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둘러싼 세계와 마주하기'
라는 부제가 참 마음에 들었고, 그 내용에 꼭 맞아 읽으며 내내 즐거웠던 책이다.
-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많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
그리고 그 관심과 열기가 무척 반갑다.
미스터션샤인의 김희성 대사를 빌리자면 '무용한 것'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인문학이 무용하다 라고 하면 반론을 할 사람이 많겠지만 (나조차도 발끈하지만)
그래도 당장 실용적인 학문은 아니니
꽤 오랫동안 인문학은 뒷전이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고등학교-대학교-취직을 거치던 시기에는
공무원에 대한 열기가 고조되고,
어쨌든 취직할 수 있는 대학, 학과를 선택하는 분위기였기에
그 속에서 인문학을 즐겨 읽는 나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곤 했다.
(쓸데없이 책을 읽는다고 부모님도 말씀하셨으면 말 다 했지 뭐.)
그러나, 어느새, 독서, 독서모임, 글쓰기, 인문학은
사회현상의 하나가 되었고,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지혜를 찾기 위한 좋은 수단이자, 취미생활로 자리잡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삶의 모토가 '생각을 하며 살자.'이다. '알면 사랑한다.'는 최재천 교수님의 말씀도 사랑한다.
그저 멍하게 있으면 삶이라는 것이 그냥 흘러가버린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며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더불어 나와 내 삶을 둘러싼 것들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 나의 삶의 방식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이 독서였고 인문학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다고 한들,우리는 한없이 바쁘다.
게다가 우리가 자라난 시간들에서는 여유롭게 책을 읽거나 풍요롭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많이 부족했다. 습관이 되지 않으니 생활 속에서 짬을 내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 책 '퇴근길 인문학 수업'은
바쁜 현대인에게 잠깐의 시간동안이라도
삶을 풍요롭게 하면서 동시에 내 삶을 이해하고 깨어있는 채로 살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
퇴근길, 이라는 제목에 충실한 목차다.
생존과 공존 / 대중과 문화 / 경제화 세계 / 철학과 지혜
라는 4가지 큰 주제가 있고 각 주제마다 3주씩 할당이 되어 있고,
월~금요일로 나누어져있어, 하루에 한 꼭지씩 읽으면 된다.
그러니 읽는 독자, 공부하는 독자가 따로 계획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한 꼭지 당 7~8쪽의 내용이 들어있고, 그 내용이 딱 적당하다.
특히 내용의 깊이가 보통 내공은 아니어서
쉽게 설명이 되어 있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예를 들어 첫번째주를 살펴보면,
Part1. 생존과 공존
제 1강. 생태계에서 배우는 삶의 원리
월요일. 어설픈 변신, 그래도 나는 나다
화요일. 극한의 압박에서 피어나는 처절한 생명력
수요일. 암컷은 약자인가
목요일. 뭉쳐야 산다
금요일. 전문가들의 고군분투
로 이루어져있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생태계, 자연, 그 속에서의 진화, 그리고 삶의 원리에 대해
생각하며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월요일. 어설픈 변신, 그래도 나는 나다 를 보면
자기 과시에 대한 내용으로
크기로 제압하라 - 사슴의 뿔에 대한 내용
고달픈 건 사슴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 - 기후에 따라 사슴이 하는 고생과 발달
짧고 가늘어도 내 방식대로 산다 - 푸두의 이야기를 통해 주어진 삶을 능동적으로 즐기는 것에 대한 여운을 던지며 이야기를 끝낸다.
사슴이라는 하나의 예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어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면서
그 속에 잘 몰랐던 지식을 알게 되니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예를 통해 자연과 생태계, 생명의 진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내 삶은 어떠한가, 나는 어떠한가, 능동적인 삶은 어떤가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시간까지.
딱 적당한 분량에 쉬운 설명 그러나 깊이있는 내용, 그래서 공부를 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 까지.
무엇보다 재미있고, 다양한 분야를 알려주니 읽으며 즐거웠다.
각 주차마다 글쓴이가 다르기에, 여러권의 책을 읽는 기분도 들었다.
