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그게 문제에요. 나는 바뀌지 않아요. 그래서 떠나야 해요.
110년 전에 한 신부이자 소설가가 쓴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그냥저냥 읽을 만 하긴 했지만, 지나치게 유럽 중심적이고, 가톨릭 중심적인 그래서 피해 망상에 가까운 저자의 생각에는 별로 동의할 수가 없다.
소설과는 달리 물질만능, 이성중심의 사회가 되었다고 세상이 가톨릭/종교인을 사회악 취급하며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피해망상이다. 단지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더 이상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채 잊혀져 갈 것이다.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는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 1907년 쓰여진 이 소설은 어두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대중들에게 너무도 유명한 1932년 출간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1949년 출간한 조지오웰의 [1984] 보다도 평균 30년 정도 먼저 쓰여진 작품이다.
분량은 [멋진 신세계]와 비슷하고 [멋진 신세계] 보다는 구성이 단순하지만 밀도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올더스 헉슬리의 미래관이 미래상의 세계관을 좀더 다채롭게 이야기 하고 있다면 이 소설은 기독교적 종말론의 한부분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다른 것 같다. 교황과 적그리스도를 등장시키며 인본주의에 대한 저자의 또 종교인들의 우려가 드러나 있는 것도 같다.
작품에 그려져 있는 안락사 제도가 현재 일부 국가에서 제도화된 존엄사를 연상하게도 하지만 작품 속에 그려지는 기독교에 적대적인 적그리스도적인 인물이 등장해 세계적 지도자가 된다해도 몰살형 등을 실행할 가능성이 있을까 싶다. 한 집단 전체를 몰살해 버린다? 차별에 적대적이기에 그러한 차별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수단으로 한 집단을 몰살해 버린다는 논리에 수긍하고 동조하는 지도자들이 있을까? 이 소설은 극적이긴 한데 너무 극적이라 현실감각이 없다고 여겨진다.
[이 책을 출간한 연대가 1907년인 것을 고려하면 이후 등장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를 생각하면 저자가 가정한 미래의 몰살형이 이미 실행되었던 것과도 다름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가까운 과거에도 동유럽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인종청소라고 불리운 학살들이 일어났으니 (현재의 상식으로 보아 상식적이지는 않지만) 특정 종교인들을 몰살시킨다는 것과는 형태가 다른 집단학살이라면 미래에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흡인력있고 재밌는 소설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그가 이야기하는 미래의 세계관이 생각해 볼만은 했지만 재미면에서는 선뜻 다른 분들에게 권하기 그랬다. 그런데 이 소설은 1907년 출간된 소설임에도 옛날 소설식의 늘어지는 주석 같은 묘사가 없다. [1984]만 해도 읽다가 지겨워져서 중단한 바 있는데 이 소설은 제법 빠른 전개이다.
저자가 영국 성공회의 최고위직인 켄터베리 대주교의 아들이면서 성공회 사제로 제직하다가 카톨릭으로 전향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카톨릭의 예식에 대한 관찰이나 호감이 이 소설에서 충분히 느껴지기도 한다. 카톨릭 사제가 쓴 종말과 적그리스도관이 드러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 면이 독자에게 남다른 호기심을 불러올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종말론이나 적그리스도를 묘사하는데 그리 치밀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기독교적 시각을 빌려 보자해도 적그리스도라면 좀더 설득력 있게 종교를 탄압하고 인구 감소를 유도하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19 같은 대감염병을 인위적으로 전파시켜 인구를 감소시키면서 예방차원의 접종 백신에 손을 써 접종자들이 어느 비율로 사망하거나 접종 이후 오랜 시간 후에 사망하게 하고 차츰 불임이 오게 해서 인구를 감소시킬 것 같다. 또 적극적인 방역을 시행하기 위해서라면서 종교 모임을 차단한다던가 하며 종교 모임을 갖는 이들을 금고형에 처한다던가 종교 집회 주동자를 무기징역에 처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종교도 탄압하고 말이다.] 저자가 그린 로마 폭격이나 나자렛 폭격 같은 예는 너무도 만화 같은 발상이 아닌가 싶다.
