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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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병원 밖의 환자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리뷰 총점 10.0 (2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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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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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픔은 병원에 닿지 않는다”
강원도 왕진의사가 기록한 가장 먼 곳의 통증들


‘아프면 병원에 간다’는 것이 상식인 세계에서는 병원에 닿기조차 어려운 아픔을 짐작하기 어렵다. 의사를 만나러 가는 일이 아픔을 참는 일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소외된다. 왕진의사 양창모의 첫 책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는 한 평 반짜리 진료실 안에선 보이지 않는, 가장 먼 곳의 통증에 대한 이야기다. 가파른 산길과 고개 넘어 도착한 마을들에는 돈이 없어서,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차편이 없어서… 수많은 ‘없어서’ 때문에 집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없어서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이들의 집을 방문하고 그 사연에 귀를 기울이며 저자는 진료실이라는 공간에서 너무 쉽게 제거되는 삶의 ‘맥락’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맥락이야말로 환자를 치료하는 데 꼭 필요한 정보이며 의사와 환자 사이에 흘러야 할 소통의 원천임을 절감한다. 손가락의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할머니의 관절염은 몸 자체가 아니라 한겨울에도 찬물에 손빨래를 할 수밖에 없는 삶에서 오는 것이었다. 하반신 마비로 거동이 어려운 할아버지를 진료실에서만 만났다면 그가 병원으로 가기 위해 엉덩이를 끌면서 큰방에서 현관으로 가는 것, 그걸 위해 집에 있는 문턱이란 문턱은 다 깎아놓은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전공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600회가 넘는 왕진을 통해 한국에서 남의 집을 가장 많이 드나든 의사 중 하나가 된 저자는 치열한 성찰과 따뜻한 시선으로 써 내려간 56편의 글을 통해 말한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것은 ‘질병’이지만 왕진에서 마주하는 것은 ‘사람’이라고.

“잠을 깨우는 소리에 찌푸린 얼굴을 하며 ‘누구요?’ 하던 박 할머니는 막상 우리 얼굴을 보고는 정말 반가운 웃음을 지으신다. ‘어이구, 의사 선생님 오셨네!’ 근 두 달 만에 뵈는 건데도 내 얼굴을 알아보셨다. 1, 2초 동안 사람의 표정이 그렇게 달라지는 걸 보면서 나라는 사람이 다른 이에게 그토록 반가운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막연한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_8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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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찾아가야 보이는 세계
6분의 오디션
추억은 방울방울
멀미
매운 냄새
가까이 오래
가난하지 않다
서로 다른 시계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
대체 불가능한 사람
태장동 할머니(1)-내가 만난 숲
태장동 할머니(2)-거미줄
태장동 할머니(3)-구름의 발자국
숯이 놓인 방
두 가지 마술
말없이 하는 말
따듯한 통증
어둠 속에 있어야 보이는 것들
탁류 속 행복
날개를 감추다
빛나는 여백

2. 어른거리는 얼굴들
민 할아버지의 수난극
쓰잘데기없는 의사
코끼리는 움직일 수 있다
할아버지의 산나물
기적
산소통 없이
주스 한 잔
반성문
후배가 찾아왔다
사라진 구멍가게
메아리
병 주고 약 주는
질문합시다
요양원 풍경
마음의 속도
나를 잡은 항생제
월식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사람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
10분
내 몸이 아플 때

3. 우리를 마중하는 세계
무통 사회
운이 좋다면 노인이 된다
간병을 거부할 자유
지역의사가 보는 ‘지역의사제’
싸움 이후의 시간
의사들의 힘이 나오는 곳
두 종류의 전문가
미세먼지 수치가 말하지 않는 것
황소개구리
혈당 54
오솔길에 대한 예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내릴 수 없다면
작은 공간의 행운
뚜껑 열리는 소리
진료실 문을 열고 나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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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과 높은 언덕 넘어
질병 아닌 ‘사람’을 만나다


몸이 아파 병원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환자와 의사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낀다.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 안에 들어서면 누가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닌데 금방 얘기를 끝내고 나가줘야 할 것 같다. 의사는 좀처럼 환자의 얼굴을 보고 말하지 않는다. 환자보다 모니터의 차트와 사진을 보면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더 많다고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짧은 진료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왕진을 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환자는 ‘한 사람’으로 자신의 삶 속에 앉아 있다. 벽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 하나만 눈에 들어와도 그는 이미 특정 질환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의사에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과잉 진료나 3분 진료가 불가능하다. 왕진이 환자의 입장에서도 물론 필요하지만 의사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왕진을 경험하고 나면 다시 진료실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절대 같은 의사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90쪽)
이 책의 1부 ‘찾아가야 보이는 세계’는 그 왕진이라는 경험이 알려준 ‘진료실 너머’에 관한 기록이다.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는 여든의 노인이 고작 ‘멀미’ 때문에 몇 년째 병원을 못 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말로만 들었을 때는 의아했지만, 높은 고개를 넘어 실타래처럼 꾸불꾸불한 길을 지나다 속이 울렁거려 차를 잠시 세우고 나서야 저자는 노인을 이해하게 된다. 당뇨에 중풍, 치매까지 동반된 남편에게 아침저녁으로 인슐린 주사를 놔줘야 하는 아내는 눈이 침침해 주사기의 단위를 읽을 수 없고, 결국 저자는 이 노부부의 이웃에 사는 다른 당뇨 환자에게 할아버지의 주사를 부탁하고 나온다. 굳어진 무릎 관절 탓에 몇 년간 바깥 구경 한 번을 못한 할머니의 골방엔 지린내를 없앤다고 자식들이 갖다 놓은 숯이 덩그러니 있다. 이러한 삶의 맥락 속에 놓여 있는 환자를 의사가 그저 모니터 안의 차트가 말해주는 ‘질환’으로 치환하기는 어렵다.

