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릴 수 있을까요? 어렵지 않은 질문입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질문은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니까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하면 포기하면 그만입니다. 그럼에도 이 질문을 다시 한 번 고민하게 하는 까닭은 영화「변호인」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되돌려「변호인」을 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릴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더 묵직하고 호소력이 묻은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즉, 바위는 아무리 강해도 죽은 거고 계란은 아무리 약해도 살아있다는 것, 그래서 계란은 바위를 넘을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다운 삶을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다운 삶. 이것은 누구에게나 ‘해당사항’ 이니까요.
사회역학자 김승섭의『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사회 곳곳의 부당하고 불평등한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몰랐다고 변명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차별, 혐오, 질병, 가난, 재난, 성소수자라는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픔을 듣고 있으면 앞서 말한 누구에게나 해당사항이었던 사람다운 삶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계란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해당사항은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대답으로 되돌아올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은 병들 수밖에 없는데 이를 바탕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수많은 데이터는 사회적 약자가 어렵지 않게 환자가 된다는 근거를 합리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합니다. 우리는 몸이 아플 때 적절한 휴식을 가져야 합니다. 몸이 계속해서 건강에 빨간불을 깜박이며 위험 신호를 보내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멈추지 않고 달기만 하면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회적 약자들은 지금 당장의 건강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가령,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몸이 아파도 일해야만 제대로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바커 가설(Baker's Hypothesis)’에 따르면, 비정규적 근로자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인 모순이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환경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회적 약자들은 어떻게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보통 그 대답으로 적절한 치료를 많이 듣게 됩니다. 가령, 금연을 하면 폐암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처방입니다. 물론 이런 처방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폐암의 원인을 오로지 담배에게만 책임을 따지면서 담뱃값을 올려버리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담뱃값을 걱정하면서 금연을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금연에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금연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더 망가질 뿐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질병의 ‘원인의 원인’을 탐구합니다. ‘역학(Epidemiology)'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흡연은 폐암의 주요 원인입니다. 하지만 폐암의 원인을 찾아보면 그물망처럼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여러 원인이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면, '원인 그물망'의 한가운데에 있는 '거미'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금연을 하면 건강에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소득층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흡연은 아주 적은 비용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금연제도보다 현실적으로 스트레스가 없어야 금연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가 사회역학을 전공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또한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사회역학에 따르면, 사회적 약자들이 위험한 환경에 살다보니 더 많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료기술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으로 사회적인 차별과 혐오를 치료할 수 없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사회적인 문제를 사회적 약자들이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질병을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는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가능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는 사회적으로 단절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라는『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어 나가면서 ‘정의로운 건강’을 생각했습니다. 정의로운 건강은 누구나 건강할 권리가 있으며 평등해야 합니다. 정의로운 건강은 정의로운 사회와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건강이 불평등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단지 사회적 약자라는 이름으로 차별과 폭력 혹은 성적 착취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얼마든지 죽거나 죽어도 슬퍼하지 않을 존재가 되어 버리는 현실은 너무나 아팠습니다. 만약에 아픔이 아픔으로 기억되지 않았다면 공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자는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궂은비를 맞았습니다. 비록 아픔을 멈출 수 없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아픔이 길이 되기를 진심으로 변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픔이 길이 될 때 정의로운 건강이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과 고통에 한발자국 다가가며 공감하는 저자를 보면서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변호인’이 우리 눈앞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픔의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정의로운 건강을 몸소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함께 하는 세상은 이런저런 제도에서 벗어나 ‘사람이 먼저다’에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스포일러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김승섭 작가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리뷰 입니다. 도서관에서 먼저 빌려서 봤다가 이건 무조건 소장해야 되겠다 싶어서 종이책으로 구입했어요. 사실 이북으로도 있다는 게 안 비밀입니다. 작가님 돈 많이 버세요.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고요. 여태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 분야를 정말 막연하게 알고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한번더 고민하게 됩니다. 나는 이 상황과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는 사람인가 하고요. 절대 그렇지가 않지요. 저 역시 자영업자의 위치에서 제가 겪는 온갖 현실과 맞닥뜨려 살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꼭 추천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아프고 놀랍고 희망적인 이야기
아픔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픔은 그야말로 누구나 피하고 싶은 문제이리라. 그러나 아픔을 피할 수 있는 사람도 아무도 없기에, 우리는 아픔을 어떤 방식으로든 대면해야만 한다. 커터칼에 살짝 베인 상처이든, 자동차사고로 신체 일부가 불구가 되는 아픔이든, 태어날 때부터 끌어안고 살 수밖에 없는 아픔이든, 심지어 연인에게 버림받은 아픔이든.. 이 모든 아픔들은 우리에게 이런저런 모양으로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아픔은 아픈 것이지만, 그 아픔마저도 아름답게, 혹은 더 소중하게 바라보아야만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픔이 계속되지 않게 하기위해, 아픔이 더 많은 이들을 아프게 하기 전에 아픔을 더 똑바로 바라보아야만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 아픔이 새로운 길을 내어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나에게 세 가지 커다란, 그리고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그것은 아픔과 놀라움과 희망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아파보기도 처음이고, 이렇게 놀라보기도 처음이다. 그리고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희망적인 책 역시 처음이었다.
