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는 한 사람의 회고록 성격의 에세이로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대학교 졸업 후 스물두 살에 직면하게 된 1,500일간의 백혈병 암 투병 생활기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암을 이겨낸 후 투병생활 중 슬픔을 공유하고, 힘겨운 나날을 함께해 준 지인들을 찾아 반려견 오스카와 함께 떠난 24,140킬로미터의 미 대륙 횡단 자동차 여행기이다.
두꺼운 편에 속하는 책이고 암 투병기라는 힘든 여정을 함께한다는 것은 어쩌면 독자에게도 부담스러운 시간일 수 있다는 우려는 있지만 드라마틱 하고 소설을 읽는 듯한 그녀의 필치가 호소력이 있어 잘 읽히고, 1,500일간의 백혈병 암 투병 사이 술라이커 곁을 지켜주고 응원해 주던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코로나로 멀어진 거리만큼 마음도 멀어진 내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좋았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관계'에 집중했다. 암 투병기에서는 술라이커의 남자친구 '윌'이 많이 등장하는데, 마침 무직이었던 그가 술라이커 곁에서 살신성인하여 보살피는 모습을 보며 암 환자 곁을 지키는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당사자인 술라이커는 술라이커대로 누군가를 이해할 여력이 없는 상태인 것이 분명했고, 윌 또한 자신의 모든 시간을 할애하여 돌보다 조금씩 지쳐가는 모습 속에 이 둘의 관계가 과연 사랑하는 사이로 남을 것인지 환자와 간병인의 모습과 같은 새로운 관계로 남을 것인지 궁금했는데, 술라이커가 암을 극복하고 결국 윌과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어 무척 애석했다. 게다가 마지막 '감사의 말'에서도 윌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어 의아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 책이 무척 재미있었던 이유는 백혈병 암 투병기나 미 대륙을 횡단하는 자동차 여행이라서 이기보다는 순전히 저자의 생동감 있는 필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암으로 인해 당연한 일상이 당연하지 않게 된 술라이커의 이야기가 나에게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볼 줄 알게 된 계기가 되어 귀한 시간이었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난 내 나이 37살에 유방암을 처음 진단받았다. 그리고 2년 반만에 재발.
처음 암을 진단받았을 때도 행복감과 안정감이 모두 부서진 느낌이었다.
그걸 조금씩 회복하고 이어져 가는 중에 재발로 다시 무너져 내렸다.
난 더이상 행복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일까.. 우울감에 빠져들고 있는데 이 책을 만났다.
이 책의 문구 중 '부서진 마음의 파편을 이어 붙여 다시 삶으로' 이 부분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나만 이렇게 느낀 게 아니었구나. 다시 시작할 수 있구나. 라는 희망을 보았다.
에세이에 왠 지도지? 하고 봤는데 자세히 보니 지역마다 이름이 적혀 있다.
그녀의 친구들이 사는 곳을 표기해 둔 지도인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한 스물두 살에 저자 술라이커 저우아드는 생존률 35%의 백혈병 진단을 받는다. 진단받기 전까지 원인 모를 증상들로 몸이 상해져 가고, 그 원인이 '급성 백혈병'이라는 걸 알았을 때 느낀 것은 안도감이었다고 한다. 몇 달이나 오진 속에서 갈팡질팡한 끝에 마침내 가려움, 구내염, 무력감의 원인을 밝혀낸 것이다. 건강 염려증 환자가 아니라, 지나친 유흥이나 현실에서의 부적응 때문이 아니라, 내가 또렷이 발음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확실한 질병의 결과였던 것이다.
나는 반대로 무엇때문에 내가 암에 걸렸는지 고민과 죄책감에 시달렸는데, 단순히 질병이 원인인건데 나는 왜 죄책감을 느껴야 했던걸까.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유방암과 급성 백혈병과 비교할 만한 대상은 아니지만, 어떤 암이든 너무 무서운 질병이다.
그래서 암과 관련되어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아픈 사람에게 상업적으로 사기치는 사람들은 어디든 꼭 있고.
저우아드는 예상치 못한 병마 때문에 절망했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지만, 매일 일기를 쓰며 내면의 힘을 되찾기 시작한다. 글쓰기는 비탄을 정돈할 수 있게 한 치유의 수단이자 세상과의 연결감을 유지하는 매개였다. 개인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한 저우아드의 글은 많은 주목과 사랑을 받았고 언론의 눈에도 띄어 《뉴욕 타임스》에서 ‘중단된 삶’이라는 정기 칼럼을 연재하기에 이른다. 칼럼을 읽은 전국 각지의 독자들은 수많은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들에 담긴 마음들은 저우아드에게 구명줄이 된다. 병을 치유하고 삶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저우아드는 그들을 찾아나선다. 투병 중 블로그에 올린 글들에 편지를 보내준 이들. 누구랄 것 없이 제각기 중대한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평생 불치병과 함께하며 내내 열정적으로 살아온 노교수, 자살한 아들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려 애쓰는 어머니, 청소년기부터 암 투병을 해온 십 대 소녀, 인생의 절반을 감옥에서 보낸 사형수… 이들과 직접 만나기 위해, 그리고 답을 모색하기 위해, 저자는 뉴욕부터 캘리포니아까지, 미국 전역을 도는 24,140킬로미터의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로키산맥을 통과하고 외딴 해안도로를 달려 한 명 한 명을 만나는 여정이 마치 한 편의 로드무비처럼 펼쳐진다.
