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처음 겪는 일이지만 수세기 전의 누군가는 겪었을 것이다_보카치오는 흑사병의 어둠을 어떻게 걷어냈을까?전 세계가 코로나와 기후위기로 들끓던 여름, 저자에게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는 처음 겪는 일이지만 수세기 전의 누군가는 겪지 않았을까? 그는 흑사병과 피렌체의 빼어난 인문학자 보카치오를 떠올렸다. 보카치오는 흑사병이 창궐하던 피렌체에서 부모와 친구들을 잃고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런 보카치오가 구상한 책이 『데카메론』이다. 흑사병 시대의 어둠을 보카치오는 어떻게 걷어냈을까?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던 14세기가 배경인 『데카메론』은 흑사병을 피해서 피렌체 ?교외의 별장으로 옮겨 온 숙녀 7명, 신사 3명이 10일간 체류하며 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나눈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사람이 한 가지씩 하루에 열 가지의 이야기, 모두 백 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야기의 주제는 대부분 연인들의 사랑이다. 긴급하게 사랑이 필요하다_사랑의 확장 그리고 연결에 관하여흑사병이 초토화시킨 세상에서 ‘사랑’이라니, 저자는 『데카메론』이 슬픈 책일 것이라고, 하지만 그 시대에 꼭 필요한 말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랑이라니. 하지만 어쩌면 정말 사랑일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는 긴급하게 사랑을 필요로 한다. 각자의 집에 갇혀 있는 우리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코로나는 우리가 그토록 오래 ‘자아!’ 혹은 ‘나!’를 외쳤지만 우리가 조금도 독립적이지 않고, 그렇기는커녕 서로의 운명에 심하게 의존적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 우리가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박쥐나 야생동물, 자연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우리의 존재를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고, 코로나는 그 다른 존재에는 반드시 동물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했다. 다시 한번 문학의 힘을 빌릴 때_알아차리고 읽어내기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피디인 저자는 코로나 초기부터 코로나의 본질적 원인에 대한 취재를 깊이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책에서 취재를 통해 얻은 ‘사실’보다는 문학작품을 더 많이 인용한다. 왜냐하면 언제나 “문학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게’ 도와주기” 때문이고 “그 연쇄작용으로 우리는 삶도 더 잘 읽어내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상황을 잘 읽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순간을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의미는 얼마 뒤에야 따라온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저자는 『데카메론』의 형식을 빌려 열 가지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구 온난화 시대의 대하소설”인 마거릿 애트우드의 미친 아담 3부작, 살쾡이의 잊을 수 없는 운명을 그려낸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잔인한 공장식 축산과 유전자 조작 식물에 관해 폭로한 미셸 우엘벡의 『세로토닌』, 고독한 노동 한가운데에서 잠시나마 함께 있는 일의 온기를 느낄 있는 순수한 시간에 관한 존 버저의 이야기, 히틀러의 부대로부터 식물 종자를 지킨 바빌로프와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는 개인과 사회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잘못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나아가 우리에게 지금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알아차리게’ 해준다. 저자는 말한다. “상상해본 적 없는 거대한 단절의 시기인 지금, 이 균열 속에서 좋은 무엇인가가 나와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리석음은 꽃피고 나쁜 일은 벌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