전문가들이 잘 썼다는 느낌과 동시에
편집자들이 굉장히 애를 썼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적절한 분량과 적절한 수준이 대체로 유지되고 있어
편집자들이 애를 많이 썼구나, 감사하다, 그런 마음으로 읽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철학과 지혜 중 고전의 잔혹한 지혜 부분이었다.
막장드라마는 어떻게 고전이 되었나? 라는 월요일 제목이
내가 평소에 고전 소설을 읽으며 느낀 생각이었기에 즐겁게 읽었다.
막장(!)의 관점에서 보는 고전 소설들은 재미있었다.
거기 나온 책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 책은 얇거나 가벼운 책은 아니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니 이게 무슨 퇴근길 인문학 수업이야!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어떤 분의 리뷰에서 봤던 것 처럼 다 읽고 나니 '더 두꺼웠으면'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내용이 알차고 재미있었다.
그래도 제목이 <퇴근길 인문학 수업>이니, 그런 느낌을 잘 살려서
문고본으로 더 작게 만들어 핸드백에 넣어다닐 수 있게 해줘도 좋을 것 같다.
앞으로 2권이 더 나올 예정이라는데, 기대되고 즐겁게 읽고 싶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인문학 붐이 일던 2018년에 출간된 책이다. 출간 당시에는 모르고 있다가 2년 전 코로나가 한창일 때 중고서점에서 발견하고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 3권을 모두 구매했다. 신나게 밑줄 그으며 읽고 밑줄 친 부분을 필사도 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기억나는 게 거의 없어 리뷰를 남기려고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읽었다.
이 책은 크게 생존과 공존, 대중과 문화, 경제와 세계, 철학과 지혜라는 4개의 대목차로 이루어져있으며 각각의 대목차는 3개씩의 소목차로 나뉘고 소목차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순서로 다섯 꼭지씩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문화창작부 교수, 정신과 전문의, 한문학자, 소설가, 영화평론가, 경제학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글이다 보니 전문성은 있지만 할당된 분량이 적어서인지 독자가 흥미를 가질만한 정도에서 끝난다. 인문학 입문의 마중물. 이 책의 역할은 그 정도가 아닐까.
문학, 역사, 철학, 신학, 음악, 영화, 미술, 경제, 과학 등을 주제로 하는 여러 분야의 이야기가 실려있어 읽는 이는 각자의 흥미에 맞는 부분을 먼저 골라 읽을 수 있다. 그 중 이번 리뷰에서는 ‘조선의 대중문화’편에 수록된 <어우야담>과 <도문대작>이라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보겠다.
<어우야담>
<어우야담>은 공자왈, 맹자왈하는 유교서적이 대세이던 조선시대에 인어, 귀신, 꿈, 성(性) 등의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모아 만든 책이다. 현세에 집중하는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조선의 사대부는 사실이 아닌 것을 기록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도 튀는 인재는 있는 법. <어우야담>을 지은 유몽인(1559~1623)이 그런 존재였다. 그는 선조 시대의 수재로 학문과 문장에서 모두 뛰어나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내정을 살피고, 명에 세 번이나 사신으로 가는 등 외교업무도 맡았다고 한다.
전쟁 동안 직접 백성의 어려움을 살피고, 명의 문물을 접하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명에서 들어온 소화집 <절영삼소>등을 통해 조선에서도 통속문학에 대한 관심이 일어났다. 그렇지만 소화집은 음담패설이 많고, <금병매>나 <수호지>같은 명나라 유명 소설에는 허망하고 터무니없는 말이 많아서 조선 문인들의 반응이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꼽히는 유몽인은 이런 것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는 전통적인 글쓰기를 거부하고 <어우야담>을 집필했다. 임진왜란이라는 대전란을 겪고 난 후 정치적 혼란과 당쟁, 그리고 백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보면서 현실을 풍자하고 싶었을 것이다.
(p.243~244)
<어우야담>은 우리나라 최초의 야담집이며 조선 중기 대중문화의 물꼬를 튼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막상 시대를 앞서갔던 천재는 시대와 화해할 수 없었나 보다. 인조반정 때 역적으로 몰려 아들과 함께 처형당했으니 말이다. 임진왜란이라는 환란을 겪고도 변화하지 않는 지배층으로 인해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진 사실을 생각하면 그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고가 더욱 소중하고도 안타깝게 느껴진다.
