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헷갈리고 당황스러웠다.
거대하고 아름다우며 광대한 배경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찰랑거리는 바닷물에 반쯤은 잠긴 성 같은곳에 대한 묘사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한참을 되짚어 보았다.
'앨버트로스가 남서쪽 홀에 온 해'라고 표기하는 일기글 형식의 날짜 표기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아 한참을 메모하며 따라가느라 처음에는 무엇이 중요한것이고 어디에 무게를 두어야할지 갈팡질팡하며 그의 일기를 따라가느라 바빴다. 그런데 그의 일기를 따라가다보니 그것들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헤매던것과 다르게 페이지는 순식간에 넘어갔고, 피라네시의 이야기속으로 나도 모르게 흠뻑 빠져들어갔다. 제각기 다른 형태를 띄고 있는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큰 조각상이 홀마다 가득한 이곳, 때론 조수가 밀려들어와 흠뻑 젖기도 하지만 높은 단으로 이루어진 계단을 오르내리며 떠다니는 구름도 만나고, 날아다니는 각종 새들과 인사도 하며, 때론 낚시를 통해 물고기도 잡아먹는 이곳은 피라네시에게 안식과 편안함을 주는 '영원한 집'이었다.
세상이 존재한 이래 열다섯명만이 존재하는 이곳! 살아있는 자 2명과 죽은 자 13명이 함께 지내는 이곳은 나에겐 '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미궁'이다. 끝도 알수 없는 수많은 홀들을 매일 구경하고 탐험하면서 '나'는 홀 곳곳의 조각상의 형태와 갯수, 그리고 배치등을 기록하고, 조수의 특징과 주변곳곳을 변화등을 꼼꼼이 기록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거의 모든날들을 혼자 지내다가 또다른 살아있는 '나머지 사람'을 만나는 날이 있는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이 바로 그날이다. 때론 짧은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질때도 있고, 어떤날은 그가 요청하는것들을 조사해주기도 하고, 또 어떤날은 나에게 필요한 물자를 지원받기도 하며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내가 유일하게 믿고 있는 나의 친구다.
이렇듯 안온하고 평화로운 삶을 이어가던 피라네시는 '16'이 나타나며 불안감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나머지 사람'은 '16'이 피라네시를 죽이고 이 세계를 무너뜨릴것이라고 경고한다. 그즈음 피라네시는 미로같은 홀에서 '16'이라 추측되는 사람과 더불어 새로운 사람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홀 곳곳에서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누군가가 남긴 메모와 찢어진 종이조각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믿고 있던 세상은 무엇이고 '나머지 사람'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피라네시의 기록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미궁의 비밀과 또 다른 세상, 그리고 그들의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미스터리하고 환상적인 미궁속을 피라네시의 기록들을 따라 거닐다보면 잔잔한 파도소리와 고요한 정취, 그리고 새들의 펄럭이는 날개짓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하다. 꿈같은 상상속을 그렇게 거닐다보며 끝도 보이지 않는 홀들에 취해 멍하니 서있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거대하고 다양한 형태의 조각상들을 바라보며 관찰하고 있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공간들을 거닐면서도 외롭다거나 두려움이라는 감정들보다는 감사함과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들이치는 조수를 높은 계단이나 조각상에 올라앉아 바라보는 장면을 서술한 부분에서는 마치 3D 영상으로 보는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큰 욕심없이 자연이 주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감사하며 미궁에서 살았던 '피라네시'
일기의 날짜를 '앨버트로스가 남서쪽 홀에 온 해'로 표기한것처럼 해와 달, 자연의 형상으로 기록물을 남길만큼 그 자체에 동화되어 살았던 그가 어쩌다 6년동안 그곳에 갇혀 살게 된것인지, 자신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그외 기억들을 잃고 왜 홀로 그곳에서 그토록 순수한 상태로 살게 된것인지, 진실을 찾는 여정에 가까워질수록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더욱 더 빨라질것이다.
처음에는 축축하고 눅눅함이 느껴져 어딘가 스산하게만 보였던 그 '집'이 모든 진실을 찾은뒤에는 고요하고 평화롭게만 다가온다. 수많은 사람과 세상속에서 지쳤을때, 문득 찾고 싶은 혹은 찾게 되는 공간! 아무도 없는 공허하고 거대한 그 미궁은 홀로 있어 외로운곳이 아닌, '혼자'여서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이 된다.
그런데 이 세계를 발견한 이는 이 공간을 '지류세상'이라 말한다.
=====
오래 머무를 수는 없네. 이곳에 머무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말이야. 기억 상실, 철저한 신경 쇠약 기타 등등.
134페이지 中
=====
그 '집'을 미궁이라고 말하는 그(케털리)에게 '나'는 질문한다.
=====
"왜 미궁이라고 묘사했다고 보시나요?"
(...)
"우주처럼 장대한 비전이겠지. 실존의 공포와 뒤엉킨 영광의 상징. 아무도 살아나올 수 없는곳"
252페이지 中
=====
그 곳에 들어가려면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상태로 의식을 되돌려야 하고 그 곳에 오래 머무르면 현재의 자아를 잃고 어린아이처럼 변한다고 말하는 그 곳!
