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미리보기 공유하기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존엄하고 아름다운 이별에 관해 묻는 애도 일기

리뷰 총점 10.0 (6건)
분야
에세이 시 > 에세이
파일정보
EPUB(DRM) 34.64MB
지원기기
iOS Android PC Mac E-INK

이 상품의 태그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부모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구순 엄마와의 마지막 2년을 담은 에세이

“죽음, 거참 누가 차가운 거랬니,
끼고 있던 슬픔이라는 장갑을 벗고
그 손으로 수저를 들어 밥을 먹게 하는 이야기”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타인의 손길에 목숨을 맡겨야 살 수 있는 존재, 애기와 노인. 여기, “귀엽지도 않은 애기”가 되어버린 구순 엄마의 마지막 나날을 기록한 저자가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전 편집장이자,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글을 써온 권혁란 작가는 무의미한 고통에 시달리다 느리게 죽어간 엄마의 날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온몸은 보랏빛 반점으로 뒤덮이고 깡마른 뼈와 피부 사이의 한 점 경계 없는 몸으로, 제 발로, 제 손으로 용변조차 볼 수 없어 도우미의 손을 빌려야 했던 엄마의 모습을 진솔하게 써내려간다.

이 책이 여타의 책들과 다른 점은 단지 사모곡이나 애도의 말들만 담은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여섯 자식이나 두었던 엄마가 왜 요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늙은 부모’를 모시는 ‘늙은 자식’들이 현실적으로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를 꼬집는다. 백세 시대·장수 시대는 과연 축복인지 재앙인지, 노인 인구가 점점 더 늘어나는 이 시대에 노인 부양의 책임이 오롯이 한 가족에게만 있는지 되묻는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의 도움을 받는 자식들에게 ‘부모를 버리고 패륜을 저지른 자식’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사회적 시선을 이제는 거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부모가 자식들 집에서 ‘징역살이’ 하듯 사는 것보다 요양 전문 기관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사는 것이 자식과 부모 모두에게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프롤로그-존엄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찾아서

1부 봉황의 이름을 가진 한 여자의 마지막 2년

엄마는 내 엄마니까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
엄마가 살아야 할 곳은 여기야
나는 언제나 집으로 돌아가니
내가 잘 때 누가 나를 때리나 봐
한없이 밝은 양성모음으로만
울기만 해봐요, 다신 안 보러 올 거야
사람 머리가 까매야 예쁘지
싸리꽃 한 잎 같은 이빨 하나
영혼의 음료, 뜨거운 믹스커피
빨간 주머니는 노란 밤벌레의 집
터무니없이 착하기만 해
권 안과 선생과 박카스

2부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새벽 1시, 이상한 사설 응급차
응급실에 퍼지는 한 서린 욕
엄마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엄마 빤스에는 주머니가 많아서
기로 풍습, 죽음을 나르는 지게
아기 같은 엄마의 아랫도리
굿’바이, Good & Bye
‘밴드’ 속 엄마의 꽃 같은 날들
섬망의 징후, 헛것과 싸우다
이승에서 못다 한 말

3부 새해에 그렇게 떠날 줄은 아무도 몰랐지

작별까지 마지막 12일
오늘은, 죽지 말아주세요
“엄마한테 졌다, 손힘이 장사 같아”
정말 저승사자가 오나 보다
보내드릴 모든 준비가 되었는데
장하다 김봉예, 가엾다 김봉예
꿈처럼 어여 가요, 제발
이제 임종을 기다리지 않겠다
“다 빼주시면 안 돼요?”
이승이여 안녕, 인사도 없이
마침내 피안으로 건너가다
저승꽃, 마지막으로 피는 꽃

4부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었다

장례식장이 유치원처럼 명랑했다
두 나무가 스물아홉 그루로
관도 무덤도 없이 나무 아래로
당신이 남긴 것들
아무렇지도 않게 벚꽃이 날리던 날
‘내 집’에서 ‘짧게’ ‘앓다’가
내 생의 마침표는 내가 찍으려 해
불문곡직, 장례식에 아무도 부르지 마라

5부 엄마 없이, 인생찬가

엄마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어딜 가, 국수 먹고 가야지
냉이 속에 숨겨둔 신사임당
엄마가 살던 마지막 집
단톡방 ‘김봉예의 자식들’
절대로 저 딸에게 매달리진 않으리라
아무에게도 엄마를 부탁하지 말아요

