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교수님은 이 책을 출간하기 전에 이미 방송을 통해 알고 있었다. 몇 해 전부터 인문학이 워낙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 EBS의 <인문학 특강> '노자'편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은 까마득히 잊어버려서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강의를 듣고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고 느끼면서 최진석 교수님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철학과 거리가 먼 나에게 철학자의 책은 약간 거부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왜 이 책을 미뤄두고 읽었는지 너무나도 후회가 될 지경이다. 아니다. 오히려 다른 철학을 만나기 전에 읽어서 한편으로 천만다행이다.
책은 철학이 어디에서 왔는가로 시작된다. 동아시아의 철학은 중국과 영국의 전쟁에서 시작된다. 영국에 패배한 중국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서양의 힘을 배우기로 했고 처음에는 과학 기술부터 받아들인다. 이런 과정에서 여러 정치 운동과 제도 변화를 시도했지만 성공적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추후에 서양의 힘의 원천은 기술이 아닌 그들의 문화와 윤리, 사상, 그리고 철학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본 역시 미국과 불평등조약을 맺으면서 정치적 변화를 겪게되고 뒤이어 메이지유신을 감행한다. '철학'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온 단어이다. 우리나라가 철학을 서양의 철학을 수용했을 때 이미 일본은 독립적으로 철학을 생산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최진석 교수님은 우리가 선진화가 되려면 철학의 시선의 높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사회는 냉정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이론을 따라가는 종속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좋게 말하자면 외국의 좋은 점을 수용하여 본 받는 것이지만, 같은 말로 사실은 따라하는 것이다. 이렇게 쫓아가는 단계에 있다보니 창의적이지 못하고 창조할 수 없다. 전략적이되 전술적이지 못하다. 기존 판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새판을 짤 수 없다. 이런 시선은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낭객의 신년만필'에도 잘 나타난다. 1920년대 우리 민족의 비주체성은 100년이 지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더 부강한 나라로 발전하려면 사유로부터의 종속이 아닌 독립이 시급하다.
저자는 책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철학자들이 만든 이론을 답습하고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시선의 높이에 동참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철학은 이론이나 지식이 아닌 활동이다. 생각해보면 철학을 배울 때 그들의 생각이 훌륭하고 옳다고 여기고, 그들처럼 사물을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철학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 공부하는 것이었다. 남의 사고에 머물러 있으니 당연히 그 이상의 발전은 없다. 레고사의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라는 고민에 덴마크 회사의 철학적인 컨설팅은 너무나도 인상깊었다. '아이들에게 놀이의 역할은 무엇인가?'
인간의 흐름을 읽고 생각하다. 고독하지만 나만의 고유한 생각을 가지다.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주체가 아닌 자유롭고 능동적인 내가 되다. 읽는 내내 감탄이 멈추지 않았다. 책 속에는 머리를 탁 치는 문장이 가득하다. 내가 얼마나 종속적이고 틀에 갇힌 사람인지 깨닫게 하였다. 책은 나 스스로를 반성을 하게 하지만 전혀 부끄럽지 않다. 철학적인 사유가 전개되는 높이와 지점을 알게된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어떤 사고를 해야하는지 어디를 보아야 하는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모든 생각이 교차하면서 단숨에 읽히는 책이다.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어떻게 변화해야하는지 미래를 제시해 주는 책이다. 책 서문에 남긴 말처럼 이 책을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보았으면 좋겠다.
* 이 리뷰는 예스24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우연히 읽게 된 책이지만 읽고 나서 통쾌하고 재밌고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부끄럽게도 저자 최진석 교수님이 누군지도 몰랐다. 책을 주로 빌려 읽는 국립세종도서관의 온라인 DB에서 이 책을 찾았다. 읽을만한 책을 인기순이나 대여순으로 뒤적거리다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와 함께 눈에 띄어 빌려 읽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동안 평소 궁금해왔던 질문들이 있다.
왜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교육도 제자리를 못찾고 빈부의 격차는 심해진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을까?