미궁.. 아니 '영원의 집'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비록 기억을 잃고 순수한 상태로 자연을 벗삼아 살기는 했지만, 나는 그 '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나는 집이 사랑하는 자녀다.
233페이지 中
=====
=====
방이 많은 어떤 집에 있었어요. 바닷물이 쓸려 다니는 집이죠. 가끔은 바닷물이 저를 덮치기도 했지만, 저는 매번 구원됐습니다.
329페이지 中
=====
누군가에게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자아를 잃어버리는 곳이라고 평하는 그 곳이 나에게는 사랑하는 보금자리였고, 나를 보살펴주는 어버이였으며, 구원의 장소였다.
광활하고 단조로운 수많은 방을 보유한 홀로 이루어진 공간이 어느새 화려한 색을 입힌 마법같은 공간으로 변화하는것을 '피라네시'를 읽는 동안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나처럼 '어린왕자'를 떠올리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피라네시'가 방 곳곳을 탐험하는 동안 그를 따라 현실인지 가상의 공간인지 판별할 수 없는 판타지 속 곳곳을 여행하는 '나'를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판타지 동화나 SF영화에서 볼법한 환상의 공간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피라네시를 만나보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고, 제 느낌을 남깁니다.
데뷔작으로 휴고상을 수상한 SF천재작가의 16년만의 귀환!
환상적인 공간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는 '피라네시'.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는 아직 자신밖에 발견하지 못한 그 광활한 공간에 ‘나머지 사람’이 일주일에 2번 그곳을 방문한다. 이 세계의 비밀을 풀고 위대한 지식을 찾으려는 ‘나머지 사람’은 피라네시가 믿고 의지하는 유일한 친구다. 피라네시는 ‘나머지 사람’을 도와 이 미로의 구석구석을 탐험한다. 그러던 어느 날 ‘16’이 침입하고, ‘나머지 사람’은 ‘16’이 피라네시를 죽이고 이 평화로운 세계를 무너뜨리려 한다고 경고한다. 피라네시는 ‘16’으로부터 벗어나 이 세계를 온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이 세계에 숨어 있는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 알라딘 제공
매트릭스를 처음봤을 때 "뭐지?.". "응?". "왜?"...매트릭스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상 현실. 그 속에서 진정한 현실을 인식할 수 없게 지배되는 인간들...
그러다가 문득 "짐 캐리"주연의 "트루먼 쇼"가 떠올랐습니다.한 아이의 인생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사람들. 우연한 기회에 현실부정을 하고 꿈을 이루고자 큰 용기를 내었던 아이.
짐 캐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유토피아는 아닐까요?.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무난한듯 하루하루 지나가는 공간. 모든사람들이 평준화를이루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공간. 그 공간에 타의로 살게된 한 사람.
모든것이 가짜이지만, 어쩌면 모르고 살았더라면 좋았을지 모를 현실.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는 우리들도 때로는 혼자만의 공간에 혼자 남겨집니다.
출근하다가 창밖을 바라보며 멍때리는 순간, 업무중에 문득 멍해지는 순간,
맛있는 점심을 먹고, 커피한모금 넘기는 순간의 찰나,퇴근후 맥주 한모금 머금는 순간들...
비록 짧은 순간이라 느껴지지만, 시간의 흐름을 들여다보고 그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한다면 현실의 1초는 1분이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창밖의 풍경이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것도 모르고, 오늘의 커피는 전날의 커피와 원두가 달라졌음을 모르고, 냉장고가 아닌 베란다에서 꺼내마신 미지근한 맥주의 씁쓸함을 모르고...
순간순간을 집중해서 온 몸으로 느낀다면 우린 그 짧은 순간 우주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체가 됩니다.
광할한 공간에 홀로 있는 "피라네시". 그를 가끔 찾아오는 "나머지 사람", 위협적이라 말하는 "16".
과연 3명이라 말 할 수 있을까요?.
피라네시를 죽이려고 하는 '16'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 그것, 혹은 피라네시의 그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16년 만에 책을 쓴 작가일까요?.
SF 소설속에서 인생을 고민해 봅니다.
248p
나는 지금 쓰는 일지를 꺼내 적기 시작했다. 그는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실물 펜과 종이를 쓰나요?"
"저는 모든 메모에 일지 시스템을 적용합니다. 그게 정보를 추적하는 데 최상의 방법이더군요."
#피라네시 #수재나클라크 #김해온 #흐름출판 #휴고상 #베스트셀러 #SF소설 #SF천재작가 #SF판타지 #소설추천
빛을 발하는, 꿈 같은 모험의 시간
당신을 아름답고 기이한 세계로 초대한다
'데뷔작으로 휴고상을 수상한 SF 천재작가의 16년만의 귀환' 이라는 홍보문구에 혹했다. SF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데뷔작부터 천재작가소리를 들은 이의 작품이 무척 궁금했다. 휴고상과 SF 라는 단어에 초점을 두고 읽어선지 책을 몇장 읽지도 않았는데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휴고상에 대해 검색해봤다. 효고상은 과학소설과 환상문학에 주는 상이라고 나왔다. 아하... 이 작품은 SF나 과학소설이 아니라 '환상문학' 이었던 거다.
