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우스 로마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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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4

로마와 지중해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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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풍속/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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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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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국내 최초 완역본 출간!
“이 책을 읽지 않고 로마사를 말할 수 없다.” _김덕수(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

* 『군주론』 마키아벨리 추천 도서
*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고전 총서 수록 도서


『리비우스 로마사』는 2000년간 가장 정통한 로마 이야기로 인정받는 책으로, 원서31-45권을 담은 마지막 『리비우스 로마사Ⅳ』에서는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인생 후반기, 제2-3차 마케도니아 전쟁, 안티오코스 왕과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한니발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자결, 로마를 구하고 로마의 스페인 지배를 확립하고, 카르타고를 패배시킨 위대한 영웅 스키피오가 정적들의 정치적 논쟁에 휘말려 쓸쓸한 말년을 보낸 이야기, 오랜 시간 여러 전쟁을 치르면서 지중해 전역에서 로마의 패권을 확립해나가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Machiavelli)는 『리비우스 로마사』를 주제로 『로마사 논고』를 집필했을 정도로 이 책을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 이 불멸의 고전은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키아벨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저자인 리비우스는 화려한 문장으로 장엄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는 문장을 짧게 해 긴박감을 더한다. 전투를 묘사할 때는 극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사실감을 주었다. 이러한 문장과 어휘의 특성으로 『리비우스 로마사』는 사실이 나열된 딱딱한 역사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리비우스 로마사』는 분량이 방대한 만큼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과 감동이 가득하다. 이러한 이유로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리비우스 로마사』는 세계 교양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제1부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 B.C.201~192

제31권 필리포스에 대한 전쟁 선포
제32권 아우스 강 전투
제33권 키노스케팔라이의 승리, 한니발의 도피
제34권 카토의 스페인 전쟁과 승리, 스파르타와의 전쟁과 승리
제35권 아이톨리아 인의 배신, 스파르타 참주 나비스 암살

제2부 안티오코스 왕과의 전쟁 B.C.191~179

제36권 안티오코스 및 아이톨리아와의 전쟁에서의 승리
제37권 미오네소스의 해전, 마그네시아의 대전
제38권 갈라티아 인과의 전쟁, 스키피오 형제에 대한 고발
제39권 바쿠스 의식 박멸, 스키피오와 한니발과 필로포이멘의 죽음
제40권 마케도니아 왕실의 내분, 필리포스의 죽음

제3부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 B.C.178~167

제41권 페르세우스의 그리스인 회유
제42권 로마와 페르세우스의 전쟁 준비
제43권 그리스에 조사위원을 파견하다
제44권 일리리쿰에서의 승리, 피드나 전투의 승리
제45권 로도스에 대한 심판, 마케도니아의 분할, 파울루스의 개선식 소동

연대기
작품 해설 | 이종인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0년 동안 서양 교양인의
필독서로 꼽혀온 불멸의 고전

“로마의 국가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다른 누구보다도 리비우스에게 기인한다.”
- R. S. 콘웨이


시중에 로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여러 권 있지만, 이 목록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 빠져 있었다. 바로 『리비우스 로마사』이다. 이 책은 로마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저작물이다. 당대 역사가가 썼다는 점과 로마에 대해 가장 방대한 분량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로마와 관련된 책 중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당대 역사가가 썼다는 점과 로마에 대해 가장 방대한 분량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로마와 관련된 책 중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리비우스 로마사』는 리비우스가 당초 150권으로 기획했으나,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 채 142권까지만 쓰고 생을 마감했다. 아쉽게도 대부분이 유실되고, 현재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은 가장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인정받는 1~10권과 21~45권, 총 35권으로, 현대지성에서는 이 35권을 전4권에 담아 완역하였다. 『리비우스 로마사』 시리즈는 트로이에서 탈출한 아이네아스(Aeneas)가 이탈리아에 정착한 이야기(기원전 753년)에서 시작하여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의 로마 건국을 지나,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전쟁기와 제2-3차 마케도니아 전쟁(기원전 167년)까지 총 586년의 로마사를 다루고 있다.

“그리스의 헤로도토스, 로마의 리비우스”
로마 역사문학의 정점


『리비우스 로마사』는 출간됐을 때부터 큰 인기를 끌어 당대에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플루타르코스 등 로마 제정기의 많은 작가들이 이 책을 출처로 삼아 역사서를 남겼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 로마사』를 주제로 『로마사 논고』라는 책을 썼을 정도로 이 책을 가장 아끼고 사랑했다. 이 불멸의 고전은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키아벨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리비우스 로마사』가 사랑받는 이유는 그 가치와 분량 때문만은 아니다. 문체가 큰 몫을 차지한다. 저자인 리비우스는 화려한 문장으로 장엄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는 문장을 짧게 해 긴박감을 더한다. 전투를 묘사할 때는 극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사실감을 주었다.