나 역시 우울감에서 해방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저우아드처럼 글솜씨가 형편없어서
그냥 주저리주저리 ㅋㅋㅋ 그녀의 글에는 힘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 것 같아 부럽기도 하다.
그리고 미국 전역을 자동차 여행을 하다니 그녀의 용기도 부럽다.
책의 원제 ‘Between Two Kingdoms(두 왕국 사이에서)’는 수전 손택의 책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따온 말이다. “인간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두 곳의 이중국적을 갖고 태어난다. 우리는 좋은 여권만을 사용하길 바라지만, 누구든 언젠가는 잠시나마 다른 쪽 왕국의 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
손택의 말처럼 사람들은 질병을 두려워하고 최대한 외면하며 어떻게든 건강을 추구하곤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는 평생 ‘아프거나 덜 아픈 상태’를 반복하며 두 왕국 사이의 경계를 이리저리 오가고, 좋음과 나쁨, 완전함과 불완전함 사이의 그 어딘가에 머문다. 사람이란 ‘두 왕국 사이의 그 허술한 경계’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말 자체가 그냥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불안전함을 극복하려 애쓰는 게 아니라, 현재 나의 몸과 마음을 받아들이고 때로 닥쳐오는 불행에 크게 휘청이지 않는 균형 감각을 기를 때에야 비로소 엉망이지만 완전한 방식으로 인생이라는 축제를 즐기며 살아갈 수 있다.
투병의 경험뿐만 아니라, 실패의 경험에서도 적용되는 말인 것 같다.
절망할 필요 없다. 그저 균형 감각을 키우고 있는 과정일 뿐.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 중단된 삶
서두에 나오는 '그리고 너무 빨리 강을 건너가버린 모든 이들에게'라는 첫 문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22살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4년 간의 끝을 알 수 없는 투병 끝에 암 생존자가 된 '술라이커 저우아드'는,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게 그보다 더 불안한 또 다른 변화를 직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았다'고 말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더 불안한 또 다른 변화라니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지만, 시간의 문제일 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의사가 백혈병 진단을 내린 지 겨우 마흔여덟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이미 그 병명은 우리 가족의 삶을 좌초시키고 모두를 까마득한 함정 속의 낯설고 혼란스러운 세계로 떨어뜨렸다.'
'아무도 내게 뭔가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는 건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환자의 세상은 다른 사람이 일 년 내내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가장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차마 그런 고통은 기원할 수 없었다.'
'내 삶은 시작하기도 전에 끝났는데 다른 사람들의 삶은 이제 시작이라니, 말도 안 되게 불공평했다.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여기에 나는 갇혀 있다.'
'고통은 인간을 이기적이고 잔인하게 만든다. 고통을 겪다 보면 이 세상에 오직 나와 내 분노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병 때문에 인생이 중단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작가는 투병 중에 블로그 글쓰기를 시작했고, 뉴욕타임즈에 '중단된 삶'이라는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사람처럼 써라." 애니 딜러드는 이렇게 조언했다.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말기 환자다. 우리의 죽음은 수수께끼가 아니며, 다만 시간 문제일 뿐이다.'
'환자가 된다는 것은 통제력을 포기하는 일이다. 의료진과 그들의 결정도, 내 몸과 예측 불가능한 상태 악화도 통제할 수 없다. 간병인도 어느 정도 비슷한 운명에 처하지만, 그래도 환자와 간병인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는 언제든 떠날 수 있었고 실제로 떠날 것이었다.'
'그날 밤이 멀리사와 내가 마지막으로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런 걸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나는 내 친구를 배웅하지 못했다. 멀리사를 태운 구급차가 떠나던 순간, 나는 링거 거치대에 묶여 마지막 화학요법 주사를 맞고 있었다.'
* 중단된 삶 이후
'암 투병에서 가장 힘든 시간은 치료가 끝난 다음에 시작되었다.'
