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문명사나 문화이론, 또는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항상 결투와 대립, 분쟁 등으로 표현되는 전쟁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지금 시대에도 전쟁과 분쟁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이는 지도자나 권력을 가진 주체들의 욕심으로 보는 경향도 있지만 어쩌면 인간이 갖고 있는 본능적인 부분이자 야망과도 같다는 점에서 이 책은 현실적으로 마주하며 배울 수 있는 세계사의 또 다른 이면을 표현하고 있는 책이다.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특히 근대화나 현대화 과정에서 서구 문명의 우월성이나 그들이 말하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선진성은 우리들에게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볼 경우 불필요한 갈등과 대립의 역사를 조장하는 건 아닌지, 이로 인해 또 다른 이들은 이익을 누리거나 그들의 권력을 집결시키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결국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마주하며 더 나은 형태의 재정립이나 가치관 등을 가져야 하는지도 책을 통해 접하며 판단해 보게 된다. 물론 동양사를 보더라도 비슷한 흐름이나 패턴은 존재했지만 서구 문명의 경우에는 조금 더 다른 형태로 진화하거나, 늘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했던 부분에서도 심한 내홍과 갈등을 겪었다는 점에서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의 과학 기술 분야에서의 업적이나 발전상, 지역이나 민족, 국가 단위로의 여러 나라들이 존재하는 유럽의 본질적인 부분이나 공통적 요인, 하지만 명확히 구분 할 수 있는 기준이나 차이점 등은 무엇인지도 이 책을 통해 판단해 보게 된다. 무조건적인 유럽 지향적인 사고나 서구 문명을 향한 동경의 자세가 아닌 현실적인 부분을 진단하며 그들이 이룩한 역사적 과정에서의 장단점이 무엇인지도 함께 판단해 보자.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의 행위나 역사적 사례를 보더라도, 매우 본능적이면서도 직관적인 자세를 가졌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
물론 큰 단위에서의 사회변화나 다양한 분야의 개혁적 사례의 경우에는 우리가 배우거나 참고할 만한 가치가 많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나 리더가 등장하더라도 갖은 반발과 한계에 봉착하며 또 다른 사회위기나 문제적 상황 등을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비교를 통한 의미부여나 평가가 무의미 할 수도 있겠다는 점 또한 느끼게 된다.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테마로 보는 역사 가이드북으로도 볼 수 있고 전쟁사를 통해 조명한 유럽의 역사는 어떤 과정과 가치를 통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구현할 수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 깊이있게 배우며 더 나은 형태로 판단해 보자.
결투라고 하면 나는 천재적인 수학자였지만 자신과 큰 상관도 없는 어이없는 결투로 젊은 나이에 목숨을 읽은 갈루아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보통은 흔히 결투라고 하면 고대 로마의 검투사나 중세 시대의 기사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결투라고 하면 옛날 옛적에 있었던 옛날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저자가 직접 경험한 독일 학생들의 결투인 멘주어는 충격적이었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복수가 아닌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름을 걸고 결투에서 끝까지 도망치지 않고 용감하고 당당하게 싸울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진검을 들고 피가 흘려도 결투 전문의의 결투 중단 선언 없이 선수 스스로가 결투를 멈추지 못하는 룰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위험한 행위로만 보이는 거 같다.
물른 이 멘주어 직접 경험한 저자나 독일의 학생들에게 멘주어 중에 입은 상처는 자신들이 용감하다는 증거와 명예가 되겠지만 이방인의 시선에서 지금도 이런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결투로 인해 귀족들이 사망하는 숫자가 늘어나자 유럽의 왕들은 결투를 법으로 금지시켰다.
