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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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만난 영원한 이방인

리뷰 총점 10.0 (2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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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인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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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하고 덧없는 삶을 있는 그대로 껴안음으로써
지중해적 반항의 길을 제시한 ‘프랑스의 니체’,
알베르 카뮈를 찾아가다


“삶에 대한 사랑 이외에 다른 할 말은 없어.
그러나 난 그걸 내 식으로 말하겠어.“

그는 비참하면서도 위대한 이 부조리한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야말로 부조리에서 우리를 구원해준다고 믿는다. - 최수철





◎ 도서 소개

카뮈의 영원한 고향 알제리에서부터
예술과 정치 활동의 정점을 찍은 파리를 거쳐
마지막 거치인 루르마랭까지,
부조리에서 반항을 거쳐 사랑에 이르는 문학 여정을 따라가다

20세기 부조리 문학의 금자탑 『이방인』, 폐허 문학의 걸작 『페스트』, 인간 내면의 진실을 집요하게 탐사한 『전락』 등의 작품으로 현대 프랑스 문학사의 빛나는 좌표가 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 올해 타계 60주년을 맞이하는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에 태어나 돌도 되기 전에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로서 활동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으며, 알제리 전쟁 속에서는 좌든 우든 인간을 전체화하는 모든 폭력에 반대함으로써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말하자면 그의 삶과 문학은, 인간사의 최대 비극이자 가장 부조리한 모습 중 하나인 전쟁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가운데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전후戰後 수많은 젊은 세대가 그의 작품들 저변에 깔려 있는 인간과 세계의 근원적인 부조리함에 대한 인식과, 그것에 대한 반사적 반응으로서의 반항에 깊이 공명했다. 특히 이 세계의 경계 바깥에서 걸어 들어온 것 같은 뫼르소라는 인물을 통해 부조리를 대면한 인간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여주는 『이방인』은 “건전지의 발명 못지않은 하나의 사회적 사건”(롤랑 바르트)으로 평가받으면서 세기의 문제작 반열에 올랐다. 그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 공산당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가 노정한 폭력성에 대해 깊은 회의를 표명함으로써 사르트르를 비롯한 파리의 좌파 지식인들과 결별한 일은 경계적 지성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 대신 고대 지중해의 헬레니즘 전통에 기반한 한계, 절도, 균형, 중용을 내세운 ‘정오의 사상’(『반항하는 인간』에서 진정한 반항의 결론으로 내세우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현재성을 더욱더 인정받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지중해의 명징한 태양과 푸른 바다로부터 길어 올린 그 정오의 사상은 수사적 장식이 억제된 고전적이고 단순한 문체로 발현됨으로써(“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로 시작하는 『이방인』의 첫 구절로도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20세기 ‘짐승의 시간’으로부터 그를 건져 해독해주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소설 미학의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

이 책의 저자 최수철은 카뮈의 인생 전반기 무대인 알제리와 후반기 무대인 프랑스 곳곳을 기행하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의 삶과 작품 세계를 연주해간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의식과 언어의 문제에 천착해오면서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일구어온 저자는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모두 수상한 바 있다. 아울러 프랑스 문학 전공자로서 『이방인』을 직접 번역하면서 카뮈의 부조리 사상을 좀 더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작품 속 인물인 뫼르소와 강한 교감을 하는 가운데 텍스트를 그만의 방식으로 다시 쓰기도 했으니, 「나는 뫼르소다」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카뮈의 『페스트』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 자신의 장편소설인 『페스트』와 단편소설 「페스트에 걸린 남자」를 쓰는 등 카뮈와의 인연이 남다르다. 저자는 카뮈의 마지막 소설로서 사후 3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최초의 인간』을 이 책의 처음과 마지막을 연결하는 고리로 삼고서 그의 주요 작품과 공간을 따라간다. 그러고는 짧지만 강렬했던 카뮈의 여정을 한마디로 ‘부조리에서 반항을 거쳐 사랑으로 가는 도정’이라고 요약한다.


> 카뮈의 영원한 고향 알제리

카뮈를 찾아가는 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카뮈가 태어나 청년기까지 인생의 절반을 보낸 알제리이고, 다른 하나는 나머지 절반을 보낸 프랑스다. 저자는 먼저 알제의 빈민가인 벨쿠르를 찾아간다. 프랑스 이민자 3세대로서 가난한 포도주 제조공의 아들로 태어난 카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어머니의 친정이 있는 알제 벨쿠르에서 성장기 대부분을 보낸다. 가족들 대부분은 문맹이었고, 외할머니는 폭군처럼 군림했으며, 남의 집 가정부 일을 하며 카뮈 형제를 먹여 살린 그의 어머니와 술통 제조자였던 외삼촌은 둘 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데다가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질곡 같은 가난과 장애인 가족 속에서도 카뮈는 무상으로 제공되는 지중해의 태양과 바다에 탐닉함으로써 삶에 대한 그만의 감각과 내적 강인함을 키워나갔다. 다행스럽게도 그에게는 루이 제르맹이라는 좋은 스승이 있었다. 제르맹은 어린 카뮈의 재능을 눈여겨보고는 무료 개인 교습을 해주는 한편으로 완고한 외할머니를 설득함으로써 카뮈로 하여금 중고등 교육을 받게 했다. 이후 알제대학 철학과에 들어간 카뮈는 이번에는 결핵에 걸림으로써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어야 했다.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가난과 질병은 그로 하여금 삶은 부조리하고 유한하다는 근원적인 인식에 가닿게 했다.

삶의 유한성과 존재의 하찮음과 운명을 존중하는 감각은, 알제리에 남아 있는 고대 유적지와 토착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고산 지대에서 더욱 깊어졌다. 청년 카뮈는 제밀라와 티파사 같은 고대 도시 유적지를 종종 찾아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명상에 잠기는가 하면, 신문기자로서 토착 원주민인 베르베르족이 사는 카빌리 지역을 취재함으로써 그 속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기독교적 영생이나 초월보다는, 삶의 유한함과 하찮음을 명징하게 직시하면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이 순간에 충실할 것을 요청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티파사의 카뮈 문학비에 새겨져 있는 그의 말, 즉 “나는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무언지를 깨닫는다. 그것은 거리낌 없이 사랑할 권리다”라는 구절도 유한한 생에 대한 찬미를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카뮈가 말하는 ‘진정한 반항’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서 길어 올린 것이었다. 말하자면 알제리는 그에게 대지에 충실한 세계관을 심어준 것이었다.


> 부정과 긍정의 종합으로서 사랑으로 나아간 미완의 여정

이제 저자의 발걸음은 프랑스로 향한다. 카뮈는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프랑스 남부에 있는 파늘리에에서 요양하는 가운데 전쟁에 휘말린 참담한 시대적 상황을 소설로 형상화하는 데 몰두했다. 그 결과 전쟁에 대한 우의적 증언이자 삶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힘에 대항하는 보편적 저항 문학으로서의 성격을 띤 『페스트』가 탄생했다. 또한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부조리 사상을 담은 철학적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를 세상에 내놓았으며, 리옹을 오가며 레지스탕스로도 활동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파리로 간 그는 전시의 한복판에서 항독 지하 레지스탕스의 기관지 《콩바》를 이끌어가던 주역으로서,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이자 심지어 배우로서, 갈리마르출판사의 편집위원으로서, 실존주의적 철학자로서, 노벨문학상이라는 최고의 세속적 영예를 맛보았으면서도 당대 좌파 지식인들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에 시달려야 했던 아웃사이더 작가로서 곡절 많은 세월을 보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 마침내 말 많고 번잡한 파리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루르마랭에 정착한 그는, 프랑스인이자 알제리인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가진 자로서 자신의 뿌리 찾기를 핵심 주제로 한 방대한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인간』이 바로 그것으로, 카뮈는 이 작품을 두고 그 자신의 『전쟁과 평화』라 일컫기도 했다. 그러나 1960년 1월 4일, 상스에서 파리로 가는 7번 국도 위에서 그가 타고 있던 자동차는 길가의 나무를 들이받고는 멈추어 선다. 그 충격으로 카뮈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와 함께 부정에서 긍정으로, 다시 부정과 긍정의 종합으로 사랑으로 나아가려던 그의 여정도 갑자기 찾아온 이른 죽음과 함께 속절없이 중단되고 말았다.

비록 살아생전에는 프랑스의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향 사람들인 알제리인들로부터도 숱한 공격을 받으며 배척당했지만, 극한 대립과 폭력의 세기에 이념보다는 개별적 인간 하나하나를 중시하고 관용과 절도의 길을 제시한 그의 고독한 행보는 우리 시대에도 강력한 실천적 지침이 되지 않을 수 없다.


◎ 책 속에서

그는 소설을 통해 공연히 말만 화려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감정과 사실의 내밀한 경험, 그리고 인간이 일상적인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는 감동적인 진실을 번역하는 데 몰두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프롤로그」 중

학교는 그에게 도피처이자, 책과 더불어 지적 욕구를 마음껏 채우며 새로운 세계로 날아오를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집에서는 낯선 세계에 속하는 이방인이 되어 점점 침묵한다. 그런가 하면 학교에서도 점차 이방인이 되어간다. 유복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기 집의 가난을 더욱 뚜렷하게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 01 「카뮈의 영원한 고향」 중

도시의 가난과 자연의 풍요로움으로부터 삶의 모순을 인식하는 동안, 점차 그에게서 역전이 일어난다. 가난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자 자연의 풍요가 더 절실하고도 계시적으로 다가오면서 그의 육체적 활력과 정신의 강인함을 북돋우어준다. 그것은 또한 세상의 부조리함을 명확히 인식할 때 얻을 수 있는 힘이다. 이방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그의 속에서 자리 잡는다.
- 01 「카뮈의 영원한 고향」 중

요컨대 가난과 병은 그에게 특별한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 계기를 통해 연극과 글쓰기에 새롭게 눈을 뜬다. 병에 걸려 스포츠의 ‘단순한 기쁨’을, 늘 병과 죽음 앞에 직면한 인간적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한 연대감을, 몸의 감각과 움직임에 대한 관능적 열정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게 된 그는 자신이 상실한 것을 거의 그대로 연극 활동에서 되찾는다. 그런가 하면 가난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일, 인간의 역사, 인간의 조건에 대비되는 태양이라는 자연의 힘, 더 영원하고 더 본질적인 존재 혹은 관념을 인식한다. 그럼으로써 그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의미 있는 인간적 행위로서의 창조 행위에 눈을 뜬다. 말하자면 연극과 글쓰기는 카뮈가 평생 동안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며 죽음에 반항하는 의미를 가진 두 가지 행위였다.
- 01 「카뮈의 영원한 고향」 중

나는 이곳의 베르베르인이 아랍인과 다르며, 베르베르인이 곧 무어인이며 카빌리인임을 안다. 그들에게서는 뭐라 규정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과묵함을 넘어서는 어떤 비장감, 현상을 초월하는 깊고 비극적인 눈길, 현대화된 도시 생활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듯한 초월적인 인상이다. 과학 정신으로 무장한 서구인들이 저들을 짓밟는 것은 지극히 쉬운 일이다. 과학이 신비를 두려워하며 말살하려 드는 형국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카뮈에게서 저 베르베르인, 카빌리인의 풍모가 풍겨 나온다. 그 공통된 풍모가 카뮈에게 그토록 중요한 지중해적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들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느낀다. 카뮈 또한 카빌리에서 비참만을 보지 않았다. 고대의 찬란함, 운명에 대한 존중과 지상의 덧없는 삶에 대한 완전한 수용의 미덕을 보았다.
- 02 「유한한 생에 대한 찬가」 중

제밀라는 그에게 죽음을 준비하게 하는 장소, 죽음에 대한 명상을 통해 명료한 정신으로 죽음과 대면하는 장소다. “내 명징한 의식을 극한에까지 밀고 나가서 나의 모든 아낌없는 질투와 공포와 더불어 나의 종말을 응시하고 싶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비로소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모든 가능성이 펼쳐지는 ‘자신의 왕국’을 발견하는 것이다.
- 02 「유한한 생에 대한 찬가」 중

하지만 절대와 영원을 연상시키는 그런 형상이야말로 카뮈가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보다는 윤곽이 물렁거리고 당장이라도 발효와 부패로 이어질 듯한 상태, 스스로 더할 나위 없이 명증하고 자명한 태양, 그 태양의 가혹한 빛줄기를 받아 모든 것이 노골적으로 노출되고 짓뭉개져 소멸되기 직전의 상태, 그것이야말로 카뮈가 ‘절망적으로’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억압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자연의 힘과 더불어 모든 것이 순간순간 변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들 하나하나가 그 힘에 대항하여 변하고 뭉개지는 것들을 가지고 어렵게 하나의 형태를 빚어내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러다가 시간이 다하면 다만 헛되이 스러져가는 것, 지상에서 영원한 것과 경건한 것은 단지 우리 속의 영원함과 경건함에 대한 의식일 뿐이라는 것, 그러한 명징한 의식을 통해 삶의 본질을 투시하며 순간적이고 개인적인 것들을 가지고 영원한 윤곽이나 형태에 도전하는 작업이 곧 예술이라는 것, 그리스의 정신을 가진 지중해인이자 예술가로서의 카뮈를 우리는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 03 「창조와 반항으로서의 글쓰기」 중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우선 달리 어쩔 수 없는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 그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야 비로소 자유가 있다. 그러려면 죽음을 있는 그대로 대면하여 속속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 03 「창조와 반항으로서의 글쓰기」 중

카뮈가 보기에 파리 같은 대도시는 비인간적이다. 자연의 생명력으로부터 멀어져서 ‘인간’이 중심이 되지 못하고 도시의 시스템이 인간 위에 군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문명과 자연 사이의 절제와 절도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는 솔직하지 못한 파리 사람들에 대하여 늘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 04 「『이방인』의 탄생」 중

그렇다면 뫼르소가 지니고 있는 내적 진실은 무엇인가. 그는 앞날에 대해 희망도 절망도 가지지 않는다. 인간은 곧 죽는다. 이 때문에 카뮈는 『작가수첩 1』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될 시간이 없다. 우리에게는 오직 행복해질 시간이 있을 뿐이다”라고 한다. 우리가 무엇인가가 되려 하는 것은 죽음에서 비껴나기 위한 헛된 짓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 행복을 차압당하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명철한 의식을 가지고서 삶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삶의 매 순간을 최대한으로 살 수 있게 된다.
- 04 「『이방인』의 탄생」 중

『작가수첩 2』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부조리에 걸려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더 이상 부조리로부터 발을 빼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카뮈 식으로 말하면, 부조리는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명확히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또한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부조리다. 그렇다면 부조리는 우리 삶의 장애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부다. 따라서 그러한 부조리와 제대로 대면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이때 부조리는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이자 사유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 05 「부정을 넘어 긍정으로」 중

