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클림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만큼 클림트의 그림은 유명합니다. 저도 클림트의 그림 '키스'로 처음 클림트를 접했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제외하곤 구스타프 클림트에 대해 아는 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클림트라는 사람에게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클림트는 지금은 물론 생전에도 매력적인 예술가라는 것도 알게되었습니다.
언제 처음 클림트 그림을 봤는지 모르겠다. 누구 그림이든 처음 본 게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그림은 다 책에서 봤다. 그래서 기억하지 못할까. 누군가는 그림을 실제 보고 그 날을 기억할지도 모를 텐데. 실제 그림을 보는 느낌이 어떤지 잘 모른다. 전시회는 한번도 가 본 적 없으니. 가끔 도서관에 동화책 원화를 둔 적 있는데, 그런 건 거의 스쳐지나갔다. 그것도 그림이니 한번쯤 잘 봤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어서 그랬겠지. 그림을 즐기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나도 그림 보는 거 좋아하기는 한다. 난 책에 실린 그림이면 된다. 그렇다 해도 그런 거 자주 안 보는구나. 내가 아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만 조금 안다. 구스타프 클림트도 이름이 잘 알려졌구나. 클림트는 그림 조금과 이름밖에 몰랐다. 다른 작가도 다르지 않구나.
대단한 한사람이 살거나 갔던 곳을 찾아가고 그 사람을 이야기하는 이 책은 이번이 네번째다. 어딘가에 간다 해도 그곳 모습보다 그 사람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듯하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읽는 건지도 모르겠다.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1862년에 뇌출혈로 쓰러지고 독감에 걸려 죽었다. 스페인 독감이 퍼지던 때였나 보다. 클림트 아버지는 쉰여섯에 뇌출혈로 죽고 동생 에른스트는 스물여덟에 심근경색으로 죽었다. 심근경색은 나이 많은 사람한테만 나타나는 게 아닌가 보다. 아버지와 동생 이름은 에른스트고 아버지가 죽고 여섯달 뒤에 동생이 죽었다.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클림트는 자신도 아버지처럼 뇌출혈로 죽을 거다 생각했단다. 그런 생각을 오랫동안 해서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클림트는 쓰러지고 마음이 약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다 죽는다. 그건 아무도 피할 수 없다. 클림트가 죽음을 더 생각하고 그림을 그린 건 1910년이다. 1910년부터 1915년까지 클림트는 <죽음과 삶>을 그렸다. 삶과 죽음이라 말할 때가 더 많은데 클림트 그림은 죽음과 삶이구나. 이 그림 처음 봤다 생각했는데, 다른 데서 한두번 본 것 같기도 하다. 클림트 그림 <키스>와는 많이 다른 색이다. 클림트 하면 황금색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클림트가 처음부터 그런 그림을 그린 건 아니었다. 그림에 실제 금을 칠했단다. 이건 이번에 알았다. 클림트는 친구 프란츠 마치와 동생 에른스트와 미술학교를 마치기 전에 예술가 컴퍼니를 만들었다. 그때 그린 그림은 부르크 극장 천장화와 빈 미술사 박물관 벽화다. 빈대학 천장화도 그릴 뻔했지만 그건 못했다. 나중에 다시 의뢰받았지만 클림트 그림을 그때 사람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그림이 바뀌었으니 말이다.
클림트는 일찍 이름을 알렸다. 천장화를 그리던 한스 마카르트가 갑자기 죽어서 클림트와 친구와 동생이 그 사람이 하려던 일을 대신했다. 프란츠 마치는 한스 마카르트를 이으려 했지만, 클림트는 그것과 다르게 그리고 싶었다. 클림트가 영감을 얻은 건 비잔티움 제국 모자이크에서였다. 그렇게 해서 클림트는 누구와도 같지 않은 그림을 그렸다. 그래도 전원경은 클림트를 빈 사람이다 한다. 클림트가 산 오스트리아는 새로운 걸 받아들이지 않았다. 황제부터 그리고 사람들은 정치보다 예술을 즐겼다. 그건 황제가 민족주의가 싹트지 못하게 해서 그런 거기는 했다.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바뀌었겠지. 좀 늦어도. 클림트가 예전 것을 받아들이고 그림을 그렸다 해도 내용은 앞서지 않았나 싶다.