“마을 주민들 간의 관계가 어떤지는 통증 주사를 놓아보면 대번에 안다. 통증 주사를 맞고 있던 신 할머니가 그런다. ‘여기 옆집 송 씨도 허리가 아파서 애를 쓰잖아. 허리 아프다면서 일을 할 건 다 해.’ 거기를 가보란 얘기다. 송 할머니 집에 가면 또 그런다. ‘이 위에 윤 씨 있잖아. 그이가 그렇게 무릎이 아픈가벼.’ (…) 서로가 서로를 돌봐준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_42쪽

‘의사 놈들’과 ‘의사 선생님’ 사이
어른거리는 얼굴들


저자가 의사 생활 내내 왕진만 했던 것은 아니다. 2부 ‘어른거리는 얼굴들’에서는 평범한 봉직의로 일하는 동안 마주쳤던 사람들, 고민했던 문제들, ‘의사 놈들’과 ‘의사 선생님’ 사이의 후회와 반성이 때론 격렬하게, 때론 담담하게 그려진다. “2분마다 환자가 들어오는 곳에서 정성 어린 진료를 하려면 인공지능 수준의 판단력과 부처님 수준의 마인드 컨트롤이 동시에 가능해야 한다”(118쪽)고 저자는 말한다. 좋은 의사가 되려는 마음과 달리 한국 사회의 의료 현실은 그를 차갑게 시험한다. 진료실 밖에 환자들이 밀려 있을 때면 당장 앞에 있는 환자를 빨리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며 그는 괴로워한다. ‘의사로서 정말 이게 바닥일까.’ 하지만 그에겐 ‘어른거리는 얼굴들’이 있었다. 아직 냉기가 가시지 않은 봄 산에 올라가 직접 딴 나물을 건네주는 할아버지의 딱딱한 손, 새벽부터 개천 주차장 구석에서 야채를 팔다 병원 문 열자마자 약을 타러 와서는 얼른 가봐야 한다고 재촉하는 할머니의 빠듯한 하루, 오르막길에서 당신 몸보다 더 큰 리어카를 두고 어찌할지 몰라 하는 노인들이 병원까지 걸어왔을 시간…. 저마다 고단한 삶을 살아내려 애쓰며 아픈 몸을 다독이는 이웃들의 풍경은 ‘좋은 의사가 되려면 먼저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마음먹게 만든다.
처음 의사 생활을 시작한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의 이야기도 나온다. 동문 모임에 가서 의료생협에서 일한다고 하면 “그게 뭔데요?”라는 시큰둥한 반응들이지만, 동일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이 받는 것의 절반도 안 되는 월급으로 일한다고 말하는 순간 분위기는 반전된다. 차로 한 시간 넘는 거리를 일부러 찾아와 통증 치료를 받는 노부부가 복숭아를 보내줬다는 이야기에는 무반응이었던 이들이 갑자기 저자를 존경하는 듯 바라보는 것이다. 돈이 지배하는 병원이 싫어서 시작하게 된 일에 대한 가치도 돈으로 저울질되는 아이러니.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뜻’ 이전에 물질로 교환되기 어려운 행복으로 지탱된다는 걸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그리고 3년 후 원주의료생협은 전국에서 동일 질환으로 처방하는 약의 개수가 가장 적은 상위 5퍼센트 병원에 든다. ‘어른거리는 얼굴들’을 보지 못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인 것은 분명하다. 열은 떨어져야 하고 기침은 줄어야 하고 산소 수치는 정상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진료실 안에서 내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환자로서만 있는 것이 아니듯 진료실 안에서 나 또한 의사로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픈 사람과, 그 아픈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또 한 사람이 진료실 안에 함께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질환에 대한 치료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때론 그 상호작용이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환자에게 더 큰 의미가 되고 그럼으로써 의사 본인도 큰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한다.”_180쪽

세상의 중심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고통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드러나지 않는 고통, 보이지 않는 세계 쪽으로 움직여온 저자의 삶은 ‘공고한 엘리트?기득권 계층’이라는 의사에 대한 세간의 관념을 깨뜨린다. “환자들은 진료실을 나가도 환자로서의 삶이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의사의 역할은 진료실을 나가는 순간 끝나는 걸까.”(284쪽) 지금 여기의 공동체에 던지는 저자의 근본적인 질문은 3부 ‘우리를 마중하는 세계’에서 더 명료해진다. 사회적 고통에 대한 태도는 그 사회 자체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그는 말한다. 아픈 사람이 움직일 때 통증이 일어나는 부위에 온 신경을 집중하듯이 사회가 변화의 방향을 정할 때는 그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논쟁의 중심이 됐던 의사 파업과 의대생들의 고시 거부, 지역의사제 공론화 등을 바라보며 저자는 ‘밥그릇 싸움’ 이후의 시간에 대해 묻는다. 국가와 의료의 본질적인 역할이 무엇인지,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 힘이 시민들의 건강에 고스란히 연결되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묵직하고도 날카로운 목소리를 던진다.

