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기괴하지만 한편으로는 코끝이 아릿해지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사랑스러운 단편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잖아요.
괴담이라 불릴 만큼 말도 안 되는 일에도 사실은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 10p
이따금 상상한다. 나를 둘러싼 어떤 괴담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내 안에 어떤 악마 같은 것이 깃들어 좋은 것만 열심히 파먹고 파먹어서 남은 이 비루한 껍데기가 나인 건 아닐까. 달리고 달려 필사적으로 가 닿으려고 하면 또 다시 제자리로 와 있는 나는 끝없는 악몽의 굴레 속에 빠져버린 앨리스는 아닐까. 어쩌면 괴담이란 인간의 가장 연약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 가만가만 살점을 뜯어먹다 어느 새 커져 버린, 불안과 상처를 먹고 자라난 우리 안의 괴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때문에 나는 밤이 되면 나온다는 학교 귀신 따위보다, 고통과 불안에 오늘도 철저히 유린되고 마는 나의 지난한 삶이 더 무섭다.
그러고 보면 조예은의 『트로피컬 나이트』 역시 괴담의 실체를 우리 내부에서 엿보았던 게 분명하다. 존재감이 없고, 늘 놀림을 당하다 못해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싶어 스스로 유령이 되어버린 아이(「할로우 키즈」), 잡아먹힐지언정 홀로 외로이 죽지 않겠노라 필사적으로 괴물 같은 ‘그것’을 끌어안는 옥주(「고기와 석류」), 내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끔찍한 단절의 감각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연주(「릴리의 손」), 끊임없이 우등생인 사촌언니와 비교당하며 엄마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리듯 살아온 유리(「새해엔 쿠스쿠스」), 급성 먼지바람이라는 재해에 아니 사람 때문에 2년 째 집밖을 나서지 않는 수안(「가장 작은 신」)과 같은 인물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삶이야말로 실체를 알 수 없는 괴담에 가깝다고 느꼈으리라.
“은주는 일주일 내내 같은 옷 입는대요! 빨지도 않나봐, 더럽고 냄새나!”
그 순간, 제 몸에서 정말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습니다. 엄청난 악취였어요. 귀찮다는 이유로 같은 옷을 여러 벌 산 엄마도, 소리 지르는 짝꿍도, 이상한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는 반 아이들도, 어딘가 안쓰러운 빛을 띤 담임선생님의 눈빛도 전부 끔찍했어요.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 「할로우 키즈」 중에서 10p
재이의 부모님은 자주 늦었습니다. 9시, 심지어는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애를 맡겨놓고는 했어요. 주로 정장을 입은 어머님이, 가끔은 술 냄새를 풍기는 아버님이 오셨습니다. 재이는 얌전하게 기다리고만 있었죠. 칭얼거리지도 않았습니다. 기다리는 게 익숙한 애였어요. 그런데 제가 일하면서 느낀 건데요, 어른도 짜증 날 정도의 상황에서 애가 가만히 있는다는 건 그리 좋은 게 아니에요. 그 지루한 시간을 재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견뎠을까요. / 「할로우 키즈」 중에서 13p
세상에는 참 병든 사람들이 많고, 죽음의 순간 또한 다양했다. 장례식장도 마찬가지였다. 사흘 내내 식장이 미어터지도록 조문 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상주조차 제대로 자리를 지키지 않는 이도 있었다. 식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무연고자로 화장되는 이들 역시 적지 않았다. 옥주는 상처를 치료받으며 자신의 최후에 대해 생각했다. 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모르게 고요히 가겠지. / 「고기와 석류」 중에서 34p
그 중에서도 외로움이란 감정을 가장 기괴한 공포의 형태로 그려낸 「고기와 석류」란 작품이 단연 인상적이다. 남편과 정육점을 운영하던 옥주의 마을은 옆 동네에 백화점이 생기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 남편이 먼저 암으로 죽고 장례식장에서 일하며 종종 자신은 홀로 남아 외롭게 죽을 것을 상상하던 옥주는 어느 날, 퇴근길에 우연히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정체불명의 ‘그것’을 마주한다. 석류알처럼 붉은 눈을 한,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 같은 모습의 ‘그것’을 옥주는 집으로 데려온다.
