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저자가 쓴 등산 에세이는 어지간하면 다 읽어보려 하는 편이다. (아직은 몇 권 없어서 나오는 족족 읽을 수 있음) 산행력 후덕한 형님들의 백두대간 종주기라거나 그런 책은 제외. 동년배 혹은 나보다 젊은 사람이 쓴 등산 에세이 말이다. 읽으면 재밌다. 나도 이랬는데, 저 사람도 이랬군, 하는 공감 가는 대목이 많다.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은 5월에 나왔는데, 존재를 최근에야 알았다. 아마 제목에 '등산'이라거나 '산행'이 없어서 못 찾은 듯하다.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바로 사서 읽었다.
양주연 저자의 이력. 콘텐츠 제작이란다. 어쩐지, 문장이 예사롭지 않더라. 『아무튼, 산』 『오늘도 등산』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 세 등산 에세이 중에서 감히 내가 평가하자면 문장력에서는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이 탑이다. 위트도 있고, 번득이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대목이 많다. 내려올 텐데 왜 인간은 산에 오르는가. 힘든데 왜 올라야 하는가. 이런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이야기하며, 지금 당장이라도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분량. 109쪽으로, 금방 끝나버렸다.
저자 분에게 가장 부러웠던 대목은, 친한 친구들과 함께 등산이라는 취미를 즐기는 장면이었다. 나도 간혹 그때 그때 맞는 사람과 가긴 하지만, 친한 친구 여러 명과 갔던 적은... 언제더라... 20대 CS, SR과 갔던 때가 마지막이었군. 그리고 CS와는 멀어져서 연락도 거의 끊긴 상태지...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일과 관계에 관한 저자의 솔직한 생각이 산행과 병렬적으로 서술된다는 사실이다. 역시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가 들어간 글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양주연 작가님도 안전 산행, 즐거운 산행하시고 다음 편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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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가서도 행복하십시오." 관악산 연주대에서 과천향교로 내려오는 길, 이 문구를 마주하고 가슴이 찌르르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문장이었기 때문이었다. (6쪽)
"야, 인왕산 쉽대. 아니면 청계산 어때?" 그러나 막 등산과 사랑에 빠진 S는 칼같이 잘라냈다. "첫 산이 너무 쉬우면 재미를 못 느껴." (16쪽)
발끝에서부터 무언가가 힘껏 밀려왔다. 그 감정들을 단어로 설명하자면 안도감, 후련함, 성취감에 가장 가까울까. 한 단어로 표현할 순 없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굉장히 짜릿했다는 것. 사무실에 앉아서도 그 느낌이 자꾸만 생각이 날 정도로. (19쪽)
산은 겉보기엔 고요하고 아름답지만 아주 위험하고 흉폭한 곳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도전 정신은 올림픽에서나 쓰고 등산할 땐 두고 오도록 하자. 이런 귀한 교훈을 크게 다치지 않고 깨달을 수 있어서 오히려 잘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 산을 정복하겠다는 오만 따윈 버리고, 매 순간 산이 우리를 받아들여주는 것에 감사하고 오를 것. 산이시여, 등린이를 오래오래 잘 부탁합니다! (27쪽)
인생에서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오는 영역이 얼마나 될까? 회사에선 전력을 다해 일을 해도 성과를 내기 어렵고, 인간관게로 말할 것 같으면... 사람의 마음은 노력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더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정직하게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은 운동뿐이었다. (30쪽)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설악 서북공룡', '지리산 화대종주' 등 암묵적인 계급장 같은 것이 있는데, 나 역시 '설악산을 다녀온 사람'으로서 기록이나 경험치로 산의 순위를 매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높은 산, 더 긴 코스를 다니게 되더라도 그런 사람은 되지 않고 싶다. 뒷산을 매일 오르는 마음이나 밤을 꼬박 새고 10시간 넘게 산을 타는 마음 모두 산에 푹 빠졌다는 점에선 똑같이 소중하므로! (39쪽)
채용 담당자 여러분, 취미에 '등산'이 쓰여 있는 신입 사원은 일단 믿고 뽑으시는 겁니다. 뭘 맡겨도 해낼 사람들이니까요! (64쪽)
그래서 걷는 동안 슬픔의 답을 찾았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걷는 동안 들었던 생각이라곤 "언제 끝나지", "점심으로 뭐 먹지", "다리 아프다" 등 아주 원초적인 고민들이었다. 우울해할 시간이 없었다. 나의 밑바닥 감정에 대해 생각할라 치면 저릿저릿한 다리가 궁상 떨지 말라며 뒤통수를 '탁' 쳤다. (91쪽)
