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을 읽다 보니 습관처럼 계속 읽게 되더라. 누군가는 어렸을 적부터 책을 손에 들었다고 하던데, 나는 서른이 다 되어가는 때 읽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이, 그냥 우연히 손에 잡힌 책 한 권 읽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졌다.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우리 집에는 제대로 된 책장도 없었고, 누가 책 읽기를 즐긴 적도 없어서 집에 책이 있던 것 자체가 신기하다. 어쨌든, 그렇게 책과 나는 이렇게까지 이어져 온 인연이 되었는데, 막상 책을 대하면서 궁금했던 것은 해결되지 않았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나만 궁금했던 건 아니지?
책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 가장 먼저 글을 써야 하는 작가도 궁금했나 보다. ^^ 어느 날 작가는 편집자와 대화하다가 깨달았다고 한다. 자기가 쓰고 세상에 나오는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몰랐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3년여의 세월을 취재하면서 이 소설을 완성해냈다. 여기까지 듣고 보니 또 놀라고 만다. 며칠 인쇄소 견학하고 담당자 취재하면 다 아는 거 아니었어? 아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알게 된다. 단 며칠 만에 책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다 알 수도 없고, 결코 쉽게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을.
소설의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인쇄소에 입사한다. 나름 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다는 자부심도 있었을 테다. 출판사 편집 담당자를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책 제작 일정을 의논한다. 출판사에서 건네받은 자료로 제작 공정의 모든 과정을 담당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 상황에 부딪힌다. 내 맘 같지 않게 흘러가는 일을 몸으로 경험한다. 편집부에서 요구하는 방향과 인쇄 현장의 작업이 같지 않은 것은 비일비재하다. 내 작품을 내놓는 데 애정을 쏟는 건 당연한데 작가와 디자이너의 일방적인 무리한 요구에 좌절하기 일쑤. 무엇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면서 고민도 많아진다. 책이라는 대상이, 책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작업 환경이 사양 산업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줄어가고, 꼭 종이책이 아니어도 되는 전자책이 활발하게 보급되고 있으니, 처음 책을 대하던 마음과는 별개로 생계를 생각하면 암울한 게 이 시장의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책을 향한 애정을 놓지 않는 주인공이다. 상사와 동료에게 핀잔을 들어도, 수시로 변경되는 작업 상황에 당황하더라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분야라고 해도, 여전히 그의 마음속 책은 처음과 같다. 아니, 오히려 더 단단하게 책의 정의에 이르게 된다. ‘책은 필수품’이라고 말이다.
읽다가 문득 작은 방 하나를 채운 책장을 둘러봤다. 줄이고 줄였는데도 여전히 벽 한 면을 차지하는 책장에 꽂힌 책들, 그걸로도 부족해서 바닥 여기저기에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는 걸 보면 한숨부터 쉬어진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선뜻 정리하고 버리지 못하겠다. 방문을 열면 훅 끼치는 책 냄새, 한여름의 장마 때는 꿉꿉한 냄새까지 피어오른다. 추워서가 아니라 책 때문에 집안의 난방을 켠 적도 여러 번이다. 환기가 중요한 것 같아서 책이 있는 방의 창문을 일부러 조금 열어두고 지낸다. 한번 읽고 꽂아두기만 했지,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을 생각한 적은 거의 없다. 판권을 표시하는 부분을 한번 휙 훑어보는 정도로 페이지를 넘기곤 했다. 작가가 글을 쓰면 출판사에서 그 글을 받아 교정하거나 다른 부분 확인하고 인쇄소에 넘기겠지. 인쇄소에서는 그 파일 그대로 기계 설정하고 책으로 만들어내면 끝. 이렇게 말하고 보니 참 단순해 보이는데, 이 소설에서는 내가 생각했던 단순함의 디테일을 보여주었다.
