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난 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책은 오랜만이었다. 헤르만 헤세의 또다른 자전적 소설이라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은 경험이 있어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데미안>은 더 심오하고 더 많은 생각을 요구한 책이었다. 한편으로는 <수레바퀴 아래서>보다 <데미안>은 더 공감적인 소설이었다.
데미안
(횡설수설...솔직한 책 이야기)
어렸을 때 알던 데미안은 늘 아주 멀리 있는 낯선 존재였다. 그 기억은 오늘 이즈음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이렇게 데미안이라는 책을 완독하기 전까지 한결같이 낯설었다. 아주 오래되고 낡은 책은 누우런 빛의 종이 가득 눅눅한 습기를 머금고 지금까지 기다려줬던가.
실은 내가 너무 나이가 들어 어린 시절에 보던 조그마한 글씨들을 읽어내기가 조금은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기억 속에 데미안은 잊혀졌다가 다시 큰 활자가 박힌 새 책으로 다가왔다.
고백하건데 단 한번도 완독을 해보지 못했다. 이 책 데미안을 말이다. 그저 혼자의 생각으로는 싱클레어를 정신적으로 도와주는 어떤 우주적이며 신적이고 완전한 존재인 데미안의 이야기 정도가 아닐까. 그 정도로 생각하며 살아왔던가보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뭐랄까 생각이 뒤죽박죽 사방으로 어지럽게 뻗어나가고 있다.
부족함 없는 집에서 태어나 부유함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상위 계층만이 선택할 수 있는 라틴어 학교에 다니던 주인공 싱클레어는 두 개의 세계에서 갈등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두 개의 세계를 두고 작가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로 나누고 있다. 흰 것과 어두운 것. 이를테면 정의로운 것과 정의롭지 않은 것. 또는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과 같은 구분일 수도 있다. 소년은 양극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세계에서 갈등한다. 낯에는 정의롭고 종교적인 동시에 희곤 밝은 세계에서 착한 아들, 착한 남동생의 모습으로 살면서도, 밤이 되면 음습하고 어두우며 비열함과 치졸함이 공존하는 그런 위험한 세계를 동경한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그 까만 어둠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설정한 주인공 싱클레어가 느끼는 두 가지 상반된 세계는 이어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과 사건에 그대로 다시 재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싱클레어를 힘들게 괴롭히는 인물로 등장하는 크로머와 데미안의 등장이 그렇다. 프란츠 크로머가 주인공에게 악의적인 인물이라면 데미안은 반대로 그 악에서 싱클레어를 건져내주는 구세주와 같은 선의 역할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책 데미안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서로 이어주고 있는 이야기로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둘 수 있는데, 이 부분도 사실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시선이 작용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작가는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대화와 후반부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 피스토리우스를 통해 ‘카인과 아벨’의 일반적인 것과는 조금은 다른 해석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기존의 상식, 평범한 종교와 일반적인 정의에 수정의 칼날을 들이대는 이야기일 수 있다.
우리는 소설 데미안을 이야기 할 때마다 그 유명한 ‘새’ 이야기에 집착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문구가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또 하나의 세계다.’ 라 했던 그 이야기는, 데미안을 다 완독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한번쯤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을 법한 문구가 아니었던가.
세상에는 많은 세계가 존재한다. 물론 그 세계를 정의내리는 건 신이 아닌 인간이다. 책 속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린 신을 창조하고 그 신과 싸우지 않으면 안 돼. 그렇게 해야 우리는 신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어”p230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신 아브락사스는 인간의 내면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것을 상징화한다고 생각했다. 선과 악 사이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부단히 자신을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을 통해 성숙해가고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의 성숙한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해간다고 느꼈던 것 같다.
신을 창조하되 굴복하지 않고 당당해질 것.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성찰과 성숙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홀로 성장한다는 것. 자신을 찾아간다는 것. 결국은 신이 멀리서 우리에게 허락한 길이 아닌가. 인간은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는 틀을 깨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간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존재인가보다.