에밀리 플뢰거는 클림트한테 중요한 사람이었다. 동생이 결혼한 사람 동생이었는데. 클림트는 에밀리하고 결혼하고 싶어했을지. 에밀리는 의상 디자이너로 자기 일을 했다. 그 일을 하고 싶어서 결혼은 생각하지 않았단다. 에밀리 생각은 그랬겠지만 클림트 마음은 어땠을지. 에밀리는 클림트가 죽고 클림트가 쓴 편지를 많이 태웠단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게 알려지면 안 좋겠다. 클림트 사생아가 열명이 넘는다니. 난 그런 사람에서 그림 그린 사람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쩐지 대단한 사람 자식은 거의 부모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부모가 무척 대단하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 클림트는 풍경화도 그렸다. 클림트는 다른 곳에 잘 다니지 않았는데 여름이면 에밀리와 식구와 아터 호수에 갔다. 거기에서도 그림을 그릴 때가 더 많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곳이 있었다니 좀 부럽구나.
그림을 보고 그걸 그린 사람 마음을 다 알기는 어렵겠지. 클림트는 자기 그림 이야기는 하지 않았단다. 그림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생각해도 된다고 여긴 건지, 말 안 해도 알겠지 한 건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잘 말하는 사람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난 그냥 그림만 봐야겠다.
희선
☆―
자신을 말하지 않는 대신, 클림트는 작품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클림트 그림들은 화가 한사람이 그렸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경향은 <키스> <아델레 블로흐 - 바우어의 초상> <다나에> <유디트>처름 금을 재료로한 황금시대 작품들이지만, 그밖에도 클림트는 조용하고도 장식 같은 풍경화들, 초창기 전통 역사화들, 1910년 뒤에 중점으로 탐구한 동양풍 장식 초상화들, 삶을 우의화한 만년 작품들을 남겼다. 그는 한 장르에서 다른 장르로 넘어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한번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하면 본래 스타일에 어떤 미련도 보이지 않았다. (285쪽~286쪽)
<유디트> 1901년
제목에도 황금빛 '키스의 화가'가 붙을 만큼 <키스>라는 작품이 유명하지만 나는 <유디트>가 더 강렬하게 다가왔었다. 농염하고 관능미가 넘쳐나는 여인의 손에 들린 목. 그 목 보다 여인의 관능미에 시선이 가는 그런 <유디트>는 어느 <유디트>보다도 사실적이지 않았고 환상적이었다. 예술이 모두 사실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저런 농염함으로 유혹해 가차없이 목을 잘라내 목적을 달성하는 것,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저런 무서운 여인에게나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여겨지게 만드는 클림트의 <유디트>가 키스보다 강렬했다. 그런데 그림을 다시 보니 일그러진 눈과 벌어진 입이 조금 바보같아 보이기도 하다.
<물뱀 I> 1904~1907년
표지의 <물뱀 I>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금빛 머리결에 사로잡힌다. 녹생 삼각형의 잎사귀와 동그랗게 표현된 꽃 장식이 앙증맞다. 야하고 노골적인 에로틱한 그림이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생각만이 든다.