<도문대작>
조선의 자유로운 영혼을 말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인물, 허균.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이지만 이번에 소개할 책은 <도문대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 품평서인 <도문대작>은 허균이 유배지에서 지난날 먹던 산해진미를 생각하며 쓴 책으로 온갖 맛있는 음식에 대한 품평이 실려 있다. ‘도문대작(堵門大嚼)’라는 제목도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다시다’라는 의미로 유배지에서 산해진미를 먹을 수 없는 상황을 아쉬워하며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선비의 식도락 책이라니. 특이하다. 선비의 글들은 한술 보리밥과 나물반찬이 어쩌고 하는 청빈한 삶을 추앙하는 내용이 다수가 아니던가.
허균은 당시 최고 명문가에서 태어났고, 처가도 부유했으며, 임진왜란을 겪으며 팔도의 음식을 다 먹어볼 기회가 있었고, 중국인들과의 교류도 있어서 중국 요리에 대한 식견도 갖춘 인물이라고 한다. 맛 칼럼리스트가 되기 최적의 조건이다.
그런데 이런 조건의 선비가 허균 뿐이었을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사대부들도 허균과 비슷한 배경을 지녔고 그들 또한 온갖 산해진미를 접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문대작>같은 책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음식에 관한 다양한 경험 덕분이라기보다 당시의 선비들과는 다른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게 더 타당한 설명이 될 듯하다. 이것은 ‘식욕과 성욕은 인간의 본성이다’라는 저술의도에서도 드러난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홍길동전>이 그랬듯이 이 책 또한 시대와 타협하지 못하는 자신의 생각을 음식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몽인과 허균.
최근 한국사책을 읽으며 경직된 조선시대에 답답함을 느껴서인지 조선의 이단아들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덧.
빡빡한 삶에 지친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통해 자기성찰과 치유의 기회를 마련해주면서 동시에 인문학에 대한 지적 갈등도 해소하기 위해서다. 근로시간 단축을 계기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작용했다.
(p.7)
프롤로그에서 밝히는 기획의도 중 일부이다.
그런데 책이 나오고 5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근로시간을 늘리자는 정책이 화제가 되는 지금, ‘근로시간 단축을 계기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는 문구가 서글퍼 보인다.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이다. 무언가에 쫒기듯 살아오는 인생에 여유가 없이 살아가는 듯 하다. 하지만 이럴때일수록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며 사유해야한다. 나는 누구이지. 나는 왜 살고 있지. 이런 존재론적 질문이 시작된다. 멈추고 난뒤에 가능한 일이다.
퇴근길 인문학 시리즈는 가볍게 읽을 수 있게 만들어놓은 인문학 교양집이다. 인문학을 어렵게 바라볼 것이 아니라 퇴근길에 가볍게 시도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
하루에 한 꼭지씩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다면 어떨까? 인문학은 별거 아니다. 어떤 이는 '지적허영'을 만끽하기 위해서 <인문학책>을 읽는다고도 하지만, 그런 거창한(?) 계획 없이도 인문학을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허나 인문학의 범주가 워낙 광범위하다보니 뭘 읽을지 고민스러운 것이 '일차적인 문제'일 것이다. 그렇지만 요즘은 그런 '일차적인 고민'조차 할 필요가 없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이라는 책이 있기 때문이다.
제목에 '퇴근길'이라 쓰여 있어서 출근길에는 읽을 수 없는 책이 아니다. 요일마다 한 꼭지씩 읽을 수 있도록 낱개 포장(?)이 되어 있긴 하지만 하룻밤에 다 읽어도 무방하다. 주제도 다양하다. 깊이를 다룬 책인데도 내용이 어렵지 않고, 분량 또한 2~4장으로 가볍기 그지 없다. 이런 책을 두고도 <인문학책> 고르기가 너무 힘들다고 푸념하는 이들이 있다면 단언컨대 바보가 틀림없을 것이다.