『리비우스 로마사』의 문체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문학평론가이자 수사학자인 퀸틸리아누스(Marcus Fabius Quintilianus)는 『리비우스 로마사』의 문체를 가리켜 “크림 빛이 도는 풍요로움”이라고 평했고, “이야기는 너무나 매혹적이고, 또 그 문장이 평담하면서도 유원하다”고 극찬했다. 또한 그는 리비우스를 가리켜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에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역사가”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특징은 독자에게 사실이 나열된 딱딱한 역사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러한 이유로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리비우스 로마사』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로마와 지중해 세계

제4권은 크게 3부로 나뉜다. 제1부(원서31-35권)는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기원전 201-192), 제2부(원서36-40권)는 안티오코스 왕과의 전쟁(191-179), 제3부(원서41-45권)는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을 다루고 있다. 제4권의 가장 큰 관심은 마케도니아 전쟁이 어떻게 결말났는가 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안티오코스의 셀레우코스 왕조, 페르가몬의 아탈로스 왕,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 일리리아의 겐티우스 왕, 로도스의 도시 국가 등이 언급된다. 이 전쟁들은 사실상 연속적으로 기원전 200년에서 167년까지 약 33년간 지속된다. 또한 이 책에는 포에니 전쟁의 두 주역인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생애 말년도 다루고 있다.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생애 말년

한니발은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에게 패한 후 로마와 강화협정을 맺었다. 그 후 한니발은 고위 행정관으로 카르타고 내정에 참여하여 개혁을 시도했으나 반대파로 말미암아 목숨을 위협받게 된다. 그는 야간에 몰래 카르타고를 떠나 먼저 티레로 갔다가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왕에게로 가서 몸을 의탁했다. 그는 로마와의 전쟁을 준비하던 안티오코스에게 로마에 대항하려면 시리아-마케도니아-카르타고의 연합 세력을 형성하여 포위 전술을 펴는 것이 좋다고 건의했다. 한니발은 그리스와 아시아의 세력을 규합하여 로마를 공격하면 조국 카르타고가 이에 호응해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안티오코스는 신하들의 반대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로마 당국은 지중해 세계에 커다란 전쟁을 다시 일으켜 권토중래의 구상을 갖고 있는 한니발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래서 플라미니누스가 보낸 한니발 추적대는 한니발이 안티오코스 왕을 떠나 비티니아의 왕 프루시아스에게로 도피한 것을 발견하고, 프루시아스를 찾아가 더 이상 한니발을 보호하지 말고 신병을 로마에 인도하라고 요구한다. 마침내 한니발은 독약을 마시고 자결한다. 이렇게 하여 한니발은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고 때는 기원전 183년이었다. 그런데 스키피오 또한 이해에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늙고 병든 데다 정치적 게임에 염증을 느낀 스키피오는 해안 도시 리투르눔으로 은퇴했다. 한니발을 정복했고 아프리카, 아시아, 스페인의 3개 대륙을 정복한 로마 권력의 창설자가 다시는 고향 로마 도시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결국 은퇴지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제2-3차 마케도니아 전쟁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은 기원전 200년에서 196년까지 벌어졌다. 당초 로마는 카르타고와의 오랜 전쟁에 지쳐서 또 다른 전쟁을 벌이는 것에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리하여 첫 전쟁안을 로마 민회는 거부했다. 그렇지만 세 명의 원로원 의원들로 구성된 조사위원단은 좀 더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겠다며 동방으로 출발했다. 그들의 주된 목적은 사실 파악이 아니라 전쟁의 구실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당시 아테네를 공격하고 있던 필리포스 왕에게 로마 시민들이 요구한 적이 없는 거짓 요구안을 내밀어서 왕을 자극하여 전쟁을 걸게 만들려 했다. 조사위원단은 왕에게 그리스의 어떤 도시도 침공하지 말라고 요구했고 또 페르가몬의 아탈로스 1세에게 배상금을 물라고 요구했다. 실제로는 필리포스가 아탈로스를 선제공격하지 않아서 아무런 배상의 의무가 없었는데 그런 요구를 해오니 왕은 그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며 군사 작전을 계속했다.

