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 한마디
호스피스 전문의가 다양한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며 기록한 책. 레이첼 클라크는 죽음 앞에서 최선을 다해 일상을 지켜간 사람들에 주목했다. 저자의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드라마인 이 책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는다. - 손민규 인문 MD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불치의 병을 앓는 말기환자를 대상으로 한 호스피스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 스피스란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 임종환자들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희망 속에서 가능한 한 편안한 삶을 살도록 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총체적 접근을 의미한다.’라고 정의합니다. ‘호스피스(hospice)’와 ‘병원(hospital)’은 환대(hospitality)와 마찬가지로 호스페스(hospe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하였는데, 호스페스에는 ‘집주인’과 ‘손님’ 혹은 ‘낯선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영국의 공중보건의사이자 완화의료전문가인 레이첼 클라크가 완화의료현장에서 다양한 말기환자들의 임종과정을 돌본 경험과 특히 암에 걸린 아버지와의 작별하는 과정을 차분하게 기록한 완화의료의 교과서 같은 책입니다. 작가는 영국의 시골마을 윌트셔에서 지역보건 전문의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진료소에서 환자의 입장을 고려하며 진료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자랐습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전공하고는 시사 기록물을 제작하는 기자로 일하면서 알카에다, 콩고내전 등을 취ㅐ하였습니다. 1999년 런던에서 일어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폭발사건에서 구사일생 목숨을 건지는 사고를 겪으면서 뒤늦게 의학의 길에 투신합니다.
의사가 된 다음에는 응급실 근무를 거쳐 완화의학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에 중요하며, 생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중요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평온하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때까지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하여 돕겠습니다.(214쪽)”라는 완화의료 운동의 창시자인 데일 시슬러 손더스의 말을 인용하는 등, 완화의료의 정수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저자는 “호스피스에는 용기와 연민과 사랑하는 마음 등 인간 본성의 선한 자질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존재한다.(230쪽)”라고도 말합니다.
‘외투를 입히다. 덮어 감추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펠리에어(palliare)에서 유래한 완화의료(palliative medicine)의 1차 목표는 죽음의 증상을 숨기는 데 있음을 암시한다고도 하였습니다. 저자가 완화의료 전문가가 된 것은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환자중심의 진료를 해온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대장암에 걸려 죽음을 맞게 됩니다. 간호사인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의 임종을 돌보기까지의 과정이 이 책에 담겨있습니다.
저자는 아버지가 건강하였을 때 ‘죽음 조약’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저자가 의사가 되어 모르핀을 처방할 권한을 가지게 되었을 때 혹시 아버지가 불치의 병에라도 걸리면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즉 조력자살을 당부한 셈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는 두 사람 모두 죽음 조약보다는 완화의료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생긴 불안감에서 죽음조약을 맺었지만, 대장암이라는 불치의 병을 얻고서 죽음을 받아들인 덕분에 남은 순간을 음미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죽는 것이 두렵냐는 저자의 질문에 “아니다. 증상은 두려울 수 있지만 죽는 건 두렵지 않아. 손주들이 자라는 모습을 더 지켜보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 사는 데는 더 미련이 없단다. 이만하면 잘 살았으니까.(344쪽)”라고 답합니다.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여 초연하게 죽음을 맞는 경지에 도달한 것을 보면 저자의 아버지는 득도를 한 셈입니다. 저도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자는 다양한 책과 영화를 인용하여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었습니다. 저자가 인용한 책들을 읽어볼 요량입니다. 저자가 의학을 공부하면서 경험한 것들은 아버지가 공부하던 시절과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이 나옵니다만, 저자의 아버지의 경험은 저와 비슷한 점이 있어 저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책을 산부인과를 전공하는 작은 아이에게도 추천할 계획입니다.
"통증을 느끼려면 피부에 신경 종말이 필요하단다. 그들은 살갗이 다 타 버렸기 때문에 신경 종말이 하나도 없었어. 그러니 통증을 느낄 수 없었던 거야. 마음을 푹 놓고서 그냥 웃고 떠들었다니까. 사고를 용케 피한 줄 알았던 거야."