에필로그-죽음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아무에게도 엄마를 부탁하지 말아요”
지혜롭게 노년을 준비하는 법

“살구나무 꽃이 환하게 핀 요양원에
엄마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나도 자식들 눈에 나이 들어가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의 어머니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뒤 종합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다시 요양병원에서 요양원으로 옮겨져 임종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기록했다. 1부에서는 살구나무 꽃이 환하게 핀 요양원에 엄마를 보내게 된 사연과 엄마가 요양원에 입소한 뒤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다. 옆 침대 할머니의 가지런하고 예쁜 틀니를 보고 하나 남은 생니를 뽑아 달라고 떼를 써서 치과에 데리고 갔던 이야기, 엄마가 딸에게 주려고 바지 주머니 속에 소중히 간직했던 밤을 받아들었다가 오글거리는 밤벌레를 보고 천장까지 던져버린 이야기 등 피로하고 지칠 법한 상황에 공감이 가면서도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올 만한 일화가 가득하다.

2부에서는 요양원과 종합병원을 수차례 왔다 갔다 하는 과정과 섬망의 징후가 찾아온 엄마의 모습을 그린다. 그리도 착해, 가장 가까운 사람을 괴롭히고 남에게는 모진 말 하나 못 했던 엄마는 죽기 직전 ‘섬망’에 빠진다. 딸자식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을 허공에 대고 하는 대목에서는 인간이 실제 죽음을 맞이할 때, 얼마나 아름답지 못한 장면을 맞이해야 하는지 알게 한다.

3부에서는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엄마가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기까지의 마지막 시간을 담았다. 숨이 끊어질 듯 말 듯, 열이틀간을 반송장 신세로 천천히 죽어간 엄마를 보며 저자는 생각한다. 당사자의 의사는 제외된 채, 불합리하고 무의미한 고통을 겪는 사람을 누구 하나 죽을 수 있게 돕지 못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에 관해.

4부에서는 ‘이렇다 할 특징’ 없고 밋밋하게 살다 돌아가신 엄마를 추억하며 수목장으로 간소하게 치른 장례에 관해 이야기한다. 장남·장손으로 이어지는 봉제사의 고리를 끊어낸 큰오빠와 몇 달 뒤 ‘내 집’에서 ‘짧게’ 앓다 돌아가신 시어머니를 가족장으로 치르는 장례를 바라보며 불필요한 장례 문화와 제사 문화를 돌아보게 한다.

5부에서는 엄마를 떠나보낸 뒤 ‘고아’가 된 마음과, 이제는 보려고 애써도 어디에 있는지 몰라 허청거리게 된 순간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딸들에게는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써두고 엄마가 남긴 옷가지들을 주워 입고 죽음에 관련된 글과 영화만을 보며 엄마 없이, 인생찬가를 부른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늙을 것이고 우리 부모들을 요양원에 보낼 것이고 우리도 가게 될 것이다. 누구도 생의 마지막과 보살핌을 자식에게만 맡길 수 없을 것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남편이나 아내가 없는 사람도 더 많아질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고 한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단독자로 살아가다 죽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자식들도 천천히 늙을 것이고 우리 세대의 사람들을 요양원에 보내야 하는 것으로 마음을 아프게 앓을 것이다. 부모를 지고 간 지게에 내가 오를 것이고 그 지게를 내 자식이 지게 될 것이고 그 아이 또한 지게를 지게 될 것이다.(본문 121~122쪽)

죽는 건 본인인데 그 죽음의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엄마만이 아니었다. 그의 배에서 태어나 그의 젖을 빨아먹고 자란 자식들도 똑같았다. 동의서에 사인하라니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을 뿐 엄마의 죽음에 개입할 수는 없었다. 죽어가는 엄마를 사랑한들 사랑하지 않은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기다리다가 가래를 빼줄 뿐, 입술을 닦아줄 뿐, 일분일초도 그의 몸에 찾아온 아픔이나 고통, 긴급한 과정에 개입할 수는 없었다.(본문 201쪽)