조사위원단은 로마로 돌아와 필리포스를 성토했고 결국 로마 원로원과 민회는 전쟁을 결정했다. 필리포스는 칸나이 전투가 끝난 뒤 한니발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로마 인들에게 강력한 주변 세력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게 만들었다. 인근 나라인 페르가몬과 로도스의 대사들도 필리포스의 야심을 지적했고 이것이 로마 인들에게 전쟁에 나서려는 큰 자극이 되었다.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은 기원전 178년에서 167년 사이에 벌어졌는데 이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에 필리포스 왕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페르세우스가 마케도니아 왕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페르세우스는 친 로마 성향을 띤 동생 데메트리오스를 암살하여 아버지의 미움을 산 상태로 왕위에 올랐으므로 국정을 안정되게 유지할 수가 없었다.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동맹들과도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고, 동맹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자금을 내놓고 지원해야 하는데 너무 인색하여 결국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또한 페르가몬의 에우메네스 왕이 델포이 신전에 희생 제사를 올리러 가는 산길에서 왕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자들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어 널리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 로마의 집정관 파울루스는 이 페르세우스를 상대로 피드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로마에 결정적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끎으로써 로마는 지중해 전역에서 로마의 패권을 확립하는 발판을 마련했고 이로부터 1세기 후에 지중해 일대의 로마 제국이 완성되었다.

종이책 회원리뷰 (4건)

리비우스 로마사4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m****h | 2021.07.3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4편 로마사는 한비발이 한 바탕 휘적고, 서서히 서로마의 내리막길을 걸어가게된다. 로마사에서 한니발은 중국 한과 흉과의 대립과도 같은 큰 전환점을 가져온 사건이었다. 한니발은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에게 패한 후 로마와 강화협정을 맺었다. 그 후 한니발은 고위 행정관으로 카르타고 내정에 참여하여 개혁을 시도했으나 반대파로 말미암아 목숨을 위협받게 된다.
리뷰제목

4편 로마사는 한비발이 한 바탕 휘적고, 서서히 서로마의 내리막길을 걸어가게된다.

로마사에서 한니발은 중국 한과 흉과의 대립과도 같은 큰 전환점을 가져온 사건이었다.

한니발은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에서 스키피오에게 패한 후 로마와 강화협정을 맺었다. 그 후 한니발은 고위 행정관으로 카르타고 내정에 참여하여 개혁을 시도했으나 반대파로 말미암아 목숨을 위협받게 된다. 그는 야간에 몰래 카르타고를 떠나 먼저 티레로 갔다가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왕에게로 가서 몸을 의탁했다. 그는 로마와의 전쟁을 준비하던 안티오코스에게 로마에 대항하려면 시리아-마케도니아-카르타고의 연합 세력을 형성하여 포위 전술을 펴는 것이 좋다고 건의했다. 한니발은 그리스와 아시아의 세력을 규합하여 로마를 공격하면 조국 카르타고가 이에 호응해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안티오코스는 신하들의 반대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로마 당국은 지중해 세계에 커다란 전쟁을 다시 일으켜 권토중래의 구상을 갖고 있는 한니발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래서 플라미니누스가 보낸 한니발 추적대는 한니발이 안티오코스 왕을 떠나 비티니아의 왕 프루시아스에게로 도피한 것을 발견하고, 프루시아스를 찾아가 더 이상 한니발을 보호하지 말고 신병을 로마에 인도하라고 요구한다. 마침내 한니발은 독약을 마시고 자결한다. 이렇게 하여 한니발은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고 때는 기원전 183년이었다.
그런데 스키피오 또한 이해에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늙고 병든 데다 정치적 게임에 염증을 느낀 스키피오는 해안 도시 리투르눔으로 은퇴했다. 한니발을 정복했고 아프리카, 아시아, 스페인의 3개 대륙을 정복한 로마 권력의 창설자가 다시는 고향 로마 도시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결국 은퇴지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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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심에 경의를...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동**미 | 2021.07.21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4권은 기원전 200년에서 167년까지 약 33년간 역사를 다룬다. 한니발과 스키피오가 맞짱 뜬 3권-무협지를 보듯 재미있었다-에 비해 4권은 너무 지루하다. 고만고만한 에피소드가 끝날 줄 모른다. 낱낱의 사건들이 로마인에게는 의미있겠으나, 역사책을 통해 지혜를 함양하려는 이방인 독자에게는 별 감흥이 없다. 그래도 뭔가 의미를 찾아내자면 '인생무상'이랄까? 거대제국 로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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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은 기원전 200년에서 167년까지 약 33년간 역사를 다룬다. 한니발과 스키피오가 맞짱 뜬 3권-무협지를 보듯 재미있었다-에 비해 4권은 너무 지루하다. 고만고만한 에피소드가 끝날 줄 모른다. 낱낱의 사건들이 로마인에게는 의미있겠으나, 역사책을 통해 지혜를 함양하려는 이방인 독자에게는 별 감흥이 없다. 그래도 뭔가 의미를 찾아내자면 '인생무상'이랄까? 거대제국 로마를 아사 직전까지 몰고갔던 명장 한니발은 조국에서 죽음을 맞지 못한다. 정적들은 한니발을 털털 털어 모함했고, 노장은 망명하며 재기를 노렸으나 끝내 쓸쓸히 죽었다. 스키피오라고 말년이 행복할 수 없었다. 그 역시 구국의 명장이었으나 정적들의 모함으로 초라하게 죽어야했다. 애석하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재주는 영웅이 부리고 돈은 모리배들이 벌어들인다.

