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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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8.4 (5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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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디스토피아 소설 장르의 시초

『1984』『멋진 신세계』『반지의 제왕』『나니아 연대기』에 큰 영향을 준 숨겨진 걸작

190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두 번이나 추천한 소설



“이 책을 여러분들이 꼭 좀 읽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110년 전에 출간된 SF소설이 누군가의 한마디로 전 세계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국, 유럽, 남미 등 전 세계 각지에서 292개 판본이 쏟아져 나왔다. 100여 년 동안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이 책이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12억 가톨릭 신자들의 정신적 지도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추천 때문이다.



『세상의 주인』을 쓴 로버트 휴 벤슨은 큰 신부님(몬시뇰) 칭호를 받은 로마가톨릭 사제이면서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그는 사목활동 틈틈이 작품을 썼는데, 『세상의 주인』은 그가 발표한 50여 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큰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산업화와 기술 발전, 경제 성장 등으로 미래를 낙관하는 소설이 대부분이던 시절에 찬물을 끼얹는 디스토피아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주인』은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보다 30년 앞서 발표된 최초의 디스토피아 미래 소설로 평가받는다.



벤슨이 100년 전에 상상한 미래 세계는 소름 끼칠 만큼 지금 세상과 닮아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교통수단과 초고속 통신, 대량 살상 무기 같은 기술적 진보에 대한 예언도 놀랍지만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초자연성을 부정하고 인간성을 최고의 가치로 신봉하고,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정신적 변화에 대한 예측이 놀랍도록 정확하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전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고 막강한 권력을 쥔 인본주의 세력에 맞서는 소수의 가톨릭교 신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지나친 물질주의와 맹목적인 인본주의가 초래할 거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두 명의 교황이 『세상의 주인』을 여러 번 추천한 것도 어쩌면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벤슨이 이 작품을 집필했던 20세기 초보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에게 더 시의적절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해설 왜 두 교황은 『세상의 주인』을 추천했을까? - 콜린 오브라이언(미국 가톨릭 주교회 공보실 실장)
서문
프롤로그

제1권 강림
제2권 대결
제3권 승리

부록 1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을 따라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세상의 주인』의 문학적 의미- 마크 보스코(조지타운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부록 2 진정한 세상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세상의 주인』의 신학적 의미- 마이클 머피(미국 로욜라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부록 3 100년 동안 잊고 있던 위대한 작가 로버트 휴 벤슨의 재발견 :『세상의 주인』의 역사적 의미- 마틴 샘슨(영국 브리스틀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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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란치스코 교황은 113년 전 소설을 두 번이나 추천했을까?

로버트 휴 벤슨이 1907년 발표한 『세상의 주인』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두 번이나 추천하면서 다시금 전 세계 독자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세계 대통령으로 등극한 미국 정치인과 교황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이 책은『1984』와 『멋진 신세계』,『반지의 제왕』에 큰 영향을 끼친 숨겨진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벤슨이 100년 전에 상상한 미래 세계는 소름 끼칠 만큼 오늘의 세상과 닮아 있다. 그래서 작품을 집필했던 20세기 초보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더 시의적절한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 세상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과연 인간은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이 소설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84』『멋진 신세계』『반지의 제왕』『나니아 연대기』에 큰 영향을 준 숨겨진 걸작
★ 1907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
★ 세계 최고 권위자 4인의 작품 해설 독점 수록
★ 현대 디스토피아 소설 장르의 시초
★ 전 세계 292개 판본 출간★ 한국 최초 완역판

프란치스코 교황이 두 번이나 추천한 소설

“이 책을 여러분들이 꼭 좀 읽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110년 전에 출간된 SF소설이 누군가의 한마디로 전 세계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미국, 유럽, 남미 등 전 세계 각지에서 292개 판본이 쏟아져 나왔다. 100여 년 동안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이 책이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12억 가톨릭 신자들의 정신적 지도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추천 때문이다.

2015년 1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필리핀 방문 일정을 마치고(필리핀은 한국 다음 행선지였다)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과 긴 시간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세상의 변화하는 방향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서양 문화가 전 세계의 지배적인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사상의 획일화가 심해지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더욱 큰 문제를 일으킬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어느 독일 기자가 이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하자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죄송하지만 책 홍보를 좀 하겠습니다. 저자는 당시에 이미 사상의 식민지화를 예견하고 책에서 묘사했습니다. 제목은 『세상의 주인』이라고 하고, 저자는 벤슨이라는 사람인데……. 한번 읽어 보세요. 읽어 보면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책을 언급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교황에 선출되던 해인 2013년 11월 일반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론에서 서양의 미성숙한 진보주의가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걱정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의 주인』은 마치 예언서 같은 책입니다. 마치 저자가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보고 썼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도 여러 번 언급

프란치스코 교황만 이 책을 높이 평가한 것은 아니다. 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도 추기경 시절인 1992년 밀라노 가톨릭 대학교 강연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화를 비판하며 『세상의 주인』을 언급한다.
“세속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단일체제 사회가 어떻게 우리의 정신을 파괴하는지를 보여주고 경고하는 소설입니다.”

[인사이드 더 바티칸]에 따르면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이 책을 언급했다고 한다. 사실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은 매우 상반된 성향을 가지고 있다. 2019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영화 [두 교황]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프란치스코 교황(베르골리오 추기경)에게 “당신의 스타일과 방법은 나와는 완전히 달라요.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이나 생각, 행동, 대부분에 동의하지 않소”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세상의 주인』에 대해서만큼은 두 교황의 생각이 일치했던 것 같다. 우리 시대의 위기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할 책으로 두 교황 모두 『세상의 주인』을 선택한 것이다. 이쯤 되면 이 책에 어떤 통찰이나 교훈이 담겨 있는 게 분명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두 교황이 110년 전에 나온 이 소설을 추천한 것일까?

『1984』 『멋진 신세계』 『반지의 제왕』에 큰 영향을 준 숨겨진 걸작

『세상의 주인』을 쓴 로버트 휴 벤슨은 큰 신부님(몬시뇰) 칭호를 받은 로마가톨릭 사제이면서 당시 영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종교학과 문학을 공부한 후 1895년 영국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고 종교인의 길로 들어선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 성공회 최고위직인 캔터베리 대주교였다.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리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약 10년 후 벤슨은 영국과 유럽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다. 1904년 성공회를 떠나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을 한 것이다. 그의 영향으로 지식인들 사이에서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영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그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하는 사건이다.

그는 사목활동 틈틈이 작품을 썼는데, 『세상의 주인』은 그가 발표한 50여 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큰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산업화와 기술 발전, 경제 성장 등으로 미래를 낙관하는 소설이 대부분이던 시절에 찬물을 끼얹는 디스토피아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주인』은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보다 30년 앞서 발표된 최초의 디스토피아 미래 소설로 평가받는다.

『세상의 주인』은 단순히 시기만 앞선 작품이 아니라 실제로 『1984』나 『멋진 신세계』『반지의 제왕』,『나니아 연대기』등이 탄생하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세상의 주인』에 등장하는 3대 세력(아메리카 공화국, 유럽 연합, 동방 제국)은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의 3대 제국으로 등장한다. 벤슨은 전통적 신극(Theodrama: 하느님이 연출한 드라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제시했고, 다른 작가들 역시 신극적 상상력에 관심을 갖기를 바랐다. 이 역시 주요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가 나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SF 소설의 거장 H. G. 웰스는 『세상의 주인』의 설정을 반대로 차용하여 『다가올 세상』이라는 작품을 발표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다.