작가, 출판사 담당자, 인쇄소. 크게 보면 책을 완성하는 구성은 이 정도일 텐데, 나는 단순해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각자의 영역, 역할이 분명 있지만, 책을 대하는 자세나 책의 완성을 향한 마음은 구분이 없었다. 누군가 책을 만드는 것을 보고 출산과 비교하던데, 딱 그거 아닐까. 애정을 담고 아껴주고 쓰다듬으면서, 별일 없이 세상에 나오기를 바라는 일. 책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그랬다. 모두가 고생해서 만들고 있지만, 특히 인쇄소 베테랑들의 자세를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아무리 기계가 발달하고 정확하게 잉크를 배합한다고 해도, 사람 손이 하는 정교함은 따라올 수 없을 듯하다. 오랜 시간 같이 일해온 기계를 동료 대하듯 하는 것만 봐도 일하는 자세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 책의 엔딩 크레딧에 기록되어야 할, 단순히 인쇄소의 이름만 적힌 것을 보면서도 느끼게 된다. 그 인쇄소의 이름에 수많은 사람과 가족의 이름이 담겨 있다고, 이 책이 그들의 노력과 애정으로 만들어졌다고, 바로 책의 뒤편에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을 이제는 안다고 말이다. 책 제목 그대로, 책의 엔딩 크레딧에 올려질 이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겼다.
또 한 가지, 이 소설은 책을 만드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에 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앞으로 책은 어떻게 우리 곁에 남을 것인지 묻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책에서 찾으려던 정보는 검색 하나로 간단하게 해결되기도 한다. 이미 들어왔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 줄었다고 한다. 사실 이 말은 어떤 수치로 보고 듣지만, 실감 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은근 느끼는 건 나부터도 책을 사거나 읽는 게 줄었다는 거다. 작년과 올해가 다르다. 현실적으로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진 것도 있고, 책을 앞에 두고도 집중해서 읽는 게 점점 어렵다. 굳이 종이책이 아니어도 디지털 시대에 이제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전자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곤 한다. 자려고 누워서 잠깐 읽거나, 밖에서 자투리 시간에 읽거나. 휴대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읽을 수단이 있는데, 굳이 종이책이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역시 종이책의 매력과 만족감은 분명 다르다.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책의 내용, 손으로 만져지는 촉감, 이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만족감 등 종이책을 갖고 싶은 이유는 다양하다. 그 다양함 속에서 책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인쇄기는 활기차게 움직이며 오늘도 새로운 책을 세상에 내보낸다. 책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스러져 갈 것이다. (477페이지)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책 제작은 계속될 것이다. 우라모토의 눈앞에서 확실하게 계속되고 있다.
완성을 기다리는 책이 끊이지 않는 한 책이 없어진다는 공포에 떨고 있을 틈이 없다. 스스로 선택한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앞으로도 책을 만들어갈 것이다. (478페이지)
주인공과 인쇄소 사람들은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책이 필수품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피난처에서도 책의 공급을 반가워했다는 말에 괜히 울컥해지기도 했다. 코로나 상황에 책의 판매량이 늘었다는 말도 들었다. 본의 아니게 감금(?)당하다시피 생활하다 보니, 굳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심심하거나 무료해서 책을 구매했다고 하더라도, 책은 아직 우리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가까이하는 대상이다. 그러니 책을 쓰는 사람도, 그 책을 발견해서 출판으로 이으려는 사람도, 세상에 내놓으려 열심히 인쇄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우리 곁에 존재해야 한다. 책을 중심으로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프로의 자부심이 그대로 느껴진다. 책을 읽는다고 우리 삶이 갑자기 바뀌지 않겠지만, 우리가 책으로 얻는 무언가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안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의 여행이든, 타인과의 소통이든, 지식이든, 그 ‘무언가’는 각자 다르겠지. 상관없다. 각자의 가슴에서 원하는 책을 만날 수 있다면야, 그 어떤 책이든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니까 말이다.
책과 사람은 일대일로 만난다.
독자는 설사 ‘재미없네’ 하며 던져 버리는 책에서도 뭔가를 건진다. 때로는 한 권의 책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 인생을 바꿔 놓기도 한다.