무엇보다도 카뮈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량 학살을 일으키게 된 유럽인들의 추상적인 이데올로기의 근원을 파악하고자 시도한다. 200여 년 전 근대 계몽주의가 태동하면서 자립적 주체가 된 인간들은 개인적, 이기적 자아실현의 갈망 때문에 ‘형이상학적 반항’을 하거나, 또는 역사적인 합법성을 실천하기 위한 의지를 가지고 ‘역사적 반항’을 했다. 이렇듯 제약받지 않는 주체 내지 역사의 요구가 정당화됨에 따라 각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제약이 없어지고, 철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한 거창한 이념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범죄가 늘었다. 그리하여 양심의 가책도 없이 자행된, 20세기 역사의 비극적 상징인 대량 학살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형이상학적 반항과 역사적 반항에는 사드부터 초현실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로베스피에르부터 스탈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역사적 인물과 작가를 거론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긍정적 반항, 본래적 반항, 올바른 반항이있다. 이것은 만인 평등 의식에서 성숙한, 자유와 정의에 봉사하는 반항이다.
- 06 「티파사의 돌기둥에 기대어」 중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 목차
PROLOGUE 부조리에서 반항을 거쳐 사랑으로

01_카뮈의 영원한 고향
02_유한한 생에 대한 찬가
03_창조와 반항으로서의 글쓰기
04_『이방인』의 탄생
05_부정을 넘어 긍정으로
06_티파사의 돌기둥에 기대어
07_인간의 자서전

EPILOGUE 진실의 인간은 죽지 않는다

카뮈 문학의 키워드
카뮈 생애의 결정적 장면
참고 문헌

종이책 회원리뷰 (27건)

주간우수작 드디어, 카뮈가 찾아왔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e******y | 2020.02.15 | 추천26 | 댓글40 리뷰제목
 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좋은 책을 다 읽을 수 없고 모든 뛰어난 작가들을 알 수도 없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책과 작가의 세계에 대해서는 ' 예정된 만남'이 있다고 믿는다. 특정 책을 알게 되고 특정 작가에 빠져들 시기가 내 삶에 정해져 있으며, 이러한 만남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내 삶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책과 작가별로 정의될 내 인생의 연대기가 있는 것이다.
리뷰제목

 

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좋은 책을 다 읽을 수 없고 모든 뛰어난 작가들을 알 수도 없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책과 작가의 세계에 대해서는 ' 예정된 만남'이 있다고 믿는다. 특정 책을 알게 되고 특정 작가에 빠져들 시기가 내 삶에 정해져 있으며, 이러한 만남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내 삶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책과 작가별로 정의될 내 인생의 연대기가 있는 것이다.

 

 

『이방인』을 몇 페이지 읽다가 꾸벅꾸벅 졸았던 대학시절의 어느 여름날, 그때는 카뮈가 내 인생에 들어설 때가 아니었다. 비슷한 시기 학교 서점에서 첫 장만 읽고선 그 난해함에 포기해버렸던 『시지프의 신화』도 때가 아니었다. 그 이후 한두 번 재도전했지만 뫼르소도 시지프도 카뮈도 항상 버거운 존재여서 곧 잊어버렸다. 카뮈란 그저 코트 깃을 세우고 담배를 문채 수줍은 듯 자신감에 넘친 듯한 미소를 머금은 사진 한 장으로 남았고, 뫼르소는 태양의 폭발적 열기에 몰려 이성과 충동의 선을 넘어 버린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이며, 시지프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밀어 올려야 하는 처절한 장면으로 남았다.

 

 

그러니까, 카뮈는 나의 한창 젊은 시절과는 상관없어야 할 인물이었던 게다. 그러나, 카뮈의 때는 정해져 있었으니 불과 2년 전 『고전에 기대는 시간』을 읽던 중이었다. 이 책을 통해 장 그르니에의 『섬』에 매료되었고 ( 이 책 역시 처음 접했을 때는 몇 장도 못 읽고 졸다가 덮어 버렸었다), 『섬』 을 '서문'부터 다시 읽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서문을 쓴 사람이 바로 카뮈!,라는 사실을 발견하고선 충격에 휩싸였다. 이 책의 한국어 역자이자 '옮긴이의 말'의 환상적인 필체로 나를 단번에 사로잡은 김화영 선생이 전대미문의 카뮈 전문가라는 사실을 알고선 그의 언어로 카뮈를 읽고 싶어졌다. 『결혼-여름』은 사 두고도 몇 장 읽지 않았고 『페스트』 『전락』 『반항하는 인간』 은 들추어본 적도 없는 상태였지만, 『섬』의 카뮈 서문을 수십 차례 탐독하며 '김화영의 안내를 받아 깊게 알아가게 될 카뮈'로 정해 두었다.

 

 

『고전에 기대는 시간』과 『섬』의 도움으로 서서히 카뮈를 향해 오던 내 걸음에 『카뮈×최수철』이 막강한 동력을 제공한다! 카뮈의 모든 것에 관한 완벽한 참고서로서 카뮈의 삶과 문학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해 주었다. 이 책의 카뮈를 따라가는 동안, 나와는 동떨어진 장소와 시대를 살았던 위대한 인물 카뮈가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왔다. 우선, '장소의 정령 le genie du lieu'에 따라 카뮈의 '장소들'을 알아간다. 저자가 찾아가는 카뮈의 장소들은 파리를 제외하고는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했거나 있다는 사실 자체도 몰랐던 생소한 곳들이지만, '카뮈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는 장소들'로서 곳곳마다 '각인된 카뮈의 실존과 문학의 흔적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장소에 대한 사진과 이에 얽힌 카뮈의 삶과 문학에 대한 설명이 탁월하지만, 이와 관련지어 인용해 놓은 카뮈의 문장들이 일품이다. 저자가 자신의 문장을 멈추고 내가 직접 카뮈를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해놓은 '여백'이다. 가보지 않은 장소, 읽어 보지 않은 작품, 잘 알지 못하는 작가 카뮈, 전혀 상상해 본 일이 없는 인생에 대해 감동하고 고민하게 된다.

 

 

 

이야기는 카뮈가 어린 시절을 보낸 알제의 리옹 거리에서 시작된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가난으로 열악한 삶을 살아가는 카뮈이다.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의 도움으로 그랑리세에 진학했지만 유복한 친구들 틈에서 가난한 자신의 삶과 세상의 부조리함을 인식했다. 이때 이미 카뮈는 강해져 있었다. "햇볕 덕분에 원한이라는 감정을 품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나의 권리이다"라 말하며 지중해의 자연이 베푸는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활력과 강인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카스바에서는 "자기 자신과 분리되는 어느 한순간이 찾아오는 법'을 알았고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불사르며 '삶의 도저한 다양성 속으로 자신을 던지고 싶은 요구'에 불타올랐다. 저자의 글만으로도 신비하게 다가온 제밀라, 카뮈는 이 폐허 같은 유적지에 버려진 돌들로부터 "시간에 저항할 수 있는 신비로운 색깔'을 포착했고, "고통을 받으면 그만큼 더 행복할 권리를 얻는다"라고 단언했다. "인간 삶의 유한함과 하찮음을 의식"하므로 "현재에 열정, 즉 에너지"를 얻노라고 자부했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생명의 무게 그 자체를 최대한으로 누리'겠다고 결심한다. 20대 초반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다듬었던 곳은 티파사이다. 여러 시대의 유적이 공존하는 이곳에서 카뮈는 자연과의 감각적 일체감을 경험하며 "모든 것이 무상하나 자연의 현존은 압도적"이라는 사실에 눈을 뜬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다만 또렷한 의식을 유지하는 것"이며 "현재의 이 공간에 자신의 존재 전체를 송두리째 내맡"기며 "이 삶을 사랑"하자고 설득한다.

 

 

 

 

 

 

 

 

 

 

 

오랑은 카뮈에게 부정이자 동시에 긍정적인 무대이었다. 개인적 삶에서 폐결핵과 실직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낸 곳으로 '권태, 법석, 고독'으로 메워진 도시로 여겼는가 하면, 이곳의 부이스빌 해변은 그의 첫 역작 『이방인』에 대한 영감을 준 장소였다. 미노타우로스의 미로 같은 탐탁지 않게 다가온 도시이지만 "'무'이고 '권태'도 받아들이고 그대로의 삶을 최대한으로 살아가는 것, 그 절도가 바로 삶이라는 미로를 빠져나가는 아리아드네의 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 도시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여기서 『이방인』을 출간하고 프랑스 여행 신청을 기다리면서 카뮈는 작가로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었다. 카뮈는 알제리를 떠나 프랑스로 이주하게 되는데 그에 앞서 두 차례 유럽 여행을 한다. 두 번째 유럽 여행은 사부아 지방에서 출발하여 파리-앙브룅-이탈리아를 거쳐 알제리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는데, 소설가로서의 소명을 인식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특히, 앙브룅에서는 "내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소설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골몰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내 안에서 살고 있는 세상을 구체화하는 것이다"라고 선포하기에 이른다. 

 

 

 

 

첫 출간 작품인 『이방인』에서부터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었던 카뮈만의 저력은 무엇일까? 인간으로서의 카뮈가 가진 가치관과 이를 실천하려 했던 삶의 태도가 아닐까? 가난과 질병으로 카뮈는 일찍이 세계의 부조리, 삶의 부조리함을 꿰뚫어 보았다. 가난과 병에 의해 무너지지 않는 것이 그의 목표라면 이 목표 수행에 있어서 제1 강령은 '매 순간 명징한 의식으로 삶의 진실을 똑바로 보는 것' 이었다.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늘 일상의 나태와 마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끈기 있게 노력한 한 인간으로서의 카뮈'야말로 여러 역작을 탄생시킨 근원이었다. 부조리한 삶이 휘두르는 고통-절망-전쟁-죽음에 대항하여 '명징한 정신'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해 간다면 삶에 저항, 반항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갈 수 있다. 카뮈가 실현한 문학도 세계와 삶의 무의미함과 부조리에 통일성을 부여하며 거기에 대항하는 힘겨운 노력의 과정이요 산물이다. 시시때때로 예측할 수 없게 그의 생명 자체를 위협했던 폐결핵에 대해 '반항'하는 모습은 거의 신에 가깝다. 병은 카뮈에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진지 속으로 떠밀려 들어가는 것'이었고, 이에 대해 카뮈는 시간을 더 잘 활용하고 생활에 체계를 갖춤으로써 '죽음이라는 종말에 앞서 자기완성에 이르고자 하는 필요가 절실해지는' 계기로 삼았다. "더 행복하지도 더 불행하지도 않은, 그러나 내 힘에 대한 자각, 내 허영들에 대한 무시, 그리고 내 운명과 마주하여 나를 떠미는 명중한 열기"를 힘껏 끌어안겠다고 선언했다. 가난에 대해서도 움찔하지 않고 "삶의 진정한 의미라고 여겨지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손으로 만져보는 것은 가난한 삶 속에서"라고 당당히 밝힌다. 가난했기 때문에 카뮈는 자연의 진정한 풍요로움을 보았고 이를 작품 속에서 고백하며 스스로 '태양과 바다에서 태어난 종족'이라 자부할 수 있었고, 더불어 타인들로부터 '지중해의 태양을 품은 지중해인'이라는 찬사를 받게 되었다. 적대적인 삶의 어떤 조건 속에서도 '명징한 의식'으로 똑바로 바라보며 온갖 위협에 반항하는 인간 카뮈 자신이 그의 모든 작품에 현존한다. 그래서 그의 문장들은 힘이 있고 정신을 움직인다.

 

 

프랑스 중부의 파늘리에에서 요양을 할 때 카뮈는 가난하지는 않았다. 재발한 폐병에 대해서도 ' 병보다 더 밀쳐내야 할 것은 없다. 병은 자기 자신에 대한 마음 약한 연민의 감정을 일으켜서 산 채로 죽음 앞에 무릎 꿇게 만든다'라고 단호히 맞설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병 덕택에 나태함에 빠지지 않았고 '병은 나름대로의 규칙과 절제와 침묵과 영감을 갖춘 수도원 같은 것'이라고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가난과 병이라는 부조리를 이겨낸 자리에 '전쟁'이 끼어들었다. 이에 대해서도 군대 자원, 레지스탕스에 참여, 레지스탕스의 기관지 <콩바combat>에서 기자로 활동( 파리 해방에 즈음하여 '진실의 밤'이라는 사설을 개재하여 큰 반향을 불려 일으켰다)으로 맞섰다. 동시에 작가로서 전쟁을 대하는 법도 알았다. 시대가 처한, 자신이 겪고 있는 참담한 상황을 소설로 형상화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삼아 작업에 몰두했고, 전쟁의 알레고리로 가득한 『페스트』를 탄생시켰다. 부조리의 한 측면으로 사형제도와 사형수에 대한 문제도 꾸준히 제기했다. 카뮈가 보기에 이 주제는 부조리한 삶에 대처하여 도덕성을 구성하는 중요 모티브이고 '신이 없이 성자가 된다'라는 무신론자적 모럴리스트로서 카뮈의 철학을 구축하는 주요 요소이다.

 

 

 

 

삶과 세계의 부조리에 대해 명징한 의식을 갖고 끝까지 반항하라고 외쳤던, '우리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천명한 카뮈이기에 호락호락한 성격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카뮈가 평생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관심이 간다.'명징한 의식'을 띈 남다른 삶의 태도를 일찌감치 재능으로 봐준 사람이 있었으니, 리옹 거리에서 가난하게 살던 시절의 스승 '루이 제르맹'이다. 그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직업전선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던 가난한 카뮈에게 무료 개인 교습을 해 주어 카뮈가 중고등부 장학생 선발 시험에 합격하게 이끌었다. 그랑리세로 진학하여 장차 기자로 작가로 살아가게 될 길을 터준 이 은인을 카뮈는 평생 기억, 훗날 노벨문학상 수상의 공로를 돌리기도 했다. 카뮈가 기자가 되어 사회, 정치 문제에 날카로운 눈을 가지게 된 데에는 <알제 레퓌블리킹>의 창간자인 '파스칼 피아'의 공이 크다. 나중에 <파리수아르>에서 일하며 파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의 도움을 아끼지 않았고, 레지스탕스 활동의 동지가 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첨예한 눈과 예리한 언어를 가졌기 때문이었는지 레지스탕스 활동상 정치적 견해 차이로 결국은 절교하게 된다. 카뮈와 샤르트르의 관계는 연극에서 시작되었는데 절교로 이어지는 '극적인' 요소가 다분했다. 『이방인』이 성공을 거두자 평단의 기준이 더 높아져서인지 『페스트』에 대해서는 신랄한 냉소가 쏟아졌다. 수년간 교분을 이어오던 샤르트르도 이에 가세하며 사이가 틀어지는가 싶더니, 『반항하는 인간』을 두고서 샤르트르와 격렬한 이념 갈등을 벌이게 되었다. 카뮈는 소련과 동유럽을 장악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비판한 반면 샤르트르로 대표되는 프랑스 좌파는 역사의 진보라는 맥락에서 공산주의를 추앙하는 입장이었다. 이 논쟁으로 두 사람은 카뮈가 죽을 때까지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이 없었다. 카뮈는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 않았지만 '오독은 없다'라고 이들의 비판적 시각을 묵살하지 않았다. 오히려 창작을 위한 노력에서 삶의 정당성을 발견, 문학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랑리세의 철학교수였던 장 그르니에와의 관계는 사제지간으로 출발했지만 평생 우정으로 지속된다. 덕분에 그르니에의 『섬』에 카뮈가 서문을 써서 내가 카뮈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이고, 카뮈의 사후 그르니에가 『카뮈를 추억하며』를 저술하여 인간 카뮈를 후대에 전하게 된 것이다. 노벨상 수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찬사와 부적절한 수상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는 상황에서 "방금 투우는 끝났습니다. 황소는 죽었거나 아니면 그에 버금가는 상태"라고 편지를 띄우며 개인적 감정을 고스란히 전할 정도로 그르니에는 카뮈에게 버팀목이기도 했다. 샤르트르를 포함한 비평가들의 공격, 프랑스 좌파의 반격, 알제리 사태의 중재 실패,마다가스카르 폭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드골 정부를 비판하여 깊어진 정치권력과의 불화,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가해진 비난 등으로 카뮈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할 때 위안이 되는 친구가 있었으니, 프랑스 현대시의 대표라 불리는 '르네 샤르'이다. 그가 살고 있는 한적한 릴쉬르라소르그를 자주 찾았고,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지내고 싶은 욕구'를 느껴 '약간의 고독과 영원의 몫'을 찾을 곳으로 낙점한 루르마랭도 르네가 권유한 곳이었다. 카뮈의 거의 모든 저서의 출간을 맡아 주었던 갈리마르 출판사도 카뮈의 든든한 동지였다. 불행하게도 미셸 갈리마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오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카뮈는 즉사하고 미셸도 닷새 후에 숨을 거두는 비극의 동반자이긴 했지만.