아버지의 말투와 태도가 왠지 평소와 달랐다.(-34-)
죽은 자들 주변엔 말 못 할 비밀이 소용돌이친다는 것.의사는 목소리가 아니라 감정과 본능을 감춰야 한다는 것, 어떤 감정도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 감정은 곧 미숙함을 상징하기에 무시하고 부정해야 한다는 것, 죽음을 마주했을때 취약성을 드러내면 의학계의 골칫거리로 전락한다는 것. (-82-)
나는 가슴이 찌르르 저렸다. 문득 그도안 내 아이들이 잠깐씩 아팠던 때가 떠올랐다.아이가 크리켓 고으로 머리를 맞았을 땐 경막하 출혈을 의심하며 초조해했고, 무릎이 부었을 땐 화농성 관절염이 아닌가 걱정했었다. 이번 이도 자식에 대한 부모와 지나친 염려로 끝나길 간절히, 간절히 바랐다. (-164-)
간신히 호스피스 병도에 도착했을 땐 도처에 죽음의 그림자 때문에 또 불안했다. 의사가 병을 치료하고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면 이 모든 노력이 무슨 소용인가? 죽어 가는 환자를 위로하기 위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아니면 피해야 할까? 죽음의 문턱에 이른 환자의 쇠약한 몸이 나한테 너무 벅차지 않을까? 완화 의료릐사들은 날이면 날마다 온갖 비참한 모습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환히 웃을 수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호스피스에 들어설 때마다 안팎으로 음산한 이곳에서 나를 빼내 줄 CPR 호출이 울리길 간절히 바랐다. (-210-)
3분 이상 호홉이나 신음이 들리지 않는다.
3분 이상 맥박이 잡히지 않는다.
동공이 고정되고 확대되었으며 빛에 반응하지 않는다.
촉진할 수 있는 심막 조율기가 없다.
고통스러운 자극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환자는 사망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나는 을 고개를 숙이고 내가 단순히 의사가 아니라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떠올렸다. (-284-)
아버지가 떠난 지도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장례식을 치르고 업무에 복귀했을 때, 나는 다른 의사가 되어 있었다.이젠 슬픔의 맛과 무게를 알았다. 병실에 들어서면, 조만간 떠나보내야 할 사람의 소중한 생명에 매달리는 가족들의 퀭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슬픔도 사람처럼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슬픔의 고통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임을 나는 이제 속속들이 알았다. (-365-)
의사도 사람이고, 사람은 인간으로서, 고통과 죽음을 감지하면서 살아간다.인간은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드러낼 때, 자기 스스로 인간임을 자각하면서 살아가곤 하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의사였던 아버지를 보면서 자란 저자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치료 완화를 하면서, 삶을 긍정하게 되고, 그들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돌아보면 내일 갑자기 내 주변에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참 슬픈 기분이 들게 된다.슬픔이 고통이 되고, 힘든 기억이 남게 되는 것이다. 하루 아침에 내 가까운 사람을 볼 수 없다는 것으로 우울감을 느끼고, 슬픔을 안고 가야 한다. 이 책을 읽게 되면, 내 삶을 돌아보게 되며, 의사로서, 안고가야 하는 숙명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죽음을 기억한느 것은 고통이다. 즉 일반인이 결코 느낄 수 없는 미지의 고통을 느끼면서, 살아가며, 인간의 본능에 대해서, 물고기가 역영하는 것처럼, 자신의 본능에 역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매일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의사는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방식으로 의사의 삶을 들여다 보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전 과정을 지켜 보았던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으면서, 스스로 의사이면서,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잃지 않고 있었다. 죽음은 인간이 나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 보았던 수많은 환자들의 쾡한 모습들을 외면해왔던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성찰하게 되고, 죄책감을 느낄 수 있게 되다. 내 안의 숨겨진 교만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누그러질 수 있게 된다. 즉 환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죽음을 보고 있어야 하는 환자의 보호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즉 작가는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생각과 경험과 판단과 결심이, 아버지의 죽음이후 서서히 바뀔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을 마주하며,마지막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계획하거나 준비할 수 있게 된 거다. 작가가 자신의 죽음 끝자리에 ,항암과 방사선 치료에 의존하면서, 글을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것처럼, 죽음이 내 앞에 당장 다가온다 하여도, 그것에 굴하지 않기 위해서, 어떤 결단이 필요한지, 내 삶의 끝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주어진 삶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고 있다.
