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정해두지 않고 달려가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가? 아마 그런 경험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종종 나는 책을 통해 그런 인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경외심을 느끼며, 인물이 가는 길 끝에 좋은 일만 기다리고 있기를 염원하게 된다.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해도, 몇 시간 전에 처음 봤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힘이 있다고 믿고 가는 인물의 여정을 얼마만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는가의 여부다. 나는 책 밖의 독자일 뿐이지만 주인공을 보며 다양한 감정변화를 겪는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식으로 말하면 다양한 화학작용의 결과물쯤 될까.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조트' 또한 스스로의 한계를 정해두지 않고 처음부터 대단한 목표와 의지를 보여준다. 여성 화학자로 커리어를 쌓고, 화학자로써 자신의 이름을 온전히 지키기위해 결혼보다 자신의 성을 끝까지 가지고 있길 원하며, 아이에는 별 관심이 없고 반려견에는 관심이 있다. 엘리자베스 조트는 무엇보다 자신의 손으로 이룩해낼 수 있는 커리어를 중시하는 여성인 셈이다. 문제는 엘리자베스 조트가 살고있는 시대적 배경이 1960년대라는 데 있었다. 당시 여성은 남자의 액세서리였으며, 가정에서 온화하게 웃으며 세끼 밥을 짓고, 희생이 당연시되며 '남자니까' 저지르는 부적절한 행위들에게 침묵하기를 요구받는다. 거기에 여성 화학자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조트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살아가며 많은 문제를 맞닥뜨리고 시험에 들게된다.
내가 '레슨 인 케미스트리'라는 소설을 접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애플 TV에 드라마로 방영된다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고, 어느 화학자가 대국민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는 요리 프로그램 '6시 저녁 식사'의 진행자가 된다는 사실에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단 한문장으로 인해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상을 차려라. 너희 어머니는 이제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라는 문장. 엘리자베트가 말하는 이 대사 하나로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내 할일은 해뒀으니 이제 너희도 일을 해야한다는 당당함, 나만의 시간을 주장할 수 있는 자신감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더불어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날리는 화학지식의 폭격을 보며 도대체 이게 뭐지?라는 생각에 궁금해지기도 했다.
1권 22p
아마 엘리자베스 조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6시 저녁 식사'를 봤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30분의 시간동안 저녁메뉴를 설명하며 조트는 단 한번도 웃지않고 진지한 태도를 유지한다. 사근사근하게 굴며 셰리주를 마시지도 않고 딱 붙는 옷을 입고 육감적인 몸매를 뽐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헐렁한 화학자 가운을 입고 한쪽 귀엔 연필을 꽂았으며 아기자기하고 분홍색으로 꾸며진 주방을 보곤 질색하며 심플하게 만들었다. 당연히 방송국 PD는 기함하고 방송이 망했다며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조트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것이 있었다. 자신은 누군가의 어머니나 여자, 아내가 아니라 그저 '엘리자베스 조트'라고 말하는 당당함과 자심감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이 정말로 있다면 조만간 폐지의 수순을 밟게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조트같은 사람이 있다면 글쎄 태생문과인 나도 방영시간을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자, 이런 프로그램이 정말로 방영된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 말이다. 우리는 여성 진행자가 괴짜같은 행동을 하며 요리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다. 흔히 보는 요리프로그램은 중후한 진행자가 나와 깔끔한 앞치마를 입고 누구든 따라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요리법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엘리자베스 조트는 어떨까? 조트는 화학자이자 여성인 자신의 입장에서 제일 먼저 고정관념을 내버렸다. TV앞에 앉은 여성들 또한 자신처럼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 아래 굉장한 화학지식 폭격을 가한다. 시금치를 요리한다면 시금치의 효능을 설명하며, 식초와 소금 물 등은 원소기호로 부르고, 화학자로써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요리는 화학이며, 화학은 생명이다. 모든 것을 바꾸는 여러분의 능력, 바로 자신을 바꾸는 능력도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라는 그녀의 말은, 엘리자베스 조트 스스로가 이미 모토로 삼고 있음을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프로그램의 설명만 들으면 이상한 게 맞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조트의 말은 묘하다. 태생문과인 나조차도 흥미로운 화학지식에 관심이 가게끔 한다. 원소기호라곤 물과 공기 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화학 포기자인데 이상하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원소기호들이 궁금해진다. 이런 호기심이 나에게만 생긴 게 아니었는지 엘리자베스 조트의 '6시 저녁 식사'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된다. 어쩌면 사람들은 매일 반복적으로 해오던 일상에 숨겨진 거대한 지식을 발견하고, 새로운 재미와 신선함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더욱 더 열광한 것이 아니었을까. 보통 일상에서 아무생각없이 보는 것들에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있다고 하면 관심이 안갈래야 안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엘리자베스 조트는 시청자들을 먼저 인정해주었다. 나와 당신들은 보잘것없는 존재가아니라 화학식을 이해할 수 있으며, 가족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숭고한 일을 하는 중이고, 유능하면서 사고가 풍부한 존재이며. 자신은 그들을 믿는다고 말해주었던 것이다.