이 지루한 4권을 완독하기 위해 버리려던 속독법을 다시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리비우스가 쓴 로마사 중 현존하는 분량 전부를 다 읽었다는 뿌듯함 외 별로 남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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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헬레니즘 문화의 계승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리* | 2021.01.15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번역본 《리비우스 로마사 4》권에서 다루는 내용은 2차 포에니 전쟁 직후 그리스 반도에서 일어난 전투가 대부분인데, 원전의 권수로는 31 ~ 4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2차 포에니 전쟁 때 로마의 주적이었던 한니발은 그리스 지역의 실력자인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5세와 연합 전선을 구성하여 로마를 압박했다. 한니발의 패배 이후 로마는 후방에서 계속 신경을 긁던 그리스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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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본 《리비우스 로마사 4》권에서 다루는 내용은 2차 포에니 전쟁 직후 그리스 반도에서 일어난 전투가 대부분인데, 원전의 권수로는 31 ~ 4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2차 포에니 전쟁 때 로마의 주적이었던 한니발은 그리스 지역의 실력자인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5세와 연합 전선을 구성하여 로마를 압박했다. 한니발의 패배 이후 로마는 후방에서 계속 신경을 긁던 그리스 지역에 대한 정벌을 시작했고, 그 결과 3차례에 걸친 마케도니아 전쟁 끝에 그리스 지역까지 세력권을 넓히는데 성공했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로마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해양(지중해)으로의 진출과 정복전쟁에 대한 자신감이다. 강대국 카르타고를 두 번이나 이겼다는 사실은 로마의 자존감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그럼 그리스 세력과의 전쟁에서 로마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바로 헬레니즘 문화의 주도권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시초이자 철학의 근간으로 손꼽은 지역이다. 로마의 정치, 사회, 문화, 제도도 그리스 지역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그리스의 복사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의 공화정은 '자유'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자유 역시 그리스의 민주주의에서 비롯했다. 조선 시대까지 한반도의 지식인들은 중국의 문자인 한문으로 글을 읽고 썼는데, 마찬가지로 이 당시 로마의 지식인들은 그리스 헬라어를 바탕으로 그리스의 철학과 문화를 공부했다. 예로부터 동양 문화를 주도했던 나라가 중국이라면 고대 서양 문명을 주도했던 지역은 로마가 아닌 그리스였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서구 문화 나아가 헬레니즘 문화를 주도하는 지역은 그리스지만, 실질적인 힘은 카르타고를 무찌른 로마에게 있었다. 이 당시 그리스 지역은 로마처럼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도시국가들끼리 합종연횡을 거듭하며 분열하고 있었다. 특히 마케도니아를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로마에 적대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는데,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의 입장에서 그리스는 '언젠가는 정복되어야 할 대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로마인들은 '난폭한 야만인'으로 통용되었고, 자부심이 강한 로마인들 입장에서 그리스인들은 '문화적 수준은 높지만 이를 지탱할 실질적인 힘이 없는 허풍쟁이들'로 비쳤다. 그렇기에 로마는 '그리스 인들을 해방'시킨다는 명분 아래에 그리스 지역으로 군사활동을 시작하는데, 이는 결국 '그리스 문명을 힘으로 계승'하겠다는 의도였다.