전체 내용을 보시려면 ISO 국제인증전문기관 : 네이버카페(naver.com) 사이트 를 방문하시면 됩니다.
죽어 감은 곧 살아감과 같다.
여기선 아름답고 달콤 씁쓸하며 부서지기 쉬운 게 인생이라는
삶의 본질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얼마 전 가슴을 졸였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갑자기 어지럼증도 심하고 식은땀에 3주 동안 몸무게가 5킬로가량 빠지셨다. 지인과 통화 중에 뇌출혈 증상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즈음에 주변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분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아버지 가까운 분 역시 뇌출혈로 뇌사상태로 일주일 정도 계시다가 결국은 돌아가신 참인지라 급하게 응급실에 가서 MRI와 CT를 찍었는데 다행히 아무 이상은 없었다.(결국은 코로나 백신 2차 이상 증상이었다.)
그 며칠 간의 일을 겪으며 정말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언제나 건강하게 내 곁에 계실 것 같은 아버지의 부재를 잠깐이나마 생각하다 보니 정말 못 했던 것만 생각이 났다. 둘째가 태어난 후, 전보다 더 부모님(특히 아빠)의 손길을 많이 받으며 살고 있다. 갑자기 아이가 아프거나, 뭔가 일이 생기면 늘 찾게 되는 5분 대기조인 아버지.
사실 이번 일을 겪으며, 언젠가는 맞이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타인의 글을 통해서나마 간접경험하고 나 역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의사인 아버지를 둔, 호스피스 의사 레이첼 클라크의 글이다. 죽음에 관한 글, 호스피스 의료진의 글을 여러 권 봤지만 이 책은 아마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의사인 아버지, 간호사인 어머니의 직업을 곁에서 지켜봤던 레이첼은 기자와 의사의 삶을 두고 고민을 했었다. 그런 그녀 기자를 포기하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에는 죽을 뻔한 여러 건의 큰 사고가 있었다. 그녀가 선택해야 할 상황에서 아버지는 그녀에게 의사로 살기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레이첼이 옳은 선택을 하도록, 그녀가 질문을 해 올 때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 줬을 뿐이다. 다소 늦은 나이에 의학도가 된 레이첼은 문제가 생기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한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지혜로운 대답을 건넸다. 평생을 의사로 살아왔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였기에 건넬 수 있던 조언이었다.
책의 전반부에는 레이첼이 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게 된 이야기, 의사가 되고 겪었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실 나 역시 병원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병원 공포증을 가진 사람이다. 병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환자가 실려온 응급실,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CPR을 받는 장면이다. 다분히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 때문인지, CPR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드라마틱한 소생은 5명 중 1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아버지 이야기와 함께 자신이 호스피스 의사로 살면서 만났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호스피스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다. 사실 환자의 입장에서 호스피스로 이동한다는 것은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호스피스에서 일하며 자신이 만나고 보았던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그리고 자신 또한 사랑하는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그동안 의료진으로 봐왔던 죽음과 가족의 죽음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의 마지막을 위해 일했지만 말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 책을 썼지만, 그 안에는 아버지를 비롯해서 그녀가 만났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더 많다. 정말 찰나의 차이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사는 끔찍한 사고의 현장에서부터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할아버지, 아내를 두고 떠나는 남편, 아직은 죽음을 논하기에 너무 이른 19살 청년에 이르기까지 책 속에는 다양한 모습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록이 담겨있다.
