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현'작가님의 소설은 이 책으로 처음 접했습니다.
숨어있기 좋은 방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구매했는데, 담담하면서도 인생에 버거움이 느껴지는 문체가 이 소설의 분위기와 잘어울립니다.
"그럼 난 왜 이럴까. 왜 아무것도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지? 내 몸도, 내인생도."
나는 좀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철들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행복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이유를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안고 서성거려야 했다. 속으로는 항상 '좀 즐겁고 싶어.', '좀 자유롭고 싶어'하고 중얼거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무엇을 해도, 직장을 다니든, 사직서를던지든, 집에 있든, 밖에 있든, 내 몸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불안감이 따라다녔다. 태어날 때부터 불안에 잠식된 존재였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40p)
숨어있기 좋은 방 책을 읽으면서
숨어있기 좋은 방 책을 꼭 보고 싶었는데
요번에 구입해서 읽게 되었네요
이 책 속에 있는 주인공처럼
지난 과거에 아픈 상처 다 잊고
밖으로 나왔으면 한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루 그 안 좋은 기억을 빨리 지웠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되서 문제지만
현실로 봐서는 어렵다고 본다.
누구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니까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숨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이 책 내용이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은,
허물어질 것 같은 삶의 배경과 닮았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유롭고 싶지만,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자퇴를 하고 직장을 계속 옮기는 그녀의 모습에서
자유로움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어려운 집안의 장녀로서
엄마와 동생들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함도 보인다.
그녀의 삶은 어쩌면
그러한 무책임함의 연속이랄까.
세상의 시선이나 가치, 최소한의 윤리가 닿지 않는.
그녀의 선택은 회피에 다름 아닌가.
욕망을 억누르는 삶과
자신의 욕구를 쫓아 사는 삶은 어떻게 다른가.
윤리에 비껴간 존재로 그려지는 주인공의 삶은
억눌린 우리의 자아와 닮아있다.
그것을 선택하고 실천하는가. 아니면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할 것인가.
혹은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며 사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인간의 욕망을 여실히 드러낸다.
우리 안에 똬리 튼 내적 욕구를 과감히 묘사한다.
이제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의 존재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며, 또다시 우리 삶을 정직하게 살아간다.
*이 리뷰는 넥서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숨는다는 정서는 현실 도피와 같은 의미를 포함한다.
어떤 이유로든 숨어 있기 좋은 방이란 현실의 상황을 벗어나 나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 해방구와 같은 의미로 이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왜 숨어 있어야 할까를 생각하면 참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숨어야 할 이유나 까닭이 존재하기에 나의 안위라고 할 수 있는 모든것을 위한 필요한 방이기에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거나 중의적 표현으로의 방임을 확인할 수 있겠다.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실을 도피하려는 사람도 존재하기에 소설이 주는 묘미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선택해야 하는지를 살피고 궁극적으로 오늘을 사는 나, 우리의 행복에 관해 되물음 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 책 "숨어있기 좋은 방" 은 타인의 시선과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나를 위한 방으로 삶에서 느끼는 책임감이나 공허함 등 정서적 불안을 갖게되는 청년들의 삶이 빚어내는 이야기를 통해 오롯이 나만이 쉴수 있고 타인의 관심과 시선에서 자유를 얻어 나만의 행복을 구현할 수 있는 삶을 이야기 하는 책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윤이금은 요즘 말로 하면 쿨한 여성처럼 보여진다.
그러한 쿨함에는 보이지 않는 불안감이 그림자처럼 존재하기에 어쩌면 그녀가 책임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현실에 떠 넘기듯 던저버린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로서는 책임과 책임감에 대해 배우지 않아도 사회적 지식으로 자연스럽게 획득하게 된 의식이라 할 수 있지만 이금에게는 그러함이 부족하기 보다는 갖지 않으려는 발버둥 치는것 처럼 보여진다.
더불어 책임을 갖지 않으려는 모습은 현실에의 도피와 맞물려 있어 이금의 현실도피는 그야말로 숨어 있기 좋은 방을 찾게 되는 원인이 되어 이야기의 흐름에 나타난다.
