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직후의 프랑스 지식인들의 일상으로의 회귀, 달라진 세상에 대한 깊은 고민을 서로의 관계 속에서 소통하며 어떤 것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내고자 하는 과정을 이야기 하는 책.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인가 유시민씨가 다시 읽고 싶은 책으로 꼽았던 책이다. 그 마음을 다는 알수 없겠지만 웬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일상을 보내며 지금이 전쟁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곤 한다. 레 망다랭은 나와 다른 시대, 다른나라, 다른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관계, 감정, 개개인의 삶의 방향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소설의 형식으로 쓰여졌지만 읽는 내내 실재하는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내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하는, 앞으로 다가올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갔고, 독일군은 패주했다.
무언가가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1908년 1월 9일 ~ 1986년 4월 14일)
보부아르는 1908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공식 지정 지정된 해에 태어났다.
여성해방운동을 해야할 운명이었을까?
시몬 드 보부아르는 그냥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계약결혼을 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둘은 대학교 입학때 사르트로가 수석으로, 보부아르가 차석으로 입학하게 된다.
보부아르도 사르트르 못지않게 뛰어난 사상가였고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에 파리를 배경으로 그때 당시에 함께 활동했던 지식인들의 생각과 행동들이
소설 <레 망다랭>에 생생하게 버무려져 있어서 출간 당시에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작품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났다.
파리를 점령하고 있던 공동의 적인 독일군이 사라진 후 격변의 시기에 지식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
종전 후 크리스마스 파티가 폴의 집에서 열린다.
모두들 들뜬 마음으로 전쟁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얘기한다.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일 뿐이고 축제의 밤이 끝나고 난 후 살아남은 자들은 계속 살아나가야 한다.
산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안은 사랑과 권태 사이를 오가고 있다. 사랑을 배제한 삶을 얘기할 순 없으리라!
전쟁 중에는 공동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연대하기가 쉬웠으나
종전 후에는 각자의 이념과 사상을 찾게 되고 서로 다른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다.
생존을 선택한 자들을 욕할 수 있을까?
이상적인 공산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좌파주의자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현재도 큰 사건이 터지고 나면 살아남은 자들의 죄책감은 항상 남아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어도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지고 가야할 평생의 짐이리라.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그래, 이게 바로 프랑스문학이구나. '그래, 바로 이맛이야!'
전쟁을 사진으로만 보았던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이 소설을 강력히 추천한다.
종전 후 살아남은 자들이 겪었을 그 혼란과 갈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족 : 나딘을 보면 수전 손택이 생각난다.
시몬 드 보부아르. '제 2의 성'으로 현대 페미니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자 장 폴 사르트르와 파격적인 계약 결혼으로 알려진 인물.
사상가이자 당대를 뒤흔든 셀럽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던 그녀는 많은 소설을 남겼다고 한다.
이번에 읽게 된 <레 망다랭>은 프랑스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소설의 제목인 <레 망다랭>은 중국의 관료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특권층 지식인들을 폄하하여 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1944년부터 전후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책에서 그녀는 특권 의식에 사로잡혀있지만 자신의 신념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세상에 대해 분노를 쏟아내지만 여러 이해관계로 침묵하는 지식인들의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유명한 소설가이자 좌파 신문 '레스푸아'의 편집장 앙리와 영향력 있는 좌파 사회단체 S.R.P의 지도자 뒤브뢰유의 아내 안의 시점이 교차하며 전개된다. 읽는 내내 앙리는 젊은 시절 사르트르일까, 안은 늙어버린 시몬 드 보부아르일까 상상했는데 작품 해설을 보니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앙리를 알베르 카뮈로, 뒤브뢰유를 사르트르로, 그리고 안은 역시나 보부아르 자신으로 보았던 것 같다.
앙리의 관점에서는 좌파 신문 '레스푸아'가 그가 존경하는 지식인 뒤브뢰유의 권유로 S.R.P의 정론지가 되고 정치에 점차 발을 들여놓으면서 문학과 정치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항상 약자의 편에서 정의와 옳음을 추구하는 그의 신념과 달리 그는 스스로 혐오하는 여러 사건- 독일군에 부역했던 자를 돕거나 살인을 서슴치 않는 과거 레지스탕스 동료의 범죄를 눈감아주는 등-에 휘말리게 된다.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노동자의 세상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수립한 소련을 이상적인 사회로 보고 있던 당대 좌파 지식인들은 스탈린 체제 하에 벌어진 강제 노역과 학살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외면하려 하기도 한다.