<아픔>.
이 책은 아픔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이다. 그 아픔은 사람들의 신체적 고통에 관한 것이기도 하고, 사회의 어두운 면들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아픔이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토록 아파하고 있다는 것도 잘 몰랐던 것 같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아픔으로 넘쳐난다.
직장과 학교에서 불합리한, 혹은 폭력적인 대우를 받아 우울증에 빠져있지만, 자신이 우울증인지조차 모르고 혹은 감추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 낙태를 원해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누군들 낙태를 하고 싶을까!) 수술대에 누워야만 했던 여성들, 심각한 근무여건으로 인해 과로에 시달리는 수련의들 등... 참으로 많은 아픔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상 그 모든 아픔들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었다. 사회가 형성한 거미줄에 영문도 모른 채 걸려든 사람들은 자신을 탓하며 아파해야만 했던 것이다. 원진레이온의 폐기처분 된 기계들이 한국에 들어온 이야기, 일본석면과 부산의 제일 화학이 벌이는 암담하고 음울한 이야기, 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정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 동성애자들이나 트랜스젠더들이 겪어야만 하는 사회적 차별과 따가운 눈길에 대한 이야기, 세월호와 소방관들에 관한 이야기...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들은 정말로 사회적 아픔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읽는 동안 숨을 몰아 쉬어야만 하는 대목이 하나 둘이 아니었고, 책장 위에 눈물 자국을 만들어야만 했던 대목들도 적지 않았다. 아픔으로 쓴 책이었고, 아픔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책을 대체 왜 쓰고, 왜 읽나. 낙태 문제에 대한 설명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예민하고도 복잡한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여성이 왜 낙태를 선택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그 고통스러운 당사자의 목소리에 차분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시작일 것입니다.”(38p.)
그렇다. 아픔을 대면하는 것은 아픔을 당하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일이리라.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 그 아픔을 이해할 수도, 해결할 수도, 그 아픔이 또 다른 아픔을 만들어 내지 않도록 막을 수도 없기에, 이 책은 그렇게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직접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라도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놀라움>.
이 책에서 만난 놀라운 이야기는 그 아픔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고통에 귀기울이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야기였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사회역학’이라는 용어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사회역학자들은 얼기설기 얽혀서 도무지 풀어낼 수 없을 만큼 헝클어진 질병의 사회적 원인들을 찾으려고 아픔을 당한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통계들을 붙들고 싸우기로 자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것을 거미줄이라고 부른다. 엉킨 실타래의 끝을 찾는 것은 실타래를 푸는 일에 있어서 첫걸음이지만, 그 끝부분을 찾는 것으로 결코 실타래가 풀어지지는 않는다. 지난한 인내심과 합리적인 시도들과 침착한 상황 판단이 장시간 지속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복잡한 거미줄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그 거미줄을 만들어낸 거미가 대체 무엇이며, 무슨 종류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거미줄 위를 함께 헤매고 다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사회역학자들이다. 소위 ‘원인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들의 수고가 아니면 우리는 표면에 드러난 아픔의 현상만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그들의 수고와 헌신 덕분에 사회는 아픔이 보여주는 또 다른 길들을 찾을 수 있게 된다. 그 길은 아픔이 좀 더 줄어들 수 있는 길이고 불필요한 아픔들을 방지하는 길이다. 무엇보다 그 길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길이다.
또한 트라우마와 동성애, 트렌스젠더 등에 대한 이 책의 전문적인 정보들은 사실상 처음 접하거나, 나의 일반적인 통념을 깨뜨려주는 것들이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명칭 역시 낯설지는 않았지만, 그 용어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지, 그 치유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등을 설명해주는 부분들은 이전에는 접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저자는 그 트라우마가 결국 사회적인 것이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가 함께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해 노력”(176p.)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동성애는 오래전부터 의학적으로 일관되게 질병이 아니라고 하는 설명이나 트렌스젠더는 수술을 받기 이전부터 이미 트랜스젠더라고 하는 논의들도 새로운 이야기였다. 주지하듯히 동성애자들이나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이 사회적으로 매우 심각할 뿐 아니라, 나 역시 그러한 인식에서 자유롭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이 책을 읽은 뒤, 좀 더 분명해진 것은 나에게도 이 사회에도 객관적이면서 감정적이지 않은 그들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희망>.
저자는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때 교도소 재소자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교도관들이 하는 말에 적잖은 자극을 받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마치 그들이 자신에게 ‘당신들이 뭘 알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실 참 무서운 말이고 아픈 말이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정말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나 상황을 온전히 알 수가 없다.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전혀 우리가 그들의 아픔을 알 수 없다는 인식 그 자체에서 이 아픈 이야기들의 희망이 시작된다.