2권 44p
소설을 읽는 동안 엘리자베스 조트는 정말 멋진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좌절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앞으로 나갔으며, 자신만의 한계를 정하지 않고 삶을 살아냈다. 여성에게 잔혹했던 1960년대에서도 비혼주의에 딩크족이며 무신론자다라고 말하는 용기가 대담하기도 했다. 저 사상들 중 하나라도 밝히면 기함할만한 것인데, 엘리자베스 조트는 사람들 앞에서 남자의 청혼을 거절하기도 하고, 생방송 중에 무신론자라는 사실을 밝히기도 한다. 모든 여성들이 모른척 침묵하는 상황에서 모두가 볼 수 있는 TV에 나와 아무도 소리내 말하지 못했던 신념을 입에담는다? 모두의 표적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건 요즘의 세태에도 비슷할텐데 1960년대엔 오죽했을까. 하지만 엘리자베스 조트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세상엔 다양성이라는 게 있는데 대체 문제될 것이 무엇인가라며 주옥같은 멘트를 많이 날린다. 문제는 편견에 가득찬 우리라며 '우리'를 고쳐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부분들 또한 하나하나 맞는 말 뿐이라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렇다면 엘리자베스 조트가 철이 없어서, 세상이 자기편이라서 그렇게 말하며 살아왔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능력을 믿고 화학자가 될 정도로 강단있고 명석한 두뇌와 끈기가 있었던 여성이었다. 사기꾼이었던 아버지와 그 파트너였던 어머니, 스스로 삶을 끊어버린 오빠, 성폭행을 당한일로 취소된 학위, 모두가 무시했던 화학 연구소에서 엘리자베스의 능력을 알아준 영혼의 동반자의 죽음, 전혀 계획에 없었던 딸의 임신 등등 엘리자베스 조트를 찾아온 시련은 많았다. 심지어 같은 여성들에게조차 손가락질 받았으며 남편이 없는 미혼모라는 사실이 영원한 약점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엘리자베스 조트는 세상의 편견을 정면으로 깨부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로 조트는 모두가 고개를 내젓는 상황에서도 편견이라는 장애를 없애버린다. 조트는 개에게 단어를 가르치며 대화하기도, 어린 딸에게 고난도의 책을 읽게하기도, 아들 다섯인 어머니에게 아직 늦지 않았으니 의과대에 입학할 수 있다고 격려하기도 한다. 뒷일 생각은 안하고 일단 지르고 보나 의심스러웠던 일들은 뒤에서 모두 '믿음'이라는 현명한 결과가 되어 돌아왔다. 비록 소설이라 긍정적인 면만 있다 할지라도 엘리자베스가 했던 행동의 결과들 중엔 마음을 울리는 포인트가 있어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만약 결과가 나빴다고 해도 조트는 낙심하지 않고 다른 일을 찾아보자고 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조트의 말처럼 용기는 변화의 뿌리이며,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니까 말이다.
2권 90p
2권 132p
사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임에도 지금의 상황과 비슷한 점이 많이 눈에 띄어 놀랐다. 여자라면 혹은 남자라면 이래야지라는 편견은 완전히 사라졌을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 편견은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살아남아 이어져 내려왔고 지금도 여전하다. 조금의 변화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편견이 존재한다. 아마 사는동안 누구든 한 번은 겪은 일이 아닐까. 책을 보면서 내향적인 성향이라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하는 걸 보곤 여성적이라 표현했던 사람들, 왜 여자인데 요리를 좋아하지 않냐고 물었던 사람들, 그저 좋아하는 걸 했을 뿐인데 왜 여자가 그러고 있냐라는 시선을 보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부분은 가족들 또한 마찬가지라서 엘리자베스 조트처럼 '나는 나일뿐 다른 무언가가 아니다'라고 말하기가 참 어렵다. 비록 성별 뿐만이 아니더라도, 오래된 고정관념과 편견은 역시 우리가 바꿔나가야하는 거대한 과제가 아닐까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이유다.
