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구역》《태평양 횡단특급》이후,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만난 듀나의 작품.
SF 읽기가 조금 불편한 이유는 아마도 그 세계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가 세팅해 놓은 시공간은 어느 정도의 미래일까. 아니면 언제인지도 알 수 없는 시간일까.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그리고 낯선 생명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나 현재의 정보만으로 바로 파악을 할 수 없는 설정들이 일반 소설들과 가장 큰 차이일 테지. 그것 또한 재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하지만 이야기에 들어가면 곧 알게 된다. 시간과 공간이 낯설고 파악할 것이 좀 있어도, 결국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듀나의 작품은 SF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추리극 혹은 미스터리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발견하고, 하나하나 실마리들을 연결하고 폭발해 버리며 진실을 찾아가는 긴장감 제대로의 이야기. 너무 숨가쁘게 읽어나가느라, 작가가 공을 들였을 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런 의미로 SF는 두 번의 독서를 권하는 듯한 느낌이다. 처음 첫 독서에서는 낯설게만 들리고, 설정이 촥 붙지 않아서 흘려가며 흐름만 파악했던 디테일들을 다음 독서에서는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다.
“그날 밤, 요트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을 때 아이 왼쪽 옆에는 죽은 엄마의 유령이 앉아 있었다. 그동안 비서 프로그램의 아바타에 조금씩 누적된 엄마의 말과 동작은 그 증강현실 유령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불꽃놀이도 엄마였다. 그 안에 잠시 엄마의 몸을 이루었던 가루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요트, 장례식, 불꽃놀이 모두가 죽은 엄마의 계획을 따른 것이었기에. 아이가 보는 건 죽은 엄마 정신의 연장이었다.” (pp.10~11)
소설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세 페이지 분량의 챕터에는 죽은 엄마를 불꽃놀이로 장례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아이의 장례의 순간에는 죽은 엄마의 유령이 함께 한다. 죽은 엄마의 유령은 아마도 삼차원 홀로그램으로 재생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자니 가상 현실로 구현된 (난치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딸을 만나는 엄마가 등장하는 <너를 만났다>라는 TV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죽은 회장의 기억은 어떻게 남아 있었을까. 내가 알기로 회장의 뇌에는 최소한 네 개의 웜이 들어 있었다. 두 개는 알츠하이머 치료용이었다. 알츠하이머를 치료하는 훨씬 손쉬운 방법이 나와 있었지만, 회장은 이를 새로운 기술적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죽기 전, 한정혁의 정신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회장이 죽자, 생전에 엄선한 몇몇 데이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사생활보호법에 의해 파기되었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믿었다...” (p.80)
프롤로그에서 넌지시 암시하고 있듯 소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이가 남긴 어떤 정신 혹은 어떤 욕망의 찌꺼기에 의해 세상에 남아 있는 이들이 움직이고 마는 이야기에 해당한다. 세상을 떠난 이는 지구와 우주를 연결하는 궤도 엘리베이터, 그리고 그 엘리베이터의 승강장에 해당하는 파투산의 시작점을 건설하고 우주의 스테이션으로 올라가는 연결 통로를 만드는 일까지 해낸 LK 그룹의 회장이었다.
“... 너무 앞뒤가 딱딱 맞아 사람들이 믿지 않을 거 같았다. 마음만 먹으면 나는 그럴싸한 근거를 들이대며 최강우와 시장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근거는 모두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진실을 따지는 곳에서 내가 입을 놀리는 건 무의미하다.” (p.180)
그리고 한정혁에 의해 발탁되어 비밀스러운 업무를 진행하였던 내가 있고, LK 그룹의 신입 사원인 최강우가 있다. 죽은 한정혁의 남은 찌꺼기가 스며든 최강우는 파투산 정부와 LK 그룹의 회장 로스 리 등 여러 사람들에 의해 추격을 당하고 나는 그 곁에서 이를 통해 진실에 다가가려 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한정혁이 마음에 들어 하였던 조카인 김재인이 출현하여 모든 사건의 핵심을 향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른다.