하지만 지금처럼 법이 강력한 힘을 가진 것도 아닌 유럽에서 귀족들은 물론이고 평민들도 개인적인 복수나 분노, 원한 등을 풀 수 있는 방법은 결투가 유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대한민국에 한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법치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요즘도 법은 피해자들이나 피해자들의 유족들에게 그다지 위로가 될만한 판결을 내려지지 않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복수에 한해서는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지적인 신사의 대명사인 괴테도 결투를 했다고 하니 의외이긴 했지만 그는 갈루아나 푸시킨처럼 결투로 인해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인 셈이다.
겨우 왕들이 금지시킨 결투는 십자군 전쟁을 핑계로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고 하니 그렇지 않아도 쌓인 기사들의 불만을 이교도들에게서 성지를 되찾는다는 성전이라는 그럴싸한 명분까지 주며 기독교의 최고 권력자인 교황이 부추겼으니 다시 유럽은 결투가 성행한다.
결투의 형태도 다양해서 진검을 들고 싸웠던 일반적인 결투도 있지만 말로만 싸우는 결투도 있었다고 하니 재미있다.
추운 지방은 사람들은 추운 날씨에 진검을 들고 휘두르는 진검승부보다 지금의 디스전부터 말로만 결투를 했다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결투가 어떤 형식으로, 왜 발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일매일 뉴스에 등장하는 각종 범죄 소식을 접하면서 차라리 이 책에 등장하는 결투라는 시스템이 더 정정당당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결투는 권투나 축구 등의 각종 스포츠들로 자리를 대신하며 사람들의 인기와 사랑을 받고 있다.
스포츠로 바뀌었다고 결투의 폭력성이나 위험성이 사라지지는 않았기에 올림픽에서까지 문제가 생기기도 했으며 특히 나치즘의 탄생에 깊이 기여한 매스 게임은 이 책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마라톤의 탄생 비화로 유명한 이야기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이 만든 이야기를 사실을 알고 나니 히틀러나 쿠베르탱의 뛰어난 마케팅 능력에 감탄이 나왔다.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결투의 세계사, 결투의 역사, 결투라는 주제와 테마로 읽는 세계사, 기획 의도가 매우 참신한 것 같다. 사실 결투는 흥미로운 주제이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명예 회복, 정의 구현, 선악 판단 등의 다양한 이유로 결투를 벌였다.
결투란 단어를 보면, 정의롭고 멋있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결투는 비정하고 잔인하며, 목숨을 걸고 하는 야만적인 행위였다.
이 책은 결투와 관련해 재밌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법학적 연구로만 이뤄졌을 뿐 본격적인 역사학적, 사회학적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결투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고, 사람들은 다양한 결투에 열광했다.
실제 유럽인은 결투할 때 공평한 규칙에 따라 수행원을 선정하고 검이나 권총 등 다양한 무기 중 무엇을 쓸지를 정했다. 결투는 형식에 따라 공개 또는 비공개, 공적 결투 또는 사적 결투, 법적 재판의 일종인 결투 재판 또는 신명재판으로 나뉜다. 특히 중세에는 기사와 귀족 계급이 기사도를 사회 규범으로 삼았으므로 결투가 널리 확대 되었고 결투 문화가 당대를 풍미했다.(5면)
미국의 결투, 미국은 유럽과 달리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이므로 결투의 역사도 유럽과 달랐다. 개척자의 나라인 미국은 국민 스스로가 국가를 만들어 나간다는 특이한 분위기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을 갖고 다녔으므로 결투 무기도 대개 권총이었다.(85면)
사실 결투는 문학이나 소설 속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중국 무협 영화의 단골 소재도 주인공과 악당 간의 결투이다. 문학 작품 중에 기억이 남는 결투 작품이 있는데, 바로 알렉상드르 뒤마의 유명한 삼총사이다. 이 작품은 왕을 호위하는 근무대 삼총사가 시골에서 막 대도시 프랑스 파리로 상경한 달타냥과 만나는 과정에서 그를 촌놈이라고 놀리는 삼총사와 다투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달타냥은 자신을 모욕한 삼총사와 차례로 결투를 신청한 것이다. 물론 결투 직전 추기경의 근무대가 나타나고 달타냥과 삼총사가 같은 편이 되어 추기경의 근무대와 결투를 벌이면서 나중에는 삼총사와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지만, 아무튼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시종 결투이다.