다른 리뷰에서 없는 말만 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명심해야 하는 바는 출간년도이다.
1907년!
114년 전이다.
1907년도의 한국소설을 생각해 보면,
<혈의 누>, <금수회의록> 등등이 쓰여질 때라는 점을 명심하면,
그리고 유럽 난민 사태 등으로 공공장소에서 온갖 성범죄에, 테러에, 뭐에 유럽이 시달리는 현실을 반영하면,
게다가 한국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내용 별이 4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갈, *미향 등을 경험하기 전의 대한민국이었다면
이 책에 공감하기 힘들었으리라는 느낌도 있다.)
그런데 편집 별이 2개인 이유는
두어 군데 탈자가 있는 듯한 느낌이고
아무래도 19세기말 20세기초 소설이다보니 장황한 느낌인데다가,
게다가 SF 영화에 준 영향이 커서인지
마치 SF 흥행작을 소설로 풀어 쓴 느낌까지 주고 있어서
읽어 볼만 하지만 빠르게 읽히지는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 책의 홍보 문구에 나온것처럼 교황님이 추천하신 책이라기에 바로 주문을 했다. 고전 인문학과 같은 책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고전이지만 SF장르였다. 세상을 바꾼 인물들은 SF도 좋아하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1907년 쓰여진 소설인데, 100년 후 종말의 위기에 처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점이 과거이지만, 디스토피아를 잘 그려낸 것이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았다.
모태신앙이며 10여년 전 가톨릭으로 개종을 한 천주교 신자이지만, 대부분의 시간 하느님의 존재를 잊고 지낸다. 내가 그의 존재를 부르짖는 순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극심한 삶의 고통을 맞닥뜨렸을 때다.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나를 언제 이 고통에서 구해내실 건지 그에게 따져묻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나를 보며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나약한 존재인지를 절실히 깨닫곤 한다. 하지만 그 고통을 거둬가신 후에는 어김없이 그의 존재를 지워내고, 그 자리에는 다시 내 삶을 내 뜻대로 꾸려갈 수 있다는 오만함에 가득 찬 나만이 남는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성에 대한 오만한 자신감이 '인본주의'라는 탈을 쓰고 사람들을 집어삼킬 때 비극이 시작된다.
세계 평화를 가져오며 인본주의를 앞세워 '유럽 대통령'으로 군림하게 된 '줄리언 펠센버그.' 그리고 그에 맞서 가톨릭 교회를 지키려는 사제 '퍼시 프랭클린.' 저자는 도플갱어처럼 똑닮은 외모를 가진 두 사람을 통해 빛과 어둠, 선과 악의 대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저자인 로버트 휴 벤슨이 신부님이라는 점과 두 교황님이 추천하신 책이라는 점으로 미뤄 볼 때 선과 악의 구분은 아주 명확하다. 하지만 나는 책장을 반쯤까지 넘겼을 때도 책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공부하듯 인본주의가 악이고 그리스도교가 선인 이유를 암기했을 뿐 그 이유를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이 스스로의 위대함을 믿는다는데, 그게 뭐 그렇게 해악이란 말인가?
내가 그것이 어둠이자 악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이해했던 건 '인본주의'라는 종교 아래 모든 사람들이 '인간성'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한몸처럼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을 때였다. 개인의 자유는 사라지고 오직 집단만 남는 공포. 다양성은 사라지고 한 사람의 통치 아래 획일성만 남는 비극. 모든 사람들이 펠센버그라는 '사람'을 '세계의 구세주'로 모시며 머리를 조아리고, '신은 인간이고, 인간은 신이다'라는 그릇된 신념 아래 가톨릭 신자들을 살육하는 모습을 보며 히틀러가 벌였던 잔혹한 홀로코스트의 역사가, 이만희를 신으로 모시며 가족도, 자기 자신도 버린 채 삶을 망가뜨리는 사이비 신천지 신자들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잔상처럼 어른거렸다. 그건 인간의 완벽함을 맹신하고 어리석음을 무시할 때 벌어지는 비극이다.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라고 믿을 때 벌어지는 비극.