그런 부분에서 소설에서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점은 '레슨 인 케미스트리'가 어머니의 힘을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엘리자베스 조트는 비혼주의에 딩크족이었다. 아이대신 반려견이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아이가 찾아오게 되며 엘리자베스 조트의 인생에는 많은 변화가 생긴다. 만약 이 소설이 가족애를 중시하고 여성으로써의 주인공을 아름답게 포장했다면 '아이를 위해서'라는 목표아래 엘리자베스의 가치관이 변했을 것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조트는 여전히 화학자였다. 동시에 딸인 매드의 엄마였다. 희생과 애정으로 점철된 삶이 아니라 자신만의 꿈과 목표를 챙기면서 어머니역할도 해냈던 것이다. 조트는 결혼을 하면 은퇴가 당연시 되었던 여성들이라는 편견을 깨부수고 화학자라는 길을 계속 걸어간다. 이런 조트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그 끝에 빛이 없으리라는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 때문에 엘리자베스 조트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다.
확신에 가득찬 엘리자베스 조트의 말을 들으면 나도 믿음을 받았다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자신을 믿고 꿋꿋하게 삶을 살아온 엘리자베스 조트의 모습을 보면 왠지모를 자신감도 전해져온다. 그 밖에 그녀가 편견에 대해 일침을 날릴 때는 속이 시원했고, 책 곳곳에 숨겨진 유머코드도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책을 모두 다 읽고나서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판타지같은 이야기라고.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여전히 지독한 편견 속에서 살고 있고,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는 그 편견 때문에 죽고 싶도록 힘들 수도 있다. 어쩌면 앞으로 걸어갈 길은 엘리자베스 조트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소설을 넘어 현실에 있는 사람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해온다. 동시에 스스로의 마음도 다잡게 만든다. 혹여나 당신이 어려움에 처해있다면 당신에게 엘리자베스 조트와 같은 힘이 생기기를. 어쩐지 그런 염원이 소설 가득 담겨있는 것도 같았다.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 2권 236p
#레슨인케미스트리 #보니가머스 #리뷰 #다산북스
내용 자체가 유쾌한 내용은 아니지만, 작가의 유머 감각과 주인공에 부여된 성격이 자신감이 가득한 쾌활함이라, 나는 소설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이 기승전결의 구성으로 이루어 지었을 것이다. 아직 1권만 읽고 쓰는 리뷰여서 전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주제가 1960년대의 여성 과학자에 대한 대우가 부당함에 있고, 이것을 통쾌하게 헤쳐나갈 그런 내용으로 짐작된다.
지금도 그런 측면이 어느 정도 있지만, 과거의 사회는 여성은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도와주는 존재로 취급되었다. 능력은 있지만 대우를 해 주지 않으면서 싸게 부려먹을 수 있는 존재였다. 대개의 경우 위계에서 낮은 지위의 연구 경력들이 높은 지위의 연구 경력으로 바꿔 버리는 경우가 있고, 여성의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런 일이 자행되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조트의 경우 1960년대에 살아가는 21세기 현대의 여성이다. 결혼에 대해서도 거부하고, 남편 혹은 남자친구의 배경으로 도움을 받는 것을 거절한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 상이다. 어쨌든 가족을 구성하게 되는데, 자녀의 교육관에 대해서도 그 당시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한편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식이다. 관료주의로 이야기할 수 있는 연구소의 모든 직원들은 구식이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이 옛날 사람들 생각을 가지고 있다. 60년대에 20대를 지나온 현재 80대 사람들 과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60년대 히피 등의 청년 문화가 바뀌고 새로운 역동을 가져왔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매우 구식이다.
주인공인 조트와 대부분의 주변 인물들이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구도이다. 이 구도에서 어떻게 살아 남을지, 그리고 어떤 고통을 겪을 지가 이 책의 핵심 주제일 것이다.
주인공이 청춘이어서 상담 부분은 그녀의 러브 스토리에 할애되어 있다. 이 책을 읽는 재미 중에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왕좌의 게임” 급의 반전이 있으니, 매우 당황할 것이다.
위의 모든 언급과 관련 없이 이 책은 재미가 있다. 2권에서 재미있는 그리고 통쾌한 마무리를 기대한다.
레슨인 케미스트리 1 - 보니 가머스 / 심연희 옮김
LESSONS In CHEMISTRY 1
1950년대의 미국.
여성에 대한 편견과 싸우며 자신이 원했던 길을 갔던 여성의 이야기이다.
여성 과학자가 거의 없던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쓴 이 소설은 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의 인생 역경에 맞서는 과정을 보여준다.