책을 읽으며 의사라는 직업과 환자를 대하는 태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 등 참 와닿는 부분들이 많았다. 가슴 아픈 사연과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해가 되는 삶의 이야기가 가득한 책을 통해 저자의 말대로 죽음이라는 또 다른 삶을, 살아감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에 중요하며,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중요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평온하게 생을 마치도록, 그리고 그때까지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이 책은 한 완화치료 전문가의 진심 어린 고백록이다. 저자가 왜 완화치료 전문가가 되었는지,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완화치료 과정을 거쳐 이별하는 순간들을 책 속에 고스란히 담아놓고 있다. 저자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감정들이 행간에 그대로 담겨있어, 숭고함 마저 느낄 정도로 감동적인 책이었다.
영국의 한 시골 보건 전문의의 딸인 저자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환자를 돌보는 걸 보며 성장했다. 하지만 그녀는 의사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저널리스트가 되어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어느 날 그녀는 런던에서 발생한 테러 현장에 단 몇 초 사이로 목숨을 건지게 되고 자신의 앞에 참혹하게 죽어간 이들을 보며 20대 후반 늦은 나이로 다시 의대에 진학한다. 치열한 의료현장에서 그녀는 병원에서 죽음을 다루는 냉정하고 차가운 방식을 목격한다. 죽음이 무뎌지고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더 이상 관여할 가치가 없는'존재로 여기며 '완화 의료 쓰레기통'으로 치우라는 의사를 보며 그녀는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예비 시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만난 완화의료팀의 의료 행위를 보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다.
호스피스보다 두려움과 금기로 둘러싸인 건물은 없다. 환자들은 흔히 호스피스 병동을 삶의 이야기가 뚝 끊기는 벼랑으로 여긴다. p208
도처에 죽음의 그림자가 깔린 호스피스 병동. 진로를 결정했지만 그녀는 더 이상 병을 치료하고 개선시킬수 없는 노력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죽음의 문턱에 있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의 두려움과 달리 그곳은 죽음이 아닌, 삶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환자들은 그곳에서 더 이상 힘겨운 싸움을 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마무리했다. 누군가는 건강할 때 쓰지 못했던 시를 썼고, 누군가는 브릿지 게임을 했으며, 그리고 누군가는 결혼식을 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그렇게 자신들의 삶을 살아갔다.
완화 의료는 임박한 죽음이 아니라 삶에 집중한다. 특히 배려, 용기, 사랑, 자비 등 한 개인의 마지막 나날을 충만하게 해 주는 가치들에 초점을 맞춘다. 혼란스럽고 지저분하고 지독하게 애달플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곳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삶을 이어가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날, 아버지의 대장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젠 아버지의 완화치료 의사가 된 것이다. 그 과정은 '사적인 감정과 전문적인 이성이 지저분하게 충돌하며' 그녀를 힘들게 한다. 의사라는 전문가로서 아버지를 돌보지만 '딸'의 심정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과정은 읽는 내내 눈물을 쏟게 한다.
"남은 나날을 '왜 나지? 도대체 왜 나야?'라고 따지면서 낭비할 수도 있어.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아니 우리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어가고 있어. 하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기 전까지는 여전히 살아있잖아. 그러니까 나는 그저 묵묵히 내 삶을 살아갈 거야 p366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는 우리와 같이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들과 우리가 다른 점은 우리는 영원히 살 거처럼 현재를 대충 흘려보내지만, 그들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걸 알기에 평소 하고 싶었던 걸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간다는 점이다. 그곳엔 진짜 최선을 다해 죽을힘을 다해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갑자기 어디선가 접했던 문장이 떠오른다.
"죽음이 곁에 바싹 붙어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삶을 사랑할 수 있다."
이 책은 오늘의 나와 내 주위를 다시금 애정 어린 마음으로 돌아보게 만들었다. 우리 모두가 태어남의 숙명으로 맞게 될 죽음... 인생의 끝에서 돌아보는 내 인생이 조금은 덜 후회되게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본다.