학창시절부터 내 책장에 늘 자리잡고 있었던 데미안
하지만 분명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큰 자극도 없었을 뿐더러 기억에도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 실망도 하고 좌절도 했지만
이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데미안을 접했을 과거의 나는 너무 어렸었다는 것을.
데미안은 대표적인 성장소설이다.
인간이 성장하면서 내면적으로 겪는 갈등을 경험하고
그 또한 인간인 나로 성장하는 과정임을 느끼며
어느덧 또 성장을 하고 있음을 그려내는 소설이다.
어쩌면 데미안을 처음 접했을 나는
아직 어려 데미안이라는 소설을 읽고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마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TV프로그램 <책 읽어드립니다>에 소개가 되고
BTS와 아이유 등 많은 아티스트들이 데미안을 언급을 해
다시 관심을 갖고 읽게 되었다.
과거에 데미안을 읽었던 나는 기억 속에서 버리고
새로운 책을 읽는다는 마음으로
개정판을 통해 데미안을 다시 만났다.
책을 읽고 난 후.
역시 나는 과거의 나와는 다름을 느꼈다.
나 역시 많이 성장해 있고,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내가 경험했던 힘든 시간들, 고민들, 갈등들
내 성장을 위해 있었던 시간들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과거 힘든 경험들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숨겨왔던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먼저 이야기를 해준 싱클레어가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상한게 아니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들이구나
생각하게 해주며 싱클레어가 먼저
이야기를 해준 덕에 고마운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 데미안은 한번 읽는 것이 아니라
성장 과정 중에 읽을 때마다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인터뷰 했는데
이번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의 내용은 대부분 알고 있으나 제대로 완독한 적은 없다. 과거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부분적으로 접하고, 얼마 전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접하며 다시금 완독 도전의 마음이 생겼다. 들어서 아는 것과 내가 직접 읽고 느끼는 것이 다르기에 도전하고 싶었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싯다르타』는 읽고 소장하는 중이었고, 『유리알 유희』는 아직 읽지 않고 소장만 하고 있는 중이었으나 가장 알려진 『데미안』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게 미련처럼 남아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자 나이대마다 다르게 읽히던 『어린 왕자』를 떠올리며 제대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익숙한 내용이 들어온다. 왜 익숙할까? 전에 읽었던가? 교과서에서 접했던 책에 압축되었던 내용들이었다. '두 개의 세계', '카인',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버둥거린다'가 특히나 익숙했다. 왜 제대로 읽지 않았음에도 책 내용이 기억에 남고 익숙한지 그제야 떠올리게 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더 깊숙하게 끌리는 느낌이다.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는 내게도 정형화되어 있는 신앙의 세계에 틈을 주는 내용들이 보인다. 주인공과 비슷한 듯 다르게 와닿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아마 신앙을 갖지 않았던 시절에 읽었으면 다르게 와닿았을지도 모르겠다.
고전이 왜 고전인지 읽는 동안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새해를 시작하며 읽기에도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어제 독서 서비스 SNS에서 '고전을 시작하고 싶을 때 읽으면 좋은 책'에 '과연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내 안의 알을 깨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란 설명으로 마지막에 소개됐는데 그 내용에 확실히 공감을 하게 됐다.
다이제스트가 왜 좋으면서도 나쁜지를 생각하게 된다. 다이제스트 때문에 익숙했기에 책 읽기를 미뤄왔던 것 같다. 안다고 생각하며 그냥 전처럼 넘겼더라면 더 생각하지 못했을 내용들이 있었다. 먼저 원작을 읽은 후 다이제스트를 읽어야 효율적이겠다.