‘내 책이 큰 파문을 일으키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벤슨이 이 작품을 쓸 당시는 무신론, 마르크시즘, 세계 정부, 우생학이 인류를 유토피아로 이끌 것이라는 믿음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1905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나 총파업과 격렬한 시위가 전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1906년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선 격동의 시기이기도 했다. 벤슨 역시 이런 시대 변화 속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이 작품을 통해 당대 사회 전반적인 인식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이 큰 파문을 일으키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점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러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글을 쓰는 것 말고는 내가 생각하는 원칙을 표현할 방법이 달리 없었다.’

그가 이 작품을 통해 묻고 싶었던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었다.
‘인간이 언젠가 모든 문제의 답을 찾고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즉 맹목적인 인본주의가 옳은가?’

『세상의 주인』에서 예견한 대로 맹목적인 인본주의는 오늘날 더 강력해졌으며 더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문학 평론가 조지프 피어스도 『세상의 주인』을 『1984』나 『멋진 신세계』와 비교하면서 벤슨의 작품이 예언적인 측면에서는 두 작품을 능가한다고 평가한다. 두 작품이 다루는 독재정치는 오늘날 독자들에게 과거 역사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남아 있다면 벤슨이 그린 소설 속 악몽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눈앞에서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은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가?
-우리 시대의 진짜 위기를 돌아보게 만드는 날카로운 통찰

벤슨이 100년 전에 상상한 미래 세계는 소름 끼칠 만큼 지금 세상과 닮아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교통수단과 초고속 통신, 대량 살상 무기 같은 기술적 진보에 대한 예언도 놀랍지만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초자연성을 부정하고 인간성을 최고의 가치로 신봉하고,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정신적 변화에 대한 예측이 놀랍도록 정확하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전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고 막강한 권력을 쥔 인본주의 세력에 맞서는 소수의 가톨릭교 신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 버몬트 주 상원의원 출신으로 놀라운 연설 능력과 언어 감각을 지닌 줄리안 펠센버그가 전쟁 직전의 위기에 처한 동방과 서방의 화합을 이끌어 내며 세계 정치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한다. 그는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세계 대통령으로 등극한다. 사람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진 세계 평화에 열광하며 인간의 위대한 능력을 찬양한다. 그런데 비극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펠센버그는 세계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새로운 정치 질서를 내세우고 이에 반기를 드는 세력을 가차 없이 억압한다. 그에게 저항하는 유일한 세력은 퍼시 프랭클린 신부가 이끄는 힘 잃은 소수의 가톨릭 신자들뿐이다. 이 소설 속 미래 사회는 극단적인 물질주의와 인간 중심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안락사를 보편화하고 무신론을 당연시하며,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찬양하고, 신을 믿는 사람들을 미개인 취급한다. 새로운 정치 지도자는 사상적 통합을 강조하며 종교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하고, 시민들은 이에 동조하여 폭력과 광기로 반응한다. 급기야 지배 세력은 가톨릭 신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엄청난 음모를 꾸미게 된다.

이처럼 위대한 가치를 표방하는 사상들이 어떻게 변질되며,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소설은 흥미진진하게 드러낸다. 정부 관료나, 평범한 시민이나, 인본주의 운동에 동참한 변절한 성직자들은 모두 일시적인 감정과 헛된 열망에 사로잡혀 펠센버그에게 빠져들었다. 펠센버그가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고 난 뒤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은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인간은 세상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을까? 세상의 주인이 되기 위해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지나친 물질주의와 맹목적인 인본주의가 초래할 거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두 명의 교황이 『세상의 주인』을 여러 번 추천한 것도 어쩌면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벤슨이 이 작품을 집필했던 20세기 초보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에게 더 시의적절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전 세계 292개 판본, 한국어로는 처음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이 책은 다양한 언어로 292개의 판본이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번에 처음 소개된다. 한국어판 『세상의 주인』은 콜린 오브라이언 미국 가톨릭 주교회 공보실장의 서문을 비롯해 마크 보스코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를 포함한 세 명의 로버트 휴 벤슨 권위자들이 쓴 해설 세 편을 수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장 아끼는 책으로 알려지면서 문학계에서도 다시금 주목 받고 있는 『세상의 주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적인 매력과 시대를 초월한 통찰이 담긴 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이면 두 교황이 왜 이 소설을 예언서로 받아들였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아울러 책 정가의 5퍼센트는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에 기부되어 우리 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소중하게 쓰일 예정이다.

종이책 회원리뷰 (31건)

[2134] 세상의주인 내용 평점2점   편집/디자인 평점2점 h*****p | 2022.06.0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그게 문제에요. 나는 바뀌지 않아요. 그래서 떠나야 해요.    110년 전에 한 신부이자 소설가가 쓴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그냥저냥 읽을 만 하긴 했지만, 지나치게 유럽 중심적이고, 가톨릭 중심적인 그래서 피해 망상에 가까운 저자의 생각에는 별로 동의할 수가 없다.  소설과는 달리 물질만능, 이성중심의 사회가 되
리뷰제목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그게 문제에요. 나는 바뀌지 않아요. 그래서 떠나야 해요. 

 

110년 전에 한 신부이자 소설가가 쓴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그냥저냥 읽을 만 하긴 했지만, 지나치게 유럽 중심적이고, 가톨릭 중심적인 그래서 피해 망상에 가까운 저자의 생각에는 별로 동의할 수가 없다. 

소설과는 달리 물질만능, 이성중심의 사회가 되었다고 세상이 가톨릭/종교인을 사회악 취급하며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피해망상이다. 단지 세상의 무관심 속에서 더 이상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채 잊혀져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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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현실성은 안느껴지지만 재미는 있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수퍼스타 이*라 | 2021.07.15 | 추천7 | 댓글0 리뷰제목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는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 1907년 쓰여진 이 소설은 어두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대중들에게 너무도 유명한 1932년 출간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1949년 출간한 조지오웰의 [1984] 보다도 평균 30년 정도 먼저 쓰여진 작품이다.    분량은 [멋진 신세계]와 비슷하고 [멋진 신세계] 보다는 구성이 단순하지만 밀도 있다고 여겨
리뷰제목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는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 1907년 쓰여진 이 소설은 어두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대중들에게 너무도 유명한 1932년 출간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1949년 출간한 조지오웰의 [1984] 보다도 평균 30년 정도 먼저 쓰여진 작품이다. 

 

분량은 [멋진 신세계]와 비슷하고 [멋진 신세계] 보다는 구성이 단순하지만 밀도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올더스 헉슬리의 미래관이 미래상의 세계관을 좀더 다채롭게 이야기 하고 있다면 이 소설은 기독교적 종말론의 한부분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다른 것 같다. 교황과 적그리스도를 등장시키며 인본주의에 대한 저자의 또 종교인들의 우려가 드러나 있는 것도 같다.

 

작품에 그려져 있는 안락사 제도가 현재 일부 국가에서 제도화된 존엄사를 연상하게도 하지만 작품 속에 그려지는 기독교에 적대적인 적그리스도적인 인물이 등장해 세계적 지도자가 된다해도 몰살형 등을 실행할 가능성이 있을까 싶다. 한 집단 전체를 몰살해 버린다? 차별에 적대적이기에 그러한 차별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수단으로 한 집단을 몰살해 버린다는 논리에 수긍하고 동조하는 지도자들이 있을까? 이 소설은 극적이긴 한데 너무 극적이라 현실감각이 없다고 여겨진다.

 

[이 책을 출간한 연대가 1907년인 것을 고려하면 이후 등장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를 생각하면 저자가 가정한 미래의 몰살형이 이미 실행되었던 것과도 다름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가까운 과거에도 동유럽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에서 인종청소라고 불리운 학살들이 일어났으니 (현재의 상식으로 보아 상식적이지는 않지만) 특정 종교인들을 몰살시킨다는 것과는 형태가 다른 집단학살이라면 미래에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흡인력있고 재밌는 소설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그가 이야기하는 미래의 세계관이 생각해 볼만은 했지만 재미면에서는 선뜻 다른 분들에게 권하기 그랬다. 그런데 이 소설은 1907년 출간된 소설임에도 옛날 소설식의 늘어지는 주석 같은 묘사가 없다. [1984]만 해도 읽다가 지겨워져서 중단한 바 있는데 이 소설은 제법 빠른 전개이다.