저자는 영국의 공중보건의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완화의료전문가"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많은 의사들이 "환자를 위한 진정성이 부족하다"며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저자는 (어디에서나 사정이 비슷하지만) 여건이 매우 열악한 "응급실 근무를 자처하며(책 앞날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들을 도우며 살아 왔습니다. 이 역시 어느 나라나 사정이 비슷한데, 적지 않은 의료인들이 "의술은 인술(仁術)"이라는 명제와는 많이 어긋나게도 "환자를 사람이 아닌, 고쳐야 할 장기나 부속품 정도로 취급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개탄하며, 그 누구보다도 의료인들의 도움이 필요한, 죽음에 임박한 환자들에게 각별한 보호를 베푸는 호스피스 업무에 종사해 왔습니다. 병원이라는 뜻의 영단어인 호스피탈과, 지금 이 맥락에서의 "호스피스"는 서로 발음도 비슷하며 매우 닮은 겉모습입니다. 의료 서비스의 본원이 바로 "환대, 보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은 일반 시민이 병원에 혹시라도 가게 되면 기대할 법한 서비스의 본질이 바로 이 지점에 있으니 책은 어찌 보면 우리 독자 모두의 가장 첨예한 관심사 중 하나를 다루는 지도 모릅니다. 우리 누구나 죽음을 피해갈 수 없으니 말입니다.
특히 저자는 아버지, 생전에 그 누구보다도 깊은 감정적 유대를 지녔던 부친이 말년에 대장암으로 큰 고통을 겪었기에 이 호스피스 업무에 특별한 사명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부친께서는 어찌해서건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하지 않겠다는 결의로 독한 (화학) 항암제 처방을 견뎠습니다만 2017년에 안타깝게도 기어이 타계하고 말았습니다. 생전에 무척 음악을 사랑했던 아버지.... 유명한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괴테(의 고전들)를 영국인이 읽을 때에는 번역이 필요하지만, 베토벤의 걸작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저자는 아마도 환자나 죽음 직전의 사람들에 대한 보호와 치료 역시 같은 영역이 아닐까 암시하는 듯도 합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수험생 시절 그녀는 면접을 볼 때 "자 레이첼, 어떤 동기로 의학을 공부하기로 했습니까?"라는 면접관들의 질문에 무척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우리하고는 의학교육기관에의 입학 과정이 많이 달라서 그녀는 전직 방송국 직원이라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막상 방송국에 입사하고 보니 "일이 너무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 같으면 아마 반대였을 겁니다(점수에 맞춰 의대에 들어오고 보니 공부가 너무 힘들어 방송국 일로 진로를 바꾼....").
의학 교육 분위기도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듯합니다. 임상에서 무엇이 환자에게 최상의 방법인지에 대해서도 레이첼은 (선배 의대생, 전공의, 수련의도 아닌) 무려 교수한테 과감하게도 반대 의견을 수시로 표현합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 당돌한 의대생에게 어떤 반응이 돌아왔겠습니까? 또 저자는 의대생 시절 자궁경부암이 의심되어 "치욕적인(p98)" 경험도 하게 됩니다(남성 전문의에게 검사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그녀는 젊은 나이에, 유난히 예민한 감수성 때문이었는지 그저 갑의 위치인 (미래의) 의사로서의 입장만 굳혀 가는 게 아니라 무력한 환자 입장에도 자주 서 보는 체험을 하게 된 듯합니다.
심폐 소생술을 CPR이라 하죠. 일반인들도 의료 드라마, 혹은 그냥 일반 컨텐츠에서도 자주 보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CPR을 두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잔인한 과정(p127)"이라며 아주 비판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심정지에 빠진 이들 중 CPR을 통해 소생하는 이들은 1/5" 정도뿐이라고 하며, 의사들 역시 뻔히 알면서 정면 논의를 회피하는 이슈라고 말합니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의 멋진 모습은 거의 과장이거나 환상에 가깝다고 하네요.
천식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은 레일라라는 19세 소녀를 치료한 경험도 자세히 소개됩니다. "진짜 나는 의사들이 미워요. 멍청한 환자 입장은 돌보지도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처리하잖아요?(p153)" 사실 소녀가 분노하는 건 의사들이라기보다 그들의 차갑고 냉정한 태도일 것입니다. 백혈병 재발 때문에 죽음의 문턱을 여러 번 넘나든 앨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톰(이란 남성 환자)은 밤에 잠도 못 자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당시 저자는 그의 고통에 더 깊이 공감해 주지 못하고 그저 사무적으로 대했을 뿐입니다. 무엇이 과연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었을지 당시의 일을 저자는 다소 냉소적으로 회고(p187)합니다.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며 우리는 이런 진실을 그저 남의 사례에서나 합리적으로 이해할 뿐입니다.