엘리자베스 조트는 독학으로 학사 과정을 마치고 헤이스팅스 연구소에서 다윈의 진화론이 밝혀내지 못한 '진화 이전' 분자의 비밀을 연구하는 화학자다.
그 당시 여자는 집에서 아이들이나 키우며 집안일을 하며 살아야 했고 임금 노동자라고 해도 여자는 사무 보조원이나 행정 직원이 대부분이었다. 공부를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남성들의 몫이었다.
삼천 명 정도 되는 헤이스팅스 연구소에서 여자 과학자는 엘리자베스 조트 단 한 명뿐이었다.
연구소 동료들도 엘리자베스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고 연구 성과를 빼앗았고 자존감에 상처를 심하게 주는 일을 일삼았다.
그 연구소에서 노벨 과학상 후보인 캘빈 에번스 만이 엘리자베스 조트를 과학자로 인정해 주었다.
천재이며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인 캘빈 에번스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유일한 여자 과학자였던 엘리자베스 조트 역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 둘의 만남은 서로 케미의 조합으로 끌어당겼다. 그들은 이내 사랑에 빠졌다.
둘의 어린 시절 또한 불행했다.
엘리자베스 조트의 아버지는 거짓 종말론을 설파하며 성물을 판매하는 부흥사였고 그녀의 부모는 조트를 방치했다.
동성애자였던 오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조트는 외로움을 안고 도서관에서만 보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엘리자베트 조트는 다른 이들처럼 교육을 제대로 받지를 못했고 경험이 많지도 않았다. 논문 수도 부족했고 재정 지원, 동료 연구자, 수상 경력도 없었다. 더군다나 대학교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헤이스팅스 연구소로 오게 된 것이다.
캘빈 에번스 또한 다섯 살 때 부모가 기차 사고로 돌아가셨고 고모님 또한 교통사고로 나무를 들이받고 돌아가셨다. 그래서 보육원에서 자라게 되었지만 캘빈의 친아버지라는 사람이 나타나 캘빈의 교육을 후원해 주었다. 그러나 캘빈을 데리고 가지는 않았다. 캘빈은 친아버지를 평생 미워했고 친아버지가 죽기를 바랐다. 천재적이었던 캘빈에게 높은 연봉을 주며 오라는 연구소는 많았지만 연봉도 작은 헤이스팅스 연구소를 선택한 이유는 조정을 하기 위한 날씨로 최고였기 때문이었다.
사랑에 빠진 둘은 결혼이 없는 동거 생활을 시작했다.
결혼을 하면 남자의 성으로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엘리자베스 조트는 자신의 이름으로 쓴 논문을 지키기 위해 결혼을 거부했다. 아이 또한 원하지 않았다. 지역 해병대 기지인 캠프에서 폭발물 탐지견 훈련을 받던 개가 폭발물을 무서워하자 강제 퇴소를 당한 유기견이 엘리자베스 베트를 보고 따라왔고 유기견을 본 시간이 여섯시 삼십분이었기에 유기견의 이름을 여섯시 삼십분이라고 하였다. 여섯시 삼십분이랑 가족이 되었고 엘리자베스는 캘빈의 권유로 조정도 함께 시작하게 되면서 둘만의 행복한 시간과 연구가 시작된 듯했는데.. 캘빈이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죽는다.
아이를 원하지 않았던 조트지만 캘빈이 죽은 후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조트는 비혼모가 된다.
동거 또한 허용되지 않았던 사회였기에 혼전 임신이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로 연구소에서 쫓겨난 엘리자베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직접 집을 개조해 실험실을 만들었고 연구를 계속해 나갔다.
엘리자베스는 캘빈과의 관계가 절대로 분해할 수 없는 물질로 이루어진 것처럼 캘빈이 세상을 떠났어도 그 관계는 변치 않고 영속할 만큼 견고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딸아이 매들린은 똑똑하게 자랐고 여섯시 삼십분도 똑똑하여 아이를 초등학교에서 데리고 오기도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생활은 어려웠다. 엘리자베스 조트는 헤이스팅스 연구소에 취직을 요청했고 엘리자베스 조트가 필요한 연구소는 낮은 연봉으로 엘리자베스를 받아주었지만 그녀가 하는 일은 잡다한 일이었고 그녀가 쓴 연구결과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가 되었다.
요리를 화학성분의 구성으로 연구를 하며 즐겨 하는 엘리자베스는 매일 딸 매들린에게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싸 주었다.