뒤브뢰유의 반대에도 앙리는 결국 소련에서 자행되는 만행을 폭로하지만 공산주의자들로부터는 반공주의자로, 좌파 지식인들에게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버린다. 정치에 개입하며 더 이상 눈에 보이는 빈곤과 부조리함을 담지 않는 문학에 대해 의미를 상실해가던 그는 결국 '레스푸아' 편집장으로의 직책도 내려놓고 파리를 벗어나 오로지 자신의 시간과 소설을 집필하는 삶을 계획한다.
작가의 자전적 캐릭터인 안 역시 남편인 뒤브뢰유의 그늘 아래 살아간다. 그녀의 과거는 뒤브뢰유의 과거이고, 그녀의 미래 역시 뒤브뢰유의 미래와 함께 한다. 뒤브뢰유는 글과 종이만 있으면 어떤 여자든 상관없지만 안에게 뒤브뢰유는 절대적이다.
자신의 늙음을 괴로워하며 아내와 엄마, 그리고 정신과 의사로서의 자신의 정체성 외에는 자아 정체성을 잃어가던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떠난 미국 여행에서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 주는 남자 루이스를 만난다. 그는 그녀 자체를 온전히 사랑해주는 남자로, 안은 잃어버린 젊음을 되찾고 사랑받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런 꿈 같은 순간도 잠시, 사랑의 짧은 희열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퇴색해간다. 안 스스로가 사랑의 열정과 자신의 안정된 생활 사이에서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했기에, 루이스는 그녀를 단념해간다. 결국 루이스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안은 절망하지만, 그녀는 결코 삶을 포기하진 않는다.
게다가 앙리의 주변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 앙리의 전 연인이자 그에 대한 집착으로 결국 미쳐버린 폴, 그를 자신의 성공에 이용했던 여배우 조세트, 아버지를 닮은 그를 존경하지만 죽은 옛 연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딘은 모두 앙리에게 의존하는 모습이다.
특히 폴은 정신과 치료를 통해 회복하며 앙리와의 과거를 '명성에 그늘에서 사는 것보다 더 해로운 건 없으니까'(2권 p419)로 회고하지만 끝내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상적인 여자의 역할을 연기할 뿐이다.
페미니스트 작가의 소설이라 꽤나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를 기대했는데, 자신과 함께하는 연인들의 명성에 가려진 여성 캐릭터라니.
작품 해설을 보니 당시에도 여주인공들의 묘사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었다는데, 오히려 보부아르는 이런 프랑스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제시하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지금도 많이 나아졌다지만 누군가의 아내라는 타이틀로 불리며 기대되어지는 역할을 강요받는 여성들이 숱하게 있지 않나.
소설을 읽는 내내 담배 연기가 희뿜한 바에서 당대 지식인들이 열띠게 토론을 벌이는 현장에 온 느낌이 들었다. 당대 프랑스의 분위기를 잘 알지 못해 그들의 대화를 겉핥기 수준으로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은 너무 아쉬웠다.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 시몬 드 보부아르에 대한 배경 지식이 좀 더 있었으면 훨씬 흥미로운 독서가 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그들이 던지는 묵직한 질문, '문학의 역할', '지식인의 역할', '이상의 순수성과 현실의 괴리' 등은 곱씹어 생각할만한 주제였다.