'나는 항상 사랑은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사랑은 고통을 해소하고 삶의 잔인함도 견딜 만하거나 심지어 아름다운 것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투병 단계를 끝마친 지금 나는 무너진 돌무더기 속에 홀로 앉아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다들 어디로 가버렸는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작가는 투병 중에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메일을 보냈고, 반려견과 함께 미국 전역의 33개 주를 여행하면서 20여명을 만나는 24,140킬로미터의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모든 걸 치유해준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멀리사의 부재는 치유되지 않으며 치유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내가 살아서 나이를 먹는 동안에도 내 친구는 계속 죽어 있을 것이다. 가장 가슴 아픈 건 불가능함의 확실성이다. 내가 아는 건 이곳에서는 내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뿐이다.'
"슬픔은 잠재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함께 살아가는 것이지요. 홀로 짊어져야 하는 것이고요."
'치유란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는 모든 것을 박멸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통을 과거에 남겨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치유란 앞으로도 항상 내 안에 살아 있을 고통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되, 고통의 존재를 외면하지 않고 삶을 고통에 빼앗기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사막을 바라보며 내게 한가지를 약속한다. '언제든 사랑이 찾아오는 걸 깨달을 만큼 깨어 있기, 그리고 그 감정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른다 해도 끝까지 가볼만큼 용감하기.'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건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다.'
수많은 잔혹함과 아름다움이 뒤엉켜 불협화음이 가득한 내 인생의 풍경을 그려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얻은 깨달음,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인식은 이후로도 계속 내 마음속 가장자리에 남아서 내게 지혜를 준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늦여름 오후, 맥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가 마지막으로 쓴 시 '천국'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저 영혼을 위한 병원일 뿐
가게 되면 가리라
복잡할 것은 하나도 없으리
천국에서는 이토록 아프지 않으리
죽음 전까지는, 모든 것이 삶이다 -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 -
아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
저자 : 술라이커 저우아드
작가이자 강연가. 암 생존자. 스물두 살에 생존률 35%의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병상에서 개인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한 투병기가 많은 사랑을 받았고, 《뉴욕 타임스》에서 ‘중단된 삶Life, Interrupted’이라는 제목의 정기 칼럼을 연재했다. 칼럼과 함께 제작된 부가 영상 시리즈는 뉴스와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에미상을 받았다. 훌륭한 강연가이기도 한 그는 완치 후에 TED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가까이 다가온 죽음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 이 강연은 2019년 TED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연 TOP10에 꼽혔으며 500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암 정책 자문단으로 활동했으며 유엔과 국회의사당 등에서 암에 관해 알리는 보도와 강연을 해왔다. 《파리 리뷰》,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글을 썼고, 현재도 《뉴욕 타임스》, 《보그》, 《NPR》 등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한다. 전 세계 10만 명의 구독자들과 함께하는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 ‘The Isolation Journal’을 창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쉽게 분류할 수 없는 사람들과 주제를 찾아 탐구하고, 기록하는 일을 계속하려 한다.
1부
가려움
메트로,불로, 도도
우주여행과 가속도
집으로
분기점
추락
불량품
버블 걸
정지된 시간
나의 적들
임상실험 블루스
100일 프로젝트
골수이식 탱고
망원경 양쪽 끝에서
호프 로지
자유의 연대기
털복숭이 친구
수채화로 꾸는 꿈
암 환자 친구들
모래시계
우리의 끄트머리
마지막 인사
끝
2부
중간 지대
통과 의례
재진입
남겨진 이들을 위하여
긴 여정
살갗에 새겨지다
고통의가치
살사와 생존주의자들
브룩처럼 해보기
집으로
후기
감사의 말
가려움
시작은 가려움이었다.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욕구나 이십 대 중반의 혈기왕성으로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할 때의 비유적인 가려움이 아니라 말 그대로 몸의 가려움이었다. 미친듯이 살갗을 긁게 하던, 대학 졸업반 시기에 시작되어 밤새 잠 못 이루게
하던 가려움, 발등에서 시작된 가려움은 서서히 종아리와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중간 지대
인간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두 곳의 이중국적을 갖고 태어난다.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좋은 여권만을 사용하길 바라지만 누구든 언젠가는 잠시나마 다른 쪽 왕국의 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 화학요법 치료를 끝냈을 무렵 나는 성인기의 대부분을 다른 쪽의 왕국, 아무도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질병의 왕국에서 보낸 후 였다.
후기
인생은 통제하에 진행되는 실험이 아니다.
무엇이 다른 것으로 변하는 시점을 일일이 기록하거나 누가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측정하거나 치유의 연금술을 가능케 하는 특정 요소를 따로 구분 할 수는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달도 뜨지 않는 그 외로운 길의 끝에서 내가 무엇이 될 지 알려주는 지도 따위는 없다.
이 책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저자가 여행을 통하여 완치되는 과정을
여행을 하며 일기형식으로 알려주는 책입니다.