왜 일본 애니메이션의 소재는 독창적인데 우리는 그러지 못할까?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가 수십명인데 우리는 한명일까? 등
저자 최진석 교수님은 이 책에서 많은 얘기를 들려준다. 우리의 사고의 시선이 선진 국민들이 갖는 시선의 높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고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 들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글과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글을 읽을때는 울뻔 했다.
저자 최진석 교수님은 노자를 전공한 철학자이다. 이 책은 저자가 '건명원'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건명원이라는 곳을 찾아보니 지금도 수강생을 모집중이다. 수업료는 무료다. 지원서에서 본인이 건명원에 입교하고자 하는 이유 등을 써야한다. 나는 오십인데 아쉽게도 29세까지만 입교가 허락된다. 나는 해당사항이 없다. 아쉽다.
저자가 말하는 철학이란, 자기가 자기 삶의 격을 철학적인 시선의 높이에서 결정하고 행위하는 것, 그 실천적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위대했던 철학자들에게 대해 공부하고 그들의 저서들을 읽는다. 그런 후 철학을 한다고 말한다. 잘못된 생각이라고 한다.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철학을 알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는 그 철학자처럼 높은 사유의 시선으로 나름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모두 옳은 말이다.
시선의 높이는 생각의 높이다. 생각의 높이는 곧 삶의 높이이며, 삶의 높이가 한 국가의 또는 한 사회의 높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면 좋겠다. 꼭 그리 되길 바란다.
오랜만에 엄청난 영감을 주는 책을 읽었다. 운이 좋았다. 기분도 좋다.
최진석 교수님의 다른 책들도 읽어 봐야겠다.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와 '인간이 그리는 무늬', 그리고 '나 홀로 읽는 도덕경'이 눈에 띈다.
이 책은 초판본도 사고 2018년 개정판은 최근에 샀다.
다시 읽고 나의 기존 틀을 깨는 행함이 이루어지기를~
본문 중 - 높은 수준의 지식을 송곳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하겠다. 자신의 삶을 철학적으로 다루지 않고, 기성의 철학 이론으로만 삶을 채우려고 한다. 그래서 자기 삶을 철학적으로 살려는 도전보다는 천 년이 두 번 이상이나 지난 지금도 공자나 노자처럼 살려하고, 플라톤이나 니체를 살려내려 한다. 자기 자신도 버리고, 자신의 역사도 버린다. 자기를 플라톤화, 마르크스화, 공자화, 노자화하려 하지, 플라톤 등을 자기화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을 철학화하지 못하고, 정해진 철학을 이념화해서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지배하고 평가한다. 쉽게 이념이나 신념에 빠진다. 스스로 문제를 발견해서 해결하려는 야성을 잃고, 남이 정해준 정답을 찾아 얌전히 실현하려고만 한다. 결국 세련되고 정밀한 이론이 그들의 구세주다. 아직 거칠고 정리 안 된 자신으 현실은 깎여야 할 미숙한 어떤 것일 뿐이다. 세련되고 정밀한 이론은 그들을 매혹시킨다. 그래서 절절한 마음으로 기꺼이 그것의 충실한 종이 된다. 종은 지켜야 할 것이 많다. 지켜야 할 그것은 자신이 만들지도 않았다. 자신이 만들지 않은 기준으로 자신의 삶을 인도하는 모순적 상황은 내면의 불균형을 가져온다. 당연히 짐승처럼 과감하게 덤비는 것이 윤리적 인간이 되는 것보다 훨씬 실속 있다. 짐승처럼 덤비면 짐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큰 인간이 된다. 너무 인간적이면 자잘한 인간으로 남는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랠르 활짝 열기 위해 마음속에 야수를 한마리 키우자.
철학과 명예교수이자 '건명원' 원장 최진석 님이 쓰신 책이며, 이공계열 졸업자로써 철학은 전혀 관심 대상이 아니었고 어려운 학문으로 간주해서 저에게는 철학 관련된 첫 번째 책입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이웃님의 도서 추천 목록에 있어서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사실 철학 관련 책이라고는 생각 못 했습니다.
