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식 구성을 가지고 있는 스릴러 소설이다.
책장 펼치고 처음 만나게 되는 인물은 수잔이다.
40대 여성으로 의사 남편과 세 아이를 둔, 안정된 가정의 주부.
어느날 수잔에게 소포가 도착한다.
전남편 에드워드의 원고.
출간전에 수잔의 비평을 듣고싶다는 이유로 보내진 것이었다.
꺼림직한 마음에 미루고 미루다 에드워드가 수잔을 직접 만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하자 수잔은 어쩔수없이 원고를 읽게 된다.
수잔은 애드워드와 부부였던 시절, 항상 그의 글을 비판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의 글은 늘 별 볼일 없었다고...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첫장부터 수잔은 정신없이 이야기 속에 빠진다.
녹터널 애니멀스. 야행성 동물. 에드워드의 소설 제목이다.
녹터널 애니멀스의 주인공 토니 헤이스팅스는 에드워드가 창조해낸 캐릭터라는 걸 알지만 수잔은 토니에게 에드워드를 대입시켜 읽어가게 된다. 그리고 자기 자신 또한 토니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아간다.
가정 외부에서 들어온 잔인한 폭력으로 가족을 잃은 토니의 이야기를 통해 수잔은 예전 자신이 애드워드에게 주었던 상처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또한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겉으로 보이는) 행복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를 처절하게 깨닫는다.
책 속의 책인 녹터널 애니멀스는 토니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액션스릴러에 가깝다면 그 바깥에 있는 수잔의 이야기는 심리스릴러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어가면서 내면의 변화를 겪게 되는데 과연 이건 애초에 에드워드가 의도한 것일지 궁금해진다.
하나의 이야기 안에 결이 다른 두 가지 스토리가 완벽하게 맞물려있는 수작이다.
자세한 리뷰는 녹음해서 남겼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해보았다.
당신은잊었겠지만
나는오늘만을기다렸다고 !
( 어서읽어봐 . 내가쓴소설을- )
+
25년동안
에드워드는칼을갈았고
마침내
글로써복수 . 성공
++
책을읽으면서
공포 . 불쾌 . 답답 . 등등
여러감정이뒤섞임
+++
글에휘말리는느낌
수잔의이야기로인해
에드워드의소설이끊기지만
이로인해긴장감상승
책의후반부로갈수록
수잔의이야기가더욱궁금
토니가겪은끔찍한일이
굉장히자주언급되는데
이것또한에드워드의의도
++++
줄리언반스의
예감은틀리지않는다 . 가생각났다
또 읽은 지 몇 달 만에 남기는 서평 ㅋㅋㅋㅋ
여름이 시작 될 때 읽었던가...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한
기억을 끄집어 내어 서평을 써 본다.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원작 소설인 '토니와 수잔'
영화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심리 스릴러의 정수라는 소개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녹터널 애니멀스가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는 이야기에 끌려 책을 집어들었다.
수잔의 시점과 수잔이 읽는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가
교차되며 흘러 가는 이야기 구성.
결국 수잔과 녹터널 애니멀스 속 토니가
이 소설의 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토니는 아마도 수잔에게 이 소설을 보낸
전남편 애드워드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겠지..?
매우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 수잔에게
혼란과 파문을 야기하는 애드워드의 소설.
소설의 내용이 잔인하고 자극적이어서가 아니라
분명 애드워드가 그 소설을 통해
수잔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었기 때문에
수잔이 그렇게 흔들린게 아닌가 싶었다.
사실 책은 매우 재미있었다.
인물들의 묘사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았고
토니가 처한 상황과 그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이
너무 처참하게 다가와서 읽으면서 괴로웠다.
그런데 내가 대충 읽게 된건지 아니면
제대로 파악을 못한 건지 애드워드가 수잔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확히 뭔지 짐작이 잘 가지 않았다.
놓친 부분이 있나 하고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책을 뒤적이며 읽어보았는데도 나는
작가의 의도를 다 파악하지 못했다.
다시 읽어봐야 하나..?ㅋㅋㅋ
그냥 흥미로 읽기엔 조금은 생각해 봐야 하는
토니와 수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 기억에 생생한 장면들이
존재하는 걸로 보아 분명 읽을 가치는 충분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스포일이 될 수 있으니 읽기 전에 참고하세요.)
액자식 구성이 그리 새로울 것도 없지만, 적어도 오스틴 라이트의 <토니와 수잔>은 그러한 구성을 통하여 스릴러의 묘미를 극대화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올해 읽은 스릴러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인데, 이 작품 속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 안의 이야기가 동시에 흥미와 스릴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통상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라는 형식이 액자식 구성에 많이 쓰이는 방법인데, 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수잔은 물론이거니와 그녀가 읽는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작품 속의 토니의 이야기가 각각의 긴장감을 향해 흘러가는 구성이 마음에 든다.