 

저자가 영국 성공회의 최고위직인 켄터베리 대주교의 아들이면서 성공회 사제로 제직하다가 카톨릭으로 전향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카톨릭의 예식에 대한 관찰이나 호감이 이 소설에서 충분히 느껴지기도 한다. 카톨릭 사제가 쓴 종말과 적그리스도관이 드러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 면이 독자에게 남다른 호기심을 불러올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종말론이나 적그리스도를 묘사하는데 그리 치밀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기독교적 시각을 빌려 보자해도 적그리스도라면 좀더 설득력 있게 종교를 탄압하고 인구 감소를 유도하지 않을까 싶다. 코로나19 같은 대감염병을 인위적으로 전파시켜 인구를 감소시키면서 예방차원의 접종 백신에 손을 써 접종자들이 어느 비율로 사망하거나 접종 이후 오랜 시간 후에 사망하게 하고 차츰 불임이 오게 해서 인구를 감소시킬 것 같다. 또 적극적인 방역을 시행하기 위해서라면서 종교 모임을 차단한다던가 하며 종교 모임을 갖는 이들을 금고형에 처한다던가 종교 집회 주동자를 무기징역에 처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종교도 탄압하고 말이다.] 저자가 그린 로마 폭격이나 나자렛 폭격 같은 예는 너무도 만화 같은 발상이 아닌가 싶다.

댓글 0 7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7
처음 경험하는 세상에서라면....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2점 g*****l | 2021.05.2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다른 리뷰에서 없는 말만 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명심해야 하는 바는 출간년도이다.  1907년!  114년 전이다.    1907년도의 한국소설을 생각해 보면,  <혈의 누>, <금수회의록> 등등이 쓰여질 때라는 점을 명심하면,  그리고 유럽 난민 사태 등으로 공공장소에서 온갖 성범죄에, 테러에, 뭐에 유럽이 시달리는 현실을 반영하면, 게
리뷰제목

다른 리뷰에서 없는 말만 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명심해야 하는 바는 출간년도이다. 

1907년! 

114년 전이다. 

 

1907년도의 한국소설을 생각해 보면, 

<혈의 누>, <금수회의록> 등등이 쓰여질 때라는 점을 명심하면, 

그리고 유럽 난민 사태 등으로 공공장소에서 온갖 성범죄에, 테러에, 뭐에 유럽이 시달리는 현실을 반영하면,

게다가 한국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내용 별이 4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갈, *미향 등을 경험하기 전의 대한민국이었다면 

이 책에 공감하기 힘들었으리라는 느낌도 있다.)

 

그런데 편집 별이 2개인 이유는

두어 군데 탈자가 있는 듯한 느낌이고 

 

아무래도 19세기말 20세기초 소설이다보니 장황한 느낌인데다가,

게다가 SF 영화에 준 영향이 커서인지 

마치 SF 흥행작을 소설로 풀어 쓴 느낌까지 주고 있어서

읽어 볼만 하지만 빠르게 읽히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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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세상의 주인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p*****h | 2021.02.1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 책의 홍보 문구에 나온것처럼 교황님이 추천하신 책이라기에 바로 주문을 했다. 고전 인문학과 같은 책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고전이지만 SF장르였다. 세상을 바꾼 인물들은 SF도 좋아하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1907년 쓰여진 소설인데, 100년 후 종말의 위기에 처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점이 과거이지만, 디스토피아를 잘 그려낸 것
리뷰제목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 책의 홍보 문구에 나온것처럼 교황님이 추천하신 책이라기에 바로 주문을 했다. 고전 인문학과 같은 책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고전이지만 SF장르였다. 세상을 바꾼 인물들은 SF도 좋아하는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1907년 쓰여진 소설인데, 100년 후 종말의 위기에 처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점이 과거이지만, 디스토피아를 잘 그려낸 것이 너무 재미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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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진정한 세상의 주인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2020.12.1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모태신앙이며 10여년 전 가톨릭으로 개종을 한 천주교 신자이지만, 대부분의 시간 하느님의 존재를 잊고 지낸다. 내가 그의 존재를 부르짖는 순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극심한 삶의 고통을 맞닥뜨렸을 때다.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나를 언제 이 고통에서 구해내실 건지 그에게 따져묻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나를 보며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나약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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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신앙이며 10여년 전 가톨릭으로 개종을 한 천주교 신자이지만, 대부분의 시간 하느님의 존재를 잊고 지낸다. 내가 그의 존재를 부르짖는 순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극심한 삶의 고통을 맞닥뜨렸을 때다.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나를 언제 이 고통에서 구해내실 건지 그에게 따져묻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나를 보며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나약한 존재인지를 절실히 깨닫곤 한다. 하지만 그 고통을 거둬가신 후에는 어김없이 그의 존재를 지워내고, 그 자리에는 다시 내 삶을 내 뜻대로 꾸려갈 수 있다는 오만함에 가득 찬 나만이 남는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성에 대한 오만한 자신감이 '인본주의'라는 탈을 쓰고 사람들을 집어삼킬 때 비극이 시작된다.


세계 평화를 가져오며 인본주의를 앞세워 '유럽 대통령'으로 군림하게 된 '줄리언 펠센버그.' 그리고 그에 맞서 가톨릭 교회를 지키려는 사제 '퍼시 프랭클린.' 저자는 도플갱어처럼 똑닮은 외모를 가진 두 사람을 통해 빛과 어둠, 선과 악의 대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저자인 로버트 휴 벤슨이 신부님이라는 점과 두 교황님이 추천하신 책이라는 점으로 미뤄 볼 때 선과 악의 구분은 아주 명확하다. 하지만 나는 책장을 반쯤까지 넘겼을 때도 책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공부하듯 인본주의가 악이고 그리스도교가 선인 이유를 암기했을 뿐 그 이유를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이 스스로의 위대함을 믿는다는데, 그게 뭐 그렇게 해악이란 말인가?


내가 그것이 어둠이자 악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이해했던 건 '인본주의'라는 종교 아래 모든 사람들이 '인간성'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되어 한몸처럼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을 때였다. 개인의 자유는 사라지고 오직 집단만 남는 공포. 다양성은 사라지고 한 사람의 통치 아래 획일성만 남는 비극. 모든 사람들이 펠센버그라는 '사람'을 '세계의 구세주'로 모시며 머리를 조아리고, '신은 인간이고, 인간은 신이다'라는 그릇된 신념 아래 가톨릭 신자들을 살육하는 모습을 보며 히틀러가 벌였던 잔혹한 홀로코스트의 역사가, 이만희를 신으로 모시며 가족도, 자기 자신도 버린 채 삶을 망가뜨리는 사이비 신천지 신자들이 머릿속에 끊임없이 잔상처럼 어른거렸다. 그건 인간의 완벽함을 맹신하고 어리석음을 무시할 때 벌어지는 비극이다. 세상의 주인이 '인간'이라고 믿을 때 벌어지는 비극.


프롤로그에서부터 종교와 사상, 철학 냄새를 맡으면서 그저 굿즈를 받으려고 금액을 맞추기 위해 '교황이 추천한 책'이라는 마케팅에 혹해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고른 나를 잠시 원망했다. 페이지를 몇 장 넘기지도 못하고 멈춰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를 검색했고 '인본주의'의 의미를 몇 번이나 되새김질해야 했다. 두 교황님이 이 책을 콕 집어 추천하신 이유에 나도 격하게 공감하고 싶었지만 순탄치 않은 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주 브레이크가 걸려 멈춰선 덕에 종종 읽고 있던 부분에 검지 손가락을 끼워넣은 채 많은 생각을 했다. 개인이 매몰된 집단의 광기를 떠올리며 공포를 느꼈고, 그에 맞서 끝까지 하느님을 붙들고 나아가던 퍼시와 신자들의 믿음에 감탄했으며, 묵주반지를 닳도록 끼고 다니면서도 전지전능한 존재에 나의 모든 것을 맡기지 못한 채 나만의 힘으로 나의 삶을 일구어 가려고 했던 내 모습을 돌아봤다.