과거에는 지긋지긋한 가정의 불화를 피해 탈출구로의 결혼을 선택한 경우가 무척이나 많았음을 인정한다.
현실의 내 주변의 사람들도 그러한 이유로 결혼을 했고 살고 있거나 헤어진 경우도 흔하기에 소설속 이금의 결혼과 결혼의 이유에 대한 이해는 기시감있는 전제처럼 여겨진다.
그러한 결혼이 결코 바람직 하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것이 바로 자신일 터인데 왜 그러한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이금에게는 결혼이 현실 도피의 수단이자 자유를 위한 과정의 일부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한 과정으로의 결혼이자 이후의 삶이라면 온전히 이금의 삶은 현재 진행중이라 할 수 있는 것이고 비의 남자를 따라 열대의 나라에서 결혼을 하고 스스로 '행복한가?' 를 묻고 있는 현실마저 또다른 과정으로의 하나일 뿐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가질 수 밖에 없다.
숨어 있음이 온전히 자유로움을 드러내는 상징적 의미를 유지할 수는 없다.
삶이 어둠과 빛으로 조화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숨어 있기 좋은 방보다는 드러내기 좋은 방에서 자유로움을 누려보는 삶을 꿈꾸어 보았으면 하는 바램을 청년들에게 주문하고 싶어 진다.
**네이버 카페 컬처블룸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에 끌려서 책을 읽었네요.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촉촉한 소설을 읽고 싶어집니다. 누구나 다 숨어있기 좋은 방 하나는 갖고 싶지 않나요? 아무리 말을 한다고 해도 저를 백퍼센트 공감해주고 이해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으니까요. 숨어있기 좋은 방보다는 저는 혼자있기 좋은 방을 기대하면서 소설을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주인공 윤이금의 20대와 30대의 이야기입니다. 윤이금이라는 이름이 저는 참 촌스럽게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세련된 이름은 아닌 것 같아요. 작가마다 이름을 짓는데도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이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가 1994년도라고 해요. 그래서 이름이 윤이금인가?^^; 2021년 마지막 결말 부분을 작가가 손을 보고 2021년 5월 7일에 개정복간한 소설입니다.
윤이금은 장녀입니다. 동생 2명을 건사하는 장녀이지요. 아버지는 어릴 적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사이비 종교에 빠져 생활하십니다. 이런 가정환경 속에서도 공부도 가장 잘 해서 대학교에 들어갈 정도로 집에서 기대하던 딸인데요. 그녀는 대학교를 중퇴하기로 결정하고 대충 직장에 취직합니다. 그리고 휘종과 결혼한다. 그녀에게 숨어있기 좋은 방 같은 태정이 있었다는 것... 여러 결정들 사이에서 윤이금의 캐릭터는 매우 즉흥적인 것 같으면서도 정말 하고 싶은대로 하며 사는 것 같은 캐릭터 같기도 하고 1994년에 이런 여자 캐릭터를 그렸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2021년 즉흥적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결정하는 청춘들에게 간접 삶을 체험할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되네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숨어있기좋은방 #1994년신이현데뷔작 #넥서스출판사 #청춘에게보내는빗방울같은응원 #2021년달라진결말 #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이 소설의 결말부는 완전히 다른 감각의 문체로 새롭게 씌어졌다. 비 오는 날, 오동나무 잎들이 운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툭툭 떨어지며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던 마지막 결말부는 거기서 끝을 맺지 않는다. 주인공 윤이금의 이후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에필로그」 형식으로 소개되기 때문이다.