노인 사이먼과 그의 딸을 대할 때 저자는 더 성숙하고 더 공감 잘하는 의사였습니다. 사이먼은 의사들에게 회의적인 태도를 가진 환자였으며 이런 경우를 능란히 다루는, 그래서 그와 더 깊은 소통에 마침내 성공하는 저자의 변모를 지켜 보는 건 독자로서 또다른 재미입니다. 결국 환자는 의사한테 깊이 의존하게 되어 있습니다. 환자에 더 밀도 높게 공감하는 건 결국 의사의 능력이고 성취고 보람입니다.
그리고 이제... 대장암 진단을 받은 아버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방송국 일도 그녀는 처음에 오지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겠다는 의도에서 지원한 거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과 현실은 크게 다달랐던 거죠. 이제 그녀는 아픈 사람을 돕기 위해 그 힘든 공부를 마치고 까탈스러운 환자들을 두루 겪고 자랑스러운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아픈 아버지를,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를 만납니다. 이런 운명을 맞기 위해 그녀는 그 먼 길을 돌아온 것일까요? 인생은 참 얄궂습니다. 그러나 당사자가 아닌 제3로서 접하는 이런 스토리는 언제나 또 감동적입니다.
9988234라는 숫자를 들어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구십 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 삼일만 아프다 죽고 싶은 마음을 저렇게 숫자로 표현해 놓은 우리네 어른들의 마음이 안타깝게 보인다.
인간으로 태어나 삶을 살다 가는 이상 죽음이란 대명사를 벗어날 수는 없는 운명이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태어나면서 부터 죽음을 향해 발을 내 딛는다고...
생기 발랄하고 성장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흔히 노년이라 지칭하는 연세의 어른들이 마주하는 삶의 모습 속에는 죽음에 대한 그림자들이 적잖히 도사리고 있음을 살필 수 있으며 우리는 그런 어른들이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모습을 보며 삶에 대한 지혜와 죽음에 대한 시선에 눈을 뜬다.
이 책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인생의 마지막을 앞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영국 공중 보건의이자 완화 치료전문가인 저자 '레이첼 클라크'의 삶에의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책이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처럼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약속된 시간과도 같지만 아무도 그 시간을 알 수 없음이 커다란 비밀이라 할 수 있다.
누구의 죽음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 이지만 나를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나의 가족들의 죽음과 관련해서 더욱 슬픔을 크게 느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그 사람을 사랑한 만큼 아프다는 것처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으로 시련을 겪기도 한다.
죽음에 대한 이해, 지식, 앎 등 그 무엇이라도 우리는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삶의 원벽한 차단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죽음이고 죽음 이후의 문제는 삶과는 별개의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의 삶을 들여다 보면 별것 아닌 삶에 그야말로 모든걸 바치고 있는 우리기에 삶의 다양한 모습은 꿈으로 그리곤 하지만 죽음의 다양한 모습은 왜 그러하지 않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역설적으로 죽음을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명확히 할 수 있다면 삶에 대한 수용성이 더욱 크고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판단도 해보게 된다.
영원처럼 살것 같아도 찰나처럼 살다가는 우리의 삶이기에 삶의 매 순간들을 명확한 선택으로 결정짖는 힘을 우리의 죽음에 까지 이을 수 있다면 온전히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권을 나 스스로 가지고 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호스피스 병동이 어떤지를 보지 못해서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저자의 말처럼 두려움과 금기로 둘러싸인 곳이라면, 왜 일까? 마치 내일 죽을 사람이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같아 그저 살아있는 식물인간 취급하는것 처럼 느껴져 갑갑함에 목이 마르다.