1907년에 쓰인 작품이지만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비행 물체와 통신 수단 등 100여년 후의 세계를 놀랍도록 비슷하게 상상해낸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의의보다는 100여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2020년을 살고 있는 불량한 어린 양인 나에게도 오만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속성과 내가 믿고 있(다고 믿고 있는)는 하느님에 대해, 그리고 나의 믿음에 대해 오래도록 음미할 수 있도록 해준 귀한 기회였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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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s******c | 2020.11.1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나는 기독교인이다. 카톨릭은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좋아한다. 그의 격의 없는 친근한 모습이 좋고, 특히나 저 미소가 좋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던가. 저렇게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문득 발견하는 거울 속의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암튼, 코로나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명백한 요즘, 이 세상을 영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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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인이다. 카톨릭은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좋아한다. 그의 격의 없는 친근한 모습이 좋고, 특히나 저 미소가 좋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던가. 저렇게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문득 발견하는 거울 속의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암튼, 코로나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명백한 요즘, 이 세상을 영적인 시각에서 거시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차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천한 책이라는 광고에 속아(?) 보기 시작하게 된 책이다.

100년전에 쓰인 책이고, 100년 후, 즉 지금 무렵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오늘날의 모습은 유사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의아하게 생각되는 부분은 작가가 휴대폰의 등장을 상상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촘촘한 열차망과 수시로 뜨고 내리는 비행기 등은 그리면서도 말이다.

그리스도의 세계와 인본주의의 세계로 나뉜 세상. 그리스도교는 기본적으로 죄로 가득한 세상을 바탕으로 하는데, 뜬금없이 혜성처럼 등장한 줄리안 펠센버그는 그 어느 그리스도교 세력에서도 해내지 못한 세계 평화와 통합을 그것도 너무나 평화롭게 그리고 지혜롭게 해내고, 대다수의 사람은 거기에 열광한다. 죄많고 악한 세상과 대립하는 그리스도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그리스도의 모습 처럼 나타난 인본주의 세계의 지도자에 혼란스러워하고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 인간 세상으로 돌아간다. 책에서는 그 모습을 비난하기 어려울 정도로 펠센버그는 완벽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 인간이 갑자기 인간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평범한 이들은 눈을 비비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로 그동안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믿은 것인가? 왜 그걸 꿈꿔 왔는가?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을 홀린 주문의 비밀이 무엇인지 서로에게 물었다. ”

물론 후에 그리스도교인들을 핍박, 아니 핍박정도가 아니라 몰살을 시켜버리는 본색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그 전까지의 펠센버그 모습을 유지한다면, 대체 그리스도교인들은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교인어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두렵고도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죄로 가득하여 구원의 대상이여야 하는 세상이, 오히려 그리스도 세력보다 더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성경에서든 실제 세계에서든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세상의 모습 속에서, 과연 이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러한 의문은 펠센버그가 본색을 드러내면서 불필요해지긴 하지만, 그 전까지 책을 읽으면서 신선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결국 그런 이상적인 펠센버그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답이 될 수 있을까. ?

코로나 시대는 한국 교회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에게 교회에 대한 이미지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방역에 비협조적이고 감추고 거짓말 하는 교회, 말도 지지리도 듣지 않고 자기들끼리의 세계에 갇혀사는 집단, 그래서 빛과 소금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지탄을 받고, 세상의 걱정거리가 된 교회. 과연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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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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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세계화의 위험성을 ‘사상의 식민지화’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강대국의 지배적인 문화가 저개발국에 물질적·세속적 세계관을 퍼트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각 나라의 고유한 전통과 제도, 사상은 변질되고 강대국의 문화가 지배 가치로 자리 잡게 된다. 《세상의 주인》은 사상의 획일화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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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은 실체이며, 악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악에게 이 세상을 지배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이 소설의 메시지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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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가 계획 없이 갑자기 열리면 삐걱대는 법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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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호주와 인도를 손아귀에 넣은 황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동방 제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는 전쟁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나, 러시아 공화국을 무너트리고 영토를 확장한 동방 제국은 그 기세를 이어 가고 싶어 했다. 지난 세기 동안 쌓아 온 문명사회가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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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곳곳에서 허황된 이야기로 가득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누르고 상식과 진실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런 세상이 다시 종파니, 교리니 하는 미개한 믿음에 의해 혼돈에 휩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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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 재앙이 자연의 순리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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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시대에는 종교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모든 것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시대는 달랐다. 무지라는 기적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나 겸손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러한 시험을 오래 견디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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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이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한편으로는 사랑과 믿음을 자기 최면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술적 능력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고, 어느 경지에 이르려면 수양이 필요하다. 사랑과 믿음을 품으면 그것이 확실하다는 확신이 생긴다. 만질 수 있고, 맛볼 수 있다. 그것은 감각에 비할 수 없이 더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 이런 증거는 아무 의미도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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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그의 형제는 눈이 있지만 보지 못하고 귀가 있지만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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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시작이 아닌 끝이다. 그것은 평화로운 복음이었다. 사람은 어쨌든 끝을 맞은 순간 평온해지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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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죽음이란 참으로 기묘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30년, 50년, 길게는 70년 동안 매달려 있던 단단한 현(絃)이 하나뿐인 거대한 악기의 고요 속으로 돌아간다. 음을 연주하는 손길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전 세계 곳곳에서 같은 음이 다시 울려 퍼질 것이고, 과거에도 같은 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사람이 느끼던 고유한 감정은 사라진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그 음이 영원히 들릴 거라는 생각은 바보 같았다. 다른 곳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이블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때 그 음이 순수하고 아름답도록 열심히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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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했다. 미래도, 과거도 존재하지 않았다. 전부 영원 속의 한순간일 뿐이다. 현재가 곧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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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갑자기 인간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평범한 이들은 눈을 비비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로 그동안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믿은 것인가? 왜 그걸 꿈꿔 왔는가?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을 홀린 주문의 비밀이 무엇인지 서로에게 물었다. 태양이 떠오르면 흩어지는 아침 안개처럼 그리스도교와 유신론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책으로 무엇을 제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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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 사탄은 채찍과 불, 짐승을 이용해 신체를 공격했다. 16세기에는 지성을 공격했다. 20세기에는 도덕적인 삶과 영적인 삶의 근원에 공격을 가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 가지를 한꺼번에 공격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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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교황이 탄 가마가 낡은 뱃머리처럼 사람들의 머리 사이를 가르며 나아갔다. 가마에는 이 세상의 주인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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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는 약을 먹은 듯 멍멍함과 또렷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 약은 눈을 멀게 하는 동시에 시야를 트이게 해 주었다. 귀를 먹게 하는 동시에 귀를 뚫어 주었다. 높이 띄우는 것 같다가도 의식의 심연으로 빠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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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얽힌 삶의 거미줄을 어느 하나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한 가지 요소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일 수도, 지적인 것일 수도, 예술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삶의 초자연성이 명백히 보인다. 인본주의가 종교라면 인간 본성의 반이 없어야만 비로소 진실이 된다. 열망과 슬픔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열망과 슬픔을 경험적 언어로 설명하지 못할지언정 받아들이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전부 하나가 되어 완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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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어려운 문제다. 퍼시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수만 가지는 있었다. 하느님이 왜 세상을 이렇게 만드셨는지도 모르고, 어째서 사랑의 주님이 지옥을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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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하느님의 몸으로 변화되는지에 관해서도 명확하게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과거에는 신성한 진리를 지적인 영역에서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초자연성은 초자연성으로만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그 이유는 모르지만 말이다]. 외면의 그리스도가 내면의 그리스도를 부른다. 순수한 인간의 이성은 믿음의 신비를 반박할 수 없지만 제대로 증명하지도 못한다. 신의 계시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성령의 음성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듯이 그것은 지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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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바람직한 경우는 믿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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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배운 신학에 따르면 하느님은 기도를 받아 주신다.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주님의 기도를 하루에 오천 번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느낌도, 손길도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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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실증주의에 입각해 그리스도교 정신이 빠진 가톨릭교를 만들었다. 인간의 무능함을 애써 외면한 채 인간에 대한 숭배를 강요했다. 이들이 숭배하는 것은 인간성 자체가 아니었다. 초자연적 진리를 망각한 인간의 관념이었다. 그들은 제물도 바쳤다. 죄를 씻기 위해 바치는 제물이 아니라 그저 봉헌의 본능을 충족하기 위한 제물이었다. 정말로 악마처럼 교활하고 카인처럼 사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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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는 부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아! 나도 저만큼 나이가 들었더라면! 이런 절망의 시절을 1~2년은 더 견딜 수 있을지 몰라도 50년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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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는 다시 한번 내일을 기대했다. 아아! 죽음으로 끝날 수만 있다면!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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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과연 그 자신에 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을 감춘 초월 신, 기다려도 오지 않는 구세주, 더 이상 바람으로도, 불로도 나타나지 않는 성령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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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가 우주의 모든 비밀을 풀어 준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가진 그 어떤 열쇠보다도 많은 문을 열어 준 것은 사실이다. 가톨릭교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설명하는 유일한 사고 체계였다. 그리스도교가 모든 인간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실패한 것은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강해서였다. 가톨릭은 역사 속에서 증명되는 사실이 아니라 영원 속에서 증명되는 진리를 가르친다. 교황은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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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교는 진실이었다. 기록으로도 증명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믿어야만 비로소 진실이 된다. 그는 부활의 힘을 믿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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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다시금 이해했다. 생각은 마음의 작용이 아니라 영혼의 쳐다봄이었다. 영혼이 어딘가를 바라보면 그것이 곧 생각이었다. 이제 모든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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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영적이기는 하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성향’(SBNR: 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라고 밝히는 사람이 늘고 있는 최근의 흐름을 이미 오래전에 간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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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세상의 주인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푸**늘 | 2020.08.0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디스토피아 소설 (암울한 미래를 그린 소설)인 『세상의 주인』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을 계속 따라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관한 사유의 결과물이다. 『세상의 주인』은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성경』의 종말론을 바탕으로, 종말의 시기에 그리스도교 셰력과 반그리스도교 세력의 갈등을 다룬다.벤슨은 그리스도교를 유물론적 인본주의 종교로 대체하려는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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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소설 (암울한 미래를 그린 소설)인 『세상의 주인』은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길을 계속 따라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에 관한 사유의 결과물이다. 『세상의 주인』은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성경』의 종말론을 바탕으로, 종말의 시기에 그리스도교 셰력과 반그리스도교 세력의 갈등을 다룬다.