옥주는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그것’을 먹히고 입히며 자신의 곁에 둔다. 설령 그것에게 자신이 잡아먹힌다 할지라도 개의치 않는다. 아니, 기왕이면 석류가 아주 깨끗이 자신을 발라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석류의 양분이 되어 이해 불가능한 죽음으로 남을지언정 외롭게 죽지는 않겠노라고. 그것만이 남은 삶의 마지막 목표이자, 지금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라 믿으면서. 이는 다단계 직원으로, 자신을 등쳐먹으리라는 빤한 속셈으로 찾아오는 미주를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수안(「가장 작은 신」) 역시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작가 조예은은 다수의 작품을 통해서 ‘홀로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매우 실감나게 보여준다.
옥주는 그것 앞으로 다가갔다. 문득 이 풍경이 아주 그립고 익숙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 공간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늘 누군가 자신을 맞아주고, 라디오 음악 소리가 들리던, 생기 넘치던 시절이. 집에 돌아와 낯선 이와 눈을 마주치는 게 이리도 두렵지 않은 일이었다니. 죽어가는 눈을 보지 않는 게, 살아 있는 눈을 보는 게 이렇게 심장 뛰는 일이었다니. 그것이 비록 사람인지 괴물인지 모를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 「고기와 석류」 중에서 37p
대부분 자신이 누구인지, 나이나 이름, 가족을 포함하여 살아온 흔적들을 모두 잊었다. 어차피 한번 틈을 넘어온 이상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었기에 잊는 게 더 낫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모든 걸 온전히 기억하는데 돌아갈 수 없다면, 그것대로 견디기 힘든 비극이니까. 그런 이방인들을 구조하고 이후의 삶을 지원하는 게 릴리와 연주의 일이었다. 하지만 잊는 게 낫다는 건,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되는 말이라고 릴리는 생각했다. 그건 정말,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 「릴리의 손」 중에서 69p
처음부터 밖에 나가지 말아야지 한 것은 아니었다. 경보음이 울리는 날에는 밖에 나가지 말아야지, 했을 뿐인데 경보음이 매일 울렸다. 일주일에 네 번 울리던 것이 하루에 네 번씩 울렸다.
공기 정화 특수 방독면이 개발되어 미세먼지 수치가 높은 날에도 야외 활동을 할 수 있게는 되었지만, 수안은 여전히 밖에 나가지 않았다. 혼자 지내는 날이 길어질수록 마음속에 벽이 생겨났다. 아주 작은 먼지들이, 온몸의 구멍을 파고들어 무수한 거절의 기억을 심어놓은 듯했다. 먼지보다 사람이 두려워졌다. / 「가장 작은 신」 중에서 156p
‘미주에게 수안이 수십, 수백 중의 1이라면 수안에게 미주는 그 자체로 꽉 찬 1이었다.’
우리는 늘 지독한 고통과 불안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변치 않고 반짝이는 내 안의 다정한 기억들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서 꽉 차오르는 누군가가 있기에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국의 땅에서 쿠스쿠스를 함께 먹자고 사진을 보내오는 언니가 있고(「새해엔 쿠스쿠스」), 실적의 압박에 시달리며 친구를 이용해야 하는 미주에겐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내미는 수안이 있다(「가장 작은 신」). 죽음이라는 운명으로부터 끊임없이 도피해야 하는 블루에게는 썸머와의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이건 확신이야. 내 애정이, 내 목소리가 너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닿을 거라고 믿어.’ 「릴리의 손」에서 연주가 릴리에게 남긴 편지의 글귀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닿을 거라는 믿음, 바로 그것이 그 어떤 확신조차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순간에도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게 아닐까. 덕분에 『트로피컬 나이트』에 수록된 단편들은 대체로 기괴하지만 한편으로는 코끝이 아릿해지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사랑스러운 작품이 된다.
“어렸을 때는 그 사실이 엄청 힘들었는데 나이가 들고 생각해보니까, 그건 사실 당연한 거야. 어떻게 타인이 타인을 완전히 이해해? 텔레파시가 통하지 않는 이상.”
릴리는 연주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그래도, 엄마가 말했었거든. 내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이해 못 하면 뭐 어때. 내가 있는 것만으로도 이해 같은 거 없어도 힘이 된다는데. 결국 지금 누구랑 있느냐가 중요한 거 아니겠어?” / 「릴리의 손」 중에서 94p
도끼와 피와 질투와 후회와 괴로움에 잊고 살던 어떤 순간들이. 트리에 걸린 장식품처럼 반짝이며 존재하던 기억이. 맞아. 난 한 때 이런 기억들로 살았다. 나를 이루고 나를 움직이게 만들던 시간들이 있었지. 스스로를 되찾은 블루는 너무 오래 부르지 못해 입 안에 갇혀버린 이름을 비로소 떠올렸다. 블루는 마지막 남은 온 힘을 다해, 세월의 먼지를 털어낸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았다.