【 달이 북쪽 셋째 홀에 떴을 때 아홉째 현관에 들어가다 - 앨버트로스가 남서쪽 홀에 온 해 다섯째 달의 첫날 기록】 이라는 기묘한 시공간 개념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익숙해지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스스로를 '워낙 방대한 작업이어서 때로는 좀 아찔해지지만 과학자이자 탐험자로서 나는 세상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목격할 의무가 있다. (p. 21)' 며 홀들을 돌아다니고 기록하는 '나'의 시간들을 읽고 공간들을 상상하다보면 내 머릿속도 함께 아찔해지는 것이다.
'서쪽으로는 구백예순째 홀, 북쪽으로는 팔백아흔째 홀, 남쪽으로는 칠백예순여덟째 홀까지 가보았다. (p. 20)' 라는 공간과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은 나 자신 그리고 나머지 사람뿐 (p. 23)' 라는 등장인물
'피라네시. 그것이 그가 나를 부르는 이름이다. 이상한 일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것은 내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p. 25)' 라는 제목에 대한 의미까지 읽고나면 이 소설의 배경이 지구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지만 포인트는 그게 아니다. 내 이름이 아닌 것으로 불리면서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나'의 독백을 읽어가면서 한 사람의 정신세계에 대해 얼만큼 공감하게 되는가, 거기에 '환상'의 포인트가 있었다.
이제까지 일지는 공책 아홉권을 채웠다. 이것이 열째 공책이다. 모두 번호가 붙어 있고 대부분은 기록이 담긴 날짜가 적혀 있다.
1번은 '2011년 십이월에서 2012년 유월까지' 라고 되어 있다. 2번은 '2012년 유월에서 2012년 십일월까지' 라고 되어 있다. 3번은 원래 '2012년 십일월'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언젠가 그 위에 줄을 긋고 '흐느끼고 울부짖던 열두째 달의 서른째 날에서 산호 홀을 발견한 해 일곱째 달의 넷째 날까지' 라고 고쳐져 있다. (p. 30)
그러니까 이 소설의 시공간은 SF적인 것이 아니었다. 2012년 십일월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 '나'의 시공간을 뒤바꿀만한 어떤 일이. 그래서 '흐느끼고 울부짖'을 만한 사건이.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공책은 열째 공책이라는 건 한권당 대략 6~7개월 정도 쓴것으로 보이니 현재시점은 5~6년이 지난 때라고 계산할 수 있다. 그러니까 2017년~2018년 정도. 환상문학을 이렇게 현실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이 걸맞지 않을수도 있지만 어쩔수 없다. 나는 그래야 이해가 되는 사람이다;;; 이렇게 계산하고 보니 이제 이 소설이 스릴러적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이제 좀 호기심이 샘솟으려 한다. 환상문학이 어렵다면 나처럼 스릴러로 읽어도 될 작품인 것이다.
"오늘은 의식을 거행할 텐데, 자네가 여기 있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의식이란 예법에 따라 시행하는 마법인데, 나머지 사람은 그 방법으로 위대하고 은밀한 지식이 이 세상 어디에 붙잡혀 있든 거기서 풀려나 우리에게 오게 하려는 생각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의식을 네 번 거행했고 매번 조금씩 형식을 바꾸었다. (p. 68)
"헌데 여기엔 힘이 있는 게 하나도 없어. 살아 있는 것조차 아무것도 없잖아. 그냥 다 똑같은 황량한 방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고 새똥으로 뒤덮여 부식되고 있는 조각상들만 가득하니" (p. 74)
'나머지 사람'은 피라네시와 화요일 금요일에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눈다. 때론 나머지사람이 의식을 거행하는데 피라네시는 네번 이라고 했지만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한번이 있었으므로 5번의 의식이 된다. 앞에서 시간계산했던 방식대로 추측하자면 '나머지 사람'은 일년에 한번정도 의식을 치루는 것 같다. '이 세상 어딘가에 '위대하고 은밀한 지식'이 있는데 그것을 발견하면 어마어마한 힘이 생긴다고 믿는다. (p. 24)' 그러니까 '나머지 사람'은 '위대한 지식' 과 '어마어마한 힘'을 갈구한다. 하지만 '집은 헤아릴 수 없이 아름답고, 무한히 자애롭다. (p. 19)' 라고 홀들을 생각하는 피라네시에 대비해 '황량한 방들' 과 '새똥'으로 바라보는 '나머지 사람'에겐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피라네시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나머지 사람'에게 말해주려고 하지만 '나머지 사람'은 무시한다.