“내 생의 마침표는 내가 찍으려고 해”
존엄하고 아름다운 죽음에 관하여

“무슨 미련이 남아 저리도 고통스럽게 살아 계시는 걸까.
엄마는 결국 모질게 살아남아
자식들 고생시키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종합병원과 요양병원, 요양원과 호스피스 병원 체계, 우리나라의 사설 응급 체계, 장례 체계, 연명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사전연명치료거부동의서’ 등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꼭 알아두어야 할 정보들과, ‘좋은 죽음’을 위해 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한다. 인간이 늙고 병들었을 때 실제로 어떤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는지 알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

저자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좋아질 일이라고는 절대 없을 엄마를 데리고 수술실과 응급실, 집중 치료실, 중환자실, 요양원 등을 전전했다. 그렇게 지난한 고통에 시달리다 돌아가신 엄마를 지켜보며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엄마는 쉰 살이 되기 전부터 “늙으면 그냥 딱 죽고 싶다”고 말씀하셨지만, 당신 뜻대로 편히 죽지 못하셨다. 당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연명 치료를 받으며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고통 속에서 모질게 살아계셔야 했다. 저자는 그런 나날들 속에서 절대 엄마처럼 죽지 않겠다고, 늙어서 제 손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식들에게도, 아무에게도 맡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내 생의 마침표를 내가 찍기 위한’ 준비를 하나씩 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먼 미래의 일일 것만 같은 죽음에 관해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오래 살아서 늙어 죽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게 자식들 곁에 머무르지 않게, 가슴은 아프지만 곧 잊힐 슬픔과 조금은 달콤할 수 있는 그리움만 주고 떠날 수 있도록, 존엄하고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할 방법을 돌아보게 한다. 늙어가는 부모와, 부모의 죽음에 관해 비슷한 경험을 한 독자들에게는 보살핌과 수발의 노고를 나누고, 위로를 전한다. 아직 겪어 보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지혜를 빌려주고, 글로써 미리 채비할 시간을 줄 것이다.

내 몸에, 내 죽음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하나도 도와줄 수 없는 자식이 보호자인 나였다. 그 참혹한 두 달 동안 병원을 오가면서 공부를 했다. ‘엄마처럼, 저렇게, 죽지는 않을 거야.’ 하루가 더 지날수록 내가 늙을 것과 아플 것은 자명하고 죽을 것도 명확하니 뭘 더 꺼리겠는가. 아직 정신이 고만고만할 때, 아직 그나마 총기가 있을 때 버릴 것은 버리고, 지울 것은 지우고 도장을 찍을 것은 찍어야 했다. 엄마가 죽는 순간까지 하지 못한 것을 나는 준비하고 싶었다.(본문 257쪽)

사랑을 담아 기억하든 슬픔을 적셔 되새기든, 그냥 이승에서 헤어진 게 아니라 저승으로 하나둘씩 사람들을 보낸 후에는 사랑했든 안 했든 마음이 예전과 달라졌다. 만나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을 거라 알고 있던 때와 보려고 애써도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의 허청거림은 순간마다 헛발을 딛는 것 같았다.(310쪽)

“부모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구순 엄마와의 마지막 2년을 담은 에세이

“죽음, 거참 누가 차가운 거랬니,
끼고 있던 슬픔이라는 장갑을 벗고
그 손으로 수저를 들어 밥을 먹게 하는 이야기”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타인의 손길에 목숨을 맡겨야 살 수 있는 존재, 애기와 노인. 여기, “귀엽지도 않은 애기”가 되어버린 구순 엄마의 마지막 나날을 기록한 저자가 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전 편집장이자,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글을 써온 권혁란 작가는 무의미한 고통에 시달리다 느리게 죽어간 엄마의 날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온몸은 보랏빛 반점으로 뒤덮이고 깡마른 뼈와 피부 사이의 한 점 경계 없는 몸으로, 제 발로, 제 손으로 용변조차 볼 수 없어 도우미의 손을 빌려야 했던 엄마의 모습을 진솔하게 써내려간다.