매들린의 친구인 어맨다가 매들린의 도시락을 대신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어맨다의 보호자를 찾아갔다.
어맨다의 아버지는 지역 TV 오후 프로그램 담당 PD였고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터라 엘리자베스에게 저녁 요리에 관한 프로그램을 제의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엘리자베스는 방송 출연 진행자로 나서게 된다.
현실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말한다.
요리는 과학이다. 주부는 과학자다. 과학자가 나다운 모습이다. 일반적인 주부는 평범한 주부가 아니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요리나 화학이 아니라 우라가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배우는 것이다.
두려울 때면 기억해야 할 유일한 사실은 변화란 화학적으로 언제나 가능한 것이다.
제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는 사람도 실망하게 되는 게 인생이다.
....
명쾌 통쾌 상쾌하고 울기도 하고 웃게도 하는 소설이다. *^^*
2권을 기대하며^^
도서 모임으로 책을 고르고 읽기 시작할때 들었던 기대와 다르게 책에 깊은 주제가 있는것 같진 않았다.
기본적인 어떤 기승전결의 구조보다는 기기기기승승승승 같은 식의 비극이 계속되니 지치는 면이 있다.
페미니즘을 얘기하고 싶었다면 더욱 좋은 책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1950년대의 시대상은 어느때보다도 뭉뚝했던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간이고 쓸개고 다 퍼줄것 같았던 캘빈이 갑작스레 성을 바꾸지 않으면 결혼을 하지 못한다고 선언할리가 없을것 같다.
500쪽에 달하는 비극포르노를 쓰기엔 환경이 너무 소중한 것 같다. 나무가 이런글을 쓴다고 할때 흔쾌히 몸을 내줄것 같진 않다. 편견과 선입견을 정면으로 맞서기 보다 꾹꾹 참다 캘빈에게 토로하고, 극복하는 장면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건 뇌세포가 터질것만 같다. 인사과의 여직원의 갈등구조도 밑도끝도 없는 과거의 슬픔 공유로 풀어버리는건 정말 아쉬웠다. 더욱더 다방면적으로 이야기를 풀수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주제를 전달하기에 정말 적당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왜 이런글을 쓴것일까 의문이 든다. 묘비에 사랑을 전달하는 물질의 분자구조를 적고, 마침 우연히 경비원이 쓴 총알에 묘비의 글자가 지워져 감동을주고, 내딸은 너무 천재고 내 개도 너무 천재고.
2000년대 인터넷 소설을 너무 감명깊게 본게 아닌가 싶을정도의 나르시시즘이 엿보인다.
다만 고무적인 점은 이런 글을 읽음으로서 더욱더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1권만 읽고 작성한 리뷰 입니다.)
독서모임 멤버의 추천으로 이 책을 알게되었다. 처음 인터넷을 통해 이 책을 검색해 보았을 때 수 많은 찬사와 호평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흥미가 생겼고,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하게 되었다.
1960년대 여성 화학자인 엘리자베스 조트의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이다. 여성이기에 닥치는 역경이 끝없이 밀려오고 굳세고 능력있는 영웅적인 주인공이 이겨내가는 소설이다.
우선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말하자면 책은 술술 넘어가고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할 말이 많아진다. 내용적인 부분에서 읽기전에 봤었던 찬사와 리뷰에는 공감되는 부분은 없었다. "시스템대로 움직이지 마요. 시스템을 뛰어넘어버려요." 라는 말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인듯 하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뛰어넘는 방식이 현명한 방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멋있게 뛰어넘겠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옆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외면하는 것처럼 보였다. 스스로를 시스템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규정을 지어놓고 경주마처럼 달리는 인생은 잘 사는 방법일까?
차별을 이야기하는 많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너무 직구로 나에게 들어올려고 해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2월에는 친구가 읽고 싶은 책을 읽기로 했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가 애플TV에서 방영한다고 해서 친구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기도 하고 나는 주로 일본 소설을 많이 읽었기에 마음이 잘 가지 않았다.
2월 중순에 준비하던 시험이 끝나고
주말에 책을 읽었는데, 하루만에 한권을 다 읽었다.
처음에는 별 기대를 안했는데 흡입력이 대단했다.
시대는 19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나오는데, 성차별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사실 지금 이시대도 성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닌데 그 당시에는 얼마나 심했을까?
출산을 하러 갔는데 남편 이름과 직장 등을 적으라고 하는 것도 너무 어이가 없다.
아직 1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2권도 빠른 시일 내에 읽어볼 생각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소수는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 있지만 읽을 수록 짜증나게 하는 빌런이 너무 많다.