"아 그럴게요! 신발만 있으면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세 시간 반이면 백아흔두째 홀에 도착할 거예요. 길어도 네 시간이면 돼요" (p. 80)
이백에 가까운 홀까지 가는데 네시간 정도라면 처음에 나왔던 구백예순째 홀까지는 20시간이 좀 안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환상문학을 읽으면서 '환상'을 공감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이런식의 현실 계산이 정말 어쩔 수 없다;;; 내가 이해하는 방식이 이랬나 보다;;;) 그러니까 피라네시가 머물고 있는 공간은 하루이틀이면 다 둘러볼 수 있는,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파도가 치는, 각 홀마다 조각상들이 많은, 해안 동굴들의 집합체 라고 정리될 듯 하다. '미궁' 이다!
왜 집이 나머지 사람에게 훨씬 다양한 물건을 제공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에게는 침낭이니 신발이니 플라스틱 그릇이니 치즈 샌드위치, 공책, 크리스마스 케이크 등을 주면서 내게는 거의 물고기만 주니까. 어쩌면 나머지 사람이 나만큼 자신을 보살피는 데 능숙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머지 사람은 낚시하는 법을 모른다. 그는 결코 (내가 아는 한) 해조를 모아서 말리고 저장해 불을 피우거나 맛난 과자를 만들지 않는다. 물고기 가죽을 보존해서 그걸로 가죽(쓸모가 많다)을 만들지도 않는다. 집이 그에게 이런 것들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가 죽는 것도 있을 법한 일이다. 아니면 (이쪽이 더 그럴듯한데) 내가 그를 돌보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p. 84)
피라네시의 일상은 일종의 로빈슨크루소와 비슷하다. 해안동굴에서 물고기와 해조류로 사는 삶의 방식을 터득했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데 나머지 사람에겐 항상 물자가 풍부하다. 피라네시는 집이 모든 것을 제공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프레임에서 피라네시는 나머지 사람이 자신과 동일한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피라네시가 바보는 아니다. 그는 시간개념이 정확하고 모든 홀을 기억하며 길을 잃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서의 생존법을 스스로 터득했다. 다만 피라네시의 세상이 세계관이 달라진 것이다. 정작 본인은 그것을 몰랐지만.
"이번이 세 번째네. 패턴이 있어. 자네는 일 년 반마다 지식탐색을 그만두자는 생각이 떠오르는 듯해"
"이해가 안 가는데요, 제 기억력은 아주 좋다고요. 한번 가본 홀은 모조리 기억한다니까요. 칠천육백칠십팔 개에요"
"자네는 미궁에 관해서는 잊어버리는 법이 없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네 도움이 내 작업에 그렇게나 중요한 것이고. 하지만 다른 일들은 그렇지가 않아. 게다가 자넨 시간을 놓쳐 버리네"
"뭐라고요?"
"왜 있잖나. 요일이나 날짜를 틀리는 거지"
"안 그런데요"
"자네의 시간 개념이 어긋나 있을 때마다 나는 몇 번이나 바로잡아 줘야 했네"
"무엇과 어긋나 있다는 거죠?"
"나와. 다른 모든 사람들과"
"그럼 왜 당신은 잊어버리지 않는 거죠?"
"난 대비를 하거든"
"저도 할 수 있는 방법인가요?"
"아니, 아니. 그렇게는 안 되네. 미안하군. 자네한테 이유와 원인을 시시콜콜 설명할 수가 없네. 복잡하거든. 언젠가는 얘기해 주지" (p. 102, 103 일부 발췌)
나머지 사람에 의하면 피라네시는 주기적으로 무언가를 기억하지 못한다. 때로는 시간 개념이 어긋난다. 그때마다 나머지 사람이 피라네시에게 다시 알려준다. 그럴때마다 나머지 사람은 의혹을 가질만한 단어들을 부지불식간에 내뱉곤 한다. 둘만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피라네시에게 '다른 모든 사람들' 이라던가 '대비'라던가... 하지만 피라네시는 전혀 의혹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홀들을 둘러보고 조각상을 감상하고 새들과 대화를 나누며 물고기와 해조류만으로 살아가는 삶을 유지한다.