이 책이 여타의 책들과 다른 점은 단지 사모곡이나 애도의 말들만 담은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여섯 자식이나 두었던 엄마가 왜 요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늙은 부모’를 모시는 ‘늙은 자식’들이 현실적으로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를 꼬집는다. 백세 시대·장수 시대는 과연 축복인지 재앙인지, 노인 인구가 점점 더 늘어나는 이 시대에 노인 부양의 책임이 오롯이 한 가족에게만 있는지 되묻는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의 도움을 받는 자식들에게 ‘부모를 버리고 패륜을 저지른 자식’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사회적 시선을 이제는 거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부모가 자식들 집에서 ‘징역살이’ 하듯 사는 것보다 요양 전문 기관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사는 것이 자식과 부모 모두에게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부모가 아파서 혼자 움직이지 못하고 온몸이 무너져 내리고 까만 반점이 솟아나는 걸 보며 그래도 살아야 하는 자식은 나날이 마음이 널뛴다. 좋은 밥 한 끼를 놓고도, 명랑한 웃음 한 번에도 뒤통수가 당긴다. ‘자식이 이래도 되나? 부모가 아픈데.’ 그리움보다 죄의식과 부담에 목이 아프다. 나날이 삭고 정신마저 혼미해져 자식들 이름조차 헷갈릴 때, “내가 오래 살아 네가 고생이구나” 청승스레 울 때, 그래도 고기가 먹고 싶다고 홀연 눈을 빛낼 때, 수없는 모든 순간에.(본문7쪽)

매일매일 혼자 방 안에 갇혀 있는 노인들이나 그 노인들을 두고 자기 삶을 사는 자식들이나 누굴 탓할 게 아니었다. 누가 학대할 마음으로 부모를 붙잡아 두겠는가. 어느 부모가 자식을 괴롭히려고 숨 쉬고 움직이겠는가. 한 공간에 다른 존재 둘이 갇혀 살다 보면 둘 다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존재가 존재를 미워하게 되는 것,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상대를 괴롭히게 되는 게 부모 자식 간이라고, 엄마와 딸 사이라도 다를 것은 없다. … 누군가 하나는 온전히 다른 하나에게 기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면 더더욱 힘들 수밖에.(본문30쪽)

종이책 회원리뷰 (5건)

구매 나쁘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q*****2 | 2021.01.16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잠시 장을 보러 나간 김에 미용실을 들렀다. 지금은 안 되시고요, 이따 5시 반 넘어서 가능한지 전화 한 번 주시고 오세요. 앉아 있는 사람은 셋,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현장 대기를 안 받는 모양이었다. 아마 시간대별로 예약자들이 줄을 서 있겠지. 끽해야 길이를 짧게 다듬는 게 전부인데도 퇴짜를 맞아감서 미용실을 찾아야 한다니 기분이 묘했다. 때마침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
리뷰제목

잠시 장을 보러 나간 김에 미용실을 들렀다. 지금은 안 되시고요, 이따 5시 반 넘어서 가능한지 전화 한 번 주시고 오세요. 앉아 있는 사람은 셋,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현장 대기를 안 받는 모양이었다. 아마 시간대별로 예약자들이 줄을 서 있겠지. 끽해야 길이를 짧게 다듬는 게 전부인데도 퇴짜를 맞아감서 미용실을 찾아야 한다니 기분이 묘했다. 때마침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란 책을 읽으며 지금 내가 죽음으로 가는 길 어디 즈음에 서 있는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세수를 할 때마다 이마에 미세하게 형성된 주름이 자꾸만 느는 게 눈에 보여서 신경이 쓰이는데, 제멋대로 막 자라나는 머리카락을 보아서는 아직 죽음을 고려하기에 적절치 않은 시점인 거 같긴 하다.

사고를 중지하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 순간을 그저 뒤로 미루고픈 마음이 큰 거다. 과연 언제까지 그리 할 수 있을까. 나이 70을 넘어선 부모를 바라보면서 작년과 올해가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다. 그들에게 마지막이 있을 것이요, 나 또한 머지 않아 그들의 뒤를 따를 거란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았다. 남 이야기 대하듯 책을 읽었다. 구입은 2020년 초에 했으니 꼭 일 년을 그냥 묵혔다. 제목이 서글퍼서, 회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해서. 이유야 들라면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평균수명이 꽤 길다. 그래도 90을 넘어선 사람이 사망했다면 다들 한 목소리로 “호상”이라 말한다. “잘 죽었다”는 말의 뉘앙스는 참으로 이상하다. 좀 더 일찍 혹은 늦게, 시점에 차이가 있을 뿐, 죽었다는 사실은 동일하다. 저자는 남들이 무심하게 내뱉은 ‘호상’이라는 단어를 겪었다. 책에서는 그 자신도 충분히 나이가 들어 죽음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계속 등장했다. 실제로 그는 연명 치료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결단을 내렸고, 각종 보험을 점검하며 향후 자신의 병원비로 인해 자녀들이 괴로워할 가능성을 차단했다. 처음부터 그가 단호하게 죽음에 대처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통과하면서 그리 해야 할 필요성에 눈을 떴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듯하다.