어느덧 작가의 시선이 인생 너머의 비밀을 알아챌 만큼 성숙해진 때문으로 보인다. 비로소 주인공과의 작별을 준비해야 할 때가 왔다. 새로 씌어진 마지막 문장처럼 “행복한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분명 인생에서 아름다운 한 순간을 통과하고 있는 것”이기에. 1994년 출간된 장편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은 소설가 신이현의 데뷔작이다. 이 소설은 출간 당시 “경쾌한 정신, 니체적 질문으로 가득 찬 소설”(문학평론가 진형준)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가벼움 속에서 제법 묵직한 철학적 주제를 이끌어낸 소설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 소설이 당대 다른 소설과 구별되는 점은 놀랄 만큼 다른 성향을 지닌 주인공 윤이금이라는 특이하고도 이상한 캐릭터의 출현에 있었다. 사회적 통념과 질서, 원칙 ‘따위’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무개념'의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윤이금은 대학의 자퇴부터 직장 무단결근, 혼전순결 심지어는 인생의 중대사라 할 수 있는 결혼에 있어서도 그리고 어떤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눈앞에 닥쳐도 단 1초의 진지한 고민이나 갈등 같은 심리적 변화를 겪지 않는다. 모든 선택은 즉흥적이고 본능적이다. 90년대를 기준으로 보자면 한마디로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는 최악의 캐릭터였다. 작가는 이제 『숨어있기 좋은 방』의 새로운 결말로 우리를 안내한다.
20대 초반의 대학 불문과를 중퇴한 윤이금이 소설의 여주인공다. 그녀에겐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버려 생사도 알 수 없는 아버지와, 윤이금이 벌어다 주는 월급만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 아직 어린 여동생, 남동생이 있다. 장녀라는 가족의 굴레 속에서 숨이 막히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다니던 직장의 중요서류와 공금을 잃어버린다. 회사로 돌아가지도, 집으로 가지도 않은 채 술에 취해 우연히 만난 여관 월세방에 사는 남자 태정과 일주일을 보낸다. 윤이금이라는 인물에게서 두드러지는 전형적인 특징은 바로 무책임성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대학의 자퇴라든지 직장의 사퇴 혹은 결혼 같은, 이른바 인생의 중대사를 앞에 두고 고민의 흔적을 조금도 내보이지 않는다. 그런 인생의 중대사뿐만 아니라 그녀가 겪게 되는 사건이나 행동들에 있어서도 진지함을 찾아볼 수 없다. 남들이 감히 실행하지 못하는 행동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용기도 실은 이 무책임성에서 나온다.
태정은 가난하고, 폭력적이다. 돈이 없어 여동생이 몸을 팔아 버는 돈으로 살아가는 남자다. 태정이 술에 취해 재떨이를 부셔버리고 다친 틈을 타 윤이금은 붕대를 사러 간다는 핑계로 도망 간다. 막상 나와 돈도 아무것도 없어 지나가는 사람의 휴대폰을 빌려 유일한 친구 봉희에게 전화를 한다. 하지만 봉희는 윤이금에게 관심조차 없고 다이어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봉희와 전화를 끊고 다른 남자 휘종에게 전화를 한다.
휘종은 단숨에 윤이금에게 달려왔다. 그 일을 계기로 번듯한 직장, 부유한 집안의 휘종과 결혼을 한다. 부유하고 행복한 시부모님과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지만 윤이금은 결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다시금 태정을 찾게 되고 태정과 몸을 섞는다. 그렇게 불안정한 관계를 이어가고 태정은 윤이금이 결혼한 사실을 알아낸다. 그러나 태정은 윤이금이 결혼했어도 사랑한다면서 함께 하길 원한다. 윤이금에게는 아이가 생겼고 딸을 낳는다. 그런 상황임에도 태정과 헤어지지 못하고 만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던 어느 날. 윤이금은 태정의 여관방으로 찾아가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소설에 대해 문학평론가 진형준은 다음과 같이 썼다. "착한 딸도 아니고 정숙한 가정주부도 될 수 없고, 그렇다고 마땅한 출구도 없는 20대 여성의 무덤으로 읽을 수도 있을 소설을 나는 그렇게 악마의 드라마로 읽는다. 그리고 나는 우리 소설에서 보기 드문 반윤리적 소설을 하나 갖게 되었다는 기쁨에 젖는다. (중략) 단도직입적인 표현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의 소설들은 우리의 내부에서 '즐거움의 욕망'이 부르는 손짓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욕망을 억압해온 만큼, 그 욕망은 패배자의 모습으로 우리 내부에 잠복해 있었다.
