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직후의 프랑스 지식인들의 일상으로의 회귀, 달라진 세상에 대한 깊은 고민을 서로의 관계 속에서 소통하며 어떤 것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내고자 하는 과정을 이야기 하는 책.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인가 유시민씨가 다시 읽고 싶은 책으로 꼽았던 책이다. 그 마음을 다는 알수 없겠지만 웬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일상을 보내며 지금이 전쟁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곤 한다. 레 망다랭은 나와 다른 시대, 다른나라, 다른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관계, 감정, 개개인의 삶의 방향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소설의 형식으로 쓰여졌지만 읽는 내내 실재하는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내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하는, 앞으로 다가올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귀한 시간이었다.
나는 죽음이라는 관념과 노닥거리고 있었다.
오직 그 관념으로 인해 세상에 속해 있었다.
이제는 다르다.
나는 더 이상 죽음이라는 관념과 노닥거리지 않는다.
죽음은 이미 여기에 있다.
푸른 하늘을 감추고, 과거를 삼키고, 미래를 먹어치운다.
대지는 얼어붙고, 허무가 대지를 다시 사로잡는다.
나쁜 꿈이 아직 영원 저 끝에서 떠돌고 있다. 내가 터뜨릴 거품이
[레망다랭 2] by 시몬 드 보부아르
무엇보다 안'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 뿐입니다.
문학은 삶보다 더 진실하다는 말이 이렇게 와닿았던 적은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다. 앙리가 랑베르에게 자신의 일을 소설에 써보라고 했던 말처럼 보부아르는 자신과 주변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이 책에 담지 않았나 싶다. 읽어가는 동안 그의 연인인 사르트르가 생각났고, 한때는 사이가 좋았지만 결별한 알베르 카뮈가 생각났다. 전쟁이 끝나가는 상황에서 많은 이념과 주의들의 대립들로 인해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것처럼 지식인들의 말과 글들은 정당성을 강조하지만, 때로는 변절을 하게 만드는 시대였다.그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그들은 무엇을 선택해야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해서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과 맹목적인 믿음과 신념들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지식인들뿐만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몫이었을 것이다.가끔 그런 시대에 내가 살았더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면 과연 내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당연히 그랬어야지라는 말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어쩌면 내가 현실 속에서 하는 말들은 문학보다 더 거짓이 많음을 느낀다.
"그들을 잊도록 하자. 우리끼리 남아 있자. 우리 인생만으로 할 일이 이미 충분히 많아. 죽은 자들은 죽은 자들이야. 그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잖아. 그러나 축제의 밤이 끝난 뒤, 살아 있는 우리는 다시 깨어날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리딩 투데이를 통한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일적인 문제로 미국으로 향한 안. 그 곳에서 그녀는 루이스 브로건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와의 헤어짐이 가슴 아플 정도로 자신의 모든 열정을 루이스에게 바치는 안의 모습은 전혀 예상 밖이라 더 진심으로 다가왔다고 할까. 프랑스의 뒤브레유 옆에서는 절제되고 정숙한 이미지로 그를 내조하는 이미지였던 그녀가, 루이스 앞에서는 그저 한 명의 여성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 누구도 진정한 자신을 알지는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헤어지면서도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프랑스에 돌아와서도 편지를 주고받던 그들이지만, 거듭되는 밀회와 시간의 흐름은 그들의 사랑도 퇴색시켜버린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루이스 앞에서 절망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안의 모습에서 냉철한 정신과 의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한때 잘못된 선택의 문턱에 서 있기까지 했으나 다시 새로운 희망을 기약하는 그녀의 모습은 어쩐지 1권에서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앙리는 결국 정치적 기로에서 자신만의 선택을 하게 되고, 그 선택으로 인해 혼란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서게 된다. 그 와중에 앙리의 사랑을 잃지 않기 위해 점점 자신을 놓아가는 폴, 뒤브레유의 딸인 나딘과의 관계, 배우인 조제트와의 불같은 열정 등 개인사도 복잡하기 그지없어지며 자신의 정체성과 글쓰기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자신의 이념을 내세우며 앙리에게 선택을 강요하거나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 자신만의 방법으로 전후 상황을 뛰어넘으려는 사람들, 한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탁한 정치적 물결 속에서 방황하는 다양한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상을 둘러싼 진실한 삶의 문제를 묻는 작가의 날카로운 필력이 돋보인다.
