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열쇠
언젠가 한번 휴일에 날을 잡고 읽어야 할 정도로 책의 두께는 어마어마하게 벽돌 느낌이 나는 그런 책이다. 그런 만큼 내용이 풍부한 책이었다. 두꺼운 책을 읽기 전에 우선은 추천사들 먼저 훓었다. 전체적인 느낌 및 그림을 그려 놓고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경 끄기의 기술] 저자 마크 맨슨은 환각제처럼 황홀한 책이라고 하였다. 이 한 마디는 강렬했다. 이 책을 흥미롭게 만들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환각성 물질이 정말 많다. 그만큼 원재료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 물질은 흔히 마약으로 분류가 되기도 하며, 사람을 살리는데 치료가 쓰이기도 한다. 물론 안좋게 쓰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을 접하기 위하여 환각성 약물을 사용하였는지, 초기 그리스도교인이 그 비밀 전통을 물려받았는지 질문하며 출발한다. 고대에 환각성 음료가 지속해서 사용되어 왔다는 연구 결과 등을 알려주고 있었다. 지은이는 고고학 분야, 양조연구센터 등 다양한 분야들을 추적하면서 그리스 종교와 그리스 도교 사이에 뚜렷한 유사성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었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특정 버섯에는 실로시빈 성분이 있는데 그 성분이 우울과 불안을 완화시킨다는 미국 대학의 연구 결과를 흥미롭게 바라본 지은이었다. 그래서 라틴어와 그리스어 등을 전공한 저자 답게 고대 라틴, 고대 그리스 서적까지 찾아보면서 고대 그리스인이 신을 만나기 위해 환각성 약물을 사용했는지 증거를 찾기 위해서 탐색해 나간다. 그렇게 그리스 독일, 스페인 등의 여러 나라들을 거쳐 바티칸 비밀문서까지 약 12년을 찾아나선다. 그렇게 찾아 가는 내용을 알리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그렇게 지은이가 찾아 나가는 과정에서 접하게 된 경험들을 사진으로 잘 담아 놓았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 문화부터 환각성 물질까지 두루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읽기 좋은 책인듯 싶다. 내용의 깊이가 있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 나가는 과정들이 자세한 것을 보자면 나까지 덩달아 흥미로운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흥미롭고 색다른 책이다. 고대에 사용되었던 신비의 명약이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현대에 새롭게 발견이 되었는데 너무나 대단한 효험을 나타내는 약효라서 진짜라면 혁명에 버금간다는 이야기다.
일단 이 책은 주제 자체가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긴 하지만 어려운 부분이 많다. 기본적으로 과학의 영역이면서 종교의 영역이기도 하고 신화도 들어 있는 복합적인 내용이다.
지은이인 브라이언 무라레스쿠는 일단 무척 똑똑한 사람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언어의 천재쯤 되는 사람인데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등 고대 언어에 정통한 사람인데 실로시빈 실험을 다룬 '신의 알약' 이라는 기사를 보고 흥미를 느끼게 된다. 이 실로시빈은 하나의 성분으로 마법 성분의 활성 성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성분은 일종의 강력한 환각제로 많은 질환에 유효한 치료 효과를 가진다고 한다. 이것을 실험하는 기사를 읽고 지은이는 수년동안 많은 자료를 읽고 비교 분석하고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통칭 마법 버섯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버섯들은 환각버섯이나 미치광이버섯 등과 같은 200여종의 버섯인데 그 속에 들어있는 '실로비신'이라는 성분이 뇌에 작용하면 뇌와 관련한 여러 질환에 효과적이고 우울증이나 불안, 강박장애 등에도 긍정적인 치료 효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성분은 중독 및 오남용이 가능성 때문에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마약인 셈이다. 너무나 효과가 좋기 때문에 대중적인 상품화가 안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성분이 최근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 시대에 사용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서양 문명의 근간이 되는 그리스 로마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고대부터 이 성분이 들어간 맥주나 포도주가 전승이 되면서 사회와 종교에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기독교 출발에 이 환각제를 통한 비의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성분의 임상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일생에서 가장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것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인데 문제는 의학적으로 유효한 효과가 나는 반면에 종교적으로 들어가면 성적인 '환희'와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을 느끼는 것과 같은 정도의 느낌을 느낀다고나 할까. 이 성분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기독교 태동기에 이어져서 기독교 발생에 역할을 했지만 이 자체는 오히려 종교를 위협하는 것이다.
교회나 사원, 모스크에서 평생을 보내도 경험하기 힏든 영적인 황홀경을 불과 몇 시간 안에 손쉽게 약물로 느끼게 된다면 종교가 필요 있겠는가. 종교의 의미는 그런 느낌을 얻기 위해서 만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를 가지지만 분명 이 부분은 종교에 타격을 입힌다. 사람들은 직접적인 신비 경험을 느끼고 싶어하고 인내심이 깊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이 신비한 성분을 중심으로 고대의 전통적 행위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고대에서 어떻게 전승이 되어서 누가 이것을 사용했고 결국 종교적 황홀경이라는 것이 인공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문헌을 통해서 종합적이고 논리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야기 자체는 흥미롭고 주제의 논거도 설득력이 있긴 하지만 이것으로 종교의 무용론을 주장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종교는 영적 체험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많은 가치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신비의 성분과 의식 등이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왔고 지적인 호기심을 자극했다. 신화와 종교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종교인이던 비종교인이던 읽어 볼 만 하다. 다만 내용이 쉽지는 않고 번역이 조금 어렵게 된 부분이 있어서 읽기에 시간이 좀 걸린다.