씩씩한 '혼자'들의 독립생활 이야기를 소개하는 에세이 '디귿'시리즈. 두번째로 만나본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은 등산을 하며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틈새 행복'을 발견해가고, 나 자신을 진짜 사랑하는 법을 깨우쳐가는 이야기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 남들에게 쏟는 다정함과 너그러움의 절반을 나에게 쏟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내가 노력을 덜 해서, 살이 쪄서, 예쁘지 않아서, 능력이 부족해서, 스펙이 딸려서 원하는 걸 이루지 못했다고 너무 손쉽게 스스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쉽게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이 나 자신이므로.<행복의 모양은 삼각형> p.31
우리나라의 75%가 산이라니, 등산의 재미를 모르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4분의 1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건가 싶어 억울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등산은 너무 싫었다. 애증의 대상도 아니고 애증의 '증'이라는 감정만 남은 등산. 회사다닐 때 분기별로 돌아오는 야유회때마다 제발, 제발 산에만 가지 않게 되길 바라고 또 바랐는데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에 좋다는 산에 가길 원하는 상사들을 모시고 도장깨기하듯 다녀왔다. 지금은 그 산이 어디에 있었는지, 그 산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하산해 들어간 오리구이집에서 다들 얼큰하게 취했던 기억과 다음날 온 몸에 남았던 어마어마한 근육통뿐. 그리고 하나 더,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산 정상에서 바라보았던 아름다운 광경과 아주 잠깐동안 내게 깃들었던 성취감! 정상에 오르자마자 단체 사진을 찍고, 무겁게 지고 올라갔던 먹을 것들을 내놓고 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때 아주 잠시 성취감이 깃들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저자가 등산에 빠진 게 이 성취감 때문이라고 하니, 왠지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상사에 대한 극심한 반감으로 등산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다. 다시 한 번 가서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모든 고비를 넘기고 정상에 올랐을 때, 해냈다는 성취감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가득 차오른다. 결승선을 통과한 마라토너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나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사람, 원하는 곳에 의지와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야!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과 뿌듯함이 차올라 기분이 하늘을 찌를 것 같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이 구역 자존감 왕이다. 등산을 하고 나면 스스로가 한층 좋아졌고 나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행복의 모양은 삼각형> p.31
저자가 등산을 사랑하게 된 이유가 바로 작은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의 맛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나 가혹하고 엄격하다. '내가 노력을 덜 해서, 살이 쪄서, 예쁘지 않아서, 능력이 부족해서, 스펙이 딸려'라는 이유로 스스로를 책망하고 코너로 몰아간다. 그런 나 자신에게 스스로가 무언가 작은 것이라도 이뤄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아주 작은 것들을 성취해내면서, 그것을 성취해가는 과정을 즐기기도 하고 성취해나가는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등산을 하고 나면 나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필요한 건 현실을 변화시킬 큰 모험보다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틈새 행복'들이라는 것을. 아침에 숲길을 걸으며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엔 건강한 도시락을 준비하는 등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일상에서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알 수 있었다. 이 소소한 루틴들은 여행만큼 많은 것을 변화시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줬다. (중략) 행복이란 부단히 노력해서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매일을 살아내면서 발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행복의 모양은 삼각형> p.57~58
'틈새 행복'이라는 말 참 좋았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등산을 하며 작은 성취를 이루고 '틈새 행복'이 가득한 평범한 일상은, 우리에게 벅찬 감동이나 일생일대의 감화를 주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우리게 불행에 빠지지 않도록 잡아준다. 행복이란 부단히 노력해서 달성하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 맛있게 먹은 식사, 푹 빠져 읽은 책 한 권, 포근한 이불 속처럼.