그 패배의 모습의 존재론적 원형에 대해 질문하는 태도는 패배를 패배로 인정한다는 의미에서는 비윤리적일지 모르지만, 그 패배한 삶, 그 소외된 삶, 때로는 악마적이기까지 한 삶을 우리와 익숙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실은 더 적극적으로 윤리적이다. 그 시선은 타인을 향한 시선을 자신의 내부로 되돌리게 하는 시선이며, 그리하여 가장 이질적이고 낯설고 적대적인 모습에서도 자신의 모습의 일부를 찾아보게 하는 시선이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니?”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숨어있기 좋은 방을 갖고 싶어요.”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 : 신이현
1964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났으며, 계명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94년 장편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살림, 1994)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녀의 하루는 집 앞 빵집으로 빵을 사러 가는 것으로 시작해서 다음에 나올 책을 위해 파리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다 맛있어 보이는 빵집에 들러 저녁에 먹을 기다란 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맺는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글쓰기는 새털처럼 부드럽게 설레는 즐거움이다.
오랫동안 파리와 프놈펜 등의 도시에 살다가 현재 한국 충주에 정착해 와인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갈매기 호텔』, 『잠자는 숲속의 남자』와 에세이 『알자스』, 『루시와 레몽의 집』, 『에펠탑 없는 파리』, 『열대 탐닉』, 『알자스의 맛(그래픽노블 공저)』, 번역서 『에디트 피아프』, 『야간 비행』 등을 펴냈다. 장편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은 1994년 데뷔작으로, 출간 당시 파격적인 이야기 전개와 윤리적 논쟁으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작품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해당 도서는 신이현 작가님의 데뷔작이며 1994년에 출간되었다가 이번엔 달라진 결말로 재 출간되었다고 한다.
주인공 윤이금의 가정환경부터 사회에 나와서의 행동마저도 자칫 막장으로 보일 수 있는 인물이었다.
본능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하며 책임감과는 거리가 먼 그런 인물.
어떻게 보면 불호의 인물이 될 수도 있는 주인공이지만 나는 감히 주인공을 폄하하거나 동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윤이금 그 자체로 보며 책을 읽어나갔다.
빠질 수 없는 인물 중 하나인 '태정' 윤이금을 그 자체로 만들어 주는 인물이자, 윤이금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회사를 뛰쳐나온 후 정처 없이 걷다 오동나무가 있는 여관에서 태정을 만나게 된다.
삶이 불안하고 도망가고 싶었던 적은 누구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회피형 인간만큼은 되고 싶지 않았고 k-장녀의 힘을 지닌 나는 막중한 책임감에 이금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어찌 보면 회피형이 되고 싶지 않았던 만큼 내가 정한 기준에 맞게 성공했으리라 볼 수 있겠지만 가끔은 무거운 책임감에
버거울 때엔 그냥 다 팽개쳐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에게도 이금과 같은 숨어있기 좋은 방이 하나쯤은 생긴다면
그곳은 회피의 장소가 아닌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힐링할 수 있는 방이였으면 한다.
또한 1994년 출간하여, 2021년 재출간 하며 달라진 결말이라고 하니 원작의 결말도 궁금해져 읽어보고 싶어졌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숨어있기 좋은 방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신이현
1964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났으며, 계명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94년 장편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살림, 1994)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녀의 하루는 집 앞 빵집으로 빵을 사러 가는 것으로 시작해서 다음에 나올 책을 위해 파리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다 맛있어 보이는 빵집에 들러 저녁에 먹을 기다란 빵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맺는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글쓰기는 새털처럼 부드럽게 설레는 즐거움이다.
오랫동안 파리와 프놈펜 등의 도시에 살다가 현재 한국 충주에 정착해 와인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갈매기 호텔』, 『잠자는 숲속의 남자』와 에세이 『알자스』, 『루시와 레몽의 집』, 『에펠탑 없는 파리』, 『열대 탐닉』, 『알자스의 맛(그래픽노블 공저)』, 번역서 『에디트 피아프』, 『야간 비행』 등을 펴냈다.
장편소설 『숨어있기 좋은 방』은 1994년 데뷔작으로, 출간 당시 파격적인 이야기 전개와 윤리적 논쟁으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작품이다.