저자는 아픔과 고통의 역학들을 덤덤하게 설명하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 희망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희망이 없다면 애시당초 이런 일을 할 수조차 없었으리라. 우리는 어떤 희망들을 볼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희망은 바로 공동체다. 사회의 문제를 사회가 함께 바라봐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아야 한다”(219p.)는 신영복 선생의 말을 그는 묵직하게 인용한다. 그리고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계속해서 강력하게 함께 맞는 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야기한다. “더 많이 연결될수록, 더 오래 산다”(258p.),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 해줄 것이라는 확신은 기꺼이 힘겨운 삶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이 되었”(292p.)다는 그의 말들은 공동체가 사회적 아픔에 대한 가장 강력한 처방임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오토 노이라트의 배에 관한 이야기는 참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는 망망대해에서 배를 뜯어 고쳐야 하는 뱃사람과 같은 신세다. 우리에게는 부두로 가서 배를 분해하고 좋은 부품으로 다시 조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83p.)
그렇다. 우리는 사실 다 함께 같은 배에 탄 운명공동체다. 순풍을 받으며 나아갈 때는 함께 여유를 누리지만, 배가 좌초의 위기에 처하면 함께 그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 힘을 보태야만 하는 것이다. 당장 내 선실이 안전하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지 않는다면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함께 보게 될 것이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내 일이 아닌 일은 어쩌면 없는 것이 아닐까? 조금 먼 일과 조금 가까운 일이 있을 뿐, 내가 디디고 있는 이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함께 아파하고 함께 관심을 가지고, 함께 극복해 나가기 위해 각자의 역할들을 감당하는 것이 마땅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닌가? 이 책은 나에게 그러한 도전을 강력하게 던져주었다.
또 다른 희망은 거미를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계속 그 일을 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하면서 저자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는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166p.)라고 말하며 지속적인 기록 작업을 해 나갈 것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 사회역학자들은 충분한 데이터들이 누적되어야 유의미한 통계와 결론을 얻을 수 있기에, 태생적으로 아픔과 희생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이 학문의 딜레마라고 저자는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점에서 ‘사전주의 원칙’이라는 것이 적용되어야만 한다고 역설한다. “언제 올지 모르는 ‘충분한 근거’를 기다리는 대신, 이제 불확실성 속에서 행동해야”(283p.)한다는 것이다. 사회역학자들과 의료계, 그리고 언론들은 이러한 측면에서 적지 않은 책임을 안고 있지만, 그러한 책임을 담담히 감내해 내려는 이들이 있기에 아직은 이 사회에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다행히도 참 많다는 것 그 자체가 희망이 아닐는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 책은 세상을 보는 나의 시각 자체를 크게 흔들어 주었고, 교정해 주었다. 조금 더 넓어진 마음과 넓어진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며, 나도 한 배에 탄 사람임을 잊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감당함으로써, 이 땅의 아픔들이 또 다른 아픔을 가져오지 않도록 작은 오솔길이라도 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비문학 추천도서로 추천받아 내 독서 목록에 있던 책 중 하나.
마침 도서관에 대출 가능한 책으로 있길래 바로 빌려왔다.
제목에 이끌려 선택하게 되었는데, 제목만 보면 자기성찰에 관한 책인가? 싶었다.
근데 전혀 달랐음..ㅋㅋ 사회적인 편견과 질병의 상관관계에 잘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
김승섭이라는 작가는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는 사회역학자로,
사회적 요인이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 연구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
"낙태의 경험은 평등하지 않다."
"모든 질병과 사고가 그런 것처럼, 의학적으로 위험한 임신중절 시도로 인한 피해는 역시 가난한 여성들에게 집중됩니다."
"재난은 기록되어야 한다."
"갈등을 대하는 자세가 한 사회의 실력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는 갈등을 더 부추겼다.
유가족과 생존 학생 가족을 나누고, 피해자와 국민을 떼어냈다. 우리 사회 역시 그 골을 좁히지 못했다. "
"낙인과 차별이 만드는, 질병 권하는 사회"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차별과 혐오가 있다.
나 또한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그들을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관심보다는 모른척한 적이 더 많았다.
그렇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 사람들 편에 설 수는 없었을까, 적어도 잊지 않고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던 여성들의 낙태에 관한 권리,
잊고 있었던 세월호 사건, 그리고 젠더 갈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며칠 전에 아버지의 기일이 있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밉고 싫었던 사람인데 당신의 모든 것을 간병인에게 맡긴 채 하물며 눈을 뜨는 것조차 힘에 겨워 내내 숨을 몰아 쉬던 나의 아버지. 삶은 그렇게 쉽게 허물어지는 것임을 푸르렀던 당신의 청춘 시절에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자면 이랬다. 물려받은 땅과 재산을 이래저래 모두 탕진한 아버지는 가족들을 이끌고 강원도 산골짜기의 탄광지대로 이사를 했고, 그때부터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형들과 누나들은 직장과 학업을 핑계로 도시로 나가 살았고, 할머니는 지인의 농사를 도우며 1년의 반 이상을 떨어져 살았으며, 집에는 나와 어린 여동생 그리고 엄마와 아버지만 남았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았던 엄마와는 달리 아버지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언제나 술에 취해 있었고, 그때마다 몇 명 남지도 않은 가족들에 대한 폭력이 이어지기 일쑤였다. 아버지를 피해 달아났던 나와 여동생은 아버지가 잠들 때까지 마을 아곳저곳을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런 생활에 신물이 났던 나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고, 결국 나는 중2 겨울 방학과 함께 형과 누나들이 있는 도시로 전학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를 누구보다도 증오했던 내가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노력했던 계기는 아버지가 6.25 참전 용사 국가유공자로 등록하였을 때였다. 부자간의 대화라고는 딱히 없이 살았던 까닭에 아버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전혀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20대 초반의 아버지가 낙동강 전투에 참전했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그리고 그 치열했던 전쟁터에서 아버지가 겪었을 충격과 공포가 아버지를 결국 알코올 중독에 이르게 했고, 술을 통해서도 지울 수 없었던 그날의 기억으로 인해 폭력적인 사람으로 변했던 것은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국가유공자라는 허울뿐인 명예가 우리 가족의 비극을 얼마나 보상할 수 있을까.