“공공의료의 결여가 누군가에게는 추상적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구체적인 고통이다. (…) 지난 수년 동안 할머니의 집을 방문한 사람은 최근의 나를 제외하면 딱 두 사람뿐이었다. 요양보호사와 이상한 사람(병원 브로커로 의심되는 그는 원하지도 않는 한의원 진료를 보게 해서 할머니를 화나게 만들었다). 행정 계획을 세우는 이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여기에 와서 현장을 보는 일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골집에 갇혀 누워 있는 분들의 목소리는 결코 복지 공무원의 책상머리까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_219~220쪽

한 사람의 건강을 넘어 한 사회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아 나서는 저자의 일상은 시민사회 곳곳으로 넓어지는 동시에 ‘가장 아픈 곳’으로 수렴되기를 반복한다. 생활방사능 문제로 시청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고, 골프장 반대 농성을 위해 도청 앞에서 밤새 천막을 지킨다. 아파트 동대표에 홀로 입후보해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최저임금 문제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는 의사의 길과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그는 막다른 골목에 낙심하다 이웃의 손길 하나에 다시 일어서고, 또다시 한계를 실감하는 순간 슬픔에 잠기다가도 ‘마음이 있으면 길은 보인다’고 믿으며 왕진가방을 챙긴다. 보이지 않는 곳에 웅크린 아픔이 있듯 보이지 않는 마을에 이런 의사가 있다. 사랑이니 휴머니즘이니 하는 것들이 떠나간 듯한 시대,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는 사랑과 인간을 믿는 한 의사가 ‘평범한 이웃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다.

종이책 회원리뷰 (21건)

누구의 희생도 담보하지 않는 의료시스템을 만들어 나가자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p*****s | 2021.06.29 | 추천2 | 댓글0 리뷰제목
  각종 건강염려증, 건강정보, 건강식품, 신비한 완치체험 등등을 믿지 않는 지라 ‘아프면 의료면허가 있는 의사가 진료하고 치료하는 병원에 간다’는 질환에 관한 나의 유일한 상식이고 태도이고 해법이다. 판데믹 시절 백신 개발에 대한 어려움과 과정이 자세히 보도되는 미디어 상황을 보면서 나는 이제야 온갖 의학 미신들이 사멸하고 의학과학적
리뷰제목

 

각종 건강염려증, 건강정보, 건강식품, 신비한 완치체험 등등을 믿지 않는 지라 ‘아프면 의료면허가 있는 의사가 진료하고 치료하는 병원에 간다’는 질환에 관한 나의 유일한 상식이고 태도이고 해법이다. 판데믹 시절 백신 개발에 대한 어려움과 과정이 자세히 보도되는 미디어 상황을 보면서 나는 이제야 온갖 의학 미신들이 사멸하고 의학과학적 사고방식이 득세할 것이란 기대를 했다. 내가 기대하는 것이 기대대로 잘 구현된 사례가 드물다는 불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 상황이 어떤지는 다들 아시니까 구구절절 보고는 넘어간다.

 

그러니 내가 보는 세상은 의학과학을 신뢰하는 세상과 그렇지 않은 세상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나 일부러 한 짓은 아니지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염두에 두지 못한 세상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우고 배운다. ‘아프면 병원에 간다’는 상식을 따를 수 없는 이들. 병원에 도착하지 못하는 아픔. 통증보다 더 어렵고 힘든 병원 가는 여정. 열 장도 못 읽고 일단 조금 울었다. 반성과 감동과 안타까움과 속상함과 무심함과 안도와 기타 등등이 섞인 눈물이 났다.

 

“목 디스크로 팔이 저린 김 할머니의 침실에서 너무 낮은 베개를 보았을 때, 허리 디스크로 다리를 들 수조차 없던 박 할아버지가 앉은뱅이 밥상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식사하는 걸 보았을 때, 무릎 관절염으로 오전에 통증주사를 맞고 온 송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방에 걸레질하는 걸 보았을 때.”

 

아주 오래전 진폐증으로 병원을 오는 광부들을 치료해주던 의사가 똑같은 병이 재발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환자들을 돌려보내면서 약을 처방해주기만 하는 자신에 대해, 의료방식의 한계에 대해 무척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일도 떠올랐다. 한 개인이 괴로워하는 것 말고 뭘 더할 수 없게 두는 사회가 함께 원망스러웠다.