벤슨은 그리스도교를 유물론적 인본주의 종교로 대체하려는 당시의 영적 운동을 제대로 포착했다. 스스로를 '영적이기는 하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성향'이라고 밝히는 사람이 늘고 있는 최근의 흐름을 이미 오래전에 간파한 것이다. 벤슨은 사실상 신이 사라진 투쟁적이고 세속적인 인본주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세상의 주인』은 사상의 획일화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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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세상의 주인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S*********r | 2020.06.03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디스토피아가 주제가 되는 이야기들은오랜 시간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 혹은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왔다. 가고 싶지 않지만, 현실에 산재한 어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현실의 어두운 면들이 나를 덮칠 때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 때문일 것이다. 호기심을 자극하여, 인간의 내면 혹은, 악한 본성이 펼쳐질 때 어떤 세상이 눈 앞에 도래 하는가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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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가 주제가 되는 이야기들은

오랜 시간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 혹은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왔다. 


가고 싶지 않지만, 현실에 산재한 어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현실의 어두운 면들이 나를 덮칠 때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 때문일 것이다. 


호기심을 자극하여, 인간의 내면 혹은, 

악한 본성이 펼쳐질 때 어떤 세상이 눈 앞에 도래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말로 풀어내 눈 앞에 보여주는 

이런 소설들은 시대와 무관하게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나 오랜 시간 전에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시대상을 그리고 

(실제로 비슷하고 유사한 면이 많은 사회를 그리며) 

인간의 내면을 깊숙하게 드려다보는 이 소설은 

이 안에 있는 디스토피아적인 내용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소름돋는 싱크로율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과 닮아있는 과거의 디스토피아가 

점점 각박해져가고, 인간성을 상실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면서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이상에 도달하고 싶어하는 이성을 가진

이상적이지 않은 인간들의 모임이기에 

영원히 안고 가야하는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많은 생각을 주는 어두움이,, 

그 어두움이 막연하지 않기에, 

가볍게 읽을수는 없지만, 멀게 두고 읽을 책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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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100년책?이라는게 믿을수없네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c******9 | 2020.06.0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저자의 특이한 경력도 흥미로웠는데 100년전에 쓰여진 책이라고 믿기가 어려웠네요 주인공이 마지막에 말한 내용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생각은 마음의 움직임이 아니고 영혼이 쳐다보는곳이라는....카톨릭 신자이면서도 가끔은 영혼이나 신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무덤덤하게 살고있는 저같은 사람에게 딱 맞는 책인듯 합니다 교황님이 두번이나 추천하신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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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특이한 경력도 흥미로웠는데 100년전에 쓰여진 책이라고 믿기가 어려웠네요 주인공이 마지막에 말한 내용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생각은 마음의 움직임이 아니고 영혼이 쳐다보는곳이라는....
카톨릭 신자이면서도 가끔은 영혼이나 신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무덤덤하게 살고있는 저같은 사람에게 딱 맞는 책인듯 합니다 교황님이 두번이나 추천하신 이유를 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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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x***r | 2020.05.3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 197 페이지이제 전쟁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일을 해낸 것은 그리스도교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분열보다 통합이 낫다는 교훈을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배웠다. 갑자기 자연의 덕을 떠받들고 초자연적 덕은 멸시하기 시작했다. 우애가 자비를 몰아냈고, 만족이 희망을 몰아냈으며, 지식이 믿음을 몰아냈다.동서양을 아우르는 12억 카톨릭 신자들의 영적 지도자인 현 프란치스코 교황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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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 페이지