특히 도나티 인가 도너츠 인가 하는 그 연구소 과장은 너무 짜증이 난다.
과연 2편에서는 속 시원한 결말이 나올지 기대해본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까지만 읽고 리뷰 작성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자와 남자의 권리와 의무가 다르다고 생각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계속 썰렁한 농담이 빠지지 않고 나옴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조트를 화나게 하는 장면이 정말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혈압이 상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지금도 행해지는, 세련된 표현 아래 숨겨진 여성들에 대한 차별이나,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아주 일차원적이고 극단적으로 드러내서 사람들을 화나게 하기 위해 만든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판타지 소설이라고 한 것에는 실제로 이 이야기가 대놓고 비현실적인 설정을 많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느꼈습니다.
이런 설정을 통해 소설의 즐거움을 느끼고 현실과의 분리를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엘리자베스가 모든 상황에 발끈하며 화를 내고 있으니 피로감이 많이 쌓이네요.
소설 자체는 재미있게 쓰인 편이라 읽다보면 책장이 술술 넘어갑니다.
하지만 과몰입하게되어 ptsd가 오는 것만 같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저는 1권까지만 읽기로 하였습니다.ㅎㅎ
실제로 고통받아본 적 없는 사람만 즐겁게 읽을 수 있는건 아닌지...
그리고 앞서 썰렁한 농담이 많다고 했던 것 처럼, 이 책의 유머러스함이 저와는 맞지 않았는지 솔직히 아재개그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 많은것을 보면 저만 이 저자의 위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겠죠.
이 책을 앞으로 읽을 예정인 분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 주인공은 편견에 맞서기 위해 원하지도 않았던 조정을 시작하게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포기한다. 주인공의 삶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인이 다른 사람의 시선이라는 점이 안타까웠다. 반발은 순종만큼이나 휘둘리는것이 아닐까?
- 주부와 화학자사이에서 직업에 우열이 있음을 상정하는 점이 아쉽다. 직업의 가치는 그 직업을 가진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었으면 한다.
- 신념과 독선에 대해서 고민하게된다. 어쩌면 사회의 편견에 저항할 깡을 가진 사람은 독선적으로 보일수 밖에 없는것일수도 있겠다.
- 술술읽히는 문장과 내용전개. 주인공이 역경에 맞서고 능력을 펼쳐내는 것을 보며 통쾌함을 느낀다. 무협지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협객은 그 행하는 바가 비록 정의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그 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고, 행동은 반드시 과감하다. |
- 사기, 유협열전(출처: 나무위키) |
- 협객 엘리자베스 조트와 같이, 우리시대의 협객들에게도 평안이 있기를 바란다.
만족합니다.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권도 구매할 생각입니다. 이번에 읽은 전자책은 보니 가머스 저/심연희 역의 레슨 인 케미스트리 1-은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몰입감이 상당히 높아서 금방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라서 영화화하면 아주 재미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요즘 유명한 책이라 알고 있었는데 마침 대여이벤트로 나와서 바로 대여해 읽었습니다~ 드라마화도 됐다고 들었어서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기대이상으로 재미있더라고요. 웃기기도 많이 웃겼어요 이미 과학자인데도 여자과학자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기저기 공격받는데, 그들은 그 말이 공격인지도 모르는 게 현실반영이 장난아니더라고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
보니 가머스의 <레슨 인 케미스트리> 1권 리뷰입니다.
애플 티비 드라마화 되었다는 광고와, 북튜버님의 추천으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배경은 1950~60년대 미국으로 화학자이자 유명한 요리 방송 '레슨 인 케미스트리'의 진행자인 엘리자베스 조트입니다. 그 시대에 만연한 여성차별과 여성혐오의 분위기 속에 진정한 화학자가 되고싶은 엘리자베스는 계속해서 주변의 남자들에게 이러한 노력들을 방해받습니다. 그러나 자신과 영혼의 쌍둥이 같은 캘빈을 만나 조정을 하고, 그러면서 많은 격려를 받아 자신이 연구하는 내용을 계속해서 연구해나가려고 합니다.
원래 3000원 미만의 책은 리뷰와 한줄평을 쓰지 않는다.
아무리 리뷰포인트를 주고 돈이 궁하기는 하지만, 서로서로의 상도덕이라고 할까.
이번에 리뷰 대회라는 이벤트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읽고 리뷰를 쓰게 되었다.
2권으로 되어 있어서 2권에 리뷰 이벤트를 1권은 간단한 리뷰를 쓸 생각이다.