“오랜만이야, 썸머.” /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중에서 307p
『트로피컬 나이트』는 한국 문단의 떠오르는 작가로 조예은이라는 이름 석 자를 기억할 만한 인상적인 작품집이다. 다만 촘촘한 구성과 좀 더 독보적인 형식의 단편들을 기대한 점에 있어서는 얼마간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떨어지는 별똥별이 아니라 날아오르는 별똥별을 보는 듯한 감각’을 독자들에게 선물해줄 줄 아는 작가라는 점에서 계속 주목하게 될 것 같다.
*조예은 작가님의 [트로피컬 나이트] 책을 23년 3월에 읽고 독후감을 남깁니다.
[트로피컬 나이트] 는 단편집으로 ‘할로우 키즈, 고기와 석류, 릴리의 손, 새해엔 쿠스쿠스, 가장 작은 신, 나쁜 꿈과 함께, 유니버셜 캣숍의 비밀,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트로피컬 나이트] 에 수록된 단편들 모두 재밌었지만 그 중 가장 작은 신, 유니버셜 캣숍의 비밀, 새해엔 쿠스쿠스, 릴리의 손 단편을 가장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가장 작은 신’에서 수안의 입장에 몰입하며 읽어서인지 미주의 사과 문자에 집 밖으로 나온 수안이가 대견스러웠어요. 다단계 직원인 미주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수안이와 계속해서 만나는 것으로 내용이 시작됩니다. 처음에 밖으로 나가지 않는 수안이에 몰입을 했고 그 다음은 미주의 감정에 이입했습니다. 집에만 있던 수안이 미주의 문자를 받고 밖으로 나간 성장도 좋았고 미주의 사죄도 좋았습니다. 수안이도 미주도 각자의 방향으로 성장하는 게 보여서 좋았습니다.
이 단편에서 ‘통쾌함이나 후련함 같은 건 없었다. 다만 어차피 삶은 계속될 테고, 그 사실이 버틸 만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라는 말이 인상깊었습니다. 미디어에서 흔하게 ’사이다‘가 원없이 나오지만 현실에서는 사이다가 없는 괴리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공감이 가는 말이었습니다. 통쾌함이나 후련함이 없어도 우리의 삶은 계속될 거고, 버틸 만하다고.
’유니버셜 캣숍의 비밀‘은 오래 키운 고양이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가 뜻밖의 장소에서 재회하는 내용입니다. 이번 리뷰의 제목인 “이 장면을,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하고 싶다고.” 도 해당 단편에 실려있습니다. 체다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는 말이 너무 공감되어 슬펐습니다. 고양이별이고 뭐고 그냥 나와 함께 살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주인공인 은하의 마음과 역장님인 체다의 모습은 왜인지 눈물이 났어요. 둘이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장면이 정말 애틋해서 그랬을까요.
언젠가 모든 생명체의 시간이 같이 흐르는 다른 별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그 곳에서는 영원히.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호러같은 느낌으로 전작보다 더 그런 호러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밤중의 암녹색 늪지대의 안개같은 느낌, 그 위에 한 두개의 조명이 켜진 것 같은 분위기의 책이라 느꼈습니다.
[트로피컬 나이트] 는 줄거리, 감정선 중심으로 기억이 남았습니다.
'내일 세상이 없어진다 해도 나는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좋아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해내는 지속성에 대한 성실함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포칼립스 장르나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전혀 다른 반전된 세계를 마주쳤을 때 벌어지는 사건 사고는 늘 흥미롭다.
만약 내가 그런 종말의 세계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그 주인공들처럼 행동할 수 없기에 그들이 서사의 주인공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조예은의 '트로피컬 나이트'는 그런 종말의 세계, 반전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한다.
그들은 지나치게 정의롭거나, 세상을 구하거나, 그 스스로가 종말을 반전시킬 열쇠이거나 하지 않다.
그저 종말 뒤의 삶을 지속해나가는 묵묵함을 보인다.
가장 인상 깊은 단편은 가장 첫번째 단편이었던 '할로우 키즈'였다.
