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줄거리만 알고 있던 노인과 바다를 읽어보았다.
84일 동안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노어부는 85일째 되는 날 역시나 바다로 향한다. 노어부에겐 다섯 살 때부터 그에게 낚시를 배운 소년 친구가 있었다. 그 소년은 노어부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곤 했으나 노어부가 물고기를 못 잡는 날이 많아지자 부모의 권유로 결국 다른 배를 타게 된다. 소년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침. 저녁으로 노인의 집으로 와 노어부를 알뜰히 챙긴다. 노어부를 생각하는 마음이 무척이나 짠했다.
- 그러나 노인은 항상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단지 난 운이 없을 뿐이다. 그러나 누가 알아? 오늘만큼은 운이 좋을지 모르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니까 재수가 있으면 더욱 좋겠지. 그러나 나는 항상 정확하게 해야 해. 그래야 행운이 다가올 때를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두어야지. p 59
소년이 챙겨준 미끼를 챙겨 혼자 바다로 나간 노인은 군함새가 하늘 위를 빙빙돌며 먹이를 찾는 모습을 보곤 주변에 물고기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자연과 가까이 생활하면 자연스럽게 노하우를 터득하게 되는데 이는 날씨 등 다양한 상황에 임기응변할 수 있는 지혜로 이어진곤 한다.
망망대해에서 오롯이 혼자서 아주 큰 청새치를 낚는 과정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고 깊은 바다는 호기심의 대상인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함에 바다 생활이 노련한 노인이 돋보이기도 했다. 홀로 청새치와의 싸움에서 힘들게 승리를 거두었지만 상어에게 내어주어야만 했던 가혹한 운명이 무척 안쓰럽기도 했다. 험난한 싸움에서 노인은 종종 소년을 그리워하며 함께하지 못함을 아쉬워 한다.
- "이것이 꿈이었더라면, 아니 차라리 내가 고기를 잡지 않았었다면 좋았을 것을. 미안하다. 고기야. 널 잡은 것이 모든 일을 망치게 하는구나." p 160
청새치와의 힘겨운 사투에서 승리하였지만 청새치를 노리는 상어들과 또다시 힘겨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결국 남은 건 청새치의 앙상한 뼈대뿐이었다. 지칠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오두막집으로 돌아온 노인. 다음날 아침 잠들어 있는 노인을 마주한 소년은 노인의 다친 손을 보며 울기 시작한다. 사람들에게 절대 할아버지를 깨우지 말라며 당부하곤 그를 위한 커피를 준비하여 오두막집에서 노인이 잠에서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 "이제 우리 같이 잡으러 다녀요."
"안 돼. 나는 운이 없어. 이제 운이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것 같구나."
"운이라니요?"
소년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행운은 제가 갖고 가겠어요."
"너희 식구들이 뭐라고 하지 않겠니?"
"상관없어요. 어제 두 마리나 잡았으니까요."
"저는 할아버지께 아직 배울 것이 많이 있어요. 이제부터 할아버지랑 함게 바다에 나갈 거예요." p 185~6
크나큰 청새치 한 마리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의 이야기, 그리고 소년과의 우정(?)이 가슴 뭉클함을 안겨주는 소설이었다. 나라면 아마 거대한 청새치와의 힘겨운 싸움은 일찍 감치 포기하고 항구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청새치와의 사투에서 노인의 독백에서 삶의 아이러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 외로 재밌게 읽을 수 있었고 노인의 삶이 애절해서 슬프기도 했지만 그를 사랑하는 소년이 가까이에 있어 한편으론 다행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자연의 세계는 약육강식으로 힘센 자가 약한 자를 해하며 생을 이어간다. 그럼 함에도 약한 자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나는 노인의 독백이 의미 깊게 다가왔다. 지겨움 하나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노인과 바다였다.
“노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낡고 늙어 보였지만, 그의 두 눈만은 바다와 같은 빛이었고, 명랑한 듯했으며, 패배를 거부하는 눈빛이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굳이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워낙 많이 알려진 작품이다. 특히 바다에서 펼쳐지는 산티아고 노인의 고투를 중심으로 한 작품 해설은 여기저기서 소개되고 인용되어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마치 읽은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이 작품의 이야기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소년과의 대화, 고기잡이 출항, 바다에서의 고투, 그리고 귀항.