 

문화를 힘으로 쟁취하려는 행위는 결국 제국주의의 시작이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이긴 로마는 지중해를 이용하여 해양으로 세력 확장을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그 타깃이 바로 그리스였다. 로마는 카르타고의 식민지 정책을 본받았는데 기존까지 로마는 점령한 도시에 대하여 동맹 관계로 예우하고 존중했지만 포에니 전쟁 이후 점령지들을 속국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한편 그리스의 맹주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5세는 야심만만했으며 호락호락한 왕이 아니었다. 그는 한니발의 제의를 받아 로마의 신경을 건드렸는데 양국의 전황을 살피다 기회주의적인 태도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로마 입장에서 이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그랬기에 포에니 전쟁 직후 사절을 파견하여 전쟁의 구실을 찾아 그리스 지역을 정벌하는데 이르렀다. 이 시기부터 로마는 제국주의를 추구하기 시작했는데, 스페인, 카르타고, 그리스를 시작으로 서쪽으로는 서부 유럽 갈리아와 영국, 동쪽으로는 소아시아 지방까지 세력권을 형성했다. 로마의 제국주의 정책에 있어 스페인과 카르타고 점령이 물리적인 실력 과시였다면, 그리스 점령은 영토 점령보다는 정신적인 사상과 문화를 흡수, 계승하는 측면이 강했다. 그리스 점령을 끝으로 로마는 서구 문명의 계승자임을 증명했으며, 제도와 군사에 있어서도 당대 최고 수준의 국가로 공인받았다.

 

고대 ~ 근세의 강대국들은 대부분 제국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왜 그랬을까? 노골적으로 꼬집자면 부유와 풍요 때문이었다. 로마도 마찬가지다. 전쟁은 고단하고 괴로웠지만 그 이득은 엄청났다.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 로마는 카르타고에게 전쟁 배상금을 비롯하여 엄청난 이권을 챙겼고, 이에 맛 들인 로마는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더욱더 많은 영토를 추구하게 됐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부유와 풍요가 과연 국가의 발전에 있어 무조건적으로 도움이 되는가이다.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부와 풍요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의식이 높은 국가일지라도, 이를 유지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없다면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 로마도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국가의 부와 풍요가 공화정을 유지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는 넘치는 풍요가 국가 발전에 있어 반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그리스를 점령하면서 로마는 그리스인들의 추구하던 사치와 쾌락, 환락들의 요소들도 남김없이 수용했고 이런 과도한 풍요는 결국 로마의 정신의 타락, 부정부패로 이어졌다. 또한 제국주의를 추구하던 로마는 광활한 영토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 공화정이라는 시스템에 한계를 느꼈다. 로마의 원로원과 호민관들은 광활한 속주의 지방관들을 견제할 여력과 힘이 없었는데, 이런 틈을 타서 속주의 지방관들은 군벌 세력을 이루기 시작했다. 이런 군벌 세력들의 경쟁을 통해 로마는 1인 독재 체제로 전환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방점을 찍은 것이 카이사르와 그를 계승한 아우구스투스다. 역대 이래로 로마의 지성인들은 공화정 체제를 무척 자랑스러워했는데 그 이유는 '자유'를 보장받았기 때문인데, 절대자의 노복이나 신민이 아닌 자유로운 시민으로 인정받는것을 명예로 생각했다. 그래서 리비우스를 필두로 하여, 타키투스, 플루타르코스 등등의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저서에 노골적으로 공화정을 그리워하며 찬양하였다. 18세기 서양 사회에서 신분제 타파 운동이 일어난 것도 고대 그리스 이래로 '자유'에 대한 정신이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인데, 이런 정신의 근원을 고대 로마의 공화정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정리해보자면 식민지 정책으로 인해 넘치는 풍요는 국가를 외향적으로 발전시켰지만, 반대로 공화정이라는 정치 제도를 붕괴시키는 시초가 된다. 공화정이 사라진 뒤, 로마는 탐욕스러운 황제들의 지배를 받는 제정 사회로 진입하였다. 물론 황제의 지배를 받는 로마 제국 역시 전성기를 맞이하여 세계적인 제국으로 인정받았지만, 공화정 시대보다 시민들의 자유의지나 사회적 활력이 결여된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번역본 《리비우스 로마사 4》권의 메인은 그리스 정벌이지만, 포에니 전쟁의 주축이었던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최후도 자세하게 나와있어 흥미를 끈다. 2차 포에니 전쟁 직후 한니발은 카르타고에 남아 내정 개혁을 시도하지만 친로마 의원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축출되고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왕에게 의탁했다. 한니발은 강적 로마를 이기기 위해서는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시리아와 카르타고가 연합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마케도니아와 안티오코스는 차례로 로마의 침략 앞에 무너졌고 한니발 역시 소아시아 지역을 떠돌며 망명자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카르타고를 굴복시킨 스키피오는 동생 루키우스의 그리스 정벌에 군사 참모로 참여하였는데, 소아시아에서 감찰을 나갔을 때 숙적 한니발과 마주하게 된다. 두 장군은 여기서 허심탄회하게 서로를 인정했으며 훈훈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는데,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이 만남을 두고 리비우스가 지어낸 허구로 의심했다.