게다가 안이 루이스와 사랑에 빠졌을 때 심리 묘사는 더 없이 현실적이고 섬세해서 연애할 때 가지는 불안과 두려움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었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이 넘쳐나는, 그래서 언젠가 다시금 읽고 싶은 책이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출판사 지원으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전쟁이 종식되어감을 느끼는 프랑스 파리의 앙리 페롤에게 이 밤은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1,000대의 비행기가 룬트슈테트의 후방을 공격함으로써 벌어진 독일군의 패주, 그리고 이제는 떠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과 폴을 향한 예고이자 의지. 총살당할 위기에까지 처했었던 앙리에게 전쟁의 종식은 진짜 글을 쓰고,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기회였다. 고행의 4년, 타인들만을 돌보았던 4년에서 벗어나 포르투갈 여행이라는 새로운 문을 통해 전쟁 후의 세상을 그리는 그 옆에 연인 폴의 자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폴을 향한 감정은 애정에서 동지애, 연민 같은 것으롤 바뀌었지만 폴의 앙리에 대한 집착과 열정은 여전히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온전한 자신을 찾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강력히 요구하는 앙리와, 그런 그에게 서운함을 느끼면서도 앙리를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몸부림치는 폴. 제발 그 관계를 놓아버려, 너야말로 네 자신을 찾아-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나의 목소리는 폴에게 가닿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은, 그러나 변화하는 사회의 물결과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마냥 자신만을 앞세울 수는 없다.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레스푸아>를 발행하는 앙리도 마찬가지. 폴과의 인연을 정리하고 제대로 자신만의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시대는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그 어떤 정치적 성향도 따르지 않고 중도를 지향하는 앙리에게 요구되는 선택. 누군가는 미국을 옹호하고, 또 누군가는 소련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앙리는 자본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하지 못한 채, 절친한 관계인 뒤브레유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좌파이나 같은 좌파인 공산주의를 완벽히 따르지는 않는 S.R.L을 옹호하기로 결정한다.
뒤브레유의 아내이자 정신과 의사인 안은,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되돌아본다. '늘 다른 사람을 돌보기만 했던' 그녀. 잠시 일탈을 감행해보기도 하지만 결국 정해진 그녀의 자리로 되돌아온다. 늘 글을 써왔고 이제는 정치를 시작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해야했고, 유대인이었던 연인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공격하는 딸 나딘을 주시해야 했다. 뼈아픈 과거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모든 것이 전쟁 전과 똑같아질 거라고 생각한 순진한 믿음을 자책하며 이 시간에 자신의 자리는 무엇이고 나는 누구인지를 깊게 탐색해가는 여성, 안.
[레 망다랭] 1권에서는 전후 프랑스의 혼란스러운 양상과 함께 그 시대를 살아온 지식인들의 모습, 여러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그린다. 자신만의 글쓰기와 이념 앞에서 흔들리는 앙리, 그런 앙리만을 바라본 세월을 포기하지 못한 채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그를 어떻게든 붙잡으려는 폴, 뒤브레유와 안, <레스푸아>와 연관된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정치는 무엇이고 개인의 행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시한다. 전쟁 후의 새로운 세상, 무엇이든 가능할 거라 여겼던 사람들을 보기좋게 배신하며 이제는 '진정한' 삶의 문제에 봉착한 사람들.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2권에서도 계속된다.
소설의 제목은 레 망다랭은 원래 중국의 관료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특권층 지식인들을 펌하하여 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 시절을 살고 있는 많은 지식인들, 시대를 바로 알고 깨어 있는 지식인들과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무지하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파리의 지식인들이 주 등장인물로 나오는데 이 작품이 출간되고 난 후 프랑스 독자들은 당시 연예인과도 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던 철학가 작가들의 모습을 소설에서 발견하고 나오는 주인공들과 그 시대의 작가와 철학가들을 연결짓곤 했다는데 작가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은 뒤브뢰유의 아내인 안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 말고는 다른 현실적인 인물을 모델로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독자들은 주인공 앙리의 모습에서 알베르 카뮈를, 로베르 뒤브뢰유의 모습에서 장 폴 사르트르, 안의 미국 연인인 루이스에게서 보부아르의 연인이었던 미국작가 넬슨 올그린을 발견한다고 하니 (옮긴이의 글중에서) 그 시절의 그들과 많은 닮은 점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한듯하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너무 읽고 싶었으나 장장 2권의 분량에다 1권 634페이지,2권은 600 페이지에 달하는 총 1234페이지라는 페이지에 압도당해서 많이 망설였던 게 사실이다. 