진검 결투는 1750년경부터 점차 스포츠로 변해 갔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방호구를 입고 안전한 결투를 추구했다. 결투의 목적 또한 명예 회복에서 담력시험, 용기 증명, 공포심 극복, 정신력 향상 등으로 바뀌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투는 기량을 기르고 정신력을 단련하는 스포츠로 바뀌었다…18세기 중반 근대 유럽에서 결투가 폐지되고, 결투에서 분화된 펜싱이 등장했다. 결투는 생명을 건 도전이고 펜싱은 승부를 가르는 게임이기 때문이다.(205면)
이 책은 피 흘리며 목숨을 걸고 싸우던 결투가 땀 흘리는 스포츠로 변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칼을 들고 싸우던 결투가 근현대에 와서는 공을 가지고 겨루는 스포츠로 바뀌게 된 것이다. 결투의 역사, 세계사와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는 책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현대 스포츠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결투' 를 중심으로 세계사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를 해주는 책이다.
최근 각 세대마다 가지고 있는 특징이 다양하고,
트렌드라는 말이 무색 할 정도
세상의 흐름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래서 중요하게 알아야 할 정보들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쉽게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다.
지식과 인문학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고,
인문학 관련 책들은 베스트 셀러에 오르고,
인문학 관련 강의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시대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 다양한 종류의 인문학을 즐기고 있다.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 분야가 바로 '역사' 이고,
그 중에서도 '세계사' 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기존의 세계사를 다루었던 책들이 단순히
선사시대, 고대, 중세, 근대, 현대까지
연대순으로 있었던 여러가지 사건들과
일부 중요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이야기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 는 유럽의 결투사,
유럽의 결투 금지령, 결투에 빠진 독일 학생과 장교,
스포츠가 된 결투, 축구와 히틀러의 연결 고리로
주제를 나누어서 자세히 설명하기 때문에
결투의 기원과 결투가 가지고 있는 의미,
결투가 역사의 흐름과 각 지역에 따라서
어떤 식으로 발전하고 변화 되어 왔는지,
결투로 인해 생겨난 사건들, 결투가
결국엔 어떻게 스포츠로 완성되고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얻는 분야로
발전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5가지 주제로 나누어서 설명하기 때문에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고 관심 있는 주제부터
찾아서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고, 좀 더
다양한 관점으로 세계사를 배울 수 있었다.
각 시대별, 나라별 결투와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 경과,
결과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이 남겼거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는지
역사적인 사건, 인물의 배경, 행동, 결정이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고 어떤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각 나라의 결투에 담겨져 있는
역사적인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지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익숙하게 알고 있는 내용들도 있었지만
결투를 중심으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계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됐다.
저자 하마모토 다카시는 일본 가가와현에서 태어나
지겐 대학에서 유럽문화권과 비교문화론을 공부했습니다.
긴사이 대학 문화부 교수를 거쳐 현재는 명예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저자 스가노 미치나리는 일본 후쿠야마현에서 태어나
만하임 대학에서 결투문화사와 독일어권 사회문화사를 공부했습니다.
현재는 교토 외국어 대학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두 명의 저자가 쓴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를 보겠습니다.