 

 

 

 

 

 

 

이런 관계를 보면 '부조리'와 '반항'을 설파한 위대한 작가요 '명징한 의식'을 실천했던 강인한 인간 카뮈이더라도 우리네와 다를 바 없이 긍정적-부정적 관계의 스펙트럼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자관계이다. 피카소, 헤밍웨이 또는 조르바를 떠올리게 하는 '멈출 줄 모르는' 연인들의 등장에 당혹스럽긴 하다. 이런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늘 새로운 관계를 시도하면서 몇몇의 옛 관계를 유지하고, 그러면서 아내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책임은 갖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결혼을 작정했다. 그의 죽음으로 마지막 연인으로 남게 된 '메트 이베르'는 파리의 카페 플로르에서 '첫눈에 반했'던 사이인데, 루르마랭에서 시작할 새 삶의 동반자로 결정해 두었다. 그러나, 죽어서도 카뮈 옆에 자리한 사람은 그를 참아 준 아내 프랑신이다. 현재 루르마랭의 카뮈의 집을 지키고 있는 사람도 프랑신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카트린이고.

 

 

 

 

『이방인』과 『시지프의 신화』로는 카뮈를 이해할 수 없었고 『페스트』『전락』『반항하는 인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은 훌륭한 작품 가이드가 되어 준다.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단순함'과 간결함, 과묵함 속에서 '자신의 내적 진실에 대한 믿음에 따라 행동'하기에 '사물을 남들과 다르게 바라보는' 뫼르소, '다른 사람들이 날마다 사회적으로 벌이는 유희에 참여하기를 거부'했기에 '이방인'으로 규정되어 사형대로 내몰린 뫼르소를 이 책에서 먼저 알고 『이방인』에 재도전한다. '삶의 모순과 부조리라는 문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서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을, 그 섬뜩한 진실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 같은 작품'이라 할 『이방인』의 진가를 발견하리라 기대한다. 내가 보기에는 불행하기 짝이 없는데 카뮈는'행복'하다고 정의해둔 시지프의 고뇌와 땀방울이 느껴지는 『시지프의 신화』에서도 영웅의 단호한 메시지를 건져 올린다. 우리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운명 지어져 있는 가장 대단한 부조리 즉, 죽음에 의해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획득해서 끊임없이 '갱신'해야 된다. 이는 '죽음과 대면하는 방법이자 죽음으로부터 거듭남'으로써 '스스로 창조'하는 길이다. 또한, 신의 저주와도 같은 '무상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삶을 똑바로 직시하며 끝까지 이어나가며' 신에게 '반항'하는 것이다. 즉,'삶이 곧 반항'이자 신 앞에서도 삶의 부조리에 대해서도 '행복'하게 살아남는 방법이다. 『페스트』를 풀어 나가는 전쟁의 알레고리에도 대단한 삶의 서사가 들어 있다. 전쟁이 그렇듯 삶에도 온갖 구호와 선전이 난무하며, 전쟁이 떨치는 고통과 두려움의 도가니 속에서도 행복을 원하는 것처럼 고통이 옭아매는 삶 가운데서도 희망을 가진다. 소설과 연극을 합쳐놓은 독특한 형식의 『전락』에서도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인 거짓된 양심과 잃어버린 순수성'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다. 카뮈 생전 최후의 작품인 단편 소설집 『유배지와 왕국』에 속한 「손님」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인데 강렬하다."손님의 삶은 관습에 밀려 자신의 가치를 잃고 살아가는 유배지의 삶"이다. "어떻게 하면 이 삶에서 자신의 왕국을 이루어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실험하는 이야기라니, 철학자 카뮈의 음성이 담겨 있다. 카뮈가 가장 먼저 썼지만 사후 10년 뒤 발표된 소설 『행복한 죽음』, 루르마랭에서 영감을 떠올려 알제의 어린 시절 무대를 등장시켜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구상했던 최후의 소설 『최초의 인간』(미완성작이 어 가족들은 카뮈의 사후 발표를 하지 않기로 했지만, 1993년 딸 카트린의 재결정으로 발간되었다)도 이 책에서 알게 되었다. 가지고 있은지는 몇 년 되었지만, 무슨 소리인지 몰라 묻어 두었던 『결혼·여름』도 이 책의 도움으로 빛을 보게 될 것 같다. "티파사의 폐허에서 세계는 날마다 새로운 빛 속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겨울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마침내 내 속에 억누를 길 없는 여름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를 비롯, 그야말로 심장을 멎게 하는 아름다운 문장의 코러스가 울려 퍼지는 책, 그 진가를 이제야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세 권으로 된 『작가 수첩』역시 값진 발견이다. 저자가 카뮈의 흔적을 좇아가는 곳마다 이 시리즈의 문장들을 인용하는 데다가 하나같이 번쩍이는 사상과 반짝이는 어휘들로 이루어져 있다. 『카뮈×최수철』의 장소,작품,작가이자 인간이었던 카뮈를 떠올리며 이 시리즈를 읽어간다. 가난, 질병, 전쟁, 관계, 꿈, 행복, 사랑 등이 던져주는 삶의 부조리 속에서 '끝까지 살아나갈 것을' 설득하며 실천에 옮긴 카뮈의 목소리를 듣노라니, 때로는 버거운 이 삶에 감추어진 보화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카뮈를 가장 잘 아는 언어의 마술사 김화영 교수의 번역이라 언어가 입체적으로 살아나, 카뮈에 대해 무지하고 둔탁한 내 사유와 감각을 퍼득이게 한다.

 

 

『카뮈×최수철』을 통해 연극인 카뮈의 모습도 알게 되었다. 촌철살인의 대가요 철학적 사유로 무장하여 남다른 가치관으로 시대를 앞서가던 카뮈이므로, 샤르트르 같은 동시대의 대표 사상가들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던 카뮈인지라, 기자와 소설가라는 독자적인 작업을 필요로 하는 일에 평생 매진한 카뮈이기 때문에(대학시절 광적으로 좋아했던 축구에서도 그의 포지션은 '홀로' 서야 하는 골키퍼였으니!), 웬만한 사람들하고는 어울리지 못했을 것 같은데 이는 나의 편견이다. 파리에서 『오해』를 연극으로 상영했고 『계엄령』과 『정의의 사람들』같은 희곡을 썼으며, 『칼리굴라 』에서는 직접 대역으로 출연할 만큼 연극분야에서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인간관계에 의해 고독과 절망으로 내몰릴 때 연극은 카뮈에게 해독제이자 회복제였다. 동지애와 연대의식이 중요하다고 믿었고 '환상을 먹고 사는 사회'에 비해 연극이야말로 '진실의 장소'라고 확신했다. 앙제에서 열린 연극제가 끝나고서는 "삶이 또다시 시작된다. 모든 것을 다 사랑하고 모든 것을 다 창조할 수 있는 힘'을 찾았다며 환희에 들떴다. 노벨문학상 수상 전후로 자신에 대해 더 냉담해진 기류에 압도되어 밀실 공포증과 공황상태를 겪었지만,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을 각색하며 연극에 몰두했다. 인간에 대한 환멸을 가져다준 파리를 완전히 떠나 루르마랭에 정착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마음을 흔드는 그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연극제를 열기에 적절한 장소로 여겼기 때문이다. 

 

 

 

 

카뮈의 마지막은 아이러니했다. 세계와 삶의 부조리를 통찰, 이에 맞서 싸워 왔지만 카뮈의 삶 역시 부조리하게 끝나 버렸다. 루르마랭에서 파리로 가는 길, 그의 가방에는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스스로 말한 『최초의 인간』 초본이 들어 있었고, (아내 프랑신과 쌍둥이 자녀 장과 카트린은 앞서 기차로 파리로 보내고 자신은 기차표를 주머니에 넣은 채) 오랜 시간 끈끈한 우정을 나누던 친구 및 그 가족과 함께 하는 길이었고,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겠으나 새로운 연인 메트 이베르와의 새로운 삶을 공표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소설로 새롭게 삶을 사랑하여 자신의 삶에 더욱 '반항'할 준비를 마쳤지만.... 아직까지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불의의 사고를 당하다니 이야말로 '부조리'아닌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것, 어쩌면 카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종말의 형식인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그의 작품세계에 발끝만 담근 초보 애독자 나에게도 카뮈의 죽음은 카뮈의 삶 못지않게 문득문득 생각나며 아리는 여운을 남긴다.

 

 

 

 

 

 

이제 준비가 되었다. 내 인생과 무관한 키워드로 제쳐 둘뻔한 카뮈가 이제 내 인생의 혁혁한 사건으로 기록될만한 무게를 지니게 되었다. 『섬』의 서문을 통해 카뮈에게 마음이 활짝 열렸고, 이 음악적 선율과 같은 부드럽고 단호한 언어를 원본으로 느껴 보고자 프랑스어에 더 매달렸고(김화영 교수의 멋들어진 번역에 힘입어 프랑스 원문을 조금씩 읽어가며 감격했던 그 시간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카뮈×김수철』을 숨죽이며 하루 만에 독파했고, 두 배 세 배로 커진 감동과 기대에 일렁여 한동안 리뷰를 쓰지 못했고... 쟁여둔 카뮈의 책을 바라보며 더욱 벅차오르는 이 마음을 주체할 수 없고... 누구에게든 '너 자신을 알기 전에 카뮈를 알라'고 강요하고 있으며... 읽고 알아서 감동했다면 보자,라는 공식에 맞게 '여행'을 도모한다.

 

 

소심하고 운전엔 재주가 없어 알제리와 프랑스를 종횡무진하는 저자 최수철의 여정을 따라 할 수는 없다. 알제, 티파사,카빌리, 카스바, 제밀라, 오랑 등의 알제리 지역은 『카뮈×최수철』, 카뮈의 작품들, 김화영 교수의 저서들 등을 통해 간접 여행하는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내에서도 사부아 지방, 앙브룅,파늘리에도 그저 글속의 장소들로 남을 것 같다. 루르마랭에서 카뮈의 집을 외관이라도 뚫어져라 바라보고, 카뮈의 묘석에 예쁜 꽃다발을 놓겠다는 꿈만 같은 상상은 바라건대 불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김화영 교수의 여러 책에 등장하는 엑상 프로방스에서 출발하는 여정이라면 언젠가 한 번은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대신에 카뮈가 찬양한 자연을 보러, 자연과 육체가 합일되어 발하는 열광의 순간을 엿보기 위해 '지중해'로 간다. 카뮈가 알제리에서 바라보았던 것과 흡사할, 뜨거운 태양과 파란 하늘 아래 빛났던 지중해를 볼 수 있는 남프랑스로 간다. 다행스럽게도 파리에서는 카뮈의 궤적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생제르맹 데 프레의 '카페 드 플로르'에서 조금은 언짢은 듯 무관심한듯한 표정을 한 채 샤르트르-보부아르와 마주 앉아 있던 카뮈를 찾아본다. 세상의 수군거림에 아랑곳 않고 이곳에서 메트 이베르와의 사랑을 확신했던 대책 없는 남자 카뮈의 넋 나간 표정도 그려본다. 지금은 5성급에 맞먹는 화려함을 내두르고 있지만, 카뮈에게 처음으로 안락을 맛보게 해 주었던 '메디슨 호텔 Hotel Madison'도 들러 혹시 카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기웃거려 본다. 카뮈의 첫 파리 생활의 첫 거처였던 몽마르트르도 천천히 거닌다. 비록 '푸아리에 호텔'은 사라졌지만, 불결함에 놀라 파리를 '비인간적인'곳으로 거북해했던, 장차 파리를 주 무대로 살아갈 줄 미처 몰랐던 카뮈의 스산한 마음을 더듬어 본다.

 

 

이미 온 세상에서 유명해져 있고 많은 것이 알려진 카뮈이지만, 내가 지금에서야 '발견'한 카뮈는 새로운 카뮈이다. 20대 초 이래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기이하게 나를 피해 갔던 카뮈가 이제는 단단히 내 삶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내가 알고 있는 카뮈는 아직 어리다. 『섬』의 서문으로 씨앗이 뿌려졌고 김화영의 카뮈 이야기로 싹이 틔워졌다가 『카뮈×최수철』로 단비를 만나 부쩍 자랐다. 이제부터는 내가 직접 나선다. 때로는 햇빛을 쬐여 주고 때로는 거름을 퍼 날라주며 내 삶 속에서 '나의 카뮈'를 옹골찬 나무로 키울 것이다. 초록을 머금은 싱싱한 나뭇잎도 볼 것이고 눈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우아한 꽃도 피울 것이고 보아짐하고 먹음직한 열매도 거둘 것이다. 카뮈의 삶과 문학이 넉넉하게 드리워 줄 그늘에 깃대어 카뮈와 그의 수많은 페르소나들이 철저하게 '반항하며 사랑했던 삶'을 그대로 배워 나갈 것이다.

 

< 이 글은 예스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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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우수작 카뮈 _ 지중해 태양 아래 영원한 이방인 _ 최수철 지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청**구 | 2020.02.05 | 추천26 | 댓글27 리뷰제목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좋아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막연히 알던 거장, 흔히 말하는 위인이나 예술가들이 더욱 사랑스럽게 잘 보인다. 그들이 살던 그 장소에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든다. 대학시절 카뮈를 처음 만났다.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선배의 책장에 <이방인>이 있었다. 카뮈를 찾아보게 됐다. 시가를 물고 무언가 반항기 있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듯한 그 얼굴.&n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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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좋아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막연히 알던 거장, 흔히 말하는 위인이나 예술가들이 더욱 사랑스럽게 잘 보인다. 그들이 살던 그 장소에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든다.