책은 그런 것이다. (62페이지)
잉크 냄새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책이다. 책이 더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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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그렇듯, 저도 한때 출판사 직원을 꿈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직접 만들 수 있다니, 우와 이거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 아냐! 이렇게 동경했었죠. 취업하기 전 잠시 어떤 재단의 출판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도 있었던 터라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오만방자한 태도를 가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경험한 세계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던 거예요.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출판과 디자인을 계획하고, 원고를 몇 번이나 수정하고, 고객인 독자의 입장에서 가격을 책정하고, 작가의 입맛(?)에 맞게 허리를 숙여야 하는 고된 과정들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의 엔딩 크레딧]을 읽기 전에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도요즈미인쇄 주식회사 영업맨인 우라모토 마나부. 그는 회사 설명회에서 '인쇄 회사는 모노즈쿠리(혼신의 힘을 쏟아 물건을 만드는 것 혹은 그 장인)이다'라고 말하는 가슴 뜨거운 남자입니다. 그에 반해 나카이도 고지는 자신의 꿈에 대해 '맡은 일을 하루하루 실수 없이 마치는 것'이라고 정의하죠. 처음에는 뭐 이렇게 냉정하고 무미건조한 사람이 다 있어!라며 불끈 했었는데, 우라모토의 행보를 보고 있자니 오히려 이 남자의 이상론에 살짝 질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멋진 책을 만들고 싶다, 고객에게 최고의 책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출판사나 작가의 요구를 그대로 인쇄 공장에 전달하기만 할 뿐 요령이 없다는 인상이 강했거든요. 덕분에 고생하는 것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공장의 인쇄제조부에서 일하는 노즈에는 우라모토에게 '전서구'라며 현장의 고생은 생각하지도 않고 이런저런 요구만 물어온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판권은 책의 엔딩 크레딧이다. 제작에 관여한 모든 이의 이름을 실을 수는 없지만 '도요즈미인쇄주식회사' 너머에는 노즈에나 지로씨, 후쿠하라, 우라모토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종이 구입처를 알아봐 준 게이단샤 업무부의 요네무라 신코나 기후의 이나바 야마지업 사람들도 잊어서는 안 된다.
p181
책이 정적인 창조물이라면 그 책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동적이다 못해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마치 백조가 물 위에서는 우아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비해 가라앉지 않으려고 물 밑에서 마구 물장구를 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요. 인쇄 공장에서 긍지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 한편으로는 자신의 일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 작가의 요구에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최고의 책을 만들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들, 책을 왜 읽는가에 대한 의문, 종이책과 전자책에 대한 의견 등 현실을 반영한 이슈들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그 애정과 열정만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작품을 읽고나니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판권을 그냥 넘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독자들에게는 그저 스쳐지나갈지도 모를 페이지. 그 페이지에 한 권의 책을 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았거든요. 매일 한 권의 책을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달리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묵지근해지는 것 같아요. 멋진 책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있을 많은 분들, 그리고 이 책을 만들어주신 분들께 마음으로나마 감사를 전합니다!!
책을 좋아하다보니 책과 관련된 콘텐츠를 다룬 이야기도 좋아한다. 그중 책을 제작하는 과정이 언급된 책도 꽤나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난다.(사전을 만드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 본 『책의 엔딩 크레딧』은 상당히 흥미로운 책으로 이미 두 자리 수의 책을 출간한 작가가 스스로도 원고를 넘기고 나면 그 이후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기에 그에 대한 궁금증을 무려 3년이 넘는 시간동안 현장 취재를 통해 만들에 낸 책이기 때문이다.
간혹 출판사의 SNS를 보면 인쇄 과정의 감수를 보러왔다는 피드를 올려놓은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이 책은 인쇄업계를 취재하면서 보다 사실감있는 이야기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실 일반인이 인쇄소에 갈 일이 뭐가 있을까 싶어 더욱 신기한 부분들이 많았던 책이기도 하다. 하나의 직업 세계를 만나보는 기회이기도 했고 좋아하는 책이 제작되는 과정의 하나를 상세하게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인쇄와 관련해서 참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알려주는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냥 주어진 오더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오더에 맞추기 위해 상당히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써야 우리가 읽는 책으로서의 결과물이 나오는구나 싶기도 했다.