나는 김승섭 교수의 저작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는 내내 국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었다. 2017년 5월 24일 육군보통군사법원은 사적 공간에서 업무와 관련 없는 합의된 상대와 맺은 A대위의 동성 간 성관계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고, 이를 규탄하는 긴급 집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김승섭 교수는 집회 참가자들을 향한 자신의 연설 말미에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혐오의 비가 쏟아지는데, 이 비를 멈추게 할 길이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기득권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면서 또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작게라도 배운 게 있다면,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피하지 않고 함께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p.219)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아버지는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았던 게 아닌가 싶다. 그때의 참혹했던 기억은 알코올 중독으로, 그리고 알코올성 치매로 이어지면서 당신을 괴롭혔을 테고, 벗어날 수 없는 불안과 공포는 가족에 대한 가혹한 폭력으로 변질되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를 책임져야 할 국가는 참으로 멀기만 했고 대상을 특정할 수 없는 아버지의 화와 분노는 오롯이 내 가족들에게 지워진 천형처럼 여겨졌었다.
"한국사회에는 그동안 여러 참사가 있었습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참사까지요. 저는 세월호 생존 학생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 전, 한국에서 발생했던 여러 참사들에서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놀라울 만큼 기록이라 할 만한 게 없었어요. 간혹 발견되는 신문기사 말고는 참사로부터 살아남은 이들이 감당해야 했던 시간에 대해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픔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대책이 있을 리도 없었겠지요." (p.166)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6.25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왜 당신의 아버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려야 했으며 그것도 아무런 죄가 없는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질병을 노출시켰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나로서도 알 길이 없다. 다만,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 전체가 아버지를 증오했으며, 돌아가신 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가족들의 증오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애써 애증의 그림자로 조금씩 변모하고 있음에 안도하고 있다고.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습니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픕니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득이 없는 노인이, 차별에 노출된 결혼이주여성과 성소수자가 더 일찍 죽습니다." (p.7 '들어가며' 중에서)
추분도 지난 계절은 이제 제법 가을빛을 띠고 있다. 아버지의 기일 즈음에 읽었던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어쩌면 그 책으로 인해 나는 우리 가족이 떠안아야만 했던 비극의 실체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까이 있어야 할 국가는 너무나 멀리 있었고, 개인의 비극은 개인에게서 그치지 않고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무심한 상처와 그늘을 남기고 말았다. 아픔은 여전히 길이 되지 못한 채 갈팡질팡 혼돈의 세계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기록하고 반성하지 않는 아픔은 그 아픔이 누군가에게 전가되고 확대될 뿐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 가을에 책을 통하여 다시금 확인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 김승섭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라고 한다. 사회역학자로서 차별 경험과 고용불안 같은 사회적 요인이, 결혼이주여성이나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를 주로 연구해 온 저자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며,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 자기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한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이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22쪽)
저자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겪는 다양한 차별 경험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면서 여성 노동자가 구직과정에서 혹은 일터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이 남성에 비해 더 어렵고 예민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폭력이나 차별로 인한 상처는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까지도 몸에 새겨져서 절대 지워지지 않음도 알게 된다.
사체절도범이 해부학자들에게 넘긴 시체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가난한 사람들의 시체였다는 점입니다. 당시에는 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하면 가족이 치료비를 지불해야 시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치료비를 지불하지 못할 경우, 시신은 사체절도범에게 넘어갔지요. 설사 치료비를 지불하고 시신을 받아내도, 가난한 가족들은 허름한 목관을 이용하거나 혹은 그조차 없이 공동묘지에 묻어야 했습니다.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훔치는 사체절도범에게 좋은 목표물이 되었지요.(51쪽)
부유한 이들은 시신이 도난 당할까봐 튼튼한 관을 사용하게 되니, 당연히 표적이 되는 것은 가난한 이들의 시신이었다고 한다. 결국 의료계의 발전을 이끌어 온 것은 가난한 이들의 몸뚱이였다. 몇 년 동안 코로나감염병을 겪으면서, 전염병조차도 취약계층에는 불평등함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또 쏟아지는 폭우로 인한 자연재해까지도 어떤 이들에게는 더 없이 가혹함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인터뷰어 왜 이런 일을 하나요? 돈 때문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클랩교수 골리앗에 맞서는 것이지요. 법정에서 노동자들은 보통 이길 수 없습니다.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변호사는 어떤 학자는 그의 편에 서야 합니다.(108쪽)
전자부품에는 꼭 필요한 깨끗한 클린룸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노동자에게 암을 유발 시키는 등 질병의 원인이 됨을 밝혀야 하는 소임을 거절하지 않고, 거대 자본과 맞서 싸우게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클랩 교수가 한 답이다.