질병을 극복하고 여행으로 이겨내는 과정이 궁금하신 분은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윌북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엉망인채완전한축제 #윌북
[서평]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
술라이커 저우아드 저 / 신소희 역
윌북 : 2022년 1월 22일
이 책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는 술라이커 저우아드가 대학을 갓 졸업한 22살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받고 1,500일간의 투병 생활과 완치 후 회복 과정을 자신만의 대담한 언어로 생생하게 기록한 삶의 드라마이며, 상황을 묘사해 나가는 필력이 대문호 작품 못지않다.
저자인 술라이커 저우아드는 아이비리그 대학인 프린스턴 대학을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하고, 프랑스어와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는 상당한 능력의 소유자로 미래가 촉망받는 22살의 젊은 여성이다.
술라이커는 스위스인 어머니 안과 튀니지인 아버지 애디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으며, 술라이커에게 골수이식을 해준 남동생 애덤과 함께 단란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났다.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가족 분위기는 술라이커를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그런 작가의 삶에 먹구름이 드리운 건 대학 졸업반 시기에 시작되어 밤새 잠 못 이루게 하던 가려움이었다.
이 책은 술라이커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하루아침에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암울한 환자로 살아가야만 하는 심연의 괴로움과 병원에서의 투병 생활 그리고 완치 후의 회복과정을 작가만의 생생한 언어로 자세하게 기록해 나간 삶과 죽음을 다룬 대하소설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지 작가의 투병일기를 기록한 일기 형식의 책인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책을 읽어가면서 작가의 뛰어난 필력과 생생한 경험담으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 내용뿐만 아니라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에 매료되어 읽게 된다. 그리고 대단한 필력을 자랑하는 작가들의 책을 소장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예전에 나도 삼국지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문체에 끌려서 10권으로 구성된 삼국지 전집을 전부 구매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은 소장하기에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요즘은 단순히 지식이나 내용만 주입하는 책은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서 검색만 하면 어렵지 않게 관심있는 분야의 지식이나 경험담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문호들 못지않은 대단한 필력과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깨닫게 되는 삶의 심오한 진리들을 알아가기 위한 여정을 이 책과 함께 하길 바란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작가가 백혈병 진단을 받기 전과 후의 삶의 변화 등을 기록하였고, 2부는 백혈병 완치 후의 삶을 회복하기 위해 떠난 100일 간의 여행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책과 함께 떠나는 여정★
▣ 1부
튀니스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런던과 파리로 유학을 떠났고, 마침내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불문학 학위를 받았다.
교수인 아버지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말쑥한 흰 리넨 정장과 중절모 차림에 누구나 뒤돌아볼 정도로 근사한 외모, 그리고 언어에 대한 경이로운 기억을 지닌 분이었다. (...)
나는 아버지 서재의 팔걸이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걸 좋아했다. 천장에 닿는 높다란 책장에는 고전문학, 시, 소설, 문학 이론 등 수백 권의 책이 꽂혀 있었다. (...)
대학에 들어가서는 아버지의 학구적 관심사를 좇아 근동학을 전공했고 복수전공으로 프랑스어와 젠더 연구를 선택했다. (...)
<p.64-65>
작가의 문학적 역량과 다양한 언어구사 능력은 학구적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술라이커는 훌륭한 부모밑에서 밝은 내일을 꿈꾸며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많이 읽었고, 불문학 교수인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에 프랑스어로 씌어진 책들까지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앞날에 대한 부푼 기대감으로 도전하고 성취하며 살아왔을 술라이커가 생의 전환점에서 겪었을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앞으로 100일 동안은 아무리 몸이 아프거나 피곤해도 날마다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딱 한 문장만이라도.
사람들은 비극적인 소식을 들으면 '말문이 막힌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내 말문은 전혀 막히지 않았다. 다음날, 그리고 그다음날에도 언어가 물줄기처럼 터져 나왔다. 처음엔 다소 느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빠르고 세차게 넘쳐 흘렀다. 내 머리는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 미래에 관한 내용은 없었고 문장 하나하나가 현재에 근거한 것이었다. (...) 투병 생활이 내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
환자는 자신에 대해 알게 된 내용을 보고하고 서술해야 한다. (...) 글을 쓰는 행위는 내 개념과 언어로 상황을 통제하고 재구성하는 일이었다.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강력한 언어, 문학이 제공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넷 윈터슨은 이렇게 적은 바 있다. "문학은 은신처가 아니라 발견의 장소다."
<p.146>
100일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는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 작가에게 글쓰기란 불확실한 미래에 적응하고 나아가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의 의지와 희망이다.
물론 너무 지쳐서 몇 마디밖에 적을 수 없는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일기 쓰기는 언어에 대한 애정을 되살려주었고 나아가 독서를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선물해준 [프리다 칼로의 일기] 양장본을 탐독했다. (...)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 칼로의 소망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 1926년 교통사고를 당해 병상에 눕기 전까지는 그림을 그릴 생각조차 해본적이 없었다. (...)