많이 알려진 문학 작품은 핵심적인 메시지나 몇몇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있어 이런 작품을 처음 읽는 독자라면 이미 알려진 것 외에 또 어떤 흥미로운 요소들이 있을까 기대하며 읽게 마련이다. 나 역시 이처럼 유명한 『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어떤 숨겨진 보물이 있을까 찾는 기분으로 읽어나갔다.
그런데 생각만큼 큰 감동이 있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줄거리보다 상황 묘사 중심의 전개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시대와 나이를 초월하는 우정을 보여주는 소년과의 대화는 작품이 어떤 줄거리로 나아갈 듯한 낌새를 보여주지만, 출항 이후 바다 위에서 오랜 기간 물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절망하지 않는 노인의 느긋함, 하지만 막상 물고기가 걸렸을 때 놓치지 않기 위해 온갖 애를 다 쓰는 모습, 오랜 바다 생활에서 온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질환들, 반면 물고기 하나, 한 별빛, 파도의 출렁임, 새를 대하는 모습, 끝없이 이어지는 혼자만의 대화 등 계속되는 상황과 상태의 서술이 기존의 노출된 해설 과잉과 엮이며 오히려 작품에 새로운 면모를 기대한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물론 그때까지 주인공을 살아오게 한, 마음속에 새겨진 자연 만물에 대한 경외와 애정, 그리고 풍성한 교감 혹은 교감의 시도들은 이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요소인 것만은 분명하다. 주어진 모든 상황에 대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거나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려 한다거나, 거기에 자신의 상황을 투영하여 마음을 새롭게 하는 노인의 모습은 주인공이 나이 많은 사람이라는 설정을 망각하게 한다.
노인의 삶에서 무엇을 읽어내라는 것일까? 인생에 필요한 용기와 인내, 자존심의 의미? 삶을 둘러싼 자질구레한 것들을 초월한 마음? 수많은 해설들에서 강조하는 인간 의지의 위대함? 아니, 오히려 이 작품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기보다 산티아고로 대변되는 수많은 스쳐지나가는 인생들, 그러니까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어딘가 한눈팔지 않고 주어진 것에만 집중했던 인생들 중 한 장면을 그저 오려다 보여준 후 다시 제자리에 테이프로 붙이고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아니면, 어쩌면 오늘날의 기준에선 정신승리의 원형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바다를 잘 몰라서 그런 걸까?
* 네이버 「문화충전200%」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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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는 완전히 자연과 일치하고 있다.그는 멕시코 만류 해안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이다. 그의 생활 터전은 바다이며 그의 피부는 태얄 빛으로 말미암아 갈색으로 그을러져 있고, 그의 눈은 바다의 색이고, 결코 변치 않는 자연의 색이다. 그의 집은 '구아노'라고 불리는 종려나무로 만들어져 있으며 침대, 탁자, 의자와 부엌이 있을 뿐이다. 손에서 피가 흐를 때 바닷물을 약으로 사용하는 등 원시적인 생활에 젖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산티아고의 생활 터전인 바다는 가장 자연스러운 곳으로 머리 위에는 해와 달과 별이 있고,배 밑에는 바다가 움직이고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으며, 배 주위로는 새가 날고 바람이 스쳐간다. (-14-)
노인은 물끄러미 바다 저편을 바라보며 새삼스럽게 자신의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러나 노인은 깊고 어두운 물 속에서 읽ㅂ 색깔의 광채를 볼 수 있었고, 팽팽하게 앞으로 뻗어나간 낚싯줄과 잔잔한 바다의 이상한 물의 파동을 볼 수 있었다. 무역풍이 불면서 뭉게 구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앞을 내다보니 구름이 피어난 그 아래로 한 떼의 물오리가 자태를 나타냈다 흩어지고 다시 또 뚜렷이 나타나곤 했다.노인은 그런 모습을 보며 바다에서는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95-)
농익은 고기가 바다에 만들어 놓은 넓은 길을 따라 정확하게 갈색 지느러미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놈들은 냄새를 찾아서 이리저리 배회하지도 않았다. 서로 나란히 헤엄쳐 와서는 배를 향해 달려왔다. 노안은 키 손잡이를 고정시키고 돛을 단단히 매었다. 그리고 고물 밑에서 몽둥이를 꺼냈다. 그것은 부러진 노를 약 2피트 반의 길이로 잘라서 노 손잡이로 만든 몽둥이였다. 손잡이가 있기 때문에 한 손으로 사용해야 편리했다. 노인은 그것을 오른손에 움켜쥐고 손목 관절을 구부렸다폈다 하면서 상어들이 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둘 다 갈라노 상어였다. 첫 번째 놈이 실컷 물어뜯게 두었다가 정수리를 겨냉하고 내리쳐야 한다고 노인은 생각했다. (-165-)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그가 52세 되던 해인 12951년에 쓰여지게 된다.대한민국에서 6.25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난 뒤에 쓰여진 그의 소설에는 자연그대로의 모습,원시 자연에서의 사투와 투쟁이 담겨지게 된다. 주인공은 할아버지다. 이름은 산티아고 할아버지이며, 소년과 함께 멀고 먼 바다로 향하고 있다. 80여일 동안 고기 하나 잡지 못한 빈털털이 배 하나를 삶의 터전으로 살았던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길고 긴 시간을 거스르며, 청새치를 기다리게 된다.