제도가 존재를 부정하면, 몸이 아파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는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다면, 함께 그 비를 맞아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위험사회에서 다함께 살아가려면 공동체가 서로 연결되어야한다. 연결될수록 그만큼 건강한 존재로 거듭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사회역학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자세히 분석하면서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소방공무원, 세월호 생존학생, 성소수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만나고, 그들의 건강에 관해 연구하고 글을 쓰며 이 사회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저자의 소망으로 엮어진, 그의 첫 책을 매개로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하며 답을 찾아가면 좋겠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제목이 눈길을 끈다. 어제 일요일 송영길의 서울시장 출마 선언이 있었다. 어차피 질 텐데.. 라는 나약한 마음이었다가 개딸들의 지지와 성원에 정신을 차렸다. 손수 키워본 자의 자긍심과 신뢰가 봄꽃보다 더 눈부셨다. 홍대는 지난 대선 유세의 현장 열기가 가시지 않은 공간이기도 하다.. 이 길이 ‘이기는 길, 송영길’을 낳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승섭의 신작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먼저 읽고 일본소설 <애도하는 사람>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선 후유증에 헤매던 시기라 그런지 머리에서 가슴으로는 알겠는데 발은? 이라는 삐딱한 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생존자들의 시간이 어떠했는지는 알겠는데 그래서 뭐가 바뀌었는데, 라며 답답해했다. 그러다가 교보문고 리뷰대회 우수작들을 통해 책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었다. 보수와 진보의 양 진영에서 “정쟁의 도구”로 쓰이고 버려지는 참사와 재난들 속 사람들을 비춘다는 점만으로도 살펴볼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당파적 견해에서 벗어나 국민이 바로 설 자리에 대해서 사유하도록 이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거꾸로 읽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서 저자의 진가를 더 잘 살필 수 있었다. ‘사회역병’학을 전공한 공중보건의사이자 교수라는 직함 아래로 인권 활동가이자 기록하는 자의 이력과 묵묵한 소임이 흐르고 있다.
딴소리이지만 불과 이십 년 전만 해도 한국의 정 문화는 알아주었다. 당연한 기질이자 국민성으로 여겼던 것이 두 번의 경제위기 여파로 해고와 줄도산을 겪으며 각자도생으로 빠르게 변질된 듯하다. 부동산 투기와 주식 열풍 속에 비윤리적으로라도 돈과 권력을 (갈)취해 기득권으로 안착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는 지옥문이 열리고 말았다. 심지어 ‘특혜’라는 단어조차 이중적으로 적용된다. 문제를 제기하면 무슨! 이라며 잡아떼고 뭉개거나 아니면 너는? 이라며 탈탈 털고 본질을 흐려버린다.
무책임하고 부정한 국가 권력과 폭력을 촛불혁명으로 끌어내렸지만 민주 정치가 일상 속에 자리 잡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그놈의 국민의 바람대로 정권교체는 이루어지고 시간은 십년, 십오년 전으로 거침 없이 되돌려지고 있다. 당선인은 그네 님을 친히 찾아가 보기 흉한 어퍼컷을 날리면서도 세월호 8주기에 대해선 안전한 대한민국을 다짐하고 개놀이3하는데 그쳤다. 자기 사람을 대구로, 경기도로 파견하고.. 친구와 심복을 장관 후보로, 핵관들을 최측근에 두며 취임도 하기 전부터 퇴임 후 정권을 챙기는 모습이다. 가짜 모범생이자 권위주의자이자 사익형 관료라는 추측이 사실로 드러나며 상상 그 이상이다. 이렇게 된 마당에 좋아 빠르게 가! 하하하 아하하하.
지독한 양극화 현상 속에, 그리고 코로나 유행병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이 감당했을 소외와 차별은 제대로 논의되거나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태이다. 그 스피커(플랫폼) 위치에 저자의 귀와 펜이 달려있다. 정치인들의 입에서 여과 없이 배설되는 각종 혐오와 분열의 프레임과 괴상한 말들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국민 정서와 생활을 위협하고 겁박하는 폭주는, 일상의 파시즘은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이 막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 힘에는 국민이 없고 정의당에는 정의가 없고 더불어민주당에는 더불어가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으니 말이다.