소개에서부터 자신을 'ENFP'라고 소개한 저자는 책에서도 어김없이 ENFP의 면모를 보인다. 철저한 기분파와 예측이 불가능한 감정기복, 지루한 일상은 참지 못하는 에너자이저. 표지만큼이나 유쾌한 저자 덕에 즐겁게 읽히는 책이었다. 책을 보며 또 덮자마자 느낀 것은 '아, 등산 가고 싶다.'라는 마음이었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언젠간 등산을 하고 말겠어.'하며 마음은 먹어놓고서도, 밀린 과제마냥 자꾸 미루게 되었다. 하지만 출근 전에도 등산이 하고파 일찍 일어나 산을 오르는 저자를 보고 나의 한가롭던 날들을 반성하게 되었다. 챕터 중간에 있던 각 쉼터 별로 초보자를 위한 기본 장비, 풍경 맛집 등산 코스 Best5, 우리가 등산을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아예 등산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호기심을 가지고 등산에 입문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 닥쳐오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하염없이 우울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친구를 만나는 사람 등. 이 부분에 있어 저자는 아주 현명하게도 '등산'을 선택했다. 몸이 힘들어 마음이 힘든 건 까마득히 잊을 수 있다고 한다.
p.90 어쩌면 나도 그 영화의 주인공처럼 꾹꾹 눌러온 감정들의 밑바닥을 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을 내내 두 다리가 없어지도록 걸었다. 제주 올레길을, 한사란을, 설악산을, 지리산을. 혼자 걸을 대도 있었고 함께 걷기도 했다.
길을 오르는 과정에서 애써 외면했던 나의 마음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산이라도 하산 후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이 주는 기쁨을 얻는 것이다. 일상 속 작은 성취를 얻기 위해, 나를 직면하기 위해 저자를 따라 등산 모임을 하나 만들어볼까 싶다.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하고, 필자가 맛봤을 그 '성취감'이라는 것이 궁금해져 산에를 다시 오르고 싶어졌다. 어릴 때보다 성취감을 느낄 일이 줄어들어서 그런 건지, 많은 '어른들'이 산을 오른다. 스스로 선택해서. 특히 어르신들이 등산복을 챙겨입고 삼삼오오 모여 산에 가시는 것을 보면, 가끔 궁금해진다. 사람들은 각자 어떤 이유로 산에 오를까? 그리고 여기,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이라 주장하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때 내게 유일한 행복은 여행이었다. 스트레스가 쌓여서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짐을 꾸려 일상에서 도망쳐나왔다. 하지만 출근길 등산을 하며 알게 됐다. 내게 필요한 건 현실을 변화시킬 큰 모험보다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틈새 행복'들이라는 것을. (57p.)
등산을 강요하지 않는다. 도전을, 성취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산으로부터 본인이 얻었던 위로를, 새로운 행복을 담담하게 전한다. (지인의 글이 아님에도, 꼭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나는 설득 당했다! 아무래도 다음 휴무날에는 산에 올라야겠다.
* 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책을 제공받았음을 알립니다.
"산을 왜 오르시나요?"라는 물음에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어느 등산가의 대답은 그 자체로 다른 말이 필요없는 멋진 말이다. 우연한 계기로 '등산'이라는 것을 시작한 작가는 소중한 주말을 온전히 등산으로 보내면서 조금씩 변화해가는 자신과 마주한다. 전국 어디를 가나 산이 보이는 우리나라의 지형은 지평선 너머를 볼 순 없게 하여도 본문에서 나오는 대로 등산에는 최적화된 환경이 아닌가. 가벼운 마음과 복장으로 동네 뒷산을 가더라도 반나절에서 한나절 정도면 충분하니 등산 접근성이 아주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아파트와 자동차로 둘러싸인 도심에서도 조금만 시간을 내면 녹색 초목이 우거진 산을 마주할 수 있다.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 자연과 접하는, 일과에 자그마한 균열을 내는 행위는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여러 일들에서 생겨난 근심과 고민거리를 잠시 잊게 해준다.
물론 저자 역시 처음부터 산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힘을 내며 등산을 하고, 정상에 이르러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을 보고, 하산을 하며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며 다음을 대비하는 산에서의 시간은 상승, 정점, 하강이 무수히 반복되는 우리의 인생 그래프와 다르지 않다. 산에 오르내리면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마주하고 돌아보는 것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이라는 말이 몇 년 전부터 유행하는 것처럼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쁘고 고된 현생에 치여 살다 보면 단순한 진리를 쉬이 잊게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차분하게 창문에 비치는 산을 보며 산을 오르내릴 준비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 긴 시간이 아니라도 괜찮다. 분명 행복함에 보다 가까워질테니 말이다.