드디어 걸렸다. 바다 검은 물결을 스쳐 지나가는 청새치가 산티아고 할아버지 배에 끌리게 된다. 자신이 원하던 그 큰 청새치였다. 하지만 그 청새치를 뭍으로 끌어올리기게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매는 너무 초라하고 작은 배였다. 결국 청새치와 배는 한몸이 되었고, 청새치에서 흘러나오는 기름과 피냄새를 맡고 온 야생의 상어는 청새치를 재물로 삼아 야금야금 뜯어 먹게 된다.,
이 소설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은 달라지게 된다. 노인 산티아고의 고집과 아집, 투쟁과 자연과 사투하는 그 모습 뒤에 감춰진 노인의 초라한 모습 뒤에서, 청새치는 노인의 숨어있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는 노인이 가지고 있는 자존심은 우리가 생각하는 융통성 없고, 아집이 강한 노인의 전형적임 모습이다. 포기가 안되는 사람, 결과가 뻔함에도 ,자신의 손에 놓여진 것을 움켜쥐고 놓치 못하는 그런 사람, 그것이 산티아고의 모습에 있었다.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또다른 모습이 산타아고의 모습이며, 우리도 언젠가는 산티아고처럼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생명의 가치와 의미 뒤에 감춰진 투재이 자신의 존재감을 돋보이게 한다.
노인과 바다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만한 유명한 고전이지만
이미 많이 알려져 있어서인지 간략한 줄거리는 아는 터라 제대로 읽을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 좋은 기회로 책을 정독하게 됐는데
많은 이들이 인생 책으로 말하는 책인 만큼 강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내용을 간략히 말하자면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했다
마을에서도 재수가 없는 사람이라며 낙인이 찍혔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85일째 되던 날 어마한 크기의 청새치를 잡게 되는데
청새치를 잡는 과정에서 극한의 인내와 노력,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청새치와의 전투라고 해도 될만한 사투를 마치고 마침내 청새치를 잡았지만
항구로 돌아가는 길에 상어들의 출몰로 고기의 살점이 다 빼앗겨버린다
결국 청새치의 뼈만 가지고 항구로 돌아오게 된다
이야기는 아주 간략히 정리할 수 있지만
오랫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늙은 어부의 처지와
85일 만에 큰 대어(청새치)를 낚아 이틀 동안 청새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혼신의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
모든 걸 쏟아내고도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상어에게 청새치를 다 뺏겨버리는 사건이
보는 이로써는 한탄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늙은 어부가 맞닥들여야 하는 현실이 결코 녹록지 않음에도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처하는 상황마다 그 상황을 피하지 않고 맞서며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을 탓하지 않고 용기 있게 맞서며
인내하고 모든 걸 잃게 되더라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보며
한 인간의 의지에 절로 겸허해졌다
살아가다 보면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왜 이리도 많은지
또 지레 겁먹고 왜 이렇게 상황 탓을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늙은 어부가 주는 울림을 기억한다면
조금 더 삶을 더 용기 있게 살아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 200%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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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명작'
내 또래 친구들중에 <노인과 바다>를 읽지 않은 친구들이 얼마나 있을까?
같은 작품도 나이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천차만별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다는걸 알기 때문에
이번에는 학창시절 특정 목적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내 스스로를 위해 한번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 작품을 명작이라고 하는걸까.