대학시절 카뮈를 처음 만났다.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선배의 책장에 <이방인>이 있었다. 카뮈를 찾아보게 됐다. 시가를 물고 무언가 반항기 있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듯한 그 얼굴. 

나는 김화영 교수님 번역으로 조금은 무슨 내용이지?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거지?를 연발 속으로 외치면서 읽었다. 

카뮈하면 으레 따라붙는 '부조리' 반항적 대학생에게 이 말은 무언가 멋져보이는 말이었다. 결국 나는 이해도 잘 하지 못한 까뮈의 <이방인>을 감명깊게 읽은 소설이라고 주변에 알리고 다닐만큼 좋아하게 됐다. 그 뒤 시시포스 신화, 페스트, 작가수첩 등 알베르 카뮈 전집을 한권씩 구매하게 됐다. 비록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 책을 읽으면서 카뮈는 왜 그런 소설을 썼을까? 그의 인생은 어떻게 그렇게 흘러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카뮈를 알게 됐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책의 미덕은 결국 '아는만큼 보인다'를 절절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가 거닐던 알제리 카스바와 오랑이, 프랑스 파리의 노천 카페인 카페 드 플로르로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

 

(카뮈가 자주 드나들었던 파리의 카페 드 플로르)

 

카뮈는 1913년(아직 채 100년이 되지 않았다) 11월 7일 알제리의 몽도비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뤼시앵 오키스트 카뮈는 포도주 제조 노동자였고, 어머니 카트린 생테스는 거의 말을 안하고 벙어리처럼 지낸 스페인 출신의 여성이었다. 

1914년 카뮈의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고 사망하게 된다. 카뮈는 결국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앞날이 막막해진 어머니는 알제의 빈민촌으로 이사해서 가정부로 일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어렵게 꾸려나가다. 그에게 가난이라는 '의미'가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떻게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으로, 후에는 프랑스 사람도, 알제리 사람도 아닌 이방인으로 살아가게 됐는지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이민자 3세대로 알제리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서 20세기 최고의 문제작이라 불리우는 <이방인>을 발표하여 아직까지 세상에서 존경받고 사랑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역대 두번째 최연소자로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그의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그러던 마흔 일곱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불의의 사고로 돌연 죽음을 맞이하게 된 카뮈, 마치 한 편의 신화와 같은, 영화같은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어린 시절 경험한 질곡같은 가난과 질병은 그로 하여금 삶은 부조리하다는 인식에 닿게 했고, 지중해의 찬란한 바다와 태양 그리고 그곳에 남은 고대문화는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한 긍정과 중용을 통한 진정한 반항의 의미를 깨우치게 해줬다. 

그의 기존가치에 대한 부정적인 소설은 <이방인>과 희곡 <칼리굴라>, <오해>, 에시이인 <시시프스의 신화>를 쓰게 했으며, 생에 대한 긍정은 소설 <페스트>와 희곡 <계엄령>, <정의로운 사람들>, 에세이 <반항적 인간>을 쓰게 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이제 인간에 대한 부정도 긍정도 아닌 사랑을 테마로 한 대서사 <최초의 인간>을 써 내려가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음 앞에서 그 여정을 멈췄다. 

10여년 전 카뮈가 남긴 최후의 소설이라는 말에 <최초의 인간>을 나오자마자 구입했던 기억이 있다. 앞에 조금 읽다가 다른 바쁜 일 때문에 못 읽고 본가에 놔두고 왔는데 이 책을 읽은 지금 너무나 읽어보고 싶어졌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이를 쓴 작가도 중요한데, 저자 최수철은 불문학을 전공했고, 그 역시 소설가다. 어떤 사람보다 적합한 분으로 심지어 <이방인>을 번역하기도 했다.

저자는 카뮈와 세 번의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첫번째는 프랑스에서 <최초의 인간>을 만났을 때라고 한다.

젊은 시절 프랑스 현지에서 유학하면서 카뮈를 알게 됐다고 한다. 사실 처음에는 카뮈를 아주 많이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작가가 전달하려는 이념적인 메시지가 과도하여 상대적으로 리얼리티와 정서적 감응의 힘이 약하다고 여겨진 탓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최초의 인간은 달랐다고 한다. 작품 속에는 지극히 세부적이고 사실적이면서도 리얼리즘을 넘어서는 카뮈 특유의 삶에 대한 비전이 진솔한 내면의 고백을 통해 절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나(저자)는 한동안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릴 정도로 완성된 형태의 <최초의 인간>을 우리 인류가 가지지 못한 데 대한 크나큰 상실감 때문이었다. 카뮈가 좀 더 살아남아 계속하여 자신이 겪은 병과 여자들과 전쟁, 삶의 기쁨과 슬픔, 인간들의 사랑과 비극적 운명을 마저 들려주었다면 얼마나 놀랍고 계시적인 이야기가 서사시처럼 펼쳐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결코 완성은 불가능하고 미완성으로 완성을 그려내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이 소설에서 완성된 모습을 찾는 것은 우리의 몫일 것이다. ---p.15

 

두번째는 서울에서 소설가로 만났을 때다. 저자는 언제부터인가 글을 쓰지 못하고 우울증과 무력감이 있었는데 그 때 한 도시가 자살의 광풍에 휩쓸려 황폐해져가는 가운데 그것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노력을 담은, 나 자신의 장편소설 <페스트>를 쓰리로 했다고 한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먼저 읽고 카뮈가 겪은 개인적 시련, 폐질환과 싸우는 과정을 담은 일종의 메타포로도 읽힌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점이 바로 자신의 소설의 창작동기가 됐다는 것이다.

카뮈는 그의 작품속에 인생의 부조리를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카뮈의 개인적 불행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그의 인생은 역경과 불행으로부터 부단한 투쟁이었다.

일찍부터 호기심과 열정, 용기와 의지를 가지고서 역경을 헤쳐 나갔다.

그는 만 1세가 되기 전에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그로 인해 가난했으며, 가족들 대부분은 문맹이었고, 어머니는 선천적으로 귀가 잘 들리지 않는데다가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말까지 더듬었으며, 카뮈 자신도 결핵에 걸려 젊었을 때부터 수시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아내에게 배신 당했고, 자신의 고향 알제리에 대한 애착이 컸던 나머지 오히려 프랑스와 알제리 양쪽으로부터 변절자로 불려야했다. 그러면서도 대세를 거스르는 투철한 소신을 고수한 탓에 수많은 적을 얻었으며, 그 결과 작가로서 성공한 이후에도 끊임없이 불안과 우울 증세와 밀실 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인상적 외모와 기질적으로 활력이 넘쳤고, 알제리라는 이국적 풍토를 경험하면서 뛰어난 감수성을 얻었다.

저자는 그런 카뮈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짓누르던 신경증으로부터 서서히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카뮈와 세번째 인연은 바로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을 번역한 것이었고, 저자는 이 소설을 「나는 뫼르소다」라는 제목의 내적 독백형식의 글로 재구성했다. 텍스트를 자기식으로 해석하여 다시 쓴 것이다.

 

책은 카뮈의 인생에서 중요한 거처였던 곳을 작가가 함께 따라가며 그 의미를 되짚어 보는 형식이다. 나중에 카뮈 여행을 기획해도 될 정도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가로 유려한 필치로 이 책 자체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카뮈 생애의 문학적 공간 8곳이다)

카뮈의 영원한 고향인 알제리의 벨쿠르부터 카빌리, 티파사, 오랑을 거치면서 그의 여정을 따라가고, 그가 예술과 정치 활동의 정점을 찍은 프랑스 파리부터 고독과 침잠의 시간을 보냔 곳으로 폐병 요양차 머물렀던 프랑스 중부 고지대의 파늘리에, 카뮈가 참여한 연극 축제가 열린 앙제를 거쳐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으로 프랑스 남부 뤼베롱 산악 지대 밑에 위치한 루르마랭에 집을 장만하여 다시금 집 활동에 들어간다. 프랑스인이자 북아프리카인이었던 이중의 정체성을 지닌 카뮈는 이곳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기를 핵심 주제로 하는 유작 <최초의 인간>을 집필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떠난다.

알제 빈민가 시절의 카뮈다. 일곱살 때 술통 제조자인 그의 외삼촌 에티엔 생테스의 작업장에서 찍은 것인데 카뮈는 훗날 <최초의 인간>에서 사냥과 수영에 자신을 데리고 다니던 외삼촌에 대한 기억을 감동적으로 되살려냈다.

 

그는 어릴 때 위대한 스승 제르맹을 만나서 공부의 기회를 가진다. 후에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그는 스승의 역할에 대한 감동적 명연설을 남긴다.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선생님이 당시 가난한 어린 학생이었던 제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면, 선생님의 가르침이, 그리고 손수 보여주신 모범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수상의 영예를 지나치게 중시하지는 않습니다(아, 노벨상에서도 이 시크함,이 부분은 내가 쓴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적어도 제게는 (...) 선생님의 노력, 일, 그리고 거기에 바치는 너그러운 마음이, 나이를 먹어도 선생님께 감사하는 학생이기를 결코 그치지 않았던 한 어린 학생의 마음속에 언제나 살아 있음을 말씀드릴 기회가 됩니다. ---p.42

 

 카뮈는 장학생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가난한 집을 떠나 책과 더불어 지적 욕구를 마음껏 채우며 해방의 세계에 빠져드는 낯선 이방인이 된다. 학교에서는 비교적 과묵했던 모양이다. 그는 가정환경 조사서에 국가 보호대상자로 기재되어 있다. 가난했다. 카뮈는 알제대학에 진학하고 거기서 21살의 나이에 스무살의 시몬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6월에 결혼식을 올린다. 시몬은 미모와 도발적 행동으로 남자들의 시선을 끌어 카뮈에게 질투심을 느끼게 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생리통으로 모르핀 주사를 맞았는데 모르핀에 중독된 상태였다. 카뮈는 그녀와의 생활을 위해 가정교사나 알제도청에서 일도 했지만 가난의 굴레가 여전히 그를 옥죄었다. 

카뮈는 이 시기 공산당 활동을 하고, 1936년 아내의 친구 이브 부르주아와 함께 중부 유럽으로 카누 여행을 떠난다. 도중에 잘츠부르크에서 아내 시몬의 배신을 알게 된다. 아내에게 마약을 공급하던 의사가 그녀의 정부였던 것이다. 지중해적 마초 기질을 지녔던 카뮈에게 이 일은 매우 큰 상처가 되었고, 이후로 그는 여자들에 대해 애증의 이중적 감정을 지니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 그를 구원한 것도 여자친구들이었다. 카뮈는 잔 폴 시카르와 마르그리트 도브렌이라는 여자친구들과 함께 알제 언덕에 집을 구입하여 함께 살았고, 거기서 <행복한 죽음>, <칼리굴라>같은 초기 작품들을 썼다. 

 

1938년 대학원을 졸업하고, 티파사, 오랑 등에서 생활하며 여러 여자들과 연인관계를 가지고 오랑 출신의 프랑신 포르와 재혼한다. 

1942년 8월 카뮈는 알제리를 떠나 프랑스로 간다. 요양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보다는 작가로서 새로운 도약의 의미가 더 컸을 터다. 

카뮈의 작품 속 전반을 흐르는 부조리는 가난, 가족들의 불행, 질병, 첫 아내에게 당한 배신 등이 뒤섞인 것이 표출 된 것일 것이다.

카뮈는 <시시포스 신화>에서 부조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명철성이 살아나는 어떤 순간에는, 인간들이 하는 행동의 기계적인 면과 의미없는 무언극으로 인하여 그들 주위의 모든 것이 다 어리석게만 보인다. 한 사내가 유리 칸막이 저쪽에서 전화를 걸고 있다.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무언극 같은 뜻 모를 몸짓은 보인다. 이쯤되면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아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겨나게 된다. 인간 자신에게서 엿보이는 비인간성을 접하면서 느끼는 막연한 불안, 우리 존재 자체의 모습 앞에서 경험하는 측량할 길 없는 추락, (...) 이것도 또한 부조리다."

우리는 행복하고자 하지만, 행복이란 무상한 것으로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다. 또한 우리는 자신의 존재가 좀 더 위대해지는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허약한 육체 속에 갇힌 우리의 존재가 조만간 죽음과 더불어 무의미해질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요컨대 우리는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수수께끼와 대면할 때, 전화 부스 안에서 요란하게 몸짓을 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부조리의 감정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부조리라는 감정은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과, 세상의 측량할 수 없는 비합리적 속성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p.104 ~ 105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우선 부정할 수 없는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카뮈는 <안과 겉>에서 "삶에 대한 절망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라고 했다.

카뮈는 부조리는 긍정적 니힐리즘이요, 부정이 난무하는 시대를 헤치고 나아가며 생존의 길을 발견하기 위한 수단이다. 부조리한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획득해야 하고, 그것은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여기에 예술이 큰 힘을 주는 것이며, 죽음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의 형식조차 창조할 수 있는 예술이야말로 창조이자 반항이라고 했다. 이것이 카뮈가 도달한 결론이었다.

 

이방인을 통해 카뮈는 부조리를 폭발시킨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에정. 삼가 조의를 표함.' 이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어제였을 것이다.  - 작가수첩1, p.149

카뮈는 소설사에서 가장 멋진 서두 중 하나로 손꼽히는 유명한 구절을 써냈다. 

얼마 전 읽은 베르베르의 소설에 내가 죽었다. 도 여기서 뭔가 따오지 않았을까?

 

카뮈는 작가이기 전에 기자였다. 그는 알제리의 '알제 레퓌블리캥'의 기자로 자신의 삶에 많은 영감을 끼친 파스칼 피아를 만나게 된다. 파스칼 피아의 초청으로 카뮈는 드디어 프랑스에 입성하게 된다. 세상을 놀라게 할 소설 한편과 함께 말이다.

 

카뮈는 파리에서 약간의 고독과 싸우며 소설도 쓰고, 또 그를 평생 괴롭힌 병마 때문에 요양도 다닌다. 그는 이방인을 발표하고 프랑스 문단의 극찬을 받았고, 주목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당대 프랑스 최고 지성중 한명이었던 장 폴 사르트르를 1943년 만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지성으로 존대하며 최고의 지성적 동맹 관계를 유지했으나,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을 둘러싸고 갈등이 표출되었다. 카뮈는 이책에서 스탈린 치하 소련의 공산주의에서 보듯 폭력을 정당화하는 마르크스의적 혁명 개념을 거부한 반면, 사르트르는 역사의 진보라는 맥락에서 스탈린 편은 아닐망정 공산주의를 계속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두 사람 간에는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벌어졌고, 1952년 완전히 결별한다. 

두 사람은 카뮈가 불의의 사고로 죽을때까지 다시는 보지 않게 된다. 

카뮈는 1957년 10월 16일 "오늘날 인간의 양심이 직면한 문제를 진지하게 파헤쳐 밝혀준 최고의 문학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역대 두 번째 최연소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하지만 프랑스 지성계 반응은 냉담했고 이로 인해 공황 장애를 겪게 된다. 