어르신들의 시간은 고무줄과도 같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정정했던 이가 어느 순간 보면 배로 늙어 있다. 그의 어머니도 그랬다. 미리부터 준비하지 않았으므로 다섯이나 되는 형제들은 우왕좌왕했다. 처음부터 시설에 모시려곤 안 했다. 아무래도 늙은 부모는 직접 모시지 않으면 죄 짓는 거라는 의식이 그들을 짓눌렀다. 당사자도 그걸 원하진 않았다. 하지만 자식들에게도 감당해야만 하는 삶이라는 게 있었다. 더구나 엄마와 함께 늙어가는 중인 자식 입장에서 오롯이 엄마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퍼붓기란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저항은 완강했지만 짧았다. 현실에 적응하는 게 최선이었고, 다행이도 시설 관계자들은 친절하고도 정성스러웠다.

고생은 짧게 하고 떠나야 복이라던데, 저자의 엄마에게 마지막 순간은 길었다. 시간만을 놓고 보면 2년 정도였지만, 글을 읽는 내 마음조차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의식이 없다. 목에 자꾸만 끼는 가래를 제거하려 들면 고이 잠들어 있던 엄마가 괴로워한다. 병원에서는 금방 숨을 거두실 거 같다고 말을 하는데, 그제도 어제도 같은 말을 들었다. 차라리 고향 집에 모시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가도 막상 호흡기를 떼는 일은 꺼려진다. 병원에서도 우린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라며 그와 같은 결정에는 동조 않는다. 윤리적인 결정을 놓고 신음하기 훨씬 전부터 저자의 기록에는 엄마의 섬망이 등장했다. 빨리 죽어야 한다던 엄마는 평소 같았으면 결코 입 밖으로 내지 않았을 온갖 저주와 욕을 세상이 퍼붓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던데, 저자도 나도 그런 모습으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싶진 않다고 울부짖었다.

소화해야만 하는 일정이 있었는데, 엄마는 고맙게도 그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을 저자에게 허락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간 너무 힘들고 서러워서 막상 돌아가셨다는 말을 접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슬픔이 몰려오진 않았다. 경황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충분히 슬퍼했다는 식의 표현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 이후 남겨진 저자의 기록은 말해주고 있었다. 어찌 됐던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만 한다. 한동안 죽음 이외의 소재에 대해선 생각조차 못했고, 예전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실수를 연발하며 제 나이 듦을 여실히 느꼈다. 그런 자신을 금방이라도 잃지는 않을지 염려하는 딸들을 바라보면서, 열렬히 자신의 죽음을 준비했다. 무엇이 괜찮은 죽음인지를 생각해볼 기회, 그건 엄마의 죽음이 저자에게 선사한 선물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혼자가 될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아’가 되어 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날이 있을 것이다. 여전히 죽음은 피하고픈 화두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엄마의 죽음, 아빠의 죽음, 내 자신의 죽음, 세상 모든 죽음이.

댓글 0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2
구매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나**마 | 2020.06.04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우리는 이 인생에 모든 것이 다 처음이니까. 엄마가 되는 것도 처음이었고 그리고 죽음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이하는것이니까.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 보낸것인지 알수가 없다. 우선 다음부터 이런 슬픈 책은 사지 않겠다 다짐했다. 너무나 슬프다. 90세 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이란 참 나이들면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죽음 거참 누가 차라운거랬니.
리뷰제목

우리는 이 인생에 모든 것이 다 처음이니까. 엄마가 되는 것도 처음이었고 그리고 죽음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이하는것이니까.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 보낸것인지 알수가 없다. 우선 다음부터 이런 슬픈 책은 사지 않겠다 다짐했다. 너무나 슬프다. 90세 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간이란 참 나이들면 무기력한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죽음 거참 누가 차라운거랬니. 끼고 있던 슬픔이라느 장갑을 벗고 그 손으로 수저를 들어 밥을 먹게 하는 이야기가 참 맞는 책이다.