이 서적은 환각성 물질 실로시빈의 실험 결과를 접한 저자가 12년간 연구하고 조사한 결정체로 고대의 신비제부터 현대의 종교까지 종교의 이름으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주관적인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다. 종교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이론을 소개할 유익한 서적이라 하겠다.
서적은 마법 버섯의 활성성분인 실로시빈의 실험 결과를 통해 실험 참가자들이 단 한 번의 투약으로 자신의 삶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으로 꼽으며 대부분의 사람이 활기를 찾았다는 결과를 바탕으로 고대 신비제의 황홀경과 비슷한 결과를 보였다는 점에 주목해 고대의 종교부터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지배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의식이 가톨릭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맥주와 포도주를 중심으로 탐구한다.
1부는 맥주에 대한 내용으로 저자는 특히 인도와 그리스를 연결하는 원시 인도유럽어가 세계로 퍼져 나가며 비슷한 신비제가 전파되었다는 독특한 이론을 제시하는데 맥주 양조에 환각성분인 맥각 성분의 흔적을 찾는 여정을 마치 탐험가의 수기처럼 기록하는 특징이 있다. 아나톨리아의 장례 잔치에서 음용한 묘지 맥주 성분에서 맥각을 첨가했다는 증언을 제시하면서 장례식에서 죽은 영혼과 대화하기 위해 참석자들이 그 맥주를 마시고 환각 상태에서 산 사람은 절대 경험하지 못할 신비한 경험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 주장하는 밀농사가 식량보다 맥주를 만들려는 용도로 농사가 시작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한 내용이 가장 흥미로웠다.
2부는 포도주에 대한 내용으로 기독교가 그리스의 신 디오니소스를 차용해 발전시켰다는 주장을 담은 내용으로 기독교가 이탈리아 남부에서 두 종교가 만나 고대부터 제사의 주관하고 이어오던 여성들을 통해 기독교가 확산되고 가정이나 소규모집단의 리더로 그 제사를 주관하며 로마의 박해로부터 생존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 내용에 대한 증거로 요한복음이 다른 세 개의 복음서와 다른 내용을 묘사한 부분을 수록하여 독자들의 동의를 구한다. 그러다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고대부터 초기 그리스도교까지 이어오던 여성들의 권한(직복직관)을 빼앗기 위해 환각성 성만찬을 금지시키고 환각제를 제조하는 여성을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하고 남성들이 모든 결정을 하는 종교로 바꾸고 매주 일요일 성당에서만 성체성사를 비롯한 성사를 하는 것으로 변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이 서적은 종교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소설보다 더 흥미로운 서적이라 하겠다. 가톨릭 모태신앙으로 세례성사, 견진성사, 혼배성사를 받았으나 특별한 계기로 인해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도 계속 유지하는 가톨릭의 냉담 신자가 된 지 20년 가까이 되었다. 30여 년의 종교 생활이 이 서적의 많은 종교적 용어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성체를 모실 때 마치 명상을 할 때처럼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과 복사로 신부님의 시중을 들으며 신부님이 당시 포도주로 성체의 작은 조각까지 깔끔하게 헹구어 드시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신부님의 경건한 모습과 의식을 초기 그리스도교 여성들이 환각물질을 조제하고 참석한 모든 신도들에게 주어 모든 신도가 신이나 이미 죽은 자를 직접 만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주장과 그 물질로 지목된 실로시빈의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유럽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의 기독교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토착 신앙에서 나타나는 신비한 능력자들과 기적으로 불리는 모습들도 어쩌면 제사를 주도하는 인물이 환각제를 먹거나 황홀경에 빠져 신통력을 발휘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서적은 종교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담은 서적으로 환각상태를 경험하는 영적 전통이 최소 12,000년 전부터 시작되어 그리스도교도 가정교회나 카타콤을 통해 약물을 첨가한 포도주로 성만찬을 행하였을 가능성도 제시한다. 믿음이 강한 신도들에게는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심한 박해를 받던 가톨릭이 국내에 정착하며 제사, 차례, 음복을 인정했던 역사를 보면 종교는 당시 시대 상황에 맞게 항상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탐험가의 수기를 읽는 듯 우수한 가독성과 종교의 역사에 대해 새로운 주장을 제시한 유익한 서적으로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서적을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한 글임을 알려 드립니다.
서평_불멸의 열쇠_브라이언 무라레스쿠_흐름출판
엉뚱하지만 우리나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생각났다. 불멸... 불멸의 열쇠.
-역사에서 지워진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이야기
-당신이 이곳에 온다면 당신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실이라 믿었던 역사를 뒤흔들 잃어버린 과거로의 초대
책의 분량이 엄청나다. 무려 735쪽이나 되었고 이 책을 번역하신 분도 원서를 읽는데만 2주일이 걸렸다고 했다.