“... 평형추가 원심력으로 케이블을 잡아당기기 때문에 그 장력으로 궤도 엘리베이터의 구조가 유지된다. 케이블의 두 가닥이 되고 양쪽 모두 점점 굵어지는 동안 나포되어 탄광으로 쓰였던 소행성의 잔해인 평형추는 울퉁불퉁한 모양으로 성장해갔다. 정지궤도의 스테이션에서 나온 온갖 쓰레기들도 그 성장을 보탰다... 지금 그곳은 오직 로봇들만의 영역이다. 지상의 방해 없이 쓰레기와 운석을 정리하고 쌓고 엮는 작은 기계들의 세상.” (p.219)
소설의 배경이 근미래이다보니 어림짐작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이 등장한다. 프롤로그에 등장하는 유령은 소설 안에서도 구현된다. ‘웜’은 몸 속에 주입하는 것이 가능한 장치인데, 투입과 추출이 가능한 만능 프로그램으로 기능이 확장된 스마트폰 같다. 이러한 웜을 통해 외부로부터 정보를 받을 수 있고, 나에 대한 정보를 스스로 축적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웜이 있어 유령이라는 존재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 빛나는 노란 별이 구름을 뚫고 느릿하게 하늘로 올라간다. 인질극 때문에 잠시 중단되었던 엘리베이터의 운행이 재개된 것이다. 우리는 우두커니 서서 별이 구름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 다시 걷는다. 그대들은 하늘로 가시게, 우리에겐 지상의 일이 있으니.” (p.252)
좀더 확장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을 (현재 출간된) 지금의 소설 분량으로 만족해야 하다 보니 여기저기 설명을 통하여 진행시키는 부분들이 보인다. (반대로 개념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있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근미래의 풍광을 보다 선명하게 떠올리고 싶다. 죽은 이가 품었던 사랑 혹은 이름 붙이기 애매한 욕망이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해결해버리는 것도 요령부득이다.
듀나 / 평형추 / 알마 / 256쪽 / 2021 (2021)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지만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한국 SF계의 살아있는 역사, 듀나 작가의 신작 <평형추>를 읽었다. 듀나는 20여 년 전 PC 통신 게시판에서 SF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작가가 '한국인'이 등장하는 'SF'를 쓴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 후 꾸준하게 큰 기복 없이 많은 SF 작품을 써 온 그는, 한국 SF의 중흥기(?)를 맞은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작년 5월 장편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를 발표한 후 1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장편 소설을 낸 것이다. 장편이지만 읽기에 부담스러운 양은 아니다. 책은 아담한 판형에 페이지 당 글자 수도 많지 않다. 내용도 무거운 주제를 깊이 탐구하기보다는, 경쾌한 터치로 여운을 남기는 편이다. 동시에 소설이 다루는 공간적, 심리적 스케일은 결코 작지 않다.
이 소설을 읽으며 히로에 레이의 만화 <블랙 라군>이 떠올랐다. 궤도 엘리베이터는 적도에 설치되는 게 이상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일단 작중의 배경이 되는 '파투산'은 열대지방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아는 게 적어서 특정할 수는 없지만, 동남아권의 문화적 토대 위에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합법과 위법이, 도덕과 타락이 골고루 섞인 멜팅팟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출판사의 설명을 보니 인도차이나, 수마트라 문화권의 영향을 표현했다고 한다.) <블랙 라군> 속 가상도시 '로아나프라'가 바로 그렇다. 다른 게 있다면, <평형추> 속 로아나프라에는 궤도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으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듀나 작가답게, 이번 소설에도 다양한 SF 요소가 들어있다. 사실 사이버펑크 SF에서는 이미 식상할 수 있는 요소다. 지상과 우주를 잇는 궤도 엘리베이터(소설의 제목 <평형추>는 원심력으로 줄을 잡아당겨 그 장력으로 엘리베이터의 구조를 유지시키는 장치다), 국가 권력을 위협하는 거대 기업 LT의 경제적, 사법적, 정치적 지배, 뇌 속의 임플란트 식 컴퓨터(웜), AI와 융합해 인간을 초월해 가는 인간상(영화 <루시>에서처럼) 등. 그러나 그 요소들이 맛깔나게 버무려져 향신료 향으로 입맛을 돋우는 볶음밥이 되었다. 1인칭 화자의 독백에서는 시니컬하고 관조적인, 쌉싸름한 하드보일드 첩보물의 맛이 감돈다. SF와 첩보를 결합한 장르에 흥미를 느낀다면 배명훈 작가의 소설 <은닉>도 추천한다. <평형추>와 <은닉> 둘 다 SF 작가가 쓴 첩보물인데, 전자가 SF에 가깝다면 후자는 첩보물에 좀 더 가깝다.