 

카뮈는 노벨상 수상금으로 프랑스 남부 산악지대인 루르마랭에 거처를 마련한다. 카뮈는 두번째 아내 프랑신과 함께 생활했다. 하지만 카뮈는 첫번째 여인에게 배신당해 여성에게 애증의 마음을 가졌으면서도 자신 역시 자유 분방한 여자관계로 인해 프랑신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카뮈는 루르마랭에서 한 인간의 40년의 대서사를 다룬 작품을 구상하고, 써내려간다. 

하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이 14살에서 멈춘다. 

1960년 1월 4일 카뮈는 미셀 갈리마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루르마랭을 떠나 파리로 향하던 중 자동차 사고로 이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와 사상적 이념 갈등으로 결별했던 사르트르는 "엄격하고 순수하며 준엄한 동시에 관능적인 그의 완강한 인문주의는 이 시대의 거대하고 기형적인 사건들과 맞서 승패가 불확실한 싸움을 벌여왔다"라며 그의 죽음에 경의를 표했다. 

 

마지막에 카뮈 문학의 키워드가 잘 정리되어 있다. 

1. 어머니, 2. 가난, 3, 절망, 4. 부조리, 5. 태양, 6.반항, 7.사형이 그것이다. 

 

이 리뷰를 보시는 어떤 분이라도 카뮈를 좋아하고, 예술가들의 삶을 따라가면서 나중에 그곳을 답사하는 여행을 계획하거나 마음속에 가지고 계신 분, 또는 이방인을 보며 이 책이 왜 유명하지? 또 카뮈의 다른 작품을 캄명깊게 읽으신 모든 분들은 이 책을 구매하라고 말하고 싶다. 카뮈에 대해서 더욱 잘 알고 작품도, 여행도 하게 되면 그만큼 더 잘 보이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것 같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앞으로도 100권이나 더 나올 것이라는데 벌써부터 그 엄청난 양의 책 구매를 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온다.

(집에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다. 니체와 헤밍웨이는 집에 있어서 몇 번을 찾았는데 어디 있는지 못 찾았다.  집에 책이 너무 많은 관계로 가끔씩 이런 부분에 어려움이 있다)

부조리한 상태인 것 같지만 지금은 당분간은 카뮈에 취해 있어야겠다.

 

좋은 기회 주신 아르테와 클래식 클라우드 담당자 분께 감사함을 전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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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카뮈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h****n | 2021.03.2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p.45) 도시의 가난과 자연의 풍요로움으로부터 삶의 모순을 인식하는 동안, 점차 그에게서 역전이 일어난다. 가난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자 자연의 풍요가 더 절실하고도 계시적으로 다가오면서 그의 육체적 활력과 정신의 강인함을 북돋우어준다. 그것은 또한 세상의 부조리함을 명확히 인식할 때 얻을 수 있는 힘이다. 이방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그의 속에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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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 도시의 가난과 자연의 풍요로움으로부터 삶의 모순을 인식하는 동안, 점차 그에게서 역전이 일어난다. 가난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자 자연의 풍요가 더 절실하고도 계시적으로 다가오면서 그의 육체적 활력과 정신의 강인함을 북돋우어준다. 그것은 또한 세상의 부조리함을 명확히 인식할 때 얻을 수 있는 힘이다. 이방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그의 속에서 자리 잡는다.

카뮈를 좋아해서 선택한 책입니다. 카뮈의 정신세계와 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인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
그리고 카뮈의 삶의 행적들이 묻어있는 곳곳의 사진들이 아주 멋지고 실려있어서 마치 여행하듯 상상하며 읽기에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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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카뮈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H***M | 2020.04.09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스포일러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시대가 수상하지요. 이 시국에 다시한번 생각나는 작품이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 작가의 <페스트> 입니다. 흑사병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확인되지 않은 바이러스로 인해 전세계가 고통받는 이 때에 다시 생각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수백년 전 유럽을 휩쓸었던 그 병의 두려움이 지금 이 때에도 여전히 똑같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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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시대가 수상하지요. 이 시국에 다시한번 생각나는 작품이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 작가의 <페스트> 입니다. 흑사병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확인되지 않은 바이러스로 인해 전세계가 고통받는 이 때에 다시 생각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수백년 전 유럽을 휩쓸었던 그 병의 두려움이 지금 이 때에도 여전히 똑같다는 게 오히려 선진국이라 믿었던 미국, 유럽 등의 민낯을 보면서 더 두렵습니다. 다른 병, 같은 두려움. 사람들은 그저 병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나가고,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국가가 혼란에 휩싸인 이 때에 카뮈를 조명하는 책입니다. 읽어볼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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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카뮈』 전후 부조리 문학의 대명사인 카뮈의 발자취를 따라서 알제리와 프랑스 여행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h****n | 2020.03.16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지은이: 최수철펴낸이: 김영곤펴낸곳: (주)북이십일 아르테 이 책은 전후 부조리 문학의 대명사인 '카뮈'의 발자취를 따라서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프랑스 파리를 비롯해 마지막 숨을 거둔 루르마랭까지 따라간 여행기이면서 까뮈 문학의 복기이자 회상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불문학을 전공한 이유로 카뮈를 떠날 수 없었고 현대문학에서 카뮈를 빼고 프랑스 문학을 이야기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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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최수철

펴낸이: 김영곤

펴낸곳: (주)북이십일 아르테

 

이 책은 전후 부조리 문학의 대명사인 '카뮈'의 발자취를 따라서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프랑스 파리를 비롯해 마지막 숨을 거둔 루르마랭까지 따라간 여행기이면서 까뮈 문학의 복기이자 회상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불문학을 전공한 이유로 카뮈를 떠날 수 없었고 현대문학에서 카뮈를 빼고 프랑스 문학을 이야기할 수 없기에 그의 발차쥐를 따라간 것은 아니라고 한다. 글쓰기에 대한 귀차니즘이 발동되고 유학의 권태로움이 사로 잡혀있던 1994년 즈음에 우연히 발견한 카뮈의 최후의 작품인 『최후의 인간』을 발견한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사후 34년만에 프랑스 갈리마르출판사에 의해 발간된 그의 미완성 유작이 바로 『최후의 작품』이었다. 그 책을 집어든 순간부터 지은이는 카뮈를 놓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숱한 사람이 카뮈의 마지막 유작을 읽었음에도 끄떡없이(?) 생활하고 있는데, 지은이는 어느 순간부터 카뮈를 따라 그가 삶을 영위한 곳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카뮈가 빙의했거나 전생에 빚을 졌음에 틀림없으리라 생각이 든다.

 

카뮈라는 이름은 굳이 불문학도가 아니더라도 문학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이미 진부한 이름이다. 카뮈의 작품 중 『이방인』과 『페스트』는 청소년 필독서 중의 하나로 늘 손꼽히고 있으며, 현대문학이라고 불리우는 전집에 빠지지 않는 걸작이다. 문제는 그 걸작을 나같은 얼치기들은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왜 그 유명한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는지. 아니 읽어볼 생각조차 가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청소년 시기에는 성적은 비록 뒤에서 세는게 빠르겠지만 지금 학생들처럼 공부에 빠져(?) 등한시했던 이유일 것이다. 아니다. 가만히 뒤돌아보니 무협지에 빠져 있었다. 세계문학의 위대한 작품들은 읽지 않은게 겨우(?) 무협지 때문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긴 지금도 세계명작이라고 불리우는 작품들 태반은 뒷전이고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설들만 찾아서 읽고 있으니 더욱이나 읽을 기회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은 틈나는대로 책을 읽고 있으니 언젠가는 읽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래 언젠가는 읽겠지.

 

옆으로 빠졌다. 부조리 문학의 대명사라고 했지만 솔직히 부조리 문학이 무엇인지 대략 감은 잡을 수 있지만 말하라고 하면 주저하게 된다. 부조리 문학 뿐만 아니라 부조리 연극도 있음에도 부조리 문학작품 한 편을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내가 부조리하다. 아무튼 카뮈의 출생지 알제리부터 시간별로 그가 태어나서 자라고 죽을 때까지 그의 이동경로를 따라 지은이는 쫓아간다. 특히 그가 알제리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이후 북부의 생브리외와 생말로, 서부의 앙제, 동부의 브리앙송과 앙브룅, 중부의 파늘리에, 생테티엔, 리옹, 빌블르뱅, 남부의 그라스, 카브리, 릴쉬르라소르그, 아비뇽, 아를, 뤼베롱 산악지대의 도시 등을 따라 이리 저리 부지런히 발걸움을 옮겼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카뮈가 무엇을 했고, 어떤 생각과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했는지를 꼼꼼히 살피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이야기는 양념에 불과한 듯하다.

 

카뮈는 신문기자로, 소설가로,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동분서주했고, 다양한 작품들을 구상하고 썼으며 많은 사랑을 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은 카뮈의 여성편력이 심했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음에 '나쁜 놈'이라고 손가락질이라도 해야겠지만 죽은 이에게 그것은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만나는 여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작품의 열정이 타올랐다고 하니 참으로 난감하다. 카뮈가 영웅은 아니지만 '영웅은 호색'이라고 하더니만 딱 그꼴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지은이는 유난히도 프랑스의 이곳 저곳을 유랑한 카뮈를 뒤를 쫓기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런 내색은 전혀없다. 지은이가 오직 말하는 것은 카뮈의 작품이고 특히 작가수첩의 글들이 어디서 어떤 이유로 적히게 되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지은이의 카뮈 작품에 대한 해석은 아직 작품을 읽어보지 못한 나와 같은 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마치 몇 번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굳이 원작을 읽지 않아도 이 책 한 권이면 카뮈과 그의 작품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지은이는 아니라고 하지만 카뮈 전문가인 것만은 틀림없다.

 

여행기이면서 여행 에세이가 아닌 묘한 책이지만 이 책 한 권으로 카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그의 작품들이 어떤 것들이 있고 내용은 어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작품들을 통해 카뮈가 말하고자 것을 알 수 있는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일단 카뮈 작품들을 접하기 전에 이 책부터 읽고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그의 작품을 읽은 후에는 더욱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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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클래식 클라우드 16 - 카뮈 : 지중해의 태양 아래에서 만난 영원한 이방인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타*****쥐 | 2020.02.19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제목: 카뮈글쓴이: 최수철펴낸 곳: 아르테《클래식 클라우드》    우리 시대의 대표 작가 100인이 내 인생의 거장을 찾아 떠나는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셰익스피어, 니체, 클림트, 페소아, 푸치니, 헤밍웨이, 모차르트, 뭉크, 아리스토텔레스, 가와바타 야스나리, 마키아벨리,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모네, 에리히 프롬에 이어 1
리뷰제목

 

 

 

 

제목: 카뮈

글쓴이: 최수철

펴낸 곳: 아르테

《클래식 클라우드》

 

 

 

 우리 시대의 대표 작가 100인이 내 인생의 거장을 찾아 떠나는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셰익스피어, 니체, 클림트, 페소아, 푸치니, 헤밍웨이, 모차르트, 뭉크, 아리스토텔레스, 가와바타 야스나리, 마키아벨리,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모네, 에리히 프롬에 이어 16번째 거장 카뮈를 만났다! 지금까지 만난 거장들의 이름을 차례로 읊조리다 카뮈에서 마침표를 찍으니 가슴이 뭉클하다 못해 벅차올라 심장이 두근두근. 『이방인』이란 작품 하나 읽었을 뿐인데, 그 공허하면서도 강렬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카뮈라는 두 글자를 머릿속에 새겼더랬다. 그에 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에 최수철 작가님의 눈과 귀를 빌려 동행한 이 여정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행복한 나들이였다.

 

 

 

 

 

 

 프랑스 이민자 3세대,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카뮈. 카뮈가 출생한 지 8개월 후인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카뮈의 아버지는 프랑스 본토로 투입되어 싸우다 전사한다.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말까지 더듬는 어머니 손에서 카뮈는 가난하고 배고픈 어린 시절을 보낸다. 가난의 질곡 속에서 루이 제르맹 선생님의 도움으로 중고등 교육까지 마친 카뮈는 대학에 진학하지만, 폐결핵과 아내의 외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자연과 우정을 발판으로 삼아 작가의 싹을 틔운다. 알제리의 바다와 태양은 카뮈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는 특유의 의지력으로 삶에 맞서며 자전적 요소들을 쏟아부은 첫 소설 『행복한 죽음』을 완성한다. 탄탄한 연결고리 없이 어지럽게 산재한 그의 인생 조각은 잘 쓴 작품이라 보기 어려웠지만 훗날 이 소설을 바탕으로 『이방인』이라는 대작을 완성하는 카뮈. 두 번째 결혼 후 1달 만에 직장을 잃고 처가가 있는 오랑으로 돌아가 퇴고를 마쳤던 그 소설 『이방인』으로 카뮈는 195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고 1960년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다. 향년 47세. 자동차 사고의 충격으로 밖으로 튀어 나간 그의 가방엔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최초의 인간』 초고가 들어 있었다.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는 것이면

그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다."

- 니체의 이 말은 늘 카뮈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 p140

 

 

 

 일기 쓰기에 공을 들이며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카뮈. 가난과 질병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낸 그는 뛰어난 소설가이며 극작가, 에세이스트, 사상가이자 연극 연출은 물론 배우로서 무대에 서기도 했다. 배우처럼 멋진 외모 덕분에 한 번 더 눈이 갔던 작가였는데 정말 배우 활동을 했었다니! 죽을 때까지 여자가 끊이지 않아 조강지처인 프랑신 포르를 괴롭힌 나쁜 남자였지만, 여자 문제를 제외한 그의 삶은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좋은 정도로 다채롭고 열정이 넘쳐흐른다. 가난이 부끄럽고 이런 상황을 부끄러워하는 자신에게 얼굴을 붉혔던 그. 푸른 지중해를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작품을 구상했을 카뮈. 그가 내뿜는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가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전 세계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리라고 과연 그는 상상이나 했을까? 카뮈로 가는 첫 여행을 마치고 조심스럽게 두 번째 여행을 마음에 품어본다. 『이방인』으로 시작된 그와의 만남을 『작가수첩』, 『페스트』, 『최초의 인간』 등등 그의 다른 작품으로 이어갈 생각에 벌써 봄이 온 듯 싱그러운 기운이 퐁퐁! 부디 이 기분 좋은 느낌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기를! 내 인생의 거장 카뮈. 우리 곧 다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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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카뮈 그리고 최수철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블***즈 | 2020.02.12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카뮈 x 최수철   삶이 권태롭고 무기력하고 아무것에도 의욕이 없을 때가 있다.하는 공부도 한계에 도달한 듯 더 이상 진전이 없고 공부의 목적도 모호해져서 해야만 하는 원동력을 잃을 때도 있다.11쪽. #최수철1994년 파리 근교 소로본 광장에서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노천카페에 앉아 천천히 맥주나 포도주를 마시며 길 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동안 온몸에 미지근한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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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 x 최수철

 

삶이 권태롭고 무기력하고 아무것에도 의욕이 없을 때가 있다.

하는 공부도 한계에 도달한 듯 더 이상 진전이 없고 공부의 목적도 모호해져서 해야만 하는 원동력을 잃을 때도 있다.