표지는 깔끔했다. 글자 디자인으로 마무리했고 검은색 배경이 잘 어울렸다. 이건 역시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이 내용에 있다는 뜻이었다.
분량에 덜컥 겁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이걸 2 권으로, 또는 3권으로 나눈다고 치면 적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내용은 정말 흥미진진하게 재미있었다. 마치 미스터리 장르 소설을 보는 듯한 긴장감이 있었고 삶과 죽음의 통찰에서 느껴지는 희열감이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번역도 잘 되어 있어서 전문 용어도 이해하기 쉽게 뜻풀이를 해놨다.
물론 학술적인 내용도 포함하고 있어서 단순히 재미를 위해 읽는다는 건 또 다른 면에선 저자에게 대한 실례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책이 호기심을 가지고 읽었다.
일단은 종교에 대한 내용만 담은 책인 줄 알았는데 반기독교적인 성향의 무신론을 앞세운 저자의 선언부터가 놀라웠다. 그리고 샤머니즘과 마약을 통한 환각의 세계가 종교를 믿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면을 저자가 추리를 하듯 탐구하는 내용에서 계속해서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종교의 역사에서 과학의 실험을 통한 객관적 분석은 이 책을 10년 이상 집필해오며 집대성한 작가 브라이언 무라레스쿠의 노력이 보였다. 굵직하지만 그만큼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해가 힘들다면 어려운 데로 천천히 읽으며 이야기의 흐름을 찾아가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매력을 느끼는 데에는 충분할 것이며 한 번만 읽기에는 너무나 깊은 내용이어서 시간 날 때 제대로 분석한 듯 봐야겠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비밀을 찾아 떠난 12년간의 탐험.
조던 피터슨 박사가 추천을 할만하다. 이 책을 많은 독자들이 읽어 봤으면 좋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했습니다.-
#불멸의열쇠 #브라이언무라레스쿠 #흐름출판 #책과콩나무
이 책을 꼼꼼하게 잘 살펴보며서 읽었다고 할수는 없다. 사실 혹시나 싶어 바티칸 도서관 웹사이트를 열어보기는 했지만 - 디지털화되고 있다고 하니 사진이라도 볼 수 있으려나 했지만 페이지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불과 십여년 전 로마에서 유학중인 신부님 덕분에 바티칸 문서고를 지나치며 보기는 했지만 그곳은 일반 사제조차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만 해도 우리나라 관련 문서는 얼마나 공개되었을까라는 것만 관심이 있었는데 예상치못하게 베르길리우스의 삽화라니.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불멸의 열쇠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는 가톨릭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 가톨릭의 몇가지 전통 전례를 따라가다보면 내가 알고 있는 가톨릭 고유의 전례라기보다는 지역적으로 전해내려오는 제례나 축제의 변형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서 불멸의 열쇠는 그런 내용을 조금 더 깊이 정리해놓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글의 시작이 약물에 대한 것이라니. 도대체 키케온과 성찬의 예식은 무슨 관계인것일까?
온갖 자료의 증빙과 꽤 논리적인 추론의 과정을 거치고 저자 스스로도 놀랍게 생각하는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솔직히 내게는 쉽지 않았다. 하나의 가십거리처럼 - 그러니까 다빈치코드라는 소설의 상상력으로 치부해버릴 수 없는 저자 브라이언의 글들은 내게는 좀 버거운 논문같은 글이었다.
키르케의 키케온으로 시작하여 디오니소스의 포도주로 바뀌어가는 지리 문화적인 고대의 증거들과 고대의 제례에서 행해졌던 여사제의 존재와 역할이 이후에 마녀로 변질되며 제례에서 여성을 배제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고대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 물론 신화를 포함해서 - 현시대에서 발견한 자료들을 통해 유추하고 유추한 논리적인 결론을 증며할 수 있는 또 다른 역사적 자료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진실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어떤 조사든 진지하게만 이뤄진다면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562) 라는 바티칸 사서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이 모든 이야기를 엉터리라고 치부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거야말로 미치도록 어리석은 이야기인 것 같다"(584)라고 말하는 비밀문서고 사서의 이야기 역시 무시할 수는 없는 이야기이다.
책을 다 읽고난 후에야 무심히 넘겼던 서문과 감수자의 글이 마음에 쏙쏙 박히고 있다. 특히 한동일 감수자의 "어떤 부분에서는 고개가 숙여지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친 비약이나 상상이 작용한 듯해 불편하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교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저자 본인이 십수년간 연구하고 경험한 산물이니 설령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해도 '그의 생각'이라 여기며 그대로 따라 읽어 내려가 보면 좋을 듯하다"라는 말은 더 그말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브라이언 무라레스쿠)의 생각인 것이지 이 한 권의 책이 곧 역사의 기록인 것은 아니다.
