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24 2월 북클러버 돈독HOLA에서 모임 책으로 읽은 책의 감상입니다.
책을 읽기 전
원래 단편 읽는 걸 좋아합니다.
단편을 잘 쓰는 작가들이 장편도 잘 쓴다는 생각이 있어서
단편을 통해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는 것도 좋아해요.
가볍게 짧은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성향도 파악하고
기분 전환도 하고 싶었어요.
책을 읽으며
읽는 시간 자체는 매우 짧았습니다.
단편도 정말 초단편 같다는 느낌이에요.
너무 짧게 느껴진 나머지 이게 뭐지?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네요.
시작하는 분위기가 나쁘지만은 않았는데
여러모로 추측되는 상황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겁기도 하고
눅눅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라 반갑지는 않았어요.
비극적인 글을 읽고 싶은 때는 아니었나봐요.
내용이 부족하게 느껴지는데
또 이상하게 아주 자세한 뒷얘기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지도 않고
묘한 느낌이네요.
정신없이 시달리는 요즘 읽기엔 편안하지가 않아서
안타까운 비극에 몰입이 안 되었네요.
이런 배경에서는 아주 드문 이야기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책을 읽은 후
잠시 다른 세계로 떠나게 한다는 점에선
의미가 없진 않은 단편이었지만
저는 좀 더 가벼운 세계로 떠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슬픔에 빠져있고 싶진 않은 요즘이라 금방 읽었는데도 좀 힘들게 읽은 느낌입니다.
결국은 사랑... 마지막은 어쩌면 희망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과연 사랑은 뭘까요? 회의감이 듭니다.
흘러흘러서 전해지는 이야기들... 덧없는 시간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가라앉았달까요.
벌써 2월도 다 갔네요. 정말 시간은 흐르고 계절도 바뀌네요.
누군가에겐 굉장히 취향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나 영상으로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은 그런 단편이었지만,
저는 지금은 좀 더 유쾌한 이야기를 찾아가고 싶습니다.
책은 임진왜란이 끝날 무렵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음에도 나라에 먹구름만 가득해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보이지 않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마을에 찾아온 이야기꾼인 선비와 친일 아버지를 두었지만 전란이 난 곳을 향해 떠날 정도로 강직한 아가씨의 비극적 사랑을 계기로 함부로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두려웠던 시대에 움츠러든 사람들이 다시 화합하고 움직이기 시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한 화자가 누군가에게 한탄하며 말하듯 쓰여있어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이 이야기의 분위기를 독특하게 이끌어가서 독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1. 책 선정 이유
최근담 시리즈는 단편으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 연초에 읽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최근담 시리즈에 흥미롭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 많아 평이 높은 ‘가장 매혹적인’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2. 책 소개
본 책은 YES24에서 볼 수 있는 최근담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최근담 시리즈는 다양한 젊은 소설가와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시리즈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최애’에 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가장 매혹적인’은 과거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꾼이 핵심인 듯한 내용으로 독자마다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 내용입니다.
3. 책 후기
‘가장 매혹적인’은 단편집으로 짧은 분량만큼 작가의 의도를 명확하게 알 수 없어서 작품을 읽고 난 후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 읽었습니다. 작가는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합니다. '비단 책',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책 속에 등장하는 단어와 문장처럼 이야기꾼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나옵니다. 등장인물들의 직업이나 하고자 했던 일들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인터뷰에 있는 작가의 마음이 표현된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용의 전개는 제3자의 입장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명확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작품의 배경과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 시간에 따른 전개는 독자가 다양한 추측과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배경은 과거로 임진왜란 이후가 배경인 듯합니다. 자른 귀를 모아놓은 항아리, 백성들의 살기 힘든 삶을 나타내는 바쳐야 하는 곡식들, 애기씨가 남장할 때 사용하던 두루마기와 갓 등 배경을 암시하는 요소들로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중심 내용은 갑자기 나타난 사내인지 여인인지 모를 사내와 송부사댁 애기씨의 이야기입니다. 과연 이 두 사람은 실제로 존재하는 두 명의 사람인지, 아니면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은 어떤 사이인지 등 독자가 상상하는 만큼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단편이라 분량이 짧고 제3자의 시선으로 전개되어 배경, 등장인물, 중심내용에 대한 설명보다 제3자의 감정이 문장으로 이어지는 형태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새롭고 생소한 작품을 찾는 분들에게는 흥미로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책을 고른 이유
그동안 두꺼운 책을 많이 읽어서 한템포 쉬어가는 느낌으로 짧은 단편 소설을 읽고 싶었다.