이제 전쟁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일을 해낸 것은 그리스도교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분열보다 통합이 낫다는 교훈을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배웠다. 갑자기 자연의 덕을 떠받들고 초자연적 덕은 멸시하기 시작했다. 우애가 자비를 몰아냈고, 만족이 희망을 몰아냈으며, 지식이 믿음을 몰아냈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12억 카톨릭 신자들의 영적 지도자인 현 프란치스코 교황뿐만 아니라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추천한 [세상의 주인]은 반크리스토교 세력이 인본주의를 내세우며 세계 권력의 중심으로 서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20세기 초기에 쓰여진 우리나라로 치자면 구한말 시기때 출판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사상적 세계화의 위험성을 경고한 작품으로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사회가 가속화되면서 초자연성에 대한 부정, 인간 중심주의,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획일화된 사상적 세계화로 벌어지는 악에 대한 인지 능력의 상실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이 책을 쓴 저자 로버트 휴 벤슨은 로마 카톨릭교 신부이자 당대 최고의 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서 그의 저작은 당대 최고의 작가들로 불리는 '조지 오웰', '제이 알 알 톨킨', '씨 에스 루이스' 등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저자 로버트 휴 벤슨은 켄터베리 대주교의 아들이자 촉망받는 성공회 신부에서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당대 종교계는 물론 유럽 사회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켰던 인물로 당시 그를 따라 로마카톨릭으로 개종한 영국 지식인들이 많았다고 하니 그의 영향력이 정말 컸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의 서문에서 저자는 "이 책이 큰 파문을 일으키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점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다" 라고 밝히며 저자 자신이 바라는 원칙을 표현하기 위해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1세기 전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100년 후의 미래를 꽤나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는 작품으로 현 강대국들의 약소국에 대한 사상적 지배의 가속화를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고전 미래 소설의 수작이라 불리는 [1984]나 [멋진 신세계]처럼 미래 사회를 꽤나 정확히 꿰뚤어보아 현 오늘날에도 시의적절한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고전 미래 소설 특유의 특정 정치적 인물이나 과학 기술의 발전과 그로인한 사회의 변화를 예측하고있지만 역사적으로 몇몇의 사건들은 유사한 방식으로 맞아 떨어져 놀랍기도 하다. 만약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물어본다면, 물질적 세속적 가치의 만연함이 가져올 수 있는 사상적 획일화에 대한 경고이자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성을 최고의 가치로 초자연적인 가치를 외면하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이 소설을 통해 물질만능주의적이고 인간중심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위험성과 초자연적 가치, 종교가 주는 희망적이고 교훈적인 가치들을 새롭게 재조명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종교를 넘어 격변하는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가치로 두고 살아야하는지, 과연 물질적 세속적 가치에 대한 맹신으로 초자연적 가치들을 배제한 채 인간적 가치만이 최우선적 가치로 여기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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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힘은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지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똥 무더기에서 초목과 열매가 자라나게도 하지만, 불을 지르고 지진을 일으키기도 한다. 자고새로 하여금 새끼를 위해 목숨을 던지게도 하지만 때까치를 산 채로 잡아먹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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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회원리뷰 (10건)

구매 [eBook] 세상의 주인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YES마니아 : 로얄 레**산 | 2023.02.0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책끝을 접다 광고에 낚여서 사긴 했는데 (교황 추천 어쩌고 그런것도 있긴 했지만요) 그 광고에서는 조금 식상한 내용이지 않나? 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100년도 훨씬 전에거라는거에요 정말 놀랬죠 아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단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무튼 그렇게 됐네요 재미있게 잘 읽힙니다 근데 디스토피아적인 부분이 있어서 읽다가 좀 힘이 빠지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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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끝을 접다 광고에 낚여서 사긴 했는데 (교황 추천 어쩌고 그런것도 있긴 했지만요) 그 광고에서는 조금 식상한 내용이지 않나? 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100년도 훨씬 전에거라는거에요 정말 놀랬죠 아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단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무튼 그렇게 됐네요 재미있게 잘 읽힙니다 근데 디스토피아적인 부분이 있어서 읽다가 좀 힘이 빠지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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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세상의 주인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연* | 2021.05.0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로버트 휴 밴슨 작가님의 세상의 주인 리뷰입니다. 종교적 느낌이 상당히 강한 작품이라 그런 면에서는 호불호가 갈릴수도 있지않을까 싶긴합니다. 디스토피아느낌을 강하게 보여주는 작품인데 나름 흥미진진하고 재밌었어요. 뭣보다 이런 느낌의 작품을 종교인이 썼다는것이 제일 흥미진진한 부분이었습니다. 저자가 경계하는것은 사상의 식민지화인데 요즘 중국이 하는짓을 보면 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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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휴 밴슨 작가님의 세상의 주인 리뷰입니다. 종교적 느낌이 상당히 강한 작품이라 그런 면에서는 호불호가 갈릴수도 있지않을까 싶긴합니다. 디스토피아느낌을 강하게 보여주는 작품인데 나름 흥미진진하고 재밌었어요. 뭣보다 이런 느낌의 작품을 종교인이 썼다는것이 제일 흥미진진한 부분이었습니다. 저자가 경계하는것은 사상의 식민지화인데 요즘 중국이 하는짓을 보면 확실히 경계해야할 부분은 맞는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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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세상의 주인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s****s | 2021.04.27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세상의 종말론인데 100년전에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이 대단하고 흥미진진합니다.. 종교가 과학의 발달로 점점 인간중심인 인본주의로 변해가고 신을 믿지 않게 되면서 불신과 폭력이 난무할때  완벽한 인간형 반그리스도  펠센버그가 등장한다... 펠센버그가 연설을 하면  신이 인간이라는 이사람의 말을 믿게 되는 신비한 힘이 작용하고 종교전쟁으로 정점을 치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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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종말론인데 100년전에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이 대단하고 흥미진진합니다..

종교가 과학의 발달로 점점 인간중심인 인본주의로 변해가고 신을 믿지 않게 되면서 불신과 폭력이 난무할때  완벽한 인간형 반그리스도  펠센버그가 등장한다...

펠센버그가 연설을 하면  신이 인간이라는 이사람의 말을 믿게 되는 신비한 힘이 작용하고 종교전쟁으로 정점을 치달았던 협상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인기는 높아만 간다..

 펠센버그가 원하는 대로 따르며 사람들은 점점 미쳐가고 신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로마성당도 파괴하고 만다... 종교가 해결하지 못한 인간의 야만성과 이기주의를 타파할거라 믿었는데 완벽한 건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소설...

빛과 그림자처럼 교황과 너무나 닮은 도플갱어 펠센버그....

 지금 세계화니 국가주의를 강조하며 점점 인터넷이라는 온라인으로 하나가 되어가는 세상과 과학의 발달은 점점 인간이 신을 믿게 되지 않는 현실을 놀랍도록 잘 표현하여 소름이 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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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세상의 주인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높**람 | 2021.04.1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519쪽 정도 되는 소설. 작가 로버트 휴 벤슨은 1871년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에서 신학 공부와 저술활동에 몰두하였다.  1907년 세상의 주인을 출간했다. 당시 이 소설은 큰 파문을 일으킬 것을 저자는 알고 있었고, 서두에 언급한다. 영국의 성공회는 가톨릭교 교리에서 멀어져 개신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자는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는데, 이는 성공회의 가르침에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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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쪽 정도 되는 소설. 작가 로버트 휴 벤슨은 1871년 영국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에서 신학 공부와 저술활동에 몰두하였다.  1907년 세상의 주인을 출간했다. 당시 이 소설은 큰 파문을 일으킬 것을 저자는 알고 있었고, 서두에 언급한다. 영국의 성공회는 가톨릭교 교리에서 멀어져 개신교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자는 가톨릭으로 개종을 했는데, 이는 성공회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는 균형과 변하지 않는 권위를 지향했다. 

세상의 종말과 아픈 사람들을 구원하는 안락사 시설. 반그리스도인 펠센버그는 완벽한 인간이자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정반대에 위치한 인물이다. 

종교를 믿지 않아서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교황이 추천을 했다니. 의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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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eBook] [대여] 세상의 주인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랄***라 | 2021.02.1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eBook] [대여] 세상의 주인   교황 두분의 추천이 있었다고 해서 바로 구매했다. 역시 유명인의 추천은 유효한 것인가~ 이 책이 멋진신세계, 1984보다 앞서 나왔고 그 책들 못지않은 통찰력을 가지고 씌였다는 소개는 진작 알고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 과연 인간은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가? -우리 시대의 진짜 위기를 돌아보게 만드는 날카로운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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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대여] 세상의 주인

 

교황 두분의 추천이 있었다고 해서 바로 구매했다. 역시 유명인의 추천은 유효한 것인가~

이 책이 멋진신세계, 1984보다 앞서 나왔고 그 책들 못지않은 통찰력을 가지고 씌였다는 소개는 진작 알고 있었는데 정말 대단하다.