2020년인 지금도 일부 학생들이 진검 결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독일 학생의 결투인 멘주어는 약 90센티미터의 예리한 진검을 한 손으로 휘두르며 마주 선 상대의 얼굴과 머리를 공격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상대의 공격을 피하려고 발을 움직이거나 얼굴을 젖히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습니다. 불과 1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꼿꼿하게 마주 서서 오로지 칼만 휘둘러야 하니 그 공포심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멘주어는 중세의 결투처럼 원한을 갚거나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고 용감하고 정정당당하게 싸울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한 싸움이라 결투가 끝난 후 두 결투자는 동료가 됩니다. 도대체 멘주어가 남성에게 사랑받으며 오늘날까지 중요한 전통으로 남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인류 역사상 첫 결투는 언제였을까요. 유럽에서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카인과 아벨의 대결을 유럽에서는 결투의 기원으로 여깁니다. 진검을 쓰는 결투의 기원은 고대 로마 및 고대 게르만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검을 글라디우스라고 하고, 검투사를 글라디아토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글래디에이터는 이를 영어 발음으로 읽은 것입니다. 이들은 대중의 눈앞에서 목숨을 걸고 무기를 휘두르며 싸웠던 노예 검투사였습니다. 고대 게르만 사회는 개인과 씨족의 손상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사적 결투인 '페데'를 인정했습니다. 기독교 출현 이전의 고대인은 신이 수복, 물, 불, 성별된 음식으로 선악을 판단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중세 이후 기독교 사상과 융합해 신명 재판이 됩니다. 신명 재판은 불 재판, 물 재판, 음식 재판, 제비뽑기 재판 등으로 나뉘며, 결투 재판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십자군 전쟁으로 기사 계급은 기독교와 결부되었고, 기사단도 존경받는 집단으로 변해갔습니다. 기사도가 생겨났고 명예 결투란 것도 나타났습니다. 영국에서는 스포츠와 신사도가 보급되어 결투를 칭송하는 분위기가 사라졌으나 남유럽 사람들은 결투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유럽의 결투 금지령과 근대 계몽사상과 합리주의의 대두로 재판도 대두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결투가 살아남았는데요, 그 이유를 역사와 더불어 설명합니다. 결투가 스포츠로 변해가는 과정을 살펴보자면, 사회 집단에서 생겨난 알력이 결투가 되고, 이것이 신명 재판, 페데, 결투 재판을 걸쳐 진검(권총) 결투로 변했고 펜싱으로 바꿨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으나, 결국 결투의 뿌리는 인규의 근원적인 생존 본능, 경쟁심, 명예심일 것입니다. 유럽의 스포츠는 왕과 귀족이 즐겼던 기마 창 시합이나 사냥에서 유래한 승마, 펜싱, 양궁, 사격 등의 종목과, 민간의 민속 행사나 축제, 또는 단체, 협회, 클럽의 오락에서 출발한 크리켓, 골프, 테니스, 축구 등으로 나뉩니다. 그러나 테니스와 축구는 근대 공립학교의 체육이나 클럽의 오락에서 유래했습니다. 근대 스포츠는 영국에서 시작된 것이 많은데, 자본주의가 영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식민주의의 대표 주자였던 영국은, 7개의 바다를 지배하며 자국의 스포츠 문화를 급속히 보급했습니다. 식민지의 민심을 장악하는 데 스포츠가 제공하는 오락만큼 효과적인 도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포츠는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그러나 스포츠에 열중했을 때 발생하는 카타르시스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건전한 사회적 카타르시스는 비일상 공간을 만들어 일상의 스트레스나 우울함을 발산하도록 돕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스포츠에 열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강력한 감정은 정치와 결부되면 큰 반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나치 전당 대회 같은 예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스포츠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현장에서 감정이 폭주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국가주의를 초래하기도 하며, 더 나아가 특정 인종의 선수를 향한 인종 차별로 발전하기 쉽습니다. 