그 중 인지도가 있는 작가의 평점이 좋은 책으로 골랐다.
2. 책 내용과 후기
내용은 제3자가 주인공의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때문에 내용이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진실이 아닌 제3자가 보고 느낀 것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 있는 아씨와.. 선비...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잘 알 수가 없었다.
3.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
정말 읽을 게 없어서 죽을 것 같은 사람. 킬링 타임으로 단편 소설을 읽고 싶은 사람
4. 인상깊은 구절 :
더 많은 이야기, 더 많은 이야기, 더 많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줘. 네가 들어줘
[가장 매혹적인 - 한정현] 세상의 시작과 끝
오뉴월에 뼛 속까지 얼어 붙는 듯한 비명 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졌다. 척 보기에 나이상, 분위기상 공통점이라고는 없는 이상한 조합을 이루는 여성 셋이 절벽을 바라보며 서늘한 비명을 내질렀다. 안돼. 어떻게 해. 같은 소리가 사건의 위중함을 짐작케 했다. 가파른 악산은 아니지만, 등산로 건너편에는 까마득한 절벽이 있었고, 등산로와 절벽 가운데에는 계곡이 흐르고 있었다. 가장 어려 보이는 여자가 입을 틀어막고 거의 울다시피 하고 있었다. 보라색으로 물든 머리를 뽀글뽀글 볶은 파마머리 아주머니가 어린 여자를 일으켜세운다. 아마도 아는 사람들인가보다. 이윽고 마스크를 쓴 다른 여성이 다리가 후들거리는지 자세를 낮추고 등산로 끝으로 발을 옮겨 빼꼼히 계곡을 내려다본다. 야!!! 살았다!!!!!!! 살았어!!!!!!! 연신 그녀가 살았다고 소리지르자 나머지 두 여성도 쭈삣대며 등산로 끝에 엎드려 계곡 아래를 본다. 고개를 들어 제껴도 아득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고, 등산로에서 계곡 아래까지도 2m가 훌쩍 넘을 정도니, 셋 다 속으로 신고를 해야하나, 그리고 누군가가 올 때까지 시체를 수습해야겠거니 했다. 용케도 현장은 깨끗하다. 추락의 여파로 머리가 띵한지 그가 가만 서서 머리를 흔들거리다가 계곡 물에 휩싸여 30센치쯤 떠내려가자 또 세 여성이 안돼. 안돼. 힘을 내 제발. 쓸려가지마! 같은 소리를 계곡 가득 내지른다. 효과가 있었는지 이윽고 헤엄치다가 가까운 바위 위로 생명이 몸을 올린다. 생존을 최초로 발견한 여자가 계곡으로 내려가서 볼까? 도와줘야할수도 있잖아. 했더니, 파마머리 아주머니가 말한다. 안돼 나래야. 너무 위험하자네. 아마 괜찮을테니께. 살아있고 피도 안나잖여. 마음이 정리 됐는지 가장 어려보이는 여성이, 아니 저게 어케 사누. 기쁜데 신기하고 이상하다 기분이. 한다. 그러고도 한참 세 그림자가 계곡을 굽어본다. 그러자 바위 위의 생명은 쪼르르 달려가 어딘가 굴로 몸을 감춘다.