책을 펼치자마자 독자는 낯선 세계의 긴박한 상황에 던져져, 1인칭 화자의 독백 속에서 이 세계의 구성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내야 한다. 마치 게임처럼 느껴지고 몰입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그 과정이 조금 피곤하게 느껴지고, 책 속의 세계에 정을 붙이기가 힘들었다. 종종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이 등장해 독해 속도를 더 깎아먹기도 했다. 결국 소설의 전반보다는 세계에 익숙해진 중후반이 훨씬 재밌게 느껴졌다. 소설 속 배경인 '파투산'은 정말 매력적인 곳이다. 전체가 계단식 구조에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된 거대 계획도시이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은 '내장'이라 불리며 쓰레기 처리장 등 혐오시설이 위치한다. AI가 각 장소마다 테마가 되는 곡조를 정해놓고 변주해 들려준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월레스 사 로고송이 생각나기도 한다) 대부분의 인간 노동력이 로봇으로 대체된다. 소소할 수 있지만 이런 '새로운 세계(시대)에 대한 설정'이 가장 마음껏 즐긴 포인트였다.
소설은 빠르게 읽히고, 재미있다. 이미지가 구체적이고 전개가 영화적이다. SF 영화로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반대로 말하면 SF 영화에서 많이 본 것만 같은 이미지나 전개가 나온다고도 할 수 있겠다. 중요한 인물을 여성이나 동성애자로 설정하고, 그 부분을 가능한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노력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특히 김재인은 털털한 성격에 AI와 친밀도가 높으며, 새로운 차원으로의 진입을 두려워하지 않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작중에서 좀 더 비중이 크거나, 좀 더 일찍 등장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김재인의 과거나 그의 속내가 많이 궁금했다.
결국 '인간 둘과 궤도 엘리베이터의 삼각관계'로 요약될 수 있는 신기한 작품이다. 소설을 읽어보시면 어떤 뜻인지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알마의 페이스북 소개 글에는 궁금할 수 있는 설정을 잘 정리해 놓았는데, 특히 책 표지 그림의 의미,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연합뉴스의 책 소개 기사도 참고할 만하다. 파투산의 뜨겁고 눅눅한 공기 속에서 목숨을 건 두뇌싸움과, 인식의 지평을 한 차원 확장하는 경험을 해보자.
브라이얼리 제도 끝에 솟아 있는 십자가 모양의 작은 섬나라. 그럭저럭 빽빽하지만, 생물학적 다양성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열대림, 섬 중심에 있는 쓸데없이 높은 사화산, 아까운 줄 모르고 지하수를 뽑아 쓰다 지반이 무너져 진흙탕 속에 잠겨버린 마을과 도시들. 그리고 아름다운, 정말로 아름다운 나비들. LK가 정복하기 전, 파투산은 그런 곳이었다. 15년 전 LK가 파투산에 궤도 엘리베이터를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거대하고 둔하고 느린 궤도 엘리베이터는 비행선 같은 과거의 몽상처럼 보였다. 아름답고 장엄하지만 굳이 만들 필요는 없는. p.24~25
브라이얼리 제도 끝에 솟아 있는 빽빽한 열대림의 섬 파투산. 인구의 3분의 2가 인근 두 섬나라로 흩어져 거의 폐허가 된 왕년의 휴양지에 LK라는 기업이 궤도 엘리베이터를 세웠고, 섬은 지구의 관문이 된다. 궤도를 도는 스카이후크로 매일 서너 대씩 우주선이 궤도 바깥으로 나가곤 했던 우주 시대였다. LK는 정지위성에서 위아래로 늘어뜨린 거미줄이 한쪽으로 파투산에 닿고, 다른 한쪽은 평형추로 향하는 가늘고 긴 궤도 엘리베이터를 건설했고, 그로 인해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섬은 국제도시로 다시 태어난다.