저자는 왜 클림트이냐는 질문에 '놀라운 독창성'이라고 답한다. "그의 캔버스를 채운 오묘한 황금빛 여자들은 과거 그 누가 그린 여인과도 비슷하지 않다. 후대도 마찬가지다. 클림트 이후로 정교한 황금의 장식을 온몸에 휘감은 여인을 그린 화가는 아무도 없다. 이 때문에 클림트의 그림은 특별하게 두드러지고 때로는 극도로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그림을 갑갑할 정도로 가득 메운 장식들은 유럽과 아시아의 어느 경계선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놀라운 독창성은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이것이 내가 클림트를 이 책의 주제로 선택한 이유였다."(13쪽)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18년 타계할 때까지 빈에서만 살았다고 한다. 저자는 "클림트는 분명 천재였고 두드러지게 혁신적인 예술가였지만, 그 이전에 빈 사람이었다. 그의 그림들은 모두 빈이라는 아주 특별하고 시대 착오적인 공간이 아니고서는 잉태될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이었다."(16쪽)고 말하며 빈에 대해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부유하지만 묘하게 시대착오적이고 허세에 빠져 있던 도시' 그런 빈의 모순을 클림트의 그림은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구스타프 말러의 말을 인용한다. "만약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면 나는 빈으로 갈 것이다. 빈에서는 모든 것이 20년 늦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빈은 19세기 말에 바로크 스타일의 궁전과 고딕 양식의 교회를 지었던 시대 착오적인 도시였다. "그 혁신 속에서 발견되는 무수한 모순과 불균형들은 천재이기 이전에 빈 사람이었던 클림트가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한계가 클림트의 작품을 19세기도, 20세기도 아닌 제3의 시간과 공간을 담게 하였다고, "클림트의 걸작들은 변화하는 시대와 복잡하고도 모순된 한 도시가 놀라운 천재성을 만나 이뤄낸 유니크한 혁신이었다."(18쪽)고 저자는 프롤로그를 끝맺는다.
저자가 가장 처음 찾은 곳은 클림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 빈 외곽 히칭지역에 위치한 클림트 빌라이다. 1912년부터 타계하던 1918년까지 머물렀던 곳으로 빈을 떠날 수 없는 클림트의 한계점이라 말한다.
<죽음과 삶>
56세, 28세에 죽음을 맞은 아버지와 동생으로 자신도 60세전에 죽을 것이라는 공포에 시달렸던 클림트는 1910~1915년에 걸쳐 완성한 <죽음과 삶>에 열정을 기울였고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여겼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금세공업자인 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받았다. 장식 공예학교를 입한한 클림트는 17세부터 본격적으로 돈을 벌었다. 1879년 동생 에른스트, 친구 프란츠 마치와 함께 예술가 컴퍼니를 창립한 클림트에게 일이 넘쳐났다. 거기에 1884년 회화의 왕자로 불렸던 한스 마카르트의 죽음은 예술가 컴퍼니에 새로운 기회가 되었다. 바로크 스타일 건축들은 화려한 천장화를 필요로 했고 예술가 컴퍼니는 찬장화를 그리는 일을 맡았다.
1892년 아버지 에른스트가 뇌출혈로 사망하고,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예술적 동지였던 동생 에른스트가 심근경색으로 급사했다. 이 때부터 가족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생 에른스트의 죽음 후 예술가 컴퍼니는 와해되고 몇 년 동안 클림트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1898년 <헬레네 클림트의 초상>은 일곱살 된 조카를 그린 작품으로 죽은 에른스트의 딸로 클림트가 후견인이었다. 동생의 아내의 여동생 에밀리 플뢰게는 클림트의 영원한 동반자이기도 하다.
뮌헨의 젊은 화가들이 아카데미풍만을 추종하는 기존 화가에게서 스스로를 '분리'한다는 뮌헨 분리파를 결성하자 바로 빈에도 영향을 미쳐 1897년 5월 '오스트리아 예술가 분리파 동맹"이 결성됐다. 클림트는 실질적인 회장으로 추대되었고 회원은 50명이 넘었다. 모라비아 출신 삽화가로 파리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알폰스 무하도 창립 회원이었다. '이들은 모두 오스트리아 예술가 조합의 융통성 없는 태도, 지나친 역사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프리드리히 거리의 제체시온은 빈 분리파의 성전으로 간결하고 네모반듯한 형태에 황금빛 돔을 얹고 있다. 1898년 첫 전시에 534점이 출품돼 218점이 팔렸고 5만 7천여 명이 방문을 했고 보수의 상징이던 프란츠 요제프 황제도 껴 있었다.