11. #최수철

1994년 파리 근교 소로본 광장에서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노천카페에 앉아 천천히 맥주나 포도주를 마시며 길 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동안 온몸에 미지근한 땀이 배는 것을 느끼는 것이 그나마 유일한 위안이었다. 어느 신선한 늦은 저녁에 나는 파리의 중심가 생미셜대로를 따라 조금은 외롭고 우울한 산책길에 나섰다. 바로 전에 이제 그만 프랑스 생활을 접고 귀국하기로 마음을 정한 터였다. 이리저리 걸음을 내딛다가 한 서점 앞을 지날 때, 진열대 안에 놓인 시간 한권이 눈길을 끌었다.

15.#최수철

서울에서 만난 카뮈

카뮈와 나 사이에 두 번째 인연이 맺어진 것은 그로부터 10여년 후의 일이었다. 그 무렵에 나는 소설가로서 글쓰기의 어려움에 맞닥뜨리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글을 쓰려고 하면 우울증과 무력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심지어 글 쓰는 일 자체가 우울증과 무력감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처럼 여겨졌다. 그러자 나와 비슷한 심리적 위기에 처해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절실하게 다가왔다. 말하자면 우리 삶의 현장에서 일종의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패스트 균이 만연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첫 페이지에서 그리고 뒤로 서너 페이지 사이에 작가님의 감정선과 지금의 나의 감정선은 매우 유사한 상태인 것 같다. 연일 전 세계를 뒤흔드는 지금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도 패스트같은 소설도 떠오르게 한다.

 

18.#최수철

그는 소설이 공연히 말만 화려한 경향으로 치우칠 뿐, 감정과 사실의 내밀한 경험, 그리고 인간이 일상적인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는 감동적인 진실을 번역하는 데는 무능력을 드러낸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그는 흔히 말하는 문학적인요소를 고외적으로 기피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점에서 카뮈 소설에 개성이 있음을 안다.

 

24.#최수철

영혼이 뽑혀나가는 것을 의식할 겨를도 없는 급작스러운 죽음과 길고 줄곧 의식이 또렷한 최후카뮈는 어느 쪽을 더 원했을까? 하지만 나는 곧 고개를 저었다. 부질없는 질문이었다. 카뮈의 표현대로, 늘 깨어 있고자 노력했고 또 늘 깨어 있던 자에게 죽음은 무력한 것이었다.어차피 죽을 운명을 타고났음을 알면서 자신에게 부여된 삶을 최대한으로 살고 난후에 맞이하는 모든 죽음은 행복한 죽음이다. 비극적인 죽음은 있을지언정 불행한 죽음은 없는 것이다.

25.#카뮈

나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만 겨우 창조할 수 있다. 나의 타고난 천성은 부동으로 쏠리는 쪽이다. 일상적인 행동과 기계적인 것의 매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게는 여러 해 동안에 걸친 고집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바로 그 노력에 의해 쓰러지지 않고 버틴다는 것을 . 그래서 만약 단 한순간이라도 그 사실을 굳게 믿지 않게 되면 벼랑으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병으로부터, 포기로부터, 벗어나 전력을 다해 머리를 쳐들고 숨을 쉬며 극복한다. 그것이 내 나름대로 절망하는 방식이며 내 나름대로 그 절망을 치유하는 방식이다.

 

#나

왈칵 눈물이 날뻔했다. 그가 감당했을 고통과 절망의 무게가 가름되어졌기 때문이다

 

#최수철

그리하여 오랜 시간과 경험이 응축되어 마침내 작품들이 창조된다. 그러나 그는 늘 실제의 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언젠가 그 균형을 이루어 사랑을 주제로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믿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그럼으로써 불안이나 공포, 섣부른 희망과 위안도 모두 떨쳐버리고서 있는 그대로의 우리 삶의 부조리한 조건들에 명징한 정신으로 대면한다.

 

27쪽#최수철

카뮈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가진 불굴의 의지를 자기 속에서 일깨우고자 늘 노력했지만 또한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우리가 손을 내밀 때 카뮈는 뫼르소처럼 다소 멋쩍어하고 어색해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충분히 조심스럽고 신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카뮈는 오랫동안 우리 손을 잡아줄 것이다.

 

31.#카뮈

여행의 가치를 이루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어느 한순간, 우리나라나 우리말과 그토록 거리가 먼 곳에서 어떤 막연한 두려움이 문득 우리를 사로잡을 때, 옛 습관들의 보금자리로 되돌아가고 싶은 본능적 욕망이 밀려드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여행이 가져다주는 가장 확실한 선물이다.

 

#나

카뮈와 최수철의 지성대결처럼 선의적인 매칭이다

 35.#최수철

우선 나는 도심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모하메트벨루이즈다드거리로 향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유년 시절의 카뮈를 만날 것이다 . 1913117일 카뮈는 알제에서 동쪽으로 195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 몽도비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뤼시앵 오귀스트 카뮈는 프랑스 이주민의 아들로 과묵한 포도주 제조 노동자였고 어머니 카트린 생테스는 이주민의 딸로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벙어리처럼 지내는 여인이었다.카뮈가 출생한지 8개월 후인 1914년에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버지는 주아브라 불리는 알제리 원주민 보병으로 징집되어 프랑스 본토로 투입된다.그는 혈기 넘치는 병사였지만 그해 10월에 처움 참전하 마른강전투에서 머리를 다친다 그는 군 병원에서 아내에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낙관하는 두 통의 엽서를 보낸 후, 1011일 브르타뉴의 생브리외병원에서 스물아홉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39.#카뮈

나는 빈민가에서 살던 어떤 어린아이를 생각한다. 그 동네. 그 집.2층밖에 안 되는 집이었고, 층계에는 불도 없었다. 여러 해가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는 한밤중이라도 그곳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 번도 발을 헛디디지 않고 그 층계를 단숨에 뛰어 올라 갈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 집은 그의 몸속에 찍혀 있는 것이다. 그의 두 다리는 층층대 하나하나의 정확한 높이를 기억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의 손에는 아무리 해도 이겨낼 수 없었던 층계난간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감이 남아있다 그것은 바퀴벌레 때문이었다.<안과 겉

 

 40.#최수철

나는 다시 거리로 나와 걷는다. 수시로 건물들의 발코니를 올려다본다. 그곳에서 카뮈의 어머니 카트린이, 그리고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의자에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

 카뮈의 유년기 성장한 곳을 찾아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영원히 이방인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

 42.#카뮈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선생님이 당시 가난한 어린 학생이었던 제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다면 선생님의 가르침이 ,그리고 손수 보여주신 모범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은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수상의 영예를 지나치게 중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적어도 제게는 선생님의 노력,,그리고 거기에 바치는 너그러운 마음이 ,나이를 먹어도 선생님께 감사하는 학생이기를 결코 그치지 않았던 한 어린 학생의 마음속에 언제나 살아 있음을 말씀 드릴 기회가 됩니다

스웨덴 연설  문학 비평

 

45.

도시의 가난과 자연의 풍요로움으로부터 삶의 모순을 인식하는 동안, 점차 그에게서 역전이 일어난다. 가난은 이해할 수도 용납할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자 자연의 풍요가 더 절실하고도 계시적으로 다가오면서 그이 육체적 활력과 정신의 강인함을 북돋우어준다. 그것은 또한 세상의 부조리함을 명확히 인식할 때 얻을 수 있는 힘이다. 이방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그의 속에서 자리 잡는다.

 

#나

내가 만약 최수철 작가님의 카뮈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이방인을 읽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죽어 갔을 지도 모른다. 알고 있음과 알지 못함은 삶에 있어서 별 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모르는 것이 싸인 체로 생이 마감하는 것과 몰랏던 것을 알고 깨달았을때의 느낌은 밤하늘을 알지만 밤하늘의 별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과 같다.

 

46.#카뮈

나는 가난과 나의 가족이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은 괴물이다!) 그런데 내가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소박하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이제 더 이상 그 수치심을 수치스럽게 느끼지 않고, 그런 것을 느꼈다는 것 때문에 나 자신을 더 이상 멸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앞에 이르렀을 때 나보다 잘사는 어떤 친구의 얼굴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을 읽었던 그 시절에 대해 괴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영웅적이고 예외적인 순수함이 필요했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 나는 마음이 상했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이 될 때까지 그 상한 마음을 기억할 적이면 화가 나고 부끄러웠다 이제는 내가 그렇다는 것을 알고 그런 것이 좋게도 나쁘게도 느껴지지 않으니까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작가 수첩 219쪽에서

 

#나

내가 이 구절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알 수 있었을까 ? 내 깊은 자아속의 내 정체성을 말야

이건 카뮈의 이야기도 되지만 내 이야기도 되는 것이잖아.

우린 모두가 이방인인 거잖아

우리가 우리 속의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모두 이방인인 거잖아

나도 더 이상 내 삶의 부조리 함 때문에 나를 멸시 하지 않기로 했다

부조리하고 덧없는 삶을 있는 그대로 껴안자!

눈물이 난다 .삶속에 있다는 것만으로

카뮈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눈물이 난다.

지중해는 햇빛이다 온통 . 남은 것은 오직 햇빛뿐.

 

51.

처음에 그는 병으로 인해 위축감을 느낀다. 그는 삶에 대한 열정의 한가운데에서 갑작스레 죽음이라는 부조리를 만났고 이제 죽음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테마가 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반발심이 생겨난다. 병으로 굴복하여 죽음을 사는 것이다. 병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하게 된다면 오히려 죽음을 물리치고 자신에게 부여된 삶을 최대한으로 살아야 마땅하다.

 

53.#카뮈

나는 예민한 감각을 지닌 여행자에게는 알제에 가거든 항구의 궁륭 아래로 가서 아니스 술을 마시고 아침에는 어장 식당에 가서 금방 잡아 와 숯불 화덕에 구워주는 생선을 먹어보라고 권하겠다. 그리고 인생이 항상 손쉽기만 한 ,바닷가의 물속에 기둥 박아 세운 일종의 무도장 파도바니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아랍 사람들의 공도욤지를 찾아가보라.우선은 그곳에서 고즈넉한 평화와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서. 다음으로는 우리가 죽은 자들을 안치하는 저 끔찍스러운 죽음의 도시들이 얼마나 한심한 것인가를 바로 헤아려 보기 위하여 그런 뒤에 카스바에 있는 푸줏간 거리로 찾아가 비장이며 간장막, 온 사방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잇는 피투성이 염통들 사이에서 담배를 피워보라 (그 중세 시대 같은 곳의 냄새가 어찌나 독한지 담배는 필수적이다)

-결혼.여름-

 

57.#카뮈#최수철

가난하면서도 찬란한 카스바

카스바 : 자기 자신과 분리되는 어느 한순간이 찾아오는 법. 어둡고 끈적거리는 골목길 한 가운데서 반짝이는 작은 숯 불빛

여기에서 자기 자신과 분리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성인은 이중의 존재가 되는 자 .나는 둘이 된다는 게 만족스럽다.”아마도 이 말은 세상사에 대한 마음속 의혹으로부터 달아나서는 안된다는 것 세상을 감각하고 누리는 자아와 그 세상에 대해 의혹을 품고서두 눈을 크게 뜨고 있으려 하는 자아를 동시에 유지하겠다는 뜻일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카스바에 대해 카뮈가 지니고 있는 어쩔수 없는 낯섦과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애정. 프랑스인이자 북아프리카인으로서 그의 이중적 정체성에 대한 자의식 또한 인식할 수 있다

 

여기에서 영화알제리전투가 다시 머리에 떠오른다.“사람의 얼굴은 둘이다 .하나는 웃고 하나는 운다.” 영화 속 알제리 민족해방전선 조직원들 사이의 암호다. 카뮈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흥미롭다. 그러나 웃든 울든 얼굴은 하나가 아닌가.

얼굴은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카뮈의 말대로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

 

72.

계속하여 그는 이렇게 쓴다.“나는 한 번도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거리를 유지함과 동시에 내가 세계 속에 현존하고 있음을 이토록 절실히 느껴본 적이 없다 .그렇다. 나는 현존한다.”요컨대 모든 것이 오직 현재일 뿐이다. 종신징역을 받은 사람처럼 내일도 다를 것이 없다.자신의 현존을 깨닫는다는 것은 곧 더 이상 아무것도 미래에 대하여 기대할 것이 없음을 뜻한다. 이때 우리는 명징하지만 쓸쓸한 심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자기도 모르게 불안감이 가슴에 싹틀 수도 있다. 하지만 포기와 거부는 다르다.내 눈앞에 있는 풍요를 포기하지 않는 의지가 중요하다. 죽음 다음에는 또 다른 삶이 온다고 믿는 것은 의미가 없다. 죽음이란 닫혀버린 문, 추악한 모험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껏 생명 자체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이 아닌, 단지 생명의 무게 그 자체를 최대한으로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90.

그리고 실제로 이방인은 카뮈를 오랑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아인엘투르크 해변에 서서 나는 카뮈 자신과 뫼르소의 이미지 즉 작가수첩1>에서 말한 대로 바닷가 모래밭에서 두 팔을 십자가로 벌린 채 태양에 못 박힌 남자의 모습을 눈앞에 그린다.19427월 마침내 이방인이 출간된 후 그는 아인엘쿠르크 해변에서 아내와 몇몇 친구들과 함께 야영을 한다 카뮈 부부는 프랑스 여행 신청을 하고서 허가가 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제 그들에게는 이방인의 인세가 있다.

#카뮈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완벽한 일주일을 보냈다고 나의 추억이 내게 그렇게 말한다.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나는 안다.그렇다 그 기나긴 날들이 완벽했듯이 그 이미지는 완벽하다 그 기쁨들은 순전히 육체적인 것이고 정신의 동의를 얻은 것이다 바로 거기에 완전함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조건과의 일치 감사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중

기나긴 모래 언덕들은 야생의 모습 그대로 순수하다!그토록 새카만 아침의 물,그토록 밝은 정오의 물,미지근한 황금빛 저녁 물의 축제, 모래 언덕과 벌거벗은 몸들 가운데 오래 머무는 아침,찍어 누르는 듯한 정오,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모든 것을 되풀이해서 말하고,했던 말을 또 말해야 하리.그것이 바로 젊음이었다. 그것이 바로 젊음이기에 ,서른 살의 나는 그 젊음이 계속되기를 바랄 뿐 더 이상 바랄것이 없다.

#나

이쯤하면 거의 스토커라고 봐야 한다 작가님은 지금 카뮈의 흔적들을 다시 뒤쫓아가고 있다

 

93.#최수철

다음날 아침 ,날이 약간 흐리다 엷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것이 마치 물속에 계란 흰자위를 풀어놓고 마구 휘저은 듯하다.이 표현이 카뮈의 것인지 아니면 나의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이 나뭇잎들과 햇빛의 유희속으로 빠져드는 것밖에 달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102.

나는 이곳에서 카뮈에게 특별한 변화가 일어났으며,1973년 여름은 그의 삶에서 분수령이자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친구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문득 자신이 바로 이런 시간을 바라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그 순간 가용된것이나 다름없는 이 휴식의 와중에서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난다.