"잘 듣게. 내게 한 가지 약속해 줬으면 좋겠네"
"물론이죠"
"미궁에서 누군가를 혹시라도 본다면... 자네가 모르는 사람말이네... 그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을 거라고 약속해 주게. 반드시 숨어야 하네. 그 사람에게서 물러나게. 그 사람이 자네를 보지 못하게 해" (p. 110)
"그러면 정말 세상에 열여섯째 사람이 있는 거군요? 왜 한번도 그 얘기를 안 하신 거죠? 굉장하군요! 축하할 일이에요!" (p. 111)
그러다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다. 파도가 들이치는 홀들에 조각상 들과 나머지사람 그리고 피라네시만 존재하는 세상이 전부 라고 생각했는데, 열여섯번째 사람의 존재가 등장했다. 나머지 사람은 숨으라 했고 피라네시는 축하할 일이라고 했다. 얼마후 피라네시는 한 노인을 만났지만 그는 나머지사람이 말한 열여섯번째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그 친구 생각은 전부 나한테서 온 거라네. 나는 내 세대에서 가장 위대한 학자였지. 어쩌면 다른 세대를 통틀어도 그럴지 모르겠구먼. 나는 이론을 세웠어 이것이... " 그는 홀을, 집을, 모든 것을 가리키려는 듯 양손을 벌렸다. "존재한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지. 나는 이곳에 오는 길이 있다는 가설을 만들었네. 길은 실제로도 있고, 그리고 나는 여기에 왔고 다른 친구들도 여기에 보냈네. 모든 것을 비밀에 부쳤지." (p. 129)
"결국 우리는 다들 끔찍한 대가를 치러해 했네. 내 대가는 감옥이었어. 그래, 맞네. 충격적이겠지. 전부 오해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좋겠지만 나는 그들이 주장하는 일들을 정말로 했네.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그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했지." (p. 130)
"그랬지, 이 세상을 찾았지. 이 세계를 나는 '지류支流세상Dis-tributary World'이라고 부르네. 이 세계는 다른 세계에서 흘러나온 개념에서 만들어졌네. 이곳은 그 세상이 먼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존재할 수 없었을 거야. 아직도 그 처음 세상이 있어야 이곳이 존재할수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네. 전부 내가 쓴 책에 있네만." (p. 131)
피라네시는 이 노인을 예언자라고 생각한다.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나머지 사람'에 대한 이해 혹은 피라네시가 집이라고 여기고 있는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었다. 나머지 사람이 결코 이해하지 못했던 피라네시의 논리들을 수긍해주었다. 그리고 수많은 의혹들을 품게 했다.
"말해 보게. 케털리는 고대의 지혜까 아직도 여기 있다고 여기는가?"
"위대하고 은밀한 지식 말씀이신가요?"
"바로 그걸세"
"네"
"그리고 아직도 찾고 있고?"
"네"
"그것 참 재미있군. 절대 못 찾을 걸세. 여기에 없거든. 그건 존재하지 않는다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그 친구보다 한결 총명하구먼. 그게 여기에 숨겨져 있다는 생각, 그것도 유감스럽지만 나한테서 얻은 것일게야."
"조각상들이 있는 이유가 다른 세상에서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지식과 개념을 상징하기 때문인가요?"
"오래 머무를 수는 없네. 이곳에 머무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말이야. 기억 상실, 철저한 신경 쇠약, 기타 등등. 그렇지만 자네는 놀랄 정도로 논리정연하군그래."
"나는 그 친구가 밉네. 그 친구는 지난 이십오년 동안 자기 말을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나를 중상하고 다녔어. 그래서 나는 여기 오는 법을 16에게 소상하게 말해 줄 걸세. 시시콜콜 말이네" (p. 132~135 부분 발췌)
'알겠지만 예전에 자네가 부탁했을 때 내가 오지 않기로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네. 자네가 나한테 쓴 편지 말이야. 그때는 자네가 시건방진 애송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자네는 아마 그랬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매력적이군. 상당히 매력적이야. (p. 137)'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노인은 떠났다. 아하! 닫힌 세계 라고 생각했던 피라네시의 '집'은 누군가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외부와의 연결에 대해 피라네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 피라네시가 노인과의 대화를 되새겨보며 당황스러웠던 것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였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을수도 있다는 의혹이었다. 피라네시는 그동안 열심히 기록하기만 했던 자신의 공책들을 첫권부터 읽어보기로 한다.
자신의 기록이 분명함에도 자신의 공책에 있는 내용들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릴러적 사건추적 분위기가 형성된다. 나에게 이 소설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었다. 소설의 3분의1쯤 읽은 지금부터.
집이 너로 하여금 기억을 잊게 만들었다면 거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을 거야. (p. 164)
납치, 실종, 미궁, 오컬트 신봉자, 초월적 사고 그리고 자신을 찾는 열여섯번째 사람. 새로운 사실 새로운 증거 그리고 새로운 사람.
그동안 안개속을 걷는 것 같던 소설은 이제 기묘한 퍼즐맞추기로 전환된 듯 읽힌다. '2012년 11월 15일의 사건 (p. 242)' 이날 매슈 로즈 소런슨은 사라지고 피라네시는 탄생했다.
'집은 헤아릴 수 없이 아름답고, 무한히 자애롭다. (p. 345)' 라는 마지막 문장은 본문에서 이미 나왔던 문장임에도 마지막에 그 의미를 달리해서 다가온다. 인간의 고독과 그 고독을 품어주는 '집'에 대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사실 소설 내용 자체만으로는 이 책을 소개하는 온갖 칭찬과 미사여구들이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옮긴이의 글'을 통해 작가의 삶을 알고나니 이 소설이 새롭게 공감된다. '힘겨운 시기를 보내던 때 작가는 다른 사람가 한 공간에 있는 것이 무척 힘들었는데, 홀로 이런 세계에, 건물들로 가득하지만 조용한 세상에 있는 상상을 하면 마음이 차분해졌다고 한다. 몇 년이 흐르는 동안 조금씩 회복되면서 작가는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우여곡절 끝에 <피라네시>를 완성했다. (p. 351)' 자신의 삶을 담은 글은 그 울림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작가의 삶이 담긴 소설을 늘 애정한다. 허구일지라도 삶이 진정 담겼느냐와 담기지 않았느냐는 작품의 공감도를 전혀 달리한다. '피라네시가 집에 홀로 거주하면서 그곳에서 위로받듯이 작가도 상상속의 세계에서 조용히 위로받고 있었다. 피라네시는 그야말로 작가의 분신이었던 것이다. 이야기 속의 피라네시를 보면 '자기'를 잃고 어떤 면에서는 '분열되었다'고 할 수 있는 상태인데도 그런 그가 밝게 묘사되는 점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는데, 어쩌면 작가 자신도 그에게서 희망을 찾고 있었던것은 아닐까. (p. 352)' 라는 옮긴이의 말에 동의한다. 피라네시는 작가 그 자신이었다.