댓글 0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파워문화리뷰 283.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K*****2 | 2020.02.24 | 추천4 | 댓글0 리뷰제목
안녕하세요 깡이입니다.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요?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공수래 공수거" 처럼인생을 살아가는건 누구나 똑같은 방식일 것입니다.오늘 소개할 책 역시 그런 인생의 허무함을 표현했습니다.한번은 맞이할수 밖에 없는 가족의 죽음을 표현한 작품"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 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구순 엄마와의 마지막 2
리뷰제목

안녕하세요 깡이입니다.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요?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간다는 "공수래 공수거" 처럼

인생을 살아가는건 누구나 똑같은 방식일 것입니다.

오늘 소개할 책 역시 그런 인생의 허무함을 표현했습니다.

한번은 맞이할수 밖에 없는 가족의 죽음을 표현한 작품

"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 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구순 엄마와의 마지막 2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부모 눈에는 아기 같듯이,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부모를 잃는 슬픔에 익숙해질수 없다.

부모를 떠나 보낸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우리가 어릴땐 크면 당연히 부모님께 효도를 할수 있을줄 알았다.

또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고.

하지만 나이가 들고 자신이 책임져야할  가족이 하나둘씩 늘어갈때쯤에

아픈 부모가 조금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 공감이 더 많이 갔다.

무조건 효도하는 이쁜모습만 보여주는것이 아니라

아픈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모습과 그 비용에 따른 부담감,

또 그런 어머니를 보며 아무것도 해줄수 없음에 느끼는 슬픔

늙어가는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자신에 대한 까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겪을 일이다.

부모를 지고 간 지게에 내가 오를날이 올것이고,

그 지게를 내 자식이 지게 될것이고, 그 아이또한 지게를 지게 될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죽음과 가까워질것이다.

 

구순이 된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번씩 죽음의 문턱을 지나간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저자는 낯선 어머니의 모습을 마주한다.

사실 나도 누군가의 죽음을 이처럼 가까이서 본적은 없기에 조금은 무서웠다.

 

모든 사람은 죽기 직전에 욕을한다는말.

저승의 문앞에서 저도 모르는 죽음의 슬픔과 기쁨에 헷갈리면서

평생 쟁여놓은 욕설을 쏟아낸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아마 그 욕을 하면서 자신의 한이 풀리는것도 있지만

이승에 남겨질 자식에게 원래 자신의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마지막 정을 떼려했던 어머니의 배려는 아니였을까?

 

그렇게 죽을고비를 일주일 넘게 넘겨가며 어머니는 견디셨다.

어떤 한이 있어 가지 못하냐고, 이제는 편하게 가도 된다 생각했지만

막상 어머니가 곁에 없다고 생각하니 누군가의 엄마가 된 저자도 두려웠다.

그렇게 어머니의 마지막 곁을 지켜보는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어머니는 결국 돌아가셨다.

자신의 딸이 편히 출장을 갈수있도록, 

자신의 죽음 앞에 어떠한  아쉬움 조차 남지 않고 일할수 있도록.

그렇게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그녀의 딸을 생각했다. 

 

 

 

“ 한 부모는 여러 자식을 키울 수 있어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모신다.” 라는 말처럼

어릴 때는 당연히 할 수 있을꺼라 생각 했던 것들이

나이가 들고 현실이란 벽 앞에서 무너지게 된다.

이제는 어떻게 모실까, 어떤게 몸에 좋을까 보다

요양원 돈이 얼마인지 그러면 한달에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

그러려면 지출을 얼마나 줄여야하는건지 계산기를 두드리는 내가 있을 뿐이다.

왜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나, 내가 멀 잘못했나 생각이 들때도 많았지만

잠든 부모님의 모습을 볼때면 이젠 함께 산 날보다 살날이 더 적겠구나...

언제 이렇게 세월이 빨리 흘러버렸나 하는 맘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나이를 들어가는것은 자연스럽고 또 피할수 없는것이다.

부모를 귀찮아 하던 나처럼 나의 자식도 나를 귀찮아하고 부담스러워할 날이 올것이다.

내가 가졌던 마음을 내 아이도 가진다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아프다.