전 남편인 에드워드가 자신이 쓴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를 수잔에게 평을 의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드워드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장점은 많은데, 무언가 빠진 것이 있으니 그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 내용이 수잔은 물론이거니와 독자에게 왠지 파문을 일으키는 느낌이 든다. 이전에 부부였을 때, 에드워드의 글 솜씨에 대하여 소질이 없다고 비판한 수잔에게 이제서야 복수를 하려는 것일까? 분명 그러한 의도가 느껴지지만, 동시에 그가 빠진 것을 찾아보라고 한 부분에 대한 호기심으로 수잔은 <녹터널 애니멀스>를 읽기 시작한다. 물론 독자 역시 수잔과 같은 마음이 되어 <토니와 수잔>이라는 작품 안의 이야기 <녹터널 애니멀스>에 몰입하게 된다.
수학과 교수인 토니 헤이스팅스는 사랑하는 아내와 외동딸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우리와 달리 거대한 미국의 고속도로는 밤이 되면 인적은 물론이거니와 도로 자체에 차들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배경의 설정이 주는 공포는 왠지 고립과 비문명이라는 모순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확 트인 도로에 어둠이 내려앉는 순간 일상에서의 묘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실제 그러한 공포가 바로 토니 가족에게 벌어진다. 고속도로에서 괴한들이 그들의 차에 대하여 위협을 가하게 되고, 약간의 접촉이 발생하여 갓길에 차를 세우면서 수잔은 물론이거니와 나 역시 토니에게 몰입하게 된다. 세 명의 괴한이 시비를 걸면서 토니의 가족들을 위협하지만,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토니에게는 그들에게 별달리 저항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단순히 밤이 되었다는 이유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괴한들의 위협으로 인하여 이들 가족은 위험에 쳐하게 되고, 심지어 이미 그들에게 불길한 일이 벌어지리라 직감하게 된다.
건실한 중산층인 이들이 겪는 공포는 수잔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역시 똑같은 상황에서는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기에 가슴을 졸이게 된다. 그러나, 홀로 가족과 떨어진 토니는 결국 트레일러에서 아내와 딸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런데, 이후 벌어지는 토니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순식간에 가족을 잃고 홀로 된 토니는 아내와 딸의 장례조차 어떻게 치뤄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고, 유부녀를 비롯한 주위의 여성들에게 성적 욕구를 느끼면서 결국 자신의 대학원 제자와 잠자리를 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토니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살아 남았지만, 악당들에 대헌 처리는 경찰에게 맡겨둔 채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토니는 왠지 수잔의 현재 모습과 연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공포가 공유되는 느낌이다.
에드워드와 떨어져 지낸 채, 유부남인 아놀드라는 의사와의 불륜으로 인하여 결국 에드워드와 이혼을 한 수잔의 마음 한 구석에 있던 양심의 가책. 그리고, 아놀드와 재혼을 하였지만, 문학 교수가 아닌 평범한 주부로서 바람을 피운 남편에 대한 불안감으로 흔들리고 있던 수잔의 심정은 가족을 잃은 토니의 상황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기에 토니의 공포는 곧 수잔의 공포로 다가오게 된다. 그렇게 놓고 보니 이해할 수 없던 토니의 불안한 모습은 수잔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역시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 상황에서 토니가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 이러한 토니의 현실적인 상황은 경찰인 바비 안데스에 의하여 극단적인 상태로 내몰리게 된다. 확실한 증거가 없기에 범인이 확실한 레이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데스는 불법적으로 레이 일당을 토니와 함께 처리하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야행성 동물을 뜻하는 <녹터널 애니멀스> 제목처럼 어쩌면 악당 레이가 아닌 바비 안데스로 인하여 함께 폭력적인 성향을 내비치는 토니를 지칭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역시 한밤중에 레이에게 결국 그를 살해하면서 복수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좀더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토니가 오히려 에드워드라고 본다면 악당 레이는 바로 수잔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그녀가 불륜을 저질러 에드워드와의 이혼을 통하여 가정을 무너뜨린 것은 바로 토니의 아내와 딸이 살해된 것으로, 토니의 분노를 일으켜 폭력적으로 만든 레이의 독설은 에드워드의 글 솜씨에 대한 수잔의 신랄한 비판으로도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토니에게 몰입하여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고, 결국 토니가 아닌 레이가 수잔일 수도 있다는 것을 통하여 에드워드 나름의 복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그러한 에드워드의 의도를 알면서도 오히려 현재의 남편인 아놀드와 에드워드를 비교하는 장면이라든지 에드워드를 만나기 위하여 직접 그가 머물던 호텔로 찾아가는 것은 모든 것이 에드워드가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기에 이미 이 책을 읽는 순간 수잔은 바로 에드워드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뒤늦게 이것을 알아채고, 수잔은 책에 대한 비평 대신 도도한 편지를 에드워드에게 보내지만, 이미 그녀의 상황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기에 그러한 그녀의 행동이 더욱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다.