우리가족은 종종, 정말 시트콤 같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을 겪을 때가 있다. 가끔은 <트루먼 쇼>처럼, 누가 내 인생을 들여다보고 있을까 싶다. 본가에 가족이 모이면 별의별 TV 프로그램을 다 보는데, 전날 다람쥐의 일생과 관련한 다큐를 보고 다같이 감명 받았던지라, 나와 아현, 엄마는 산에 오르면서 온통 다람쥐 생각 뿐이었다. 세 모녀는 도토리를 등산객이 밟아 깨어버릴까봐 주워서 길 한쪽에 모아놓았다가, 누군가가 아니~ 이러면 다람쥐가 의존하게 되잖아! 인간한테! 그러면 안된댔잖아! 하니까 또 막 여기저기로 흐트려놓았다 하면서 느릿느릿 산책로를 걸었다. 그러다가 또 다시 누군가 아아!!! 저기 절벽 위에!!!! 다람쥐 두마리가 놀고 있어! 해서 고개를 들었더니 까마득 높은 곳에서 그들이 엄청나게 뛰놀고 있다. 페스티벌이라도 열었는지 위태위태한 곳에서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매달리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난리법석이다. 저 가파른 바위 절벽에서도 잘 논다잉. 어찌나 귀여웠는지 그렇게 한참을 올려다보는데, 셋 다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한마리가 속절없이 추락하다 툭 튀어나온 바위에 부딪히고 튀어오른 후, 다시 추락해 시야 밖의 계곡으로 떨어졌다. 남은 한마리는 절벽 위에서 급히 내려오고 있다. 동생일까, 엄마일까, 아니면 배우자일까. 눈물이 났다. 셋 다 죽음을 볼 자신이 없어서 울먹이며 발만 동동 구르다가 또 누군가 죽었으면 묻어줘야는거 아니여? 하자, 아현보다 경험 많고, 엄마보다 심신이 덜 미약한 내가 자진해서 길 끝에 섰다. 살았어! 하자, 둘이 주춤 주춤 그러나 급하게 길 끝으로 오는 소리가 들린다. 다람쥐는 살아 있었다. 여전히 정신이 안드는지 머리를 흔들고 있다가, 바위를 덮친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 가버렸다. 우리는 튜브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쟤를 어찌냐, 어쩌. 죽겄네 죽겄어. 하다가 힘내! 제발 헤엄쳐! 했다. 그리고 빼꼼 그 쪼그만 것이 고개를 들고 다시 돌 위로 올라오니까 절로 박수가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납작 엎져 있자 엄마가 어찌냐. 뇌진탕인갑다. 해서 저걸 또 어떻게 동물병원에 데려다 줘야하나 하는데, 갑자기 그것이 쪼르르 달려 굴속으로 쏙 들어가 자취를 감췄다. 엄마는 이제서야 의연한 척, 딸들을 다독이면서 유연해가꼬 잘 안다친게. 괜찮여. 건강한 것 같으니까 가자. 하셨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집에 도착하자 아빠한테 셋이 입을 모아 우당탕탕 사연을 완성해 들려줬는데, 아빠는 누운채로 심드렁했다. 어, 가마꼴. 가마골에서 그렸으면 살제. 더 높은뎌서 떨어져불도 살아 갸네는. 날다람쥐가 아닌데도? 어, 살아. 그래서 우리는 괜히 시무룩해지면서도, 결국 우리가 본 다람쥐가 건강하면 됐지, 우리는 생명의 신비를 목격한거야. 에 합의하며 곧 다시 싱글벙글 해졌다. 그리고 몇 분 후에 TV에서 어제 본 그 다람쥐 다큐멘터리를 재방송해줘서, 본거 뭐더게 또보냐 하는 아빠로부터 채널권을 압수하고, 세모녀는 재방을 집중해서 관람했다.
그 후로 나랑 아현이랑 엄마는 다람쥐만 보면 생명의 신비를 함께 목격한, 끈질긴 생명력을 함께 경험한, 작은 몸에서 나오는 삶에 대한 집중력을 함께 맛 본 은밀한 동지애를 공유하며 한참 말없이 다람쥐를 한참 구경한다. 작은 발로 꼭 움켜쥔 것이 꼭 도토리가 아니라 삶인 것 같아서. 나보다 십수배 내지는 수십배 작은 그 아기다람쥐들에게 삶을 배운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발을 헛디딜지 모르지만 겨우내 부지런히 도토리를 모은다. 어느 여름날, 계곡물이 넘실넘실 하는 날, 주지스님도 산사태가 날지도 모르니까 미리 절을 잔뜩 채비시키고 몸을 피하는 날. 그렇게 매해 찾아오는 장마를 기억하면서도 부지런히 자라고, 모으고, 뛰고, 산다. 넘어지고, 떨어지면, 잠시 멈춰 있다 도리도리하고, 일어나 바삐 멀리 떠난다. 다람쥐 에피소드를 포함한 우연과 자연의 법칙이 감독하고 연출한 시트콤들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수제자들의 보호 아래 더 오래 이 시리즈가 보존되길 바란다. 우리의 미래는 시리즈의 미래와 같으므로. 아빠는 벌써 그 일을 잊어서, 맨날 본디 뭘 그렇게 찍어싼냐? 산골짝에 다람쥐 대수라고. 하면서 지나가시지만, 우리는 만나는 다람쥐마다 사진으로 남긴다. 너네가 그렇게 굳건하게 오래 산골짝에 살면 좋겄어. 너네를 잊지 않을게. 또 봐. 마음 속으로 말도 건네고. 갸는 잘 지내겠지? 엄마가 말씀하시면, 누구? 하지 않고도, 그녀석을 떠올리며, 기특해서 깔깔 웃는다.