 

“시내에서 멀어질수록 방과 방의 경계선이 점점 사라졌다. 여기가 안방인지 부엌인지 거실인지 알 수 없었다. 먹다 남은 찬거리와 음식들이 펼쳐놓은 이부자리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다가 집과 집 아닌 것의 경계선도 점점 사라졌다. 멀리서 보면 집인데 가까이서 보니 움막이었던 곳도 있었고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분들도 만났다.”

 

“돈 없는 환자에 돈 없는 병원.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나는 내게 물었다. 만약 중환자실 입원 기간이 길어져서 입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감당할 수 있는가.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술을 못할 것 같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릴 용기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600회가 넘는 왕진을 통해 한국에서 남의 집을 가장 많이 드나든 의사 중 하나’가 된 저자가 왕진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찰을 이렇게 56편의 글로 만들어 주었다. 의사가 아픈 사람 만난 이야기일 뿐인데 56번 울컥한다.

 

“진료실에서 나는 환자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질환과 마주한다. (...) 정체를 밝히는 데 성공하는 일이 대부분이고 간혹 실패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실패에서 ‘사람’을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궁금해할 여력도 없다. 진료실이라는 창백한 멸균 공간에 환자가 들어올 때 그는 자신의 맥락을 모두 버리고 들어온다. (...) 모든 것이 마술처럼 사라지고 오직 한 가지, ‘증상’만 남는다.”

 

“아마도 할아버지를 위한 20분 진료가 허락되지 않았을 대학병원은 약 부작용을 약으로 치료하려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실력 없는 의사보다도 시간 없는 의사가 더 많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처럼 시간이 많은 의사도 필요하다.”

 

여력이 없다는 글이 핵심이다. 진료대기표를 볼 때마다 절감하는 문제이다. 보호자로 진료실 문 밖에 앉아 나는 진료실 안의 풍경에 난감한 기분이 들 때도 여러 번이었다. 의도하지 않아도 진료 시간에 대기명수를 보면 일인당 배정된 시간 계산이 되기 때문이다. 꼼짝 못하고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여타의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의사들의 근무환경은 모두의 처지를 안타깝고 불편하게 한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야 장의사처럼 나타나서 사망 선고를 하고 가버렸다는 전공의. 그는 결국 그런 수련 과정을 통해 무엇을 체득하게 될까.”

 

가족 친지 중 의료인이 세 명이다. 심장 외과와 응급 의학 분야이니 소위 상대적으로 편할 수도 있다는 분야도 아니다. 보고 들은 일들로 짐작하건대 20살이 되자마자 의학서적을 독파하는 방식으로 학습하고 전문의가 될 때까지 테스트를 치러야하는, 소위 교양과정조차 허락하지 않는 교육시스템은 옳지 않다. 30살이 훌쩍 넘어 어느 날 ‘직업 이외에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휴가는 어떻게 보내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상담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생각해보라는 말 이외에 해줄 말이 없어 몹시 난감하고 마음이 아팠다.

 

“아무런 접촉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 속에 갇혀서 오직 자신의 욕망, 자신의 고민만 들여다보는 사람. 그것이 내가 있었던 의사들의 세계다. 진료실은 의사를 자폐적 세계에 가둔다. 타인의 고통에 누구보다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둔감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에 가능해진다. (...) 진료실이란 공간은 단순히 환자를 증상의 덩어리로 보게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사로 하여금 환자들의 삶에 눈을 감게 만드는 눈가리개 역할도 한다.”

 

현직 의사로서 저자가 제안하는 두 가지 해법을 소개한다. 첫째, ‘의사들의 왕진 제도화.’ 왕진 수가를 현실화하고왕진 주체를 공공의료 영역으로 바꾼다방문진료 전담 센터를 만들고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둘째, ‘고령층의 정치세력화.’ 일상적인 요구를 정치화할 수 있는 어르신 정당이 절실하다.

 

“대학병원에 인턴 수급이 되지 않았을 때 어떤 파국적 상황이 벌어지는지 누구보다도 의대생들이 잘 알고 있다. 의대생들이 승리를 자신했던 것은 그들 스스로, 의료가 공공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 모두가 의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의사들에게 힘이 생기는 것이다. 정부가 의사들에게 군 입대를 공중보건의로 대체할 수 있게 허용한 것도, 의대생들이 의사고시를 다시 볼 수 있는 것도 공공의료에서 일할 단 한 명의 의사가 아쉽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부당하게 부과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온갖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가족 간병과 관련된 제안을 소개한다. 가족의 간병을 묵인하고 방치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비겁하고 비열한 사회이다. 부정적 결과로 발생한 사건을 두고 가족애니 효도니 그 따위 수준의 망발은 부디 누구라도 삼가길 바란다.

 

가족들에게 간병하지 않을 자유를 주지 못하는 사회는 근본적으로 폭력적인 사회다.

우리에겐 가족을 간병하지 않을 권리가 필요하다.

그 권리를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사회가 여건을 보장해야 한다.