인쇄 과정에서 결정해야 할 사항들은 참 많다. 때로는 스케쥴 변경으로 조율을 해야 할 때도 있고 그냥 종이에 잉크로 인쇄하는게 아니라 종이의 재질이라 습도, 온도 등에 따라서도 잉크 배합을 신경 써야 하니 글을 쓰는 작가님이 그 분야의 전문가라면 인쇄소의 업무 또한 상당히 전문가적인 기술이 필요할 수 밖에 없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인지 소설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는 다큐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책의 인쇄와 관련한 이야기를, 이 분야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해서 시청자들에게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영상에 담아내듯 이 책은 활자로 풀어낸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한 권의 단행본으로 나오기까지 참으로 많은 노력이 기울어지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수고가 곁들여진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책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엔딩 크레딧 "
안도 유스케의 <책의 엔딩 크레딧>을 읽고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책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보이지 않는 이름들의 엔딩 크레딧-
한 권의 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요즘은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손쉽게 온라인 서점을 통해서 책을 주문하고 2일 이내에 책을 받을 수 있다. SNS 발달과 ebook의 활성화로 인해 종이책은 사양산업이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오늘도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고,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그런데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책을 쓴 저자와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내용이 잘 쓰여진 책도 제대로 인쇄가 되지 않는다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할 수 없다.
이 책 『책의 엔딩 크레딧』은 책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인 안도 유스케는 여러 작품들을 집필하고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면서도 정작 자신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3년 넘게 인쇄업계를 취재했고, 그 취재 경험과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이 책 『책의 엔딩 크레딧』을 썼다고 한다.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감독과 배우뿐만 아니라, 연출, 조명, 쵤영 등 다양한 파트의 사람들의 노고가 있어야 하듯,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그와 비슷한 것이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고 우리는 엔딩 뒤에 나오는 제작진의 이름 목록을 보고 그들의 노고와 숨은 공로를 알게 된다. 책 또한 책의 뒤편에서 필름을 출력하고 인쇄판을 만들고 제본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과 존재는 책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이름이 되었지만, 그들은 책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분명히 존재하고,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다.
저자는 이 책 속에서 책을 사랑하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열정과 노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보통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말해보자면 작가가 원고를 쓰고 편집자가 출판 기획을 하고 디자이너와 상의해서 책의 사양을 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을 다 마쳤다고 해서 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스토리를 완성하는 것만으로는 책이 되지 않는다. 책의 소프트웨어는 구성이 되었지만, 제품화하는 단계는 완성되지 않았다. 인쇄회사나 제본회사가 실제로 종이를 인쇄해서 책을 인쇄해야 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쇄 회사는 책의 탄생을 돕는 산파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는 책이라는 몸을 얻으며 세상에 태어나니까 태어날 때 거드는 우리야말로 책의 산파가 아닐까 하는 거죠."
- p.61
이 책에서는 도요즈미인쇄 주식회사와 후지미노 공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담당업무와 그들의 노고에 대해 이야기 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종이 수급과 출판사나 작가의 갑작스런 제작 변경에 따라 스케줄을 조율해야 하는 인쇄 영업맨, 종이의 습도, 온도 등을 고려하여 잉크를 배합하고 그날그날 기계의 컨디션과 상황을 점검하여 인쇄 설정을 결정해야 하는 인쇄 기술자, 온도와 습도에 따라 잉크의 점착성을 판단하고 마른 뒤의 색까지 예측하고 조합해야 하는 제조 담당자 등의 이야기를 통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들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책 판매량에 있어 하락세를 겪고 있는 출판업계의 불황으로 인해 사양산업으로 취급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책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프로의식을 볼 수 있었다.
『슬로우 스타터』, 『나기시노의 바람』, 『페이퍼백 라이터』, 『사이버 드러그』, 『책의 보물상자』 라는 5개의 출판, 인쇄 에피소드들을 통해서 저자는 그들의 생각과 책 인쇄에 대한 열정 및 투철한 사명 의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ebook이 활성화되고 각종 영상 콘텐츠로 독서량이 줄어든다고 해도 책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책은 출판되어 우리들에게 올 것이다. 책의 엔딩 크레딧 속의 그들이 있는 한 말이다.
"제 꿈은...인쇄가 모노즈쿠리로 인정받는 날을 맞이하는 겁니다." 라고 말한 우라모토의 바램처럼 그들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오늘도 책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들이 이 마음을 간직하고 계속해서 책들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이 책 덕분에 이제 책을 주문하고 마침내 그 책이 나에게 오게 될 때,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될 것 같다.