<퇴근길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이 책의 키워드는 '멈춤'이다. 1장의 주제는 '생존과 공존', 2장은 '대중과 문화', 3장은 '경제와 세계', 끝으로 4장은 '철학과 지혜'다. 하지만 어디에도 '멈춤'에 해당하는 꼭지는 없다. 그런데도 왜 '멈춤'일까? 혹시,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문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아닐까 싶다. 빠르게 질주를 하면 '결과'는 빨리 얻겠지만 '과정'의 즐거움은 즐길 수 없을 것이다. 경주를 하면 결승선만 보이고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의 짜릿한 영광은 누릴 수 있겠지만, 산책을 하면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내 주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여유도 생긴다. 그러면 '멈춤'을 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뒤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앞만 보고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속 현대들에게 뒤돌아볼 여유 따윈 없어진지 오래다. 아니 되돌아가는 것을 '퇴보'로 여기고 '실패'로 간주하며 심지어 '해서는 안 되는 일탈'로 치부할 뿐이다. 오로지 목표달성을 위해 '눈가리개'를 하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현대인들은 '행복지수'가 형편없는 수준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꼴찌를 따놓은 당상처럼 매년 도전하고 있다고 한다. 최하위권이라는 얘기다. 행복은 '비교'를 해야만 비로소 인식할 수 있는 감정이다. 비교는 '두 개의 기준'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과거'와 '현재' 말이다. 물론 '난 행복해질 거야'라면서 미래를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다.
암튼,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행복'할 수 있다. 그 반대라면 '불행'하다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눈물 겨웠지만 먼 훗날에는 행복해질 거라고 다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행복이냐, 불행이냐 '결과'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삶의 지혜를 통해서 부정도 긍정으로 바꾸어 생각할 수 있고, 긍정도 더 나은 기쁨으로 승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인문학>은 이렇게 소소하게 시작할 수도 있다. 엄청난 지식을 쌓은 다음에야 뭐라도 할 수 있다고 지껄이는 것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말이다.
그럼 '인문학'을 즐기면 무엇이 좋을까?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아야 한다.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딱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적 즐거움은 끝이 없다. 바다보다 넓고 하늘보다 높은 '인문학적 방대함'에 한 번 접하면 끝도 모를 즐거움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엔 '교양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예능프로그램에 '전문지식인'들이 패널로 참여해서 나름의 지적정보를 꺼내주는 것만으로도 '고품격'이라고 느껴진다. 한때는 저질스러웠던 예능이 '인문학'과 만나면서 고품격 예능 버라이어티로 거듭난 프로그램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자 애초부터 '고품격'을 지향하는 교양프로그램이 예능적 요소를 띠는 '역전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예 '전문지식인들'이 나와서 수다를 떠는 예능까지 나오고 있으니 말 다했다.
어쨌든 우리는 살면서 알게 모르게 '인문학'을 접하고 즐기고 있다. 그런데도 그 원천이 되는 <인문학책>만 안 읽고 있는 셈이다. 정확히는 '읽는 사람'만 또 읽고 또 읽는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데 책만 펴면 졸음이 쏟아진다면서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인문학>에 도전하고 싶다는 용기를 내는 분들에게 적극 권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 책 한 권을 다 읽고서 수다를 떠들어보길 바란다. 아니 그냥 퇴근길에 이 책을 손에 들고만 있어도 지적인 충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거짓말이라고? 그걸 간파했다면, 당신은 이미 인문학적 천재의 소질이 충만하다는 증거다. 책을 손에 들고만 있어도 '교양인'이 된다. 이건 거짓말이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책을 아무대나 펼쳐보면 다양한 인문학적 주제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주제를 만나도 당신을 푹 빠져들 것이다. 이건 '인문학적 매력'이다. 바쁜 도시의 삶을 잠시 잊고 그냥 푹 젖어들어도 좋을 것이다. 참 매력적인 책이니까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멈춤"
백상경제연구원 (편저) | 한빛비즈 (펴냄)
지루하고 어렵다는 선입견으로 한때 비인기였던 인문학이 이제는 대세 중의 대세가 되어 인기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세상만사 모든 일이 인문학으로 이어진다는 느낌이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고대 철학이나 '~~주의' 혹은 따라 그리기도 어려운 한자들이 떠오르던 예전과 달리 일상과 주변의 익숙하고 친근한 것들에 녹아 쉽게 다가온다.