[레 망다랭]은 원래 중국의 관료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특권층 지식인들을 폄하하여 칭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평화를 위하여 계급 없는 세상을 꿈꾸는 주인공들이 대의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고,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히는 모습도 보여준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서보는 남자들과 이 남자들 때문에 울고 미쳐가는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평등한 유토피아를 꿈꾸고 나치의 만행과 소련의 강제수용소에 분노하는 남자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자들을 하위계급으로 분류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자신만의 뛰어난 능력이 존재하는데도 앙리를 위해 10년이라는 세월을 그저 흘려보내기만 하고 오로지 사랑에 목매는 모습을 보이는 폴과, 한 개인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과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안이 프랑스에서도 그리고 미국의 루이스 앞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인상이 강하다. 프랑스에서는 뒤브레유에게 가려져서, 미국에서는 루이스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만으로 자신을 놓아버리는 모습을 통해, 마치 내가 안이 되어버린 듯 자존심이 무너져내린다.
때문에 도발적이고 매사 부정적이며 폭력적으로까지 보이는 나딘의 매력이 돋보였다. 너무나 어렸을 때 유대인인 연인을 잃고 염세적으로 변해버린 나딘은 폴이나 안과는 뚜렷이 다른 인물이다.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으려고 하며, 심지어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앙리마저 뻥! 차버릴 수 있는 통쾌한 면모를 지녔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폴을 한심해하고, 또다른 연인을 구하기 위해 위증까지 감행하는 앙리가, 연애에서만큼은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지켜보는 독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전후의 혼란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방황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올바른 길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껴안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들을 지켜보며 실존주의 작품이란 이런 것인가, 그 맛을 느껴보았다. 철학과 사상의 사유의 시간에 빠져들었던 시간. 명료하고 간결한 문체가 작품 이해를 한결 도왔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이 작품을 계기로 2021년에는 보부아르의 다른 작품들도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소설의 제목은 레 망다랭은 원래 중국의 관료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특권층 지식인들을 펌하하여 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 시절을 살고 있는 많은 지식인들, 시대를 바로 알고 깨어 있는 지식인들과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무지하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사는 지식인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후 파리의 지식인들이 주 등장인물로 나오는데 이 작품이 출간되고 난 후 프랑스 독자들은 당시 연예인과도 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던 철학가 작가들의 모습을 소설에서 발견하고 나오는 주인공들과 그 시대의 작가와 철학가들을 연결짓곤 했다는데 작가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은 뒤브뢰유의 아내인 안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 말고는 다른 현실적인 인물을 모델로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도 그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독자들은 주인공 앙리의 모습에서 알베르 카뮈를, 로베르 뒤브뢰유의 모습에서 장 폴 사르트르, 안의 미국 연인인 루이스에게서 보부아르의 연인이었던 미국작가 넬슨 올그린을 발견한다고 하니 (옮긴이의 글중에서) 그 시절의 그들과 많은 닮은 점을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한듯하다.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너무 읽고 싶었으나 장장 2권의 분량에다 1권 634페이지,2권은 600 페이지에 달하는 총 1234페이지라는 페이지에 압도당해서 많이 망설였던 게 사실이다. 두 권을 읽는데 문장의 밀도감이 상당히 높고 등장인물들의 갈등의 짜임새 또한 얼기설기 벌집처럼 세밀하게 구성되어 있음에도 갈등의 구조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어서 어느 시점이 지나고 나면 시간 가는줄 모르게 읽게 되는 면이 있다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안의 부분에서 한없이 몰입이 되었다가 3인칭 시점으로 앙리와 주변인물들 그외 정세를 객관적인 시야로 바라보는 부분에서는 조금 더 감정의 이입이 적은 한발 뺀 자의 시선으로 느낄 수 있어 강약의 조절이 되었던 것 같다. 