두 권을 읽는데 문장의 밀도감이 상당히 높고 등장인물들의 갈등의 짜임새 또한 얼기설기 벌집처럼 세밀하게 구성되어 있음에도 갈등의 구조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어서 어느 시점이 지나고 나면 시간 가는줄 모르게 읽게 되는 면이 있다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안의 부분에서 한없이 몰입이 되었다가 3인칭 시점으로 앙리와 주변인물들 그외 정세를 객관적인 시야로 바라보는 부분에서는 조금 더 감정의 이입이 적은 한발 뺀 자의 시선으로 느낄 수 있어 강약의 조절이 되었던 것 같다. 그들이 고민하는 시대적 흐름이 우리나라의 70~80년대의 정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아 그 시절이 오버랩 되는 묘한 기시감으로 바짝 긴장하며 읽게 되는데 절판된 이 책이 왜 다시 읽고 싶어 하는 책으로 선정되어 다시 출판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읽는 동안 아쉬웠던 점이라면 소설 속에 비쳐지는 여성들의 모습이었는데 나치의 만행과 소련의 강제수용소에 광분하는 남자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자 고군분투하는 건 모두 남자요, 여자들은 그저 사랑에 목메고 자신들이 지어 놓은 공간속에 갇혀 그저 남자 때문에 울고 미쳐가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모습들이 아쉬움으로 남았는데 이 소설이 쓰여진 시기가 1954년도이고 그 시절 프랑스에는 여성들의 선거권이 1944년도에 주어져 그 만큼 여성들의 사회적이 지위가 낮았음을 소설을 통해서 다시 한번 알게 되고 고작 현재라고 하는 지금은 그 시대로부터 100년도 지나지 않았음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읽는 동안 다른 책 대비 유난히 포스트 잇을 많이 붙이며 읽었던 책이었다 .남기고픈 문장이 너무 많고 특히 안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에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여기저기 많다. 최근들어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책을 많이 읽은듯 한데 먼 듯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시대라는걸 알고 혼자 놀래기도 하며 한 시대에 푹 빠져있다 나온 기분이 든다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이며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날. 독일군이 프랑스에서 퇴각하는 그날 앙리와 폴의 집에서는 축하 파티가 열린다. 다시는 없을 것 같았던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린 것이었다. 파티에 참석한 앙리와 폴의 친구들은 이제 전쟁 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가득 차서 서로의 계획과 느낌을 이야기한다. 앙리는 연인 폴을 떠나 포루투칼로 혼자만의 여행을 가려고 하고, 폴은 앙리와의 식어버린 정열을 그리워한다. 뒤브뢰유는 전후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좌파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고, 안은 뒤브뢰유를 존경했던 시절이 끝나고 홀로 남은 두려움을 느끼며, 뒤브뢰유와 안의 딸 나딘은 죽은 옛 연인으로 인해 방황하며 어디론가 떠나고자 한다.
전쟁 중에는 모든 이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뭉쳐있었다. 이념과 사상, 지위와 돈을 떠나 전쟁이 끝나기만을 원했었다. 그들의 적은 나치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시점에 이들은 서로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다. 소련으로 대표되는 마르크시즘의 공정한 분배라는 이상적인 공산주의 이념에 빠진 사람들. 독일 나치에 도움을 주었던 이들을 밝혀내서 합당한 벌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 부르주아적 사고로 미국의 자유주의를 희망하는 사람들. 이도저도 아닌 중립적인 입장의 사람들. 이러한 시기에 앙리는 중립적인 노선을 가진 뒤브뢰유의 S.R.L.과 협력하며 신문사 <레스푸아>를 운영하며 자유로운 생각을 대변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돈과 이념에 의해 점점 침범당하려고 한다. 아니, 앙리와 뒤브뢰유가 변하는 것일 수도...
혼란의 시기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이제 시작이지 않을까? 2권에서 어떻게 진행되어 이들은 어떤 현실 속에서 살아가게 될까? 꼭 우리네 해방이후 모습과도 비슷해보였다. 이상적인 공산주의와 자유경제 민주주의... 소련과 미국으로 대변되는 세력들의 충돌! 그 결과,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버리는 슬픈 역사가 만들어졌지만, 프랑스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도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니... 참으로 인류의 역사는 비슷하게 돌아가는게 정확한 듯 하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공격 중단, 독일군의 패주, 나는 떠날 수 있을 거야."(p7)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의 크리스마스 밤. 검은 수정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앙리는 1,000대의 비행기들이 룬트슈테트(실존인물, 유명 독일장교)의 후방을 공격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독일군이 프랑스에서 물러가며 독일의 패배로써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가 되돌아올 날이 머지 않았다는 기대감이 성탄절의 밤을 충만하게 만들어요. 가난하고 빈약해진 파리의 골목마다 축제가, 오락과 쾌락이, 여행과 행복, 무엇보다 자유가 새로이 시작되겠지요? 하마터면 독일군의 총부리 앞에 허망하게 사망할 뻔했던 앙리가 피치 못하게 동거 중인 오래된 연인 폴과 헤어질 날도 머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핑계로 독립을 하고 떨어져있는 나날이 익숙해지면 틀림없이 폴도 마음을 접겠지요. 이별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는 깨질 것 같은 보물을 대하듯 조심스러운 폴의 태도도, 한순간도 빠짐없이 쫓아오는 폴의 눈빛도, 열정을 강요받는 밤 시체 같이 느껴지는 육신의 고욕도 견뎌낼 수 밖에요. 어쨌든 오늘만큼은 모든 것을 다 잊고 파티를 즐겨볼 생각입니다.