늙어가는 부모 앞에서 늘 좋을순 없겠지만, 이별하는 그 순간 후회하지 않도록.

더 못해줬음에 가슴치지 않도록 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걷고 싶다.

 

 

 

#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 0 4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4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기*이 | 2020.02.23 | 추천0 | 댓글2 리뷰제목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내 죽음도 한번뿐이고 내 가족의 죽음도 한번 뿐이여서 그것이 어떨지 감히 가늠 할 수 조차 없다. 이 책은 작가가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엄마와의 시간을 추억하며 쓴 이야기이다. 엄마의 투병시간을.. 엄마와 함께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추억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엄마를 애도하는 시간이였던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리뷰제목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내 죽음도 한번뿐이고 내 가족의 죽음도 한번 뿐이여서 그것이 어떨지 감히 가늠 할 수 조차 없다. 

이 책은 작가가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엄마와의 시간을 추억하며 쓴 이야기이다. 엄마의 투병시간을.. 엄마와 함께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추억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엄마를 애도하는 시간이였던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어릴적부터 매우 화목했고, 난 부모님의 싸움을 단 한번도 보지 않고 자랐다. 따뜻한 엄마, 다정하고 애교많은 아빠, 나의 절친 내동생.. 우리 가족은 내 세상의 전부이다. 그리고 난 그 누구보다 엄마 껌딱지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정말 많이 울었다.(도저히 카페에서 독서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뇌경색으로 쓰러져 요양병원에서 투병하다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가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가의 구순엄마도 요양원에 들어갔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이다. 집에 아픈 엄마를 모시려고 해도 하루 왠종일 볼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이 요양원, 요양병원에 모신다.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생각이 되어 보내는 자식도 가야하는 부모도 내키지 않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서글프고 슬프다.


"아이고 나는 언제쯤 집으로 가니. 너는 그렇게 집으로 가는데."


구순엄마는 요양원을 나가고 싶어 하신다. 

내가 기억하는 정신이 온전했던 우리 외할머니 마지막 모습이 그거였다.

집에 가고싶어, 봄이 되면 집에 가고싶어.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몸의 절반을 쓸 수 없던 할머니가 그토록 원하던 건 집이였다. 찾아가면 그렇게 우시면서 집에 가고싶다고 하셨다...


구순엄마를 보내는 과정을 담은 책이여서 죽음으로 가는 모습에 대해 꽤나 자세히 쓰여있다. 한평생 착하게 살던 엄마가 죽음의 문턱에서 난폭하게 욕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작가는 당황한다.

 

모든 사람이 죽기 직전에 욕을 해요. 살아 있는 동안 가장 큰 고통을 느낄 때가 죽는 순간이랍니다. 그 고통을 이기기 위해서 모르핀과 엔도르핀을 평소보다 천 배 이상 분비한대요. 물론 남은 마지막 몇 나노 그램까지 다 쏟아내는 거죠. 이승에서 못다 한 마지막 아쉬움을 욕으로 분출하는 거죠. 그러니 살아생전 고운 말만 쓰던 조신한 사람도, 착하디 착했던 나무 같고 꽃 같은 사람도 저승 문 앞에서 저도 모르는 죽음의 슬픔과 기쁨에 헷갈리면서 서리서리 평생 쟁여놓은 욕설을 쏟아내게 되는 거죠.

 

죽음을 향해 가는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 분노라니, 나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저승길에 마음이라도 홀가분 하라고 이렇게 만들어 진걸까... 과연 내가 죽을땐 누구에게 화가 나서 그 말을 다 뱉고 저승길을 떠나게 될까. 적어도 그 누군가의 죽음의 마지막 길에 나를 떠올리며 분노하는 사람이 없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구순엄마는 계속 고비상태이다. 몸상태가 모두 정상이라고 한다. 의식만 없을 뿐.. 간호사와 의사는 위독하세요, 곧 돌아가실거 같아요 라고 말하지만 엄마는 고통스러워 할 뿐 생명을 끈을 놓고 있지 않으신다. 살아날 거 같지 않은 엄마의 상태..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니 영양제를 투여하고, 더이상 바늘을 넣을 혈관도 찾을 수 없는 앙상한 손에 또 다시 약을 투여한다. 엄마는 왜 편히 가질 못하실까, 이렇게 생명연장을 하는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가족들과 의견을 나누어 연명치료를 하지 말아달라고 의사에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병원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지 죽으라고 냅두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으면 집으로 모시고 가라는 거였다.