줄거리와 결말을 알고 읽는 책은
볼 때마다 다른 장면과 다른 소품, 다른 시선을 읽을 수 있는 영화와는 다르게
당연히 조금 더 편안하고 조금 더 루즈했다.
다만 번역에 따라 자연스러울수도,
혹은 번역투가 뭍어나 어색할 수도 있다는 것의 차이는 느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부드럽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딱 한 부분, 그 문장의 반복이 원작에도 있었는지는
아주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나지 않지만
편안한 가운데 읽다보니 이 부분이 '톡' 하고 유난스러웠고,
이 부분의 원서를 찾아보고 싶을만큼 흥미로왔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세 달여에 가까운 시간동안 고기를 한마리도 낚지 못하던 노인이
홀로, 누구든 입이 떡 벌어질만큼 큰 물고기를 잡고
돌아오지만, 목적지에 회귀하고 보니 남은것은 참 보잘것 없다는 것.
학창시절에는 기계적으로 이해하고 암기했던 줄거리가
확실히 지금은 다르게 느껴져서 신기했다.
여유와 자의가 곁들여진 즐거움이랄까.
번역의 덕분인지 결말을 알고 보는데도
그 세세하고 자연스러운 문체 덕분에 손에 땀을 쥐기도 했다.
힘겹게 노력해서 엄청난 성과를 거뒀으나 결국 내가 가지게 된 것은 고통과 흔적..
'상처뿐인 영광'이라는 단어가 절로 생각나는 상황이다.
그러면 그 노인은 실패했다고 봐야할까?
결과론적인, 성과주의적인 대한민국에서는 그렇게 판단 하는 이들도 물론 있을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과' 그 자체보다는 '과정'을 중시해야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고전이 끊임없이 사랑받고, 여러 번역본들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실패를 하더라도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쉽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매달을 딴 선수가 '죄송하다'는 인터뷰를 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과정 그 자체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 해 볼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과거 우리가 처음 이 작품을 접했을 때보다
지금 오히려 더 빛을 발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과 10년쯤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점에는 '10대, ㅇㅇ에 미쳐라' '20대, ㅇㅇ에 미쳐라' 등
전 세대를 아우러 모두에게 무엇에 미친듯
어떤 성과를 내라는 듯 한, 다그치는 듯 한 서적들이 주류였다.
지금은?
정 반대의 책들이 넘쳐난다. 마치 지난 10여년 전의 영향인지 모두들 번아웃이 온 듯.
그 번 아웃은 어디서 온걸까.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보니 정작 결과는 성에 차지 않고,
모두들 치열하게는 살아 왔기 때문에 다들 지쳐있는 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런 고전은 충분히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쉼표가 되고,
결과가 아닌 과정 그 자체 만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것이 많다는
위로를 건내주는 듯 하다.
'과정'에 대한 중요성. 노력을 했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한 중요함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되는 시간이었다.
태그
도서 제목으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너무도 유명한 고전 소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무척이나 유명한 도서이기는 하지만 저처럼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며 독서 편식을 깨트리기 위해 도전을 해보기로 합니다.
25살 젊은 나이에 수많은 대작을 내놓으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어니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
아침엔 글, 저녁엔 낚시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아버지가 자살을 한 후 작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 나온 작품이 <무기여, 잘 있거라>라는 작품이었다고 하니 도서 리스트에 넣어두기로 한다. (이유는 궁금하니깐..)
1954년에 노벨 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는 1961년 7월 미국에서 엽총으로 자살하기 전 예순하나의 나이로 집필한 마지막 작품을 내놓는데 바로 <노인과 바다>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지막 역작 <노인과 바다>를 읽어본다.
어두운 밤이 지나면 언제나 밝은 태양이 떠오른다
멕시코에서 조각배를 타고 홀로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 산티아고.
처음 그에 곁에 소년 마놀린이 있었다. 하지만 80일이 지나도 고기 하나 잡지 못하는 노인을 보며 소년의 부모는 그를 운이 없는 사람이라며 다른 배에 오르게 한다. 배를 옮기고 큰 고기를 낚은 소년은 날마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노인을 바라보며 가슴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깡마르고 여윈 데다가 손은 상처로 가득한 노인은 소년에게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었고 소년도 노인을 무척이나 따랐다.
언제나 이른 아침에 커피로 배를 채우는 노인에게 소년은 정어리와 신문지에 싼 미끼를 가져다주었다. 소년은 조각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하러 떠나는 노인에게 행운을 빌어준다.