*. 동녘 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도 천연덕스럽게 자기 세계로 끌어들이는 사람,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의 저자 양주연은 살갑게 나에게 다가왔다. 스스로를 ENFP형 인간이라고 소개하는 저자답게, 카페에서 친구들끼리 근황을 나누는 분위기처럼 책이 술술 읽힌다. 멋지고 건강한 언니의 말에 나도 모르는 사이 푹 빠져들었다.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은 등산에 얽힌 이야기이다. 저자는 스물아홉 살 가을부터 산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첫 산으로는 꽤 ‘빡센’ 관악산을 선택해서 등산 다음날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웃픈’ 소감을 남기긴 했지만, 그만큼 ‘짜릿’한 성취감 때문에 다음 산행을 기대하게 되었다고 한다.
(29-30쪽) 내 몸에 있는 줄 몰랐던 근육들을 발견하는 재미, 속쓰림 없이 맞는 아침, 하루 종일 몸이 가볍다는 것 등등 등산으로 얻은 장점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으나, 가장 큰 선물은 무엇보다 ‘성취감’이었다. …노력한 만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저자는 그 이후로도 등산을 계속하며, 산을 오르는 일이 꼭 인생과 같다는 사유를 남겼다. 친구들과 함께 산행하며 ‘페이스메이커’로서 사는 법을 배우고 ‘깔딱 고개’ 같은 야근을 견딘다.
(61쪽) 평소의 나라면 “어우 저는 못해요” 손사래를 치며 당장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슬픈 사실은 깔딱 고개 구간을 지나면 정상이 있다는 걸 내가 너무나 잘 안다는 것. 여기서 포기하고 하산한다면 두고두고 아쉬워할 내 모습이 안 봐도 뻔하다. 그러니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대부분의 산엔 깔딱 고개가 있었고 몇십 번의 깔딱 고개를 넘으면서 단 한 번도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쓰는 팁은 짧게 숨을 ‘후!’하고 몰아쉬고선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일종의 기합 같은 거랄까.
대학생인 나로서는 ‘깔딱 고개’가 기말시험 기간처럼 느껴졌다. 한 학기에 설계 팀 프로젝트를 네 번이나 진행하고, 밤을 새워 공부한 몸으로 근로를 다녀오고 곧바로 시험을 치는 일상. 정해진 시험과 프로젝트 일정에 꾸역꾸역, 과밀하게 나를 밀어 넣는 기간. 그 후 남는 건 성취감이 아니라 피로와 좌절뿐이었다. 여섯 학기 동안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고 나서야 내가 지쳤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는 가뿐하게 해낼 수도 있겠지만) 몸도 마음도 약했던 나로서는 죽고 싶을 만큼 우울했다.
저자도 역시 20대를 지나며 우울했던 시기, 아무것도 하기 싫은 순간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 멈춰서 우울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지 않고, 산을 올랐다.
(77쪽) 혼자 산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실연을 당하고 나서였다.
(78쪽) 이별 직후 한 달, 이때는 정말 방법이 없다. 그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영화, 드라마, 술, 여행 등 시간을 죽일 온갖 방법을 찾다가 생각난 게 산이었다. 적어도 잠을 잘 때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어떻게든 몸을 지치게 만들어야 했다.
(80쪽) 마음이 약해질 때면 종종 혼자서 산을 올랐다. 산에서 내려올 때쯤이면 땀과 함께 부정적인 감정들도 씻겨나갔다. 한 달 정도 혼자 열심히 산을 오르는 동안 이별의 아픔도 아물어 있었고, 덤으로 체력까지 얻었다.