기독교계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다. 직계 선조께서 순교자 기념관과 사전에 주요 인물로서 등재되어있기도 한 나는 모태신앙인이라 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교회 환경에서 살아왔고, 양가 친척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며, 목회자로 사는 친척들을 다 세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그러나 이제는 종교를 버렸다. 그런 혈연이나 환경 관계가 종교를 믿어야 되는 필연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고, 여기에 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수 많은 이유가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에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개개인의 신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맹신자의 신념 그 이상으로 신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 무신론자는 종교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신이 없다는 것을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가족이나 주변인에게 배교를 권하지는 않는다.
물론 전도를 당할 일도 없다. 왠만한 목사와 논쟁을 해도 지지 않을 정도였으나 이젠 그게 무슨 의미냐 싶기도 하다.
종교인은 어차피 필수적으로 편향적이어야 하고, 나는 편향을 혐오하므로 논쟁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
게다가 종교에 대한 자유는 비종교인은 물론이요 종교인에게도 해당이 되야 한다. 나는 그 어떤 종교인도 간섭하거나 설득할 생각이 없다. 반대는 더더욱 없음은 물론이다.
편향적 주장에는 올바른 논리가 전개되기 어렵다. 과학은 진화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증거로서 진화론이라는 것을 뒷받침할 뿐이다. 창조론의 증거가 더 많았다면 과학은 이미 창조론의 손을 들고 있을 것이다. 편향은 위험하다. 편향적인 근거를 말장난 등으로 합리화 하고 갖다 붙이면 말도 안되는 이론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사기꾼이나 사이비 종교 다단계의 말이 굉장히 일리 있게 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물고기의 태아와 인간의 태아는 초기에 그 모양이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시간이 가면서 태아가 변화되는 모습이 진화과정 그 자체를 보여준다는 한 과학자의 말도 있는데 상당히 일리가 있게 느꼈다.
종교는 인류의 생존에 아주 큰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고대에는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하나로 웅집하게 만들어 생존률을 높여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는 더이상 그러한 기능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투쟁도피반응'이 생존률을 높여주는 기제였으나 현대에는 더 이상 필요없는 부산물이 되어버렸듯이.
그렇다 해도 내 환경에 대한 영향을 종교에 대한 관심이 남아있다. 그래서 이런 책도 읽게 된 것이다.
현대 종교는 인간에게 어떤 기다림과 기대감, 희망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특정 종교로서의 종교가 아닌 학문적 관점에서 종교에 접근하고 있다.
종교인은 신에게 더욱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해온 역사가 있다. 약물을 이용한 영적 체험이 그 중 하나인데, 델포이 신전의 무녀는 신과의 접점을 이루기 위해 화산에서 나오는 가스를 흡입하기도 했다. 기독교 행사에도 피에 비유하여 포도주를 마시기도 하는데, 정신적인 황홀경과도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이렇듯 인류가 약물을 통한 종교적 환각을 시도한 사례는 상당히 많이 있다. 이런 주제를 종교인들은 불편하게 생각하고 회피하려 들 것이다. 과거의 잘못들이나 종교계 소수의 만행들을 일부라며 회피하려 하듯이. 종교는 자기 비판의 기능이 매우 빈약한 것 같다.
흔히 영적 체험이라고 주장하는 사례들 중에서 사실은 가수면 상태에서의 체험이 대부분일 것이다. 가능성을 열어두는 성격상 전부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특히 가위에 눌린다하는 것이 그럴 것이다. 불안 상태에서 깨어있는 상태와 비슷한 뇌파를 보이는 렘수면(가수면) 상태에서의 체험일 수 있다. 나는 어릴때부터 가위에 눌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지금은 거의 없는데 유년 시절에는 아주 빼빼 마른 아이여서 빈혈이 잦았고 잠이 깊이 들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현상이 가끔 있었는데 가수면 상태에서 의식과 꿈과 환상의 경계점이라고 할만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의식이 있으면서도 꿈을 꾸게 된다. 갓 20대 초반 시절에 게임을 하다가 늦게 자는 버릇이 있어 회사에 가면 늘 피곤했기에 점심이나 쉬는 시간에 살짝 일찍 가서 박스 창고에서 잠을 취했다. 그러나 그 창고를 관리하는 회사의 대리가 자주 나를 깨우고 혼을 내곤 했다. 그렇지만 잠을 포기 할 수 없는 나는 그래도 몰래 몰래 숨어들었는데, 가수면 상태에서 대리가 나를 깨우는 것을 생생하게 느껴서 깨어보면 아무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한다. 귀신 등을 두려워 하는 사람은 귀신 같은 형태의 환상이 생생하게 느껴질 수 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종교인들이 불편해할 고대의 전통적 행위들을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다. 종교도 나름대로 근대화 과정을 거치고 현대에 적응을 한 상태지만 많은 부산물들을 어찌하지 못한다. 그런 과거 행위들을 청산하기 위한 행동 중 빠질 수 없는 하나가 바로 약물을 통한 영적 체험의 단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명문 프린스턴 신학대를 졸업한 바트 어만은 성경 왜곡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서 성경이 어떤 오류가 있으며 시대에 따라 어떻게 합리화를 해왔는지를 지적한 바 있다.