카뮈는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쓴다. “내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소설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러자 마치 수액이 나무를 오르듯이 이야기가 그의 내면에서 솟아나기 시작한다.“소설가가 될 생각은 거의 해보지 않던 내게 등장인물들이 너무도 생생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그래서 나는 순간적으로 현실 세계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그 후로 그는 에세이는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한다.“내가 지금 골몰하는 것이 잇다면 그것은 오로지 내 안에서 살고 있는 세상을 구체화하는 것이다.”그는 자신의 소설이 정말로 기이하고 이상한 것,하지만 살아 있는 것, 그러므로 아무것도 겁낼 게 없는 것이 되리라고 예견한다

훗날 그가 완전히 무너질 지경에 이를 때에도 매번 그를 구원한 것은 바로 이 시기에 그가 느낀 순수하면서도 벅찬 감동이었다.

 

128.

그렇다면 뫼르소가 지니고 있는 내적 진실은 무엇인가.그는 앞날에 대해 희망도 절망도 가지지 않는다.인간은 곧 죽는다.이 때문에 카뮈는 작가 수첩 1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될 시간이 없다.우리에게는 오직 행복해질 시간이 있을 뿐이다.”라고 한다.우리가 무엇인가가 되려 하는 것은 죽음에서 비껴나기 위한 헛된 짓일뿐이다.그것은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 행복을 차압당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 그럼으로써 우리는비로소 삶의 매 순간을 최대한으로 살 수 있게 된다.

또한 과묵함은 사물을 남들과 다르게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과묵할 때 사물을 달리 보게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말하자면 통찰하게 된다. 그때 그는 흔히 인간적이라 부르는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벗어버리고 벌거벗게 된다.

 

142.

자신의 성향에 대한 그러한 뼈저린 자각은 그에게 더 명증한 인식을 불러 일으킨다. 작가수첩 2에서 그는 이렇게 말햇다. “부조리에 걸려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더 이상 부조리로부터 발을 빼지 않는 것이다.”요컨대 카뮈 식으로 말하면, 부조리는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명확히 이해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그 또한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부조리다.그렇다면 부조리는 우리 삶의 장애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부다. 따라서 그러한 부조리와 제대로 대면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이때 부조리는 사유의 폭을 넗힐 수 있는 가능성이자 사유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글쓰기를 방해하는 자신의 성향도 정확히 인식하면 오히려 자신도 알지 못했던 더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카뮈가 창조 행위에 임할 때 늘 그를 이끌었던 역설의 힘이다.

 

173.#최수철

하지만 어느 순간에도 인간은 행복하기를 원한다.인간에게는 그럴 권리와 의무가 있다 행복을 향한 욕구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가지게 되며 행복과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곧 고통에 대한 반항을 의미한다 앞에서 언급한 카뮈의 소설 속 분신들은 신뢰와 우정 헌신과 희생을 통해 끝끝내 반항하며 삶의 희망에 대한 자신의 신뢰를 지킨다. 카뮈 자신의 말대로 우리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요컨대 인간은 매 순간 죽음에 면역되지 않고 죽음의 실상을 의식하며 깨어 있어야만 죽음에 대비하는 삶을 가장 열력하고 충실하게 살아갈수 있게 될 것이다.죽음에 면역되면 삶의 매 순간에도 또한 무감각해지게 될 터다. 죽음과 고통의 타나토스.행복과 희망의 에로스,중요한 것은 부정을 긍정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타나토스와에로스의 결혼이라고 부를 수 있다.

 

#나

줸장 이렇게 멋지다니

 

 208.

1956년에 발표된 전락은 우리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 작품은 1인극에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클라망스라는 인물의 모놀로그. 즉 독백을 통한 말의 홍수로 채워져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쏟아져 나오는 그 독백은 혹독한 자아비판을 통한 속죄를 내용으로 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되는 동안, 그는 은근히 자기를 과시하거나 정당화하고 ,좋았던 옛날에 대한 향수에 잠기고 심지어 듣는 사람을 자기편 혹은 공모자로 만들기 위해 교묘하게 설득하려 든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과 세상의 허위의식을 동시에 냉소하고 풍자하고 공격한다. 그렇게 이 소설은 작가가 풀어놓는 복잡한 이야기 미로 속에서 출구를 찾고자 애쓰는 독자들의 위상 또한 수시로 전락시킨다.

 

211.

진실한 언어를 찾아서

 

카뮈는 이 소설을 쓰면서 제목으로 외침혹은 죄인을 묶는 기둥’,‘최후의 심판그리고 특히 우리시대의 영웅을 놓고 오랫동안 고심했다 이 사실로도 우리는 이 소설의 작의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인 거짓된 양심과 잃어버린 순수성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리 시대를 돌아본다.그러면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자세로 연민과 공감의 몸짓을 보이는 동시에, 풍자와 비판의 포문을 연 것이다.소설 속에서 카뮈의 분신인 클라망스는 세상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채 삶의 진실을 찾아나선다. 스스로 죄인이 되어 자기 자신을 짐승처럼 학대하는가 하면 스스로 유일한 재판관이 되어 신처럼 행세하기도 하면서,인간 마음의 천국과 지옥과 연옥을 헤매고 다닌다.

 

 #나

나는 나의 속에 무엇을 채우는가? 걱정. 불안,불만,염려 ,부정,가난

긍정,희망,웃음,평온,안정,사랑,행복,만족,온정,배려

 

나는 내 목련에게 물어 보았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내 속을 채워야 하는지를

 

목련은 11년째 나의 친구이자 내 침묵의 동반자 이다.

 

카뮈와 최수철과 함께 떠난 카뮈의 발자취 여행

이렇게 호강스러운 간접 여행이 어디 또 있을까 

 

나는 험한 여행을 끝내고 배낭 가득 선물을 싣고 귀향하는 기분으로 이 여행을 기억하고 싶다.

카뮈여 이제 당신이 풀어놓은 수많은 별같은 문장들에 반짝이는 눈동자의 개수만큼 편안히 잠드소서~~

 

213.

따라서 클라망스의 다변은 결코 언어적 방탕함이 아니라 진실한 언어를 찾기 위한 전방위적인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 클라망스는 진실의 이름으로 가면을 벗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많은 가면을 쓰게 된다. 그 결과 야누스의 심리학을 대변하는 클라망스의 목소리에서는 우리 인간들 모두의 다성적인 목소리가 코러스처럼 울려 나온다

 

225쪽#최수철

그러나 브르타뉴에서는 깍아지른 절벽을 향해 세판 파도가 밀려든다. 태양과 바다과 서로 적대적으로 느껴질 만큼 고고하게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제야 문득 나는 지중해에 태풍이 없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친다. 여름철에는 아열대 고압대권에 위치하고, 겨울철에는 편서풍의 영향으로 대기가 온난하여 태풍이 일어날 조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중해는 바다가 땅에 갇혀 있지만 여기에서는 바다가 땅을 에워싸고서 거침없이 몸을 틀며 포효한다.한때 나는 이렇듯 거친 바다에 강하게 끌리던 시기가 있었다. 한번은 포항 근처에서 태풍권에 들어선 바다와 만났다. 그야말로 ........,.......,....... 따린다.부순다.무너바린다로 시작되는 최남선의 시해에게서 소년에게 에서처럼 엄청남 규모와 기세로 뭍을 향해 몰아치는 파도를 바라보며 나는 완전히 압도당해 넋이 나가고 말았다. 그 후로 여름이 되면 태풍이 남부 지방에 상륙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 마다 파도를 바라보며 나는 완전히 압도당해 넑시 나가고 말았다.그 후로 여름이 되면 태풍이 남부 지방에 상륙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 마다 차를 몰고 남쪽 바다로 내려 가곤 햇다.

 

그랬다. 내내 나도 그랫다 .이방인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카뮈와최수철>을 읽고 있음에도 나는 내 머릿속으로만 상상이 되는 지중해에 목이 말라 미칠것만 같았다 . 당장에 비행기 티켓팅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뱅기표를 알아보다가 주말이 되기만을 기다리다 나도 남편과 당장 포항 바다로 달려갔다.

시댁이 포항 칠포 해수욕장 근처라 시댁에 갈때마다 드르곤 했던 바닷가가 그렇게 미치도록 보고 싶은 것도 카뮈 후유증일지 모르지만 오도리의 바닷가에 흠뻑 취해 바다와 태양을 느끼고 또 느꼈다. 감히 지중해랑 비교하지 말아줄래요를 외치며 포항 바닷가를 아끼고 아꼈다.

    

226.#최수철

그러고는 가능한 한 바다 가까이에 차를 세우고서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파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면 마음속의 까닭모를 울화가 가라앉고 머릿속도 하얗게 말라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제 내게서 그런 젊은 충동은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새삼스레 깨달은 것은,바다란 실로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게는 아프리카의 바다와 프로방스의 바다와 브르타뉴의 바다가 각기 성격이 전혀 다른 연인들, 혹은 여러개의 얼굴을 동시에 지닌 신적인 존재처럼 여겨진다.

  #나

줸장 또 이렇게 간지나게 표현하다니 

232.

그는 시상식 일정을 마친 후에 대학 시절 은사인 그르니에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쓴다. “방금 투우는 끝났습니다. 황소는 죽었거나 아니면 그에 버금가는 상태입니다.” 이말은 가벼운 농담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난 순간부터 특히 심각한 불안 증세를 겪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감당하기 어려운 찬사와 축하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수상이 부적절하다는 내용의 공격적인 발언 때문이었다. “1017.노벨상.짓눌림과 우수가 함께 섞인 이상한 감정.스무 살에 가난하고 헐벗은 처지엿을 적에 나는 진정한 영예를 체험했다.나의 어머니.”

 

235.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에 행복이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한 인간에게 있엇서 자신의 주위에 있는 얼굴들에 그런 빛이 피어 나도록 만드는 것 이외에 다른 사명이란 잇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우리는 오직 살아간다는 일 한가지만으로도 우리가 마주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불행과 어둠을 던져주는 일로 서로를 쥐어뜯고만 있다.”

 

243.“내게 있어서 삶은 비밀스러운 것이다.

삶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비밀스러운 것이다(이 점이 x에게는 그렇게도 괴로운 것이다) 그렇지만 삶은 나 자신의 눈에도 비밀스러운 게 분명하다.”

 

너의 부조리함은 사랑이었니 

 

나는 눈물이 나는데 작가님은 침착하군요 .간결하게 심플하게 정제하고 애쓰는 거 맞지요 

 

263.공동묘지를 떠나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여러분,울지 마세요.

대지를 좋아하던 사람이었으니 대지도 다정하게 맞아줄 거에요 .”카뮈의 희곡계엄령에서 페스트에 맞서 비장하게 죽음을 맞은 디에고를 애도하며 여주인공이 하는 말이다.

 

266.#카뮈#최수철

카뮈는 작가수첩3>에 이렇게 썼다. “내가 좋아하는 열 개의 단어를 묻는 질문에 대답한다. 세계,고통,대지,어머니,사람들,사막,명예,바람,여름,바다.”이글을 쓰기 위해 머릿속에 카뮈의 삶과 문학을 담고서 여행하는 동안,나는 이 열 개의 단어 하나하나를 화두로 삼아 카뮈가 살아생정에 머물렀던 지상의 장소들과 교감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여정이 끝난 지금 나는 다분히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나의 작가수첩에 이렇게 적어본다.

그는 본의 아니게 세상에 태어나 세계로부터 사랑과 고통을 배우고 대지의 시련을 거치고 늘 어머니와 마음으로 함께하며 온갖 사람들과 어울려 불의 사막을 가로질러 마침내 어리고 순수한 불꽃의 명예를 지켜냈으니,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서 오히려 희망과 기쁨을 찾다가 여름의 한복판에서 스스로 바다로 돌아갔다.”

 

#나

이렇게 먹먹할 수 가 없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나도 최수철작가님처럼 이방인의 구절을 옮겨 놓는 것만이 아름다운 결말임을 알기에 욕심이 난다. 저도 합류할게요 이방인과 작가님의 글을 오랫동안 간직하는 독자로

이 책을 읽기전의 절망과 읽고 난후의 절망은 완전히 다른 것이지

    

절망

카뮈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비극적인 것과 절망을 혼동한다고 햇다 그는 삶이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하다는 비극적 인식은 명징하게 가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삶에 절망한 것은 아니었다. 혹은 그와는 반대로 초월적인 어떤 것으로 눈을 돌려 희망을 걸지도 않았다.우리의 삶 자체는 비극적이지만,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주어진 삶을 남김없이 사랑하고 대지에 충실함으로써 절망을 건너는 법을 제시한다.더구나 그에게 이 세계는 감각적 아름다움과 신비로 가득한 곳이다.따라서 절망이란 있을 수 없다.절망적인 상황에 굴복하는 것이야말로 절망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삶이 비극적이라는 사실과 존재의 유한성을 끌어안는 것일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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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카뮈》 현실과 환상 사이를 여행하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지* | 2020.02.12 | 추천5 | 댓글0 리뷰제목
 우리는 다시 순교자광장으로 나온다. 이 광장과 그랑리세는 카뮈의 마지막 소설 <최초의 인간>의 무대가 되어, 활기차고 짓궂으면서도 예민하고 자존심 강하고 지적 호기심이 넘쳐나는 청소년 시절 카뮈가 안팎으로 겪는 드라마를 생생하게 되살려준다. 저 광장 한 쪽에 앉아서 <최초의 인간>을 다시 읽는다면 그야말로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 머릿속이 어찔어찔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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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순교자광장으로 나온다. 이 광장과 그랑리세는 카뮈의 마지막 소설 <최초의 인간>의 무대가 되어, 활기차고 짓궂으면서도 예민하고 자존심 강하고 지적 호기심이 넘쳐나는 청소년 시절 카뮈가 안팎으로 겪는 드라마를 생생하게 되살려준다. 저 광장 한 쪽에 앉아서 <최초의 인간>을 다시 읽는다면 그야말로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 머릿속이 어찔어찔해질 것이다.    p.47

 

클래식 클라우드 그 열 여섯 번째 작품은 <이방인>과 <페스트>로 만나왔던 카뮈이다. 이번 여행의 가이드는 '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독의 꽃'이라 했던 최수철 작가이다. 그는 프랑스 문학 전공자로 <이방인>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고, 작품 속 인물인 뫼르소와 강한 교감을 통해 텍스트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쓰기도 했다. <페스트>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장편소설과 단편소설도 있을 정도라로 카뮈와의 인연이 남다르다고 한다. 그는 이번에 마지막 소설로서 사후 3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최초의 인간>을 이 책의 처음과 마지막을 연결하는 고리로 삼고서 그의 주요 작품과 공간을 따라간다. 그러고는 짧지만 강렬했던 카뮈의 여정을 한마디로 ‘부조리에서 반항을 거쳐 사랑으로 가는 도정’이라고 요약한다.

 

'카뮈의 영원한 고향 알제리에서부터 예술과 정치 활동의 정점을 찍은 파리를 거쳐 마지막 거치인 루르마랭까지, 부조리에서 반항을 거쳐 사랑에 이르는 문학 여정! 책을 읽기도 전부터 매우 기대가 되었다. 위대한 거장의 흔적을 따라 실제 그 곳의 공기를 마시며, 직접 보고, 느끼는 여행은 가이드가 누구냐에 따라 그 분위기가 달라진다. 소설가의 경우, 그의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소설가가 가이드를 할 경우에 그 여정은 더욱 특별해지기 마련이다. 거리 곳곳에서, 거장의 흔적을 따라가며 그의 작품들이 고스란히 펼쳐지니 말이다.