제목이 참 멋지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이라니~!!
이 여덟 글자 안에 참 많은 이야기가 담긴 듯하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하루 마무리의 시작인 퇴근길에서 짧은 시간동안 만날 수 있는 인문학이라니, 그 발상 자체가 유익하고 그저 고맙다. 주제에 맞는 강의를 요일별로 하나씩 읽을 수 있도록 해놓은 아이디어와 정성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던 것을 보면 다른 이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가 보다.
버스 안 혹은 지하철 안에서 무의미하게 각자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그저 "시간을 때우기" 보다는 각 분야마다 다른 시각을 가진 이들의 생각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 중 가장 먼저 출판된 "멈춤"이라는 주제에 생태, 건강, 문학, 연극, 역사, 경제, 철학, 고전으로 접근해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어찌보면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같은 얘기를 들려준다면 그 또한 이상하지 아니한가!
철학으로 대표되어지는 인문학은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는 학문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져본다. 가장 먼저 가장 정확한 답을 찾는게 아닌 끊임없는 사고의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답과 길을 찾는 것,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을 보고,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
명나라에 한류를 일으켰다는 조선시대의 허균 또한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을 중요시 한 걸로 보인다.
지금 내가 시를 쓰는 목적은 이백과 두보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진정한 '나'를 찾는 데 있다. 나는 내 시가 당나라 시와 비슷해지고 송나라 시와 비슷해지는 것을 염려한다. 도리어 남들이 나의 시를 '허자의 시라'고 말하게 하고 싶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멈춤. 239쪽
12개의 강의 중 제7강의 내용이 특히 흥미로웠다.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서는 포기 잘하는 방법부터 찾아야 한다는 사실!'. 기회비용과 매몰비용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거창한 경제학 용어가 아니더라도 세상만사 하나를 얻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 아닌가!
양 손에 쥔 것을 어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용쓰다 보면 손에 쥔 것은 지켰을지 모르나 곁의 사람은 잃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보아왔다. 경제학적으로 접근했지만 인생의 진리를 얘기하고 있으니 인문학이 모든 것에 녹아있다는 말이 더 깊이 와닿는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의 첫번째 주제인 "멈춤".
"이제 그만"이라는 '정지'의 뜻이 아닌 쉼, 휴식의 뜻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보 전진을 위한 잠시 멈춤. 숨돌리기.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한빛비즈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책을 읽고 도움이 된 점들을 나열하자면, 첫 번째, 알듯 말듯 너무나 얕게 알았던 지식을 보충했다. 이 책이 그렇다고 완벽하게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디 가서 웬만큼 아는 척할 수 있는 정도까지 파고든다. 나머지는 더 공부할 거리를 던져준다. 많은 분야와 주제를 다루기에 모든 것에 흥미가 생기지는 않을 수도 있다. 흥미가 생기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버려도 좋다. 호기심이 더 생기는 것을 책에서 습득한 것을 바탕으로 더 공부하면 좋을 것이다.
두 번째로, 흔히 들어본 논쟁거리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입장을 명확히 하기보다 중도를 택하는 편이다. 원칙은 이러하지만 예외적인 사정도 많이 봐준다. 어느 입장을 정하든 중도를 걷더래도 명확하게 뒷받침할게 있어야 하는데, 보편적인 것만 알고 추가적인 논점이 붙으면 두렵다. 때문에 이 책으로부터 다툼이 있는 새로운 논점들을 알게 되면서 입장 정리를 다시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잘 몰랐던 것들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면서 심지어 관점이 바뀌기도 했다. 관점이 바뀌었다는 것은 잘 못 알았던 것일 수도 있고, 다른 단면을 보지 않은 채 판단해서이기도 하다. 내가 잘 몰랐다고 한건 그전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반쪽짜리 지식이었던 것이었다. 다행히 논쟁을 즐겨 하지 않아서 망정이지 공개적으로 망신당할 뻔한 부분도 있었다. 이 부분도 더 공부할 여지를 얻은 것이 의미 있었다.