완성을 기다리는 책이 끊이지 않는 한 책이 없어진다는 공포에 떨고 있을 틈이 없다. 스스로 선택한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과 앞으로도 책을 만들어 갈 것이다.
-p. 478-
'펴낸곳 주식회사 분유칸
인쇄 도요즈미인쇄 주식회사
제본 주식회사 호코쿠샤'
판권은 책의 엔딩 크레딧이다. 제작에 관여한 모든 이의 이름을 실을 수는 없지만 '도요즈미인쇄주식회사' 너머에는 노즈에나 지로씨, 후쿠하라, 우라모토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종이 구입처를 알아봐 준 게이단샤 업무부의 요네무라 신코나 기후의 이나바 야마지업 사람들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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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들고 싶어 도요즈미인쇄에 근무하는 우라모토 마나부는 오늘도 바쁘다. 위에서 내려오는 오더를 처리하면서 현장과 합의하는 것이 그의 주 업무, 쉽게 말해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우라모토는 그와 같은 업무를 하고 있지만 깔끔한 일처리로 인정받고 있는 나카이도를 보며 언젠가 그를 능가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례사항이 발생했다. 우라모토는 후지미노 공장에서 현장 총괄을 맡은 노즈에에게 전화를 걸어 작업을 부탁한다. 간혹 손바닥 뒤집듯 계획을 변경하는 출판사와 작가들을 맞추기 위해 부득불 현장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즈에는 이 상황이 불편하다. 영업부에서 일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공장이 가동된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은 곤란하다. 열정이 앞서 일을 키우는 우라모토가 원망스럽지만 결국 맞춰준다. 아픈 처남과 처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수긍해야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원고를 책으로 출간하기 전에 교정 작업을 하는 후쿠하라는 이 일이 천직이라고 확신한다.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했던 후쿠하라는 학창시절 책을 통해 위로받았다. 그래서 막연히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도요즈미인쇄에 입사했다. 덕업일치라고 해야할까, 좋아하는 일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후쿠하라는 책을 통해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책의 엔딩 크레딧>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일어나는 헤프닝을 다룬다. 직장생활이라는 내용이 공감을 주면서도 활자로만 접했던 책의 공정 이면을 알 수 있어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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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기세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1호기를 보자 노즈에는 기계를 당장 꺼 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불량품을 대량으로 토해 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 때문이다. 사전 준비 가운데 뭔가를 미흡하게 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막연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공문을 잘못 내렸을 때는 수정된 공문으로 다시 기안하면 된다.(물론 처음부터 잘 작성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현장은? 만일 발견하지 못한 오류로 인해 불량품이 대량으로 출고된다면? 부주의로 인해 재정적, 인적 사고가 발생한다면?
현장과 밀접한 업무를 맡았던지라, 노즈에의 긴장을 공감할 수 있었다. 실수는 곧바로 사고로 이어지는 업무를 하며 근무 때마다 긴장했던 나날이 떠올랐다. 그저 막연히 자신이 없었다는 노즈에, 노즈에는 긴장과 숙달을 반복하면서 업무로 인정받아간다.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고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거쳐야하는 과정이라지만, 어쩐지 남일 같지 않아 오래 머무른 단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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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읽을 때면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책의 엔딩 크레딧>은 달랐다. 기술직과 본부의 관계, 영업 관련 교섭, 이례사항에 대한 대처, 디지털화로 인한 인력 감소 등 모든 부분이 공감되었다. 특히 디지털화로 인한 인력감소는, 재직 중인 회사가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터라 더욱 와닿았다.
초심이 옅어지고 무기력한 시간이 잦아진다. 그래서 재직 기간이 길어 질수록 나 자신을 회사의 부속품으로 여기곤 한다. 열정을 가져볼까? 그런데 요즘은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젊은이는 되려 바보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MZ 세대가 말하는 직장인, 일은 딱 정해진 만큼만, 그 이상 그 이하도 하지 않고 남는 시간은 자기계발과 재테크에 쏟는다.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재직 중인 곳이 직원의 능력을 확실하게 인정해주고 성과주의적 면모가 강한 직장이 아니면 대부분 그렇게 된다. 안타깝지만 나도 그렇게 변하고 있다.