친한 언니의 어머니가 암으로 오랜투병 끝에 돌아가셨는데, 6개월동안 의식없는 엄마를 보고 끝내는 소극적치료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 후 급격히 몸이 나빠지셔서 며칠만에 돌아가셨다. 언니는 죄책감도 들었지만 엄마에게 좋을 거 같아 그런 선택을 했다고 했다.


작가는 긴 투병끝에 떠나는 엄마를 보고 자기 딸들에게는 이런 고통을 주지 않겠다 다짐한다. 이런 잔인한 선택을 스스로 하지 않아도 되도록 정신이 온전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썼다. 연명치료 거부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것이다. 

사람은 죽음을 생각할때 삶에 대한 의지가 더 확고해 진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그래서 매해 유서를 쓰는 사람도 있고, 새해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죽음"이라는 상상만으로도 눈물밖에 나지 않고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작가가 엄마를 보내며 느낀 생각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나도 한번 용기내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까 싶었다. 정말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언젠간 겪을 일이니까...


읽는 내내 10년전 떠난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땐 내가 20대 초반이라 죽음에 대한 진지한 마음보다는 단순히 할머니가 돌아가신 슬픔과 소멸이란 걸 느꼈던 거 같다.

내 앞에서 눈물 한번 보이지 않던 엄마가 크게 울며 "난 이제 고아야" 라고 했던게 기억이 난다. 


작가는 한없이 착하기만 한 엄마를 원망하고, 가난하고 멋없는 엄마가 부끄럽고, 요양원을 찾아갈때마다 우는 엄마가 나약해 싫고, 구질구질한 엄마를 지겨워했지만

엄마를 보내며 엄마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거 같아 마음이 뭉클했다.


엄마를 보내는 디테일 한 이 이야기는 슬펐지만 무겁지 않게 나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어 고마웠고, 읽는 동안 우리 가족이 떠오르며 이승에 있는 동안은 더 행복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엄마를 보내고 쓴 "저승꽃, 마지막으로 피는 꽃" 이란 제목의 시를 보고 펑펑 울었다.

다음에 이 책을 열었을 땐 내 마음도 조금 단단해져 있길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 2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구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읽어야 할 책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아*키 | 2020.02.0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일언이폐지하고, 지금 죽어 가고 있거나 언젠가 죽어 갈 엄마를 두고 있는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읽어야 할 책이에요. 존엄한 죽음의 방식에 대해 한번쯤이라도 고뇌해 본 적 있는 사람이 읽으면 도움이 될 책이기도 하구요.슬픔과 기쁨, 사랑과 미움, 원망, 연민, 환멸 ...... 지은이는 이 책에서 죽어 가는 엄마를 돌보는 자식의 그런 복잡다기한 감정을, 그 종잡을 수 없는 굴곡을 날
리뷰제목
일언이폐지하고, 지금 죽어 가고 있거나 언젠가 죽어 갈 엄마를 두고 있는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읽어야 할 책이에요. 존엄한 죽음의 방식에 대해 한번쯤이라도 고뇌해 본 적 있는 사람이 읽으면 도움이 될 책이기도 하구요.

슬픔과 기쁨, 사랑과 미움, 원망, 연민, 환멸 ...... 지은이는 이 책에서 죽어 가는 엄마를 돌보는 자식의 그런 복잡다기한 감정을, 그 종잡을 수 없는 굴곡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면서 인간의 본성을 통찰하죠. 또 잘 벼려진 문장이 프로 글쟁이의 단단한 내공을 보여 주며 읽을 맛을 더해 줘요. 그래서 이 책은 꼭 볼펜을 손에 쥐고 읽어야 해요. 자주 밑줄을 그어야 하니까요.

책 속에 실린 글들은 하나하나가 마치 피카레스크 소설의 삽화처럼 읽혀요. 그 중에서도 특히 <굿’바이, Good & Bye>는 너무 아름다워서 한 편의 시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예요. 그만큼 큰 울림과 뭉클한 감동을 안겨 주죠.
댓글 0 이 리뷰가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한줄평 (1건)

뒤로 앞으로 맨위로 aniAla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