세상을 살면서 누구한태 어떤일을 당하면 그 일은 그 사람에게 어떻게 기억되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본인만이 알 수 있고, 본인 이외에는 이해하기 힘든 종류의 고통입니다.
자신을 배반하고 떠나간 여자에게 전혀 생각하지 못한 시기에 소설을 전달하고 읽어달라고 부탁을 한 남자 에드워드, 그 소설을 받아든 수잔
어떤 내용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현재 본인의 생활에 만족하는 듯하면서 만족 못하는 삶을 살면서 그 내용을 읽었을때 충격 그 자체 였을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납치, 강간, 살인 그로 인해 변화된 소설속의 주인공 토니
소설속의 토니, 현실속의 에드워드, 수잔
결코 소설 속이 아닌, 소설 밖이 아닌 서로의 내용이 섞여 각자에게 느껴지는 절망감, 상실감, 공포
좋은 몰입감과 예상치 못한 내용이 좋은 소설입니다.
복수는 에드워드의 힘이었다.
힘을 얻어 글을 쓰고 수잔에게 멋지게(그러나 쪼잔하게 보이는) 복수한다.
소설 속의 소설 이야기는 섬뜩하다.
그 섬뜩함을 톰 포드 감독이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영상으로 잘 보여준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가 있을 때는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는 쪽이 훨씬 흥미롭다.
책이 활자가 작아 읽는데 좀 불편했던것만 빼면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듣다가 기대 되어 읽어보았습니다. 책을 읽기 전에 [녹터널 애니멀즈]부터 보았습니다. 소설이 영화보다 친절합니다.
수잔에게 20여년 이혼한 남편에게서 소설이 도착합니다. 수잔의 현재 생활이 현재의 시간으로 흐르고 소설을 받고 읽으면서 그 사이사이 전남편과의 헤어지게 된 이야기와 자신의 상황에 대한 생각이 함께 이어집니다. 마치 수잔과 함께 일상을 지내면서 [녹터널 애니멀즈]를 읽는 기분이 듭니다. 전남편이 질문한 소설에서 빠진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읽어도 나오지 않습니다.
전남편이 20년이 지난 지금 수잔의 삶에 소설이라는 모양으로 던진 돌이 수잔의 마음을 어떻게 흔들어 놓는지, 20년 전의 지금과는 다른 사람의 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훨씬 재밌습니다만, 읽다보면 소설 속의 소설에 더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아내와 딸이 강간당하고 살해 당한 상황임에도 모텔에서나 그 후에 삶으로 돌아가 보내는 1년동안의 일은 답답해 보입니다. 물론 그 답답함이 현실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가족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누구나 리암니슨이 되어 복수하진 못하니까요. 1년이 지난 후 정신을 차리고 범인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이미 기억은 지워지고 있고 사건을 진행하는 형사는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서 사건이 빠르고 시원하게 해결되기를 재촉하죠.
도대체 수잔이 이 소설의 누구에게 감정을 이입을 하게 만들려고 이 이야기를 늘어 놓는 것일까요? 만약 이 소설이 전남편의 복수라면 그 복수는 충분했습니다. 수잔에게 복잡한 생각의 늪을 선물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당시 충분히 화내지 못하고 20년 가까이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라면 어쩌면 이혼하는게 옳지 않았겠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수잔은 만날 수 없는 전남편과 곧 떠나게 될지도 모르는 지금의 남편 사이에 자신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지요. 아마 이 소설의 이야기는 독자가 마음 속으로 써 나가나는 수잔의 뒷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 상태는 평범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토니와 현실의 수잔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겉표지를 뜯어낸 듯 한 책 모양입니다. 책은 두께를 볼때는 무거워 보이는데, 보기보다 가벼워 들고 읽기 좋습니다. 아마도 '버티고'라는 이름으로 내는 시리즈가 다 같은 판형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영화 《싱글맨》으로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치른 톰 포드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자 2016 제7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녹터널 애니멀스》의 원작 소설 『토니와 수잔』.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오스틴 라이트의 역작이다. 48세의 늦은 나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오스틴 라이트가 죽기 10년 전인 72세 때 발표한 이 소설은 출간 당시에는 다른 소설들만큼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이후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으며 증쇄를 거듭했다.