***
건강은 인권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 경제적인 기회를 보장받기 위한 조건입니다. 건강해야 공부할 수 있고 투표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72)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거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사회역학은 그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몸에 질병으로 남긴 상처를 해독하는 학문입니다. (12; 14)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 몸에서 나타나는 병리적인 변화는 항상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 요소가 함께 상호작용하며 나타나고 진행됩니다. (71)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사회적 환경은 주어진 고정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토대 위에서 형성된 것인데도, 왜 질병의 원인을 항상 개인 차원의 고정된 요인으로만 가정하는지 질문한 것입니다. (58)
***
무엇이 더 합리적이고 올바른 것인지를 곰곰이 따져보고 발언하는 것뿐입니다. (83)
정보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산되었는가에 따라 우리의 선택을 돕는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를 오히려 잘못된 판단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140)
쌍용차 문제는 재난의 문제다. 인간이 만든 해고가 인간 삶을 부수는 극단의 형태로 드러난 정치적 사건이다. (재인용 101)
나는 왜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를 잊지 못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있는 것일까... 아픔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대책이 있을 리도 없었겠지요. 그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던 국가는 그 아픔을 개개인에게 넘긴 채, 계속 정권이 바뀌며 시간이 흘렀습니다. 세월호 참사마저 그렇게 보내고 나면, 우리에게 공동체라고 부르는 무엇인가가 영영 사라져버리지는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되지 않은 참사는 반복되기 마련입니다. (161; 166)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일상적 사건으로 인해 인간의 마음에, 더 구체적으로는 두뇌에 상처가 남아 생기는 질병입니다... 어젠다 세팅, 한국어로는 ‘의제설정’이라고 부르는, 개념이 있습니다. 신문이나 뉴스가 자주 특정한 주제를 특정한 방식으로 다루면, 대중의 의견도 그렇게 변화한다는 의미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를 때... 그것이 세월호를 ‘교통사고’라고, 운이 없었다고, 개인의 책임이었다고 말하는 입장과 과연 얼마만큼 다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168-169; 176)
이렇듯 원인을 파악하는 행위는 이미 그 안에 해결책을 일정 부분 담고 있습니다. (173)
정부와 언론, 지원기관, 지역사회 등이 모두 맞물려 있다... 부조리는 항상 연결되어 있다. (181; 183)
보상이나 여타 지원 내용을 언론이 대대적으로 과장해 보도했고, 참사로 고통 받는 피해자를 운 좋은 사람 취급했다. 정부와 언론이 국민과 피해자를 이간질했다... 특수 상황이 아니라면 재난 당사자가 애도하고 치유에 집중하도록 사회가 침묵해야 한다. (183-184)
충분한 신뢰를 쌓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네가 필요할 땐 언제나 곁에 있겠다’며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어쩌면 누구도 풀어줄 수 없는 감정이다. 다만 함께 품고 갈 수는 있는 일이다... (그런) 그들에게 ‘선량한 피해자’의 롤모델을 요구했다. 보이지 않는 우리가 피해자를 가뒀다. (186)
어떤 재난에도 갈등은 존재한다. 살아온 역사와 삶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각자 입장이 다르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재난에서 나타나는 삶의 복잡성이다... 갈등을 대하는 자세가 한 사회의 실력이다. (188)
***
동성애가 치료받을 질병이 아니라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성적 지향이고 HIV감염은 바이러스가 원인이며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라는 과학적 사실 위에서 한국사회는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215)
한 인간이 트랜스젠더인가 여부는 (호르몬주사나 외과 수술이라는) 의학적 조치가 아니라, 상담기록을 포함하여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총체적으로 검토하는 데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223)
모욕과 차별은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차별받는 소수자가 되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만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에 대해 더욱 조심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231; 234)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 진짜에요. (305)
한국사회의 구성원이 된 이민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과연 한국사회가 세계화 시대에 구성원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되묻게 됩니다. 인터넷과 일상에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들은 자신들 역시, 한반도만 벗어나면 ‘소수 인종’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238-239)
인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요. (249)
쏟아지는 비를 멈추게 할 수 없을 때는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 (재인용 219)
인간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인간은 착각을 한다. 자신이 노력하면 아프지 않을 수 있다는 착각이 첫 번째이다. 이런 경우를 '아상'이 생겼다고 한다. 노력하면 아프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열심히 운동하고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
두 번째는 아프면 자신의 잘못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회사에서 잘려서 머리가 아프면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두통약을 먹는다. 계속 아프면 다니는 병원을 옮기거나 다른 약을 먹는다. 의사가 용하지 않거나 약이 잘 듣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는 자신이 게으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운동 열심히 하고 영양을 고르게 섭취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아플리가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잘려서 머리가 아프고 우울하면 그 질병의 원인은 평소에 대비를 하지 않은 게으른 개인일까 사회일까? 이 책은 사회라고 말한다. 그 분야가 '사회역학'이다. 몸은 정직하다. 사회적 경험은 인간의 몸에 새겨진다. 나쁜 경험이면 병으로 새겨진다. 그런 병은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치료되지 않는다.
이 책은 이렇게 사회적 이유로 생긴 병의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사례, 세월호 사례, 이주노동자들의 사례, 트렌스젠더의 사례 등등. 어찌 이리 많은 지 모르겠다.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아무리 좋은 약이 나와도 치료 불가능하다. 그 하나는 건강한 공동체. 건강한 공동체는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이 힘들때 우리 공동체가 나를 도와 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공동체다.