망망대해에서 노인의 낚싯줄에 걸린 청새치, 노인의 배보다 두 피트나 더 길어 보이는 고기였다. 노인은 두 팔의 힘과 온몸의 무게를 실어 낚싯줄을 힘껏 당기고 또 당겨보지만 고기는 천천히 달아나기만 할 뿐 잡히지가 않았다. 고기가 요동을 치는 순간에 고꾸라지기도 하고 잠이 든 순간 낚싯줄이 풀리며 손이 다치기도 한다. 노인은 바다 저편을 바라보며 자신이 얼마나 홀로 고독하게 홀로 싸우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힘든 시간을 보내며 작살을 이용하여 결국 고기를 잡게 되지만 고기의 피 냄새로 상어떼가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나이가 들면 왜 그렇게 일찍 잠이 깨는 걸까? 영원히 잠들 시간이 가까웠으니까 하루하루를 좀더 보람되게 보내라는 걸까?
p.44
노인은 끌려가면서도 끊임없이 생각했다. 만약 이놈이 물 속으로 내려가려 한다면 그땐 어떻게 하지? 그러다가 물 깊숙이 가라앉아 죽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할까? 모르겠어. 그러나 무슨 방도가 있겠지.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테니까.
p.76
고기야, 네가 나를 죽이는구나. 그러나 너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나는 이제까지 너처럼 크고 아름답고 침착하고 위엄이 있는 고기를 본 적이 없다. 형제여, 자, 나를 죽여라. 네가 죽든 내가 죽든 나는 아무래도 좋다.
p.137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고 노인은 생각했다. 게다가 그것은 죄악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자. 지금은 죄 말고도 얼마든지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 또한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p.155
"이제 우리 같이 잡으러 다녀요."
"안 돼, 나는 운이 없어. 이제 운이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것 같구나."
"운리라니요?"
소년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행운은 제가 갖고 가겠어요."
p.184
책 속에서
<노인과 바다>는 망망대해에서 노인 홀로 큰 물고기와 싸움을 벌이며 고독한 시간을 보내는 노인, 어떤 힘든 일이 일어나더라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불굴의 정신과 삶의 소중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오랜 시간 동안 고독한 싸움을 하며 지쳐가는 순간에 포기하지 않고 더욱 강해지는 노인을 바라보며 아~~ 정신승리다. 이것이 제일 필요한 인간의 덕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무엇 때문에 아직까지도 꾸준하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면 읽어보세요.^^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파파'(papa)라는 건강하고 거침없는 미국 남성상의 상징과도 같은 닉네임을 사용하는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는 어떤 자세로 죽음을 맞이하느냐가 평생 따라다닌
관심사이자 문학적 숙제였다.(아쉽게 헤밍웨이는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미국 문학에서
아담적 전통(Adamic Tradition)을 가장 잘 계승한 그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이념
문제를 포함해서 모든 정치 사회적 현안을 배격한 채 비극적 세계에서 고독한 영웅주의를
추구하는 인물을 소설속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작가이다.
이 책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는 헤밍웨이 자신도 '평생을 바쳐 쓴 글', '지금
내 능력으로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글'이라고 할만큼 그의 문학 인생이 농축된 작품으로
작가는 감정의 절제와 압축을 통해 현실과 상황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익숙한 줄거리다.
몇달동안 고기를 못잡은 노인, 그런 그의 곁을 찬구처럼 지켜준 소년(다른 번역판에는
청년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원서에는 'boy'로 되어 있다), 어느날 낚시 바늘에 걸린 청새치와의
드잡이, 항구로 돌아오는 갈에 만난 상어떼의 습격과 사투, 앙상한 뼈와 대가리만 남은 물고기,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를 꿈꾸며 지쳐 잠이든 오두막. 헤밍웨이는 이 단순한 내용에 인간을
대입시킨다. 광활한 자연 앞에 내던져져 홀로 남은 고독자로서의 인간, 그 인간이 자연과 맞서며
끝끝내 버텨내는 불굴의 정신, 그럼에도 여전히 혼자여야 하는 단독자로서의 인간의 운명,
그 속에 던져지는 인간과 얽히는 굴레들, 해밍웨이는 노인의 입을 통해 고전적 휴머니즘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람은 파멸당할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이 책에서는 '사람은 죽으면 죽었지 패배하지 않아'로 번역했다).