원래도 간단쓰고 글도 못쓰지만, 무엇인가 씁쓸함을 느낀다.
1권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는 캘빈을 만나 결혼 아닌 동거를 하게 되고,
남녀 불평등을 이겨내며 화학연구를 하지만 사고로 남자친구 캘빈을 잃게 되다.
딸의 도시락을 다른 사람에게 빼았겨 그 아이의 아빠와 같이 요리 프로그램을 하게 되는데...
1권은 2권을 향한 서론쯤 되겠다. 엘리자베스의 활약은 어찌 될 것인가.
2권에서 전체 리뷰를 쓸 것 같은데, 어떻게 쓸게 될려나 나도 모르겠다.
“남성은 새로 시작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인류의 지적 전통을 자연스레 전수 받으며 세계를 조망하기 때문이다.”
역사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거다 러너의 말이다. 세계는 아버지의 이름에 의해 호명되고 구성되기 때문에 남성은 세계를 잘 익히기만 하면 되는 반면 여성은 끊임 없이 자신을 단속해야 하며 아버지의 어깨 위로 올라가 세상을 조망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보니 가머스의 『 레슨 인 케미스트리 』를 읽으며 처음 떠오른 단어는 '페미니즘'이었다. "저는 6시 저녁식사를 통해서 화학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여자들이 화학을 이해한다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기 시작할 테니까요."라는 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의 말이 인상 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계속해서 자신의 지론에 대해 설명한다. "저는 원자와 분자에 대해서 말하는 거예요. 물리적 세계를 지배하는 진짜 규칙 말이죠. 여자들이 이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면 그들을 위해 창조된 세상의 그릇된 한계를 보게 될 겁니다. 남성을 단성적 지도력을 갖춰야 하는 부자연스러운 역할로 몰아넣는 인위적인 문화와 종교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2권, 204쪽)
언젠가부터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사람은 ‘남성을 혐오하고 여성 우월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으로 오해되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 이미지를 내포한 젠더갈등의 핵심 키워드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한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의 주체에 대해 주목할 뿐 그것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지 않는다. 즉 페미니스트가 반대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다. 남성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남성 자체를 반대할 수는 없다. 또한 여성도 때론 성차별주의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궁극적으로 모든 형태의 성차별을 지양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자유와 평등, 해방을 위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지배와 복종, 강압, 억압과 차별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고 대등한 입장에서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고 상호성장과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페미니즘의 비전을 현실화하는 노력을 해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한 첫 걸음은 페미니즘이 가진 부정적 이미지를 종식시키고, 그것이 가진 비전을 제대로 알리고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레슨 인 케미스트리>를 읽으며, 이 보다 적합한 책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6시 저녁식사는 인간의 공통점인 화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 시청자들이 이제껏 배워온 사회 규범, 즉,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저렇다 식의 케케묵은 관념에 저도 모르게 얽매여 있더라도, 우리 방송은 문화적 단일성을 넘어서 생각하도록 격려해주는 겁니다. 분별력을 갖추고 과학자처럼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2권, 112쪽)
『 레슨 인 케미스트리 』는 '화학에서 배운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에게만 의미 있을 것 같은, 어렵고 복잡할 것만 같은 화학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다시 엘리자베스 조트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엘리자베스는 "화학은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룬다"고 말한다. 또, "화학은 삶 그 자체인 동시에,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말한다. 엘리자베스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실제 우리의 삶 자체가 화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숨을 쉬는 행위는 산화-환원 반응이고, 음식을 통해 영양분을 섭취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고분자 해중합(분해) 반응이다. 우리 몸을 유지하고 지탱하기 위해서 수많은 필수 화학물질이 생산되고 사용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화학반응이 진행되고 있지만, 우리가 이 모든 화학반응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사실 잘 몰라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화학반응들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면 삶도, 물질의 변환도 에너지의 생산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 삶이 가능한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면 밑에서 수많은 화학반응이 끊임없이 진행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화학반응이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차질 없이 진행되어야 우리의 삶은 지속가능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의 "화학은 삶이며, 변화"라는 것은 이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 레슨 인 케미스트리 』는 페미니즘을 넘어 삶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이다.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2권, 252쪽)
살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맺게 되는 인간관계도 화학의 원자 결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우리도 공유결합처럼 사랑과 헌신, 우정이라는 마음을 공유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과 마음이 뭉치고 결합하여 내가 상대의 일부가 되고, 상대도 나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우리가 된다. 우리는 흔히 사람간의 좋은 관계를 ‘케미가 좋다 (good chemistry)’ 혹은 ‘케미가 맞는다’고 표현한다. 이는 화학반응으로 형성되는 견고한 결합만큼이나 단단한 인간관계를 비유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반대로 가장 흔하고 대표적인 이혼사유 역시 "성격차이 (difference in chemistry)"이다. 인간관계에서 보다 튼튼한 결합이 형성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이다. 서로 마음을 나누는 존재가 많을수록 상실감과 공허함이 메워지고, 가치 있는 삶이 지속될 수 있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좋은 관계에서 발생하는 좋은 에너지는 우리 사회를 한 단계 향상시키는 힘이 된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화학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젠더 뿐만 아니라 인종, 동성애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벌어지는 각종 차별을 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화학에서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와 같이 우리 각각은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하지만, 섬은 단절된 듯 보이지만 연결되어 있는 이중적 성격을 띠는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존재 방식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삶의 흔적, 아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의 고통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진정한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 6시에 저녁 식사를 같이 해요. 에이버리와 윌슨, 매드와 여섯시-삼십분, 해리엇, 월터와 어맨다까지 모여서요. 조만간 웨이클리와 메이슨도 만나보셔야 할 거예요. 온가족을 보셔야죠."