피라네시 라는 단어를 잠깐 검색해봤을때 그닥 소득이 없었는데 옮긴이가 해설을 붙여주어 고마웠다.
'주인공의 이름 피라네시는 18세기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에서 따온 듯하다. 그는 16점으로 구성된 '감옥'을 판화로 발표했다고 하는데, 지하에 있는 이 감옥들을 보면 계단과 기계장치가 두드러 진다. (중략) 주인공 피라네시가 '집'이라고 부르던 공간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p. 354)' 누군가에겐 집이 감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소설속 노인이 실제 감옥을 좋아했던 것처럼 감옥이 집보다 나을수도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며 피라네시의 미궁이 감옥인가 집인가에 대해 의견이 크게 갈릴 것 같다. 감옥처럼 보이는 집일수도 집처럼 보이는 감옥일수도 있다. 매슈에겐 미궁이 감옥이었지만 피라네시에겐 집이었듯이 매슈의 집이 있는 도시가 피라네시에겐 감옥일 수 있다. 그래서 미궁을 다시 찾게 되는 심리가 이 소설을 환상문학으로 읽게하는 감정이었던 것 같다.
네영카... 네이버 영화 카페.... '피라네시' 리뷰 올려요...
글이 참 좋네요...
피라네시...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나요....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라는 점이 가장 눈에 띄고...그 외에도... 많은 상을 받았네요...
지은이는 수제나 클라크에요...
네이버영화카페 : 네영카 @movie02
이 책은 스토리텔링 책이에요...
인간의 삶을 성찰 할 수 있어요...
이야기가 부드럽게 전개되어요... 그래서 글을 넘기기가 수월해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좋았습니다.. 기억에 많이 남네요...
작가 클라크의 재미와 환상... 그리고 위트와 상상력이 잘 표현된 책 같아요...
처음부터.. 이 이야기가 무엇일까...하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해요... 이야기의 사건의 전개가... 처음에는 무엇일까라는 생각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독특한 이야기의 전개... 그리고 며째날 며째날...하는 이야기의 구도가 특이해요...
이야기가 재미있고 독창적이면서도... 이야기를 이끄는 방식이 특이해요... 책을 읽다 보면...조각상...조수...이런 이야기의 소재들이 나온다...살짝...읽어보면...이야기가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내면을 잘 엿볼 수 있는 그런 스토리텔링을 이야기 하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전체적으로 재미있으며... 이 소설을 추천합니다...
요즘 들어 부쩍 불면증에 시달려 한 시간도 잘 자지 못해 불면의 고통스러운 밤을 지새운다.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상상의 나래는 끝없이 펼쳐지고 내가 만들어낸 공간은 새로운 공간으로 확장한다.
단 며칠 동안 내가 만들어낸 공간도 가늠하기 힘들 정도인데, 휴고상으로 수상한 수재나 클라크는 자신이 건강이 악화해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없었고, 그 시간 동안 축성한 자신만의 공간을 <피라네시>로 펼쳐낸다.
책을 읽는 동안 이미지를 그리고 배경을 이해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피라네시를 시각적으로 떠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잔상 효과는 뛰어나 피라네시가 머무른 홀과 수많은 현관에 자리를 잡은 방, 방을 가득 채우는 조각상의 이미지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굳이 영화로 해석하자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 영화 두 편이 떠올랐다. ‘인터스텔라’의 쿠퍼가 갇히게 된 다른 차원의 공간 속을 ‘메멘토’의 레너드가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수많은 홀로 이루어진 공간 속을 헤집고 다니는 역할이 ‘피라네시’다.
달이 북쪽 셋째 홀에 떴을 때 아홉째 현관에 들어가다
앨버트로스가 남서쪽 홀에 온 해 다섯째 달의 첫날 기록
달이 북쪽 셋째 홀에 떴을 때 나는 아홉째 현관에 들어가 세 개의 밀물이 합류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것은 오직 팔 년에 한 번 일어나는 현상이다. 아홉째 현관은 웅장한 계단이 세 개 있어 눈에 띄는 장소이다. 벽에는 대리석 조각상들이 무수히 늘어서 있는데 그런 식으로 한 단, 한 단 아주 높은 곳까지 올라가 있다. (17쪽)
이 책은 피라네시가 경험한 네다섯 동안의 기록을 기반으로 펼쳐진다.