<책의 엔딩 크레딧>은 열정으로 꽉찼던 언젠가 우리의 모습을 비춰준다. 작중 우라모토는 인쇄가 모노즈쿠리(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물건을 만드는 것, 혹은 그 장인)라고 언급한다. 이런 우라모토 뿐만 아니라 <책의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과 성의를 다한 그들의 소명의식이 모여 책이 완성된다.
<책의 엔딩 크레딧> 편집자는 작가가 창작을 하고 편집자가 편집을 하고 마케터가 홍보를 하는 곳의 뒤편에서 누군가가 필름을 출력하고 인쇄판을 만들고 제본을 한다는 걸 독자들도 조금쯤 알아주길 하는 마음에 출간을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맡은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어쩌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이 가진 마지막 소명의식으로 세상이 굴러가는 것은 아닐까. 복직은 멀었고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보이지 않는 이름이 되어 빛나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졌다.
P.S
<책의 엔딩 크레딧>을 읽고 알게 된 상식, 책의 페이지는 16의 배수라고 한다.
본 서적은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책의 엔딩 크레딧
안도 유스케 |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항상 책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사양사업이라면서 왜 이렇게 해마다, 아니 매주마다 새책들은 왜 이렇게 많이 쏟아져나오는 걸까? 그리고 독서인구가 줄어든 것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닐진대 자꾸 일인당 평균 독서량을 왜 말하는 걸까... 이제 좀 솔직해져도 되지않을까? 그냥 책이 좋아서, 책을 만들고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어느 정도는 생활이 되니까 새 책도 나오고 새 출판사들도 자꾸만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정말 사양사업이라면 이렇게 많은 신간이 나올리가 없다. 아니면 정말로 한 방을 바라는 건가... 일명 베스트셀러... 모든 책들의 희망사항... 그것을 위해서 다른 책들이 곁가지로 장식을 해줘야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베스트셀러란 어느 책이 될지 모르는 것이니까... 아니, 그렇다면 이것은 도박이 아닌가? 불확실성에 모든 것을 거는 것...
어떤 저자가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책이라는 물성을 싫어한다고 말이다. 너무 무겁고, 보관하기 힘들고, 빛과 수분에 따라 종이도 누렇게 뜬다고 말이다. 심지어 오래된 책에서는 곰팡이가 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안다. 전자책은 종이책의 그 물성을 절대 따라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전자책과 종이책은 서로 공존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책은 모름지기 줄도 치고, 낙서도 하면서 읽어야한다. (오랫동안 책을 너무 신성시 한 까닭으로 개인적으로 좀 힘들지만 노력중이다.) 그래서 자신의 책이 되는 것... 남의 생각이지만 읽음으로 또 생각함으로 자기 것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여기 이 책은 바로 책의 물성... 그 점에 주목해서 쓰여졌다. 3년 넘게 인쇄업계를 취재한 저자가 책의 이면을 바라본 애정어린 시선이 느껴진다. 총체적인 기계의 컨디션를 고려하고 잉크를 배합하는 인쇄기술자부터 잉크의 점착성을 판단하고 마른 잉크의 색을 예측하는 제조 담당자, 또한 종이 수급에 따른 스케줄 등을 조정하는 인쇄 영업맨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다.
책으로 만들어지는 종이... 그 중 8프로가 수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책 보관에 있어서는 습도와 온도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빛 역시 말이다. 간혹 책장을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놓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책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안좋은 것이다. 햇빛으로 인해 종이는 금새 바래고 이내 헌책이 되고 마는 것이다. 새책에는 좋은 냄새가 난다. 바로 잉크향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사그락 거리는 소리 역시 기분을 좋게한다. 오래도록 이런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읽는 다는 행위 후에 보관하는 행위 역시 다소간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책이라는 물성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만나고 흡수하는 것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 그들은 단순한 인쇄업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모노즈쿠리리는 말은 혼신의 힘을 다해 최고의 물건을 만드는 것이라는 뜻이다. 매일 매일 꿈을 실현하는 것은 그날의 맡은 바를 실수없이 마무리하는 것이라는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누구든 매일의 꿈을 실현하고 사는 것이리라...... .