"그래요, 온 가족이 모여봐요." (2권, 297쪽)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엘리자베스는 딸인 매들린 (매드), 반려견 여섯시-삼십분과 함께 추가로 가부장적 남편과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해리엇, 새롭게 가족이 된 에이버리와 윌슨, 혈연 중심의 사회구조에서 상처 받은 월터와 어맨다 모두와 손을 잡고 가족이 된다. 가족은 정형화할 수 없는 것이기에 형태와 구성은 제각각이지만 하나의 가정은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이룬다. "끝없이 일어나는 실수에 끊임없이 적응하는 게 삶"이란 말처럼 (1권, 298쪽), 살아가다 보면 일이란 생기게 마련이고 각각의 가족들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로서 그러한 경험을 함께 하며 더 단단해진다.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야말로 가족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가족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말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서로 기대어, 또 종종 두 배로 기뻐하며 삶의 굴곡을 함께 헤쳐간다. 가족은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혼인, 혈연 등으로 이루어지는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구성원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 레슨 인 케미스트리 』를 읽으며 나는 전통적 의미의 가족의 개념을 사라지고, 원자화된 개인이 새로운 형태의 분자 가족을 형성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꼈다. 내가 엘리자베스 조트의 화학강의를 통해 배운 또 하나의 사실이다. 누구든지 다른 원자와 결합해 분자가 될 수 있다. 원자가 둘 결합한 분자도 있을 테고, 셋, 넷 또는 다수가 결합한 분자도 가능하다. 여자와 남자라는 원자 둘, 또는 부부와 아이라는 이른바 정상가족만이 단단한 결합이며, 가족의 기본이 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앞으로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분자 가족'이 태어나고 화학반응처럼 단단히 서로를 지지하며 유지될 것이다. 엘리자베스 조트와 그녀가 이룬 가족의 앞날에 빛이 깃들길 바란다. 애독자로서 이에 대한 속편이 출간되길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한다.
#레슨인케미스트리, #리뷰, #다산북스, #다산책방, #보니가머스
소설은 언제나 재밌다.
시대적 배경이 1950년대의 미국
여성과 남성의 차별이 존재했던... 뭐 지금도 아직 차별이 없다고는 할 순 없지만 ㅎㅎ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조트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 시대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여섯시 삼십분이라는 똑똑한 개!! 진짜 대단한 소설속의 개다 ㅎㅎ
조트가 일을 하러 가면 여섯시삼십분이라는 개가 아이를 하원시키고 ㅎㅎ
드라마로 나오면 어떤 개가 나올지 너무 궁금궁금하다 ㅎ
간만에 재밌는 소설을 읽었다. 2권이 너무 기대되는
그 당시 여자로서의 힘든 삶... 굽히지않는 여성.. 똑똑하지만 항상 그늘에 가려져 있던 여성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읽을 것 같다. 추천한다.
표지가 흥미로워서 처음에 궁금하긴 했는데 제목이 좀 뭐랄까 쉽게 다가오질 않아서 구입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어요. 늘 지켜보고는 있었는데 인스타그램 피드에 조금씩 올라오는 게 아닙니까? 궁금해서 한번 읽어보자,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고 또 한참을. 그러다 소설 좀 읽자! 하여 구입해서 읽고 있네요. 흥미롭고 재밌어요. 아직 끝까지 읽진 않아서 함부로 평할 수는 없지만 재밌게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