왜 대표적인 성장소설인지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고 『어린 왕자』 옆자리에 함께 놔둬야 할 책이다. BTS의 노래를 제대로 아는 게 없었는데 이 책의 영향을 받았다는 'Wings' 앨범을 봤다. 노랫말을 보니 어떤 노래가 책의 어떤 내용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참에 BTS의 'Wings' 앨범 수록곡도 다 들어봐야겠다. 또, 시간이 날 때 집에 있는 헤르만 헤세의 다른 소설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작은 계획을 올해를 시작하며 마음속에 담아 본다. 생각으로만 머물지 말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와 관련된 책 속 문장을 인용하며 마음을 다잡으며 새해 첫 리뷰를 줄인다.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생각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 못해.(p.125)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나', 이름은 싱클레어, 약간은 엄격한 아버지 지혜로운 어머니, 나를 잘 챙겨주는 두 누나 이렇게 한가족으로 평화로운 환경에서 자라게 된다. 이 평화로움이 행복하면서 한편으로 나는 이탈을 하고 싶어지는 충동을 가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크로머라는 일반학교에 다니는 소년에게 잘보이고, 뭔가 우쭐해지고 싶어서 자신이 사과를 다른 친구들과 함께 훔쳤다는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걸 맹세할 수 있냐는 말에 그럴 수 있다고 얙했다가 크로머에게 그 사과 과수원 주인과 부모님에게 너의 행위를 이르겠다면서 협박을 받게되고, 그에게 하지도 않은 도둑질로 인하여 돈도 빼았기고 괴롭힘도 당하면서 끌려 다니게 된다.
청소년기의 우쭐하기위한 행동과 한번 괴롭힘 당하기 시작하면서 그 수렁에 빠져서 나올 수 없게 되넜다는 두려움을 정말 잘 표현해 준것같다.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중 새롭게 전학을 온 막스 데미안 그는 상급생이지만 눈에 띄고 왠지 그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는 어느날 싱클레어에게 말을 걸더니 그가 크로머로 인하여 곤경에 처해진 상황을 알게되고 가볍게 크로머를 처리해준다.
그 이후 싱클레어의 세계는 평화를 찾는다. 후반기 보다는 이 앞부분에 정말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 책을 청소년기에 읽어야 하는 이유는, 또래가 이유없이 괴롭히는데 자신만 참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가지지 말고, 자신이 조금 더 파괴? 자신의 삶을 갈가먹기 전에 어름들에게 그 일을 알려서 뭔가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알아서 이다.
크로머가 괴롭히고 돈을 계속 요구 했을때 중간에 그의 정신적 학대가 더 심해지기 전에 그가 두려워하던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그그 일을 알렸다면 그 당시는 조금의 혼이 날 수는 있지만 더 빠른 해결을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후는 그는 데미안과 서먹서먹 하게 되지만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대학교에 진학해서도 데미안의 그림자를 쫒고 어린시절 되찾은 무료하게 보이는 평화를 져버리고 욕망적인 삶을 산다. 술도 마시고 여자와 관계도 맺고, 그러면서 점점 뭔가 다른 생각과 몽상에 빠져 든다. 그리고 는 진실인지 거짓인지 환상인지 모를 데미안과 만나게 되고, 그가 한때 베아트리체라고 이름붙이 에바부인에게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데미안의 이야기에 따라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그는 영장이 와서 저전쟁에 휩쌓이고 다쳐서 의료시설에 가게된다.
거기에서 데미안을 다시 만나게 되지만 아침이 되자 데미안이 아닌 다른 남자가 누워있었다.
뭔가 데미안을 처음 읽어본 나로서는 철학적이면서도 종교 비판적이고, 전쟁에 대해 짧게 나왔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다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을 받았다. 요즘 유튜브에서 데미안에 대한 책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BTS음악의 일부의 세계관을 반영했다고도 한다.
음, 청소년 도서로는 친구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이야기도 하는데, 많은 철학과 종교를 처음 접할때는 조금 부정적인 생각으로 빠져 들수도 있지만 나는 크로머를 데미안이 처리해준 뒤 싱클레어의 생각 부분까지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언제나 가족은 가족이기에 너를 반길것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주기 때문에,... 어째든 이 책을 읽어서 뭔가 고전문학 한권 읽는 숙제를 한 느낌이다.
시작은 신랑의 추천사였다.
"재밌었어. 아직도 기억에 남아."
그런 소설을 나는 아직도 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많이 혼란스러웠다.