(91쪽) 걷는 동안 들었던 생각이라곤 “언제 끝나지”, “점심으로 뭐 먹지”, “다리 아프다” 등 아주 원초적인 고민들이었다. 우울해할 시간이 없었다. 나의 밑바닥 감정에 대해 생각할라 치면 저릿저릿한 다리가 궁상 떨지 말라며 뒤통수를 ‘탁’ 쳤다.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그래도 내게 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등산을 통해 저자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아가는 과정을 읽으며, 나도 내 주변의 산을 떠올려 보았다. 본가 근처에 심학산이 있고 자취방 뒤편에 수봉산이 있긴 하지만… 따져보니 정상에 올라본 적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산은 언제나 풍경이었을 뿐 올라야할 대상이 아니었다. 본가도, 학교도 평지에 가까워서 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멀게만 느껴졌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심학산, 수봉산은 엄청나게 높은 것도 아니고 해발고도가 각각 200m, 100m 정도밖에 안 되는데 끝까지 가보지 않았다는 게 새삼 놀랍다. 저자가 올랐던 첫 산에 비하면 아주 낮지만 작은 산부터 차근차근 가야겠다는, 나도 성취감을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동녘출판사의 에세이 브랜드 디귿의 두 번째 책은 양주연 님의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이에요.
등산극혐주의자에서 등산애호가가 된 30대 직장인의 등산 입문기라고 해서 큰 관심이 갔어요.
저는 등산을 비롯한 모든 '운동'을 참으로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싫어하던 운동을 어떻게 좋아하게 되는지가 참 궁금했거든요.
아, 그런데 '한때 꼰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등산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힙하고 트렌디한 운동이 되었다'고 하네요??? 저는 그것도 몰랐어요.ㅋ
요즘에는 등산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많군요.
저는 지금까지도 등산이 꼰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힙하고 트렌디한 변화에 동승하지도 않았으니
이래저래 낀 세대임이 확실하네요.
어찌됐건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왜 등산에 빠지게 되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됐어요.
우리의 삶은 너무 고달파서 직장 생활을 하며, 일상 생활을 하며 자신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잖아요.
늘 나만 못하는 것 같고 존재 가치가 없는 것 같고.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고 남과의 비교로 한없이 비참해지고.
그렇게 초라해질 때 등산은 성취감을 주고 그 성취를 통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
자신감을 얻음으로써 스스로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거죠.
그건 꼭 '등산'이 아니어도 될 거예요.
자신에게 성취감과 자신감을 주는 일, 그래서 그것을 하는 동안에는 확실히 행복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상관없지만 작가님에게는 그게 '등산'이었던 거죠.
그래서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은 (직업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인 것 같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거니까요.
제가 요즘 하던 생각과 같아요.
저는 요즘 참 행복하고 제 삶에 만족하는데요.
그건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행복지려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싫어하는 것을 안 하면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는데.
저는 이제야 깨달았는데 작가님은 벌써 아셨네요.
밀레니얼 세대는 역시 다르구나 느꼈어요.
디귿의 첫 번째 책을 읽으면서도 '요즘 젊은이들은 다르구나' 생각했는데
디귿의 콘셉트가 있었네요.
나로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가는 씩씩한 '혼자'들의 독립생활이래요.
두 권을 읽고보니 디귿 에세이 시리즈의 관계성과 통일성을 알겠어요.
앞으로 나올 책들도 기대가 됩니다.
낀 세대인 제가 후배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
책에 '등린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는 건 좀 거슬렸어요.
공식적인 단어도 아니고 바람직한 단어도 아닌데,
어쩌다 한두 번은 그냥 유행어니까 글의 재미를 위해 쓸 수 있다 쳐도
계속 등린이 등린이 하니까 오히려 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 같았어요.
6쪽 여전히 일상은 변함없이 무르고 약하지만 이제는 하루가 무너질 때마다 ‘얼른 산에 가야겠다!’ 생각한다. 뚜벅뚜벅 산길을 오르내리며 부서진 멘탈을 주섬주섬 주워서 원상복구 시킨다. 온전히 나의 두 발과 허벅지 힘으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만큼 단단해진 내가 마음에 든다. 등산을 하며 나를 좀 더 믿고 좋아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52~53쪽 인생은 오직 내 힘으로 정상까지 가야 하는 고독한 싸움에 가까웠다.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서로의 장애물을 치워주지도, 대신 넘어주지도 못할 것이다. 다만 누군가 뒤처질 땐 묵묵히 기다려주면서 친구가 좋아하는 간식을 내밀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넘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길 앞에선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회로로 함께 돌아가 줄 수도 있겠지. 포기하지 않도록 곁에서 응원해주며 끝까지 함께 달려주는 것, 그것이 페이스메이커의 최선일 테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