스릴러로서는 드물게 액자식 구성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작품의 주인공인 수잔의 이야기와 수잔이 읽는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의 주인공 토니의 이야기로 꾸며진다. 우리는 이와 같은 구성을 통해 수잔의 이야기를 읽는 동시에, 토니의 이야기를 읽는 수잔의 독백이나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중산층 주부인 수잔의 불안과 수잔의 작가 콤플렉스, 수잔의 전 남편 에드워드가 품은 자신의 재능에 대한 회의, 작가라는 전지적 입장에서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휘두르는 폭력성, 소설 속 주인공인 토니의 지극히 현실적인 지질함과 비겁함, 악당 레이를 통한 문명과 야만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등 한 작품 안에서 결혼, 사랑, 분노, 배신, 살인, 복수, 독자와 작가의 관계 같은 다양한 주제를 정교하게 엮어낸다.
작가가 되겠다며 로스쿨을 그만두고 글쓰기를 시작한 에드워드.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번듯한 작품을 완성해내지 못한다. 이런 무능력한 남편에게 지쳐 위층에 살던 심장 전문의 아놀드와 간통을 저지르고 결국 이혼 후 아놀드와 재혼하게 된 수잔. 중산층의 여유로운 삶을 누리던 그녀에게 헤어진 지 20년 만에 에드워드의 편지가 날아든다. 자신이 쓴 소설을 보낼 테니 그걸 읽고 거기에 빠진 게 뭔지 알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수잔은 부담스러운 마음을 안고 그가 보낸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를 읽기 시작한다.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토니는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아내와 딸과 함께 별장으로 향한다. 한밤중에 고속도로를 달리던 그의 가족은 상식을 벗어난 무법자들에게 불시에 공격을 당하고, 평생 폭력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토니는 제대로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한 채 아내와 딸이 납치되는 걸 지켜보게 되는데……. 처참한 비극과 핏빛 복수로 가득한 에드워드의 소설은 수잔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을 드리우며 수잔의 잔잔한 일상에 파문을 일으킨다.
보통 소설의 잔상이라는 것은 길어야 몇일이기 마련인데, <토니와 수잔>은 한달이 지난 후에도 여파가 남는 신기한 소설이었다.
소설을 많이 읽을수록 책을 읽고 있을 때보다 책장을 닫고 있을 때 많은 생각이 드는 이야기가 더 가치있게 느껴진다. 자꾸 의문이 들고,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물음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생기고, 미감이 패일 정도로 심각해지곤 하는 책들. 토니와 수잔은 어쩌면 가볍게 읽힐 수도 있는 스릴러 소설인데도 갖가지 상념이 멈추지 않았다.
토니가 에드워드에 쓰여진 수잔같은 인물이라, 어쩌면 비겁하고 비판을 받아야 할 인물일지는 모르겠다. 그런데도 난 토니에게 너무나 공감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 대처하는 나약간 인간의 행동, 활자를 따라 코앞의 줄거리를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줄거리 전개가 남은 분량에 비해 빠름을 알면서도, 뒷 내용에 도대체 무슨 내용이 나오려고 하나 하며 재면서 읽었는데도 나는 내가 믿고 싶지 않은 것을 끝까지 믿지 않으려고 했다. 토니도 그랬던 것 같다. 그 때 그 때 보여준 토니의 모습은 비겁하기도 하고 무능력해보이기도 하고 우유부단해보여서 답답할 지경이지만 나는 정확히 어떤 포인트에서 토니가 잘못했는지 지적할 수 없었다. 과거의 어느 지점에서 되돌릴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을 많이 던졌지만 결국 앞으로 앞으로 되돌아가 밤에 운전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거나, 아니면 더 거슬러 여행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결론을 짓기 바빴다.
팟캐스트에서도 토니는 수잔이고, 이 소설 자체가 복수라는 초점을 맞추었는데 나는 생각할수록 복수심에서 만든 소설은 아닐 것 같다라고 느꼈다. 글은 글이고, 이야기는 이야기이고, 복수는 복수다. 글의 의도가 복수심에서 비롯됐다 하더라도 독자가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복수가 아닌 것이고, 복수심에 쓰지 않았더라도 읽는 사람이 스스로 찔리고 기분 나빴다면 그건 의도하지 않은 복수다. 그냥 이렇게 좋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내 성향에서 나온 방식인 것 같기는 하다. 다만,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아무리 초반에 복수심이라는 장작으로 불태워도 그런 얕은 감정이라면 끝까지 태울 수 없어 글을 마칠 수 없는 그런 작은 발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복수로 시작했어도 결국 글을 쓰는 과정에서 에드워드는 스스로 수잔을 용서했을지도 모른다.