 

 

<작가수첩 2>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부조리에 걸려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더 이상 부조리로부터 발을 빼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카뮈 식으로 말하면, 부조리는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명확히 이해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또한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부조리다. 그렇다면 부조리는 우리 삶의 장애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부다. 따라서 그러한 부조리와 제대로 대면할 때,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된다.     p.142

 

20세기 최고의 문제작으로 꼽히는 카뮈의 <이방인>은 관습과 규범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세계의 바깥에서 들어온 것 같은 뫼르소라는 독특한 인물을 통해 부조리를 대면한 인간의 벌거벗은 모습을 그렸다. '부조리'란 이치에 맞지 않거나 도리에 어긋남을 뜻하는 단어로, 카뮈의 문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우리는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자 열망하지만, 사실 세상은 측량할 수 없는 비합리적 특징으로 가득하다. 부조리의 감정은 바로 그러한 간극에서 비롯된다. 카뮈는 부조리로부터 도피하거나 초월해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부조리와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부조리를 피하거나 망각하지 않고 그것을 직시하고 버텨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살게 하는 인간적인 조건이라는 말이다. 카뮈는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에 태어나 돌도 되기 전에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로서 활동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으며, 알제리 전쟁 속에서는 좌든 우든 인간을 전체화하는 모든 폭력에 반대함으로써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니 그의 삶과 문학은, 인간사의 최대 비극이자 가장 부조리한 모습 중 하나인 전쟁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가운데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최수철 작가는 알제리에 도착해서 자신이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의 여행자'였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는 '현재적 공간을 벗어나 시간을 넘나들며 카뮈의 글이 머릿속에서 펼쳐 보이는 환영을 쫓아' 이곳 저곳을 다니며 현실과 환상 사이를 여행했다. 아, 이 얼마나 매력적인 여정이란 말인가. '현재의 낯선 무대 위에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여행이라니 말이다. 그는 새롭게 만들어진 무대 위에서 배우이자 화자가 되어 카뮈의 삶을, 문학을, 세상을 바라본다. 그야말로 카뮈라는 거장을 이해하는 완벽한 여행자가 아닐 수 없다. '하늘을 향해 활짝 펼쳐진 광장, 하얀 비둘기 떼가 차지한 개선문, 해골로 남은 도시, 수천 년의 빛을 머금었을 돌들' 폐허로 버려진 고대의 도시에서 그는 80여 년 전에 카뮈가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을 바라본다. 카뮈와 함께 걷고 함께 보고 함께 경험하는 특별한 여정에 참여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카뮈가 좋아하는 열 개의 단어는 '세계, 고통, 대지, 어머니, 사람들, 사막, 명예, 바람, 여름, 바다'라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카뮈의 삶과 문학을 담고서 여행하는 동안, 이 열 개의 단어 하나하나를 키워드로 여정을 함께 한다면 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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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539. 398. 카뮈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휘* | 2020.02.11 | 추천3 | 댓글2 리뷰제목
   다 읽은 지는 좀 됐는데,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 그 느낌과 감정이 사라질까봐 빨리 쓰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말 그대로 써지지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더 머릿속이 뭉글 뭉글, 혼잡해져서 정리가 힘들었다. 단어들이 한 뭉탱이로 나에게 몰려들었다. 지금도 딱 정리가 되서 글을 쓴다기 보다는, 더 늦어질 수 없을 것 같아 일단 글을 시작한다.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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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은 지는 좀 됐는데, 글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 그 느낌과 감정이 사라질까봐 빨리 쓰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말 그대로 써지지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더 머릿속이 뭉글 뭉글, 혼잡해져서 정리가 힘들었다. 단어들이 한 뭉탱이로 나에게 몰려들었다. 지금도 딱 정리가 되서 글을 쓴다기 보다는, 더 늦어질 수 없을 것 같아 일단 글을 시작한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같은 포맷이지만 작가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새로운 느낌이다. 게다가 한 명 한 명의 주인공이 다 인상적이고 궁금하고, 알고 싶어 책을 읽을 때면 언제나 연필을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 책 또한 인물을 따라 여행하는 큰 포맷은 같지만 세부적으로 글의 형식은 다른 책들과 달랐다. 시간 순으로 쓰여져 있는 것 같다가도, 카뮈의 큰 작품들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카뮈의 전체 책을 다 꿰뚫고 계시는 건지 인용을 하더라도 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책의 구절로 풀어나간다. 흡사 카뮈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소설을 쓰시는 분이라 그런지 독특한 구성이었다. 카뮈가 낯설어인지, 그런 방식의 글이 힘들어서인지 사실 따라가기가 버겁긴 했다.

 

  부끄럽지만 카뮈의 사진과 제임스 딘의 사진을 보면서 조금 헷갈려했다. 서양인의 얼굴에다가 반항의 이미지가 비슷해서 그런지 둘 사이의 차이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아직 작품을 만나 본 적이 없어서 더 낯선 이미지의 둘이 공통으로 가지는 것이 반항과 저항, 그리고 부조리 느낌이었다. 그의 책을 봐야 더 정확히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       우리 각자도 반항과 저항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야 하는 최초의 인간임을 상기시킨다. / 그러나 최초의 인간이 된 자는 또한 마지막 인간이 됨으로써 자신의 삶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26)

-       영혼은 일생에 걸쳐서 이승에서 창조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산다는 것은 그 길고도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출산의 과정에 불과하다. 우리 자신과 고통에 의해 창조된 영혼이 드디어 준비되면 바야흐로 찾아오는 것이 죽음이다. (270)

적어도 이 책을 통해서 그런 모습이 있어야, 아니 삶은 그런 모습이어야 완성이라는 의미를 파악했다.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항하고 저항해야 하며, 그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 완성은 죽음으로 이루어지리라.

 

카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알제리에서 가난에 허덕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어린 시절로 가난과 죽음은 카뮈의 인생에 떼놓을 수 없는 영향력을 미친다.

-       그에게 버릴 것은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모든 감각이 예민하게 포착되는 지점이었던 유년 시절이야말로 그의 에너지와 자부심의 근원이었다. 그는 작가가 된 후에도 긍정적이고 총체적으로 자신을 되살림으로써 하나의 단단한 자아를 구성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39)

다행히 그는 그의 어린 시절을 자신의 인생에 꾹꾹 잘 소화시킨다. 그런 삶에 좌절하여 무너지거나 가까스로 살아남기 위해서만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잘 눌러 담아 자신으로 만들어 낸다. 우리가 카뮈를 인정해야 하는 건 그런 모습이 아닐까? 그가 어떤 문학상을 받았고, 어떤 연극을 했고,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보다, 그런 어린 시절과 힘든 시절을 겪어 내면서도, 그에게는 (어쩌면) 재능이 있었고, 그 재능으로 발현할 수 있도록 스스로 만들어 냈다. 그래서 그가 끊임없이 저항하고 반항해야 한다고 했을지도.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그런 상황들에서 벗어나거나 발버둥 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카뮈가 곳곳에서 자신의 글쓰기나 연극에 대한 의지를 불 태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곳들로 우리를 초대하며 카뮈의 생각을 뒤따르게 했다.

-       연극과 글쓰기는 카뮈가 평생 동안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며 죽음에 반항하는 의미를 가진 두 가지 행위였다. 연극과 글쓰기를 통해 그는 자신을 다시 창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52)

-       창작을 위한 노력 말고는 그 어떤 것에서도 자기 삶의 정당성을 발견할 수 없으며, 이 노력마저 인정받지 못한다면 자신의 인생은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그는 부정적인 태도를 떨쳐버리고, 새로 시작하기 위하여 정신을 가다듬는다. 자신을 점검하고 반성하고 뒤집는다. 자기 속을 들여다보며 밑바닥까지 내려간다. 그리하여 일찍이 병과 절망을 스스로 치유하고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문학의 힘으로 되살아나고자 한다. (176-177)

그가 선택한 일생의 반항은 글쓰기와 연극이었다. 그는 그런 작품활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고, 자신이 살아 있어야 하며, 자신의 병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알았다. 덕분에 자신을 잘 알 수 있게 되고, 점점 더 고민하게 된다. 그런 치열한 고민은 그의 작품에 온전히 드러난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언제나 그가 주인공처럼 드러난다. 작가도 그걸 알았기에 많은 인용을 통해 우리에게 카뮈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의 고비 고비에서 자신의 소명을 찾을 수 있었던 카뮈가 부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카뮈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경멸의 대상으로 보진 않았다.

-       죽음과 정면으로 대면하면서 존재의 유한함을 껴안을 때, 역설적으로 젊음을 다시 회복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71)

-       죽음은 오히려 우리 삶을 그 자체로 충만하고 견고하게 해준다. 우리는 영원한 존속을 포기함으로써 비로소 그 순간에 영원을 경험할 수 있고, 당장이라도 스러져버릴 삶에서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106)

-       죽음으로부터 살아생전에 거듭나는 것,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다. 예술의 힘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다. 그리하여 죽음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죽음의 형식조차 창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예술은 창조이자 반항이다. 이것이 카뮈가 도달한 결론이다. (106)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어쩌면 카뮈가 죽음을 제대로 소화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가까이했고, 여러 전쟁을 보았고, 가난에 허덕이면서 혹은 병으로 죽음을 마주하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생의 일부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더더욱 창조적인 예술의 힘에 기대었다. 그가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들을 제대로 소화했고, 자신이 살기 위해 제대로 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작품 활동이 있어야 했다.

  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하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대부분이 죽음을 초월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아직 죽음에 대해 크게 생각해볼 순간은 없어서 낯설지만, 죽음을 뼈저리게 고민할 시기가 되고, 나만의 답을 찾아내면 카뮈와 같이 다른 시각을 갖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을테지만.

 

  알제리라는 눈부신 자연에서 살았던 카뮈는 자연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의존하고 기댔다. 흡사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드는 식물처럼 카뮈도 자연에서 자신의 생의 에너지를 가득 가득 채웠다.

-       그에게 자연은 일상의 나태와 마비로부터 벗어나 균형 잡힌 창조적 정신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225)

태양도 바다도 그에게는 생의 일부였다. 그 속에서만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꼈던 카뮈는 그렇게 자연과 뗄레야 뗄 수 없었고, 언제나 그런 자연을 찾아 헤매었다. 그렇게 자연을 자신의 작품에 녹아 냈기에 우리도 그의 작품에서 그런 생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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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를 깊게 만나는 아주 특별한 여행, 강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빅**아 | 2020.02.10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또 다른 성공작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묘미는 작가와 그가 소개하는 거장의 케미가 잘 맞을 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시적 감성과 허연 시인의 분위기가 잘 어울렸고, 클림트의 반짝였던 인생을 전원경 작가가 정말 잘 소개했다. 본인도 작가이자, 카뮈의 작품을 번역한 바 있는 최수철 작가와 알베르 카뮈의 케미도 기대 이상이다.&nbs
리뷰제목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또 다른 성공작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묘미는 작가와 그가 소개하는 거장의 케미가 잘 맞을 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시적 감성과 허연 시인의 분위기가 잘 어울렸고, 클림트의 반짝였던 인생을 전원경 작가가 정말 잘 소개했다. 본인도 작가이자, 카뮈의 작품을 번역한 바 있는 최수철 작가와 알베르 카뮈의 케미도 기대 이상이다.

 

책은 카뮈의 주요 공간인 알제리와 프랑스 곳곳을 넘나든다. 카뮈가 남긴 ‘작가 수첩’의 글이 다수 인용되어, 미처 알지 못했던 카뮈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한다. 작가 최수철은 카뮈의 생이 묻어 있는 곳곳을 여행하며 그 스스로 카뮈가 되어 카뮈와 함께 호흡하고자 애쓴다. 책 곳곳에 『이방인』의 뫼르소가 느꼈던 뜨거운 햇살을 느낀다. 이렇게 작가의 애정이 묻어난 글에 나 역시 카뮈를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카뮈에 대한 책을 찾고 있다면 단연 일독을 권한다. 그의 문학 작품들이 더욱 풍성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스스로 '이방인'이었던, 하지만 생과 대지, 태양을 사랑한 카뮈

 

카뮈는 지중해 바다 남쪽 알제리에서 가난한 이민자의 집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전쟁에서 잃고 귀머거리 홀어머니에게서 자랐다. 알제리와 프랑스를 오갔던 카뮈는 그래서 그 자신도 이방인으로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카뮈는 현실에 절망하는 대신 삶을 사랑하기로 택했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 삶과 대지를 아낌없이 사랑하기로 한다.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며 끈기 있게 삶을 쫓던 그는 안타까운 자동차 사고로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그의 자서전과도 같았던 <최초의 인간>에서 주인공 스토리는 14살까지만 쓰인 채 미완성으로 남는다.

 

P 76 이제 그는 스스로 다짐한다. 죽는 날까지 대지에 대한 변함없는 충실성을 지키겠노라고, 신에 대한 믿음을 통해 영생을 꿈꾸지 않겠노라고, 인간과 대지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어떤 것에 희망을 가지지도, 그렇다고 죽음 앞에 굴복하여 절망하지도 않겠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며 예술로 길을 찾으려 노력했던, 뜨거운 태양과 푸르른 지중해 바다와 자연, 대지를 사랑했던, 신에게 기대지 않고 신과 인간 사이에서 성자로 머무르고자 했던 이방인, 알베르 카뮈. 나부터 살고 보자 식의 이기주의가 만연해 씁쓸한 요즘, 카뮈의 생의 생이 주는 울림이 있다. 카뮈와 함께 품격 있는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P 19 그는 ‘문학적인’ 요소를 고의적으로 기피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 공연히 말만 화려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감정과 사실의 내밀한 경험, 그리고 인간이 일상적인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는 감동적인 진실을 번역하는 데 몰두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P 46 “가난이 나에게 불행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빛이 그 부를 그 위에 뿌려주는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 위로 내리쬐던 그 아름다운 햇볕 덕분에 나는 원한이라는 감정을 품지 않게 되었다.” 『안과 겉』

 

P 127 내가 자신의 허영에 양보할 때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생각하고 살게 될 때마다, 그것

 

은 배반이 된다. 그때마다 남의 눈을 의식하여 행동하는 것은 엄청난 불행이며, 그로 인하여 나의 존재는 진실 앞에서 점점 작아지는 것이다. .. 그리하여 지금 나는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홀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을 알지 못한다. 『작가 수첩 1』

 

P 169 인간을 구속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도 용납하지 않는 것, 나아가 단지 인간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인간성을 넘어서고자 노력하는 것, 그러나 신에게 기대지 않는 것, 신에게 기대는 것보다 더 큰 야심을 가지는 것, 인간과 신 사이에 용기 있게 머물러 있는 것, 요컨대 인간성을 넘어서되 언제까지고 인간으로 남아 있는 것, 그것이 신이 없이 성자가 되는 것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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