<팔라스 아테나>
1898년 두 번째 빈 분리파 전시에 출품된 작품이다. "빈의 상류층이 선호하던 아름답고 우아한 역사화와 여인들의 초상에서 너무 많이 전진해왔다."(90쪽)
<금붕어> 1902년 - 내 평론가들에게
1894년 오스트리아 문화교육부는 클림트와 마치에게 빈 대학 본부 건물의 천장화를 의뢰했었다. 클림트의 스케치는 혹평을 받았고 논란을 일으켰다. 1904년 초 3만 크로네의 계약금을 돌려주고 천장화 3부작의 청탁을 정식으로 거절했다.
4자에서 저자는 클림트의 독창적 세계에 영향을 미친 이탈리아 여행을 다루고 있다. 1899년 5월 3일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성당을 방문했다. 그리고 <베토벤 프리즈>를 제작한 이듬해인 1903년 라벤나를 방문했다.
"라벤나 여행은 클림트에게 그의 운명을 일깨워주었다. ...... 초기 기독교 시대에 제작된 1500년 전의 라벤나 모자이크를 통해 원형의 순수와 위대함, 크리고 금이라는 재료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눈을 떴던 것이다."(127쪽)
클림트는 양감과 사실성을 포기하고 장식과 선, 평면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라벤나의 금빛 모자이크는 '평면의 영원한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보이는 그대로 묘사한다고 해서 그림이 영원한 생명력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키스> 1908년
저자는 '클림트의 삶과 예술의 결정체'라는 소제목을 붙였고, '화가로서 클림트의 인생이 압축된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 그림 속 남녀의 합인은 우주의 창조인 동시에 소멸이다. 그것은 더 이상 위험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다만 찰나의 순간인 동시에 영원한 꿈, 완전한 이상과 연결될 뿐이다."(162쪽)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클림트 하면 떠올리는 작품이다. 물론 나도 이 작품을 좋아한다. 무릎을 꿇고 있는 땅이 절벽 끝이라고 하는데 상상해보면 절벽끝까지 도망가는 여인을 쫓아가 끌어앉고 키스를 나누려는 남자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진다고 할까? 아름다운 작품이다.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1907년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 1902년
저자는 6장의 제목에 '에밀리, 클림트의 영원한 뮤즈'라고 붙였다. '클림트의 여자를 넘어선 유일한 존재'라는 소제목에는 찬성하지만 뮤즈라는 데는 나는 찬성하지 못하겠다. 뮤즈는 작품에 영감을 주는 대상이 아니던가. <키스>의 여인도 에밀리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만 내 눈에는 아델레로 보인다. 인생의 동반자가 꼭 뮤즈가 되라는 법은 없지 않겠는가. 클림트의 뮤즈는 아델레로 보인다.
<닭이 있는 마당 풍경> 1916년
7장에서 '풍경화, 클림트 이면의 그림들'이란 제목으로 아터 호수에서 여름을 보내던 클림트의 이야기와 클림트가 아터 호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 관능과 억눌린 정열로 들끓는 여인들의 초상화에 집중하던 시기에 극도로 고요하고 관조적인 풍경화를 동시에 그려냈다."(15쪽)고 말한다. 하지만 후기에는 풍경화에서도 장식성이 강조되고 있다.
<처녀> 1913년
아터 호수의 풍경화 이야기에 이어서 클림트의 종말을 이야기한다. 그로서 에곤 실레와 오스카 코코슈카의 신예의 등장에 위협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예술의 종말을 맞이하기 전에 56세에 생을 마감했다.
