생각'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도덕적 윤리에 어긋나지 않게 올바른 쪽으로 해야 함에도 '생각'은 복잡하다는 마음 때문에 하려 하지 않는다. 시대를 초월하여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에머슨의 강연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내용들로 「자기신뢰」를 읽으면서 올바른 생각과 사물의 이치와 자연의 이치를 알아가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이라는 이 이름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지성적 혜택과 축복을 받은 존재라 생각된다. 그의 글을 읽자마자 예민한 내적 지성이 꿈틀 되었고, 영민한 마음이 깨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미국 초절(월)주의 시인이자 사상가이다.(19세기에 미국의 사상가들이 주장한 이상주의적 관념론에 의한 사상개혁운동의 입장. 초절주의는 진리를 자각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 내재되어있음을 인식하고 이성보다는 인간의 감성과 직관에 호소하며, 인간과 자연의 도처에 신이 편재함을 믿고,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인간의 내적 직관을 존중하는 사상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철학자이며 사상가와 저자 중에 '에픽테토스, 세네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아우렐리우스, 파스칼, 노자, 쇠렌 키르케고르, 그리고 톨스토이와 헤르만 헤세'가 있는데 그 중에 단연 뛰어난 존재인 에머슨의 글을 좋아한다. 톨스토이는 에머슨의 글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그만큼 그의 글에는 '본성 안에서 끌어 올린 내적 지식'이 남들과 다르게 표현되어 진다.
에머슨은 영국 비평가이자 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과 친구가 되는데 그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은 서로가 자석처럼 끌리듯 평생 지속된 우정을 나누게 된다. 칼라일의 글 또한 읽으면서 매우 좋았는데 고수는 고수를 안다는 말처럼 그 둘은 기꺼운 친구로서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갑자기 칼라일을 말한 이유는 이러하다. 그건 프리드리히 니체가 『우상들의 황혼』에서 두 사람을 비교하며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에머슨은 칼라일보다 훨씬 더 계몽되고 폭넓고 유연하고, 또 더욱 심오하다."
실제 책을 읽어보면 그렇게 느껴진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보면 버락 오바마, 니체, 간디, 마이클 잭슨에게 영감을 준 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니체가 말한 초인(超人)의 사상적 뿌리가 여기에 있으며,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사상적 근거 또한 에머슨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알게 된 것인데 소로가 에머슨의 제자이자 사상적 동지였다는 것이 새삼 놀라우면서 수긍되어지는 이유는 소로우의 냄새가 에머슨에게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에머슨의 글은 어떤 사람의 추천을 떠나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에게나 "내적 확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끌릴 수 밖에 없는 책인 것을 말하고 싶다."
이 책에는 미국의 개척·독립정신의 초석이 된 에머슨의 에세이 3편이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당연히 좋지만 저자의 꼼꼼한 해제를 꼭 먼저 읽고 만나기를 원한다. 에머슨이란 사람의 생애를 통해 그의 삶의 가치관이 어떻게 사상적 표현으로 드러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더불어 저작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작품에 대한 해설을 곁들이면 에머슨의 가르침이 더욱더 마음에 각인이 되어질 것이다.
에머슨의 생애(목사에서 초월주의자로)
저자의 생애를 거론하는 것은 이 책을 설명하는데 매우 적절하다 생각된다. 왜냐하면 에머슨이라는 사람(사상)이 여기에서 탄생(출발)되어지기 때문이다. 에머슨은 14세에 하버드대학교를 입학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23세에 아버지가 근무했던 유니테리언 교회의 목회자가 된다. 그러나 목회를 해나가면서 기존의 형식적인 종교의식을 아무 못마땅하게 여기며 거부를 한다. 1832년에 에머슨은 신자들에게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볼 때 더 이상 기존의 예배 형식을 따를 수 없다고 선언을 했다.
그 이유를 든다면 "그리스도가 그런 일반적이고 규칙적인 의식 준수를 가르쳤을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톨스토이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많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 "참된 신앙은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참된 신앙은, 어느 요일엔 어떤 음식을 먹고, 어느 요일엔 교회에 가서 어떤 기도를 드리는가 함을 아는 데 있지 않다.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좋은 삶을 영위하며, 자기가 남에게 기대하는 것을 이웃에 베푸는 데 있다."
톨스토이만 그러한가? 이런 점은 헤르만 헤세에게서도 발견된다. 그의 부친이나 외가쪽은 다 목회자이며 선교사다. 그는 신앙에 대해 많이 방황하며 규칙적인 것과 형식에 구속되지 않고 살아갔다. 어쩌면 우리는 용기가 없어 기존의 신앙 체계 안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저자는 이때부터 「자기 신뢰」에서 말하는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생활 방식을 찾아 나갔는데 그 결과로 나온 에세이가 바로 『자기 신뢰』였다. 이 원고가 왜 중요한가 할때 이 사상은 실제적인 고뇌와 깊은 사유 끝에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신뢰』는 이렇게 에머슨의 여러 에세이 중에서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자기 신뢰는 초월주의의 핵심 교리이기도 한데 에세이 책 머리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Ne te quaesiveris extra
당신 자신을 자기 이외의 곳에서 찾지 말라
천재란 무엇인가 할 때 단순히 아이큐가 좋은 자가 아닌 '자기 생각을 믿는 사람'이라는 그의 정의는 분명 옳은 생각이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하는데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무지에서 나오고, 모방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또한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의 말에 그대로 순응해서는 안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자기 방식대로 밀고 나가야 함을' 강조한다. 심지어 이런 말까지 한다. "나의 충동 때문에 내가 악마의 자식이 된다면, 나는 악마로 살아가겠습니다" 이 말 속에 니체의 뻔뻔함이나 오만함이 보이는 것은 무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 대목에서 니체가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니체의 글을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는 분명 에머슨에게 영향을 받았다. 특히 이 대목에서 말이다.