프롤로그에서부터 종교와 사상, 철학 냄새를 맡으면서 그저 굿즈를 받으려고 금액을 맞추기 위해 '교황이 추천한 책'이라는 마케팅에 혹해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고른 나를 잠시 원망했다. 페이지를 몇 장 넘기지도 못하고 멈춰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를 검색했고 '인본주의'의 의미를 몇 번이나 되새김질해야 했다. 두 교황님이 이 책을 콕 집어 추천하신 이유에 나도 격하게 공감하고 싶었지만 순탄치 않은 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브레이크가 걸려 멈춰선 덕에 종종 읽고 있던 부분에 검지 손가락을 끼워넣은 채 많은 생각을 했다. 개인이 매몰된 집단의 광기를 떠올리며 공포를 느꼈고, 그에 맞서 끝까지 하느님을 붙들고 나아가던 퍼시와 신자들의 믿음에 감탄했으며, 묵주반지를 닳도록 끼고 다니면서도 전지전능한 존재에 나의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한 채 나만의 힘으로 나의 삶을 일구어 가려고 했던 내 모습을 돌아봤다.
1907년에 쓰인 작품이지만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비행 물체와 통신 수단 등 100여년 후의 세계를 놀랍도록 비슷하게 상상해낸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의의보다는 100여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2020년을 살고 있는 불량한 어린 양인 나에게도 오만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속성과 내가 믿고 있(다고 믿고 있는)는 하느님에 대해, 그리고 나의 믿음에 대해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도록 해준 귀한 기회였다고 말하고 싶다.
디스토피아 소설 (암울한 미래를 그린 소설)인 『세상의 주인』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을 계속 따라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관한 사유의 결과물이다. 『세상의 주인』은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성경』의 종말론을 바탕으로, 종말의 시기에 그리스도교 셰력과 반그리스도교 세력의 갈등을 다룬다.
벤슨은 그리스도교를 유물론적 인본주의 종교로 대체하려는 당시의 영적 운동을 제대로 포착했다. 스스로를 '영적이기는 하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성향'이라고 밝히는 사람이 늘고 있는 최근의 흐름을 이미 오래전에 간파한 것이다. 벤슨은 사실상 신이 사라진 투쟁적이고 세속적인 인본주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세상의 주인』은 사상의 획일화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디스토피아가 주제가 되는 이야기들은
오랜 시간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 혹은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왔다.
가고 싶지 않지만, 현실에 산재한 어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현실의 어두운 면들이 나를 덮칠 때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 때문일 것이다.
호기심을 자극하여, 인간의 내면 혹은,
악한 본성이 펼쳐질 때 어떤 세상이 눈 앞에 도래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말로 풀어내 눈 앞에 보여주는
이런 소설들은 시대와 무관하게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나 오랜 시간 전에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시대상을 그리고
(실제로 비슷하고 유사한 면이 많은 사회를 그리며)
인간의 내면을 깊숙하게 드려다보는 이 소설은
이 안에 있는 디스토피아적인 내용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소름돋는 싱크로율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과 닮아있는 과거의 디스토피아가
점점 각박해져가고, 인간성을 상실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면서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이상에 도달하고 싶어하는 이성을 가진
이상적이지 않은 인간들의 모임이기에
영원히 안고 가야하는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생각을 주는 어두움이,,
그 어두움이 막연하지 않기에,
가볍게 읽을수는 없지만, 멀게 두고 읽을 책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책끝을 접다 광고에 낚여서 사긴 했는데 (교황 추천 어쩌고 그런것도 있긴 했지만요) 그 광고에서는 조금 식상한 내용이지 않나? 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100년도 훨씬 전에거라는거에요 정말 놀랬죠 아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단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무튼 그렇게 됐네요 재미있게 잘 읽힙니다 근데 디스토피아적인 부분이 있어서 읽다가 좀 힘이 빠지긴 합니다
로버트 휴 밴슨 작가님의 세상의 주인 리뷰입니다. 종교적 느낌이 상당히 강한 작품이라 그런 면에서는 호불호가 갈릴수도 있지않을까 싶긴합니다. 디스토피아느낌을 강하게 보여주는 작품인데 나름 흥미진진하고 재밌었어요. 뭣보다 이런 느낌의 작품을 종교인이 썼다는것이 제일 흥미진진한 부분이었습니다. 저자가 경계하는것은 사상의 식민지화인데 요즘 중국이 하는짓을 보면 확실히 경계해야할 부분은 맞는것같습니다.