피라네시가 머무르는 공간은 수많은 방과 현관, 홀이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다. 집은 세 층이 있다. 아래층 홀들은 조수들이 들어오고 어류, 갑각류, 해조류가 영양분을 공급한다. 위쪽 홀들은 구름의 영역이다.
그는 세상이 시작한 이래 열다섯 명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모두 죽고 자신의 집에 살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피라네시는 열다섯 사람의 이름과 위치를 기록했다.
Photo by Marius George Oprea on Unsplash
다음으로 등장하는 나머지 사람은 이 세상 어딘가에 ‘위대하고 은밀한 지식’이 있는데 그것을 발견하면 어마어마한 힘이 생긴다고 믿는다. ‘피라네시’라는 이름도 나머지 사람이 그를 부르는 이름이다. 그가 기억하기로 자신의 이름은 ‘피라네시’가 아니다.
피라네시는 자신이 관찰한 바를 열여섯째 사람에게 남기기 위해 기록한다.
“그게 아니야, 피라네시. 이게 자네한테 중요한 일이라는 거 나도 알고, 이런 얘기를 털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 유감스럽네. 하지만 이건 축하할 일이 아니야. 정반대지. 이 사람, 16은 나를 해치려고 하네. 16은 내 적이야. 그러니까 자네의 적이기도 하지.” (111쪽)
나머지 사람은 피라네시를 확인하듯 질문하고 필요한 물품을 제공한다. 그는 ‘16’이 나타나면 말을 걸지 말고 물러나야 그 사람이 피라네시를 보지 못 하게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피라네시는 16에 글을 적어 소통하는 동안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된다.
‘피라네시’가 만들어내는 잔상을 강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믿어야 할까? 자신이 믿고 살았던 사람이 의도하지 않게 자신을 배신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
‘피라네시’를 읽는 동안 개인사와 겹쳐져 작가가 쌓아 올린 미로에 빠져들어 인간에 대해 다시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인간관계의 진실과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이고, 정신이 만들어낸 환영과 진실의 틈은 얼마나 큰 걸까?
내 마음속에는 모든 조수, 각각의 때와, 밀물과 썰물이 담겨있다. 내 마음속에는 모든 홀, 그 끝없이 이어진 홀들이, 그 복잡한 경로들이 담겨 있다. 이 세상이 너무 버거워질 때면, 소음과 오물과 사람들에 지겨워질 때면, 나는 눈을 감고 특정 현관을 마음속으로 불러 본다. 그러고는 어떤 홀을 불러 본다. 나는 현관에서 홀로 가는 길을 걸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342쪽)
SF소설의 고전의 반열에 오를 거로 예상되는 수재나 클라크의 <피라네시>에 미궁에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피라네시 #수재나클라크 #김해온 #흐름출판 #소설 #SF소설 #휴고상 #베스트셀러 #네영카
피라네시, 미궁의 이름이자 그곳에 사는 유일한 사람인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여기엔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방이 있다. 방은 미로처럼 복도와 계단으로 얼기설기 복잡하게 연결되고 벽에는 저마다 다른 모습의 생동감 넘치는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어떤 방은 웅장한 계단이 달린 현관으로 시작하고 어떤 방은 천장과 바닥, 심지어 벽마저 무너져 어둑어둑해 보인다. 집 바깥은 해, 달, 별이 존재하고 집 안쪽은 해수가 거대한 굉음을 내며 바닥과 벽을 치기도 한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중간 층을 기준으로 그 아래층은 바다가 있고, 그 위쪽으로는 구름이 있다. 피라네시가 미궁을 탐험하면서 촘촘하게 기록하고 묘사한 일지들을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거대한 미궁 속에 길을 잃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온 몸으로 감각할 수 있을 정도로 여실히 와 닿는다.
나는 각 조각상의 위치, 크기, 주제 및 기타 관심 항목을 기록하려고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남서쪽 첫째와 둘째 홀을 완료했고 지금은 셋째 홀의 목록을 적고 있다. 워낙 방대한 작업이어서 때로는 좀 아찔해지지만 과학자이자 탐험자로서 나는 세상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목격할 의무가 있다.
<피라네시> p.21
주인공 '나'는 미궁을 탐험하고 기록하는 첫 번째 사람이다. 이어 등장하는 '나머지 사람'은 주인공과 함께 미궁을 연구하는 두 번째 사람이다. '나머지 사람'은 위대하고 은밀한 지식이 미궁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어느 날 나머지 사람이 피라네시에게 "배터시"를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그날 피라네시는 이상한 이미지를 감각한다. 잿빛 하늘에 검정색으로 휘갈겨 쓴 듯한 글자와 새빨간 뭔가가 깜빡이는 장면이 보였고 요란한 소음과 금속성 맛이 혀에 느껴졌다. 감각들을 붙잡으려는 순간 그것들은 꿈처럼 희미해지다가 사라져버렸다. 피라네시는 과연 누구인가, 자신의 이름인 피라네시를 감각할 때마다 느껴지는 이질감은 또 어떤 이유인지, 소설은 하나씩 밝혀낸다. 그러다 '16'이라는 미지의 사람이 미궁에 나타나고 '나머지 사람'은 피라네시에게 그를 멀리 하라고 경고한다.