[예스24 제공]
1994년도에 출간한 신이현의 장편소설이
재출간되어 이번 기회에 처음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다소 파격적인 이야기에 적지 않은 충격과 여윤이 가시지 않아
무거운 공기 속에서 몸도 마음도 긴장해 있었다.
주인공 윤이금은 안전한 울타리가 없는
다소 철없고 무책임하며 즉흥적인 삶을 사는 듯 보여
계획적인 내 사고 안에서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불편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철들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행복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안고 서성거려야 했다.
속으로는 항상 '좀 즐겁고 싶어', '좀 자유롭고 싶어'하고 중얼거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p39
자신을 태어날 때부터 불안에 잠식된 존재라고 하는 이금.
살아가야 할 방향성도 없이 그저 한순간도 단단하지 못하며
매번 흩날리듯 불안에 떨고 있다.
인생의 스승 따위를 찾아볼 수도 없었고
자신의 인생에 황홀한 순간이 언제 올지 또한 절망하는 그녀가 안타까웠다.
직장 생활도 학교와 가정도
어느 것 하나 안정적인 것이 없었다.
의지할 수 없는 부모의 존재와 복잡한 가정사 안에서
숨이 막힐 법도 해보였다.
불안에 떠도는 삶이라고 해야 할까.
결혼 또한 억압이었고 희생이 강요된 속박이
그녀를 더 숨막히게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렇게 그녀는 늘 떠돌고 있었다.
소라 속처럼 둥글고 은밀하게 숨어들이기에 좋았던 방.
p145
어긋나버린 그녀의 삶에서 그 방은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쾌락과 환희 그 자체였던 것 같다.
태정이란 남자가 살고 있는 숨어있기 좋은 방은
아찔하고 은밀해 보이면서도 차선을 이탈한 듯 위험해보이지만
그녀에게선 유일한 돌파구처럼 생각한 것 같아 보였다.
그 후의 모든 비극 또한 그녀가 안고 가야 할 테지만
그러한 삶도 끌어안고 사랑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행복도 불행도 자신의 몫이니까.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 걸치고 걷다가 또 어디 가서 몸을 구기고 잘 만한 곳을 찾으면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하는 인생.
우리 함께 힘 모아 더 좋은 인생을 위해 노력해보자고 애원을 해도
귓구먼에 들어가지도 않는 오늘뿐인 사람들.
p238
탄식의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괴롭다고, 나 좀 구원해 달라고.
지독하게 외롭고,
맥 빠져 죽고 싶은 생각 밖에 없는 그녀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우울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
빨리 잠에 들려는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완벽한 안락함이 그녀에게 다가오기나 하는 건지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더 마음이 불편해진다.
내가 그를 사랑했는지 어쨌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와 함께 나는 신나게 웃어댈 수 있었다는 것이었따.
그것은 사랑했다는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이었다.
p278
이금이 웃을 수 있는 숨구멍이 바로 그곳이었다.
유일한 기쁨이 되는 남자. 그런 그와 온전한 사랑을 누릴 수 없었던
자신의 불안감과 흔들리는 삶이
무엇이든 오래도록 지속시키지 못했다.
끊임없이 외로워하며
행복하고 싶어 울음을 터트린다.
각자만의 숨어있기 좋은 공간 속에서 살길 우린 원한다.
그런 장소에서 내가 정화되는 느낌과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면 좋았을텐데
이금의 그 방은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고립되게 만들진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그 삶을 아름답다고 생각할 자신을 원망할 순 없다.
마지막까지도 그녀는 '남자'에 붙들려 있었다.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욕망을 확인할 수 있었고
현실을 부정하고 원망하고 비통해 하면서
한스러운 자신이 새로운 판타지를 만날 수 있길 동경하는 걸까.
좀처럼 무거운 우울감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든 책이었다.
힘겨운 매일을 사는 이들에게
이금의 삶은 자기 그대로를 보여주겠지만
삶의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모두가 자유할 수 있는 그 방을 찾아 때론 쉬어 갈 수 있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