청춘의 방황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나는 겪어보지 못한 아니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일이었기에 읽는 내내 이 혼란스러움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읽는 동안 느꼈다.
누구에게도 가까워지고 싶어하지 않는 데미안이 유독 싱클레어에게만 친근하게 다가왔던 것도 크로머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해 준것도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생각에 이르러있는 그의 독특한 발상도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만났던 하일러와 같았다.
바로 싱클레어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또 다른 자아가 데미안이란 생각.
이미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만났던 한스와 하일러의 방황을 보았기에 싱클레어의 방황도 그 어디쯤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여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방황이다. 이건 일탈이 아닌 타락의 수준이다. 그만큼 간극이 컸던 싱클레어의 두 자아가 일으킨 충돌. 싱클레어 자체가 바로 신성과 악마성이 결합된 것같은 "아브락사스"였다.
또 다시 바뀐 환경에서 데미안을 만나길 고대하고 다시 만난 데미안으로 인해 마음의 안정을 찾은 싱클레어.
그는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부인을 만나서 "지금까지 여행을 하다가 이제야 고향에 돌아왔습니다."라는 말로 타락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왔음을 선언하지만,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리고 전쟁터로 떠난 싱클레어. 부상으로 이동된 병원에서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재회하지만,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더 이상 만나러 올 수 없다는, 하지만 내면에 귀를 기울이면 자신이 있을거라는 말로 안녕을 고하고 사라진다.
데미안은 바로 싱클레어의 또 다른 자아. 모든 상황에 힘없이 끌려다니던 싱클레어를 지지하고 도와주는 또 다른 자아였다.
많은 이들이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버둥거린다. 그 알은 새의 세계다. 알에서 빠져나오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의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 한다."를 이 책의 명언으로 꼽는 반면, 나는 이 구절도 좋았지만, 다른 내용을 꼽아본다.
데미안이 카인과 아벨을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하며 하는 말.
"분명히 학교에서 배운 건 틀림이 없고 모두 올바르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선생님들이 보는 것과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관찰하고 비판한다고 해서 잘못은 아니야. 오히려 관점을 달리한 그쪽에서 더 깊은 의미를 찾아 낼 수가 있어."
이 말은 방황하는 싱클레어를 여느 학부모의 관점에서처럼 "저런 한심하고 멍청한 녀석같으니라고"라는 입장이 아닌, "저 때의 청춘은 리도 힘든 시기인가?"라며 나와 다른 나의 아들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청소년 필독도서였던 데미안. 어릴 땐 수행평가 때문에 억지로 읽었던 책이었는데... 이젠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먼저 찾게 되는 책이 되어버렸다. 내가 읽은 스타북스의 데미안 책 표지 뒷편에 『청춘을 통과하는 모든 존재를 위한 이야기. 힘들고 불안한 젊음에 바치는 영혼의 자서전.』 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보니 처음 스쳐읽었을 때랑은 완전 다른 느낌으로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이 책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싱클레어'라는 인물이 삶의 속박을 벗어나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새가 알을 깨고 태어나듯이, 싱클레어도 어릴 때부터 공존해오던 두 세계를 넘나들며 끝없이 방황하다가 끝에는 그 세계를 다 깨트리고 내면의 평화를 얻게되는데 그럴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 바로 '데미안'이다.
싱클레어가 두 세계를 처음 인지하게 된 건 10살 때 였다. 한쪽 세계는 아버지의 집으로, 그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버지, 어머니, 사랑, 엄격한 가풍, 광명과 청아한 공기 등이며 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품행도 격조가 높고 옷차림도 단정했다. 또한 아침 예배와 찬송가, 크리스마스 축하파티가 열리는 곳도 역시 그 세계였다. 거기에는 미래로 통하는 직선적인 길이 있었다.
이 세계와는 반대로 또 하나의 세계는 내 집 한가운데서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주 동떨어진 세계였다. 냄새도 달랐고 말투도 달랐고 장래성이나 요구도 달랐다. 제2의 세계에는 하녀와 소년이 살고 있었으며 괴기한 이야기와 스캔들이 그치지 않는, 뜬구름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곳이었다.