오히려 철학자가 쓴 책이란 것을 알았더라면 읽어볼 시도를 안 했을 것 같아요. 왜냐면 철학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고상한 것을 생각하거나 고뇌해서 피곤한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죠.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철학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깰 수 있었고, 철학 하는 사람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왜 철학이 중요한지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필사하기
부정 : 버리다
p.98 판 자체를 새롭게 벌이려는 시도, 그것이 철학이다. 거대한 세계의 변화를 감지하여 시대에 대응하는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거나 새로운 '방향'을 생산한다.
p.103 철학을 통해 자신이 튼튼해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소득은 '높은 시선'이다. 높은 차원의 활동성이다. 철학적으로 튼튼해진 사람은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고 새로운 빛을 발견함으로써 세계에 방향성을 제시한다.
선도 : 이끌다
p.155 꿈을 꾸는 삶이란 '나'로 사는 일. 꿈은 나만의 고유한 동력에서 생긴다. 논리나 이성이 아니라 나에게만 있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발동해서 생긴다.
p.157 나의 삶이 내 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아니면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꿈이 없는 삶은 빈 껍데기일 뿐이다.
독립
p.166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인간에게 있다. 인간의 존재를 하늘의 명령에서가 아닌 인간 자신에게 있다.
p.168 Philosophy 사랑과 지성을 합친 합성어이며 지성을 사랑하다라는 뜻이다. 신에 대한 믿음에서 독립하여 이성의 힘으로 세계를 설명하고자 철학이 탄생하였다.
p.170 익숙한 것과의 결별, 고독을 자초하다. 기존 것들과 결별하고 낯설어지는 실험을 감행한다. 철학은 여기서 출발한다.
진인 : 참된 나를 찾다
p.210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불편함을 이겨내고 질문을 생산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기 때문에 궁금증과 호기심이 살아 있다.
p.229 진정한 승리의 비결은 '태연자약'. 태연자약한 사람은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자신만의 흐름이나 결에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다.
p.233 일등은 판을 지키는 사람이고 일류는 새판을 짜는 사람이다. 경쟁에 빠지지 않고 그 구도 자체를 장악한다.
철학 하는 사람은 저의 편견과는 정 반대로 오히려 철저한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사유를 사유하지 않고 세계를 사유하는 사람이 철학 하는 사람인 거죠. 여기서 사유라는 단어를 찾아봤는데요,
사유는 생각하는 것보다 높은 차원의 생각, 즉 어떤 대상의 개념, 관념을 떠올리는 이성 작용을 말합니다.
기존 관습과 관념에 함몰돼 선발주자의 것들을 종속적으로 따라가기보다는, 현시대와 지금에 맞는 관념을 생각해 내는 것이 철학 하는 사람인 거죠.
철학이 우리에게 왜 필요할까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나를 위해서 필요하고 크게는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자유나 행복'같은 얻고 싶은 가치들은 내가 '나'일 때 얻어지는 가치들입니다. 남들이 원해서, 기존에 있던 길들을 따라가면 자유롭지 않고 행복하기 어려워집니다. 불가능한 냄새가 풀풀 나더라도 '꿈'이 있고 몰입하면 행복합니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개인들이 응집되면 주도적이 되고 선도력 있는 집단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중진국의 함정에 빠졌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새로운 표적지를 못 찾고 있다는 거죠. 새로운 판이 짜여 져야 뒤따라 쫓아가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 겁니다. 내가 궁금하고 호기심 있는 것들을 할 때 꿈꾸고 나갈 수 있고, 그런 개인이 모여 선진국을 만듭니다. 그래서 철학이 개인한테, 우리한테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철학에 대한 편견을 깨주고 내 삶을 살게 할 용기를 갖게 하는 책이며 자기 계발서는 아니지만 탁월하게 자기를 계발해 주는 책이라 책을 덮었을 때 뿌듯함이 좀 더 많았었던 책이 아닌가 합니다.
편견 없이 탁월한 선택을 해서 한 뼘 더 높은 시선을 갖게 된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 추천드립니다.
요즘 코로라19로 집콕을 하고있다.
이럴 때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읽어봐야지하면서 몇 권의 책을 꺼내놓았지만 술술 읽어져지도 않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자꾸만 뉴스 속보를 보게되고 머리는 답답해지고 가슴은 먹먹해진다. 뭔가 다른쪽으로 생각을 돌리고 싶던 중 우연히 작년 봄에 들었던 최진석교수님의 노자 강의를 다시 듣게되었다. 통찰라는 주제로 시작해서 인문학이라는 무엇인가의 주제를 명쾌하게 풀어나가는 강의였다.