그들이 고민하는 시대적 흐름이 우리나라의 70~80년대의 정치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아 그 시절이 오버랩 되는 묘한 기시감으로 바짝 긴장하며 읽게 되는데 절판된 이 책이 왜 다시 읽고 싶어 하는 책으로 선정되어 다시 출판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읽는 동안 아쉬웠던 점이라면 소설 속에 비쳐지는 여성들의 모습이었는데 나치의 만행과 소련의 강제수용소에 광분하는 남자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자 고군분투하는 건 모두 남자요, 여자들은 그저 사랑에 목메고 자신들이 지어 놓은 공간속에 갇혀 그저 남자 때문에 울고 미쳐가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모습들이 아쉬움으로 남았는데 이 소설이 쓰여진 시기가 1954년도이고 그 시절 프랑스에는 여성들의 선거권이 1944년도에 주어져 그 만큼 여성들의 사회적이 지위가 낮았음을 소설을 통해서 다시 한번 알게 되고 고작 현재라고 하는 지금은 그 시대로부터 100년도 지나지 않았음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읽는 동안 다른 책 대비 유난히 포스트 잇을 많이 붙이며 읽었던 책이었다 .남기고픈 문장이 너무 많고 특히 안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에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 여기저기 많다. 최근들어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책을 많이 읽은듯 한데 먼 듯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시대라는걸 알고 혼자 놀래기도 하며 한 시대에 푹 빠져있다 나온 기분이 든다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이며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앙리'와 '안'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면서 서술되는 구조의 소설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독일군이 파리에서 퇴각한 그날에 열린 파티를 시작으로 그들의 삶이 어떻게 변해갔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좌파성향의 신문인 <레스푸아>의 편집자 앙리로 대변되는 프랑스 남자 지식인. <S.R.L.>이라는 좌파 사회단체를 이끄는 지식인 뒤브뢰유의 아내이자 정신과 의사인 안으로 대변되는 프랑스 여자 지식인. 미국과 소련,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냉전체제 속에서 그들의 이념과 정치 이야기였고, 지식인들의 명예와 신념에 대한 이야기이였으며, 혼란의 시기에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게 어떤 고민이나 어려움을 들었을 때 흔히들 하는 답변이 있다. "다 이해한다고.. 나도 니 맘 다 안다고.." 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렇다고 생각할뿐이다. 인간은 자신만의 생각 안에서 살아가는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치즘에서 벗어나 프랑스의 재건을 꿈꾸던 지식인들은 목표는 하나였지만, 각자 자신만의 방향과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돌진한다. 소련과 미국으로 나뉘는 냉전 체제 아래에서 공산주의냐 민주주의냐 큰 갈래는 있었지만, 너보다는 내가 옳았기에 금새 적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두 노선의 중간 단계에서 중도의 길을 걷고자 했던 <레스푸아>와 공산당들과 협력하면서도 그들을 견제하고자 했던 <S.R.L.>은 결국에 이도저도 아닌 것이 끝나버린다.
프랑스의 지식인들은 전쟁 이후 만인의 평등을 주장하는 이상적인 공산주의를 추종하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미국은 유럽을 제압하고, 우파 세력의 확장하였고, 대독 협력자들의 복귀하고, 공산주의자들의 쇠퇴하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친숙한 레파토리가 아닌가? 바로 일제시대를 끝내고 해방이후의 대한민국 모습이 바로 이러지 않았나 싶다. 공산주의를 주장하며 만인의 평등사회를 쫓는 이들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손잡은 이들이 정권을 잡았고, 친일 세력은 조용히 다시 힘을 얻었고... 그리고는 안타깝게도 한국은 남과 북으로 이념에 따라 분단되었다. 사회단체를 이끌었던 뒤브뢰유는 "우리는 낡은 이상주의를 믿으라고 요구만 했었다. 너무 낙관적이었다. 아무것도 해야 할 일이 없었던 것이었다"라며 자신들의 행동이 무의미했음을 이야기한다. 글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후대에서 판단해 주지 않을까? 현재의 우리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개개인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지원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레 망다랭2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이송이 (옮김) | 현암사 (펴냄)
<레 망다랭1>이 제2차 세계대전 후 혼란한 정세 속에서 갈등하는 프랑스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레 망다랭2> 에서는 고뇌하고 번민하던 지식인들이 변절하거나 혹은 현실에 적응하거나 자기 파괴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그들 곁에서 관찰자나 말없는 소극적 조력자로 등장하던 안이 여성으로서의 삶과 사랑을 찾는 이야기로 펼쳐진다.
정신분석 학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안은 그곳에서 젊은 작가 루이스 브로건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토록 쉽게 사랑에 빠져든 이유는 뭘까? 영향력있는 남자 뒤브뢰유의 아내로 살아오며 많은 여자들이 그러했듯이 누구의 아내일 뿐, 안 자신으로 대해주지 않는 관계들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루이스는 안을 안 자체로 보며 그녀에게 여성으로서의 사랑받음을 일깨워 주었다. 안은 사랑받음과 동시에 살아있음을 느꼈다. 일년에 한번 만난다는 애틋함도 처음에는 한 몫 했을 것이다.