기묘한 것은 이 동떨어진 두 개의 세계가 서로 이웃에 있는 정도가 아니라 얽히고설키어 한데 접쳐져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청춘을 보내오며 한번쯤은 각자가 가진 두 세계를 경험해 보았을거라 생각한다. 내가 이 두 세계를 크게 느꼈던 시기는 '사춘기'때 였다. 진짜 하루에도 몇번이나 빛과 어둠,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 수동적으로 움직이다가도 주동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편안한 마음이었다가 갑자기 고통스럽기도 하고... 집에서 뿐만 아니라 친구사이에서도,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도 시시각각 느꼈던 것 같다.
싱클레어 또한 집에서 느꼈던 두 세계 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두 세계로 나뉘어졌는데 라틴어 학교에 다니면서 사귄 친구들은 공연된 선의 세계에 속한 친구들이었고 반대로 일반 소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은 악의 세계에 포함된 친구들이었다. 그 세계엔 '프란츠 크로머'라는 소년이 있었는데 아주 질나쁘기로 소문난 아이였다. 싱클레어를 포함한 다른 친구들은 그 아이의 명령이라면 무조건 복종하기 바쁠정도로.
어느 날 모두가 못된 장난을 했다는 무용담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는데, 싱클레어 혼자 묵묵히 듣고만 있자니 괜히 불안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하지도 않은 행동을 했다는 거짓말을 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거짓말로 인해 오히려 크로머에게 꼬투리를 잡혀 싱클레어의 생활이 파멸을 맞게된다.
처음으로 '공포'를 느낀 싱클레어는 우리 운명의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선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이런 무형의 체험에서 생겨나는 것이란걸 깨닫고 이와 같은 '균열'이나 '상처'는 다시 아물 때가 있지만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비밀의 영역에서는 피를 흘리며 계속 생존한다는 것도 느끼게된다.
계속된 크로머의 공포과 고통으로 정신착란에 빠져있던 싱클레어 앞에 '데미안'이 나타나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크로머를 혼쭐내주고 그를 구원해주었고, 드디어 크로머로부터 해방된 싱클레어는 얼마만인지 모를 평화를 얻게 된다.
그 후로 싱클레어는 자신의 불편한 진실을 알고있는 데미안을 일부러 피해다녔지만 몇 년 후엔 마음을 바꿔 자신의 '두 개의 세계'에 대한 견해를 그에게 말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기도 한다.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 한 후로는 또 멀어졌다가 대학생 때 다시 만나 더 돈독해지는 둘. (꼭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 사귀는 연인사이처럼...)
이 둘이 아무리 이별해도 다시 만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만의 '표지'때문이라고 나오는데, 그 표지는 옛날 카인의 이마에 붙어 있던 표지와 같은 거라고 데미안은 설명한다. 둘이 처음 만나 이야기 나눈 주제가 성서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이야기인데... 이렇게 후에 다시 언급될 줄이야.
심지어 데미안의 엄마인 에바부인도 싱클레어에게 "싱클레어, 당신이 어린 소년이었을 무렵의 어느 날이었는데, 우리집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마에 표지가 붙은 아이가 하나 있어. 아마 틀림없이 나하고 친구가 될 것 같아.'라고 말이예요. 그게 바로 당신이었어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계속 데미안의 집에 머물면서 내면의 성찰을 끊임없이 이어가던 싱클레어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발발하자 데미안과 함께 전쟁터로 나가게 됐고,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누워있는 와중에 나타난 데미안이 '난 곧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너는 언젠가는 다시 나를찾게 될 거야. 하지만네가 부른다고 그전처럼 말이나 기차를타고 너한테 갈 수는 없어. 그때는 너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 네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걸 알게될 테니.'라는 말을 하며 키스하고 사라진 후로 그때서야 데미안의 마지막 말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진정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싱클레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 누군가의 의지와 바람이 아닌 스스로 선택과 결정에 의해 나아갈 수 있도록 제일 먼저 내면의 나와 대화를 해본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 '데미안'.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겠지만 찾고 난 뒤의 내면의 평화를 느낄 수 있다면 감수할 수 있는 고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데미안처럼 누군가 나를 이끌어 줄 좋은 스승과 친구를 만난다면 더없이 좋을테고 말이다.