성경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억지로 완벽하다고 해봤자 오류가 상당히 많다. 신약의 어떤 서에서는 동방박사가 등장하지만 다른 서에서는 전혀 언급조차 없는가 하면 예수 행적의 기록도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종교가 무조건 옳다고 고집만 부릴 것이 아니라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자기들 유리한 것은 인정하고 불리하다 싶으면 얼버무리는 식의 합리화는 시대가 지나면 지날수록 통하지 않을 것이고 먼 미래에는 흔적조차 없어질지도 모른다.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이런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미지에 세계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신을 인정할 수는 없다. 모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순간 모른척을 할 수가 없는 속성이 된다는 것은 이해가 가긴 하지만. 반대로 신이 존재 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말할 어떤 근거도 없다.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 되지만 아예 없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온갖 여러가지 종교, 일신교만해도 여러 분파가 있고 서로 뿌리를 공유하면서 자기네들만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조금도 인정할 수 없다. 만의 하나 신이 있다면 현재 인간이 인식하고 상상할 수 있는 형태를 훨씬 벗어날것이라고 생각된다. 과거 우주를 관측하기 전에 우주에 대해서 생각한 것들이 실제와 전혀 달랐듯이.
신화나 종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역사적인 배경이 많고 어려운 용어가 다소 있어 쉽지만은 않은 독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는 정신병원에 다닌다고 하면 대부분 이상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알려지는 것을 기피하였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또 이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정신병원에 가는게 더이상 특이한 일이 아니게 되었네요.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모르지만 우울증을 앓으면 평범하게 사회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갑자기 자살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항우울제를 먹고 꾸준히 치료를 하면 괜찮아진다고 하니 정신과 관련된 병도 신체 다른 부위가 아픈 것과 동일한 것 같아요.
약 외에도 환각 버섯이나 술 등 우리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음식들은 많습니다. 환각과 관련된 내용들은 역사의 기록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불멸의 열쇠' 의 저자는 한 기사를 읽고 이에 관심이 생겨서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관련 자료를 조사해 비밀을 파헤치고 있네요.
저자는 의학으로 유명한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실로시빈' 이라는 알약을 다룬 기사를 읽고 흥미를 느꼈습니다. 기사의 제목은 '신의 알약' 으로 제목만 봐도 궁금해지는데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 알약을 먹고 난 이후 어떻게 느끼는지를 조사해서 분석하였네요. 조사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알약을 먹은 일을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여겼습니다. 몸이 아픈 경우 약을 먹어서 치료가 되면 당연히 기분이 좋은데 평범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알약을 먹고 어떻게 갑자기 바뀌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해 12년 동안 연구에 몰두하였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종교의 영향력이 약해졌지만 과거에는 우리 삶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신을 두려워하면서 신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였네요. 이러한 신과 인간 사이에는 둘을 이어주는 매개체인 사제가 있었습니다. 사제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바 없다면 신의 뜻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환각 상태에 빠진다면 현실이 흐릿해지면서 상상 속에서 다양한 것들을 볼 수 있고 이를 신이 보여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네요. 처음에는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고고식물학이나 고고화학 등의 도움으로 고대인들이 환각성 음료를 마셨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무아지경의 환각 상태에 빠진 사람을 보면 정말 신과 만나고 있는 중으로 생각할 수 있고, 그 상황에서 말한 것들은 모두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 종교는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네요.
하지만 환각에 빠지는 일은 대략 4세기 경부터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마셨던 맥주나 와인은 오늘날과는 다르다고 하는데 초기 기독교인들은 술을 마시면서 신비로움을 경험할 수 있었으나 이후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로 공인되고 강력한 권한을 가지면서부터 기존에 여러 종교에서 섞이면서 기독교에 들어왔던 것들을 이단으로 낙인 찍었습니다. 신비한 행사를 주관하던 사제들도 탄압을 받았네요. 이후 오랫동안 금지되어 왔으나 중세 마녀 사냥처럼 다시 신비주의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알고 있던 종교와는 다르게 고대 종교의 신비주의 측면을 설명하고 있어서 혼란스러운 점도 있고 재미도 있었네요.
책은 매우 두꺼운 편이지만 쉽게 읽힙니다. 주제가 주제인만큼 고대의 사료를 통해 이와 관련된 사실들을 하나하나 밝혀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굳게 닫혀있던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네요. 이제 학계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집니다. 책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역사에서 지워진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이야기
원제 THE IMMORTALITY KEY : THE SECRET HISTORY OF THE RELIGION WITH NO NAME 는 '불멸의 열쇠: 이름 없는 종교의 비밀 역사' 로 번역된다. 책의 제목이 원제에 충실하다는 점에서부터 마음에 든 책이었다. 700여 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었지만 의외로 술술 읽히는 책이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다만, 두괄식 서술에 익숙한 독자라면 아마 나보다 더 쉽게 이해해가며 읽을 것 같은데, 나는 종합적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 새록새록 등장하는 자료들을 처음 주제에 매번 연결시켜야 하는 것이 살짝 어려웠다는 점을 미리 말해둔다.