사랑이 전부라는 루이스는 그녀에게 프랑스에서의 삶을 접고 자신과 살아가기를 바라지만 안은 그럴 수 없다. 두개의 인생을 살려는 안과 기다림과 헤어짐이 싫은 루이스의 사랑의 끝은 이미 예견된 것인지 모른다.
소련의 수용소에 대한 폭로기사에 대해 같은 좌파이지만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앙리와 대의를 위해 침묵해야 한다는 뒤브뢰유는 의견이 갈리며 한동안 결별한다. 정의와 양심을 강조하던 앙리는 사랑하는 조제트를 위해 양심을 져버리고 게슈타포 끄나풀인 남자의 무죄 방면을 위해 위증하는 위선을 보인다. 자신에게 헌신적인 사랑(건강한 사랑은 아니었지만)을 보이던 폴에게는 보여주지 않은 너그러움을 조제트와 나딘에게는 보인다. 이 남자에게는 사랑이 참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란 생각이 든다.
앙리에 대한 사랑이 집착으로 번진 폴은 그 정도를 넘어서 망상과 편집증, 피해 망상까지 이르러 정신병원에 가게 된다. 이런 폴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하고 마음아파하던 안이지만 '더 이상 사랑하진 않는다'는 루이스에게 보이는 그녀의 태도는 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앙리와의 정치적 결별이후 별다른 활동없이 은둔적인 생활을 하던 뒤브뢰유는 정치적 미련을 놓지 못한다. 조국을 위함인지 체제를 위함인지 자신의 명성을 위함인지 모호하다.
뱅상은 한 때 동료이던 세즈나크 마저도 대독 협력자라는 이유로 살해하는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다.
언론부터 장악하고 차지하려는 체제간의 완력 다툼속에 앙리는 레스푸아를 잃고, 도피하듯 이탈리아행을 결심해 보지만 남은 생애를 아무리 도피하며 살아도 결코 피난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정면으로 받아들일 삶은 주변을 실망시켜가는 모습에서 달라질 수 있을까?
폴의 자살을 막으려 빼앗았던 약병으로 생을 마감하려는 안. 잃어버린 사랑때문도 아니고 전쟁의 위협도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 의욕도 없이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이미 죽은 삶이 아니었을까? 가족을 보며 다시 살아보리라 맘을 먹어보는 안.
모든 아픔과 슬픔속에서도 결국은 가족이 힘이 되는가. 주변인이 아닌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아가길 바래본다.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출판사 현암사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한 젊은이가 참지 못하고 밤새도록 그의 책을 끝까지 읽는다는 것.
단지 이 사실만으로도, 특히 이것을 위해, 글쓰기는 가치있는 것이 아닌가."
(1권 p205)
"정말 좋은 게 뭔지 아시잖아요. 바로 선생님 책입니다. 전 녹초가 됐어요. 읽기 시작하니까 하루 밤낮을 눈도 감지 못하겠더라구요. 단숨에 읽었다니까요. 책을 끝내기 전까지 잘 수가 없었어요."(1권 p205) 레스푸아의 젊은 기자 랑베르의 칭찬에 순수하게 기뻐하는 작가 앙리의 모습을 보니 저도 같이 외치고 싶더라구요. '정말 좋은 게 뭐냐구요? 그건 시몬 드 보부아르의 레 망다랭입니다!' 하고요. 프랑스 책은 어렵고 난해하고 이해 불가능한 사유를 담고 있어 제 취향일 수가 없다고 믿어 왔는데 두 번째로 그런 편견이 깨졌어요. 첫 번째는 자기 앞의 생. 그러고 보니 두 권 다 공쿠르 상 수상작이라는 공통점이 있군요? ㅎㅎ
레 망다랭이라는 책을 처음 봤을 땐 제목의 뜻조차 몰라서 검색부터 해야 했습니다. 지식인, 인텔리라는 해석이 보이더라구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작품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고,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 지식인들의 혼란을 그리고 있다하니 평소 같았으면 절대 펼치지 않았을 책이에요. 페미니즘 작가에 무관심하기도 하고 제가 프랑스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해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결심한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책을 검색하다 눈에 띈 기사에서 세계문학전집에 꼭 들어가야 할 책 중의 하나가 "레 망다랭"이며 그 이유가 "재미있어서"라는 누군가의 답변을 봤거든요. 카뮈와 사르트르의 결별을 각색해 소설화 한 거라는 이야기도 있구요. 두 사람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실존했던 작가들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더라구요. 물론 보부아르는 이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지만요. 당시의 많은 독자들이 레 망다랭을 읽고 자연스레 카뮈와 사르트르를 떠올렸다고 하니 전 왠지 독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어요. 다만 저는 책을 읽는 내내 카뮈도 사르트르도 떠올리지 못했다는 거;; 카뮈는 이방인 말고는 읽어본 적이 없고 사르트르는...... 아직은 근처로도 못가겠어요.