칼로는 격리 상태를 은유와 의미가 넘치는 공간으로 바꾸어놓았다. (...) 자기 얼굴을 보면 자화상을 그렸고, 그 그림들로 역사에 남은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p.147>
100일 프로젝트를 통해 술라이커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떤 책에서 일기를 쓰면 마음의 찌꺼기들이 배출이 되어 우리의 마음이 안정을 찾고 힘을 얻는다고 했던 대목이 생각이 난다.
일기 쓰기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은 술라이커는 어머니가 선물해 준 『프리다 칼로의 일기』를 읽고 많은 깨우침을 얻는다. 이 책은 교통사고를 당한 칼로가 병상에 누워 예술로 고통의 삶을 승화시켜 마침내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는 칼로의 투병 생활을 담고 있어서 그 의미가 크다.
칼로에게 코르셋은 고문 기구이자 미용 도구, 구속이자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실존과 이력의 궤적과도 같았다. (...)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건 너무나도 자주 외로워지기 때문이다. (...) 나는 나의 뮤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자 더욱 잘 알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이제 칼로는 장애인과 고통 받는 자들의 수호성인이자 신화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
하지만 칼로의 책은 내 안에 있던 뭔가를 일깨웠다. 나는 침대에 묶여서도 고통을 창작의 소재로 승화시킨 여러 작가와 예술가의 계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앙리 마티스는 장암을 앓던 와중에 베네치아의 로사리오 성당 디자인을 구상했다. (...) 마르셀 프루스트는 어린 시절부터 그를 괴롭힌 지독한 천식과 우울증으로 누워 지내면서도 일곱 권에 이르는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다.
<p.148>
영원한 뮤즈로 기억될 칼로의 일기를 읽게 된 술라이커는 내면에서 뭔가가 깨어나는 부화의 조짐을 느낀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고통을 창작의 소재로 승화시킨 많은 예술 작품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실로 놀라웠다.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원한 고전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문학작품이 작가의 심한 천식과 우울증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왠지 믿겨지지 않는다.
로알드 달은 만성 통증이야말로 그를 작가로 만든 창조적 도약대였다고 회상했다. "사소한 비극이 내 정신을 일상적 궤도에서 살짝 벗어나게 하지 않았다면 내가 글을 단 한 줄이라도 썼을지, 심지어 글을 쓸 능력 자체가 있었을지 의심스러워." 그는 친구예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고양시키고 창조력을 드높여 준 것은 바로 신체적 한계와 제한적인 생활이었다. 칼로가 적었듯이 "높이 날아오를 날개가 있는데 발이 왜 필요하겠는가?" (...)
내가 침대에 갇혀 있는 동안은 상상력이라는 배를 타고 내 침실의 한계를 벗어나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으리라. (...)
침대 옆 작은 탁자에 펜과 노트와 종이를 두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책과 시집으로 책꽂이를 채웠으며, 무릎 위에는 책상처럼 쓸 나무판을 올려놓았다. (...) 나는 매일매일 글을 썼다. 분노와 질투와 고통이 바짝 말라붙을 때까지 쓰고 또 썼다.
<p.149>
마침내 작가 술라이커는 자신의 고통과 투병의 삶을 승화시킬 글쓰기와 독서에 전념하게 된다.
만약 술라이커가 투병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글쓰기란 창작 활동에 매달렸을까....
최고의 학벌과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던 작가가 만약 건강했다면 지금쯤 아마 자신이 꿈꾸고자 했던 삶의 방식대로 자신의 꿈을 쫓아가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 순간 어떤 감정이 몸속에 솟구쳐 흘렀다. 전혀 예상치 못했고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는 감정, 바로 안도감이었다. 몇 달이나 오진 속에서 갈팡질팡한 끝에 마침내 나를 괴롭혀온 가려움, 구내염, 무력감의 원인을 밝혀낸 것이다. 나는 거짓 증상을 만들어내는 건강 염려증 환자가 아니었다. (...)
백혈병 진단은 내 삶을 돌이킬 수 없이 둘로 갈라놓았다. 그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p.72-73>
술라이커가 그동안 여러 증상들로 시달리면서도 정확한 병명을 찾지 못한 채 본인 탓으로 돌렸던 지난 날들에 대한 회한과 정확한 구심점을 찾았다는 안도감을 느꼈을 작가의 마음이 도드라지게 표현된 글이다.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찝찝하게 지내왔을 작가의 복잡한 심정들이 백혈병 진단을 받고 마음의 충격이 아닌 안도감을 얻었다는 것이 오히려 짠하게 느껴졌다. 인간의 공포는 무언가 확실하지 않고 불안할 때 생겨난다고 한다. 그동안 원인 모를 몸의 증상들로 술라이커는 얼마나 불안에 떨었을지 짐작이 간다.