그야말로 삶이 끈기는 곳이 호스피스 병동이라면 존엄사 혹은 자기결정권을 수락한 안락사 등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라도 부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해보고 싶다.
저자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아버지의 투병과정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의 마지막 삶의 시간을 의미있도록 도와주어 생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한층 더 깊이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어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의식에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남겨준다.
**네이버카페 책을좋아하는사람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출판사 후원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 메이븐 / 레이첼 클라크]
응급실
. 흐느끼고 소리치고 욕하고 헐떡거리고 항의하고 간청하고 신음하는 온갖 소리가 지옥에서 들려오는 사운드트랙 같았다. 나는 보건부 장관의 멱살을 붙잡고서 그를 지옥 같은 복도로 데려오고 싶었다.
효율성의 응급실
. 경제적 효율성 이라는 미명하에 비용을 줄일 대로 줄인 보건 서비스의 현실을 눈으로 직접 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고개를 숙이고 걸음만 재촉했다. 한편으론 당혹스럽고, 한편으론 근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성마른 보호자에게 화를 입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응급실 처방
. 유리벽 안쪽에서 간략하게 인수인계를 받았다. 벽 너머로 보이는 응급실 풍경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닉은 침착한 태도와 리더십으로 대다수 수련의에게 존경을 받았다. 그는 똘똘 뭉쳐서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낼 수 있게 우리를 이끌었다.
응급실과 인생
. 응급실에선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음. 황당무게한 일, 소름끼치는 일, 비통한 일이 시시각각 펼쳐짐.
. 응급실은 변함없이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인생은 짧고 믿기 어려운 정도로 달콤하지만,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제목만 들어도 마음이 물컹해짐을 느낀 책이다. 유독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것을 접하면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의 줄거리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전문의로 일하는 저자가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4기 암을 상태를 알게 되고, 비록 자신은 고통만 연장하는 생명 연장 치료에 반대하는 의사였지만 각종 화학요법을 사용해 아버지를 치료하고자 했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웠던 아버지는 결국 화학 치료를 중단하고 엄마와의 여행, 데이트, 추억 장소 방문을 하면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며 회고하다 돌아가신다. 아버지가 암에 걸려 투병하다 돌아가신 이후 저자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후회 없는 삶의 태도를 배운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호스피스 의사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깨달은 삶의 의미를 이야기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읽기 전에 에세이라는 점이 더 뜻깊었고, 화학 치료로 연명하던 아버지가 자연스러운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이루고 정리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던 책이다. 왜 마지막이라는 수식이 붙을 때 일상의 하나하나가 소중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걸까? 사람이 죽는 것은 순서가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래를 위해 오늘을 투자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했다.
이 책을 읽을 때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죽음은 어떨까 상상했다. 이상적이 죽음, 가치 있는 시간은 무엇일까?, 나는 남은 시간을 알 수 있다면 무엇을 하며 지낼까? 끝내 결론은 일상에서 오는 소소한 행복이 가장 크다는 것과 죽음이 바로 앞에 있기에 오늘을 가치있게 보내기보다는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브리즈 게임을!"이라며 일상을 마지막으로 이어간 도로시처럼 보내는 것이 가장 좋지 않나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죽음에 앞서 이겨내보고자 최선을 다했고, 정리하는 시간이 주어졌고, 마지막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떠났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상적인 죽음이라고도 생각했다.
돈과 명예 같은 물질적인 것이 목표가 되는 삶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
매체를 통해 호스피스 병원과 관련된 이야기를 잠시 접했던 기억이 난다.
어쩜 모두가 두려워 할 죽음에 대해 그 순간을 맞이 한 환자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호스피스 직원분들의 밝은 모습들과 따스한 눈빛... 그리고 그분들의
보살핀 덕분에 병상에 누워계시지만 환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였다.
순간 이곳에서 삶의 마무리를 하시는 분들은 그래도 마음의 위안을 받으시며 남은 시
간들을 보내게 되시겠구나. 이런 시간을 필요로 하는 다른 분들도 호스피스 병원을
방문할 수 있도록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잠시 갖였었다.