단 이런 국가주의와 인종주의는 감정적인 반응이라 경기가 종료되자마자 확 줄어드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스포츠에서 발생한 감정을 일부러 정치와 결부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스포츠는 공평한 규칙에 기초한 인간의 도전입니다. 다만 이것은 원래 선수의 출신이나 인종을 따지지 않는 개인 간의 경쟁을 의미하는 개념이었습니다. 오늘날 패럴림픽 정신은 우리에게 스포츠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결투에는 선악 판단, 명예 회복, 투쟁심 해소, 신명 재판 등 다양한 개인적, 사회적 의미가 포함됩니다. 그래서 결투 안에 종교, 정치, 사회 규범 등이 깊이 개입해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가 되자 결투는 과거의 유산이 되었고, 그 역할을 법적 재판과 스포츠가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스포츠가 사람들의 투쟁심과 승부욕을 흡수했기 때문에 결투는 분해되고 해체되어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에서 결투가 스포츠로 변하는 역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만적인 결투가 소멸했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분쟁이 재판이나 스포츠로 대체되고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분쟁 해결의 수단으로 전쟁은 여전히 있습니다. 지금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생각하면 하루빨리 없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분쟁이 생겼을 때 담백하게 당사자 둘의 물리적 대결로 해결하는 건 인류의 오래된 관습입니다. 두 사람의 피지컬이나 격투 실력이 비슷할 때에는 더 간절하고 더 억울한 쪽에 승산이 있겠으므로 이 방식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소리 같아도, 중세에 벌어진 귀족, 기사 사이의 많은 다툼을 해결하는 데 이 방법이 큰 지지를 얻은 건 이런 이유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으므로, 이런 식으로 당부를 가리자면 폭력배가 매번 올바른 승자가 되는, 아주 부당한 결과가 빚어지기 십상이라서 근세 이후 문명 사회에서는 결투를 칭송하기는커녕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형사 범죄로 규정하기에 이릅니다. 책에서는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론 영향도 분석합니다(p120).
30년 전쟁의 향방을 프랑스 왕국에 이롭게 이끈 노회한 정치가였던 리슐리외 추기경(p62, p106)은 루이 13세를 보필하며 내정에서도 여러 업적을 남겼는데 1626년의 반결투법이 의회에서 통과되게 한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p63, 또 p152 등에 나오지만 이 결투라는 방식은, 명예라는 게 뭔줄 알고 또 지킬 명예라는 게 있기나 한 귀족들의 전유물입니다. 루이 14세 때에도 결투에 몸이 단 양 당사자를 똑같이 엄벌에 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비로소 분쟁이 해결되었다는 사례가 책에 나옵니다. 프랑스뿐 아니라 스웨덴, 러시아에서도 결투가 군주의 명에 의해 금지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인명중시나 인도주의 같은 의도가 아니라 절대 왕정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고 합니다. 단 이후 계몽군주의 시대(p111)로 넘어가면 상황이 달라지긴 합니다.
그럼 프랑스 대혁명 이후 귀족이 몰락했으니 이 결투라는 관습도 자연히 같이 사라졌을 법합니다만 그렇지가 않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오히려, 이때부터 근대적 결투가 새로 시작되었다고까지 단언합니다. 인간의 욕구 중에는 명예욕이라는 게 있고, 결투 신청을 통해 구 귀족처럼 품위 있어 보이고 싶어하는 것도 속물 근성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단 부르주아 계급 사이에 널리 결투가 퍼지지는 않았는데, 이 배경에 대해서는 책에 특별한 설명이 나옵니다.