책의 엔딩 크레딧
책이 나오는 데는 작가가 쓰고 편집자가 만들고 마케터가 홍보를 하는 뒤편에서 누군가가 필름을 출력하고 인쇄판을 만들고 제본을 한다는 걸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출판사의 꿈이 있었습니다. 『책의 엔딩 크레딧』은 저자가 십여 권의 작품을 집필하면서도, 원고를 보내고 나면 정작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3년 넘게 인쇄업계를 취재하여 쓴 소설입니다. 책에도 영화와 같은 엔딩 크레딧이 있다면 기록해야 할, 책의 뒤편에 서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책을 좋아해서 많이 읽었지만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는 책의 엔딩 크레딧 앞으로 책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변할 것 같습니다. 물론 좋은 방향으로 진심을 다해서 말이죠. 책을 만드는 모든 단계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이름들의 엔딩 크레딧! 책의 뒤편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스토리를 완성하는 것만으로는 책이 되지 않습니다. 인쇄 회사나 제본 회사가 책을 만드는 겁니다.“혼을 담아 쓴 이야기를 책이라는 물성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p.11
‘별이 닿는 곳’ 이 ‘불이 닿는 곳’이 되어 버린 기억하고 싶지 않는 끔직한 일이 일어납니다. 1만부를 재인쇄 한다면 고스란히 적자이고 간행일에 맞출 수도 없는 상황 [슬로우 스타터의] 초판본은 어쩔 수 없이 세상에 그렇게 나왔습니다. 책의 탄생은 저자와 편집자, 여러 방면에 걸친 수많은 관계자에게 두루 축복받는 일이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세상에 나오는 책은 애초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생각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가끔 오자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초판본에 있는 일이지요.
“물이 새는 배는 조만간 침몰할 수밖에 없는 건가요.....” 무거운 짐을 바다에 던져서 선채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하지만 인쇄 회사가 인쇄기 하나를 버린다는 것은 엔진을 하나 떼어내는 것과 같다. ---p.473
영화 작은아씨들에서 둘째 조가 자신의 책이 만들어 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책이 만들어 지는 과정은 종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잉크를 배합하고 그날그날 기계의 컨디션을 파악하여 설정을 결정하는 인쇄 기술자, 온도와 습도에 따라 잉크의 점착성을 판단하고 마른 뒤의 색까지 예측해 별색을 조합해 내는 제조 담당자, 뜻대로 되지 않는 종이 수급과 갑작스런 제작 변경에 따라 스케줄을 조율하는 인쇄 영업맨 등. 원고가 알루미늄 판으로 만들어지는 광경이나,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용지 사이에 공기를 넣는 과정을 알게 되면서 책이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작가는, 사양 산업으로 불리는 업계의 그늘과 이를 돌파하고자 하는 프로들의 자부심을 잉크 냄새 나게 묘사했습니다.
대부분 책의 종이 성분의 약 8퍼센트는 수분이라고 합니다. 때문에 습도나 온도에 따라 미세하게 신축하고 변질될 수 있습니다. 책장에 오래도록 꽂아 놓았던 책이 누렇게 변한 모습을 안타깝게 본 적이 많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렇게 꺼니 하면서도 속상한 적이 많습니다. 봄 부터 여름까지는 습도가 높아서 종이와 종이가 들러붙기 쉽고 공기를 충분히 넣어 주지 않은 채 급지부에 세팅하면 종이가 막히거나 여러 장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겹침이 발생하기 쉽다고 합니다. 저자는 출간 직후 인터뷰에서 무대는 인쇄소, 등장 인물은 판권에 등장한 적이 없는 그림자 스태프들이라고 했습니다. 스토리를 완성해 글을 쓰고도 수많은 제작과정을 거쳐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이루어져야 책이 나오는 것입니다.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독자 뿐 아니라 의외로 작가들도 모른다고 합니다. 셀러리맨의 애환을 다룬 소설로 유명한 안도 유스케의 도요즈미가 이번에는 인쇄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독자로서 책을 어떻게 진심으로 대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