호스피스 병원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호스피스 의사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깨달은 삶의 의미라는 부제를 담고 있는 책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를 읽게 되어서 였다.
의사인 아버지를 둔 저자는 아버지가 환자들을 치료하는 헌신적인 모습을 보고 자랐으
면 환자에 대한 마음 만큼이나 저자의 아버지는 가족들에 대한 사랑도 지극해서 저자
는 어린시절의 따스한 추억들을 시작으로 아버지의 이야기와 함께 자신이 어떻게해서
늦은 나이에 의사가 되었는지 그리고 선뜻 가기를 망설이는 호스피스 병동을 어떻게해
서 자진해서 가게 되었는지등에 대해 자신의 성장과정을 통해 들려주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추억편에서는 머릿속으로 상황들을 그려보며 흐뭇해졌고
의사로써의 길을 가는 편에서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심이 생겼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면서 마주했던 환자분들에 대한 이야기편에서는 안쓰럽기도
하고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지만 그분들이 하루하루의 시간들을 보내는 모습들과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뒷받침 되어진 그분들의 마음가짐을 죽음의 문턱에 선 저자분과
아버지 그리고 가족들의 몇칠간의 이야기편에서 다시한번 되내여 보게 되면서 마음이
뭉클해지곤 하였다.
아무렇지않게 보냈던 오늘이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랬던 내일이였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나의 오늘을 그리고 무의미하게 보내 버린것 같은 과거의 시간들을
떠올려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최근 즐겨본 드라마에 등장하는 의사들은 현실과 큰 괴리감이 느껴지게도 친절은 기본에 인정스럽고 눈물이 많으며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아파하는 마음을 가진 따뜻한 이미지로 그려졌다. 이 책을 통해 또다시 그런 의사를 만나게 됐다.
저자 레이첼 클라크가 의사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영향이 있었다. 그녀는 시골 마을에서 지역 보건의 일을 하면서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테러 현장에서 자신의 목숨을 잃을 뻔한 엄청난 일을 겪기도 했다. 생사가 오갔던 찰나에 목숨과 맞바꾼 일종의 사명이라 느꼈을까. 저널리스트에서 의사로의 직업 전환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루어졌다.
책을 구성하는 두 개의 파트 중 첫 번째 파트에서는 레이첼이 의사가 되어 겪은 에피소드와 거기에서 느꼈던 솔직한 감정들을 다룬다. 앞서 드라마에서 연출하는 의사의 이미지가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고 언급했듯이 레이첼이 의사가 되어 직접 경험한 의사의 세계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환자를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는 감정이 없는 듯한 의료계의 특성에 실망감과 혼란을 느낀 레이첼은 완화 의료를 선택했다. 완화 의료 보다는 호스피스라는 말이 더 익숙한데, 어쨌든 죽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와 가까운 위치이기 때문에 완화 의료를 행하는 의사든 의료를 받는 환자든 주변의 불편한 시선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용기와 연민과 사랑하는 마음 등 인간 본성의 선한 자질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존재하는(p.230)’ 호스피스에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거기에는 죽음 앞에 선 레이첼의 아버지도 포함이 되었다. 의학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레이첼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아버지 또한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들을 마주한 것이다. 아무리 환자들의 죽음을 많이 접한 노련한 의사라 할지라도 가족의 죽음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러나 레이첼이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바는 단순하게 가족을 잃은 슬픔에 대한 감정적인 호소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돌본 수많은 환자들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발견하게 된 진지한 삶의 성찰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은 호스피스 의사가 들려주는 생생한 경험담이면서 동시에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고 삶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자신 또는 사랑하는 이들이 의미 있게 인생의 끝을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참고서 같은 역할을 해 준다.
p.46
아버지는 의학을 인간적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어렸을 땐 아버지를 영웅으로 받들며 빠져들었던 온갖 이야기가 이젠 부녀지간의 친밀감을 상징하는, 좀 더 미묘하고 복잡하고 소중한 형태로 바뀌었다.
p.214
당신은 당신이기 때문에 중요하며, 생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중요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평온하게 생을 마치도록, 그리고 그때까지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