"나눌 수 없는 불행에 대해서 우리는 죄책감을 느끼기 마련이에요. 죄의식, 그건 정말 가증스러운 기분이죠."(p140) 앙리가 운영 중인 좌파 신문사 레스푸아의 젊은 직원들이 집으로 몰려옵니다. 앙리의 사상적 스승이자 좌파단체의 지도자이며 존경 받는 지식인인 뒤브레우와 정신과 의사인 그의 아내 안, 매일밤 미군들 사이로 잠자리를 옮겨다니며 과격한 삶을 나고 있는 그들의 딸 나딘도 참여했어요. 미소가 넘치고 모두가 조금씩은 젊어진 듯한 기분에 웃고 떠들고 춤추고 감격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어요. 싹트는 희망은 동일하지만 이곳에 모인 젊고 나이든 지식인들이 꿈꾸는 세상의 모습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요. 아직 종전 선언이 되지도 않았건만 누군가는 3차 대전을 예언하며 미국을 옹호합니다. 또 누군가는 계급없는 사회를 지지하며 소련이 지상낙원은 만들지 못할지라도 사회의 가장 올바른 체제를 이룩할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누군가는 떠나간 사람들을 그립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잔인한 방식으로 너무나 매몰차게 지상에서 사라져버렸으니까요. 타버린 대지와 시체 무더기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맹세하며 복수를 다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살아야 하니까, 지금이 행복해서, 죽은 이를 애써 잊으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른 곳,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들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말"(p11)전쟁이 끝나는대로 파리를 떠나 세상을 유랑하며 글을 쓰겠다 다짐했던 앙리의 꿈은 좌초됩니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좌우파의 독자 모두를 끌어들이고 있는 레스푸아는 양 진영의 훌륭한 먹잇감이니까요.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를 정치에 몸담게 하려는 뒤브레우의 각오 또한 만만치 않아 그에게 진실한 우정을 느끼는 앙리로써는 기대를 배신하기가 힘이 듭니다. 사랑따윈 한톨도 남지 않았건만 바람까지 용서하며 몸과 마음을 다바치려 하는 폴의 집착 또한 좀체 수그러들지 않구요. 와중에 조카 같은 나딘과 잠자리까지 하게 되며 앙리는 머리가 지끈지끈합니다. 전쟁만 끝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줄만 알았건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무엇일 수는 없는가 봐요. 한편 뒤브레우와 아내 안 또한 복잡다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첫사랑을 죽음에 빼앗기고 실의에 빠진 딸 나딘과의 갈등, 전쟁의 기억으로 고통받는 환자들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함, 문학의 길에서 벗어나는 남편에 대한 걱정, 헛된 고민으로 늙어갈 날만 남은 오늘에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째서 살아야만 하는지 안은 도통 알 수가 없어요.