세상의 종말론인데 100년전에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이 대단하고 흥미진진합니다..
종교가 과학의 발달로 점점 인간중심인 인본주의로 변해가고 신을 믿지 않게 되면서 불신과 폭력이 난무할때 완벽한 인간형 반그리스도 펠센버그가 등장한다...
펠센버그가 연설을 하면 신이 인간이라는 이사람의 말을 믿게 되는 신비한 힘이 작용하고 종교전쟁으로 정점을 치달았던 협상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인기는 높아만 간다..
펠센버그가 원하는 대로 따르며 사람들은 점점 미쳐가고 신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로마성당도 파괴하고 만다... 종교가 해결하지 못한 인간의 야만성과 이기주의를 타파할거라 믿었는데 완벽한 건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소설...
빛과 그림자처럼 교황과 너무나 닮은 도플갱어 펠센버그....
지금 세계화니 국가주의를 강조하며 점점 인터넷이라는 온라인으로 하나가 되어가는 세상과 과학의 발달은 점점 인간이 신을 믿게 되지 않는 현실을 놀랍도록 잘 표현하여 소름이 돋아요...
519쪽 정도 되는 소설. 작가 로버트 휴 벤슨은 1871년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에서 신학 공부와 저술활동에 몰두하였다. 1907년 세상의 주인을 출간했다. 당시 이 소설은 큰 파문을 일으킬 것을 저자는 알고 있었고, 서두에 언급한다. 영국의 성공회는 가톨릭교 교리에서 멀어져 개신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자는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는데, 이는 성공회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는 균형과 변하지 않는 권위를 지향했다.
세상의 종말과 아픈 사람들을 구원하는 안락사 시설. 반그리스도인 펠센버그는 완벽한 인간이자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정반대에 위치한 인물이다.
종교를 믿지 않아서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교황이 추천을 했다니. 의외다.
[eBook] [대여] 세상의 주인 |
교황 두분의 추천이 있었다고 해서 바로 구매했다. 역시 유명인의 추천은 유효한 것인가~
이 책이 멋진신세계, 1984보다 앞서 나왔고 그 책들 못지않은 통찰력을 가지고 씌였다는 소개는 진작 알고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
과연 인간은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가?
-우리 시대의 진짜 위기를 돌아보게 만드는 날카로운 통찰
벤슨이 100년 전에 상상한 미래 세계는 소름 끼칠 만큼 지금 세상과 닮아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교통수단과 초고속 통신, 대량 살상 무기 같은 기술적 진보에 대한 예언도 놀랍지만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초자연성을 부정하고 인간성을 최고의 가치로 신봉하고,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정신적 변화에 대한 예측이 놀랍도록 정확하다.
로버트 휴벤슨의 세상의 주인 전자책입니다. 2020년 4월 3일에 간행되었고 출판사는 메이빈, 옮긴이는 유혜인님이에요. 6개월전에 책이 처음 전자책으로 나오고나서 카드뉴스로 보는 책을 보고 웹툰처럼 15장의 만화로 책을 소개한 것을 보고 너무 흥미가 생겨서 읽을 수 있을때 읽어보자했습니다. 그러다가 대여 이벤트 도서로 나와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대여하게되었어요. 그게 6개월 전이다 보니 초반에 생겼던 흥미가 사라졌어요. 도서를 다운받고 막상읽어보니 상상력은 대단하구나 했습니만, 동방제국에서 실소가 나왔어요, 그냥 4분의 1정도 읽었는데 그냥 tts 틀어놓고 듣고 있는데 재미 있고 없고를 떠나서 디스토피아 소설의 시초라고 하는데 그냥 아무 느낌이 없어요 긴장감이 없다 보니 글의 전개도 느린것 같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올리버 이야기도 흥미가 안 생겨요~ 그래도 끝까지 읽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