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추리소설 걸작선』은 2012년에 출간된 『한국 추리소설 걸작선』에 이어 한스미디어와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손잡고 내놓은 추리 걸작선 2탄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의 기관지인 <계간 미스터리> 잡지를 통해 기발표된 단편들과 평론중에서 42편을 추려 엄선한 추리 선집이다. 2권 역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중반까지 미스터리 여명기 및 황금기 시대의 동서양 걸작 단편 17편과 네 개의 평론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특징은 지금까지 국내 출시된 다양한 여타 추리 선집들과는 차별되게 철저히 국내 독자의 취향과 정서에 부합되는 작품들로 채워졌으며 매니아는 물론이고 추리에 입문하는 초보자들도 쉽고 재밌게 미스터리 황금기 추리소설의 매력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동양의 추리 문학 선두주자이자 여전히 추리 문학이 왕성히 꽃을 피우는 일본의 초기 미스터리 걸작을 다수 포함시켜 동서양의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재밌게 읽은 몇 작품을 소개하면...
『골초는 빨리 죽는다』 이자와 모토히코의 추리 단편. 내용은 짧지만 이야기는 강렬하다. 연속되는 반전이 시종일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피트 모란, 다이아몬드 헌터』퍼시벌 와일드의 연작 단편 『탐정 피트 모란』에 여섯 번째 수록된 작품으로 가장 재밌다는 평을 받는 단편이다. 코난 도일, 딕슨 카, 크리스티등 유명 고전 걸작을 패러디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이 포복절도할 웃음을 선사한다. 아마추어 탐정 피트 모란의 포복절도 좌충우돌 탐정 활약상을 제대로 즐기려면『탐정 피트 모란』(해문출판사, 2011년)을 보시길.
『살의』『문신살인사건』의 저자 다카기 아키미쓰의 심리 추리물. 계획살인과 충동살인에 관련된 법의 맹점을 교묘히 파고든 수작.
『무대 뒤의 살인』 후더닛(whodunnit), 하우더닛(howdunnit), 와이더닛(whydunnit)이란 주제로 에드워드 D.호크가 선보이는 세 개의 추리 단편. 짧은 분량들이지만 임팩트가 강하고 완성도가 뛰어나다.
『알리바바의 주문』 피터 웜지 경 시리즈로 유명한 도로시 세이어즈의 이색 단편. 비밀 범죄 조직을 소탕하려는 피터 웜지 경의 모험담이 유쾌하게 그려진다.
『오필리어 살해』『흑사관 살인사건』의 저자 오구리 무시타로의 추리 단편. 오페라 연극 무대에서 벌어지는 살인을 햄릿 역의 노리미즈 린타로 탐정이 해결한다. 언어학적 암호, 꽃말의 의미, 무대 장치의 트릭등을 노리미즈 탐정의 현학적인 대사와 추리를 통해 작가만의 독창적인 세계관과 재독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외에도 엽기적인 쇼핑을 하는 여성들을 그린 쓰쓰이 야스타카의 『그녀들의 쇼핑』, 오번 가문에서 벌어진 살인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매슈 핍스 실의『오번 가문의 비극』, 기억을 잃은 자와 훔쳐간 자의 서스펜스를 그린 베리 퍼론의 『사라진 기억』, 다잉 메시지를 통해 범죄의 진상을 추적하는 노리즈키 린타로의『이콜 Y의 비극』, 순문학필의 애절한 반전을 선사하는 토마스 H. 쿡의『아버지』, 동물을 기소해 법정에 세우는 유쾌한 코믹 법정물인 아서 체니 트레인의『불도그 앤드류』, 사라진 여배우의 행방을 추적하는 반 도젠 교수의 활약을 그린 자크 푸트렐의『A 분장실의 수수께끼』, 토마스 테셔의 공포물 『먹이』, 교도소 감방에서 의문사한 의뢰인의 진실을 파헤치는 크레이그 라이스의『그의 마음은 찢어졌어』등 재미난 추리 단편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중간에 삽입된 네 개의 전문적인 평론 <범죄 옴니버스>,<과학적 연구와 탐정소설>, <탐정소설론>, <프랑스 추리문학 소사>는 미스터리 문학을 보다 심도있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특히 도로시 세이어즈의 <범죄 옴니버스>는 추리소설 초창기의 탐정의 역할, 플롯의 진화, 시점의 중요성등 추리소설 전반에 관한 유익하고 재미난 얘기를 많이 들려준다. 단, 유명 고전 걸작들의 트릭과 범인이 그대로 노출되니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본문만큼 재밌는 부분은 한국추리작가협회 손선영 작가가 쓴 해설편이다. 수록된 작품 일일이 작가 소개와 작품의 특징, 주인공 캐릭터의 탄생 배경, 추리문학사적 가치와 의의등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래서인지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이 책을 엮을 때 추리문학사적으로도 가치가 있으며 (최초의 여탐정 등장 같은) 그러면서도 국내 추리 독자의 기호에 맞는 작품으로 선별하고자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1900년대를 전후한 미스터리 여명기 및 황금기 동서양 추리소설의 진수와 고전 걸작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향수를 느끼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추리 선집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