그러나 에머슨의 이 과격한 말은 자기 신뢰가 그만큼 중요한 것임을 말해주는 대목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는 또 말한다. "내 본성에서 나오는 법을 제외하고, 그 어떤 법도 신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옳은 것은 자기 기질을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
작년에 읽은 책 가운데 "잠들기 전 철학 한 줄(이화수 저)"이라는 책에 보면 내가 좋아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글이 나온다. 이 대목에서 나는 감동을 받고 서평에 기록해 두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보다 자신의 의견에
별가치를 두지 않는 다는 사실은
참 의아한 일이다.
진정 인간이 온전하게 세상을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기준에 부합된 형태가 아닌 '내 자신만의 오롯한 삶'임을 분명히 정의를 내리게 된다. 앙리 베르그송의 말이다. 자기 신뢰에 대해 그 또한 동일한 목소리를 낸다. "모든 철학자에겐 두 명의 철학자가 있다. 자기 자신과 스피노자다."
그렇다. 우린 자신의 철학적 사고 보다 스피노자의 철학에 비중을 두며 내 철학을 의심하고 있다. 자꾸만 눈치를 보며 내 삶을 의심하며 산다. SNS는 그런면에서 인간에겐 독이다.
어쩌면 에메슨은 자기 신뢰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이 쓴 글에서도 벗어나 독자적인 삶을 살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제자인 월든의 저자 소로는 그만의 삶을 살면서 「월든」이라는 대작을 문명인에게 선사해 주었다.
이 책에는 에머슨의 에세이 3편이 실려 있다. 「자기신뢰」「운명」「개혁하는 인간」이 그것이다.
단연 으뜸은 「자기신뢰」이다. 저자의 꼼꼼한 해제와 함께 읽어보면 분명 가장 묵직한 가르침을 얻어 또 하나의 에머슨이 탄생되리라 본다. 개인적으로 나머지 에세이는 즉「운명」이나 「개혁하는 인간」은 자기신뢰에 대한 부연적 에세이로 여겨진다. 해제 끝부분에 언급하듯이 각각의 에세이는 원래 소제목이 없었으나 가독성과 독자의 편의를 위해 옮긴이가 임시로 붙인 것이라고 한다. 즉 세 편의 에세이는 일관된 주제로 그 흐름을 이어간다. 아무리 운명이라고 하지만 그 운명에 맞서는 자유의지가 있음을 알고 자기 생각을 펼치는 존재가 되라고 한다. 또한 개혁하는 인간이란 다름 아닌 용서에 바탕을 둔 사랑과 자기 신뢰를 바탕으로 용감하게 기존의 관습에 순응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앞으로 나가라고 말한다.
그렇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고 했다면, 에머슨은 “너 자신을 믿으라”(Trust Thyself)라고 역설함으로써 현대적 정신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고 있다.
이 말은 진실이다. 즉 "모세와 플라톤 그리고 밀턴 같은 선지자들이 세상에서 찬양받을 수 있있던 것은, 그들은 책과 전통을 무시하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생각을 말했기 때문이다."
시인과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삶의 지침을 따르기 앞서 우리 자신의 마음에 번개처럼 스치는 섬광을 발견하고 관찰하는 법을 진정 배우며 우리가 가진 직관을 믿어보면 어떨까?
독자인 나는 헤르만 헤세에게서 다시금 「자기신뢰」에 대한 강력한 가르침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헤세의 글을 적으며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고, 그 길을 찾아보려는 시도이며, 오솔길을 찾아가는 암시이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어떤 사람은 모호하게, 어떤 사람은 보다 투명하게, 누구나 그 나름대로 힘껏 노력한다.’
‘깨달은 인간에게 부여된 의무는 오직 한 가지밖에 없다. 자기 자신을 찾고, 그러한 자신 속에서 더욱 견고해져서 어디를 가든지 간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수레바퀴 아래서
“나는 시를 짓기 위해 설교를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 또한 다른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건 부수적인 것이다. 개개인에게 진정한 천직은 자기 자신에 도달하는 것 한 가지뿐이다.”
헤르민 헤세
이 책의 한 문장
인간 내부에 깃든 힘은 본래 새롭다. 그 새로움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예상하지 못하는데, 직접 뭔가를 해보아야만 비로소 자기 능력을 알게 된다. p15
_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