시리즈 중 첫 번째인 이 책의 소제목은 보다시피 '바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둘러싼 세계와 마주하기'다. 바쁘게 살아가느라 미처 간과했던 것들을 제대로 살펴볼 기회를 준다. 한번 쉬어가면서 바라볼 사소한 것이 아닌, 개인에게 유익한 것도 있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훈훈하게 만들어줄 내용도 있다. 내게는 어떤 것이 더 이로울지, 곤란한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명확하게 답까지 내릴 줄 알기 위해 더 공부할 필요를 느꼈다는 의미가 있었다. 짬짬이 시간을 내서 부담 없이 책을 마주하면서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더욱 공고히 할 기회를 줄 것이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멈춤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로 두 번째 만남이었던 것 같다. 권태기라는 표현을 빌려와 하는 말로 책태기라는 말이 있더라. 어쩌면 내게도 책태기가 지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책이 잘 들어오지 않는 몇 개월의 시간이 아주 천천히 유유자작하게 흘러가는 중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문제도 있고해서 책을 통한 위로를 생각할만한 여유가 부족한 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변명이지만 이 또한 현실이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시리즈-멈춤을 며칠 들고 다녔다보다. 재미있는 듯, 혹은 살짝 몰입이 되지 않는 듯했지만 어쨌든 인문학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일랑은 조금이라도 채워가는 시간이지 않았을까도 싶다.
기억하고 싶은 몇 가지 이야기를 적어보자. 생존과 공존에서 강안이 펼쳐내는 이야기 ‘너와 나 그리고 우리’와, 대중과 문화에서 최은의 ‘스크린으로 부활한 천재들’, 안나미의 ‘조선의 대중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이 허전한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말이다. 문학창작 강의를 해왔으며 전업작가로 동화와 에세이를 쓰며 영화인문학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통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는 강안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따뜻한 울림으로 다가왔는가에 대한 이유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느낌이란 이렇게 오묘한 것인가. 누군가가 그랬듯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글은 묘한 매력이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강안은 삶의 모습을 담아내는 영화를 통해 대중의 폭력성, 개인의 무력감, 집단의 히스테리가 만들어내는 공포, 살벌하게도 냉혹하기만한 개인주의, 물질만능 주의의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어두운 그늘 등등 다양한 측면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저마다의 긍정의 요소인 희망을 노래하는 이상적인 존재라는 것을 재확인하며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는 것인가.
이를테면 ‘이 세상 누군가 울고 있다’(118p)와 같은 상황과 마주했을 때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울고 있는 이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선함에서부터 출발하는 인간 본연의 당위성을 상기하게끔 한다. 그러니까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지니는 가장 기본적인 선한 심성과 따뜻한 시선이 만들어내는 가볍지 않은 울림을 살짝 엿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강인의 이야기는 그런 배려가 담겨있다.
그런가하면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내면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최은의 이야기 역시 결코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인간이기에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갈 권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뜨겁게 피워내는 그들의 예술혼을 볼 때, 어찌보면 보통의 삶에서 터무니없이 날카롭게 상충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한 상황을 굴레라고 한다면 그 굴레는 자의적일 수도 있고 타의적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굴레에 갇혀 생을 마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스스로 굴레에서 벗어나오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피카소의 여인들과 조각과 로댕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까미유 끌로델’의 이야기가 그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흑백사진으로 된 까미유 끌로델의 얼굴을 찾는다. 우수에 찬 듯한 깊은 눈매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 무거워보이지만 오히려 한없이 가냘픈 그녀의 입술이 눈에 들어온다. 완벽하지 못했던 사랑과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반평생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그녀의 삶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 눈에는 그런 면면들만 보이는가싶다. 아니다 몇 가지가 더 있다.
한문학자인 안나미가 소개하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안나미는 조선의 한류를 소개하고 있었다. 물론 당대의 문화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지만 분명하게도 당시 중국과 조선의 문화교류가 활발히 오고갔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될 듯하다. 매화꽃이 등장하고, 시가 등장하며, 문인 이정귀가 등장하고, 여기에 허균과 허날선헌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어우야담에 등장한다는 조선인어의 이야기, 다시 등장하는 풍운아 허균의 색다른 이력(도문대작-1611년 허균이 전국의 식품과 명산지에 관하여 적은 책/네이버 )을 알아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오늘날로 치면 백종원 정도의 격으로 이해가능할지 모르겠다.