모두들 진보라는 개념에 사로잡혀서 무엇이든 새것이면 옛것에 비해 우월한 것이 틀림없다고 여긴 게야. 마치 가치라는 것이 연대순으로 생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네! 하지만 나는 고대의 지혜가 그냥 사라졌을 리가 없다고 느꼈네. 그냥 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 그런 일은 사실 불가능해. 나는 그것이 에너지가 세상에서 빠져나가는 일과 비슷하다고 상상했고, 그렇다면 이 에너지가 어딘가로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네. 바로 그때 다른 장소들, 다른 세상들이 분명히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지. 그러해서 나는 그곳들을 찾기로 했네.
<피라네시> p.130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미궁에 나타났다. 피라네시는 그를 예언자라고 불렀다. 그는 과거에 존재했던 '고대의 지혜'들이 세계의 틈을 통해 어딘가 다른 세계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고, 그 지류 세상이 바로 피라네시, 미궁이라고 했다. 그리곤 '16'이 올수록 위험해지는 것은 피라네시가 아닌 '나머지 사람'이라고 예언을 하고 떠난다. 예언자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6'이 미궁을 다시 찾아왔다. '16'은 미궁 안에 있는 둑을 막기 위해 쌓아둔 조약돌로 글자를 만들어 피라네시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 글자들을 읽는 순간 피라네시에게 어떤 이미지가 기억이나 환영처럼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작성했다는 것도 잊고 있었던 일지들을 찾아 하나씩 비밀을 깨쳐간다. 미궁이 가진 비밀은 무엇인지, '나머지 사람'과 '16' 중 진짜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작가는 소설의 몇 십 페이지를 할애해 웅장한 미궁을 설명한다. 독자의 인내심이 살짝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인내가 무한히 가치롭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작가는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도화지 위에 아주 조금씩, 섬세하고도 촘촘하게 스케치를 시작한다. 선과 면들이 모여 완벽하리만큼 아름다운 미궁을, 문장만으로도 나를 압도하는 환상적인 그 공간을 완성하고 나면 이내 엄청난 반전이 시작된다.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와 아름다운 문장의 <피라네시>, 이 속에 담긴 아름다움, 엄청난 반전 그리고 이것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즐거움과 기쁨을 누려 보시길.
수재나 클라크 님의 피라네시 입니다.
100퍼센트 페이백 작품으로 구매하게 됐어요
SF천재작가의 귀환이라는 소개 문구도 있었고, 페이백도 가능했기에 구매했어요
다양한 작품이 이벤트에 나와서 정말 좋고요 다양하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아요
생각해보면 SF에 관한 글을 별로 본 적은 없는거같아요 영화로는 많이 접해봤지만ㅎㅎ
덕분에 잘 봤습니다
수재나 클라크 작가의 피라네시 리뷰입니다. 페이백 이벤트로 대여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데뷔작으로 휴고상, 세계 환상 문학상 등을 수상한 SF 작가 수재나 클라크가 16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입니다. 돌로 만들어진 기묘한 미로 공간에서 기억을 잃은 채 홀로 살아가고 있는 ‘피라네시’라는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아름다운 문장, 흥미로운 서사, 놀라운 반전이 함께 하는 책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수재나 클라크 작가님의 <피라네시>는 약간 난해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세계관이 나와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서술 형식도 특이하게 느껴졌고 환상적이며 미스터리한 공간 묘사를 따라가면서 점점 또 다른 세상에 대한 비밀도 알 수 있었습니다. 잘 읽어본 적 없는 장르이기는 했지만 공간을 통해 인간의 심리에 대해 생각해봤던 것 같아요,
시종일관 몽환적이고 멋진 세계관에서 여행하는 기분이어서 읽는 내내 뭔가 들뜬느낌이었다. SF소설이라고 해서 그저 우주나 행성간 여행 그런거만 생각했는데 뭔가 판타지소설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 마저도 예상하지 못한, 못할 세계관이어서 끝까지 재밌게 읽었다. 대여 이벤트로 읽었지만 나중에 기회가된다면 소장해서 다시한번 천천히 읽고 싶은 책이었다.
수재나 클라크의 피라네시 리뷰.
백퍼센트 페이백으로 구매한 책이다. 재미없어도 본전이니 편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평소에 에스에프물을 즐기지 않아 기대도 딱히 없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출간, 수상도 여러번.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 지 약간 궁금하긴 했다.
재밌다고 하기엔 부족한데 한번쯤 읽어보는 건 괜찮을 듯 하다. 묘한 분위기에 반전도 있으니.
흐름 출판사에서 나온 수재나 클라크 작가님의 피라네시입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으니 유의해주세요. SF물은 잘 모르지만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생소한 분야라 초반에는 읽는 속도가 더뎠는데 뒤로 갈수록 설정이 머리속에 인식되면서 조금 빨리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영상이 눈앞에 펼쳐지듯 상상할 수 있는 면이 좋았습니다. 난해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