저자의 직업은 변호사이지만 (비록 전문교수는 아니라 할지라도)고전학자이기도 하다. 이 방대하고 엄청난 책은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등의 고대어부터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까지 독해가 가능한 저자였기에 나올 수 있는 책이었다. 이 탁월한 언어적 능력만으로도 왠만한 대학강단의 고전학 교수는 명함도 못내밀 능력이 아닐까 싶다. 또한 이 책의 감수를 맡은 분이 한동일 님이다. 신뢰도 면에서도 만족스러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독실한 로마가톨릭 가정에서 자랐고 현재의 종교도 가톨릭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책은 가톨릭에 정면으로 맞서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 번도 환각제를 경험한 적이 없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주제는 환각제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저자가 자신의 주관적 요소를 떠나 최대한 객관적으로 무엇보다 학문적으로 탐구한 과정을 이 책이 담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존스홉킨스 연구진이 발표한 [신의 알약]이라는 기사였고, 1954년 올더스 헉슬리가 발표한 <지각의 문>이라는 책은 과거에서의 미래를 알아챌 수 있게 했으며, 1978년에 출간된 <엘레우시스로 가는 길 : 신비제의 비밀을 파헤치다> 라는 책은 직접적인 지도가 되어 주었다. 이 책의 주제를 두괄식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서양문명의 근원이자 세계 최대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출발에 고대부터 내려오는 환각제를 통한 비의(秘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교 공인 이후 여성과 약물탄압의 배경에 대해서 차근차근 밝혀내고 있기도 하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나는 역사에서 가장 잘 지켜진 비밀의 바닥까지 한 번에 확실히 도달하기 위해 그리스, 독일,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서양 문명과 그리스도교의 탄생에 환각의 신비가 필수적이었다면 그 증거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햇빛을 거의 못 보는 귀중한 유물들을 지키는 정부 장관, 큐레이터, 기록 보관원 들과 나란히 앉아보았다. 또 우리 선조들의 의례적 약물 사용에 대한 신선한 증거를 발굴해 최첨단 장비로 분석하는 현장 및 실험실의 발굴자, 고고식물학자, 고고화학자 들을 갖가지 질문으로 괴롭혀 보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고전학자, 역사학자, 성서학자 들과 시간을 넘나들며 여행해보았다. 이 조사를 통해 나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만 해도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스와 그리도교 신비제의 핵심에는 환각 성분 맥주와 포도주가 있었다는 증거뿐 아니라 종교 당국이 이를 억압했다는 증거도 있었다. (P. 61)
종교가 생겨나기 이전의 시대에도 종교는 있었다. 우리가 이름붙이지 않았다해서 그것이 종교가 아닐 수는 없었다. 저자는 '이름 없는 종교'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이름 없는 종교'에서 지금의 종교들이 탄생했음을 과학적으로 하나하나 밝혀나간다. 저자는 엘레우시스로 향하는 길에서 더 과거의 괴페클리 테페로 올라갔다가 중세의 마녀로 내려오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이어져온 그 '이름 없는 종교'를 추적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환영과 환각과 기적은 수시로 출몰한다. 하지만 그 환영과 환각과 기적은 굉장히 과학적이었다. 갈래는 크게 두 갈래길이 있었다. 맥주와 포도주. 그리고 그 환각성 맥주와 환각성 포도주를 만든 것은 여성이었다.
여성과 약물.
이 두 가지는 2,000년 동안 교회 입장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그리하여 내가 지금 지하 묘지에서 목격한 것처럼 양쪽 모두 신앙의 기원에서 몰상식하게 지워지고 말았다. (P. 481)
디오니소스와 예수가 그 경험을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려 했지만 그 전통은 오래가지 않았다. 저 위에서는 그리스 관료들이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스 신비주의자는 자신들이 속한 '죽은 자의 도시'에 남아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의 원래 여사제들이 당한 것처럼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는 그런 사람들이 전혀 존재한 적 없었던 척할 수 있었다. (P. 510)
이 방대하고 오묘한 책은 탄탄한 추적과정과 과학적 증거들을 담고 있으면서 너무나 새로운 내용들이기에 평소 습관대로 포스트잇을 붙이고 정리하려던 나의 목표는 이뤄질 수 없었다. 포스트잇을 붙인 곳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내용 정리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 그저 이 책을 직접 읽어봐야 한다고 강력하게 추천할 따름이다. 아주아주 간단히 정리하자면 '환각제가 서양 문명을 건립한 계몽으로 가는 지름길인데, 처음에는 엘레우시스 신비제에서 그러했고, 나중에는 디오니소스 신비제에서 그러했다. 또한 초기 그리도교는 이 전통을 고대 그리스인에게서 물려받아 중세와 르네상스의 마녀에게 물려주었다. 바티칸은 그리스도교인에게서 지복직관을 빼앗기 위해 본래 환각성 성만찬을 반복적으로 억압했는데 처음에는 유럽에서 그러했고, 나중에는 가톨릭이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하면서 세계 전역에서 그러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전 지구적인 음모론이었다. (P. 583~584)' 라고 할 수 있겠다. 고대의 맥주와 포도주는 지금 우리가 아는 그런 맥주와 포도주가 아니었다. 약초에 대한 지식은 네안데르탈인때도 있었고 오히려 거대종교 탄생이후 사라져온 셈이었다. 환각제가 주는 무아지경은 개개인에게 직접적인 영적 경험을 주었고 거대종교는 자신들의 필요성을 위협하는 이 직관적 방법을 원치 않았다. (내가 직접 신을 경험할 수 있다면 신을 대리하는 종교인들이 과연 필요할까?) 그리스도교는 비의에 힘을 입어 짧은 시간내에 확산될 수 있었으나 자리를 잡자마자 이 '이름 없는 종교'와의 전쟁을 해왔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신비제가 돌아왔다. 존스홉킨스 환각제 연구진의 '실로시빈' 연구를 통해.