내가 그를 간병하지 않더라도 사회가 그를 간병해줘야 한다.

만약 내가 간병을 선택한다면

사회가 치러야 할 공동체의 비용을 아무런 조건이나 장벽 없이 나에게 지불해야 한다.

그래야만 선택할 수 있다.

간병 받는 사람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인이나 가족의 '간병하지 않을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간병을 거부할 자유는 간병할 자유, 간병 받을 자유와 같은 말이다.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치료받고 병원에서 죽어가는 삶, 이 중요한 공간과 시스템에 대한 치열하고 심도 있고 실용적이고 선한 의도를 가진, 무엇보다 ‘누구의 희생도 담보하지 않는’ 방식의 논의와 대안과 정책을 기대한다.

 

“나는 무관하다 말하는 순간 답은 없어진다. (...) 나는 늘 믿어왔다. 한 사람의 이웃이 국가보다 중요하다고. 그렇다면 나는 왜 그 한 사람의 이웃이 되면 안 되는가. 그런 질문들이 길을 만들어줄 것이라 믿으며 나는 다시 왕진가방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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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괜찮습니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줄* | 2021.05.25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지인의 추천으로 구매하게 된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입니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가야한다고 알고 간다. 그게 상식이다. 그러나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가는 것이 아파서 병원에서 진찰 받는 것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다. 교통상의 여건이든 경제적이든 소외된 이들이다... 56가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낫게하는 비법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소
리뷰제목

지인의 추천으로 구매하게 된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입니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당연히 병원에 가야한다고 알고 간다.

그게 상식이다.

그러나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가는 것이 아파서 병원에서 진찰 받는 것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있다.

교통상의 여건이든 경제적이든 소외된 이들이다...

56가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낫게하는 비법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소통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전공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600회가 넘는 왕진을 통해

한국에서 남의 집을 가장 많이 드나든 의사 중 하나가 된 저자는

치열한 성찰과 따뜻한 시선으로 써 내려간 56편의 글을 통해 말한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것은 ‘질병’이지만 왕진에서 마주하는 것은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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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좀 더 편하게 아프고 싶네요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i***a | 2021.05.1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한국에서 남의 집 문턱을 가장 많이 넘나든 의사 중 한 분 이신 양창모님의 에세이.우리나라에도 왕진의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흔하지 않고 큰돈도 벌수없는 일이기도 하죠. 긴 대기 짧은 상담이 당연시 되어 왔고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처방이 이루어지는건 불가능할 수 밖에요.의사가 집에 찾아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집안에서의 생활습관이 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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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남의 집 문턱을 가장 많이 넘나든 의사 중 한 분 이신 양창모님의 에세이.
우리나라에도 왕진의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흔하지 않고 큰돈도 벌수없는 일이기도 하죠. 긴 대기 짧은 상담이 당연시 되어 왔고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처방이 이루어지는건 불가능할 수 밖에요.
의사가 집에 찾아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집안에서의 생활습관이 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으니 환자의 집에 이르는 과정, 그가 사는 곳을 보는것, 그의 가족을 만나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도 모두 의료입니다.
나라에서 왕진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주시면 좋겠어요. 병원까지 가는 것 자체가 크나큰 난관인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아픔이마중하는세계에서 #양창모 #왕진의사 #에세이 #도서리뷰 #한겨레출판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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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0.1%의 의사 히어로!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한**새 | 2021.05.04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책 표지에 보면 산골마을로 들어가는 왕진가방을 든 남자가 보인다.책을 지은 양창모 선생님일 것이다. 그가 들어가는 마을은 어떤 마을일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 에세이는 우리나라의 의료환경을 고찰하는 것과 동시에, 한 사람의 의사로서 '의사란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개인의 흔적이었다.탁상공론에 머물기보다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의 기록이며 공동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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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보면 산골마을로 들어가는 왕진가방을 든 남자가 보인다.책을 지은 양창모 선생님일 것이다. 그가 들어가는 마을은 어떤 마을일까?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 에세이는 우리나라의 의료환경을 고찰하는 것과 동시에, 한 사람의 의사로서 '의사란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개인의 흔적이었다.탁상공론에 머물기보다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의 기록이며 공동체와 인간의 따스함을 소망하는 동네 주민의 소망이었다. 제대로 된 의료교육과 서비스를 받지 못해서, 함께 돕는 공동체가 부족해서질병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받을 수 없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읽는다고 생각했을 때는 너무 힘든 이야기, 너무 슬픈 이야기일까봐 솔직히 두려웠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오히려 마음에 밝은 희망이 생겼다면 과한 표현일까. 상황을 '진단'하고 '설명'하는것에서 그치는 책이었다면 해결할 수 없는 사회의 큰 어둠을 마주한 것 같아 독서 후 무기력한 느낌만이 남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이 만드는 작은 기적들, 위로와 웃음들, 따스함이 곳곳에 담겨있었다. 그래서 독서를 마치고 나서도 막연함에 마음이 무거워지는게 아니라 나도 함께 동참하고 싶다는, 나도 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작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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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나 주사를 잘 쓰는 의사와 병을 잘 고치는 의사는 결코 같지 않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2* | 2021.05.0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살아가면서 의사를 한 번도 마주하지 않고 살기 힘들다. 그리고 내가 여태 만났던 의사들은 모두 병원, 그 의사의 진료실에서였기 때문에 환자를 만나기 위해 진료실을 떠났다는 책 설명이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에 서평단을 신청해보았고 당첨되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저번 주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 엄마께서는 예전에 비해서 의사와 면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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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의사를 한 번도 마주하지 않고 살기 힘들다.
그리고 내가 여태 만났던 의사들은 모두 병원, 그 의사의 진료실에서였기 때문에 환자를 만나기 위해 진료실을 떠났다는 책 설명이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에 서평단을 신청해보았고 당첨되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저번 주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릴 때 엄마께서는 예전에 비해서 의사와 면담할 시간이 늘어났다는 그런 말씀이 떠오른, 이번 주 1분도 채 안되는 진료를 받고 진료실을 나온 내가 생각났다.