읽고 나니 볼빨간 사춘기의 '나의 사춘기에게'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나는 내가 한때 이 세상에 사라지길 바랐어'
어떤 유년기의 기억은 마냥 찬란하지만은 않다.
시간이 지나 되돌아 보면 모두 즐거운 기억이었다는 말은 사실 그 슬픈 기억은 저편에 버리고 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외면하고 때로는 넘어서며 살아온 그 나날들을 재이를 통해 되돌아 보는 주인공을 보며, '그래도 어쩌면 세상에 작은 빛이라도 될'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
한겨레출판사에서 출판한 조예은작가님께서 집필하신 <트로피컬나이트>에 대한 리뷰입니다. 다 읽고 작성한 리뷰이므로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할 수 있으니, 스포일러에 민감하시거나 해당 도서를 다 읽지 않으신 분들은 이 리뷰를 피해주시거나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친구들과 독서모임회를하면서 읽기로 정한 이 달의 책이다. 안전가옥에서 나온 칵테일 러브 좀비를 읽고 조예은작가님의 참신함과 문체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다른 책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다가 찾게 된 책이다. 표지부터 너무 예쁘고 다 읽고나서 역시나하는 생각이 들며 기대에 부응하는 책이었다. 칵테일 러브 좀비처럼 단편집이다. 모든 작품의 주제가 흥미롭고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는데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릴리의 손이었다. 당연히 연주의 손이라고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혹시 아닌가 싶을때의 반전이 재밌게 느껴졌다. 대체로 가슴 따뜻하게 느껴지는 내용이 많았고 영화를 보고있는것처럼 책을 읽으면서 이미지화가 잘 돼서 상상하는 즐거움을 제대로 즐긴 책이었다.
책모임을 같이하는 회원분이 중학교 딸이 주문해달라고 했다며 요즘 중고생들에게 인기있는 작가라며 소개해주어 읽게 되었다.
8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집을 다 읽고나니 <외로운 존재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존재들은 그 외로움을 각자 자신의 방법으로 처리한다.
아예 그 존재를 사라지게 함으로써(할로우키즈),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식인 동거인과 함께 하기 위해 남편의 시체를 먹여서라도(고기와 석류), 세상의 틈으로 떨어진 낯선 세계에 같이 떨어진 손을 괴기스럽게 껴안으면서(릴리의 손), 나와 부모의 욕망사이에서 쓸모없음의 존재에서 탈출하고 해방되기 위해 낯선 음식을 욕망하며(새해엔 쿠스쿠스), 히키코모리의 삶 속에서 연결되기 위해 다단계 판매에 속아주며(가장 작은 신), 포옹의 따뜻함을 알아버려서 더 이상 악몽을 먹지 못하더라도 함께 하려하며(나쁜 꿈과 함께), 저주와 낙인 속에 자신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잔혹한 도끼 만행도 서슴지 않으며(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자신의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주인공들이 나온다. 이들의 외로움은 주류 혹은 근원에서 어떠한 경로를 통해 미끄러짐으로써 생겨나게 된다. 입김 센 부모를 두지 못한다든지(할로우키즈), 갑자기 이세계로 가게 된다든지(릴리의 손), 부모의 기대를 맞추기 어려워서(새해엔 쿠스쿠스)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이런 무언가에서 미끄러져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존재들의 외로움 극복 방식은 희망의 메시지나 우리가 흔히 하는 응원의 말과는 많이 낯설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의 외로움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누구나 어디선가 미끄러진 존재같은 느낌을 받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십대 아이들이 이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낯설지만 기존의 메시지와는 다른 어떤 지향점을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만 나에게는 단편 중 <유니버설캣숍의 비밀>은 다른 단편과는 다소 결이 다른 듯한 느낌이었다. 작가가 고양이 집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거실에 통통하게 늘어져 있는 고양이를 보며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상상해 보는 그런 이야기라고 할까.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어느 별에서온 어떤 생명체같다고 표현하는 것을 많이 보아서 그런가보다.
이 리뷰는 한겨레출판에서 출간된 조예은 작가님의 트로피컬 나이트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우선 조예은 작가님은 칵테일, 러브, 좀비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책의 첫인상이 제목을 통해 정해진다고 생각하는데 작가님의 작품은 항상 제목부터 읽고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예은 작가님의 문장력은 제가 정말 사랑해마지 않고 스토리 또한 그러하기 때문에 이번 단편집도 너무나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