결투는 이른바 신명(神命) 재판의 일종이었습니다(p47). 물론 모든 결투 재판이 중세에 교회 주관이었던 건 아니고, 종교와는 무관하게 귀족, 왕의 공권력에 의해 열린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820년 바르셀로나 백작 베라가 이슬람 세력과 결탁하여 반역하려 들었다는 혐의를 쓰자, 루도비쿠스 황제는 고소인인 루시용 백작의 대리인 사이의 결투를 마지못해 승인합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고트 족의 명문 혈통이었으며 고트 전통 역시 결투로 누가 신의 뜻을 얻었는지 가리는 방식을 좋아했습니다. 이 역시도 신명재판이었기에 패자가 된 바르셀로나 백작은 죄를 자인하고(!) 다만 황제의 자비로운 사면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습지만, 신이 반대편의 손을 들어 주어 결투에서 이기게 했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이런 재판은 중세말에 이르러 현저히 줄어들었는데, 일단 종교 당국이 폭력을 점차 금하게 되었고(p63, p96), 대중 역시 그저 물리력이 우세한 자(혹은, 그저 결투 당일 운이 좋았던 자)가 정의롭게 판정되는 이런 결과에 대해 점차 불신하게 되었다는 설명인데 상식에 비추어서도 타당합니다. 중세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미국 영화 <엘시드>에도 자우스팅 장면이 있습니다. p80, p194 등에 나오듯 결투는 이를 지켜보는 대중에게 하나의 오락으로도 받아들여졌습니다.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4세와 스웨덴 왕 칼 9세 사이에 있었던 서신 결투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후자가 덴마크 측의 칼마르 점령을 항의하며 일대일 물리적 결투를 신청하자 전자가 "결투까지 갈 것도 없이 당신에게는 이미 신의 벌이 내렸음이 분명하다! 결투니 뭐니 미친 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벌써 정신이 돈 것 아니겠는가?"라며 조롱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확실히 크리스티안 4세의 반응이 훨씬 성숙하고 이성적입니다. 이 일은 1611년에 있었으나, 중국에서는 기원전 2세기 말에 중원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항우가 유방더러 일기토를 신청하자, 유방이 "남아라면 당연 지혜를 놓고 한판을 겨룰망정 어찌 폭력으로 자웅을 가리겠는가?"라며 상대를 점잖게 꾸짖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실제 싸움이 벌어졌다면 이미 중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든 데다 변변히 무술 훈련을 받은 적도 없는 평민 출신 유방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을 텐데 약아빠진 그가 이런 방식을 수용했을 리 없습니다.
반면 19세기 서부개척시대에 벌어진 미국의 결투는 귀족적이라거나 명예로운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야만적 행태였습니다. 등 뒤에서 총을 쏘지 않는다는 영화적 허구가 퍼져 있긴 하나 그런 신사적 낭만이 무법천지 미국 서부에서 통했을 리 만무합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영화에서 즐겨쓰던 대표적인 배경이 애리조나인데 이곳은 합중국 가입이 보류되던 준주(準州. territory)에 블과한 지위였습니다. 이 책에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의 결투 그 유명한 사례들도 소개되는데 하나 아쉬운 건 미국사상 아마 가장 큰 화제가 된 결투였을 알렉산더 해밀튼과 애런 버 사이의 총격전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여튼 책은 후반부에서 나치 독일이 어떻게 결투를 하나의 제의(際儀)와 오락, 스포츠로까지 발전시켰는지 분석합니다. 이 점이 책의 품격을 높이며, 독자에게도 그저 역사잡학 가십거리의 제공을 뛰어넘어 체계적이고 통찰력 있는 역사 고찰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미도 있고, 생각할 소재도 많았던 고마운 책이었어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어쩌다 손흥민이 되었나
21세기북스에서 출판한 하마모토 다카시·스가노 미치나리의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는 결투를 주제로 세계사를 조망한다. 현대 스포츠의 기원이 결투에서 유래하고 결투가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소개한다.
결투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석양의 무법자>, <황야의 무법자>, <오케이 목장의 결투> 등이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결투는 영화적 요소가 가미되었고, 총으로 결투를 벌이는 것보다 검으로 벌이는 결투가 더 일반적이고 살상률이 높았다고 한다.
결투는 이제는 과거지사로 여겨지지만 놀랍게도 지금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맨주어’라는 단검을 들고 90cm 거리에서 상대의 얼굴과 머리를 찌르는 결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결투는 세계사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에바리스트 갈루아는 여인과 추문으로 원하지 않는 결투에 임하게 되고 죽기 전 자신의 연구 결과를 급하게 옮기고 결투에 나서 사망에 이른다.