클림트가 죽고 나자 사생아가 10명이 넘게 나타났다고 할만큼 여자관계가 복잡했다고 한다. 클림트 아틀리에에는 모델인 반라의 여인들이 돌아다니고 살기도 했다고 한다. 뇌출혈로 쓰러지는 순간 에밀리를 찾을만큼 에밀리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평생의 동반자였고 그만큼 의지했을 것이라 한다. 에밀리는 클림트 죽음 후에 주고 받았던 편지들 일부를 없애버렸다고도 한다. 난 에밀리를 사랑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뮤즈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작품 속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여인은 아델라가 아니던가.
그리고 우리는 클림트 작품 속의 여인을 아름답게 여기며 기억한다. 그 여인은 에밀리가 아니라 아델라다.
물리적인 영감은 황금빛 모자이크였겠지만, 그의 후기, 황금 시대가 지나간 후의 작품을 봐도 클림트는 클림트이며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모든 작품의 원천이 여성이라는 것에 (그의 여성 편력을) 용서할 수는 없지만, 이해는 할 수 있겠다.
미술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클림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장 유명한 클림트의 그림 '키스'를 살면서 접해보지 못한 사람도 없을테고.
그냥 클림트의 그림 몇 점을 좋아하는 정도에서 만족하고 지내고 있다가 아르테에서 나오는 전문교양서적 같은 시리즈를 알게 되었는데, 표지를 보자마자 너무 아름다워서 사고 말았다. 아마 책을 살 때쯤 영화 에곤 쉴레를 본 것 같기도 하다. 거기서 에곤 쉴레와 클림트의 우정에 대해 나왔고 때마침 나는 에곤 쉴레전에도 다녀왔기에 클림트에 대한 호기심도 함께 증폭되었던 것 같다.
여튼 아르테의 책은 표지만 예쁜게 아니라 화가 클림트의 생애와 그의 화풍의 변천사, 그와 교류했던 다른 화가들과 그의 관계 등에 대해 자세히 상술하고 있고, 전문서적이지만 중간중간 적절하게 아름다운 클림트의 그림을 배치하고 있어서 나와 같은 문외한의 기쁨까지 충족해준다.
9.2
나랑 여행 스타일이 대단히 잘 맞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돼 비행기를 탈 수 있게 된다면 오스트리아에 가볼까 하고 얘기해본 적이 있다. 그때가 언제 올 줄 알고 너무 김칫국 마시는 게 아닌가 싶지만... 아무튼, 그 친구가 비엔나 커피 컨셉의 카페 프랜차이즈 매니저로 일해서 그런지 오스트리아에 관심이 가는 모양이던데 나도 호기심이 가 검색해보니 오스트리아도 안 알려져서 그렇지 꽤 괜찮은 여행지일 것 같았다. 보통 오스트리아는 동유럽 여행으로 묶여서 체코나 헝가리로 갈 때 들르는 곳 정도로 여겨지던데 - 아니면 오스트레일리아와 헷갈리거나... - 그렇게 취급하기엔 막강한 문화적 유산이 많은 나라라는 게 내가 검색을 통해 받은 인상이었다.
특히 클림트가 오스트리아의 국민 화가 대우를 받는 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점이었다. 그동안 너무 뭉크한테만 관심을 가진 것 같아서 슬슬 다른 화가한테도 입문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오스트리아에 관심도 생겼겠다, 조금 뜬금없긴 하지만 어쨌든 클림트도 궁금해져 이 책을 펼치게 됐다.
이 책은 '우리 시대 대표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란 취지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에 속한다. 이 시리즈는 특유의 전문성 있는 내용과 빼곡히 수록된 사진 등 여러모로 고급진 컨셉을 자랑하는데 저번에 읽은 <뭉크>가 워낙에 괜찮아서 이번 책도 기대하며 읽었다. 아무래도 내가 클림트에 무지한 터라 <뭉크>를 읽을 때보단 흥미가 덜하긴 했지만, 클림트의 작품 활동을 그가 일평생을 살았던 도시인 빈의 특성과 연관을 지어 해석한 것과 시간순이 아닌 키워드에 따라 클림트의 생을 따라간 것, 그리고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에 얽힌 에피소드 등은 꽤나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특히 이 초상화의 경우엔 내가 작년에 뉴욕 노이어 갤러리에 갔을 때 직접 본 작품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그 그림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니... 이 에피소드는 <우먼 인 골드>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는데 그 영화도 한 번 봐야겠다. 참고로 그 초상화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노이에 갤러리는 사진 촬영이 금지라서 어쩔 수 없었다.