"어떤 의미에서 문학은 삶보다 더 진실해."(p553) 성탄절의 밤으로부터 하루하루 멀어져 가며 맞부딪히는 해방 이후의 현실들은 일제로부터 독립했던 우리나 독일로부터 벗어난 파리의 그들이나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만리 타국의 역사가 도무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아서 이 책이 더욱 술술 읽혔는지도 모르겠어요. 각자의 삶을 진정으로 의미있게 살아가게 만드는 계기라 되리라 믿은 전쟁의 끝은 오직 독일뿐이었던 적을 더 많은 정치진영, 무수한 이념들로 잘게 쪼개놓습니다. 레지스탕스 운동을 함께 했던 동료가 서로를 향해 삿대질 하며 기사를 쏟아내는 모습이란. 현실과 비교하면 좋고 싫음도 생과 사도 희망과 좌절까지도 명확하고 단순한 문학이 차라리 진실해 보일 정도입니다. 앙리와 안의 시선을 오고가며 해방 후 파리를 해체하고 분석하고 묘사하며 독자를 이끄는 시몬 드 보부아르, 2권의 서평으로 남은 내용들을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레 망다랭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이송이 (옮김) | 현암사 (펴냄)
1954년에 발표되었다는 <레 망다랭>.2차 세계대전 종식 후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은 러시아라고 불리는 옛 소련의 공산주의와 미국의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이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레 망다랭> 은 자신의 신념인 신문사 '레스푸아'를 지키며 고독과 자유를 즐기고 싶어하는 앙리의 시점과 신념에 가득차 정치적 행보를 하려는 뒤브뢰유의 아내이자 정신과 의사인 안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읽기 전에 두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서술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오래전 읽었던 '냉정과 열정사이'가 떠올랐다.
같은 문제와 같은 사건들을 두고 바라보는 견해는 처해진 입장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초반부를 읽어 가면서는 이상의 '날개'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났다. 날개에 나오는 박제 되어버린 천재만큼은 아닐지라도 앙리의 현실은 그닥 자유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자유와 고독은 연인 폴에 의해 제한되고 신념은 뒤브뢰유와의 견해차이와 신문의 구독자를 신경쓰느라 자유롭지 못하다. 한 때 레지스탕스 운동을 할 정도의 신념에 찬 좌파이기도 했으나 여러 분파로 갈리며 서로를 적대시하는 공산주의에 회의가 일기도 한다. 같은 편에 서지 않으면 무조건 적이 되는 무서운 현실이다.
안의 딸 나딘은 스무살도 되지 않았지만 사춘기 시절에 겪은 연인 디에고의 죽음으로 삶에 애착을 보이지 않는다.
남자들과의 잠자리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듯 하다.이런 삶이 절망 때문인지 쾌락 때문인지는 그녀 자신도 모르는 듯 하다. 리스본에서 마주하게 된 아름다운 야경의 불빛들이 사실은 빈곤을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힘들어한다. 전쟁 후 어려움을 겪는 프랑스를 벗어나서도 보게 된 가난은 나딘을 견딜 수 없이 힘들게 한다.
195. 그래도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있는 나라가 분명 한 곳은 있을 거에요.
앙리의 연인인 폴은 얼핏 보면 사랑밖에 모르는 집착녀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뒤에 숨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앙리를 위해서 모든것을 포기하고 희생했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를 위해 포기하지 않은 삶을 살았더라도 꿈꾸던 성공가도의 삶을 살 수 없었으리란 것을 느끼고 '앙리 때문에'라는 허울 좋은 핑계가 필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녀 자신조차도 그런 사실을 깨닫고 있진 못하지만...
앙리는 글쓰기를, 폴은 앙리를, 뒤브뢰유는 정치를, 나딘은 남자를 통해 삶을 증명하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안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상담해 주는 그녀 자신은 정작 붙잡을 것이 없어 보인다. 신의 부재를 확신했던 스무살엔 도덕도 그녀에겐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세상의 전부로 받아들인 로베르는 이제 그때의 로베르가 아니다.
335. 살아남는다는 것, 자기 인생의 반대편에서 산다는 것. 어쨌든 아주 편안한 일이다. 무엇도 기대하지 않고,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니까.
소련에서 도주해 온 스크리아신의 냉소적인 자세나 마약에 기대어 살아가는 세즈나크, 독일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테러하는 것에서 삶의 보람과 정당성을 찾는 뱅상, 어머니가 정해준 대로 인생을 사는 조제트. 모두가 살기 위한 이유를 찾는 발버둥 중인지도 모른다.
전쟁 후의 혼란한 정세에 지식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인다.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서로를 비방하고 적대시 한다. 통합과 화합 대신 비방과 편가르기가 판치고 속한 분파의 비리는 대의를 위해 눈감는 '소'일 뿐이다. 옷을 갈아 입듯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는 게 현실이라는 씁쓸한 정당함과 불가피함을 내세워 본다.
낯설지 않다. 한반도가 둘로 나뉠때의 모습처럼.
2권에서는 달라진 등장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
※출판사의 지원을 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