백혈병 진단은내 삶을 돌이킬 수 없이 둘로 갈라놓았다. 그 이전과 이후의 삶으로.
"인간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두 곳의 이중국적을 갖고 태어난다."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 이렇게 썼다. " 우리는 좋은 여권만을 사용하길 바라지만, 누구든 언젠가는 잠시나마 다른 쪽 왕국의 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 <p.255> |
작가의 글에 공감을 하면서 수전 손택의 글을 삽입해 본다.
나는 앞으로 내 병에 관해 최대한 자세히 알아보기로 다짐했다. 학술지를 탐독하고, 면담할 전문가 명단을 만들고, 인터넷을 속속들이 뒤져 정보를 긁어모을 것이었다. 내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p.79>
늘 주도적인 삶을 살아왔던 술라이커다운 생각이다.
그동안의 삶을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잘 살아왔듯이 여러 선택의 분깃점마다 작가의 주체적인 생각과 판단력으로 밀고 나가는 작가의 뚝심이 맘에 든다.
내게 있는 건 그저 단 하나의 단순하고 본능적인 욕구뿐이었다. '살게 해주세요.' 나는 작은 글씨로 벽에 갈겨 썼다. 반쯤은 기도였고 반쯤은 간청이었다.
<p.165>
이 대목을 읽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누구보다 절실했을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다.
우리 모임에는 비공식 자원봉사 체제가 존재했다. 화학요법치료를 받을 때 따라가 주었고 처방전을 서로 비교해보기도 했다. (...) 누군강의 검사 결과가 나쁘다는 소식을 들으면 테이크아웃 음식과 신경 안정제를 사서 집으로 찾아가곤 했다.
<p.217>
술라이커는 같은 암 병동에 있는 환자들과 친구의 연을 맺고 끈끈한 정과 의리로 단합한 연대 모임을 만든다.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서로를 지켜주는 따뜻한 연대의식이 그들에게 큰 힘을 주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삶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법이다.
♣ 책을 읽고 느낀 여러 단상들 ♣
이 책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 를 읽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생생한 묘사와 뛰어난 필력이 빚어낸 하모니로 마치 메디컬 드라마를 보는 듯한 현장감에 몰입되었다.
술라이커가 원인모를 가려움증과 만성염증으로 시달리고 있을때부터 서서히 스며드는 긴장감의 고조, 곧이어 알게 될 청천벽력과 같은 백혈병 진단을 받고 오히려 안도감이 든다는 술라이커의 회복탄력성!
술라이커의 백혈병 진단은 가족들에게 큰 아픔과 슬픔을 안겨주었지만, 술라이커의 치료를 위해 헌신적으로 애쓰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또한 그녀의 주변 친구들과 가족들까지도 술라이커의 치료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며 도와주려는 이들의 마음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졌다.
마운트시나이 병원의 암 병동에서 무수한 암 환자들의 목숨을 살린 선구적 치료를 개발한 종양 분과 총책임자인 홀랜드 박사는 술라이커의 자상한 담당 교수다. 그는 매일 점심 때마다 찾아와 그녀의 상태를 검사하고, 그녀와 정치, 미술, 문학에 이르는 온갖 화제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인간적인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홀랜드 박사같은 인간 됨됨이를 고루 갖춘 훌륭한 의사들이 많아졌음 좋겠다.
몹쓸 병마와 싸우고 있을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의사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힘든 순간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골수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로 옮긴 술라이커의 새로운 병원생활중 알게된 많은 환우 친구들과의 따뜻한 우정과 그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상실의 슬픔까지 담아낸 술라이커의 『엉망인 채 완전한 축제』는 투병 생활을 뛰어넘는 인생 드라마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는 투병생활동안 블로그를 개설했고, 그로인해 많은 편지 사연자들의 조언과 위로를 받았으며, 〈뉴욕 타임스〉 의 편집자가 그녀의 블로그를 보고 신문에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고 술라이커는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중단된 삶' 이라는 이 칼럼의 부가 영상 시리즈로 에이미 상을 받았으며, 이후 TED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TED 무대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술라이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직접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함께 있어준 윌과 안타깝게 헤어진 부분에서는 너무나 맘이 무거웠다. 읽으면서도 혹시라도 두 사람이 헤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서로에 대한 애증과 갈등으로 어긋나버린 두사람의 관계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술라이커는 뒤늦게 깨달은 윌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깊이 뉘우치고 마음속으로 윌의 행복을 빌어 준다. 윌은 또다른 시작선 위에서 새로운 사랑을 싹틔우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윌의 빈자리를 묵묵한 기다림으로 채워준 존과의 새로운 사랑의 시작은 술라이커의 삶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 주었다.