 

스키피오의 최후 역시 한니발과 비슷했다. 조국을 구원한 스키피오는 명성과 권력이 정점에 달했고, 이로 인해 많은 원로원들의 질시와 질투를 받았다. 결국 자신을 음해하는 세력들의 압박을 받아 해안 도시 리투르눔으로 은거하여 고향인 로마를 다시 찾지 않았다. 로마를 구원했으며 스페인과 아프리카, 그리스, 소아시아 영토를 정복한 스키피오의 업적은 너무나도 거대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거대한 업적 때문에 스키피오는 시기와 질투를 받아야 했으며, 자신 스스로도 그런 상황을 뼈져리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스키피오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버리고 공화국의 자유를 수호하는 입장을 상기하며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이렇듯 포에니 전쟁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로마의 군벌 세력은 권력과 세력이 강하여도 공화정이라는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에 있어 극도로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번역본 《리비우스 로마사 4》 권을 끝으로 현재 전해지는 《리비우스 로마사》 완독을 완료했다. 책을 통해 로마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었으며, 로마 초기의 활동적이고 생생한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즐거웠다. 비록 온전하게 전해 내려오지 않고 부분적으로 전해지는 고전이지만 이번 번역을 통해 리비우스의 수려한 필력을 접할 수 있게 된 점도 큰 의의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묵직하고도 의미 있는 고전으로 새해를 열게 되어 무척 행복하다. 이번 《리비우스 로마사》 완간을 계기로 대한민국의 인문학 도서 시장에 깊이 있고 의미 있는 고전들이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리비우스 로마사》의 요약본'과 '폴리비우스의 《역사》'도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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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헬레니즘 세계의 몰락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x***2 | 2020.12.2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로마 이전에 지중해를 지배했던 세력은  바로 그리스였다.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한 이후, 비록 그리스인들이 로마인들처럼 정치적으로 단결을 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그리스인들은 여러 개의 왕국을 세워서 지금의 그리스 본토에서 이집트와 서아시아 및  심지어 인도의 국경 지역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고대 로마라고 하면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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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전에 지중해를 지배했던 세력은 

바로 그리스였다.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한 이후,

비록 그리스인들이 로마인들처럼 정치적으로 단결을 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그리스인들은 여러 개의 왕국을 세워서

지금의 그리스 본토에서 이집트와 서아시아 및 

심지어 인도의 국경 지역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고대 로마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유명한 인사 중 한 명인

고대 이집트의 여왕인 클레오파트라도

일부 매체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무슨 흑인이나 동양인이 결코 아니라,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 장군인 프톨레마이오스의 피를 받은

그리스인이었다. 

 

클레오파트라에 비하면 그 인지도가 매우 낮지만,

200년 넘게 존속하면서

전성기에는 지금의 터키에서 인도까지 지배했던 

초강대국인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도 빼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나라는 로마 제국 이전까지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번성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로마가 강대국으로 발흥하기 이전까지

지중해 세계는 그리스 세력의 지배 하에 있었고,

로마는 사실 그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신출내기였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그토록 강력하고 거대했던 

셀레우코스 왕조가 

기원전 190년에 벌어진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로마군에게 어이없는 패배를 당하면서

계속 세력이 약해지며 내리막길을 걷더니,

결국에는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에게 힘없이 멸망당했다.

 

로마가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계속 패배하면서도

끝끝내 회복하여 결국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역사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왜 로마처럼 되지 못했던 것일까? 

그 이유를 요약하자면 셀레우코스 왕조의 구성원들은

로마처럼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봉사의 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거대했던 초강대국이

마그네시아 전투라는 단 한 번의 패배로 인해

불과 100년도 못되어 해체와 소멸이라는 비극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희생과 봉사의 정신이 결여된 공동체는

겉으로 보기에 제아무리 크고 화려해 보여도

속빈 강정처럼 언제든지 형편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교훈을

이 책을 읽으면서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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