사실 클림트의 일대기를 시간 순대로 따라가지 않은 건 약간 불친절한 과정이기도 했다. 일부 대표작만 알지 화가에 대한 선행 학습이 거의 전무했기에 약간 따라가기 벅찼던 측면이 없잖았다. 대놓고 비교하긴 좀 그렇지만 클림트가 뭉크에 비해 비교적 승승장구했고 순탄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미술 그 자체를 감상하기보단 작품과 화가에 관련된 다양한 드라마에 좀 더 관심이 많은 나에게 순전히 클림트의 작품의 테크닉적 부분을 살펴보는 전개는 처음엔 흥미롭다가도 어딘가 말이 반복된다 싶을 즈음엔 집중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클림트의 살펴봄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분리파와 급격한 화풍 변화가 모두 흥미롭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적은 내 입장에서 생경했다 뿐이지 평소 미술이나 클림트에 관심이 있던 독자라면 더없이 충실한 구성의 책일 테니 내 개인적인 감상은 귀담아 듣지 않아도 좋다. 다만 이런 나한테도 빈과 클림트의 관계를 살펴본 책의 내용은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단 걸 강조하고 싶다. 찬란했던 옛시절의 광취에서 벗어나지 못해 프랑스나 독일이 여러모로 진보를 거듭할 때 과거의 재현에 관심을 기울인 시대착오적인 빈, 그 빈의 분위기는 클림트의 작품 세계에 고스란히 반영됐는데 초반엔 주류에 편입하고자 비교적 평이한 그림을 그리던 클림트가 얼마 안 있어 철저하게 클림트 본인이 아니면 누구도 그릴 수 없는 작품을 그려낸 건 소름 돋는 일이었다. 그의 대표작이 다 분리파에 속했을 때 그려진 것인데, 이 '분리파'가 기존 예술계와 자신들의 작품 세계를 분리시키려는 취지에서 붙여진 이름인 걸 생각하면 클림트만큼 이 이름이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듯하다.
클림트가 영리했던 건지 아니면 의외로 보수적이기 이를 데 없는 빈이지만 그만큼 클림트가 독보적이라 그런 건지 고흐나 뭉크가 수모를 겪은 것과 달리 클림트는 논란은 있을지언정 화가로서의 명성은 바닥으로 떨어졌던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클림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에 '황금'과 '장식'이 많아 너무 겉멋에 치중하는 것 같아 솔직히 말해 그리 정이 잘 안 갔는데 이렇게 일대기를 다 훑어보니 정이 안 간다는 이유로 폄하할 위인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는 독보적인 예술가였고 그 자신의 예술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단 건 귀감이 될 만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화가의 삶과 드라마에만 주목한 것 같은데 이 책을 읽은 뒤부터는 그림의 기법에 대해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속된 말로 'X손'의 소유자인데 그래서 그런지 유독 내게 거리감이 느껴졌던 화가들이 이제는 경이로운 동시에 어떤 화가나 크든 작든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끼졌다.