내친김에 저번에 읽다가 덮어 둔 탁월한 사유의 시선도 읽어보았다. 이 책의 키워드는
생각의 노예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익숙한 나를 버리고 원하는 나로 살아라!
과연 나는 어떤 생각의 노예였고 혹은 주인이었나?
익숙한 나는 누구이고 원하는 나는 누구일까?
이런 질문은 삶에서 필요한가?
갈수록 사회적 상황이 힘든 세상에서 왜 우리는 철학을 해야 하는가? 철학이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철학이 지금 이 시대를 극복할 해답을 줄 수 있는가?
최진석 교수는 철학이란 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철학은 보통 명사와 같이 쓰이지만 동사로 작동할 때만 의미를 갖는데, 철학이란 모두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시대적 상황을 뺀 이론으로서의 창백한 철학만을 수입해왔고 직접 철학을 생산해본 경험도, 생산해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잘못 수입한 철학으로 개인의 가치관, 국가의 산업뿐 아니라 삶 전체를 종속당했음에도 그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시대를 한탄하며 최진석 교수는 유일한 해결 방법으로 직접 ‘생각’하는 철학을 제안한다. 주도적인 생각으로 주체적인 삶을 사는 개인이 많아질 때, 국가의 정치 경제적 위치 또한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상승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개인과 국가의 내일을 위해 지금부터 바로 시작해야 하는 철학의 실천법은 익숙한 나를 버리는 것에서 출발해 내가 원했던 나를 찾는 과정으로 마무리된다.
철학의 출발과 끝에는 궁극적으로 내가 있다.
배우는 철학에서 생각하는 철학으로,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위한 철학의 4단계
진정한 철학은 ‘부정(否定)?선도(先導)?독립(獨立)?진인(眞人)’의 네 단계를 통해 현실 속에서 구체화된다. 즉 기존의 것을 철저히 ‘부정’하고,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며, 기존의 것과의 불화를 자초해 종속적인 나에서 ‘독립’해, 주체적이고 참된 나, 즉 ‘진인’을 이루는 것이다.
새롭고 위대한 것들은 다 시대의 병을 고치려고 덤빈 사람들의 손에서 나왔다. 이렇게 해서 세상은 진화한다. 이것은 또 나의 진화이기도 하다. 내가 시장 좌판에 진열된 생선이 아니라 요동치는 물길을 헤치는 물고기로 살아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표현된다. 나는 눈뜨고 이렇게 펄떡거릴 뿐이다. --- p.7
인간은 결국 질문할 때에만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고유한 존재가 자신의 욕망을 발휘하는 형태가 바로 질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미래적이고 개방적일 수밖에 없다. 대답은 우리를 과거에 갇히게 하고, 질문은 미래로 열리게 한다. --- p.118
탁월한 인간은 항상 ‘다음’이나 ‘너머’를 꿈꾼다. 우리가 ‘독립’을 강조하는 이유도 ‘독립’으로만 ‘다음’이나 ‘너머’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이나 ‘너머’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불안이 힘들어서 편안함을 선택하면, 절대로 ‘다음’이나 ‘너머’를 경험할 수 없다. 이때 불안을 감당하면서 무엇인가를 감행하는 것이 ‘용기’다. --- pp.197~198
인문학은 연구 대상의 학문이 아니라 살아서 행동하는 학문이라는 촌철살인 같은 말을 들으며 온 몸이 기분좋은 긴장감을 갖게된다. 통찰의 힘을 가지고 살아가는 힘을 어디에서 우리는 얻을 수 있을까?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길은 각자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지만 그 길을 안내하고 걸어가는 것은 주체적인 자아만 있을 뿐이다.
어느 경계의 지점에서 잊지 않고 긴장의 끈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기에
어느 순간에 경계의 시점을 놓치지 않고 있는지 철저한 자기각성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지게된다.
유무의 경계에서 어떤 기준을 갖고 살아야할까?
지금 나는 어느 경계의 지점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