그날도 다람쥐를 구경하려고 세모녀는 담양호 용마루길에 나섰다. 걸음이 빠른 아빠가 외로울까봐 엄마가 급히 앞서 나가고, 두 자매는 엄마가 깎아서 락앤락에 담아 놓은 배와 사과를 몰래 꺼내 먹으며 한가로이 걸었다. 발끝에 예쁜 도토리가 채이자 아현이가 도토리를 구제한다. 이거 깨져서 못 쓰게 되면 어떻게 해. 우리는 원칙을 어기고 그 예쁜 도토리를 구해 난간 위에 올려놨다. 언젠가 나무가 돼서 새끼 상수리를 낳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중간부터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징징 댔었는데, 길 끝에 닿자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나래야! 여기 화장실 있다!!! 휴지도 있다!!!! 지나는 사람들이 다 우리를 쳐다본다. 아니, 엄마는 우리가 이쯤 왔는지 어떻게 알고 저렇게 소리를 질러? 소름. 쭈뼛해져서 걸음이 느려진 동생을 두고 나는 길을 달려 화장실에 갔다. 모녀 간에는 텔레파시가 가능한걸까 생각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우리가 앞서 구제해 놓은 도토리를 발견했다. 어머, 귀엽게 도토리가 난간 위에 서있네. 우리는 깔깔대며 그거 아까 우리가 올려 놓은거야. 했다. 엄마는 갑자기 시를 읊었다.
산에는 언제나 소리가 있다.
주인 없는 밤 떨어지는 소리.
다람쥐 도토리 줍는 소리.
산에는 언제나 소리가 있다.
산은 살아 있다.
오. 누구 시를 암송하는거야? 했더니, 방금 엄마가 지은거야. 제목은 산에는 언제나 소리가 있다. 하면서 엄마가 해사하게 웃는다. 으, 오글오글. 하면서도 아현이는 엄마가 귀여운지 주름진 얼굴을 쓰다듬었다. 우리를 살게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은 늘 이야기다. 시다. 나는 그것을 짧은 시로 증명하는 엄마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메모장에 급히 시를 받아적었다. 나는 언젠가 엄마를 시로 기억하고, 다람쥐 이야기로 추억하기 위해서, 다람쥐처럼 엄마의 이야기를 모은다. 예스24 최근담 시리즈로 발표된 한정현 작가의 <가장 매혹적인>은 우리 삶에 가장 흔하고, 그래서 없으면 삶이 성립되지 못한 듣지 못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이 이야기라고 이야기한다. 본작은 어떤 존재의 소중함을 갈무리하기 위한 영원한 방법은 이야기라는 나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고 말을 건넨다. 구어체로 쓰여 구전 설화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 작품은, 임진왜란이 끝난 조선 땅의 평범한 백성들의 삶을 조명한다. 그리고 7년의 왜란을 겪은 모진 세월 끝에 누가 누구를 버리고 도망갔는지, 누가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떠난 사람의 뒷모습을 어떻게 기억해야하는지. 그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을 토해내지 못해서, 모질도록 질기고 넓은 삶의 틀에 작은 이야기도 담지 못해서. 말없이 손을 잡고 멈추지 않는 춤으로나마 이야기를 기억하고자 하는 남은 자들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문화(文化, 인류의 지식, 신념, 행위의 총체)에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시, 소설, 설화와 같은 문학 작품들이나 판소리로 위시되는 한국의 고유 민속악처럼 문자로 옮길 수 있는 영역은 물론이고, 선사시대의 벽화부터 현대미술에 이르는 미술 영역과 가사가 없는 아악과 클래식 등 음악과 몸짓으로 표현하는 무용처럼 언어로 표현하지 않는 영역에도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문화 전반의 요소를 갖추고 있는 한국 고유의 종합예술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무형 유산인 무형 문화재 강강술래에도 이야기가 있다. 여러 사람이 손을 맞잡고 큰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 춤추는 이 예술행위는 사실 앞소리와 소리로 나누어지는 노래를 부르는 것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문자로 옮길 수 있는 영역에 있는 풍습이지만, 문화재를 전문적으로 구현하는 전승자가 아닌 이상 일정 곡조에 강강술래를 반복하는 것 외에는 가사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물리적 행위 자체와 행위가 갖는 의미에 초점을 맞춰 문화재를 해석하게 된다. 강강술래는 여성들이, 주로 추석에 풍작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이순신 장군이 여자들에게 모닥불을 주위를 돌며 강강술래를 하게 해서 그 그림자 때문에 일본의 왜군이 조선의 병력을 두려워하게 됐다는 역사적 의미도 지닌다. 