과연 인간은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가?
-우리 시대의 진짜 위기를 돌아보게 만드는 날카로운 통찰


벤슨이 100년 전에 상상한 미래 세계는 소름 끼칠 만큼 지금 세상과 닮아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교통수단과 초고속 통신, 대량 살상 무기 같은 기술적 진보에 대한 예언도 놀랍지만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초자연성을 부정하고 인간성을 최고의 가치로 신봉하고, 물질주의를 추구하는 정신적 변화에 대한 예측이 놀랍도록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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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s******c | 2020.11.1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나는 기독교인이다. 카톨릭은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좋아한다. 그의 격의 없는 친근한 모습이 좋고, 특히나 저 미소가 좋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던가. 저렇게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문득 발견하는 거울 속의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암튼, 코로나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명백한 요즘, 이 세상을 영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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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인이다. 카톨릭은 아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좋아한다. 그의 격의 없는 친근한 모습이 좋고, 특히나 저 미소가 좋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던가. 저렇게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문득 발견하는 거울 속의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암튼, 코로나가 세상을 바꾸는 것이 명백한 요즘, 이 세상을 영적인 시각에서 거시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차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천한 책이라는 광고에 속아(?) 보기 시작하게 된 책이다.

100년전에 쓰인 책이고, 100년 후, 즉 지금 무렵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오늘날의 모습은 유사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의아하게 생각되는 부분은 작가가 휴대폰의 등장을 상상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촘촘한 열차망과 수시로 뜨고 내리는 비행기 등은 그리면서도 말이다.

그리스도의 세계와 인본주의의 세계로 나뉜 세상. 그리스도교는 기본적으로 죄로 가득한 세상을 바탕으로 하는데, 뜬금없이 혜성처럼 등장한 줄리안 펠센버그는 그 어느 그리스도교 세력에서도 해내지 못한 세계 평화와 통합을 그것도 너무나 평화롭게 그리고 지혜롭게 해내고, 대다수의 사람은 거기에 열광한다. 죄많고 악한 세상과 대립하는 그리스도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그리스도의 모습 처럼 나타난 인본주의 세계의 지도자에 혼란스러워하고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 인간 세상으로 돌아간다. 책에서는 그 모습을 비난하기 어려울 정도로 펠센버그는 완벽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 인간이 갑자기 인간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평범한 이들은 눈을 비비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로 그동안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믿은 것인가? 왜 그걸 꿈꿔 왔는가?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을 홀린 주문의 비밀이 무엇인지 서로에게 물었다. ”

물론 후에 그리스도교인들을 핍박, 아니 핍박정도가 아니라 몰살을 시켜버리는 본색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그 전까지의 펠센버그 모습을 유지한다면, 대체 그리스도교인들은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교인어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두렵고도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죄로 가득하여 구원의 대상이여야 하는 세상이, 오히려 그리스도 세력보다 더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성경에서든 실제 세계에서든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세상의 모습 속에서, 과연 이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러한 의문은 펠센버그가 본색을 드러내면서 불필요해지긴 하지만, 그 전까지 책을 읽으면서 신선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결국 그런 이상적인 펠센버그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답이 될 수 있을까. ?