그의 빽빽한 스케줄을 생각하면 여기까지 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존이 나를 만나기 위해 대륙 반대편까지 달려왔다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았다. 존은 내가 힘들 때면 항상 찾아와주었다.
<p.397>
윌은 술라이커가 생과 사의 사투를 벌이고 있을 아주 중요한 시기에는 같이 있어주었지만, 그 긴 간병생활로 몸과 마음이 지친 윌은 그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긴 병엔 효자 없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환자가 되면 누구나 이기적인 성향을 갖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술라이커를 윌은 어쩌면 많이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다. 작가는 윌과 멀어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한다. 걱정이 현실이 된 순간 그녀가 겪었을 마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함과 상실감을 메우기 위해 오랜 친구였던 존을 만나 관계를 이어가지만 윌이 차지하고 있었던 마음이 너무 커서 쉽게 존을 마음에 담지 못하는 술라이커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존은 항상 그녀가 힘들 때면 찾아와주었던 고마운 존재라는 사실을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 2부
4년간의 치료 끝에 작가의 간절한 바램이었던 '살게 해주세요'의 기도는 이루어졌지만 같은 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우정을 쌓아갔던 친구들의 죽음으로 커다란 상실의 아픔을 겪었을 술라이커는 완치 후 새로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된다. 그리고 반려견 오스카와 함께 약 24,140km의 미국 일주 여행을 친구에게 빌린 자동차로 떠나게 된다.
100일간의 여정으로 구성된 이번 여행의 목적은 술라이커가 투병중에 있을 때 그녀에게 따뜻한 편지를 보내준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삶의 조언을 듣고 삶의 방향성을 찾기 위함일 것이다.
약 20명의 편지 사연자들을 만나러 가는 도중에 죽은 멀리사의 어머니 세실리아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아직도 딸을 잊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술라이커도 영원히 잊지못할 친구를 생각하며 눈물을 쏟는다.
사람들이 왜 사후세계를 믿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이곳을 떠난 이들이 어딘가 다른 곳, 고통 없는 천상의 세계에서 영원히 살 거라는 믿음이 어떤 위로가 되는지 알 것 같다.
<p.318>
무시무시할 만큼 통찰력 있는 조언도 있었다. 내 마음속의 만화경을 뒤흔들어 모든 걸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하는 조언 말이다. 시애틀에서 만난 젊은 남자 아이작을 예로 들어보자. (...) 아이작은 주말 내내 눈물을 터트릴 듯한 얼굴로 얼마 전에 자길 떠난 아내 애기를 했다. 그는 상실감에 힘들어하면서도 객관적인 사고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용서란 마음에 철갑을 두르지 않는 것, 마음을 닫아걸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 "마음을 열고 살기 위해선 고통을 받아들여야 해요. 추한 꼴도 보게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거든요."
<p.383>
작가의 여행담을 담은 2부의 글은 정말 주옥같은 글들로 채워져 있기에 읽으면서도 깨닫는 부분들이 많았다.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아이작이 떠나간 아내에 대한 상실감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승화시킨 대목이 마음에 와닿았다.
"슬픔은 잠재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함께 살아가는 것이지요. 홀로 짊어져야 하는 것이고요." <p.391>
치유란 앞으로도 항상 내 안에 살아있을 고통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되, 고통의 존재를 외면하지 않고 삶을 고통에 빼앗기지 않는 일이었다. 과거의 유령을 직시하고 남아 있는 것을 짊어지며 나아가는 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언젠가 잃어버릴까 봐 주저하고 망설이는 대신 지금 그들을 힘껏 껴안아주는 일이었다. 캐서린의 경험과 통찰이 마음 깊이 스며든다. (...) "우울과 절망을 떨쳐내고 사랑하는 것들에 집중해야 해요." 나를 침실로 보내며 캐서린은 이렇게 말했다. "그런 체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니까요.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줘요. 지금 살아가는 삶을 소중히 여겨요. 내가 아는 한 인생의 슬픔에 맞서는 데 사랑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도 없거든요." <p.396> |
작가는 미국 오하이에 살고 있는 캐서린의 집을 찾아가서 그녀와 안부를 나누고 그녀에게서 인생에 꼭 필요한 여러 조언들을 듣는다. 캐서린의 사연은 책을 보면 자세하게 알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여행 중 길 위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들과 편지의 사연자들을 만나러 가는 여정과 여행담들은 많이 있다. 여행 중에 작가가 위험에 빠질 뻔했던 긴박한 순간들까지도 작가 혼자 오롯이 견뎌야만했던 100일간의 여행 이야기가 독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되는 문구가 있어서 담아 보았다.