마냥 행복하기만 한 삶은 아니었지만 화가로서의 명성에 있어서는 한이 서릴 만큼의 여한은 없어 보이는 클림트이기에 읽으면서 묘하게 힐링도 됐다. 그리고 대부분의 혁신적인 화가가 그렇듯 클림트는 그의 사후 100년이 지난 뒤에는 아예 국민 화가로 칭해질 정도로 격이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그만한 대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음을 공감할 수 있던 내용의 책이었는데 마지막 장까지 덮고 나니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오스트리아로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져 '오스트리아에 관심이 생긴 김에' 읽은 게 아주 적절한 동기가 아니었나 싶다.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고 작년에 대충 구경하고 나온 감이 있는 노이에 갤러리도 다시 가고 싶어졌는데 지금 유럽이나 뉴욕이나 상황이 별로라서 그 날이 언제 올는지 모른다는 게 너무 답답하다. 정말 언젠가는 갈 생각인데... 몇 년은 기다릴 각오는 해야겠다. 그때까지 이 마음이 변치 않았으면 좋으련만.
약소하지만 내가 작년에 뉴욕에 갔을 때 사진 찍은 클림트의 작품을 올린다. 그때는 클림트에 그렇게 관심이 있을 때가 아니라서 두 장밖에 없다...
모마MOMA에서 본<희망2>. 임산부를 그린 그림의 제목이 '희망'이라니, 의미심장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메트로폴리탄에서 본 <메다 프리마 베시의 초상>. 클림트의 후원자 중 한 명의 딸을 모델로 그린 그림인데 그의 장식미가 잘 표현된 그림이다. 그나저나 화가에게 있어 후원자의 존재는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단 걸 클림트의 작품을 보면서 많이 느꼈다. 저렇게 그림에 공을 들이는데 후원해주는 사람이 따로 없으면 재료값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어쩔 수 없지만 정말 돈이 중요하긴 하다.
망했다. 예술가의 흔적을 밟는 여행기라 생각하며 대리만족할랬더니, 포기는커녕 더더욱 여행 욕구가 뿜뿜! 와~ 많은 이들이 예술가를 찾아, 그 고전풍의 도시를 만나고 싶어서 찾아 떠나는 빈! 그곳을 가봐야 진정 예술을 관람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 빈! 가보고 싶다. 그 빈을 가봐야 진정 내가 사랑하는 그림을 제대로 보고 왔다고 할 수 있을 듯한 느낌! 이라며 괜히 여행 욕구만 솟구친다.
클래식 클라우드 발간 계획을 듣자마자 아, 이건 정말 소장각 시리즈구나 했다. 실제 책을 보니 더 예쁜.. 책장에 꽂혀 있는 걸 보니 더 멋진.. 여러권 꽂혀 있을 때 더 빛이 나는 이 책. 게다가 내놓는 사람들마다 매력이 한가득.. 클림트, 니체, 셰익스피어, 모차르트, 뭉크 등 우리가 한 번이라도 들어봤을 법한 이들이 무척 많다. 표지부터 엄청 예쁘다.
그 예술가의 발길을 따라 옮겨 다니면서 그 사람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여행기라고 생각했는데 ? 클림트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 여행기라기 보다는 정말 그냥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것들을 보며 최소한 이 장소에 가서 이 작품은 꼭 보고 와야지 하는 계획은 쉽게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더 여행 욕구가 뿜뿜!
클림트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구나 싶을 정도. 책을 읽으면서 아, 클림트가 빈 사람이었지 했다. 화려한 금 장식의 그림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뿐 클림트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는 클림트와 관련된 자료가 하나도 없었다. 누군가가 만든 창작물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이 되는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시대흐름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클림트의 단편적인 지식들로 인해 몹시 화려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 다른 의미로 화려한 사람인 듯 하긴 하다 ? 성실하고, 순수한 면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클림트의 배경 지식에 대해서 정말 하나도 몰랐던 것 같다.