짧은 시간동안 환자를 판단해서 처방을 내리는 의사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이었다.


자신이 마주하는 환자들의 상황을 더 자세히 알고 더 잘 치료하기 위해 진료실을 떠난 의사는 환자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모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직접 마주하고 난 뒤부터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며 나에게 전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려주는 책을 계속 읽어가면서 계속 몇 년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재활을 위해서 오는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부터 꼼꼼하게 살펴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수업 때 흘러가듯 나온 이야기였고 그 때는 별 생각 없이 그냥 고개만 끄덕거렸던 것도..)

재활이 그렇게 환자를 이해하며 치료하는 것처럼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이 환자를 살피는 것이라 이해했다.
물론 재활을 받는 환자보다 의사가 마주하게 되는 환자가 더 많기 때문에 모든 환자를 세세하게 살피는 것은 힘들어도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병원을 찾아가기 힘든 환자가 줄어들어 선생님께서 진료실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시간이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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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품이마중하는세계에서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n**t | 2021.05.0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환자가 찾아오는 의사가 아니라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는 의료, 병원 밖으로 왕진을 나가는 춘천 의사 이야기ㅡ가족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아프고 늙은 노인들은 병원 접근이 어렵다. 그러다보니 병을 키우거나, 병원에 가지 않고 약만 투약하면서 중복 투약의 위험에 노출된다. 어렵게 병원을 찾더라도 병원 컨베이어벨투에 올려진 이후 부터는 사람이 아닌 사물로 간주된다한 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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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찾아오는 의사가 아니라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는 의료, 병원 밖으로 왕진을 나가는 춘천 의사 이야기


가족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아프고 늙은 노인들은 병원 접근이 어렵다. 그러다보니 병을 키우거나, 병원에 가지 않고 약만 투약하면서 중복 투약의 위험에 노출된다. 어렵게 병원을 찾더라도 병원 컨베이어벨투에 올려진 이후 부터는 사람이 아닌 사물로 간주된다

한 사람의 이웃이 국가마다 중요하다고 공공의료를 이야기하면 상대는 효율성으로 대답한다. 의사는 공공재라고 하지만, 돈이 되지 않는 의사는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모순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병원 밖에서 한 사람의 인격체인 환자를 만나게 된다.

환자 역시 능동적으로 병원 시스템을 대할 필요가 있다. 중복 투약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처방전을 2개 받아 1장은 보관하고, 의사와의 상담 전에 질문 리스트를 만들어 3분 상담을 허투루 보내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불편한 사람이, 문제점을 발견한 사람이 움직이고 행동할 수 밖에 없다

#아픔이마중하는세계에서 #양창모 #공공의료 #증정도서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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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우리도 언젠가 운이좋으면 노인이 된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책**꽃 | 2021.05.02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나는 항상 의사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한 동경도 있고 그들이 만난 환자에 대한 이야기들도 궁금했다. 이 책의 저자 양창모 의사는 솔직히 말하면 많은이들이 동경할만한 의사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 듯 하다. 하지만 그 자신만큼은 매우 그다운 삶,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은 양창모 의사가 강원도에서 왕진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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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의사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한 동경도 있고 그들이 만난 환자에 대한 이야기들도 궁금했다. 이 책의 저자 양창모 의사는 솔직히 말하면 많은이들이 동경할만한 의사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 듯 하다. 하지만 그 자신만큼은 매우 그다운 삶,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은 양창모 의사가 강원도에서 왕진의사로 일하면서 만난 환자들 이야기와 그들을 통해 인생을 배운 이야기들, 그가 생각하는 인생, 그리고 그가 소리내어 말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는 돈만 쫓는 의사가 아니라 혼자보다는 우리 다같이 잘 살기를 추구하고, 또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소리낼 줄 아는 의사였다. 아파트 동대표로 나가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했고, 골프장 건설 반대를 위해 천막농성에도 참여했고 무엇보다 의사를 만나러 가지 못하는 의료 취약계층을 위해 본인의 시간을 들여 직접 찾아가는 왕진 의사이다.