여행에는 확실히 기존 생활방식을 벗어나게 하고 새로운 삶을 끌어내는 힘이 있다. <p.285> |
술라이커의 책은 시간의 순서대로 잘 짜여진 생의 간절함이 묻어 있는 삶의 연대기이자 인간의 생과 사를 다룬 삶의 대하소설이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책 리뷰가 생각 이상으로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조금 힘들면서도, 묘하게 즐검긴 합니다. 아무래도 새해 들어서 좀 다른 책을 많이 읽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만큼 책이 들어온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주변에 암 걸린 사람 이야기를 하게 되면 정말 할 말이 많아집니다. 당장에 저희 부모님도 한 분이 암으로 고생을 엄청나게 하셨고, 다른 한 분도 종양 의심으로 인해서 몇 번을 다시 검사 받은 이력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나마 축복이었던게, 그냥 간단하게 시술로 제거하면 되는 혹으로 판명 되었었습니다.) 간단하게 해결 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생과 사를 넘나드는 사람들도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상황을 이겨냈는가 하면 대단히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이겨내지 못하면서도 나름대로의 남은 나날을 즐기는 분들도 있는 상황이고 말입니다.
암도 암이지만, 말기로 판정된 경우에는 정말 다양한 특성들이 나오게 됩니다.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순식간에 체념하며, 누군가는 앞으로를 방탕하게 살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생에 대한 새로운 각오를 불태우게 됩니다. 당장에 많은 사람들이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항암 치료를 받기도 하고, 수술을 하기도 하니까요. 이 책의 경우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말 그대로 자신이 삶을 연장하기 위해서 당시에 해야 했던 여러 일들을 독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겁니다.
보통 이런 이야기에서 한 가지 빠지기 쉬운 함정이 하나 있게 마련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암을 벗어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생존자요 투쟁에서 승리한 사람이라는 이야기죠. 보통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했고, 어떻게 해서 살아남았는지에 관하여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좋은 이야기를 하고, 또 실제 암 환자들에게 도움 되는 이야기를 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정말 건간에 대한 여러 좋은 관점들을 얻어가기도 하죠. 이게 나쁘다는게 아니라, 인간 승리에만 조첨을 맞추는 것 외의 일이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바로 그런 이야기 입니다. 자신이 어떻게 상황을 겪어내야 했고, 그 상황들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 속에서 벌어진 일들은 수많은 의학적 지식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인간이 살아가면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일들 입니다. 암에 걸렸기에 더 특별한 일들이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우 뻔한 일들 역시 암 환자에게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책의 강점은 이에 관해서 매우 담담하게 서술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일들에 관해서 관해서, 목숨이 달리게 되면 관점이 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에 관한 지식을 얻는 것은 실제로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알아내게 되곤 합니다. 그리고 이에 관해서 얼마나 잘 설명하는가가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그냥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일종의 간접적인 체험을 들려주며, 자신이 무심하게 대충 살아가는 삶에 관해서 좀 더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음을 상기시키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감정이 지나치게 고조되는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강점인 이유가 하나 있는데, 사람들의 이해를 바라면서도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여지를 만드렁주고 있다는 점 덕분입니다. 사람들은 저자가 전달하는 여러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속에서 다양한 지점들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벌어진 여러 일들에 관해서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 동시에 삶에 대한 또 다른 기준과 특성에 대한 다양성에 관하여 일종의 탐구를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극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이야기를 직접 진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 특히나 이를 글로 쓸 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감정적인 동조에 관해서 그냥 극단적인 글쓰기를 하는 것은 그나마 좀 더 쉬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감정적으로 강렬한 지점들을 찻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데에 익숙해지니 말입니다. 단어로 이를 다시 재배열해서 읽게 만드는 것이 어려운 것이죠. 하지만 이렇게 만든 글은 감정적인 동조로 사람들을 끌고 가기만 할 뿐, 생각의 저변을 넓혀주는 일을 하지는 못합니다.
이런 지점에 관해서 이 책에서 다루는 방식은 상당히 어려운 면들을 몇 가지 가져가고 있습니다. 일상을, 다른 상황에서 겪어내면서 보여주는 여러 지점들을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생각의 갭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한 겁니다. 그리고 이에 관해서 좀 더 다른 일을 시도 해보고자 하는 지점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지점에서도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글들을 보여주는 데에 성공을 거뒀습니다. 말 그대로 정말 한 사람의 삶으로서, 그리고 연장 된 삶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강조하는 데에 성공을 거둔 겁니다.
지금 현재 삶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책은 꽤 되는 편입니다. 사람들에게 지금 어떻게 충실하게 살아야 나중에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는지에 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책이 가져가는 이야기는 그런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 목숨이 위험했던 사람이 그 상황에서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고, 새롭게 얻은 삶은 또 어떻게 이어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이죠. 이에 관해서 대단히 충실하게 이야기 하는 매력을 보여주는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읽고 있으면 시간도 잘 가기도 하고 말입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