코로나 시대는 한국 교회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에게 교회에 대한 이미지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방역에 비협조적이고 감추고 거짓말 하는 교회, 말도 지지리도 듣지 않고 자기들끼리의 세계에 갇혀사는 집단, 그래서 빛과 소금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지탄을 받고, 세상의 걱정거리가 된 교회. 과연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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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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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세계화의 위험성을 ‘사상의 식민지화’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강대국의 지배적인 문화가 저개발국에 물질적·세속적 세계관을 퍼트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각 나라의 고유한 전통과 제도, 사상은 변질되고 강대국의 문화가 지배 가치로 자리 잡게 된다. 《세상의 주인》은 사상의 획일화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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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은 실체이며, 악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악에게 이 세상을 지배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이 소설의 메시지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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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가 계획 없이 갑자기 열리면 삐걱대는 법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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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호주와 인도를 손아귀에 넣은 황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동방 제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는 전쟁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나, 러시아 공화국을 무너트리고 영토를 확장한 동방 제국은 그 기세를 이어 가고 싶어 했다. 지난 세기 동안 쌓아 온 문명사회가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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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곳곳에서 허황된 이야기로 가득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누르고 상식과 진실이 승리를 거두었다. 이런 세상이 다시 종파니, 교리니 하는 미개한 믿음에 의해 혼돈에 휩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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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 재앙이 자연의 순리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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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시대에는 종교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모든 것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시대는 달랐다. 무지라는 기적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나 겸손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러한 시험을 오래 견디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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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이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한편으로는 사랑과 믿음을 자기 최면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술적 능력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고, 어느 경지에 이르려면 수양이 필요하다. 사랑과 믿음을 품으면 그것이 확실하다는 확신이 생긴다. 만질 수 있고, 맛볼 수 있다. 그것은 감각에 비할 수 없이 더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 이런 증거는 아무 의미도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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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는 그의 형제는 눈이 있지만 보지 못하고 귀가 있지만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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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시작이 아닌 끝이다. 그것은 평화로운 복음이었다. 사람은 어쨌든 끝을 맞은 순간 평온해지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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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죽음이란 참으로 기묘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30년, 50년, 길게는 70년 동안 매달려 있던 단단한 현(絃)이 하나뿐인 거대한 악기의 고요 속으로 돌아간다. 음을 연주하는 손길에는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전 세계 곳곳에서 같은 음이 다시 울려 퍼질 것이고, 과거에도 같은 음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사람이 느끼던 고유한 감정은 사라진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그 음이 영원히 들릴 거라는 생각은 바보 같았다. 다른 곳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이블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그때 그 음이 순수하고 아름답도록 열심히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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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했다. 미래도, 과거도 존재하지 않았다. 전부 영원 속의 한순간일 뿐이다. 현재가 곧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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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갑자기 인간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평범한 이들은 눈을 비비고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로 그동안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믿은 것인가? 왜 그걸 꿈꿔 왔는가?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을 홀린 주문의 비밀이 무엇인지 서로에게 물었다. 태양이 떠오르면 흩어지는 아침 안개처럼 그리스도교와 유신론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책으로 무엇을 제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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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 사탄은 채찍과 불, 짐승을 이용해 신체를 공격했다. 16세기에는 지성을 공격했다. 20세기에는 도덕적인 삶과 영적인 삶의 근원에 공격을 가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 가지를 한꺼번에 공격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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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교황이 탄 가마가 낡은 뱃머리처럼 사람들의 머리 사이를 가르며 나아갔다. 가마에는 이 세상의 주인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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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는 약을 먹은 듯 멍멍함과 또렷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 약은 눈을 멀게 하는 동시에 시야를 트이게 해 주었다. 귀를 먹게 하는 동시에 귀를 뚫어 주었다. 높이 띄우는 것 같다가도 의식의 심연으로 빠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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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얽힌 삶의 거미줄을 어느 하나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한 가지 요소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일 수도, 지적인 것일 수도, 예술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삶의 초자연성이 명백히 보인다. 인본주의가 종교라면 인간 본성의 반이 없어야만 비로소 진실이 된다. 열망과 슬픔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열망과 슬픔을 경험적 언어로 설명하지 못할지언정 받아들이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전부 하나가 되어 완벽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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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어려운 문제다. 퍼시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수만 가지는 있었다. 하느님이 왜 세상을 이렇게 만드셨는지도 모르고, 어째서 사랑의 주님이 지옥을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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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하느님의 몸으로 변화되는지에 관해서도 명확하게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과거에는 신성한 진리를 지적인 영역에서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초자연성은 초자연성으로만 증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그 이유는 모르지만 말이다]. 외면의 그리스도가 내면의 그리스도를 부른다. 순수한 인간의 이성은 믿음의 신비를 반박할 수 없지만 제대로 증명하지도 못한다. 신의 계시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성령의 음성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듯이 그것은 지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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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바람직한 경우는 믿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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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배운 신학에 따르면 하느님은 기도를 받아 주신다.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주님의 기도를 하루에 오천 번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느낌도, 손길도 없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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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종의 실증주의에 입각해 그리스도교 정신이 빠진 가톨릭교를 만들었다. 인간의 무능함을 애써 외면한 채 인간에 대한 숭배를 강요했다. 이들이 숭배하는 것은 인간성 자체가 아니었다. 초자연적 진리를 망각한 인간의 관념이었다. 그들은 제물도 바쳤다. 죄를 씻기 위해 바치는 제물이 아니라 그저 봉헌의 본능을 충족하기 위한 제물이었다. 정말로 악마처럼 교활하고 카인처럼 사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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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는 부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아! 나도 저만큼 나이가 들었더라면! 이런 절망의 시절을 1~2년은 더 견딜 수 있을지 몰라도 50년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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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는 다시 한번 내일을 기대했다. 아아! 죽음으로 끝날 수만 있다면!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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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과연 그 자신에 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을 감춘 초월 신, 기다려도 오지 않는 구세주, 더 이상 바람으로도, 불로도 나타나지 않는 성령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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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가 우주의 모든 비밀을 풀어 준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가진 그 어떤 열쇠보다도 많은 문을 열어 준 것은 사실이다. 가톨릭교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설명하는 유일한 사고 체계였다. 그리스도교가 모든 인간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실패한 것은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강해서였다. 가톨릭은 역사 속에서 증명되는 사실이 아니라 영원 속에서 증명되는 진리를 가르친다. 교황은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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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교는 진실이었다. 기록으로도 증명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믿어야만 비로소 진실이 된다. 그는 부활의 힘을 믿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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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다시금 이해했다. 생각은 마음의 작용이 아니라 영혼의 쳐다봄이었다. 영혼이 어딘가를 바라보면 그것이 곧 생각이었다. 이제 모든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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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영적이기는 하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성향’(SBNR: 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라고 밝히는 사람이 늘고 있는 최근의 흐름을 이미 오래전에 간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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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로버트 휴 벤슨, 세상의 주인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끼**리 | 2020.10.2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로버트 휴벤슨의 세상의 주인 전자책입니다. 2020년 4월 3일에 간행되었고 출판사는 메이빈, 옮긴이는 유혜인님이에요. 6개월전에 책이 처음 전자책으로 나오고나서 카드뉴스로 보는 책을 보고 웹툰처럼 15장의 만화로 책을 소개한 것을 보고 너무 흥미가 생겨서 읽을 수 있을때 읽어보자했습니다. 그러다가 대여 이벤트 도서로 나와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대여하게되었어요. 그게 6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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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휴벤슨의 세상의 주인 전자책입니다. 2020년 4월 3일에 간행되었고 출판사는 메이빈, 옮긴이는 유혜인님이에요. 6개월전에 책이 처음 전자책으로 나오고나서 카드뉴스로 보는 책을 보고 웹툰처럼 15장의 만화로 책을 소개한 것을 보고 너무 흥미가 생겨서 읽을 수 있을때 읽어보자했습니다. 그러다가 대여 이벤트 도서로 나와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대여하게되었어요. 그게 6개월 전이다 보니 초반에 생겼던 흥미가 사라졌어요. 도서를 다운받고 막상읽어보니 상상력은 대단하구나 했습니만, 동방제국에서 실소가 나왔어요, 그냥 4분의 1정도 읽었는데 그냥 tts  틀어놓고 듣고 있는데 재미 있고 없고를 떠나서 디스토피아 소설의 시초라고 하는데 그냥 아무 느낌이 없어요 긴장감이 없다 보니 글의 전개도 느린것 같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올리버 이야기도 흥미가 안 생겨요~ 그래도 끝까지 읽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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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세상의 주인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R***d | 2020.07.1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교황님이 강력 추천한 책, 최초의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홍보문구에 흥미를 느껴 구매했습니다. 종교에 염증을 느끼고 인본주의를 내세우며 만들어진 권력 단체가 그 자체로 이름만 새로울 뿐인 하나의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모순적이네요. 종교적인 배경이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어 종교 소설처럼도 느껴졌는데 저자가 카톨릭 사제셨군요. 마치 영화를 한 편 보는 듯한 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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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이 강력 추천한 책, 최초의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홍보문구에 흥미를 느껴 구매했습니다. 종교에 염증을 느끼고 인본주의를 내세우며 만들어진 권력 단체가 그 자체로 이름만 새로울 뿐인 하나의 종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모순적이네요. 종교적인 배경이 큰 줄기를 차지하고 있어 종교 소설처럼도 느껴졌는데 저자가 카톨릭 사제셨군요. 마치 영화를 한 편 보는 듯한 흥미진진한 내용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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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인간의 욕망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d**o | 2020.05.18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인본주의가 하나의 종교이면서, 인간의 선함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적합하다는 신념을 앞세운 서방지역.인본주의를 앞세우며 세개로 나뉜 전세계를 하나의 나라? 하나의 종교로 통일을 한 뒤 벌어지는 기존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변화, 그리고 그 종교를 지키기 위한 종교지도자들의 시스템구축.사람이 선하다는 인본주의 종교를 믿더라도, 사람은 충분히 악할 수 있고, 자신만의 논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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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주의가 하나의 종교이면서, 인간의 선함이 세상을 다스리는데 적합하다는 신념을 앞세운 서방지역.
인본주의를 앞세우며 세개로 나뉜 전세계를 하나의 나라? 하나의 종교로 통일을 한 뒤 벌어지는 기존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변화, 그리고 그 종교를 지키기 위한 종교지도자들의 시스템구축.
사람이 선하다는 인본주의 종교를 믿더라도, 사람은 충분히 악할 수 있고, 자신만의 논리를 고집하며 하나의 생각만이 이 세상을 이끌 진리라고 본다면, 그 진리가 처음엔 아무리 올바르고 타당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할 때엔 상충되는 모든것들을 무너뜨리기위해 전쟁과 같은 행위도 필요한 행위라고 합리화시킨다.
세상을 하나의 사상으로 통일하는 것이 과연 개인에 대한 존중, 사상의 자유 등을 지켜줄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을 준다.

핸드폰으로 보면 주석 번호표시가 사선으로 보이는데, 탭으로 보면 잘 정렬되어 있다. 주석 번호를 누르면 해당페이지에서 팝업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석이 모여있는 페이지로 갔다가 다시 해당 번호를 눌러야 읽던 페이지로 돌아오는것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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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편집 오류 내용 평점1점   편집/디자인 평점1점 a******3 | 2020.04.15 | 추천6 | 댓글1 리뷰제목
종이책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e-book으로 구매했는데, 프롤로그부터 편집오류인지(17페이지 문단이 20, 35페이지에도 반복 등) 내용이 겹치고 끊겨 도저히 읽을 수가 없네요. 꼼꼼히 재검토 및 수정 부탁드립니다. 많이 기대했던 책입니다. 수정되면 다시 읽고 제대로 평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왜 150자를 넘기라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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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e-book으로 구매했는데, 프롤로그부터 편집오류인지(17페이지 문단이 20, 35페이지에도 반복 등) 내용이 겹치고 끊겨 도저히 읽을 수가 없네요. 꼼꼼히 재검토 및 수정 부탁드립니다. 많이 기대했던 책입니다. 수정되면 다시 읽고 제대로 평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건 또 왜 150자를 넘기라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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