해변에 새 항구와 공항이 생겼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주로 가는 길을 닦고 있었다. 하지만 섬은 이제 일개 다국적 기업의 소유물이 되었고, 정부는 껍데기만 남았으니, 그에 불만을 가진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파투산 해방전선이 만들어진다. 그러한 해방전선과 그들을 지원해 한몫 챙기려는 무리들을 추적하고 다루는 일을 하는 LK 대외업무부의 수장 맥이 이야기의 화자이다. 맥은 암살사건 용의자의 체포 작전을 수행하던 중 수상한 한국인 남자를 발견한다. 그는 바로 LK의 신입사원 최강우로, 나비와 궤도 엘리베이터를 좋아하는 이십 대 후반의 남자였다. 이상한 것은 나비 이야기를 할 때는 몽상적이고 멍한 느낌이던 남자가 궤도 엘리베이터에 이야기할 때는 치밀하고 조직적이고 독단적인 모습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거였다. 게다가 맥은 그의 말투와 태도가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진다. 그 익숙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나에 대한 그 사람의 기억은 절반, 아니 그 이상이 허구예요. 실제 나와의 관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픽션이 동원되어야 했지요. 그 안엔 수많은 내가 있었어요.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버전, 더 냉정하고 잔인한 버전, 더 섹시하고 유혹적인 버전, 심지어 나보다도 더 나 같은 버전도 있었지요. 이 자체는 이상하지 않아요. 다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망상을 품고 살잖아요. 요즘 같은 시대엔 그런 망상을 그럴싸하게 현실화시킬 수도 있고...." p.212
거대 다국적 기업 LK와 궤도 엘리베이터, 그리고 하늘 위 평형추를 둘러싼 비밀들을 파헤치는 모험이 펼쳐진다. 하지만 LK 직원을 포섭하려는 해방전선과 파투산을 주시하는 세력들 속에서 최강우와 맥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맥과 최강우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최강우는 어떻게 맥과 회장만이 알고 있던 비밀에 접근했으며, 죽은 한정혁 회장은 이들에게 무엇을 남긴 것일까. 광대한 네트워크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 같은 한 회장의 유령은 거대 AI의 성장에 신처럼 개입하려고 하고, 현재의 그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막을 수 없는 미래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증강현실과 AI가 일상이 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우주로 이동할 수 있는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복잡한 세계관과 알 수 없는 용어들로 난무한 여타의 SF 작품들에 비해 굉장히 술술 잘 읽히는 작품이다.
듀나는 낯선 미래에서의 놀라운 사고 실험과 치밀한 전개로 ‘듀나 월드’라는 독창적 스타일을 탄생시켰다고 평가 받는 작가이다. 책 속에, 게임 속에, 혹은 시뮬레이션 속에만 존재할 듯한 캐릭터들이 ‘듀나 월드’의 견고한 논리 속에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등장해 낯선 부분과 익숙함이 매력을 발하는 작품들을 그려 왔다. 이번 신작은 2010년 처음 출간된 동명의 단편소설을 장편화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본적인 뼈대만 유지할 뿐, 화자부터 다른 인물로 바뀌며 추리의 설계는 더욱 정교해졌고 인도차이나, 수마트라 문화권의 등장인물들도 더욱 다채로워졌다. 독특한 책의 표지도 작품과 너무 잘 어울리는데,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를 기리는 모뉴먼트에서 영감 받은 장종완 작가의 <Goddess>라는 작품이다. 미지의 우주로 향하는 인간이 열망이 표현된 작품이라 작품과 근사하게 잘 어울린다. '불가능하고도 가능한 세계'를 지향하는 알마의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를 즐겨 읽고 있다. 듀나의 작품들과 머더봇 시리즈, 빈티 시리즈 등에 이어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이 출간될 지 기대가 된다.
책을 펼치는 순간 친절한 설명 없이 긴박한 추격전에 탑승하게 된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파투산이나 LK기업의 정보를 받아 들이다보면, 나도 모르게 SF게임의 튜토리얼을 진행하는 기분조차 든다. 배경은 즐겁고, 전개는 시원시원하다. 군데군데 좀 더 생각해 봐도 좋을 흥미거리도 포진해 있고, 마무리도 억지스럽지 않다. 즐거운 게임을 한 편 한 것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