그 외 책은 자연과 생존, 연극, 경제, 종교와 철학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성애와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좋은 주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아. 그런데 제출용 리포트가 아닌이상 이만큼만 하자. 속속들이 알고 싶은 호기심을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말줄임표가 필요하지 않을까.
책태기를 걷고 있는 요즘 쓴다는 일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면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시기가 왔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읽는 일이 힘들게 다가오기 시작하면 이 역시 사심이 가득차서 버려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중이다. 오늘은 날이 좋다. 좀 걷다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가 출간 된지도 오래되었는데 이렇게 다시 읽어보니 좋네요. 특히나 인문학이라는 학문적 특성상 거리감이 조금 있어서 쉽게 접할 수 없었는데 하루에 조금씩 인문학을 접해볼 수 있는 카테고리 구성을 갖고 있는 책이 출간되어서 좋아요. 퇴근길 인문학 수업이라는 타이틀도 좋구요. 원래는 종이책으로 구매하려고 했는데 종이책으로 구매하려고 하니 책이 너무 크고 휴대성이 안좋아서 결국 이북으로 구매했네요. 나중에 핸드북 사이즈로 출간된다면 종이책으로도 구매해보고싶어요.
파트가 나누어져있어서 관심분야에 따라 질리지않게 이것저것 섞어보면 괜찮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철학파트가 조금 지루했습니다. 한 주제에 맞추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다섯개의 글이 묶여있는 것은 괜찮은 구성인 것 같은데 주제가 맞지않으면 조금 지루하기도해요. 하지만 책의 구성은 나름 알찼던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유익했어요. 잘 읽었습니다.
이 책은 2013년부터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인문학 아카데미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공공도서관과 학교에서 성황리에 진행중인 강연의 내용들을 다듬어서 책에 싣고, 일부는 특별히 필진을 모시기도 했다. 총 12명의 필진이 자신의 전문분야를 가지고 월,화,수,목,금 5일에 하나씩 짧은 강의를 하는 형식을 갖췄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름 인문학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자부심(?) 같은 게 있었다. 에이 내가 그래도 뼛속까지 문과인데, 라는 생각. 그래도 웬만큼 수박 겉핥기는 해봤다, 라는 생각.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나의 착각은 산산조각나버렸다. <퇴근길 인문학 수업>에 실린 이야기들은 그 두께만큼이나 깊이가 깊었고, 필진 열두 명의 다양한 구성만큼이나 말하는 범위가 넓었다. 제 1강의 저자는 최형선이라는 분이다. 사실 이번에 처음 본 저자인데 생태학자라고 한다. 무심코 책을 넘겼는데 이건... 늘 문과의 글만 읽어오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뻥을 좀 보태서 글의 98%는 동물과 생물 이야기이다. 이게 왜 인문학이지? 인문학 수업이라면서 왜 1강부터 생물 이야기로 나오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물론 2강부터는 다른 저자의 전혀 다른 글이 나오겠지만, 왠지 제목이 주는 기대감과는 다르게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지 한참 지났음에도 리뷰를 쓰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렸던 이유는 팔할이 '1장이 가져다 준 까마득함'이었다(심지어 뒤에 11강이 더 남았기 때문에!).하지만, 아마 이 책이 아니었으면 이런 분의 글을 읽을 기회도 없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에 나오는 다른 저자의 글 중에도 내 취향에 맞는 글이 있고 아닌 글이 있다. 중간쯤에 나오는 조선시대 청나라에 불었던 한류(韓流)이야기나 수레 이야기처럼 내 취향에 맞는 이야기들, 얼마전 비트코인 대란으로 인해 유명해졌던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 등 최근 이슈였던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있었다. 밀덕(밀리터리 마니아) 취향에 딱 맞춘 한 저자의 전쟁사 이야기는 마치 유튜브를 보듯 재밌게 읽었다. 그렇게 쭈욱 읽고서 무심코 내가 어려워했던 제 1강, 생물 이야기를 펼쳤더니 뭔가 다르게 보인다. 저자가 던지는 모든 메시지는 문자 자체로는 동물 이야기다. 사슴이 나오고, 레밍이 나오고, 북극곰과 불곰이 나오고 급기야 남방코끼리물범까지 나오는 동안 인간과 인문학에 대한 얘기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 뒤에, 이 이야기들을 선별한 기준은 다분히 인문학의 관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구나, 라는 걸 찾았다(실은, 소제목이 아니었다면 평생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인문학이라는 건 참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인문학이야, 라고 정의할 수도 없다. 누구는 경제 얘기만, 누구는 전쟁 얘기만, 누구는 동물 얘기만 주구장창 했지만 결국은 이 모든 것이 다 인문학이고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썰풀기(이야기)이다. 함부로 인문학에 대해서 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고, 인문학을 함부로 지루하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을까. 그건 어찌 보면 인문학을 너무 좁은 범위에 가두는 것이며, 사실은 그 비좁은 영역을 벗어나면 얼마든지 매력뿜뿜하는 이야기들인데 말이다.