농업이 먼저가 아니라 종교가 먼저일 수 있다는 논리를 증명시키는 중인 쾨페클리 테페에서
어떻게 그렇게 짧시간 융성한 문화발달을 이루었는지 신기한 고대그리스의 신전에서
고대 페니키아와 포카이아인들의 발자취가 남은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캄파냐 유적에서
예수가 탄생한 마을과 그가 행한 기적들과 바오로의 편지글이 담긴 성경에서
익숙하다고 여겼던 신화와 유물과 유적에서 채 지워지지 않은 흔적들이 우리에게 비밀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비밀은 놀라웠고 이 책은 그 비밀의 문을 열어젖히는 열쇠를 건네준다.
궁금하다면 어서 이 열쇠를 받아들고 책을 펼쳐보기를.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소위 '현대인의 인식에 부합하는 종교의 모습'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이에 생각해보면 종교의 모습에는 크게 두가지 형태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예를 들어 '신에게 다가가기 위한' 자격(또는 지위)을 가진 자들이 무녀와 신관 등에 한정되는 경우에는 결국 신전이라는 한정된 장소, 수행과 신탁이라는 독특한 행위 등이 신과 인간의 사이의 '신성'을 부여한다. (또는 연결점이라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기에 결국 사회의 독특한 역활을 수행하는 신분으로서 종교는 그 나름의 지위를 온전하게 누리는 하나의 세력이 될 수 있었으나, 이미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소위 전통적 종교의 모습에는 이와 같은 '관료제적 성격을 가진 종교'와는 다른 또 다른 형태가 존재해 왔다.
실제로 이 책이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는 크게 약물을 이용한 '영적 체험'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명한 델포이 신전의 무녀 '피티아'의 경우는 신과의 접점을 이루기 위하여 화산 가스를 흡입했다. 그러나 그 이전의 보다 원초적인 종교적 제의에 빠지지 않는 음료 '맥주와 포도주' 또한 넓은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술에 취하는 행위... 또는 신체적 정신적 중독상태에 빠지는 것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것이기에, 결국 (주제인) 종교적 황홀경에 전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주제는 어디까지나 '약물을 통한 종교적 환희'다. 즉 오랜 세월동안 인류가 전통적 발효음료와 맥각과 같은 자연적 환각물질을 통해 '정신을 흐리게 한 것은' 크게 개인적 행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신과의 만남'이다.
때문에 그들의 제의는 신성한 장소도, 또는 자격을 지닌 신관도 필요치 않다. 그저 인간의 영혼과 그에 대한 매개체(약물)만 있다면 그 장소와 집단은 커다란 무아지경 속에서 신과 죽음 모두를 아우르는 신성과 접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랜세월동안 현대인들은 과거 사람들이 이러한 '자연적 약물'이 인체에 어쩌한 영향을 미치는지 '크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고 이해했다. 그야말로 인체에 미치는 중독상태를 설명할 때, 과거 인류가 크게 신비라는 종교적 해석을 부여한 것에 대하여, 그 바탕에 인간의 무지(아는 것이 없다)가 있었다고 정의한 것이다.
약리학의 진정한 비밀은 약랑학이다. (...) 이것이야말로 고전학자 루스 스코델의 말마따나 "슬픔을 억제하는 약물"일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성분을 더 많이 복용한다면 의료용 포도주는 금세 환각성 포도주로 변모한다(...) 그리스인이 포도주에 약물을 첨가했을 뿐 아니라 복용량에 대해서도 예리한 눈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확증이다. (...) 예수 이후로도 여러 세기 이어져 5세기 로마제국이 멸망할 때 까지 지속되었다.