역시 고전은 고전이구나 싶다. 이번엔 이런 깨달음을 얻고 책을 덮었지만 또 다시 읽었을 땐 어떤 '얻음'을 줄 지 기대된다.
최근 읽고 있던 조던 피터슨의 책 12가지 인생의 법칙 중 7장 쉬운 길이 아니라 의미 있는 길을 선택하라를 읽던 중 아벨과 카인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선과 악 (편의주의와 의미있는 것을 하는 쟁취하는 삶) 대해 설명하는 글을 읽다, 이전에 어려워서 읽다만, 자신을 찾아가는 얘기를 담은 '데미안' 이 문득 생각나 이번에는 진득하게 끝까지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거의 한 문장마다 은유적인 표현에 어려운 말... 옛 시대를 배경을 하고 소설을 별로 읽지 않았던 나에겐 한 장 한 장 넘기는 게 고역이였지만 이 책을 자신의 내면 선한면과 악한면을 바라보며 성장하는 과정들을 담는 관점을 가지고 해석해 보고싶은 마음에 생각보다 쉽게 읽힌 것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우리 모두는 같은 협곡에서 나온다. 똑같이 심연으로부터 비롯된 시도이며 투척이지만 각자가 자기 나름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기 자신뿐이다.' ㅡ 본문 中 ㅡ
이 책은 세상을 향해 던져진 돌중 하나인 싱클레어가 어린 소년 시절부터 성인에 이르는 과정, 성장통을 겪으며 '나를 찾아가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린 시절 부드럽고 밝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좁은 집(밝은 세계)에서 지내던 싱클레어는 어느 날 (어두운 세계) 프란츠 크로머라는 소년을 만나 싱클레어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도둑질을 떠벌리고 다니다 프란츠에게 목덜미를 잡히게 되어 시달리다 '데미안'이라는 어른스러운 소년이 전학 오며 싱클레어를 도와주어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싱클레어는 족쇄와도 같았던 프란츠를 벗어던지게 된다.
'데미안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누군가에게 자기 자신을 지배할 힘을 내주었다는 것에서 비롯하는 거야” ‘ - 52p -
그리고 데미안으로부터 성경에 나오는 아벨과 카인 이야기에서 아벨은 '선' 카인은 '악' 이라는 보편적인
상식이 아닌 동생을 죽은 '악'인 카인은 선택받은, 어쩌면 용감하고 지혜로운 초인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듣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경험하게된다.
이후 데미안과 헤어져 싱클레어는 부드럽고 밝은 아버지와 좁은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몇 년간 스승 같은 존재인 데미안을 잊으며 살다 이젠 자기 자신으로부터 즉, 내면으로부터의 어두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성욕을 가지게 되고 술에 빠져살고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며 그렇게 타락한 생활을 지내다. 한 여인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여인에게 자기 맘대로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여인의 그림의 그리게 되는데 그린 그림이 베아트리체가 아닌 데미안이란 걸 깨닫고는 데미안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신의 갈망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후 싱클레어는 한 꿈을 꾸게되고, 꿈에서 본 매 그림을 그려 그림을 데미안에게 편지로 보낸다. 이전에 두 편의 편지를 보냈을때 답장이 없던 데미안에게 쪽지가 오게되는데 그 쪽지에는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라는 내용이 담겨져있다. 그리고 쪽지와 함께 데미안과 다시 재회하게된다. 이후 싱클레어는 '압락사스'라는 존재를 ?게되고 우연히 피스토리우스라는 이후에 자신의 또 다른 스승이될자와 만나게되어
압락사스라는 존재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압락사스는 신(선함)이자 악마(악함)이며 마치 태극문양의 음양처럼 모든것이 결합된 존재라는 말을 듣게되고 싱클레어는 비로서 자신의 타락한면 (어두운 세계)을 마주하고 이를 받아들여 한층 성장하게된다.