 

밑줄 그은 곳이 너무 많아 옮겨적다가 포기했다. 의사선생님께서 글도 이렇게 잘 쓰시다니..

 

제일 인상 깊은 문장 2개

p.110 자꾸 내 밥그릇에 밥을 많이 쌓으려 하지 말고 함께 밥 먹을 사람을 만들자. 힘은 거기에서 나오고 미래는 그로 인해 바뀔 것이다.

 


 

p.111 세상의 중심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고통받는 사람'이다. 쓰러져가는 택배 노동자들의 삶이 변할때 우리 삶의 속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듯이 고통의 중심은 이 사회에 필요한 변화의 중심이 될 것이다. 더 젊고 그래서 덜 위험하고 더 자유로운 세대가 어르신들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모두 운이 좋으면 노인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나라 이야기이길 바랐다. 아니면 아주 먼 옛날 이야기이길 바랐다.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니. 아프면 바로 병원을 갈 수 있는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의료취약계층을 생각할 수 있을까.

 

저자는 돈을 쫓지도 않고 삶의 정도를 지키며 사회를 위해서도 할말을 다 하는 정의로운 의사다. 자신의 종교도 표현하고 현정부에 대한 의견도 표현하고 솔직한 사람인 것 같다. 나는 그의 이야기가 좀 더 각색되어 드라마화 되어 많은 사람들이 왕진의사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도 해봤다.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알게되었고 나의 시선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옮겨진 것 같다. 이 책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의사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포함한 우리 국민 모두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이 책을 사람들이 많이 읽을까. 그런 고민을 해보았다.

우리도 언젠가 운이좋으면 노인이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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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로얄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n******0 | 2021.05.02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왕진의사 양창모가 전하는 가장 먼 곳의 통증과 아픔에 대한 이야기다. 21세기에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게 맞는지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내가 얼마나 좁은 세계에 갇혀 있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없는' 이유 때문에 기본적인 진료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찾아 나선 왕진의사가 전하는 이야기는 자꾸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도시에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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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진의사 양창모가 전하는 가장 먼 곳의 통증과 아픔에 대한 이야기다.

21세기에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게 맞는지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내가 얼마나 좁은 세계에 갇혀 있는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없는' 이유 때문에 기본적인 진료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찾아 나선 왕진의사가 전하는 이야기는 자꾸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하지만 당연하지 않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조금만 불편해도 병원을 찾았고 내 아픔에 더 귀를 기울여 주길 기대했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불만 가득한 마음으로 내가 내는 건강보험료만 떠올렸다.

왕진의사가 찾아가야만 했던 환자들은 이런 내 모습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진료실 너머의 기록은 가난과 소외의 기록이었고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커다란 문제를

던져주었다. 의사 개인으로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왕진을 통해 병이 아닌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고 누군가의 고통이 그가 살아온 삶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또한 민간 의료와 공공의료의 문제점과 의료의 공공성 등 의사라는 직업의 본질적인 역할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화두를 던진다.

그의 이야기는 기존 '의사'에게 가지고 있던 불편한 시선을 한껏 누그러뜨려준다.

세상에 이런 의사도 있구나, 이런 의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타인의 고통과 아픔을 돈과 교환해야 하는 현실을 거부하고 일에 대한 가치를 사람에게서 찾으려 하는 왕진의사의 이야기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중요한 진실을 다시 일깨워준다.

사회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들을 찾아가서 마주하고

그들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고단한 삶의 흔적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주는 왕진의사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이제라도 세상과 이웃에 관심을 가지려 한다.

돈이 없어서 고통을 참아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도움의 손길을 주기 위해

우리 사회 모두가 고민하고 좋은 해법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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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먼 곳을 향한 따듯한 시선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d*******7 | 2021.05.0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처음 프롤로그부터 인덱스가 연이어 3개가 붙었다14쪽까지 읽었을 때 나는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썼다누군가를 향해 눈길을 손길을 보내고 마음을 쓰고 쏟고도 더 전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아파하는 사람이 좋고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는 게 좋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며 잠시 고민했다평소 줄긋고 책에 메모하며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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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프롤로그부터 인덱스가 연이어 3개가 붙었다
14쪽까지 읽었을 때 나는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썼다
누군가를 향해 눈길을 손길을 보내고 마음을 쓰고 쏟고도 더 전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을 아파하는 사람이 좋고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는 게 좋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며 잠시 고민했다
평소 줄긋고 책에 메모하며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 당연히 이번에도 독서대와 인덱스만 가지고 앉았는데 자꾸만 줄을 긋고 싶어지는 것이다
인덱스를 붙이고도 한번 더 새기듯 읽고 싶었던 것일까 싶다
끝이 뭉툭한 연필을 들고 읽어내려가본다
곧 메모지도 챙겨올지도 모르겠다, 라고 읽은 첫날 적어두었다