- 클림트의 걸작들은 과거인 19세기도, 미래였던 20세기도 아닌 제3의 시간과 공간을 담고 있으며, 그 독특한 아름다움은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은 개성’으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클림트의 걸작들은 변화하는 시대와 복잡하고도 모순된 한 도시가 놀라운 천재성을 만나 이뤄낸 유니크한 혁신이었다. (18)
그러면서 빈이라는 곳이 엄청난 곳이라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각종 천재들이 탄생했던 이 곳. 저자의 정치적, 역사적 배경 설명으로 그런 빈이었기 때문에 많은 천재들이 자연스레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억눌린 상황에서 해소구가 문화 예술로 향할 수 밖에 없었으니, 약간의 재능이라도 있었던 사람은 크게 키울 수 있는 환경이었을 듯 하다. 각종 천재들이 활개치기 좋은, 그런 시대 배경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아는 그림이었는데, 새삼 클림트 그림이라니 놀라움..)
저자는 끊임없이 클림트가 먼 과거와 변방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격변하는 시대 상황을 따르지 않으려고 하는 모순되는 공간인 빈에서 클림트 또한 자신만의 성을 세웠다. 금, 모자이크, 장식이라는 먼 과거의 요소를 현대적 감각으로 승화 시켰다. 저자는 이를 황금시대라고 불렀다. 많은 화가들이 그렇겠지만, 황금시대 이전의 클림트 작품이 오히려 더 새롭다. 르네상스를 잇는 듯한 분위기의 고전풍 그림들. (아, 이런 그림들도 그렸구나..) 이미 그때부터 클림트는 주목 받았다. 게다가 그 당시 거장인 한스 마카르트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으면서, 큰 기회가 클림트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면, 시대가 그를 밀어주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에 대한 기록을 스스로 거의 남기지 않았다는 게 의외였다. 오롯이 작품 활동만 하고 있었다니. 사생활이 노출되어 다른 이야깃거리로 도마 위에 올라가는 게 싫었던 걸까? 아니면 작품으로만 이야기 되고 싶었던 걸까
- 그 무엇이든 간에 자신을 바쳐서 해야만 하는 일을 가진 이는 행복한 사람이다. 클림트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었다. (240)
저자는 클림트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니까. 적어도 클림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크게 제약 없이 마음껏 하며, 적당히 누리면서 살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 일인가? 그것이 우리에게도 얼마나 다행인가. 그의 그림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들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으니.
몇 안 되는 그가 직접 이야기한 것 중 한 내용이다.
- 젊은 예술가들은 늘 기존 예술가들의 작품을 밝고 일어서길 원하지요. 그래야 자신의 세계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269)
예술의 영역에서만 이런 건 아니리라.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뛰어나기 위해서는 그 전의 거장을 물리쳐야 한 순간에 스타덤에 오를 수 있다. 클림트 역시 그 당시의 거장(?)을 물리친 건 아니라도, 그런 사람이 없어졌기에 명성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것이 작품을 볼 때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 작품 자체가 무척 독특하고 뛰어나기 때문에 유명해질 수도 있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예술가가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가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야 더 잘 볼 수 있고, 그래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그들의 진짜 눈, 혜안을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에밀리와의 관계에 대한 언급에서 찝찝한 점이 있다. 저자와 그 당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클림트와 에밀리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사랑이 완성되지 못했다고 한다. (여러 그림에 그 슬픔(?)이 반영되었고.) 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사랑의 완성일까? 그리고 클림트가 정말 원했을까? 클림트는 원했고 에밀리만 원하지 않았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그렇게 다른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사생아를 14명이나 태어나게 만든 그가? 그들은 그들 나름의 삶의 방식으로 사랑을 완성했던 것이다. 어쩐지 에밀리가 직업 여성으로서의 지위와 명예 때문에 클림트를 거부한 듯한 말들은 불편했다. 물론 에밀리가 그런 사랑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클림트가 가정을 갖길 원했을까? 난 클림트 또한 원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들만의 사랑 방식이리라. 왜 그를 놓고 완성되었니 안 되었니 평가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불만이 있었다면 그렇게 일생을 유지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보다 열정적인 클림트, 내 생각보다 깔끔하지 않은 외모였던 클림트.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멋있는 그림을 그린 클림트, 내 생각보다 더욱 멋진 예술가였던 클림트. 그를 찾아 빈으로 여행해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