종전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의 밤. 독일군을 향한 일천대 비행기의 폭격 소식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희망과 기대로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좌파 신문 레스푸아의 사주이자 편집자인 앙리를 위시한 수많은 지식인들의 앞날이 수정 같이 맑기만 할 것 같았는데 곧 먹구름이 끼고 부슬부슬 배신과 음모, 증오와 복수, 잇다른 좌절과 실패, 무기력이 쏟아지며 그들을 뼛속까지 얼려요. 레지스탕스 운동을 주도하며 좌파 세력을 이끌었던 뒤브레유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설마 종전이 자신들의 마지막 승리가 될 줄 꿈에도 몰랐을 거에요.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믿어왔던 이들이 현실에서 글의 무용함을 느끼고 펜을 놓고 시간이 지나 다시 펜을 들고 글을 쓰게 되기까지의 긴 여정이 자그마치 1권 634 페이지, 2권 593 페이지에 달해서 줄거리를 요약하는 일조차 제게는 어려웠습니다. 앙리, 뒤브뢰유와 같은 남성들은 정치와 이념, 문학에 대해 전투적으로 고민하며 정신없이 달려 나아가고 후퇴하기를 반복합니다. 그 와중에 여러 여성들에게 호감, 욕망 또는 사랑을 느끼지만 어떤 여성도 그들 인생의 주체로 떠오르는 일은 없으며 그저 사소한 고민거리로 치부될 뿐이에요.
반면 안과 폴, 나딘과 같은 여성 주인공들의 고뇌와 삶은 굉장히 남성 종속적이라 당시에도 말이 좀 있었던가 봐요. 작가인 남편과 작가인 미국인 소설가와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며 "나이듦"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좌절하는 안, 앙리에 집착하다 끝내 미쳐버리는 폴, 이 남자 저 남자를 육체적으로 헤매는 것으로 자유를 표출하고 생을 주장하는 나딘의 이미지가 페미니스트였던 작가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느낌인 건 사실이거든요. 역자 후기를 보니 이런 불만들에 대해서 보부아르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여성들을 그대로 묘사한 것"(p597)이라고 답변하구요. 역자는 "프랑스의 가부장적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들을 소설에서 제시함으로써 1944년에야 처음으로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프랑스 사회의 문제점을 폭로"(p597) 한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작가님의 목격담이든 역자님의 해석대로이든 씁쓸한 건 매한가지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용한 정치 다툼과 전쟁으로 인류를 피흘리게 하느니 사랑에 몫매다 홀로 죽든 살든 하겠다는 쪽이 더 낫지 않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평 쓰는 재주가 부족해 다른 독자를 유혹하지 못할까봐 걱정됩니다. 정말 무조건, 무조오오오건 읽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책이거든요. 왜? 재밌으니까요!! 이 책을 세계문학전집에 올려야 한다고 강추했던 그 이유에 대해 저는 백프로 공감합니다. 죽음이 누구의 소유인지, 좌절한 인간이 다시금 행복해질 수 있는지, 행복해진다면 어떻게 행복을 되찾는건지, 우리는 어째서 소설을 읽으며 또 누군가는 어째서 글을 쓰는지, 문학의 역할은 무엇이고, 우리는 왜 살아가며, 산다는 게 무얼 증명하는지, 내가 나이기가 왜 이리도 힘이 드는지 무수한 질문을 책과 함께 주고 받다 보면 1,233 페이지가 가뿐하다 못해 아쉽고 짧아 속상하리라 장담합니다. 1940년대의 이념 갈등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어디나 비슷했던건지 프랑스가 아니라 마치 우리나라의 역사같이 읽힌다는 점도 뜻밖의 묘미로 다가올 거에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레 망다랭, 이어서 2권 바로 구입합니다. 충격적인 분량이지만 너무 재밌게 1권 읽고 있어요. 전후 지식인들의 전후 삶의 방향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재밌었어요. 보부아르의 책이 또 나오는 것 같던데, 현암사 최고오!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처음엔 그림이 너무 엔틱하여 취향이 아니었으나 계속 보니 또 좋네요^^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