읽은 날로 세어보면 3일만에 완독을 했다
술술 읽히는 표현으로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이웃이, 지인이 해주는 이야기를 듣듯이 읽어내려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의사선생님의 지방 왕진 이야기다 (시골이라고 썼다가 서울과 수도권 외 지역을 그렇게 표현하는 게 조금 걸려서 수정한다)
강원도에서 의사와 환자로 만난 사람들과의 일화, 그 시간들, 그 속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들이 담겨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의사선생님을 통해 듣게 되는데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동시에 이런 의료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꼭 도움이 필요한분들께 재능과 시간을 쓰는, 재능보다 더 귀중한 마음을 가진 의사선생님이 계셔서 다행이야 하며 읽게 됐다

그럼에도 자꾸 읽는내내 정말 마음이 쓰이고 쓰였다
강원도 일부 지역만의 이야기가 결코 아닐 것이다
과연 나는 이웃으로서 그리고 국가는 국민들을 위한 또다른 보호자로서 뭘하고 있었는가? 페이지를 넘길수록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변화해야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외로이 아프고 앓다가 외로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수많은 제도들이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생명의 존엄이 돈으로 인해 휘청이도록 둔다면 그 사회는 진짜 우리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이 책 뒷표지에는 좁은 길과 높은 언덕 넘어 질병 아닌 사람을 만나다, 라고 쓰여있다
또한 띠지에는 어떤 아픔은 병원에 닿지 않는다
강원도 왕진의사가 기록한 가장 먼 곳의 통증들, 이라고 쓰여있다
생활이 그대로 보여지는 공간으로 직접 찾아가 그 사람을 만나 관계하고 가장 멀면서도 어쩌면 가장 가까운, 언제 어떻게든 나의 통증이 될 수 있는 그런 아픔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아프고도 참 섬세하게 따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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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g****y | 2021.05.01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예전부터 우리나라 지방의 의료사각지대에 대한 문제를 여러 매체에서 보고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 생생한 현실을 텍스트로 만날 수 있었던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이런 문제를 사회학적 접근이나 르포 방식으로 풀어낸 책이었다면 흥미가 떨어져 쉽게 집어들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대신에 이 책은 요즘도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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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예전부터 우리나라 지방의 의료사각지대에 대한 문제를 여러 매체에서 보고 들어 알고 있었는데 그 생생한 현실을 텍스트로 만날 수 있었던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이런 문제를 사회학적 접근이나 르포 방식으로 풀어낸 책이었다면 흥미가 떨어져 쉽게 집어들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대신에 이 책은 요즘도 그런 직업이 있었나 싶은 왕진의사의 에세이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솔직담백, 좌충우돌, 왕진의사의 인생과 일상에서의 경험, 생각, 느낌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보건의료 정책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저자는 전공의 시절부터 지금까지 600회가 넘는 왕진을 통해 한국에서 남의 집을 가장 많이 드나든 의사 중 하나라고 한다. 책의 구성은 그런 그의 이야기 56편이 세개의 큰 챕터로 분류되어 있는데 1부 찾아가야 보이는 세계에서는 저자가 왕진의사를 하며 인상적이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읽을 수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면서도 사연을 읽다보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기도 했었다. 

 

2부 어른거리는 얼굴들에서는 왕진 의사가 되기전 일반 병원에서 겪고 생각했던 고민에 대해 얘기한다. ‘의사 놈들’과 ‘의사 선생님’ 사이의 후회와 반성들에 독자입장이지만 저자와 같이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2분마다 환자가 들어오는 곳에서 정성 어린 진료를 하려면 인공지능 수준의 판단력과 부처님 수준의 마인드 컨트롤이 동시에 가능해야 한다”며 진료실 밖에 환자들이 밀려 있을 때면 당장 앞에 있는 환자를 빨리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며 그는 괴로워한다.

 

나는 ‘의사 놈들’이 될 수도 있고 ‘의사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아무런 접촉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 속에 갇혀서 오직 자신의 욕망, 자신의 고민만 들여다보는 사람. 그것이 내가 있었던 의사들의 세계다. 진료실은 의사를 자폐적 세계에 가둔다. 타인의 고통에 누구보다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둔감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에 가능해진다. 왕진을 갈수록 의사들의 진료실을 혁파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진료실이란 공간은 단순히 환자를 증상의 덩어리로 보게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사로 하여금 환자들의 삶에 눈을 감게 만드는 눈가리개 역할도 한다.


 

표제이기도 한 마지막 장 ‘우리를 마중하는 세계’에서는 이런 여러 이야기들을 사회적 담론으로 끌어낸다. 사회적 고통에 대한 태도는 그 사회 자체를 보여주는 지표이고 아픈 사람이 움직일 때 통증이 일어나는 부위에 온 신경을 집중하듯이 사회가 변화의 방향을 정할 때는 그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말 우리 사회에 일침을 날리는 명문장이었다. 것이다. 작년에 한창 첨예했던 논쟁인 의사 파업과 의대생들의 고시 거부에 대해 저자는 ‘밥그릇 싸움’ 이후의 시간에 대해 묻는다. 

 

사실 이 책은 이런 복잡한 설명이 필요없다. 아주 아름답고 멋진사람의 이야기이고 우리 사회가 귀담아 들어야 될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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