토니는 수잔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모두는 토니이기도 하다. 그게 잘못은 아니다. 즉, '토니'같을 수는 있지만 되도록 그가 벌였던 잔인한 방관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모두가 토니같은 면을 갖고 있다고 해서 토니같이 결말을 맺는 것은 아니니까.
아래는 갖가지 상념들.
예상하지 못할 일이 일어날 때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믿고 싶지 않을 때의 방어적인 모습 (독자로서도)
가족을 잃고도 끼니를 챙기고 다른 여자에게 눈길이 가면서도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는 그런 심리
왜 토니와 수잔일까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며 읽게 된다.
에드워드가 수잔에게 말하고 싶은 건 뭘까
에드워드는 그런 복수를 할 자격이 있을까?
수잔은 큰 잘못을 한걸까
잘못을 했다면 바람인 난 것?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
아니면 그의 글솜씨나 꿈을 짓밟은 것?
에드워드는 애초에 복수를 할 마음이 없이 순수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쓰다보니 자신 내면의 상처를 바라본 것은 아닐까. 그래서 후반부에 수잔이라는 등장인물을 굳이 집어넣은 것이 아닐까.
토니의 아픔을 생생하게 써 내려가다 보니 그제야 복수심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에드워드의 복수는 결과적으로 성공한걸까?
수잔에게 삶의 균열을 일으키게 한것?
아니면 아놀드와의 삶을 참을 수 없게 만든 것?
과거를 되짚으며 새삼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것?
에드워드는 왜 수잔을 결국 만나지 않았을까?
글에 대해서 궁금한 점에 대해 대답하지 않으려고?
그럼 굳이 왜 왔지?
에드워드는.. 진짜 복수할 마음으로 소설을 보라고 한게 맞을까?
토니는 극중에서 뭔가를 더 할 수는 있었을까? 그럼 수잔은?
토니가 잘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걸까, 어떤 순간에 그 상황을 저지할 수 있었을까?
밤에 운전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그런 쓸데없는 도로위의 경주를 하지 말았어야 했나,
시비가 붙어서 몸을 던져 싸웠어야 했나, 그 차에서 내리지 말았어야 했나,
차를 보고 내렸어야 했나, 숲속에서 그들이 토니를 불렀을 때 따라갔어야 했나,
모든 일이 벌어진 후 바로 범인을 찾으러 다녔어야 했나,
범인을 눈앞에 두고 확신을 했어야 했나, 레이를 그 자리에서 어떻게 되든 죽였어야 했나..
그랬던들, 어느 순간 이후로는 의미가 없었던 것 아닐까?
나라면 복수를 제대로 했을까?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를 보고, 빨간책방에서 소개가 되고 하여 구매하여 보게 되었다.
영화는 톰포드라는 패션디자이너가 감독을 해서인지, 화면 구성과 비례 패션등의 칼라가 실사라고 하기에도 눈이 아플만큼 강하게 때리고 있어, 예술영화같은 비쥬얼을 구성하고 있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보려니, 개인적 의견이지만, 잘 않읽혀서 시간이 오래걸렸다.
이런책의 경우 결과를 알고 봐서는 재미가 없어지고, 다음 스토리를 끊임없이 기다리게 만드는
경우가 발생한다.
책의 내용도, 여운도 있어 좋기는 했지만, 여전히 책을 먼저 보고 영화를 봤어야 하는 후회가 남는다.
주변 평이 자자하여 읽던 다른 책을 쉬고 먼저 읽게 된 토니와 수잔.
이 책이 영화화 된다는 소문을 듣고 읽으니 미리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액자식 구성이라 소설속의 소설을 읽으니 주인공이랑 같은 책을 읽고 읽다는 생각에 묘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책 내용을 평한 평론가들의 글을 보니 여주인공이 소설을 읽으며 현실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며 독자들도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것이라는 류의 평을 읽었는데 나는 당최 어디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껴야할지 의아했다;
또한 주인공이 책을 읽다 쉬기를 반복하며 자신의 현실을 이야기 하는 부분에서는 몰입도가 많이 떨어지고 지루하기까지 했다.
독서카페의 어느 회원이 주인공이 책을 덮으면 같이 덮어야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는데
나처럼 몰입도가 떨어지고 지루해져서 그랬던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책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고 하는데 제대로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영화도 한 번 보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