본작은 강강술래의 오래된 역사적 의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강강술래가 사실은 전쟁의 춤이 아니라 사랑의 춤, 여성들만 추는 춤이 아니라 성별에 관계 없이 모두가 섞여 추는 춤이라고 가정한다. 그리하여 강강술래가 갖던 여성의 자조적 한탄, 풍요의 기원 이면에 숨은 배고픔에 대한 자위, 그리고 전쟁의 무기라는 통속적 이미지가 사랑과 평화, 삶에 대한 의지라는 긍정적 코드까지 수렴하며 확장된다. 10분만에 읽히는 짧은 글로, 이순신 장군의 비책이라는 기존의 강력한 서사를 유지하면서도 주된 역사적 사건 이면에 존재하는 비극적 순간,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사랑, 그리고 인간의 실존이라는, 시대를 뛰어 넘는 존재에 대한 보편적 고찰로 순식간에 관점을 옮기는 데에 성공한다. 아름다운 문체, 적정한 여백을 갖춘 세심한 묘사, 상상력을 자극하는 관찰자 시점,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독백적 구성이 매우 인상적이다.
임진왜란 당시 백성을 버리고 피신한 비운의 왕과 비겁한 왕을 모시는 탐관오리들이, 백성들만 남아 폭력에 저항하여 지켜낸 삶의 터전으로 돌아오는 환경이 작품의 배경이다. 전세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자, 백성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귀를 잘라가던 왜구들만큼이나 각박하고 잔인한 위정자들을 견뎌야 했다. 게다가 폭력의 상흔은 오래 낫지 않아서, 본작의 주인공인 남쪽의 어떤 해안 마을 백성들은 떠난 이들의 귀가 없어진 것이 옹이처럼 가슴에 맺혀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야기만 들으면 꼭 진짜 사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귀 없는 이들을 떠나보내고도 삶이 계속 되는 것이 죄스러웠으리라. 그렇게 과거와 현재 사이에 꽉 끼어서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 전쟁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이야기꾼 남자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조금씩 남자 앞으로 모여든다. 이야기를 듣지도, 하지도 못하게 했던 세상에 맞서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역 사회에서 폭압으로 유명한 송부사 댁에 남자가 끌려가고, 그는 눈과 혀를 잃은 채 버려진다. 화자는 남자가 죽는 순간까지 송부사 댁에서 취급하는 비단으로 싸인 책을 꽉 껴안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왜구의 배를 나루터에 단단히 묶어준 송부사와는 달리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화약 취급소가 있는 북쪽으로 말을 달려 사라졌다가 전장에서 눈을 잃은 송부사의 강단지고 정의로운 딸과 그가 모종의 관계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화자 뿐만 아니라 남자 앞에 모여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 모두가, 듣지 못하게 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왜구 뿐만이 아니었음을, 대화하지 않고도 동시에 깨닫는다. 몇달이 지나고, 사람들은 지존의 몇 첩짜리 밥상과는 달리 한가위가 지나도 상위에 올릴 것이 없어서, 생선이라도 잡아 끼니를 때울 요량으로 바다를 찾는다. 그리고 바다에서 이야기꾼 남자와 그를 꼭 껴안고 있는 송부사 댁 아가씨를 발견한다. 두 사람은 낡은 도포자락과 헤진 갓을 쓰고 있다. 시정잡배에게 희롱 당하는 여성을 구하고, 노비를 묶는 줄을 끊어주기 위하여, 아가씨는 남장을 해야 했다. 말문 막히는 비극 앞에서 사람들은 말없이 서로의 손을 잡고, 달 아래서, 춤을 춘다. 전쟁만 견디면 평화가 올 줄 알았건만. 흐느끼는 소리에도 묵묵히 멈추지 않고 춤을 춘다. 매정하고 모진 삶이지만, 먹고 사는 일은 질겨서 야속하리만치 무심하게 계속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계급과 성별과 같은 일차원적인 구분방법에 기속 되지 않고,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묵묵히. 빙글빙글 돌아가며 평화의 춤을 추는 것 뿐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것 뿐이다.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미워하지 않는 것 뿐이다. 계속 사랑하는 것 뿐이다.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물려주며, 영원히 이야기 속에 사는 것 뿐이다. 오늘을 춤추는 것 뿐이다.