321쪽 불멸의 약물
그러나 이 책은 오랜 원시 문명 뿐만이 아니라, 이집트 그리스 로마 문명으로 이어진 '약물의 종교적 사용'이 보다 약물의 높은 이해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그야말로 신비제로 이해되는 디오디소스 축제 등이 가져온 의의는 고대 특권계층이나 종교적 신비를 독점한 계층을 벗어나, 보다 대중적인 의미에서 자유로운 형태의 의례 또는 종교적 신비를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과는 반대로 오늘날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저자의 주장은 크게 '역사의 주류'로 인정받지 못한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아니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중독'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현대인의 상식에 이 주장이 크게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방문명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 기독교는 일찍이 '약물의 환희'를 엄격히 부정하여 왔다. 그도 그럴것이 앞서 언급한 엄격한 종교적 교리와 관료적 체제를 완성한 기독교가 그밖의 종교적 의식 뿐만이 아닌, 인내와 수행을 벗어난 전통적 쾌락을 인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에 저자는 고대 무아지경에 이르는 신성과 마법, 즉 인체와 정신을 자극한 신비의 의식 등이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을 거쳐 초기 기독교 문화의 형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디오니소스의 생살과 피를 섭취하고 그의 환영적 포도주를 맛보았을 때 입문자들은 심오한 경험을 한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가족과 국가와 로마 사회 전반에 대한 모든 의무를 잊도록, 딱 한 잔만 마시면 불멸을 맞이할 수 있는 야외로(...)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탄생하는 방식이기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종교가 번성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관료제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423쪽 영원의넥타르를 마시고
그러나 이에 만에 하나 초기 기독교가 '디오니소스의 정신' 즉 자유와 해방, 종교적 쾌락을 통해 입문자들을 늘리고 또 번성했다 할지라도, 결국 오늘날 이를 인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실제로 이후 관료적 체제를 완성하고, 또 오늘날에도 이러지는 (새로운) 신성의 의미를 확립한 종교를 만들어내기까지... 그야말로 기독교가 과거 옛 행위를 청산하기 위해 행한 역사적 사실은 말 그대로 '약물과의 단절'이라 해도 과연이 아니다. 실제로 과거 고대의 무녀들은 환각과 쾌락 또는 고통을 멈추는 약물을 조제하고 유통하는 소위 '의학의 주체'가 되어왔지만, 이후 기독교 사회에서는 마녀로 내몰려 학살당하는 운명을 맞이하지 않았나?
이러한 종교적 행위가 이루어진 이후, 그리고 오늘날까지 해당 종교의 대의가 살아있는 현 상황에서, 기독교 또한 스스로의 신성을 증명하는 행위로서, 고대의 전통적 행위, 즉 광범위한 약물을 활용했다는 주장은 분명 불쾌하고 또 해당 종교의 신성(또는 정체성) 을 모독하는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허나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기독교는 고대 문화와 해당 기술(약학 등)을 단절시킨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흡수하여 독점하고 또 활용한 존재이다. 물론 현대 이러한 주장이 얼마만큼 증명되고, 또 인정받을 수 있는가는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역사적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어 갈 경우, 미래의 수정된 역사의 상식선에서 보다 자유로운 종교의 해석? 을 마주할 수 있기를 내심 바래본다.
실로시빈 (Psilocybin).
환각버섯이나 미치광이버섯과 같은 버섯 약 200여 종에 포함되어 있는 환각제입니다. 최대 6시간의 환각을 경험하게 하는 이 화합물을 포함하고 있는 버섯을 통칭 마법 버섯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중독 및 오남용의 가능성으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 화합물을 사용하거나 소지하는데 있어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실로비신이라는 화합물의 긍정적인 측면이 드러나고 있다고 합니다. 뇌를 보다 유동적이며 유연한 연결구조로 변경하면서 항우울 효과가 나타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서적 이완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이 효과는 우울증 뿐 아니라 불안, 강박장애, 각종 중독 증세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아직은 연구초기 단계이다 보니 좀더 디벨롭한 연구 결과를 기다려 봐야겠지만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읽은 “불멸의 열쇠 (브라이언 무라레스쿠 著, 박중서 譯, 한동일 監, 흐름출판, 원제 : The Immortality Key: The Secret History of the Religion with No Name)”에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2016년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암환자의 우울감과 불안을 완화할 수 있는 심리 치료에 활용할 경우 삶의 만족도와 행복감이 증가한 것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마법버섯에 포함된 성분의 의학적 효능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 흐름을 이끕니다. 바로 이러한 환각제를 활용한 종교적 경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종교와 환각제는 언뜻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보일 뿐 아니라. 신성함이 수반되어야 하 종교에 환각제를 활용한다는 이야기는 신성 모독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리스 비전 종교에서 이러한 환각제를 활용했다는 증거부터 시작하여 초기 기독교에 미친 영향까지의 서사를 매우 흥미롭게 연결지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또한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매우 대담한 몇가지 가설을 내놓습니다.
이러한 대담한 이야기의 저자는 브라이언 무라레스쿠 (Brian C. Muraresku)입니다. 알려진 소개에 따르면 변호사이자 고전학자라고 하며 그리스어, 라틴어, 산스크리트어를 전공했다고 합니다. 그는 평범하게 변호사로서 일하다 앞서 언급한 실로시빈에 대한 존스홉킨스 대학의 실험결괴를 접하면서 서양 문명과 관련한 주요 종교의 기원을 그리스에서 찾기 시작한 작업을 시작했고 무려 12년에 걸쳐 이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 나온 모든 이야기가 신뢰도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대담하다 평가할 수 있는 가설의 근거들 중 일부는 엄청난 시차 (time gap)을 가지고 있음에도 상호 증명하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 등 많은 경우 신뢰하기 힘든 이야기들도 있구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중세 이후 교회에서 잊기 위해 노력한 초기 기독교의 전통에 대한 역사적 일깨움도 분명히 얻을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말 : 이 책의 서문을 (불행히도) 그레이엄 핸콕이 썼더군요.
#불멸의열쇠, #브라이언무라레스쿠, #박중서, #한동일, #흐름출판, #책과콩나무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