과거 결투는 왕가, 귀족 계층에서 자신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시도를 막거나, 자신의 연인과 부정한 수문 혹은 추문으로 이어진 상대와 결투에 이르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도 여인 때문에 결투를 벌이고 상처를 입는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간 이유는 결투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도 여인으로 인한 결투로 사망하게 된다.
미국의 건국에 일조한 알렉산더 해밀턴도 정치적 이유로 애런 버와 결투로 사망하게 된다. 미국은 이에 결투를 금지하지만, 지역에 따라 여전히 자유로운 남부, 서부 지역은 결투가 벌어지기도 한다.
결투는 선악 판단, 명예 회복, 투쟁심 해소, 신명 재판 등 개인적 사회적 이유로 행해지기도 했으며 종교, 정치, 사회 규범 등이 깊이 개입해 있다.
중세에는 기사 계급을 중심으로 결투가 성행했으며, 규율을 도입해 결투를 정형화했다. 특히 독일에서 공부하고 유럽의 비교문화를 전공한 저자는 독일의 결투문화를 집중해서 다룬다.
후반부에는 결투가 오늘날의 스포츠로 진화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현대인이 사랑하는 스포츠는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스트레스를 발산한다. 일부 스포츠는 정치적 의미를 금지하는 스포츠 협회의 방침에도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이 기대되는 이유는 대회가 마무리되면 남겨진 의미는 정치적 사회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결투를 통해 세계사를 조망한다는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특별하게 다가온다. 고대 로마 정치가들은 정치에서 시민의 눈을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검투사 시합을 벌였는데, 오늘날 스포츠가 종종 정치적 의미가 있다. 결투에서 진화한 스포츠 종목은 인간의 본성을 자극해 관객의 이목을 모았다.
세계사에 영향을 미친 결투의 흔적을 확인하고 싶은 분은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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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모토 다카시(浜本 隆志)’와 ‘스가노 미치나리(菅野 瑞治也)’의 ‘당신이 몰랐던 결투의 세계사(決?のヨ?ロッパ史)’는 유럽 역사를 흥미롭게 정리한 책이다.
실로 아이디어가 좋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유럽사를 다루는데, 거기에 ‘결투’라는 주제를 붙이고 그를 중심으로 정리를 함으로써 같은 내용도 실로 흥미롭게 볼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싸움으로 이루어져왔다. 때로는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한 욕심 때문에, 또 어떨 때는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감정적인 명분 때문에 그러기도 한다.
이러한 싸움들은 때론 국가간의 부닥침인 전쟁으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까지는 발전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전쟁이란 그만큼 일으키는 측에서도 받아치는 측에서도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하며, 무엇보다 나라를 모두 거기에 몰두하게 만들 요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개인간의 싸움, 즉 결투로 승패를 내게된다.
역사 속에서, 특히 유럽의 역사 속에서 결투는 그 의미가 더 크다. 이성적으로 따져본다면 힘 있는 놈이 자기 잘못을 합법적으로 덮으려고 하는 더러운 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앙이라는 것을 등에 없은 결투 재판같은 제도가 있었던 것만 봐도 그렇다.
싸워서 이긴자가 곧 진실되고 정의로운 자라고 하는, 실로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을 뒤집는 결투라는 것은, 그렇기에 또한 매력적이기도 하다.
이것이 현대로 오면서 점차 검투사, 그리고 스포츠로까지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그것들이 꽤 많은 공통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꽤나 그럴듯하다. 현대에 인기를 끌고있는 격투기와 연결지어 생각하면 더 그렇다.
다만, 그것을 좀 더 넓혀 ‘승부’로까지 올라가게 되면, 남과 경쟁하고 또 거기에서 더 높은 위치에 서고 싶어하는 것은 일종의 생물로서의 본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기에 많은 것들을 결투로 연결짓는 논리는 좀 과장된 측면도 있어보이긴 하나, 그렇다고 부정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며, 무엇보다 흥미로운 관점이라서 재미있다.
*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