그러고 보니 할 일이 많다.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똑똑한 학자만 할 일이 많은 게 아니다. 우리 각자가 할 일이 많다. 건강한 공동체의 복원은 유능한 지도자와 함께 공동체 구성원들의 노력도 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질병과 건강,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생각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 책은 아픔과 고통, 치유와 치료에 대한 나의 생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의료인들이 하는 역할을 개인적 성공과 직업적 측면으로만 보던 나의 시각을 바꿔주었다. 진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으로 느낌을 공유한다.
사람의 상처가 몸과 정신에 새겨진다.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아주 쉽게 면역력과 건강을 관리하지 못한 것을 탓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한번 아팠던 일이 또 다른 아픔이 되지 않으려면, 크게 슬펐던 일이 또 다시 슬픔이 되지 않으려면 사회적으로 책임지고 사회적으로 치유되어야 한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특히 이미 느끼고 있었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내용의 사회적 의미를 더욱 실감나고 논리적으로 알게해 준 부분(아래 내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가난은 우리 몸에 고스란히 새겨진다(p 47)
위험한 일터는 가난한 마을을 향한다 (p111)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려면 168
제도가 존재를 부정할 때 몸은 아프다 189
한국을 떠나면 당신도 소수자입니다 229
위험사회에서 함께 생존하려면 278
당신의 공동체는 안녕하신지요 287
개인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역할보다는 부와 명예를 끌어안은 특권계층으로 인식해온 의료종사자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인들의 소식 속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역할에 다양한 의료인들의 수고에 감사함을 느꼈다.
질병의 사회적 인식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과연 서로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충분히 관심을 갖고 연결되어 있는가? 그 연결을 당연시하고 고마워하는가? 내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이게 너무 거창하다면 “나는 나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위험하다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 주변에 위험해 보이는 사람에게, 불안해 보이는 사람에게 무슨 일 있느냐고 먼저 물어 본적이 있는가?”와 같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김승섭 작가님은 의사일뿐만 아니라 사회역학자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사회역학이라는 학문은 자칫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질병의 원인과 해결 방법을 사회적인 관점에서 찾는 것이라고 한다. 신생학문이라 잘 알려지진 않은 편인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사회역학이라는 것이 있구나 알게 되었다.
왜 이 사람이 이러한 질병을 겪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이러한 원일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가 어떤 식으로 바뀌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각종 객관적인 조사들을 통해 알아보고 연구하는 것.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의문점들을 잘 제시해주는것 같다.
책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김승섭 작가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은 사회를 둘러보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뒤져보다가 한번 쯤은 읽고 생각해볼만한 책이라 추천받아 구매한 책입니다.
참 제목도 멋있는 책입니다. 내용도 훌륭하구요.
다른분처럼 멋있는 리뷰를 남기진 못하겠어서 잠시 머뭇거리게 되는데요.
음.. 저 스스로는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저 역시 기득권층의 무의식적 차별속에서, 사회가 내면화시킨 구조적 차별속에서 살아가면서 타인의 차별과 아픔은 조금 무감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들에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관련 분야의 책을 전혀 읽어본적이 없다.
강추가 많아 읽기 시작해본 아픔이 길이 되려면.
현 사회의 문제들을 사회역학으로 바라볼때 과거는 어땠고
현재는 이러하며 앞으로는 어떻게 가야 할지 서술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마음이 아팠다. 항상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지켜주지 못한 그들.
앞으로 다시는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또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 ,
살아내고 있는 유가족에게 더 큰 아픔이 되지 않도록 우리모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늘에 있는 그들이 보고싶다.
꼭 한번 읽어보라는 주위의 추천을 받아 구매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만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집단 속에서 살아갈 때, 차별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은 쌍용자동차, 세월호, 성소수자 등 가장 많은 차별을 받아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건강 연구를 다뤘습니다. 차별을 받는 집단에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차별만 생각하여 이를 없애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건강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주위에도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자주 감기가 걸리고 오랫동안 낫지 않는다거나, 오랜 기간 무기력해 보이는 그런 가족, 동료가 있다면 한 번쯤은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요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몸이 오랫동안 아프다면 단순히 바이러스 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거나, 회사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환경의 문제를 생각해보기 마련이다.
그들은 왜 더 아파야 하는가?
인간은 진공상태에서 살아가지 않는다. 정치경제 제도 안에서, 사회문화적 배경 위에서, 많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김승섭 교수는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는 사회역학 분야를 연구한다. 특별히 그는 한국사회 안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왜 더 아픈지’ 그 사회적 역학과 사회구조적 폭력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철저히 데이터에 기반하여 약자와 소수자들의 질병이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책임임을 고발한다. 국내외의 다양한 사회역학 연구 사례들은 그 고발의 타당성을 논증함은 물론, 건강과 질병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확장시킨다. 책에 나오는 몇 가지 사례를 인용하면 이런 것이다.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 경험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다문화 청소년들의 학교폭력 경험과 우울증상의 연관성
-루마니아 낙태금지법 제정이 모성 사망률에 미친 영향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 참여에 따른 결핵 사망률 변화
-걸프전 참전 군인과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률 비교
-실업률이 자살률로 이어지는 사회적 원인
-동성결혼 불인정과 성소수자 건강의 관계
사회구조적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
사실 이러한 연구결과보다 내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회구조적 아픔을 치유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생존자들 그리고 유가족들이 겪는 실존적인 아픔들은 단순히 트라우마에 대한 의료적인 접근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교통사고’가 아니었다. 선박 운항에 대한 관리감독, 해양 구조 및 국가의 재난 관리 시스템, 직업윤리 등 사회 전반의 부패와 부실로 인해 발생한 인재(人災)였다.