인생은 혼자 걸어가는 길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옆에 사람이
없어서도, 모가 나서도 아니고 그렇게 나이 들어 가는 것 같다. 저무는 해처럼 사람은 나이
들어 가고 점점 더 먼곳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여전히 여정은 계속되고 그 여정엔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노인이 청새치와의 드잡이와 상어와의 사투 중에 끊임없이 반복하는 '그
아이가 있었으면 좋을텐데' 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도 이와 같이 꼭 필요한 그 순간의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누가 있을까?'라는 고민에 빠져본다.
해미웨이는 '실패'와 '허무'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말한다.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 어떤 결과를 내었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삶을 살아 왔느냐도 중요하다. '희망이 없는
것은 죄악이야'라는 노인의 독백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기현상 속에 휘말린 우리에게
던지는 주문과도 같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노인과 바다'의 결말은 익히 알고 있다. 책을 정독하지는 않았지만 학창시절 문학시간에 들은 기억이 있다. 언젠가 정독을 해야지! 하고선 이제서야 읽게 된 책이다. 사실, 몇번 읽어보려고 시도는 했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번역이 이상하거나, 지루해서 읽히지 않거나 해서 포기했었지. 이번에는 중간에 그림도 있어서 지루하지도 않고 술술 읽혀서 다행이었지.
멕시코 만류에서 홀로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 산티아고'는 벌써 84일째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소년 마놀린은 산티아고에게 고기잡는 법을 배웠다. 평소 산티아고를 존경하고 그와 같은 신념이 있다는 마놀린은 산티아고의 일손을 돕고 산티아고를 돌보아 준다. 마놀린이 없었다면 노인은 많이 외로웠을 듯. 마놀린은 산티아고와 같이 고기잡이에 나가고 싶지만 산티아고의 운이 다했다며 승선을 만류하는 부모 때문에 이번에는 산티아고와 함께 배를 타지 못한다.
산티아고는 혼자 먼 바다까지 배를 끌고 가 낚싯줄을 내린다. 산티아고의 조각배보다 훨씬 크고 힘센 청새치 한 마리가 낚싯바늘에 걸리자 산티아고는 삼일 밤낮을 넘게 그 물고기와 사투를 벌인다. 긴 시간동안 청새치와의 사투를 버리는 산티아고는 만신창이가 된다. 손바닥은 낚시줄에 쓸려 피가 나고 왼손은 쥐가 나 펴지지 않는다. 그리고 외로워 보인다. 산티아고는 아니라고 하지만.
왜 노인은 포기하지 않는 걸까. 이미 많이 늙었고 아무리 힘을 비축했다고해도 어려울텐데 말이다. 끊임없이 질문했다. 왜 포기하지 않으십니까, 포기하고 다른 고기를 기다리면 되지 않습니까, 84일동안 기다린 것이 감당하기 힘든 물고기였습니까.
예능프로그램 '도시어부'가 생각이 났다. 이경규 아저씨도 엄청 큰 청새치와 길고 긴 사투 끝에 잡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던데. 뭐, 고난끝에 오는 열매를 맛보기위해 경규아저씨도, 산티아고 노인도 포기하지 않은 걸까.
결국엔 잡는다. 노인의 배보다 큰 물고기를. 노인이 잡은 그 큰 물고기는 조금 다른 의미인 듯 싶다. 무엇을 위해 그 큰 물고기를 포기 못하나 싶었는데 포기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였다. 끝까지 맞서 싸울 의지겠다는 의지였던 거지. '파괴될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다’는 노인의 신념이었던 거지.
노인은 승리를 했다는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상어떼의 습격을 받는다. '파괴될지언정 패배할 수는 없다'는 신념아래 노인은 상어떼와 맞서 싸운다. 그리고 잃는다. 큰 물고기를.
아마 노인은 신념을 지켰다는 것에 미련이 없는 듯 하다. 나같으면 속상해서 미칠텐데 노인은 미련없이 내일을 준비한다. 한편으로는 허탈하기도 하지만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멋있기도 하다.
그나저나 노인 산티아고가 꾸는 사자꿈은 무슨 의미일까.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노인이 홀로 고기를 잡기위해 바다로 나갔다. 혼자서 넓은 바다 위에서 큰 고기를 잡을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험에 닥치면 도움을 청할 곳이 없구나!걱정되는 거 나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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