몇 달 전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속이 안좋다는 P와 잠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공원을 걸었다. 그는 나에게 순창에는 별이 많지? 별자리도 많이 알아? 하고 물었다. 응, 그래도 한 열개는 하늘에서 찾을 줄 알아. 그랬더니 그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옛날 사람들은 왜 별자리에 이름도 붙여주고, 이야기도 지어줬을까? 글쎄. 이야기가 중요해서겠지. 진짜 소중한 의미를 영원히 변치 않는 별자리에 담아서 기억하려고. P는 미간을 구기며, 이야. 맞는 것 같다. 꼭 코코 같네. 했다. 삶을 마친 자의 영혼은 죽은 자들이 모여 사는 연옥에서 살게 되고, 이승에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연옥에서마저 사라진다는 <코코>의 스토리는 과연 우리 삶이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야기로 끝나고, 누군가는 이야기로 기억된다는 것을 역설한다. 오, 코코라니. 진짜 그렇네. 나는 P 너를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별자리에 대해서 대화했던 이야기로 기억할게. 응, 내가 먼저 죽으면, 너 죽을 때까지 나도 좀 더 살 수 있겠다. 나도 이 멋진 이야기로 나래 너를 기억할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이로 그저 그랬던 P와 나의 관계는 그 순간 진짜 친구가 됐다. 글 한토막이 어떤 영혼을 죽이기도 하고, 때로는 영원히 살게 한다. 이야기 한토막이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영원한 친구로 만들기도, 단단한 인연이 맥없이 끊어지게도 한다. 짧은 사랑 이야기가 한 삶을 구원하기도, 망치기도 한다. 다람쥐 이야기는 엄마를 영원히 살게도, 나를 울게 하기도 하겠지.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오늘을 살고, 다람쥐를 찾으러 문밖으로 나설 것이다. 그렇게 우리 삶은 늘 모순이다. 그리고 이 매혹적인 아이러니의 시작과 끝에는 늘 이야기가 있다.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끝은 곧 시작이고, 시작은 곧 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의 시작과 끝에는 이야기가 있다. 끝에 시작이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돈다. 강강술래처럼. 이윽고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될 무렵이면, 그 매혹적인 몸짓 사이로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 하나가 떠오르는게 보인다. 이 둥근 세상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이, 그 사랑 이야기가 달이 되어 춤을 비춘다. 세상의 시작과 끝에는, 이야기가 있다.
한정현 작가님의 이름도 처음 들어보고 작품도 이번에 처음 읽어 봤는데 짧은 글이지만 제목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이야기였네요. 마을 초입에 왜놈들이 베어간 사람들의 귀를 담은 항아리가 사내인지 여인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가 들어오자마자 하나씩 깨지는 것부터 묘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평화가 올 줄 알았는데 춤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을 덮고도 계속 들리는 기분이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색감을 사용한 표지가 눈에 띄는 책이었다. 어떤 내용인지 모르고 제목에서도 스토리가 유추되지 않아서 어떤 매혹적인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했는데 첫 문장을 읽자마자 배경과 서술 방식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가 물러선 이후 평생 파도가 밀려오는 것만 바라보고 주로 흰옷을 입는 사람들, 아름답지만 서글픔이 읽는 내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