주어진 삶을 능동적으로 즐기며
누리는 건 그의 몫이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은 정말 퇴근길에 읽고 싶어서 전자책으로 구매했다.
그런데 내가 직접 운전을 해 출퇴근을 하다보니
커피타임때, 혹은 스케줄의 사이사이에 오며가며 읽었다.
그렇게 멈추면서 읽어도 짧은 호흡이라 끊어져도 무리가 없었고,
읽으며 오히려 생각할 텀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할까.
아무튼 부담없이 읽혔고, 남는 것도 남았다.
전자책으로 한번 읽고나니, 종이책을 살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들었는데
그즈음, 종이책을 선물받았다. 마법같은 일이었다.
읽어야할 책들이 사실 "책들의 의자"에 산처럼 쌓여있었는데
굳이 이 책을 다시 집어든 것도 그런 마법의 연장선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한번 더 읽고 쓰리라 미루던,
"퇴근길 인문학 - 멈춤" 리뷰를 쓰기 시작한다.
처음 내가 이 책을 펼쳤던 날, 나는 의아했었다.
인문학이라더니 왠 사슴이야기? 하며.
그런데 첫번째 장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이 책에 빠져들었고,
그때부터는 이 책의 제목은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책 속에 가득한 이야기들만 마음에 가득했을 뿐.
바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둘러싼 세계와 마주하라는 부제처럼
난 속절없이 책에 빠져들었고, 어느새 두번을 읽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읽을 수 있는 대부분의 것을 좋아하지만
여기 적힌 이야기들은 부담없어 좋았고,
굳이 외워야지, 익혀둬야지 하지 않아 좋았다.
책이 월요일에서 금요일로 나누어져있는 것도 색달랐고,
글쓴이가 각각 달라서 지루할 틈도 없었다.
읽으며 메모한 문장도 너무나 많았고,
잠시 멈추고 생각하고 싶은 부분도 참 많았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면
현재의 삶이 얼마나 가치있는지 알게 되지 않을까라는 물음에서
문득 내 삶을 돌아보기도 했고
동성애나 조선시대의 한류 등을 이야기할 때에는
잘 몰랐던 부분을 듣는 학생처럼
나도 모르게 귀를(정확히는 '눈'을) 쫑긋하고, 자세를 고쳐잡았다.
아무래도 단락으로 구분되다보니
아주 깊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오디오북을 듣듯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내리다보면
분명히 마음 속에 남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 범위는 경제, 건강에서부터 역사나 고전까지, 매우 다양하게.
이 책을 읽으며 '견디는 힘을 키우며 변신 능력도 키워야한다'는 책 속의 말처럼,
이제 인문학도 형태를 바꾸어
한결 친근한 자세로 우리곁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두번째 읽었지만, 나는 종종 이 책을 다시 꺼내들리라 예상된다.
무엇인가 읽고 싶지만 머리아프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가벼운 책으로 시간낭비하고 싶지는 않은 날.
아니면 차를 길게 타야하는 어느 날.
이 책이 딱 그런 책이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의 지적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는 책이었다. 매일 다람쥐가 챗바퀴를 굴리듯 돌아가는, 더 많은 직장인의 갈증을 해소해주기를 바래본다.
* 이 책은 한빛비즈 출판사를 통해 지원받았으며,
책읽는 엄마곰이 직접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