스승과 헤어지게 되고 세상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간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부인을 만나게되어 두번째 사랑에 빠진다.
'언젠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면, 그러면 내가 갈 겁니다. 나는 선물을 주지 않겠어요. 쟁취되겠습니다' 에바부인은 싱클레어에게 사랑에 대해 알려주고 다른 한편으론 싱클레어를 사랑하는 여성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날 싱클레어는 꿈을 꾸게되고 그 꿈의 내용을 데미안에게 말한다 '그건 내 매였어. 노란색이고 거대했는데 검푸른 하늘 속으로 날아갔어' 전쟁의 전조였다데미안은 자신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고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건 운명 속의 한 발자국이라고!' 그리고 전쟁이 다가오고 싱클레어와 데미안은 전쟁에 참전하게되고 그 둘은 다시 한 번 헤어진다.
싱클레어는 전쟁중 총에 맞아 부상당해 정신이 혼미해지던 와중에 다시 데미안과 재회한다 데미안은 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을 하고있었다.
'어린 소년이 됐네!, 프란츠 크로머 아직도 기억해?,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나게 될 거야. 너는 나를 어쩌면 다시 한번 필요로 할 거야.
크로머에 맞서든 혹은 그 밖의 다른 일이든 뭐든.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고 , 혹은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네 자신 안으로 귀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아침이되고 눈을 떳을땐 데미안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싱클레어는 깨닫는다
'그때부터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아팠다. 그러나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그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그리고 이야기는 끝이난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봐가 뭘까? 나름의 관점으로 해석한 바는 이렇다.
자신의 선한면, 이상적인 것만 ?지 않고 자신의 악한면과 부족하고 열등감을 느껴 보고싶지 않은면들을 인정하는 과정들 그 과정을 겪어야만 ‘성장‘하고 비로서 꿈(자신에게 의미있는 것들)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다 생각한다. 나는 싱클레어를 보며 이런 과정들을 겪고있는 것 같이 느꼇다
조던 피터슨의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이런글이 나온다 정신 분석가 카를 융이 한 말인데 “어떤 나무도 뿌리를 지옥까지 뻗지 못하면 하늘나라까지 자라지 못한다” 그리고 조던 피터슨은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의 행동은 인격의 반영이다. 정확하게 말해서 상반되는 두 인격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결과다. 셜록 홈즈와 모리아티, 배트맨과 조커, 아벨과 카인, 그리스도와 사탄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의미(꿈)는 혼돈과 질서의 궁극적인 균형이다. 한쪽에는 변화와 가능성으로 충만한 혼돈(악)이 있고, 반대편에는 오염되지 않은 절제된 질서(선)가 있다.“ 나는 이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조던피터슨의 말처럼 사람은 자신의 선한면과 악한면을 모두 내다봐고 그 둘을 화합해야 비로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수있다 생각한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내다보지 않으면 당장에야 편하겠지만 언제 거기에 삼켜질지 모른다. 선한 사람이더라도 더럽고 추악해질수 있고 아무리 더럽고 추악한 사람일지라도 그저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주인공 1100여명의 유대인을 구한 영웅 오스카 쉰들러 처럼,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치와 결탁해 임금을 줄 필요가 없던 유대인을 고용해 돈을벌려던, 나치당원이고 기회주의자 였던 그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심경변화를 느껴 자신을 바로세워 영웅이 됐던 것 처럼말이다.
이후에 꼭 다시 한 번 데미안을 읽어봐야 겠다. 다른 해석도 해보고싶다.
"내속에서 솟아 나오려는것,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영혼이 담긴 헤르만헤세의 이말은 데미안의 첫 구절에 나오는 철학적인 성찰로 작품에 근간을 이룬다 이 작품은 나로부터 시작하여 나를 향하는 한 존재의 치열한 성장의 기록이다 "데미안"작품은 보기좋고 읽기 편한 새로운 에디트이다 표지도 예쁘고 손에 쏙들어와서 X-마스선물하기 좋은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