이러한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해 개인이 겪게 되는 고통과 아픔이 치유되기 위해서는 사회 공동체가 그 사건의 의미를 공동으로 해석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은 아직까지 진상규명조차 명확히 되지 못하고 있으니 그 피해자들의 상처와 아픔이 치유는커녕 덧나기만 하지 않을까 안타깝다. 여기까지가 한국 사회가 가진 사회적 감수성의 수준이며 실력인 것이다.
"언론에서 세월호 유가족 분들의 상처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를 때, 저는 조심스럽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와 관련된 의학적 치료는 분명히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한국사회의 온갖 모순들이 집약된 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한 트라우마를, 개인적인 수준에서 진단하게 되고 그것이 개인적 수준의 치료‘만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우려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공유를 통해, 명예회복-보상-처벌을 거쳐 사회관계 회복 개선”으로 나아가는 사회적 치유작업이 함께 되어야 합니다."
더 연결될수록 더 건강하다
1979년에 발표된 리사 버크먼의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망에 따라 사망률이 1.8배~2.7배까지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이외에도 사회적으로 연결될수록 더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내가 힘들 때 이야기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가 나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 경제적 양극화는 사회적 관계망의 양극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쉽게 말해, 가난할수록 가족 관계가 무너져 있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의사와 변호사 같은 전문가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지만, 내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의사나 변호사는 없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회적 관계망에서 좋은 자원들은 특정 집단에 집중된다. 가난할수록 관계망의 자원도 부실해지고 그것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난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하 셋방에 살던 세 모녀는 질병을 앓고 있을 뿐 아니라 수입도 없는 상태였으나 국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도움을 청할 가족도, 이웃도 없었던 것 같다. 보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이 갖추어져야 한다. 내가 아플 때, 힘들 때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고 들어줄 수 있는 환경이 제도적으로 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 안에 마련될 필요가 있다.
"196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로세토Roseto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미국에 온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모인 공동체였습니다. 마을 주민들을 진료하던 의사들은 신기한 현상을 발견합니다. 로세토에서는 유달리 심장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다는 점이었습니다."
"로세토 마을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사람들이 삶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삶은 즐거웠고, 활기가 넘쳤으며 꾸밈이 없었다. 부유한 사람들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옷을 입고 비슷하게 행동했다. 로세토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공동체는 계층이 없는 소박한 사회였으며, 따뜻하고 아주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신뢰하였으며 서로를 도와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진정한 가난은 없었다. 이웃들이 빈곤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으며 특히 이탈리아에서 이주해 오는 소수 이민자들에게 그러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해줄 것이라는 확신은 기꺼이 힘겨운 삶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픔이 길이 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겪고 있는 고통과 아픔들이 더 나은 사회로 향하는 길이 되어줄 수 있을까? 내 한 몸 돌보기도 어려운 치열한 삶의 전쟁터 속에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치유하고자 하는 사회적 감수성 또한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와 같이 아픔이 길이 될 수 있도록, 고통받는 자들 곁에서 함께 아파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희망’이다. 아파하는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공감, 냉철한 이성에 기반한 사회 비판과 대안 제시. 책을 통해 멋진 사람을 만났다. 그를 통해 희망이 더 멀리, 더 깊이 확산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 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어요."
"많이 힘들겠지만, 그 상처로 인해서 도망가지 말고, 그것에 대해 꼭 주변 사람들과 용기를 내서 함께 터놓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경험으로 간직하세요.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 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 진짜예요."
독자에게 말을 걸듯이 책이 진행됩니다. 덕분에 이해가 쉽고 친근하게 다가왔어요. 질병을 개인적 차원에서 이해하지 않고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분석하고 원인을 밝혀내서 방지하는 학문, 사회역학을 처음 알았지만 추구하는 목표 하나만으로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고, 이런 생각을 가진 따뜻한 사람이 세상에 많아진다면 사회가 좀 더 살만해지겠지요.
사회역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흥미롭게 전달하는 책이다. 시종일관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주장을 이어나가는데 대중에게 정보를 전하려는 책이 가져야 할 최고 덕목이 아닐까. 겸손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말투에서는 오히려 학자로서의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단순한 이론서에 그치지 않고 실제 내가 사는 사회와 질병의 상관관계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보게끔 유도한다. 나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하는 사례를 다루진 않았는데도 몇몇 대목에서는 뜻밖에 위로받은 기분마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